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건 아니야’라고 선을 긋는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행동하길 꺼린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지만,

그 익숙함이 결국 뒤처지는 불편함을 초래한다는 걸 생각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늘 하던 대로'가 주는 익숙함이다.


변화의 시작은 '하던 대로'에 대한 의문이다.

'왜 늘 이래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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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내가 과거로부터 만들어 졌 듯,

미래의 나는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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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적인 카톨릭인보다 무신론자가 더 낫다" 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에


무늬만 신자인 나로서는

'그렇지.. 차라리 무심한 내가 난 거지..' 라는

셀프 쉴드로 안도감이 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치부를 찔린 듯한 부끄러움이 앞서는 건 왜 일까.


무늬가 아직은 완전히 탈색이 되지 않은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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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은 뒤를 보는 맛에 선다.

 

내 뒤로 늘어선 줄이 길어질수록

기다림의 지루함을 견디는 위안과 힘이 된다.


희망도 그렇다.

기다림에 지쳐 희망의 끈을 놓고 싶을 때

지나온 자취와 주변을 돌아보면 어떨까.


뒤를 돌아보며 지루함을 견디고

조금씩 다가가다 보면 내 차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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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은 뒤를 보는 맛에 선다.

내 뒤로 늘어선 줄이 길어질수록

기다림의 지루함을 견디는 위안과 힘이 된다.


희망도 그렇다.

기다림에 지쳐 희망의 끈을 놓고 싶을 때

지나온 자취와 주변을 돌아보면 어떨까.


뒤를 돌아보며 지루함을 견디고

조금씩 다가가다 보면 내 차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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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늘 원하는 만큼 소유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주어진 현 상황에 맞춰가며 미래를 추구해야 함에도,

사람들은 있었을 때를 추억하거나,

혹은 언젠가는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에 기대고 싶어 진다.


자족(自足)할 줄 모르고 추구만 하는 사람은 무엇을 이루든 늘 만족할 줄 모르며,

때문에 자족감을 못 느끼는 사람이 달성하는 미래는 늘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행복은 늘 보일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아무리 큰 성취라도 스스로 충족함을 느끼지 못 하면 성취가 아니다.

작은 결과에 충족함을 느낄 때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다.


自足은 현재에 안주(安住)가 아, 만족(滿足)을 만들어 가는 긍정의 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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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보는

 

주는 사람의 의무도 아니고,

받는 사람의 권리도 아니다.

 

단지 상대에 대한 배려일 뿐이다.


때문에

양보하지 않는다고 상대를 탓하는 건

자신이 이기적 임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며,

 

양보하고 대가를 바라는 것 역시

잇속을 챙기는 위선자 임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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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
보고자 하는 마음과 자세가 중요하다.

 

모든 사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
사람도 마찬가지.

 

내가 누군가를 한 방향에서만 바라본다면,
그의 눈에도 나는 한 가지 모습만 보일 수 밖에 없다.

 

내가 보고픈대로 보이고,

내가 보는대로 상대방도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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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조금만 더...

 

보일 듯하고 잡힐 듯한 것에 대한 성취욕구는

도약을 위한 작은 도전 의지일 수도 있고,

몰락을 유발하는 큰 욕심일 수도 있다.

 

성취와 몰락의 경계를 구분하는 건 쉽지 않으며,

욕구는 그 둘 사이의 외줄타기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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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해서건 사물에 대해서건
편견은 언젠간 후회와 아쉬움을 동반한다.

외모나 외양이 어수룩해 보인다고
본질도 어수룩한 것이 아님을 알고 후회하게 되고,

무관심으로 인해
가까워질 수 있는 시기를 놓침을 아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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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육체를 강하게 단련하는 것이고,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생각에 깊히 몰입하는 것이다.


고통은 매어진 배와 같아 스스로 흘러가진 않지만,
심신은 그렇게 서로를 대신하여 치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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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게 있고,

마음을 먹어도 할 수 없는 게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 조차 해보지도 않은 채

남이 하는 걸 부러워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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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남과 비교하면 조급해진다.
남과 비교하지 말고, 내가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서로 비교해서 답을 찾자.

