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한글의 오묘함에 대한 반증 표현이다.
해석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질 수 있는 문서를 작성할 때 토씨 하나라도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실제 한글의 조사는 의미 전체의 반전을 가져올만큼 실로 변화무쌍하다.

대표적인 조사가 [도.을(를).은.만.]

일도 잘 한다.
일을 잘 한다.
일은 잘 한다.
일만 잘 한다.

공통적인 건 [일 잘한다]지만, [일] 다음에 붙는 조사에 따라 개인의 품성에 대한 늬앙스는 확연히 달라진다.

[일도 잘 한다]는 절대적 긍정이다.
모든 게 좋은데, 일까지 잘 하는 나무랄데 없는 품성이다.
꼭 써라~ 강추.

[일을 잘 한다]는 중립적 긍정이다.
특별히 알지 못하지만, 일에 대해서는 믿고 맡길만 하다.
써볼만 하다.

[일은 잘 한다]는 다소 보수적 긍정이다.
믿을만 한지는 모르지만, 능력은 있다.
필요하면 한번 써보던가..

[일만 잘 한다]는 회의적 긍정이다.
능력은 있지만, 그리 추천하고 싶진 않다.
잘 생각하고 써~

나에 대한 평가에는 어떤 조사가 붙을지를 늘 생각하며 살자.

:


설, 추석, 그리고, 연미사를 드릴 때만 성당을 찾는 냉담자. (무늬만 신도라는 표현도 스스로 민망하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첫 설.
설 미사를 드리러 성당을 찾았다.
해마다 참석했던 설 미사지만 느낌이 달랐다.

수십 년을 아버지와 함께 올렸던 의식이 이제 그 분을 추모하는 의식이라는 생각에 문득문득 감정이 출렁이며 순간순간 눈가가 찡해진다.
미사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응.

아버지 돌아가신 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亡者에 대한 잔영이나 감정에 빠져있기보다, 전보다 뵙기 어려울 뿐 여전히 함께 하신다는 생각이 생활리듬을 유지하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혼자 한 미사에서 비어있던 공간이 느껴졌다.

평소엔 무심하다가도 여행 때면 꼭 그 지역의 성당을 찾게 되는 어설픈 신도 흉내.
쿨한 척 했지만 은연중에 드러난 아버지에 대한 연민.

믿음과 아버지에 대한 잠재의식을 생각케 한 설 미사였다.

:

한 고등학교 정문 옆에 무리지어 있는 작은 눈오리 15마리.
어쩜 저리 작은 오리를 만들었을까.
눈사람이 아닌 눈동물(?)은 처음 본다.
왜 오리였을까도 궁금.

교직원의 작품인지, 학생의 작품인지,
아님, 지나는 행인의 작품인지 알 수 없으나,
저런 동심의 여유로움과 푸근함을 나눌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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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보운전 스티커를 달고 서툴게 움직이는 앞차를 보고 답답하다며 짜증을 낸다
A : 초보운전이라잖아. 너 처음 면허 땄을 때 생각해봐~
B : 무슨 소리야.. 난 면허 따고 바로 고속도로 탔네..
A : 길을 몰라 그럴지도 모르지..
B : 네비 뒀다 뭐하냐고..
A : 사람마다 능력이 다를 수 있어.
B : 그러니까 능력이 안 되면 나오질 말던가.. 이건 민폐라고..

# 성경과 찬송가 책을 들고 다니는 게 번거로워 스마트폰에 깔아놓은 미사 앱을 열고 기도문도 따라 읽고 찬송가도 부르며 열심히 미사에 참여하는 도중 노신부님의 일갈이 들린다.
"주님을 모시는 시간에 핸드폰을 보는 건 주님에 대한 예의가 아닙니다."

易之思之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라는 의미이지만,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려 해도 결국 생각의 근원은 내 뇌이고, 내 뇌는 내 경험과 논리에 근거하여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지가 다를수록,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려 하면 할수록,
더 답답해진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그래서 알 수가 없는 처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자식 키우는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육아에 대한 가치관이 다를 경우,
이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넌 도대체 누굴 닮아 이러니?"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내 자식마저 이해하지 못 하는데..

환경과 능력이 비슷해도 통용되지 않는 게 역지사지다.
그러니, 역지사지라는 말을 빌어 경험해보지 못한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려 애쓰기 보다, 차라리 자신이 난감했던 비슷한 경험을 되살려 보는 게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더 실효적일 수 있다.

삼자 입장에서도 그렇다.
상대를 이해 못 하는 걸 답답해 하기보다, '아.. 이 사람은 저 사람을 이해하지 못 하는구나..' 하며, 상대 처지를 이해 못 하는 사람을 내가 이해하는 게 낫다.

급격히 변화하고 진화하는 문명의 습득 여건이 다른 환경에서 역지사지는 어쩌면 또 다른 갈등의 요인일지도 모른다.

 

:


2년 가까이 요양병원에 계시는 친구 아버님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연명치료거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설을 지낸 며칠 뒤, 마침 강의를 듣는 어학원 아래 층에 있는 건강보험관리공단 지사에 들러 연명치료거부등록을 했다.

