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거리에는 수많은 인파만큼이나 그들을 대상으로한 많은 먹거리가 있다.
그중에는 작은 공간 하나 확보하기 어려운 서민들이 거리를 공간으로 삼아 운영하는
다양한 Road Shop이 존재한다.

게중에 눈길을 끄는..
 

 


이름부터 예사롭지가 않다.

어떻게 혐오스러운 느낌의 배설물을 브랜드化 할 생각을 했을까?
게다가 생김새까지..

아예 세트메뉴의 음료수 이름마저 또 다른 배설물로 세트화 하지 않은게 다행인가..^^


 


말 그대로, 호떡집에 불났다.
많은 호떡집이 있는데, 여기 줄이 제일 길다.

이 사람들은 이 곳의 맛을 알아서 여기 서있는 것인지,
아님, 군중심리에 끌려 대열을 구성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호기심에 나도 one of them 이 되어 본다.

그렇게 줄을 서 기다림 끝에 내 입 속에 들어온 호떡 맛은..

글쎄...


 


요건.. 들고 다니며 먹기가 참 애매할 거 같다.

그래서일까..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별로 끌지 못한다.
어쩌냐...

 


:

 

 

 

인사동 정은선갤러리의 [조영남 전시회] 작품 하나.

다방면에 다재다능한 조영남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전시된 모든 그림이 하나같이 화투가 주제다.

화투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도 놀랍고,
작가 사인도 역시 조영남 답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지만,
더욱 놀란건 작품 아래 조그맣게 적혀있는 가격.

저 그림의 가격은 1200만원이 붙어 있다.
전시된 그림 중 내가 확인한 가장 쎈 가격은 2500만원.

사실상 굳이 팔 의사가 없다는 조영남의 배포를 보는 거 같아
다시금 웃음이 나온다.

소설가 이외수와 더불어 역시 이 시대의 화성인 임을 확인한다.


하필이면 그 순간 카메라 기능에 이상이 생겨
몇 가지 재미난 그림을 더 담지 못한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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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풀린 걸 알고는 햇볕아래 몸을 드러낸 동네친구 요 녀석.
노곤한 듯 눈을 반쯤 감은 채 누군가 놓고 간 먹이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저 평상 속에서 모진 겨울을 잘 이겨내 고맙고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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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서 책을 둘러보다 특정 세대를 테마로 한 흥미로운 책들을 보고
직원의 시선을 피해 잠시 한 군데로 모아 보았다.


 

하~ 해야 할 과제가 저렇게 많은 40대 였다니.

저 중에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라는 말..
아프지 않고 40대를 지나와서 참으로 다행이다.


직장과 가정에서
안그래도 생각이 복잡한 시기가 아닌가.


[마흔]의 [흔]이 흔적이라는 의미의 [痕]이라 한다면,
[마]는 일만 하는 [馬]가 될지, 자신을 갈고 닦는 [磨]가 될지,
아니면, 피곤하고 골치아픈 [魔]가 될런지...

30대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40대로 들어가시고,
40대들.. 몸 성히 잘 버티시고 50대로 들어오시길.

:

 

 

 

혜민 스님이 소설가 이외수 선생에게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여쭈었다.

"존버 정신을 잃지 않으면 된다" 는 이외수 선생의 답에
혜민 스님은 "대체 존버 정신이 뭐냐" 고 다시 여쭈었다.

선생 왈, 
"스님.. 존버 정신은 존나게 버티는 정신입니다."



정말 혹한의 계절을 잘 버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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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되면서 비로소 [가비]가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영화를 보기 전, 국어사전을 아무리 찾아봐도 [가비]에 해당될만한 의미를 찾지 못했다.
단지 포스터의 부제가 [아름다운 독(毒)]으로 되어 있어 [假砒]가 아닌가 유추했는데,
영화 첫 화면에서 [加比]라는 문구를 보고 커피를 이르는 표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조선 말기, 역사에서 아관파천이라 기록된, 일본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고종.
일본은 고종을 독살하고 조선 군대를 무장해제 시키기 위해, 커피를 즐기는 고종의 커피에 독을 타 고종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기도한다. 이름하여 [가비작전].

역관의 딸 따냐(김소연), 그리고, 따냐를 좋아해 따냐 부녀를 따르던 일리치(주진모).
둘은 어린 시절 따냐의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오랫동안 러시아를 기반으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탓에 
서로에 대한 애정과 생존만이 중요할 뿐, 조국이라는 국가의식이 정립되지 않은 조선인이다.

열차 강탈범으로 러시아 군대에 의해 체포돼 처형당할 이들을 구출한 일본은, 러시아 공사관에 피신한
고종(박희순)을 독살하기 위해 따냐를 고종의 커피 바리스타로 침투시키고, 일리치는 조선 군대를 와해시키기
위한 일본 무관으로 임명된다. 

가비작전을 주도하는 사다꼬(유선)는 일리치와 따냐의 관계를 이용하며 두 사람을 조종하고,
일리치는 오로지 따냐를 구하기 위해 사다꼬의 의도대로 조선 군대의 무력화에 치중한다.
하지만, 고종 독살 임무를 부여받은 따냐는, 겉으론 무기력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조선의 자존을 지키려는 
고종의 흉금을 파악하고는 일리치와는 반대로 오히려 고종의 뜻을 따르게 된다.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사랑하는 연인이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갖게 되는 두 사람...
          

[가비]는 여러가지 흥미로운 구성요소를 보인다.

조선의 마지막 왕은 순종이지만, 순종이 (헤이그 밀사 파견을 이유로 고종이 강제 퇴위된 후)
일본에 의해 옹립되었음을 감안하면, 고종이 조선 왕실에서 승계된 마지막 왕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 [가비]는 조선의 마지막 왕과 조선 최초의 커피 바리스타를 매치시켰고,
- 조선왕조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조선의 풍습보다 서양의 풍습이 돋보인다.
   즉, 조선의 실내 건축양식과 복식(服飾)보다 서양식 실내 건축양식과 복식이 주를 이루며,
   영화의 소재라 당연하긴 하지만, 조선시대 임금의 식탁에 수라상보다 커피가 주를 이룬다.
- 그리고, 일리치와 따냐, 또 그 두 사람을 조종하는 사다꼬. 조선의 무력화시키는데 동원된
   그들은 모두 같은 조선인이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가장 아쉬운 건, 영화 초반에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다채로운 전개다. 
단순한 강도에 의한 피살이 아닌 듯한 따냐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갑자기 전환되는 러시아 장교들과의
열차 액션과 커피 탈취, 러시아 군인에게 체포되어 사형집행  장면에서 느닷없이 일본에 의해 억류된 경위, 
그리고, 따냐의 러시아 호텔 바리스타 등장 등, 뭔가 둥둥 떠다니는 듯한 전개는, 편안하게 혹은 긴장감을 갖고
영화에 임하려는 관객의 몰입을 오히려 저해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관객으로 하여금 보여지는 장면을 연결시켜 흐름을 이해하기 바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비]는 대단히 밀도있는 구성을 보여주려 노력한 흔적이 여러 곳에서 많이 보이는데, 그런 욕구로 인해
스토리의 인과관계가 많이 축약된 느낌이 든다. 그렇게 축약된 부분을 메우는 게 관객의 몫이며,
그런 과정에서 [가비]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는 영화다.
군더더기없고 템포빠른 화려한 연출이라 평가 받을 수도 있고, 그럴 듯하지만 뭔가 외화내빈의 속 빈 강정같다는
평가도 받을 수 있는 게 [가비]다. 이건 편집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가비]의 영상은 아름답다.
상황에 따라 때론 와이드하게, 때론 디테일을 살린 카메라 앵글도 좋고, 전체적인 색감도 좋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의상과 상황에 맞춰 섬세하게 준비된 소품들도 한 몫을 한 거 같다.
조선과 일본, 러시아의 주거환경과 의복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는데, 특히, 고종의 백색 곤룡포가 흥미롭다.
여지껏 사극을 통해 보아온 조선시대 왕의 곤룡포는 금색 혹은 붉은 색이었는데, [가비]에서 고종은
늘 흰색의 곤룡포만 입는다. 아마도 명성황후의 국상을 치루지 않은 상태에서 피신을 왔다는 역사적 사실과,
본인이 다스리는 영토 안에서 다른 나라 공사관으로 피신한 나라 잃은 왕의 쓸쓸한 마음을 표출하고자 한 
연출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찌됐든 흰색 곤룡포는 박희순의 회한이 섞인 표정과 좋은 매치를 보여준 거 같다.


배우.. 간단하게 짚자.

주진모는 참 안타깝다. 늘 보여주는 열정에 비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느낌인데, 너무 잘 생긴
조각같은 외모에 시선이 먼저 가기 때문이 아닐까.. [가비]에서 일본군 제복을 입은 주진모의 모습은
냉정한 감정의 일리치와 너무 잘 어울린다.   

