가슴이 먹먹한 후배의 안타까운 이야기
뻔한? fun한!!/산다는건... 2009. 10. 1. 03:15 |아끼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 사무실 근처에 왔다가 계신가 해서요.
> 그래? 미안해서 어쩌지.. 나 지금 성묘갔다가 올라가는 길인데..
- 됐어요... 명절 잘 보내시라고요..
> 그래 고마워... 별 일 없지?
- 별 일이요? 저 별 일 많아요.
> 무슨 별 일이 많은데?
- 별별 일 많다니까요... ... 저.. 이혼청구소송 당했어요..
> ... ...??
그래서 저녁에 만났다.
7시반쯤 만나 11시반까지 이어지는 그 후배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그동안 함께 살아온 이야기.
집사람이 세차례에 걸쳐 척추디스크수술을 받는 동안 대소변을 받아준 이야기.
맏사위로서 장인과 처남의 장례를 치러준 이야기.
술을 좋아하다 이제는 알콜중독 증세까지 보이는 집사람을 구슬린 이야기...
숱한 이야기를 토로하다 격정을 이기지 못해 간간이 울먹이며 눈물마저 보인다.
"아직도 눈물이 나네요...
수술비가 천만원이 넘는다고 하면 미안해 할까봐 회사에서 지원된다고 하고 대출까지 받아 수술시키고,
가슴콤플렉스가 있다고 해서 가슴수술까지 시켜주고..
그렇게까지 했는데, 저한테 한마디 말도 없이 이혼청구소송을 냈더라구요.
전 법원에서 통보받았고..."
후배가 들려주는 소장에 적혀있는 소송사유를 들어보니 나도 기가 차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증거로 제출할 수 있는 부분까지 반대 주장을 핀 것을 보니,
도대체 이 소송을 수임한 상대 변호사는 기본적인 사실확인 조차도 안하나.. 하는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예를 들어, 작년부터 사실상 별거생활을 해온 이 친구는 생활비로 매달 월급의 절반을 꼬박꼬박
집사람의 통장으로 송금해 통장에 근거가 남아 있음에도, 이혼사유에는 생활비를 주지 않는다고 적혀있다.
그런걸 떠나, 몇년 전 까지 또 한명의 가까운 후배와 함께 세 부부가 1년에 두세번 부부동반모임을 갖기도 했는데,
그때 마다 후배의 부인이 어찌나 남편 자랑을 하는지 집사람과 또 한명 후배의 부인은 이구동성으로
'병도 단단한 병' 이라며 닭살부부라고 놀리기 까지 했었거늘...
오죽하면 그 이야기를 들은 집사람이 법정증인이 필요하면 나가서 증언할테니 언제라도 부르라고 하겠는가.
나이와 체구에 어울리지않게 늘 생글생글 웃어가며 다정다감한 음성으로 만나던 후배.
헤어지며 마지막으로 한 말.
"모처럼 형님 만나 안좋은 이야기만 늘어놔서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도 하나 밖에 없었다.
"미안하긴... 응어리진게 많았을텐데,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날 생각해준게 오히려 고맙지..
그럼에도 딱히 해줄 말이 없어 내가 더 미안하다."
지하철 입구까지 배웅을 나가 후배의 모습이 사라질 때 까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나를 돌아보고는 손을 흔들며 웃는 후배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여진다.
세상이 참 불공평한건지... 아님, 다양한건지...
맞으면서도 끽소리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헌신적인 사랑에 비수를 꽂는 사람도 있다.
집사람의 잠든 모습을 보며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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