등록신청 의사를 밝히고 신분증을 제시하니 연명치료거부에 해당되는 사항에 대한 안내 팜플릿을 건네주는데, 첫 번째가 심폐소생술.
담당직원에게 "응급상황이나 갑작스런 비상상황에서 아예 손 놓고 있는 건 아니죠?" 웃으며 물어보니, "물론입니다. 연명거부는 의사 판단으로 장기간 소모적 치료가 예견될 때 가족과 협의하에 적용됩니다."

아울러, 연령치료거부등록은 언제든 본인 의사에 의해 취소가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아이들에게 연명치료거부등록 신청사실을 알려줬다.
"그러니 의사가 더 이상 치료가 회복에 의미없다는 판단을 주면, '어찌해야 하나..' 서로 눈치보지 말고 쿨하게 정리를 하면 된다.
의미없는 시간낭비 돈낭비로 마음고생 하지 말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언젠간 찾아올 수도 있는 아빠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주는 선물이야."

아들은 "뭘 그런 얘기를 벌써 하느냐" 하지만, 사람 일은 예견할 수가 없으니, 결정할 수 있는 건 미리미리 해두는 게 좋지 않은가.
주변인들에게 얘기를 하니 대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며칠 전 연명치료등록거부 증서가 왔다.

등록거부라는 어감 때문인지 공식명칭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증]. 이제 의료전산망을 통해 내 意思가 의료기관과 공유되겠지.

동봉된 설명서를 보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
-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2월에 도입됐다는 것
- 세계에 유래가 없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제도라는 것
-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

:

매달 모이는 대학동창들의 모임이 코로나로 인해 열 달 가까이 중지됐다.
최근까지 대학에서 강의를하던 친구의 제안으로 zoom을 이용한 모인 온라인 모임.

금요일 오후 9시부터 두 시간여 함께 한 온라인 모임은 기대 이상으로 즐거웠다.

각자 선호하는 술 한잔씩 마시며 함께 한 온라인 모임의 장점은,
- 자기 선호하는 술을 마시며
- 선호하는 안주를 택하는데다
- 그럼으로써 자연스레 더치페이가 되고
- 오버 드링킹을 하더라도 귀가 걱정이 없다는 거.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당분간 온라인 정모가 이어질 듯하다.

:


‘괴롭히는 사람은 재밌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

팀 내 동료를 저격하는 이 문구를 올린 스타 배구선수는
이 글이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던 자신이 과거 누군가에 대한 가해자로 직격당할 줄 상상도 못 했겠지.

미투와 학교폭력 등 유명인들에 대한 과거 피해자들의 폭로가 나올 때마다 여론이 들썩인다.
소셜미디어의 사회적 기능과 문제점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지만,
사회 속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개인의 행적이 드러날 개연성이 높아지는 게 현실이라면 이제 개인과 부모들이 선택을 해야 한다.

논란이 될만한 행동을 하지 말던가,
그렇지 못했다면 대중 앞에 나서길 포기하던가.

부모들 역시 성장과정의 무분별한 행동이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시켜야 할 명분이 생겼다.

:

에스키모人은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하염없이 걷는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마음이 추스러지면
그 지점에 막대기를 꽂고 돌아온단다.

그리고, 또 우울하거나,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동일한 방향으로 또 걷는단다.

이 이야기의 의미는 뭘까...

걷다가 전에 꽂은 막대기를 보기 전에 마음이 가라앉았으면, '전보다 살만 한데 내가 괜한 투정을 부리는구나." 생각하고,

진정이 안돼 계속 걷다 전에 자신이 꽂아놓았던 막대기를 지나치게 되면, '전에 내가 별 것도 아닌 일에 낙담을 했구나.' 하며 과거 자신의 무기력함을 자책하는..

어떤 경우에든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에스키모人의 스트레스 지수 측정법이 언뜻 단순무식한 듯하지만,
곱씹어 볼수록 굉장히 지혜롭다는 생각이 든다.

:


남산둘레길을 돌며
A : "대한민국 학교 교가에 산 하나씩은 다 들어가있는 거 같애..
무슨 산 정기.. 운운하면서.."
B : "우리 학교 교가에 장백산이 있는데.."
A : "학교가 길림성에 있는 것도 아닌데, 장백산이 거기서 왜 나와.."
B : "그러니까.. 왜 장백산인지 모르겠네.. 큰 정기를 받으라는 건지.."
A : "우리 학교 교가에는 삼각산이 있는데, 그 삼각산의 정체가 아직도 헷갈려."

이때..
C & D : (동시에 이구동성으로) "어~ 우리 학교 교가에도 삼각산이 있는데.."

조선시대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의 수장인 김상헌은
후에 청나라 심양으로 끌려가며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 라고
조국의 고향산천을 등지는 애잔한 마음을 읊었다.

산이 아니면 강이라도 들어가는 대한민국 교가.
내 모교 교가에는 두 개가 다 들어있다.
"삼각산 높은 봉은 기상이 씩씩하고
한강수 맑은 물은 마음도 깨끗하다
옛 성밖 묏 뿌리에 우뚝 선 ...♪♬"
모교에서 한강은 제법 거리가 있음에도
배산임수의 지세를 교가에라도 담아 인재를 양성하고 싶었을까..