김소연. 영화 내내 특별한 변화가 없는 거의 일정한 표정으로 일관하는데, 그런 모습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여린 듯하지만 흔들림없는 신념을 갖춘 캐릭터를 잘 보여준 거 같다.

박희순을 처음 제대로 인식한 영화가 [작전]이다. 한 마디로 어떤 역이든 역할에 맞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개성있는 연기자.

유선. 글쎄... 김소연과 같이 변화없는 표정이라도 김소연과 느낌이 다르다. 
다른 연기에서도 늘 보아오던 그런 밋밋함?

김응수. 정말 요즘 TV건, 영화건, 이쪽 저쪽에서 자주 보인다. 꼭 주연이 아니면 어떤가..
쓰임새가 많다는 건 연기자로서는 가장 큰 보람이다.    


영화를 소개하는 TV 프로에서 [가비]에 대해 "물 맛 나는 커피" 라고 평 하는 걸 들었다.
그 평은 너무 가혹하다 생각하지만, 진한 맛의 에스프레소나 짙은 향의 커피를 기대했던 사람에게
조금은 아쉬운 여운이 남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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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같지만,

실은 상대방이 가장 곤혹스러운 말.

"아무거나~"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마음 속에도 원하는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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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년 간 미국 첩보 스릴러를 보면 일정한 패턴이 있다.
CIA 일부가 악역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CIA 본부 안에 부패한 수뇌부가 있거나, 국수주의에 젖은
과격 극우조직이 존재하여 자의적인 공작을 도모한 후 조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조작된 희생양을
만들어 진실 은폐를 기도한다. 희생양은 주로 전직 혹은 현직 CIA요원이 등장하지만, 경우에 따라
우연한 계기로 CIA의 공작 기밀을 인지하거나 습득하게된 제삼자가 대상이 되어, 첨단설비와 막강한
정보력을 갖춘 조직과 쫒고 쫒기는 대결을 벌인다. [본 아이덴티티]로 대표되는 본 시리즈가 그렇고,
반전의 백미를 보여준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가 그랬다.

[세이프 하우스] 역시 그런 영화다.

CIA, M16, BND 등 미국뿐 아니라 영국과 독일 정보기관의 비리가 담긴 파일을 입수한 전직 CIA요원과
이를 제거하기 위한 CIA, 그리고, 얼결에 중간에 끼게 된 풋나기 CIA 요원의 대결이 펼쳐진다.

이런 類의 첩보 스릴러를 좋아하는 영화팬들에게 [세이프 하우스]는 스토리 구성이나 전개방식이
익숙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참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모든게 익숙한 상황임에도 
몸에 와닿는 긴장감은 무언지.. 국내 스릴러에서는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긴박감이 있다.
BGM 때문일까? 아님, 스피디하게 이어지는 액션? 어쩌면 국내 추리물에서는 쉽게 연출되기 어려운
강력한 무기를 동반한 스케일 큰 총격전과 숨가쁘게 전개되는 카체이싱에 동원되는 자동차의 물량,
아울러 첨단시설을 돋보이게 하는 C/G 처리능력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른 긴장감이 있다.


BMW가 카체이싱 소모품으로 쓰일 정도의 물량공세가 우리와의 차이라고 할까.


위에 언급한대로 기존의 첩보 스릴러와 구성이 별반 다를 게 없는 [세이프 하우스]지만, 그래도
종전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눈요기거리가 하나 있다. 제목 그대로 세이프 하우스가 그것이다.



우리에게는 안전가옥이라는 명칭으로 익숙한 세이프 하우스는 망명자 등 특수 신분자 보호가 주된 
기능인 줄 알았는데, 실제 CIA의 세이프 하우스는 냉전시대 소련의 스파이를 심문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용도야 어찌됐든, 또 실제의 구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세이프 하우스의 구조는 관객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세이프 하우스는
아니러니하게도 계속 적에게 노출되어 공격을 받는 가장 불안전한 장소가 된다.   



덴젤 워싱톤은 나이가 들어 댄디함에 중후함까지 더해져 더 멋져진 느낌이다.
상대역 라이언 레이놀즈는 잘 알지 못하는 배우지만,
레이놀즈라는 성을 보니 생각나는 배우가 있다. 바로 버트 레이놀즈. 


[세이프 하우스]는 스크린을 많이 확보한 영화는 아니다.
스크린을 확보했더라도 1일 1~2회 정도 상영할 정도로 흥행에 크게 기대를 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영화가 잘 못 만들어진 건 아니다. 액션의 스케일은 오히려 맷 데이먼의 [본 시리즈]보다 낫다.
킬링타임용 오락용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다.


사족 : 그런데, 정말 CIA 내부에 영화의 소재가 되는 그런 비리와 자기들만의 조직이 있을 수 있는건가?
         하도 그런 소재의 영화가 많이 나오니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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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한 달 앞두고 시댁에 인사를 가던 예비신부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남긴 건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유소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있는 머리핀뿐.

왜 제목이 화차(火車)일까?


오랜만에 미스테리 추리스릴러를 접했다.
영화를 본 느낌은.. 뭐랄까, '일본소설답다' 이다.  이 영화의 원작은 일본소설이다.

문호(이선균)는 불명예 퇴직한 강력반 형사 출신인 고종사촌형 종근(조성하)에게 실종된
예비신부 선영(김민희)의 추적을 의뢰하지만, 문호가가 찾는 예비신부 선영은 선영이 아니었다.
영화는 문호와 종근이 선영이 아닌 선영을 찾아 나서는 미스테리한 상황을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영화에서 주연이라는 의미가 무얼까?  등장하는 씬의 수? 아님, 대중적 인기도?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주연은 요소요소에서 영화의 맥을 짚어주는 배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생각하는 [화차]의 주연은 이선균도, 김민희도 아닌, 조성하와 김별이다.



개인적으로 대중적 인기와는 별개로 개성있는 연기를 하는 조성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화차]라는 영화의 맥을 풀어나가는 배역도 결국 조성하가 연기하는 종근이기 때문이다.

문호가 원장인 동물병원의 간호사 한나(김별)도 그렇다.
밝고 총명한, 그러면서도 되바라지지 않은 상큼발랄한 아가씨.
한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실종으로 방황하는 병원장 문호의 심정을 이해하며,
고비마다 사건 해결의 단서를 제시하고, 방황하는 그를 대신해 병원을 지켜나간다.     
총명하고 발랄한 그녀를 보며, 현실에서 저런 스탭을 둘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선균.
얼마 전 TV로 본 [체포왕]에서 형사로 분한 그를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화차]에서 또 그를 만났다.
그리고 든 그에 대한 생각은, 참 호감이 가는 연기자임에도 그의 배역은 한정될 거 같다는 안타까움이다.
귀에 달라붙는 좋은 보이스톤, 그리고 선한 인상. 그런 그의 캐릭터는 스스로가 타파해야할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게 안 될 경우, 모든 이에게 호감을 주는 그의 이미지가 연기자로서 그에게는 한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화차]는 미스테리물에 갈증을 느끼던 영화팬들에게는 분명 흥미로운 영화다.

매번 영화를 볼 때마다, 불과 두 시간 남짓으로 제한된 현실적인 시간의 공간에 어쩌면 저렇게 복잡한 
가상의 공간을 담을 수 있는지, 연출과 편집의 마력에 놀라곤 하는데 [화차]에서 새삼 그런 느낌을 받았다.
'상영시간이 제법 흐른거 같은데..  어~ 이젠시간이 얼마 남지않아 마무리를 해야 할거 같은데..' 하는,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닌 조바심이 이는데도, 영화는 문호와 종근의 추적 속에 강선영과 차경선의 과거를
오가며 서두름없이 차분하게 마무리를 지어간다. 

[화차]가 흥미로웠던 건 감독이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하려 노력한 점이다.
감독은 관객의 이해가 필요한 순간에 문호와 종근을 관객의 아바타로 추리 현장에 세움으로써 관객의
이해를 도우려 했고, 역으로 관객이 예측 가능한 과정은 과감히 생략하여 군더더기없는 흐름을 이어가려
했다. 때문에 살인과 납치를 다룬 작품임에도 관객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거의 없다.      
      
흥행은 미지수지만, 미스테리 마니아에게는 조용히 각인될 수 있는 영화다.


서두에 언급한, 왜 제목이 화차(火車)일까?
火車는 생전에 악행을 저지른 亡者를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란다.

火車의 탑승자를 보여주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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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주관이 개입될지라도 나름 객관화하려는 평가이고,
 
비난은 다분히 감정이 반영된 것이며,

비방은 사실 이외의 것이 첨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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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을 마주하기 찜찜한 사람이 택하는 방법이 변두리를 겉도는 것이다.

그냥 빙빙 돌기가 멋적으니 늘 화려한 수사(修辭)가 곁들여진다.

팩트(fact)와 레토릭(rhetoric)을 분별할 수 있는 民度가 국회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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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4년 만에 찾아오는 윤년이다.
윤년에는 2월이 29일까지 있다.
즉, 4년 만에 하루가 덤으로 더 있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4년 만에 인생에게 주어지는 보너스 날. 