평온한 척, 남이 모르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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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같지만,

실은 상대방이 가장 곤혹스러운 말.

"아무거나~"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마음 속에도 원하는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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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은 주관이 개입될지라도 나름 객관화하려는 평가이고,
 
비난은 다분히 감정이 반영된 것이며,

비방은 사실 이외의 것이 첨가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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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을 마주하기 찜찜한 사람이 택하는 방법이 변두리를 겉도는 것이다.

그냥 빙빙 돌기가 멋적으니 늘 화려한 수사(修辭)가 곁들여진다.

팩트(fact)와 레토릭(rhetoric)을 분별할 수 있는 民度가 국회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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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싫거나 안하는 일은 있지만, 안되는 일은 없다.

마찬가지로, 안하는 사람이 있을 뿐, 안되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중도에서 포기하고도, 할 만큼 했다고 강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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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명령에 순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다.

자제력이 약한 사람이 습관을 고치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할 수 없다는 의미.

이건 나 자신에게 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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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에게나 일정부분의 재능이 있다.

자기 재능을 알고 노력을 가미한 사람은 삶을 흥미롭게 산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모르고 있거나, 노력이 부족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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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또 새로운 세계로 간다.

잠이란 나에게 의식의 공간에서 무의식의 공간으로 진입하는 과정이다.

무의식의 공간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할지, 그 속의 나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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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검색 중에 방금 삼성전자 부사장이 자살했다는 기사가 떴다.

명예.. 부.. 그보다 더 중요한건,

명예나 부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희희낙낙하는 작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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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하게 보면서 다양하게 생각하는게 창의이고,

다양하게 보면서 단순하게 정의하는게 진리가 아닐까.





직경 5mm의 안대를 한 채 좁은 시야로 한정된 공간을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넓게 많이 보느냐가 아닌,
어떻게 생각하며 보느냐가 더 중요함을 깨우친 것이다.

보이는 것 보다 보이는걸 해석하는 마음...

생각지도 않았던 신체의 결함이 내게 준 소중한 교훈이다.

:

나이드신 분의 빨리 죽고싶다는 말씀은 어쩌면 진심일지도 모른다.

나누어줄게 없는 사람이 베풀 수 있는 유일한 배려는 짐이 되지않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픈 진심을 거짓말일거라 힐난하는 우리는 그만한 배려심이라도 있는 것일까.
:
누구나 원하는만큼 다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걸 모두 생각할 수는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개 생각하는 범위내에서 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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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바뀌면 사람들은 많은 의미를 담아 [새해]를 맞는다.

하지만 매일 아침 맞는 것이 [새날]임은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본질적가치보다 희소성의 가치에 너무 얽매여있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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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란 대중적이지 않은 새로운 생각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창의도 대중에게 외면당하면 기행(奇行)에 지나지 않는다.

대중적이지 않았던 것을 대중화시키는 것 - 그것이 실용적 창의가 아닐까.

:
깊히 있는 것은 드러나기가 어렵고, 얕게 있는 것은 드러나기가 싶다.

속이 깊은 사람은 말을 아껴 남이 파헤치기 어렵지만,
속이 얕은 사람은 말이 많아 남에게 다 드러나게 된다.

귀는 둘 입은 하나.  듣기와 말하기의 기본비율은 2 : 1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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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그냥 살아지는게 아니다.

자신에게 투자하지 않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자기 자신을 살(buy) 수 있는 사람만이 살(survive) 수 있는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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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를 향해 질주하다보면 미처 가까이 있는 벽을 보지못하는 경우가 있다.

쉬어간다는게 마치 늦는거 같고 잃는게 많아 보이지만, 더 크게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불가능해 (Impossible) 보이는 것도 한박자 쉬며 생각하면 가능해 (I'm possible) 보이기도 한다.
:

아무리 머리속에 기막히게 떠오르는 상상력을 가졌더라도

제대로 묘사할 능력이 없으면 상상한만큼 남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때문에 상상의 한계는 곧 어휘력의 한계일 수 밖에 없다.

어휘력이 부족하여 내가 느낀만큼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