자연의 드넓고 맑은 정신을 배우라는 의미였는지,
창의성 부족이었는지, 어쨌든,
한 사람이 모든 교가 작사를 한 것도 아니었을텐데도,
많은 교가 가사에 산과 강이 인용되었다는 게 참 신기하다.

:

 

외국에 사는 딸이 어버이날이라고 꽃바구니를 보내왔다.
인터넷 세상이 좋긴 좋다. 세계 어디서나 맘만 먹으면 어디로든 뭐든지 보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자식들이 챙겨야 할 날들이 참 많다.
먼저 아버지 어머니 생일에 어버이날,
그냥 지나가기 찜찜한 설과 추석,
게다가 특정 종교의 경우 성탄절까지.
양가 부모가 모두 계시면 1년에 횟수로 무려 12번이다.
평균 매월 한 번인데, 몰릴 경우 월 세 번 이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때마다 선물을 사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품목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하여 취향 맞추기도 힘들다보니,
셀프 쇼핑을 하고 영수증을 자식에게 건넨다는 얘기도 듣지만 어색한 건 사실이다.
양가 선물의 균형을 맞추는 것 또한 신경쓰이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현금을 건네기도 하는데, 맞벌이 부부 급여를 모두 모아도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집 하나 장만하기 쉽지 않은 요즘 실상을 감안하면, 때마다 용돈으로 건네는 비용도 부담스럽다.

물론, 역으로 부모들 역시 때마다 자식들에게 현금으로 선물을 한다면 오고 가는 비용이 비슷하거나 부모 형편에 따라 더 수익(?)이 높을수도 있지만, 결국 같은 돈이 오고가는 걸 왜 해야 하는지 의아스러울 때가 있다.
오고 가는 정이라고 하기에는 허례허식이라는 생각도 가끔은 든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때마다 부모님 선물을 고르는 게 참 힘들었다는 기억이 있기에, 우리 부부는 때가 다가오면 먼저 아무 것도 준비하지 말고 식사나 함께 하자고 아이들에게 선제적 지침을 내린다.
굳이 자식들에게 받아야 할만큼 꼭 뭐가 필요한 것도 아닌데, 바쁜 아이들 시간 쫒기며 신경쓰게 하고싶지 않기 때문이지만, 누군가는 너무 그러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런게 습관이 되면 어느 순간 부모에 대한 고마움이 무감각해진다는 건데, 그 말도 일견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본인들 가계 꾸리기도 빡빡한 상황에 돈 쓰는 것이 안쓰러운 게 일반 부모들의 공통적 마음이 아닐까 싶다.

이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결국 부모가 마음을 비우고 은근한 기대감을 내려놓는 게 답이 아닐까. 설사 자식들이 무감각해지더라도 서운함 또한 내려놓으면 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렇더라도 그런 노력을 하는 게 어른스러움이 아닐까.
나이만 든 어른보다 생각이 든 어른이 되고 싶다.

:

 

진보여당의 압승과 보수야당의 역대급 몰락은 사실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고 패자의 비통함을 통감하기에 앞서 양당 모두 서슬퍼런 단호한 응징에 두려움과 전율을 느껴야 한다.

여당이 압승에 도취되어 논공행상과 자리 싸움에 연연하는 분열의 모습을 보이고, 야당이 처절한 반성을 통해 공감받는 합리적 보수로 일신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다음 민심은 어디로 향해 어떤 참혹함을 보여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180석을 거머쥔 여당에겐 개헌을 제외하고는 못 할 게 없는 막강한 권한이 주어졌다.
이제 [안]하는 일은 있어도 [못]하는 일은 없게 됐다.
핑계를 댈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정을 남 탓으로 떠넘길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는 자신들이 내세웠던, 자신들을 뽑아야 하는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국민들은 거대 여당이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안하고 있는지 지켜볼 것이다.
그렇게 21대 국회 전반기를 지켜본 판단이 2년 후 대선 평가의 기본 잣대가 된다.

압승에 도취되어 우물쭈물 장내 정리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내세웠던 개혁입법과 쌓여있는 민생관련 법안 처리를 통해
힘을 주니 뭔가를 해낸다는 가시적 만족감을 줘야 하는데,
추진력과 신중함의 병행이 참 어렵다.
경우에 따라 오만한 독선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고,
때로는 무능하고 나태한 공룡이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그만큼 앞으로는 하나하나의 의사결정에 치밀함과 겸손함이 더해져야 하며, 공감대 형성을 위한 폭넓은 의사소통에 더 절실해야 한다.

거대 여당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면 정권 연장이 가능하고 새로운 정권역시 힘있는 국회에 편승하여 안정적인 국정 운영으로 차기 총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선순환이 이어지지만,
믿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차기 정권이 바뀔 수 있고, 입장이 바뀐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 프레임이 형성되면 차기 총선에선 지금 야당의 모습으로 반전되는 게 순간임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코로나 방역효과가 후광으로 작용했고, 탄핵이후에도 자율정화 기능이 상실된 통합당의 자멸이지, 절대 민주당이 잘해서 얻은 의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은 온화하고 배려심도 많지만,
대한민국 유권자는 지혜롭고 게다가 비정함이 느껴질 정도로 단호하다.
4년 전 지지했던 녹색 돌풍에게 철저하게 안면몰수한 대한민국 유권자다.
지금부터 2년이 민주당의 향후 10년을 좌우한다.