이런 생각을 해봤다.

4년 마다 오는 2월 29일에는 모든 공식적인 사회활동을 중단하면 어떨까?

4년에 한번 우리 삶에 덤으로 주어지는 24시간.
그 24시간 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사람들은 무얼 할까?
 

이번 총선에서 윤년 안식일제를 공약으로 제시하는 정당이 있으면
정당 지지 투표는 무조건 그 정당으로 할텐데..^^

: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  보고싶다.

:


아파트단지 옆 공원에서 기거하는 고양이.

얘가 앉아있는 단 바로 아래 단 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구멍이 있고,
얘는 그 안에서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사람들은 얘네들을 위해 구멍 입구에 사료를 놓아두기도 하는데,
그런 흔적들을 보며, 동물들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음을 느낀다.


전에 담아둔 이 사진을 보다 갑자기 얘네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이 추운 겨울, 얘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운동을 하면서 얘네들의 모습을 자주 보던 아내도 최근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데.


이 혹한에 잠자리는 어떤지..  무엇을 먹고 지내는지...
혹시, 별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봄이 오면 다시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이 순간 뒤에서 꼬맹이가 놀아달라고 칭얼댄다.
"꼬맹아~ 쟤네들 생각하면 네가 지금 칭얼댈 때가 아니잖아.."

하긴...  그것도 제 복인 걸...
:

다윗 왕이 자신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궁중의 세공을 불러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단다.

"반지를 하나 만들어 문구를 새기는데, 내용은 기쁠 때 그 기쁨을 자제할 수 있고,
 반대로 좌절에 빠졌을 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문구여야 한다."

궁중에서 일 하는 세공이니 만큼 반지를 만드는 거야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문제는 기쁨을 자제함과 동시에 좌절을 극복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어찌보면 상반되는 의미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문구가 문제였다.

이에 세공이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 왕자를 찾아 조언을 구했고,
솔로몬 왕자는 이런 문구를 알려주었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말 밤,
아내와 함께 TV의 교양프로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듣게 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표현.
아내는 이 표현을 듣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  위에 적은 글은 이 경이로운 문구의 출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이야기다.


그래.. 영원한 것은 없다.
살아온 삶이 어느덧 오십을 넘어 육십을 향하지만, 삶이 늘 같지만은 않았다.
즐거운 일도 있었고 걱정에 빠져 우울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런 희비는 어느 순간 
항상 나를 스쳐 지나가곤 했다. 즐거움이나 걱정이 머물러 있기만 한 적은 없었다.

만약, 둘 중에 하나가 항상 내게 머물러 있었다면, 나는 이미 남을 생각치 못하는 오만한
사람이 되었거나, 아님, 좌절감에 빠져 세상을 원망만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즐거웠던 일이라도 시간이 흐르며 평상심으로 돌아오고, 큰 걱정에 빠져있다가도
나도 모르는 순간 그 질곡에서 빠져나와 일상을 누리곤 했다.

머무는 것은 없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지나가고 흘러간다.
時流라는게 결국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히 시간이 머물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그 상황 역시 머물지 않는다는게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맞는 모든 것이 한 때라는 얘기다.

우리가 겪고 있고, 또 앞으로 겪게 되는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지나치게 들떠 기뻐할 것도 없고, 깊이 시름에 빠져 좌절할 일도 아니다. 

결국, 그 또한 지나갈 것이기에.
      


오래 전부터 늘 마음 속에 담아두는 문구가 있다.
"뒷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이제 평범함 속에 담긴 오묘한 진리 하나가 역시 내 마음 속 깊히 담긴다.
"This, too, Shall pass away."

:


한 달 전, 내게 무얼 물어보기 위해 후배부부가 식사를 하자며 주말에 찾아온 적이 있다.
우리 동네까지 왔으니 당연한 마음으로 우리가 점심을 샀는데, 필요한게 있어 와서는
우리가 점심을 산게 마음에 걸렸는지, 그 후배에게서 주말에 점심을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

마침 운중지에 있는 카페 랄로의 운치있는 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터라
자연스레 그 곳에서 브런치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카페랄로는 선불제로 운영된다.
고객이 카운터에 가서 직접 주문을 하고 바로 계산하는 semi self 시스템이다.
함께 식사를 하면 늘 당신께서 계산하는 걸 철칙으로 생각하시는 아버님을 모시고
이 곳을 찾았을 때, 선불임을 몰라 내게 계산의 기회를 넘겨주신 아버님께서 대단히
분노(?)하신 적이 있을 정도로, 선불제는 선불제임을 모르고 일행에게 대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난감하게 만드는 경우가 가끔 있다. 

후배부부가 오기 전, 아내에게 웃으며 이런 이야기를 했다.
"**가 오늘은 자기가 점심을 사겠다고 오는건데, 랄로 선불인데 어쩌냐?
 대놓고 '여기 선불이야~'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주문 안 하고 마냥 앉아있을 수도 없고.."


하지만,
창 너머 보이는 혹한의 운중지가 이런 나의 소심한(?) 우려를 기우로 만들어 버렸다.


 
꽁꽁 얼어붙은 운중지에 선보인 카페랄로 직원의 재기발랄한 snow writing.  

카페랄로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리에 앉자마자 탁 트인 창 밖을 내다보게 되는데,
얼어붙은 운중지에 수놓은 저 문구는 메뉴판보다 더 확실하게 전달된 메시지가 되어버렸다.


근데..  혼자 저 큰 글자를 저렇게 반듯하게 만들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정말 잘 만들었다.
카페랄로 로고와 하트까지.. ^&^~ 

 

:



[머리쓰는 나쁜 놈]과 [주먹쓰는 나쁜 놈]이 붙었다.
'붙다'는 의미에는 '함께 뭉치다'는 의미와 '맞부딪치다'는 의미가 있다.
둘이 한 팀으로 뭉치면 두려울게 없다. 상대적으로 경쟁하는 맞은 편 입장에서는 무섭다.
어떻게든 둘 사이를 갈라놔야 한다. 어부지리를 택하고자 하는 측도 마찬가지다.

그럼, 둘이 부딪치면 누가 이길까?  
장기전으로 가면 머리가 주먹을 이긴다. 단순한 주먹에 비해 머리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주먹은 자기의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지만, 머리는 주변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한다.
영화에서는 주먹을 쓰는 정통(?) 건달도 아니면서 건달 행세를 하는 그런 [머리쓰는 나쁜 놈]을
반달이라 칭한다. 주먹이 반달로 지칭된 머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머리가 영원히 자기에게 충성하도록 품어 안는 것인데, 머리쓰는 [나쁜 놈]은 결코 자기
분수로 만족하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그래서 선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배신의 낌새를 보일 때
확실하고 냉정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주저하다가는 뒤통수를 맞게 된다.

그런데, 머리쓰는 나쁜 놈이나 주먹쓰는 나쁜 놈보다 더 나쁜 놈이 있다. 받아먹으며 공생하는
봐주는 나쁜 놈이다. 이 나쁜 놈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으로 머리쓰는 놈과 주먹쓰는 놈을
입맛에 따라 조종한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그런 나쁜 놈들의 유형과 함께, 그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들이 각자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지, 또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 야합과 분열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악마를 보았다]와 [추격자]에서 각각 악역의 극치를 보여준 최민식과 하정우.
관록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두 사람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이야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고,
조진웅도 이미 많이 익숙한 연기자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직 일반 팬들에겐 낯설은 조 검사 역의 곽도원,
박 상무 역의 김성균 등 많은 개성있는 연기자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나쁜 놈을 더 나쁘게 만들어준다.

또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는
폭력집단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보기드믄
이색적인 캐릭터
가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대부'라는 호칭이다. 영화에서 최형배(하정우)는
최익현(최민식)을 '대부'라고 호칭한다. 갱영화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대부'는 말론 브란도의 [대부]인데,
말론 브란도는 거대한 마피아 조직을 통솔하는 말 그대로의 God Father 였지만, 최익현은 조직의 보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조직의 보스인 최형배가 족보상 증조부 위치인 최익현에게 '조부'라는 호칭대신 '대부'
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그가 갖지못한 권력층에 대한 해결능력을 기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하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색 캐릭터는 조범석 검사다.
대개의 영화에서 일반인에게 익숙한 형사부 검사는 수사관을 통솔하며 수사를 지휘하는 역할이다.
검사가 피의자를 강하게 몰아부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가혹수사는 대개 수사관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조범석 검사는 말과 행동에서 수사관 이상의 언행을 보인다. 
'이에는 이' 라는 함무라비법전式 논리가 그가 폭력조직을 다루는 의식의 근거다.
          


1990년을 시작으로 120분 이상 1982년부터 1990년까지를 지루하지 않게 넘나드는 느와르를 통해
조직의 질서를 파괴하는 배신과 야합, 혈연 등을 이용한 지하조직과 사법기관의 비정상적인 유착,
로비를 통한 권력기관의 이권 개입 등, 존재해왔고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사회악을 고발하면서
감독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고, 건달은 싸워야 할 때 싸워야 건달" 이라면서도,
"건달끼리 상대의 구역은 인정하고, 건달끼리의 싸움에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는 영화 속 조폭
두목의 말을 빌어 감독이 우리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화두는 [지배계층의 역할론]이 아니었을까.

