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행을 거부한 구단 운영으로 메이저리그 최하위팀이였던 [오클랜드 애슬래틱스]를 5번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면서 1998년부터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단장으로 재직 중인 실존 인물
[빌리 빈]의 체험적 구단 운영 노하우를 담은, 2003년에 발간된 베스트셀러 [머니볼]이 영화로 나왔다.
지난 9월 개봉되어 미국에서는 박스오피스 1위까지 올랐으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야구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모두에게 감동을 주며 호평을 받을 수 있는 영화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미국과 우리는 야구라는 개체를 접하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금년 프로야구 유료 관중이 600만명을 넘을 정도로 최근 국내 프로야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일부 마니아 팬을 제외한 평균적인 수준의 국내 팬들은 아직 야구경기 자체를 즐길 뿐, 선수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은 열기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다. 때문에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인 선수 트레이드에 의한
구단 및 팀 체질개선에 대한 줄거리는 일반적인 영화에 대한 기대로 접근하면 다소 진부할 수도 있다.
[오클랜드 애슬래틱스]는 구단 재정이 열악한 가난한 구단이다.
우리 프로야구에 비하면 직접 비교하기는 차이가 있지만 가난하다는 측면에서 [넥센 히어로즈] 같은 팀.
재정이 어렵다보니 좋은 선수를 데려오는건 고사하고 그나마 있는 자원 중 괜찮은 선수를 타 팀에 팔아
재정을 충당한다. 그러다보니 성적은 늘 하위권이 자명한 일.
팀의 단장인 빌리 본은 빈약한 재정 여건 하에서도 성적을 내기 위해 예일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피터의 조언으로 그간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발상으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선수 중
가능성있는 선수를 싼 값에 받아들여 팀을 리빌딩한다.
여기서 빌리와 피터가 택한 방식이 철저한 실용주의.
기존의 선수 스카웃 기준을 철저히 무시하고 새로운 선발 지표를 내세운다.
예를 들어, 타자의 경우 타격에 대한 여러 지표 대신 출루율을 최우선 조건으로 본다.
야구는 결국 타자가 출루하여 홈에 들어옴으로써 득점이 이루어지는데, 안타가 됐든, 볼넷이 됐든,
몸에 맞고 나가든, 심지어 상대 수비의 에러로 나가든 1루에 나가는 확률이 높은 선수면 된다는 논리다.
또한, 선수들의 나이나 사생활에 대해서도 개의치 않는다.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꿩 잡는게 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
그 방식의 옳고 그름에 대해 논하는건 의미가 없다. 결과가 좋으면 비난이 설 자리는 좁아지는 법이니까.
영화에서도 빌리는 선수 선발과 기용 방식에 대해 스카웃팀 및 감독의 엄청난 반발에 직면하고 불화를 겪지만,
자신의 진퇴를 걸고 강하게 밀어부친다.
그런데, 실제 모든 프로스포츠에서 금기로 삼는 불문율이 있다. 현장의 고유권한 인정이다.
프런트의 입김이 강해 구단 운영진이 감독의 고유 권한인 선수기용과 작전에 까지 간섭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팀은 결국 프런트와 현장의 갈등으로 인해 잡음이 많아지고 성적이 곤두박질치는 공통점을 보인다.
영화를 보면 언뜻 빌리가 현장에 깊히 관여하는 것 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빌리는 단장으로서 팀 리빌딩을 위한 것 외에 감독의 권한에 관여할 생각이 없다.
때문에 감독이 선호하는 선수를 트레이드 함으로써 선택의 여지없이 자신이 추진하는 방향에 맞게 선수를
활용하게 만들 뿐, 그 이상의 개입을 않는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굉장히 지능적이고 비열한 방식일 수도 있다)
또한 결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연승 기록을 수립하면서도 감독의 공으로 인식되도록 공과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오클랜드 애슬래틱스]가 메이저리그 최고 연승기록인 20연승을 이어가는 모습이 팩트가 아니었다면
관객들은 만화같은 이야기라고 황당해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팩트인 만큼 황당한 일은 아니지만,
반면에 그만큼 특별한 반전이나 감동은 덜 하다.
이 영화의 교훈은 마지막에 있다.
영화 끝 부분 피터는 빌리에게 2군 선수의 플레이 동영상을 하나 보여준다.
엄청난 거구의 2군 선수는 그만큼 발이 느린 반면 그렇다고 체구에 걸맞게 파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안타를 치고 2루까지 가는 것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 한다. 동영상의 모습은, 꽤 큰 타구를 날린
선수가 모처럼 1루를 돌아 2루로 향하다가 지레 겁을 먹고 황급히 슬라이딩하여 1루로 돌아오지만
그가 친 공은 펜스를 넘는 홈런이었다.
자기 능력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이 행하는 일의 결과에 대해 한계를 긋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가능성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감 부족으로 자기 행동을 늘 자기가 생각하는 범주 안에 가두게 된다.
스스로 '내가 어떻게 홈런을..' 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늘 1루가 자기의 최종 목적지라 생각한다.
마지막 이 장면에서 이런 교훈을 끄집어냈다면, 난 이 영화를 본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본 아들의 이야기 한 토막.
"머니볼은 책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면 밋밋한데, 오히려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 책 흐름에 따라
장면이 하나씩 떠오르며 재밌게 읽게 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