:

 

[상황이 어려울 때 남에게 혹은 스스로 대개 이런 격려를 한다

"이 순간을 이겨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거야.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말자."

하지만, 난 늘 반대로 생각한다.

'앞으로 이보다 더 극한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이 정도에 좌절하면 그때는 어떡하겠나. 이 정도는 이겨내야지'

 

곧 좋아질 거라는 긍정의 힘은 잠시 위안이 될 수는 있지만, 믿음대로 되지 않을 경우 더 큰 좌절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현재의 상황을 지탱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벌 수 있고,

실제 더 나쁜 상황이 오더라도 막연한 희망을 가질 때보다 절망감이 덜 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강의를 자주 나갈 때 들려줬던, 어려움을 이겨내는 방법이 요즘 새삼 떠오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경제위기로 전이되고 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모든 주가지수를 10년 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모두가 패닉에 빠져드는 시점이다.

새옹지마.
전화위복.
위기가 기회다.
이 또한 지나가리다...

이런 시기에 씀직한 여러 문구가 있지만, 결국은 본인의 판단이다.


전문가들마다 분석이 다르고 예상이 엇나가는 시점.

누구의 답이 정답인지 알 수 없는 시점에서는 멘탈을 잡고 인내하며 자신의 판단을 믿어야 한다.

 

미래는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이라는 말을 절감하게 된다.

:



금년 9월부터 앞 숫자 세 자리 자동차 번호판이 발급된단다.

앞 숫자 세 자리 외에 위변조 방지를 위한 홀로그램 태극문양과 KOR 문구가 들어간다고.

앞 자리 숫자가 세 자릿수가 되면 약 2억 개의 번호 생성이 가능하여 통일시대에도 대비가 된다는데, 그보다 특수차량 번호 전문화가 가능할 거 같다.

이를테면, 경찰차량은 모두 앞 번호를 112로, 소방차량은 119로.


한 가지 아쉬운 건,

기존 차량에 대해서는 차주 의사에 따라 기존 번호판 교체 여부를 결정한다는데, 일괄 교체는 어떨까 싶다.

일정기간 이내 번호판 일괄교체를 의무화 하여 대포차량을 적발하고, 세금체납차량의 세금 납부를 유도하는 등,

차제에 비정상 차량 일제 점검기간으로 활용하면 차량을 이용한 범죄 예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존 번호판 부착 차량은 뭔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니 문제가 있는 차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해결을 하려 할테니.


:



얼굴에 비닐봉지를 쓴 채 80대 노인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창가에 선 채 죽어가는 현장을 본 유일한 목격자는 맞은 편 집에 사는 자폐증이 있는 여학생.

지우(김향기)가 목격한 인물은 비닐봉지를 쓴 노인과 그 뒤에 서있는 가정부.

검사는 가정부에 의한 타살이라고 가정부를 기소했지만,

용의자인 가정부는 노인의 자살을 말리려했지만 역부족이었다며 결백을 주장한다. 


살인의 증거로 유일한 목격자인 지우의 진술을 내세우는 검사 김희중(이규형).

자폐아인 지우 진술의 신빙성을 파고드는 변호사 양순호(정우성).

각각의 목적에 의해 살인사건의 증인이 된 자폐아 지우가 본 것은 무엇일까.


동생이 자폐아이기에 자폐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특성을 잘 안다는 김희중과,

민변에서 활동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대형 로펌에 들어와 새로운 인생을 도모하는 양순호.

두 사람이 지우에게서 이끌어 내려는 결정적 증언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본 [증인]은 미스테리 법정물이 아니다. 

사회의 편견 속에 소외될 수 있는 특수한 환경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사회물이다. 

법정 영화의 매개체로 자폐아가 등장하는 게 아닌, 자폐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위해 법정을 소재로 사용한 영화. 

영화는 우리에게 단순하지만 결코 쉽게 답하기 어려운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과연 편견을 갖는 사람들이 편견을 받는 사람들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가?'


영화에서 지우의 진술은 일관됐다.

단지 지우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을 뿐.


일반학교에서 특수학교로 전학한 지우에게 물었다. "특수학교에 가니 어때?"

지우의 대답이 이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상한 애들이 많아요. 그런데 편해요. 정상인 것처럼 하지 않아도 되니까."

누가 정의했는지도 모를 기준을 정상이라 여기며 맞추기 위해 버둥거리는 우리의 모습은 과연 정상일까. 


영화와 무관한 사족을 달면,

정우성과 송윤아는 실제 커플이라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고,

대배우 박근형의 배역이 내겐 좀 짠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부분 자폐아 연기를 한 김향기의 눈망울이 가슴을 꽉 채우는, 엔딩이 동화같은 [증인].