사정기관은 단죄를 해야 할 때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단죄를 해야 하며,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을
인정하고, 정치인은 그 처신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마지막에 보이지않게 깔아놓은 반전을 나름대로 음미해보는 것도 재밌을거 같다.
 
검사로 임용된 최익현의 아들은 자기 아들의 돌 잔치에서 아버지 최익현과 단둘이 있는 창가에서 
"아버지..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는 말을 전한다. 성장과정에서 아버지가 조폭에게 불려가고
수사관에 의해 연행되는 모습이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을 검사 아들이 아버지에게 바친(?) 이 말이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단순한 고마움일까?
최익현 아들의 검사 임용식에서 "연수원 차석졸업이면 로펌이나 법원으로 갈 수 있었을텐데.. 요즘
검사 재미없는데..  재밌는 친구네." 라는 조범석 검사의 시니컬한 반응은 최익현 아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될 듯 하다.
 
그리고, 엔딩 씬의 마지막 대사. 손자를 안아든 최익현의 귀에 울리는 "대부님~" 이라는 환청.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은 최형배의 형 집행만기 출소를 가늠케 하는데, 이 대목에서 배신자 최익현에
대한 최형배의 복수와 그런 최형배에게 수모를 겪은 아버지의 지난 날을 기억하는 검사 아들의 대결을
상상해보는 것도 영화에 몰입했던 관객의 권리가 아닐런지..



사족 하나.

요즘 연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배역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 한다.
어떤 캐릭터든 리얼하게 표출하는 연기력을 보며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호러 스릴러의 트로이카로 최민식, 김윤석, 하정우를 꼽는데,
김윤석 하정우의 조합도 보았고, 최민식 하정우의 조합도 보았지만, 최민식 김윤석의 조합은
본 기억이 없다. 두 배우가 함께 한다면, 정말 놓치기 아까운 명장면들이 나올거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장면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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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내 내 시선과 관심이 집중된 건 김명민의 돌출된 구강구조와 발음이 새는 억양이었다.

김명민.
요즘 충무로의 잘 나가는 연기파 소장(?) 남자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하정우와 김명민이 아닐까.
굳이 두 명품배우의 차이를 들자면, 하정우가 動的인 캐릭터의 강렬한 인상이 많았던데 반해,
김명민은 하정우에 비해 靜的인 캐릭터에서 존재감이 더 돋보였다.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 환자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엄청난 체중 감량을 실현했듯,
극중 캐릭터와 자신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과 집념이 뛰어난 맞춤형 연기자 김명민.
도회적인 이미지가 강한 그가 [페이스메이커]에서 운동과 가족 밖에 모르는 순수무구한
캐릭터의 구현을 위해 분장한 구강구조는 압권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궁금할 정도다.

안성기.
액션, 멜로, 코믹, 무협 등 영화가 보여주는 모든 쟝르가 요구하는 캐릭터에 알맞게 녹아드는
능력자이지만, 왠만한 영화팬들이 기억할 최근 10년내 내게 인상깊었던 안성기의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다. 냉혈과 순정으로 대표되는 [실미도]의 특수부대장과 [라디오스타]의 매니저.
나는 안성기를 대할 때 마다 왠지 알 파치노가 생각난다.


연기자에 대해 먼저 언급하는건, 영화의 내용보다 연기자의 연기가 더 강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에두르지 않는다면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할 대목이 없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맨발의 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들] [글러브] 등 최근 국내에서도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가 참 많이 제작됐다. 스포츠 영화에서 감동을 끄집어내지 못하면 앙꼬없는 찐빵마저 아니다.
스포츠 영화는 대부분 비인기종목이거나 성공하기 힘든 여건이 소재가 된다. 역경이 감동을 추출하는
소스가 되고, 어려운 환경을 풀어가는 과정이 감동의 제조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츠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거나, 스포츠의 사실적 근거에 바탕을 둔 픽션으로 양분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더라도 영화적 요소가 가미될 수 밖에 없어 일부 픽션이 가미되긴 하지만,
실화와 실화가 아닌 것은 감동을 도출하는 방법이 다르다.

실화는 과정에서 감동을 추출해야 한다.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실화라는 특성상 막판 반전을 모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픽션은 결과에서 감동을 끌어낼 수 있다. 연출자 임의대로 결과를 만들 수 있으므로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 때문에 실화에 비해 픽션은 감동적인 해피엔딩이 인위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작의(作意)가 지나칠 경우 감동이 가벼워질 수 있는데, 내 시각에서 [페이스메이커]가 그랬다.


잘 나가다 [달려라 하니]가 돼버린 [페이스메이커].

내가 보는 관점에서 [페이스메이커]는 영화 중후반까지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다.

동료 선수를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페이스메이커.
주만호(김명민)는 페이스메이커로 길들여진 마라토너다. 마라토너로서의 전성기마저 페이스메이커로 보내고
은퇴한 주만호에게 마라톤 국가대표 감독으로 복귀한 박성일(안성기) 감독이 찾아온다. 페이스메이커로서
주만호의 능력을 잘 알고있는 그는, 런던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30km까지
페이스를 끌어줄 주만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페이스메이커로의 컴백을 권유한다.

좋아하는 마라톤을 할 수 있다는 설레임과 채무상환이라는 어쩌지 못하는 경제적 필요에 의해 박성일의 권유를
수용하고 대표팀에 합류하지만, 마라토너로서 풀코스 완주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게 영화 중후반
까지의 내용이다. 팀의 에이스를 위해 모든 걸 양보해야 하는 선수들의 비애, 톱클래스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
의 차별화된 처우 등을 보여준 중후반까지의 내용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애닯은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관객들은 조건부로 대표팀에 합류한 주만호를 감독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줄지
궁금해 하며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정밀검사 결과 의학적 관점에서 이제 풀코스는 고사하고 30km만 달려도
다시는 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정을 받은 주만호를 대상으로 감독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감동을 줄 것인가.

그런데...  [페이스메이커]는 영화 말미 갑자기 [달려라 하니]가 되어버렸다.
연극연출가로 [페이스메이커]가 영화 데뷔작인 김달중 감독은 후반 너무 많은 감동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픽션임을 감안하더라도 마무리에 인정할 수 있는 리얼리티가 없다.

경기 당일 주만호가 30km까지 주어진 역할을 마치고 달리기를 멈춘 지점까지 찾아온 동생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살려 형에게 빨간 우산을 펼쳐 보인 것, 일단 달리기를 멈췄던 상태에서 다시 마라톤을 재개해 완주
끝에 나온 결과, (솔직히 마지막에 그럴린 없겠지만 이러다가 혹시 우승을 하는건 아닌지 몹시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주만호가 보스턴대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장면들은 너무 현실과 거리가 먼 듯했다.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있지만, 이게 액션스릴러나 코믹영화가 아니기에 그렇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뭔가 울컥한게 분명 있었음에도, 그 울컥함이 영화내용에서 받은게 아닌,
그 순간 순간을 연기한 연기자의 표정에서 받은 것이라 감동이라는 느낌으로 오래 남겨지질 않았다. 
특히, 엔딩 씬은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매치가 안되는 느낌이다.
입 안을 상큼하게 해주는 개운한 디저트와 같이, 먹먹함에 젖어있던 관객에게 상큼한 웃음으로
기분전환을 시켜주려는 의도였다면 모를까.     

어줍잖은 무지한 생각이지만 차라리 이랬다면 어땠을까..

역할을 다 한 30km지점에서 속도를 늦춰가는 주만호의 눈에 들어온 작은 아이의 손에 들린 빨간 우산.
이 우산이 어린 시절 운동회의 데자뷰가 되어 계속 달리는 힘을 얻게 되고, 관객이 조바심을 느낄만한
애타는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올림픽 참가 후유증으로 이제 다시는 마라톤을 할 수 없는
주만호를 찾아온 동생가족. 동생은 자기 아이들에게 [감동의 역주]라는 제하의 신문스크랩을 보여주며
마라톤 국가대표였던 큰아버지가 올림픽에서 전 세계인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안겨줬는지를 알려준다.

    
[페이스메이커]가 던진 숙제. 
[잘 하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중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하는 것이 의미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영광을 위해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며 묵묵히 희생하는 많은 페이스메이커들.
그들은 소모품이 아니다. 그들이 없이는 주인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페이스메이커가
아닌 당당한 킹메이커다. 그리고, 자신이 갖고있는 특화된 기능을 남을 위해 사용한다는 면에서 그들은
재능기부자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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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면서 스크롤 업 되는 출연진과 스탶의 이름에서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하나 있다.
감독 정지영. 감독이 누군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정지영 감독의 영화를 본 게 언제였는지... 정지영 감독의 작품에는 메시지가 있다. 
한번쯤 음미하고 짚어봐야 할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재조명함으로써
시대가 놓친 쟁점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감독
이 정지영 감독이다. 