1월의 [그린북]에 이어 우리의 정서를 위한 힐링무비로 권하고픈 영화다.


마지막으로 [증인]의 대사 한 줄을 소개한다.

"그들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방법은 그들을 밖으로 꺼내려 하지 말고 그 세계 속에 들어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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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린북].

[그린북]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흑인들이 머물 수있는 숙박업소와 식당에 대한 흑인 운전사 가이드북이다.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이 있는 이태리계 미국인 토니 발레롱가.

일하던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자 그는 지인의 추천으로 저명한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 박사의 남부 순회공연 운전기사로 일하게 된다.


피부색 외에는 지적 경제적 능력에서 미국 상류사회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셜리 박사와는 반대로

피부색 외에는 지적 경제적으로 미국 상류사회와 전혀 거리가 먼 토니가 함께 하는 8주간의 동행.


동질적 요소라곤 전혀 없는 두 사람의 동행이 가능한 건,

성장환경 속에 인종차별이 몸에 밴 셜리의 인내심과,

불같은 성격임에도 돈 앞에서는 인내심이 생기는 토니의 묘한 공통점 때문.

아울러 셜리의 포용력과 토니의 책임감이 어우러지며,

이질적인 두 사람의 순회공연 여정은 서로에게 동화되어 가는 공감여행이 된다.


흑인 연주자가 들려주는 수준높은 음악과,

수준높은 음악을 들려주는 흑인 연주자를

극명하게 차별하는 이중적 지성에 맞서는 품격.

같은 의미인 듯 다른 지성과 품격의 차이를 알게 해주는 영화 [그린북].


죽을 때까지 깊은 우정을 쌓아간 두 사람의 실화를 근거로 한, 모처럼 자신있게 강추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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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아는 한의원 원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원장님~ 오래 살려면 뭘 많이 먹어야 할까요?"

평소와 다른 다소 뜬금없는 질문이라 여겼는지 답변을 유보한 채 오히려 내 표정을 살핀다.

"나이 아닌가요? 나이를 많이 먹어야 오래 살잖아요."

싱겁다는 듯 살짝 엷은 미소가 번진다.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오래 사는 건데, 사람들은 오래 살고 싶어 하면서 정작 나이 먹는 건 싫어하니 이게 모순이죠."

그제서야 활짝 웃으며 "모순이죠~" 맞장구를 친다.


중요한 건,

보약도 복용법에 따라 약효가 달라지 듯, 나이도 잘 먹어야 한다는 거.


매일같이 받는 세월의 밥상에서 편식을 하지 말자.

짜증난다고 배려를 안 먹으면 갑질을 하게 되고,

답답하다고 인내를 안 먹으면 우발적이 되고,

귀찮다고 운동을 안 먹으면 신체장애가 오며,

상한 재료에 몸이 상하듯 상한 인간관계가 삶을 상하게 한다.

생각없이 먹는 나이는 삶의 영양을 퇴화시킨다.

천천히 생각을 곱씹으며 영양분 있는 나이를 먹자.




: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도입부를 놓치는 정신없는 영화.

하정우가 미션임파서블 톰 크루즈보다 열일 하는 영화.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나오는 영화.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많이 들리는 영화.

고로 자막 처리가 가장 많은 영화.

총쌈으로 시작해서 총쌈으로 끝나는 지루함을 마지막에 고공강하로 살짝 달래는 영화.

정신을 빼는 총소리로 잠을 못 자게 하는 영화.

스케일이 엄청 큰 듯하지만 제작비는 얼마 안 들었을 거 같은 영화.

조연급인 이선균의 극 중 이름을 끝까지 모르는 영화.

한국이 무대지만 스토리 전개 배경은 미국인 영화.

한국 배우를 캐스팅한 미국영화같은 영화. 

그 와중에 은근 휴머니즘을 주입하는 영화.

그리고, 제한된 극한의 환경에서 리더의 역할과 고뇌를 보여주려는 영화.


결론 : 내가 본 한국 액션영화 중 가장 정신없는 만화같은 영화.

(사족 : 내 기억속 한국영화 중 가장 익사이팅했던 액션영화는 [최종병기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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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세비 인상이 또 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매년 국회 예산 심의 때마다 슬그머니 올리려다 여론에 들키면 이런저런 변명을 하며 어물쩡 뭉개며 없던 일로 하는 게 이제 연례행사가 된 듯하다.

언론에 보도된 세비 인상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변명을 보면, 그 파렴치와 뻔뻔함에 실소를 금치 못 한다.

변명에 앞장 선 각 정당 의원들의 언어도단에 하나씩만 묻고 싶다.


◈ 국회 운영위 예결소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수석부대표


"소위원장인 저마저도 취재가 있기 전까지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 예결소위원장 스스로 부실 심의를 인정한 것으로, 이런 직무유기를 하는 자들에게 세비를 올려준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아닌가.


◈ 국회 운영위원장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세비는 공무원 임금 인상률에 연동해 예산처에서 정부안으로 오기 때문에, 소위에서 이론이 없어 고치지 못하고 자동적으로 적용된 것"

→ 공무원 임금 인상률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쉴드치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그리도 쌍심지를 돋구며 딴지를 거는 건

    스스로가 국민의 대표이길 부인하는 건 아닌지.