국민배우 안성기. 그가 선택한 영화, 그리고
그가 맡은 배역은 늘 페이소스와 함께 곱씹어 볼
의미를 준다
. 그렇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그런 감독과 배우가 만나 2007년에 발생한 당시
성균관대학 수학과 김명호 교수의 판사에 대한 석궁 테러사건을 근거로 제작한 영화 [부러진 화살]은
시사회 후 당시 변호사의 "실제 재판과정과 싱크로율 80%" 라는 인터넷 기사 만으로도 영화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요체는 이렇다.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김명호 교수가 성균관대학을 대상으로 한 [교수지위 확인소송] 항소심에서
패하자, 이에 불복하여 원고 패소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석궁을 쏜 김명호 교수에 대해 재판부가
사법질서 파괴라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한게 2007년 석궁 테러사건이다.

하지만 영화는, 당시 사법부의 재판 과정이 사법부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다분히 감정적인 처사와 함께
제 식구 감싸기에 의해 편파적으로 진행됐다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불과 5년 전의 사건에 대해 진실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근거가 나에게 없기 때문에 정지영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접근방식이 맞는지, 혹은, 당시의 판결이 맞는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몇 가지 내 머리 속에 윤곽이 잡히는건 있다.

모든 진실게임에서는 이해 당사자가 배제되는게 그나마 제 3자를 납득시키는데 도움이 되겠다는거.
즉, 판사가 연루된 재판에서 판사에게 절대적인 재량권이 주어진다면 결과에 대해 시비가 엇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사안에 따라 외국의 배심원 제도와 같은
국민참여재판의 정착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판검사가 모두 사법고시를 통한 사법연수원 출신이라는 법조시스템의 태생적 공통분모하에서,
그들을 거스르며 법을 다루는 집단에 대항한다는 건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의 운명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에서 독방에서 법을 공부하며 재판부에 논리적으로 대항하던 김경호 교수가 어느 순간 공동실로
이감되어 고통을 겪으면서 투쟁 의지가 꺾이는 장면이 그렇다.

마지막 하나는, 사법부에 대한 견제시스템이다.
영화에서 무죄 입증과 공정한 심리를 위한 변호사와 피고의 법에 근거한 정당한 요청과 주장에
대해 재판장은 상식선에서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르쇠로 일관하며 묵살한다.
아무도 어쩔 수 없는 사법부의 이런 도를 지나친 모습에 관객은 실소로써 분노를 표현한다. 
영화에서 일부 의식있는 현장 취재기자들에 의해 사법부의 독선에 대해 언론차원의 문제 제기가
시도되지만 이마저 보이지않는 힘에 의해 좌초되고 만다.
이렇게 사법부에 대한 도전이라 규정 후 엄단이라는 전제를 깔고 진행되는 재판에서 변호사는
최후 변론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한다.
"... 오만하고 독선적인 사법부에 대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 대사를 들으며 혼자 생각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사법부에 대해 국민이 할 수 있는 심판에 무엇이 있나..?
국회의원에 대한 심판은 4년 주기로 찾아오는 선거로 할 수 있다.
정부, 혹은 여당에 대한 심판도 선거로 가능하다. 자치단체장에 대해서는 국민소환제가 있다.
정권의 실정에 대해서는 집회와 시위로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입법부와 행정부에 대해서는 선거와 시위로 심판 및 의사표시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법부의 불신에 대해서는 국민이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사법부는 선출직이 아니므로 선거를 통해 심판할 수 없으며, 집회나 시위의 방법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기에는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슈가 약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실제 당사자인 김명호 전 교수는 판사도 선거를 통해 선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러진 화살]에서 이런 문제점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든 의의는 있다고 본다.


아울러, 짧은 화면 할애만으로도 일반인이 느끼지 못하는, 하지만 인권을 유린당하는
피해자에게는 절박한 교도행정의 문제점을 절실하게 보여준 것도 정지영 감독의 역량이다.

아쉬운 것도 있다.
법정을 테마로 한 영화의 백미는 원고측과 피고측의 치열한 법리논쟁이다.
원고측과 피고측이 서로 자기 측에 유리한 근거를 제시하며 자기 논리의 당위성을 입증하면서,
한편으로 상대방이 주장하는  논리의 허점을 파고드는 과정을 얼마나 치밀하게 보여주느냐가
법정드라마의 성공요건이다. 하지만, [부러진 화살]은 그 한축이 무너진 영화다.
[부러진 화살]에 원고측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형사사건인 만큼 원고에 해당하는 검사는
기소를 위한 여러가지 정황에 따른 충분한 증거와 논리를 제시해야 함에도 이 영화에서 검사는
아무 역할이 없다. 대한민국 검사의 수준이 저 정도인가 한심할 정도로 아는 것도 하는 것도 없는 
완전 꿔다놓은 보리자루다. 마치 동네 아이들 싸움에서 엄마의 눈치만 보는 어린아이처럼 재판장의
처분만 바라는 눈치다. 판사 또한 그렇다. 변호인과 피고의 집요한 논리전개에 대한 판사의 대응은
오로지 [기각]뿐이다. 피고측이 추궁하고 재판부는 쩔쩔매는, 원고측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재판.
싱크로율 80%라는 담당 변호사의 언급한대로 실제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법정영화의 구성면에서는
한 축이 무너진 비균형적인 영화다. 감독이  관객에게 긴장감 대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려는 의도였다면
이 지적은 틀릴 수도 있지만.  

박준 변호사 역의 박원상은 초반 약간 오버하는 느낌이 들었지만, 안성기의 까칠한 캐릭터를
중화시키는 넉넉한 이미지의 파트너로 좋은 매치를 보여준 거 같다.


4년 형기를 마친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 김명호 씨는 동아일보 인터뷰를 통해 "설 이후 당시
재판과정의 경험을 담은 500쪽 분량의 [판사 니들이 뭔데?] 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할 예정이며, 
이 책을 통해 사법부가 양아치 조폭 집단이라는 것을 법리적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증거 조작 등
위법을 일삼는 판사들과 법원 판결을 무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을 비판하겠다” 고 했다.

과연 얼마나 사회적 파장을 미칠지 주목된다.


아무리 최정상급의 스타라도 세월이 지나면 정상의 자리를 후배에게 내주게 마련이다.
주연이 아닌 배역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그들도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이 카메라의 중심을 비껴선다.
국민배우로 최고의 자리에 위치하던 안성기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안성기가 토크 프로에 나와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 순간엔가,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 당연히 주연이라 생각하고 대본을 받았는데, 내 배역이
주연이 아닌 조연이더라. 많이 당혹스러웠지만,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더 이상 설 곳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배우는 연기할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 몇 년 안성기가 출연한 영화를 보며 스크린 한 켠에 비껴선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애잔한 세월의
무상함이 안타까웠는데, [부러진 화살]을 통해 다시 당당히 앵글의 중심에 있는 그의 모습이 무척 반가웠다.
[대부]에서의 말론 브란도와 같이 나이 든 그의 건재한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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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처음 [미션 임파서블]을 본 이후 후속 2, 3을 보면서 늘 아쉬움을 많이 가졌다.
시리즈작의 경우 대개 1부를 능가할 만한 후속작 찾기가 쉽지않다고 하는데,
내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도 예외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그 오래전 1부에 대한 감흥이 워낙 뇌리에 깊히 박혀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가장 느낌이 없는 2부는 차치하더라도, [미션 임파서블] 1부는 후속작과 영화를 꾸민 기법이 워낙 달랐다.
1부는 극 전개가 탄탄하고 치밀했다. 후속작들에 비해 거친 액션이나 화려한 영상은 부족하지만,  
반전이 기가 막혔고, 그만큼 관객을 속이는 트릭의 기교가 압권이었다.

1부 이후 별 특징없는 2부를 거친 [미션 임파서블]은 3부에서 화려한 액션으로 재무장한다.
너무 과장되고 현실감 없는 현란한 눈요기거리에만 치중하다보니 알맹이는 없이 만화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찌됐든 흥행에는 성공했다.

그리고, 3부 이후 5년만에 나타난 [미션 임파서블 4].
내가 본 [미션 임파서블 4]는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명장면 축약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션 임파서블] 최고의 장면으로 영화팬들의 기억에 각인된, 와이어에 몸을 지탱한 채 천정에서
내려와 아슬아슬하게 멈춰 선 1부의 명장면이 이번엔 톰 크루즈가 아닌 제레미 레너에 의해 재현되고,
로프에 의지해 상하이 고층건물 사이를 오가던 3부의 짜릿한 장면은 두바이 고층빌딩에서 약간 변형된
모습으로 보여준다. 액션뿐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그렇다.
이단 헌트라는 뛰어난 주인공을 중심으로 팀 플레이를 보여주던 첫 [미션 임파서블]에 비해, 2, 3부에서는
팀원들이 이단 헌트의 부속물처럼 여겨질 정도로 모든게 너무 이단 헌트 중심으로 치우친 느낌인데,
4부는 팀원 개개인에게 적절한 역할이 주어지면서 전작에 비해 훨씬 균형잡힌 배역을 보인다.     