"6년간 세비가 동결됐다는데, 우리가 차관보다도 적게 받는 것으로 돼 있다. 내년에 2.6%를 올려도 차관보다 적게 받는 것으로 보고받았다"

→ 국회의원이 차관보다 많이 받아야 한다는 우월적 근거는 또 무엇인지.

    지위에 대한 이런 잠재적 오만함이 있으니 최저임금에 대해서 그리 각박한 게 아닌가.


◈ 국민의당김동철 원내대표


"국회의원 세비를 안 올려야 하느냐? 일을 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생각은 하지 않고,

 국민적 불신이 있으니 세비를 올리지 말자고 하면 일하지 말고 욕도 얻어먹지 말자고 하는 것이냐?"

→ 세비를 올리지 않으면 일 하지 않겠다는 속물근성의 결정판.

    임금협상이 안 되면 파업을 무기로 삼는 노조와 다를 게 없음을 커밍아웃한 셈.



차제에 제안 하나 하고 싶다.


직장인들은 매년, 혹은 매분기 인사평가를 받고 평가결과에 따라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고 연봉 재계약을 한다.

(교수가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학 교수들 역시 연구실적에 따라 재임용 평가를 받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 국회의원들도 매년 입법 실적 등 의정활동을 평가한 세비 차등 지급제 도입을 국민청원하고 싶다.

그런 평가를 통해 정말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하는 의원에게 활동을 뒷받침할 세비를 지급하는 것을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반면에 부실한 의원들의 세비는 가차없이 삭감하고.


비정규직을 위한 입법에는 인색한 자들이, 국회의원 보좌관은 인턴의 정규직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셀프담합으로

7명에서 1명 더 늘린 것도 뻔뻔한 일인데, 본인들의 세비까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올리는 파렴치한들.


그들의 구차하다 못해 치졸한 변명은 이렇다.

"지역구 관리를 하다보면 세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성능 좋은 확성기로 권하고 싶다.

"그럼 국회의원 하지마라~ 하고 싶은 사람 줄을 섰으니..  나라도 한다~"


:



결혼식 끝 마무리,

신랑 신부의 양가 부모에 대한 인사.


먼저 신부 부모에게 인사를 시키는 주례의 한마디.

"그동안 잘 키워주신 두 분께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이어 신랑 부모에게 인사를 시키는 주례의 한마디는 이랬다.

"신랑을 잘 보살피며 두 분을 잘 모시겠다는..."


이건 아닌 거 같은데..

결혼이 소유권 이전이 아니지 않은가.

그 주례는 마케팅에 대한 저서까지 있다고 한다.

마케팅의 본질은 가치와 만족의 공유가 아닐까.



:

 

 

익숙한 얼굴들이,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낯선 얼굴들이

조연으로 까메오로 출연된 영화.

 

주연도 없지만, 그렇다고 엑스트라도 없는 영화.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그를 추모하는 많은 이들의 여러 사연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을 각자가 음미하게 한다.


개인에 대한 선호가 달라 누구에게나 추천하긴 부담스럽지만,

오바마같은 대통령을 부러워 하는 이들에겐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우리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

우리에게도 보통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며 올곧은 신념으로 보통사람을 위한 정치를 추구한 참정치인이 있었다고.


시대의 여망에 따라 변화돼야 할 역사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축적될 수 없다.

시대를 끌고 나갈 리더는 필요하지만, 리더를 신뢰하며 그가 무언가 할 수있도록 힘을 모아 주는 구성원이 없다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그렇기에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까메오일지언정 그 누구도 엑스트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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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선 의원에 도지사까지 역임한 60대 중반의 정치인에게도 국무총리라는 직위는 달콤한가 보다.

UN이라는 국제무대에서 당당하게 활동한 60 초반의 캐리어우먼에게도 일국의 외교부장관은 외면하기 힘든 자리였나 보다.


30대 초중반의 미국 국적자가 미국 국적을 포기한다는 건 삶의 지평을 바꿀만한 중차대한 결정이다.

직장인이라면 당장 미국에서 나와 미국 비자를 취득후 다시 들어가 취업을 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그리 간단치 않을 거라 생각된다.


총리든 장관이든 수명은 기껏해야 정권하에서의 3~5년이다.

남들에 비해 누리는 삶을 살아온 인생에 육십이 넘어 덤으로 얹어지는 고위 공직이라는 명예가,

평생을 함께 한 배우자의 비리에 대한 비난이나,

자신보다 긴 시간이 남은 자녀의 인생과 맞바꿀만큼 가치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 평생을 함께 해온 아내가 인생 후반기에 갑자기 부도덕한 사람으로 세인의 지탄을 받아야 한다면,

장관이 되기 위해 앞길이 창창한 딸이 예기치 않게 삶의 일부분을 접어야 한다면,

나라면 그 길을 외면할 거 같다.


싦의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보다 가치있는 건

함께 해온 동반자에 대한 존중과, 사랑하는 자녀의 미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삶의 형태나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타인의 삶을 훼손한다면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들다.