그런 부분에서 [미션 임파서블 4]는 1부만은 못하지만, 3부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만화같은 비현실적 액션을 줄이면서도 스릴은 그대로 유지하고, 짜임새도 좀 나아보인다.


여기서 잠깐.. 거의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한국 영화 [마이웨이]와 비교해 보자.
[미션 임파서블]은 흥행이 되는데, [마이웨이]는 안되는 이유가 뭘까? 
두 영화 모두 액션에 기반한 화려한 영상을 표방하지만, 두 영화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긴장감의 유무다. 
액션이나 스릴러 영화의 공통점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주인공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는
절대 죽지않는다는거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치열한 전장에서도 총알은 늘 주인공을 비껴가고,
어떤 함정에 빠지더라도 어떡하든 주인공은 그 상황에서 빠져나온다는 걸 모르는 관객은 없다.
그런 관객들을 숨 죽인 채 화면에 몰입토록 만드는게 연출자의 역량이고, 액션 스릴러에서 긴장감의 핵심은 
긴장감이다. 긴장감은 관객을 알면서도 속게 만든다. [미션 임파서블]에는 있고, [마이웨이]에는 없는게
그 긴장감이다. [미션 임파서블]은 [마이웨이]에 비해 액션의 공간은 작지만, 빠른 스피드로 관객의
인지능력을 순간 순간 빠르게 지배하는 반면, 마이웨이는 넓은 공간에서 스케일 큰 액션을 펼치면서도,
관객이 몰입토록 잡아끄는 긴장감이 없다. 그렇다고 감성을 지배할만큼의 울컥한 감동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감각을 지배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또 하나의 차이는, 주인공의 차이다.
이것은 톰 크루즈와 장동건의 차이일 수도 있고, 주어진 캐릭터의 차이일 수도 있다. 
톰 크루즈는 이미 15년 전부터 [미션 임파서블]의 비밀조직인 IMF 요원으로 캐릭터를 굳혀왔기 때문에
비밀첩보요원으로서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15년이라는 세월에도 철저한 몸관리로 고난도의
각종 액션을 대역없이 무난히 수행하여 첩보요원으로서의 이미지를 놓치지않은 그의 능력이기도 하다.
반면에 [마이웨이]에서 고등학생부터 시작된 장동건은 파란만장의 굴곡진 인생을 살며 동서양을 가로
지르는 격동의 시대를 끌고 가기엔 힘이 부쳐보였다. 캐릭터에 의한 영화보다 비주얼에 의한 영화를
선택한 강재규 감독을 탓해야 할까.      
       

다시 미션 임파서블로 돌아와 마무리를 하자.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가 계속 나올까? 
[미션 임파서블 4]를 보고 든 가장 궁금한 의문사항이다. 1996년 첫 선을 보인 미션 임파서블은 그 후
2000년, 2006년, 2011년에 2, 3, 4부가 나왔다. 평균 주기를 본다면 2015년 이후에나 5부가 나올 수 있는데,
톰 크루즈의 나이 53세 이후가 된다. 그 때도 톰 크루즈가 이런 액션을 보여줄 수 있을까? 주기를 앞당겨
좀더 일찍 5부를 보여줄 수도 있겠지만, 톰 크루즈가 과연 그런 욕심을 낼까 하는 것도 관심거리다.

또 하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연속성을 가늠해보는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미션 임파서블 4]의 가제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보듯 주인공 이단 헌트가 몸 담고 있던 비밀조직 
IMF는 이제 [미션 임파서블]에서는 없는 조직이 되어버렸다. 이단 헌트가 활약할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
5년 후 [미션 임파서블 5]가 나온다.
IMF를 대신하는 새로운 비밀조직이 결성되고 (아님, 비밀리에 IMF가 재건될 수도 있다),
그 조직의 작전 책임자로 현역에서 은퇴한 이단 헌트가 부임하여 새로운 임무수행을 지휘한다.
그리고 새로운 주인공이 불가능한 임무를 계속 수행한다.    

4부에서 좋은 이미지를 보인 제레미 레너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외모도 좋고, 첩보요원의 냉정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도 남긴데다, 4부에 이어 조직원의 연속성도 있고,
무엇보다 톰 크루즈와의 아홉 살 나이차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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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의 카운터에 붙여있는, 주인의 자녀가 그린 그림.

아이가 그린 그림들을 보며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힘을 얻지 않을까..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담겨진 모습에서 따스한 가족애를 느낀다.
:



지난 크리스마스 전.

강남에서 
버스를 타는 순간 느껴지는 뭔가 아늑한 기운.

탈 때는 미처 그 기운의 실체를 인지할 여유가 없었는데,

자리를 잡고 둘러보니..  와우~ 트리에 싼타 기사님까지.

그림동화를 보는 듯 미소가 나온다.


푸근함을 안겨준 버스회사의 배려가 고맙다.
:



사상최대의 작전으로 일컬어지는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상륙작전에서 연합군의 포로가 된, 
독일 군복을 입은 동양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강제규 감독이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으로 군복을 세 번 바꿔 입은 한 조선인의 비극적인 전쟁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마이웨이]는 여러모로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드는 영화다.
28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도 그렇지만, 여지껏 한국의 전쟁영화에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없었다.
6.25 한국전쟁이나 월남전, 그리고, 가끔 일제식민시대의 일본과 만주를 배경으로 한 중일전쟁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마이웨이]에서는 일본과 소련, 소련과 독일, 독일과 연합군의 전투가 몽골과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프랑스 노르망디까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 각각 지배자 일본과 피지배자 조선의 아들로 태어나
마라톤의 쌍벽을 이루다, 경성에서 부터 12,000km의 전장을 함께 하며 증오에서 애정으로 이어지는 조선과 일본의
두 젊은 마라토너 김준식과 하세가와 타츠오가 있다.  


마이웨이는 여러 부분에서 강제규 감독의 前作인 [태극기 휘날리며]과 비교케 한다.

우선 영화의 전개 패턴.
중간 그룹에 있던 한국인 마라토너가 종반에 선두그룹으로 스퍼트하는 런던마라톤대회로 시작되는 영화는
곧 17년 전 과거로 돌아가, 스퍼트를 시작한 마라토너가 이 대회에 참가하기 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영화는 다시 런던마라톤으로 돌아와 엔딩을 하는데, 이 패턴이 7년 전의 데쟈뷰를 보는 듯 하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작업으로 시작되는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바로 유골이 묻히게 된 과거가 영화의 본류이며,
엔딩은 다시 현실의 발굴작업으로 돌아온다.

전투씬도 그렇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두밀령 고지전투, 평양 시가지전투, 낙동강 방어선전투 등 치열한 전장의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했던 강제규 감독은 [마이웨이]에서도 노몬한전투와 독소 시가지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여러 형태의 전투장면을 스케일 큰 영상으로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데, 바로 이 부분에서 스케일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전투장면이 조금 지루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마이웨이]에서도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포격과 총성, 
군인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이 자주 길게 반복되는 것은 진부함을 줄 수 있다. 최신 음향을 이용한
상영관을 덮치는 효과음이나 막대한 물량의 스펙터클이 영화의 스케일을 보여주는건 아닐 것이다.

주인공이 전장에서 적군으로 전향을 하는 것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 주연 장동건. 하지만, 두 영화가 받아들이는 장동건은 달랐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은 자연스럽게 배역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마이웨이]에서의
장동건은 많이 어색하다.  우리나이로 사십이 넘은 장동건은 그가 아무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배우라
하더라도, 20대 청년을 연기하기에는 세월이 용납치 않았다.


[마이웨이]를 조금 집중해서 보면 몇 가지 곱씹게 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생각되는거 - 인간이 갖는 신념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이웨이]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극한 상황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준식(장동건)은 끝까지 변하지않는 [합리적인 인간애]를 견지한다.
적과 아군을 떠나 인간을 중시 여긴다. 일본군 군영에서 탈출시 쉬라이(판빙빙)를 데려가려는 모습,
탈출 도중 기습하는 소련군을 보고 기습 사실을 알리려 동료들만 보내고 다시 일본군영으로 돌아가는 모습,
그리고, 소련군 포로수용소에서 타츠오와의 목숨을 건 대결에서 타츠오를 살려주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런데, 실제 이런 본성의 소유자를 보긴 쉽지않을 듯 하다.