삶의 가치는 서로에 대한 동등한 존중을 바탕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타인의 희생으로 인정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밝음보다 가족에 대한 앞선 존중이 아쉽다.




:



이 할머니를 보면서 왠지 사고파졌다. 아니, 사야 할 거 같았다.



덩달아 먼 추억이 따라왔다.


초등학교 하교길에 바늘에 침을 발라가며 찍힌 모양을 따내려 애쓰던 기억.



내가 하나 사고 나니 20대 초반의 아가씨 셋이 하나씩 산다.

그 나이 또래의 추억거리는 아닐 듯하고, 천 원의 가치를 평가하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니,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 씀에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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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증이라는 명분으로 유력 대권 주자 두 사람의 상호 공세가 점입가경이다.

아들의 취업 의혹 제기에 배우자의 교수 임용 의혹을 언급하고,

청와대 수석 시절 당시 대통령 사돈의 음주운전 무마 의혹에 조폭 연루설로 맞불을 놓더니,

급기야는, 아라비아 숫자를 영어로 읽느냐 우리말로 읽느냐와 연설시 음색의 변화까지 꼬투리를 잡는다.


이런 가운데 한 대권 주자는 보궐선거로 인한 국민 혈세 낭비를 막겠다는 속 보이는 명분을 앞세워 도민의 참정권을 유린하고 있고,

지지율이 저 아래에 자리매김한 두 후보는 어떤 말을 하든 유권자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다.


당내 경선 전 예상을 뒤엎고 모든 후보 지지율 2위의 가파른 상승세로 제 1당 후보 선출의 이변을 기대했던 한 후보는

"모든 대통령이 집권 초기엔 좋은 생각을 가졌으나 주변 환경으로 인해 변질됐을 것"이라는 정치적 성선설로

모든 경쟁자들의 호된 질타와 함께 지지세가 급락하며 결국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앞으로 한달간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안 될 얼마나 많은 흙탕물이 튈지 알 수 없다.

몇 년 전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유력 주자들은 어느덧 政治人에서 政略家로 변모하고 있다.

"자기 목소리 하나 못 바꾸는 사람이 어떻게 국가를 변화시키겠다고 할 수 있느냐."고 한 유력 후보는 말했다.

목소리와 국가경영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환경에 시의적절하게 대응하는 변화는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안타까운 건, 시의적절한 필수불가결의 [변화]와, 위정자가 되고 싶었던 [初心]의 관계 설정이다.


정치지망생들이 선거를 지켜보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초심을 유지하면 대의를 이룰 수 없다'는 서글픈 定義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보다 나은 정치인이 아닌 보다 폐해가 덜 할 정략가를 뽑기에 급급할지 모른다.


: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건 아니야’라고 선을 긋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행동하길 꺼린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지만,

그 익숙함이 결국 뒤처지는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늘 하던 대로'가 주는 익숙함이다.


변화의 시작은 '하던 대로'에 대한 의문이다.

'왜 늘 이래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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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네이버 이미지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대통령의 소통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본관과 비서동으로 구분되어 있는 청와대 내부 업무공간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이 늘 제기됐다.

때문에 그 폐해를 인정하는 대권주자들의 대통령 집무공간 개선에 대한 공약도 심심찮게 제시된다.


현재 청와대는 헌정사상 최초로 입주자가 없다.

동시에 확정된 입주자도 없다.

새 입주자가 들어오려면 아직 50일이 남아 있다.


이럴 때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 청와대 본관을 리뉴얼하면 어떨까.

기간이 짧다는 건 인정하지만, 50일이면 리뉴얼에 그리 짧은 기간도 아니다.

좀더 기간이 필요하다면 새로 들어갈 입주인이 입주 초기의 불편함을 다소 감내하면 된다.

현재 대권후보들에게 양해 여부를 묻는다면 누군들 드러내놓고 반대할 수 있을까.


대통령과 보좌진의 집무공간 개선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는 대권주자가 당선되더라도,

취임 후 실행에 옮기려면 그때부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기간동안 집무 효율성은 더 혼잡스러워진다.


지금은 대통령도 없고, 대통령을 보좌할 인력도 당장은 필요없다.

관리에 필요한 인원만 유지하면 된다.

어차피 필요한 일이라면 공사기간으로 인한 의사소통 혼잡성을 적어도 50일은 줄일 수 있다.


해야 할 일이라면 지금이 다시 없을 기회다.

이럴 때 한번 질러보자.


:


그나마 한국여성의 단면(斷面 & 短面)만 보여주지 않아 다행.


일하는 척 하는 공직자와 일하는 공직자가 평소 신경쓰는 우선순위가 확연히 비교되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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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국민들의 아쉬움 속에 박영수 특검이 종료됐다.

법률에 대해 문외한이라 특별검사 제도가 언제부터 실행됐는지 알 수 없지만,

대한민국 건국 이래 박영수 특검만큼 국민의 절대적 관심과 기대와 지지를 받은 특검은 없었다.