전형적인 일본의 무사도 정신을 갖춘 타츠오(오다기리 조).
패배를 치욕으로 생각하며 황군으로서 천황에 대한 충심을 목숨보다 우선하는 그도 결국 소련군과 독일군
포로가 되어 그가 그토록 자부하는 일본군 장교에서 소련과 독일의 병사로 전향을 거듭하며 목숨을 이어간다.
포로수용소에서도 천황에 대한 예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할복을 해야 할 그가 택할 선택은 아니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 모습 또한 생존을 위해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명예라는 포장의 개죽음과, 치욕이라는 지탄을 받으며 미래를 위해 이어가는 목숨 중
어느 것이 더 의미가 있는지 그 순간에는 아무도 모른다. 긴 시간이 흐른 후 판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새로운 인생의 기회로 생각하고 충실히 적응하는 종대(김인권).
준식의 여동생을 좋아하는 준식의 절친 종대는 소련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을 통제하는 얀톤으로 변신하여
일본군 시절 징용된 조선인을 학대하던 일본군 포로들을 철저하게 응징하며 조선인 포로들을 옹호하지만,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친구를 사형대에 세우게 된다. 윤리적 시각에서 상당히 야비하고 치사한 행태로
비난받을 수 있지만,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이웨이]가 타츠오를 통해 보여주는 멋진 교훈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징용된 조선인에게 명예로운 황군으로서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던 타츠오는 소련군의 포로가 된 후,
일본군 시절을 잊으라는 소련군 지휘관에게 "자신들의 사상마저 바꿀 권한은 없다" 고 항변하면서도,
같은 포로 신분인 조선인 군인들에겐 여전히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다, 준식에 의해 "소련군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사상마저 바꿀 권한은 없다' 고 하면서 왜 조선인에게 사상을 강요하느냐" 는 지적을 받는다.
   
또한, 밀려오는 소련군 탱크에 무조건적인 돌격을 명령하며 후퇴하는 부하들을 죽이는 광기어린
지휘관이던 타츠오는, 소련군과 독일군의 시가전에서 죽음이 뻔한 돌격을 독려하는이성을 잃은   
소련군 지휘관의 모습에서 자신의 데쟈뷰를 보며 아연한다. (이 장면의 편집이 참 멋있었다.)      


배우들을 간단히 살펴 보자.

판빙빙은 그 역할이 너무 단순하고 짧았다.
장동건보다는 오다기리 조의 연기가 더 좋았다는 생각인데, 가장 돋보인건 김인권이다. 순박한 종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해지는, 그런 한편 자포자기의 허무를 보여주는 얀톤까지, 가히 충무로의 씬스틸러라는
명칭이 허명이 아니다. 인기있는 까메오를 찾아내는 것도 이 영화가 주는 잔재미다. 


[
마이웨이]는 한국 전쟁영화의 도약에 대한 기대감과 강제규 감독에 대한 아쉬운 한계가 함께 한 영화다.

위에 언급한대로, 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영화의 외연을 넓히며 그에 걸맞게 촬영의 스케일을 키웠다는건
분명 찬사를 보낼만 하다. 노르웨이의 헬기 촬영팀 [블루 스카이]를 동원한 항공촬영은 전장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었고, 탱크와 오토바이 등 고증에 입각한 2차 대전 당시의 소련군과 독일군 장비의 재현도
리얼리티 면에서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또 하나 놀라운건, 거의 모든 전투장면을 담아낸 촬영장소가 새만금이었다는 것. 
새만금에서 일본 관동군 주둔지와 몽골의 노몬한 전투지, 소련군의 포로수용소. 그리고, 소련군과 독일군의
시가전까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제외한 모든 전투장면을 담아냈다는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동유럽인 라트비아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향후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더하게 한다.

아쉬운 한계는, 위에 언급한대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상케 하는 부분과, 웅장함의 추구에 따른 조금의 지루함.
또 하나, 옥에 티는 리얼리티다. 소품에 대한 리얼리티는 대단한데, 줄거리에 대한 리얼리티는 뭔가 아쉽다.
몇 가지 짚어본다면, 원수지간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화해 과정도 중간이 떠있는 느낌이고, 소련군의 기습을
알리기 위해 탈출을 포기하고 부대로 되돌아가는 준식의 모습은 너무 이상적이다.  또한, 준식이 일본군영이나
포로수용소에서 거의 매일 달리기 훈련을 한다는 것도 의아스럽지만, 노르망디에서 마저 육상훈련을 하다 두 사람이
조우하는 모습은 전쟁터에서 동화를 읽는 느낌이다.  물론, 준식의 달리기가 소망하는 미래를 향한 상징적인 의미라
할 수도 있지만, 어색한건 사실이다. 가장 궁금한 장면은 마지막 엔딩 부분. 타츠오가 어떻게 준식의 이름으로
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지... 평소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영화에서는 그게
아닌거 같다. 감독이 의도하는 바는 알겠는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흥미를 끌게 하는건 OST.
[태극기..]에서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으로 영상 이상의 뭉클함을 안겨줬던 이동준 음악감독이 만든
[To Find My Way]를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부분적인 아쉬움이 느껴지는건, 강제규 감독에 대한 절정의 기대감 때문이리라.
1000만 관중 돌파로 대한민국 영화 흥행사를 새로 썼던 강제규 감독.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그가 보여준 [마이웨이]는 분명 한국 전쟁영화의 방향을 틀어주는 새로운 시도이긴 한데,
이게 과연 1000만 관중을 넘어설까?  내 판단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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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동기모임 운영운영위의 신년모임 준비 장소.

우연히 눈길이 아래로 향하다가..  어~ @>@..

불과 열두 명의 모임에 이런 배려까지 해주다니..


근데, 이거 어떻게 만들지?
소수 모임까지 이러려면 코스트가 만만치 않을텐데
PC용 문서양식 도구가 있나?
:



뭐 이런 황당한 자막이...  [만주당]이라니.

방송국 뉴스에 이런 오타는 좀 심한거 아닌가?


내가 캡쳐한 이 사진을 본 후배가 엉뚱한 멘트를 날린다.

"애들이 잘 못 물갈이하면 설사하는데.."

그래도 설사가 변비보단 낫지 않나?

:



야생 리얼프로인 [1박2일]에서 망가진 캐릭터로 인해 오히려 국민 순둥이로 인기몰이 중인 엄태웅이
액션스타로 돌아왔다. 영화 [특수본]에서 다소 성격이 급한 다혈질의 형사로 등장하는 엄태웅은
약간은 오버하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그런대로 무난하게 배역을 소화한다.

경찰이 살해된 사건이 영화의 시작.
범인을 쫒기 시작하지만, 매번 쫒는 대상은 한 발 먼저 움직이며, 오히려 경찰이 희생된다.
내부의 적을 두고 벌어지는 상황은 많이 본 듯한 미국 드라마의 구성을 연상케 하는데,
영화가 종료된 후 느낌은 뭔가 개운치가 못하다.

추리물과 같은 스릴러는 항상 반전이라는 복선을 미리 깔아두고 시작한다.
관객들 역시 반전에 익숙해 영화가 시작하면서 각자 줄거리를 재구성하며 반전의 맥을 예상해 보는데,
영화가 여러 복잡한 단계를 밟으며 자기 생각대로 흘러가면 왠지 우쭐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전혀 자신의 생각을 넘어선 전개와 반전이 나올 경우 모두들 감탄을 하게 된다.
반면에 반전의 흐름이 너무 일찍 예상한대로 눈에 보이면 그 영화는 일찌감치 맥이 빠지게 된다.

요즘 관객들은 수준이 높아져서 왠만한 트릭이나 복선은 일찍 눈치를 채기 때문에 작가들은 참 피곤할거 같다.
[특수본]에서 내부의 적을 예상한 관객은 내부의 범위와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예측해보는게 관전 포인트다.
그런 의미에서 [특수본]은 반전의 내용은 일찍 노출이 됐지만, 그 범위와 한계는 나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
그럼 영화가 종료되고 예상 밖의 결과에 감탄이 나와야 하건만, 이상하게 어리벙벙해지는게 [특수본]이다.
범위가 현실성이 떨어질만큼 광범위하고, 보이지 않는 한계의 존재를 암시하면서도 실체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 단위로 편제된 치안센터도 아닌, 市郡區 단위 자치단체별로 편제된 경찰서의 지휘라인과 모든 수사인력이
한꺼번에 비리 경찰서장과 맥을 같이 한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을 뿐더러, 배후의 끝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일컫는 마지막 부분, 경찰서장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는데, 통화내용은 서장보다
더 윗선의 배후가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 통화내용을 엄태웅이 뒤에서 다 듣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사건이 종료처리된 것으로. 

이건 뭐지??  2부를 예견하는거야?  아님, 처음부터 [특수본2]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거야?
속도감있는 템포로 나름 흥미로웠던 전개가 엉성한 마무리로 마지막 문턱에 걸려 넘어진 느낌.. 
이건 열연한 배우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사건의 시작과 종말의 연계성이 부족해보이는 것도 아쉽다.

[제빵왕 김탁구]를 통해 얼굴이 알려지고, [오작교 형제들]에서 시청자와 친숙해진 주원의 연기는 인상깊었고,
순간 순간은 긴박감이 넘치고 재밌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 [특수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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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부고객이 차고 넘칠만큼 늘어난 카페랄로 메뉴에 없던 문구가 추가됐다.