역대 특별검사에겐 서운한 소리겠지만, 특검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 시선은 대체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제도 자체가 그렇다. 특별검사제라는 게 검찰의 수사를 못 믿어 도입되는 것이고,

검찰의 수사를 믿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검찰 수사의 한계를 공인하는 것이고,

검찰 수사의 한계는 결국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거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연유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특별검사는 與野가 한 명씩 추천한 후보 중 대통령이 임명한다.

정권이 내켜하지 않은 수사의 책임자를 대통령은 누구로 정하겠는가.

여당이 눈치껏 내세운 후보를 지명하는 건 탓할 수 없는 당연한 인지상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영수 특검의 태동(胎動)은 묘했다.

대통령 비선의 국정농단이라는 건국이래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거세게 끓어오르는 국민감정에 놀라

여당이 특별검사 후보 추천을 야당에게 모두 일임한 것이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국민 정서에 여당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청와대로서는 야당이 추천한 두 특별검사 후보자에 대해 누가 더 아군 성향인지 면밀한 검토를 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박영수 특검 지명은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선택이다.



박영수 특검은 황교안 총리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근무 緣이 있었다.

한정된 인원의 검찰 조직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다 보면 이런저런 인연이 없을 수 없으니 근무 경력을 문제 삼는 건 과민할 수 있지만,

그가 황교안 총리 인준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하여 황교안 총리에 대한 우호적 증언으로 인해 테러까지 당했던 전력을 보면

그는 분명 청와대로서는 그나마 한줄기 빛이었을 거다.

때문에 그를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국민의당에 대해 석연치 않은 시선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어찌 됐든 대통령은 나름 조금이라도 득이 되는 선택 기준으로 박영수 특검을 선택했고,

박영수 특검이 추천한 여덟 명의 특검보 중에서도 그중 만만하다고(?) 판단한 하위 네 명을 특검보로 지명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부터가 반전이다.

박영수 특검은 "오직 법대로 원칙대로 앞만 보고 가겠다."는 지명 一聲대로 우직하게 국면을 장악해 나갔다.

빅근혜 정권 초기 가장 눈엣가시였던 윤석렬 검사를 영입하는 등, 일반의 기대를 뛰어넘는 광폭 광속 행보로 언론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특검이 임명과 동시에 임명권자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행보를 보인 것을 보면, 아무리 간절히 바래도 온 우주의 기운이 머든 걸 돕지 못하는 게 세상사인 모양이다.


박영수 특검은 정의 실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법 수호 의지만 있으면 무소불위 권력의 청산 등 법질서를 지켜내며 정의를 살릴 수도 있을 거 같다는 희망과 동시에,

법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따라 법이 오히려 정의 실현을 가로막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는 좌절까지.

그런 의미에서 청와대 압수수색과 대통령 대면조사 불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이영선 행정관의 구속영장 기각 등이 남긴 교훈은 의미가 크다.



준비기간 20일을 포함한 특검 90일은 우리 국민이 가장 장탄식을 내뱉으면서도 역설적으로 희망이 느껴졌던 가장 행복한 기간이었다.

그러기에 그 해피엔딩을 가로막은 황교안 권한대행의 판단이 한스럽게 와 닿는다.


박영수 특별검사와 네 분의 특검보, 그리고 105명의 수사인력 모든 분들의 노고에 무한한 경의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70일간 당신들이 쏟아낸 열정은 대한민국이 더욱 건강해지는 초석이 되리라 믿습니다. 


깔끔한 외모와 함께 정확한 워딩과 강한 톤으로 매일 특검 수사상황을 브리핑한 이규철 특검보의 마지막 멘트에 아쉬움이 많이 묻어나

받아들이는 마음이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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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가 과거로부터 만들어 졌 듯,

미래의 나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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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계속되는 숱한 질문에 동문서답만 계속하는 황교안 권한대행의 현장 방문 발언을 보면 대선 출마 후보 공약에 버금간다.

특검 연장에 대해서는 앵무새 답변만 계속하고, AI 대책에도 무심한 듯한 황교안 권한대행이 급기야 권한대행 기념시계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집중해야 할 건 하지 않으면서, 하지 않아도 될 거에 집중하는 모습.


그간 숱한 과잉 의전으로 구설에 올랐던 총리다.

정상적인 지각 능력이 있다면 진즉 아랫사람 단속에 신경을 썼어야 함에도 또다시 이런 논란이 이는 걸 보면,

그간의 과잉 의전이 단순히 아랫사람들의 과잉 충성만으로 나타나는 현상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사의 심기만 생각하는 행태를 보이는 사람들,

그런 아랫것들의 행태를 즐기듯 방조하는 사람에게 권력은 어떤 의미일까.


[수신 제가]의 家가 꼭 가정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조직원이 야기하는 구설도 단속 못 하면서 어찌 治國을 노리고, 平天下를 이룰지 심히 우려된다.



:


"위선적인 카톨릭인보다 무신론자가 더 낫다" 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에


무늬만 신자인 나로서는

'그렇지.. 차라리 무심한 내가 난 거지..' 라는

셀프 쉴드로 안도감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치부를 찔린 듯한 부끄러움이 앞서는 건 왜 일까.


무늬가 아직은 완전히 탈색이 되지 않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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