문구를 들여다보던 아내의 한마디.
"사람들의 요구사항이 어땠는지 읽히네.."  리필에 대한 무분별한 요구가 많았을거라는 의미.

까사미오에서 사이드메뉴를 주문하지 않고, 무료로 제공되는 나쵸만 계속 요구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느 순간 할 수 없이 나쵸를 제한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문구다. 

금토동에 [초가집]이라는 식당이 있다.
야채 셀프 리필이 가능한 곳인데,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비닐봉투에 야채를 담아가는 부인들이 많다는데, 그것도 외제 차를 몰고오는 부인들이 그런단다.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왕의 품격을 갖췄을 때 왕이 되는 것이지,
그렇지 못한 고객은 그저 공짜만 탐하는 찌질이일 뿐이다.

내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고, 어차피 자기들이 정한 규정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모든 상황에는 서로가 지켜줘야 하는 적절한 수준의 경우가 있는 법이다.
그 적절한 수준의 선이 배려이고, 그 선이 일방에 의해 무너지는 순간, 선의로 품었던 배려도 소멸된다.

善意를 서로의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그런 마음을 갖춘 고객에 대한 신뢰에서 유지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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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앙상해질 정도로 걷어갈 시기가 지났음에도
발갛게 익은 감들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들을 위한 작지만 소중한 배려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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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을 거부한 구단 운영으로 메이저리그 최하위팀이였던 [오클랜드 애슬래틱스]를 5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면서 1998년부터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으로 재직 중인 실존 인물
[빌리 빈]의 체험적 구단 운영 노하우를 담은, 2003년에 발간된 베스트셀러 [머니볼]이 영화로 나왔다.

지난 9월 개봉되어 미국에서는 박스오피스 1위까지 올랐으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야구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호평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미국과 우리는 야구라는 개체를 접하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금년 프로야구 유료 관중이 6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최근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일부 마니아 팬을 제외한 평균적인 수준의 국내 팬들은 아직 야구경기 자체를 즐길 뿐, 선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은 열기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때문에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인 선수 트레이드에 의한
구단 및 팀 체질개선에 대한 줄거리는 일반적인 영화에 대한 기대로 접근하면 다소 진부할 수도 있다.           


[오클랜드 애슬래틱스]는 구단 재정이 열악한 가난한 구단이다.
우리 프로야구에 비하면 직접 비교하기는 차이가 있지만 가난하다는 측면에서 [넥센 히어로즈] 같은 팀.
재정이 어렵다보니 좋은 선수를 데려오는건 고사하고 그나마 있는 자원 중 괜찮은 선수를 타 팀에 팔아
재정을 충당한다. 그러다보니 성적은 늘 하위권이 자명한 일.

팀의 단장인 빌리 본은 빈약한 재정 여건 하에서도 성적을 내기 위해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피터의 조언으로 그간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발상으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선수 중 
가능성있는 선수를 싼 값에 받아들여 팀을 리빌딩한다.

여기서 빌리와 피터가 택한 방식이 철저한 실용주의.
기존의 선수 스카웃 기준을 철저히 무시하고 새로운 선발 지표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 타자의 경우 타격에 대한 여러 지표 대신 출루율을 최우선 조건으로 본다.
야구는 결국 타자가 출루하여 홈에 들어옴으로써 득점이 이루어지는데, 안타가 됐든, 볼넷이 됐든,
몸에 맞고 나가든, 심지어 상대 수비의 에러로 나가든 1루에 나가는 확률이 높은 선수면 된다는 논리다.

또한, 선수들의 나이나 사생활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꿩 잡는게 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그 방식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하는건 의미가 없다. 결과가 좋으면 비난이 설 자리는 좁아지는 법이니까.
영화에서도 빌리는 선수 선발과 기용 방식에 대해 스카웃팀 및 감독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하고 불화를 겪지만,
자신의 진퇴를 걸고 강하게 밀어부친다.  

그런데, 실제 모든 프로스포츠에서 금기로 삼는 불문율이 있다. 현장의 고유권한 인정이다.
프런트의 입김이 강해 구단 운영진이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수기용과 작전에 까지 간섭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팀은 결국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으로 인해 잡음이 많아지고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공통점을 보인다.

영화를 보면 언뜻 빌리가 현장에 깊히 관여하는 것 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빌리는 단장으로서 팀 리빌딩을 위한 것 외에 감독의 권한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
때문에 감독이 선호하는 선수를 트레이드 함으로써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이 추진하는 방향에 맞게 선수를
활용하게 만들 뿐, 그 이상의 개입을 않는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지능적이고 비열한 방식일 수도 있다)
또한 결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연승 기록을 수립하면서도 감독의 공으로 인식되도록 공과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오클랜드 애슬래틱스]가 메이저리그 최고 연승기록인 20연승을 이어가는 모습이 팩트가 아니었다면
관객들은 만화같은 이야기라고 황당해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팩트인 만큼 황당한 일은 아니지만,
반면에 그만큼 특별한 반전이나 감동은 덜 하다.


이 영화의 교훈은 마지막에 있다.

영화 끝 부분 피터는 빌리에게 2군 선수의 플레이 동영상을 하나 보여준다.
엄청난 거구의 2군 선수는 그만큼 발이 느린 반면 그렇다고 체구에 걸맞게 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안타를 치고 2루까지 가는 것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 한다. 동영상의 모습은, 꽤 큰 타구를 날린
선수가 모처럼 1루를 돌아 2루로 향하다가 지레 겁을 먹고 황급히 슬라이딩하여 1루로 돌아오지만 
그가 친 공은 펜스를 넘는 홈런이었다.

자기 능력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한계를 긋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감 부족으로 자기 행동을 늘 자기가 생각하는 범주 안에 가두게 된다. 
스스로 '내가 어떻게 홈런을..' 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늘 1루가 자기의 최종 목적지라 생각한다.

마지막 이 장면에서 이런 교훈을 끄집어냈다면, 난 이 영화를 본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 아들의 이야기 한 토막.
"머니볼은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면 밋밋한데, 오히려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 책 흐름에 따라 
 장면이 하나씩 떠오르며 재밌게 읽게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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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대개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보수화된다고 한다.
물론 남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 자기 생각이 깊어지고 아집이 강해진다고 하지만,
그보다 자기가 견지하던 가치관이 더 고착화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런데, 가끔 스스로 놀라는건, 나는 반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거.
정치를 예로 들자면, 난 철저한 親與 세력이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는 늘 집권 세력에 표를 던지곤 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野 쪽으로 지지가 바뀌고 있었다.
與野야 선거 결과에 따라 뒤바뀌는거니 정치사회적 표현을 빌자면 우에서 좌로 좌클릭됐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내가 어느 시점에서 새로운 영향을 받을만한 사람을 새로이 알게 됐다거나, 그런 서적을 접한 것도 아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여전히 오래 전부터 알았던 사람들이 대다수고, 책도 즐겨 보던 쟝르에서 변한게 없다.
물론 새로 알게된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과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걸 좋아하는 취향상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우리 또래에서 나는 정치이념 측면에서 비주류인데,
그게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임에서 내가 금기로 삼는 소재가 몇 가지 있다.
정치, 종교, 그리고 학력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세 가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논쟁의 과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분위기까지 경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재가 언급되면 난 가급적 입을 다문다. 아무 의미가 없는 쓸데없는 소모전이 되는게 싫어서인데, 
이런 사람이 꼭 있다.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 모두 동조하는 걸로 여겨 더욱 주장이 거세지는.. 

 
30년을 알고 지낸 사람 중 진보진영이라면 무조건 친북좌파, 나아가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사람이 있다.
전에도 그런 주장을 하길래, 그 때 웃으며 "친북좌파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거 같은데요.. 
[親Book坐破] 책과 친하게 지내며, 앉아서 책을 독파하자는게 뭐가 나빠요?" 라며 농담투로 말을 막았는데,
얼마 전 모임에서 또 다시 같은 논리로 열을 올리기에 참다 못해 반문했다.

- 나 직전 세 번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야당 후보 찍었고 박원순도 지지하고,
   또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데, 30년 알고 지내는 동안 나를 빨갱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
> 그건 아니고...
- 내가 박원순을 지지했다고 하지만,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는거지 박원순 개인에 대해 전혀 모른다.
   여권에서 문제시 삼는 박원순 개인에 대한 의혹 중 분명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역으로, 야권에서 제기하는 나경원에 대한 의혹도 모두가 네거티브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개인에 대한 문제를 떠나 정책에 대한 선호다.



이념 혹은 사상과, 정책에 대한 가치관을 구분 못하는게 문제다.

사회관습이나 진화현상에 대해 지킬 건 지켜가며 신중하게 대처하자는게 보수의 가치관이고,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고 좀더 적극적으로 빠르게 수용하자는 것이 진보의 가치관 아닌가.
보수와 진보는 대응방식이 다를 뿐이지, 상대방이 틀린게 아니다. 

그럼에도 변화를 보는 가치관과 대응방식의 차이를,
아직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시각으로 구분짓는 사고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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