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관람 희망 리스트에 없던 영화 [수상한 그녀].
제목과 예고편에서 어딘지 어정쩡한 코믹이 느껴져 별 관심이 없었는데,
매년 초 영화를 보는 부부동반 모임에서 선택한 영화라 큰 기대없이 본 이 영화가 내게 큰 감흥을 주었다.
[도가니]를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도가니]와는 전혀 상반된 분위기의 따스함을 [수상한 그녀]에서 만들었다.
[도가니]에서 버림받은 사회 소외계층을 억압하며 명예와 부와 욕구를 축적하는 추악한 사회 지도층을 고발했다면,
[수상한 그녀]에서는 질곡없이 성장한 계층이 이해할 수 없는 노인들의 힘들었던 삶의 여정과 소외에 대해 짚어본다.
아울러 [수상한 그녀]는 심은경이라는 상큼한 젊은 스타의 탄생을 예고한다.
우리에게 익숙치 않은 심은경은 사실 이미 여러 영화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아역배우 출신의 젊은 연기자다.
[써니]에서 수줍은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나이는 어리지만 속이 깊은 사연많은 궁중 나인
사월이 역을 애잔하게 소화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에서는 빼어난 가창력까지 보여줌으로써 다재다능한 모습을 발휘한다.

황동혁 감독의 심은경 캐스팅이 돋보이는 것은,
나문희의 20대 시절을 연기하는 심은경의 모습에서 실제 나문희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 두 사람의 얼굴 이미지가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또한 심은경은 극중에서 겉 모습은 20대로 돌아갔지만, 내면이나 행동은 습관적으로 남아있는
70대 나문희의 모습을 과장되지 않으면서 어색하지도 않게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캐릭터 소화력이 뛰어나다는 의미.
최근 영화는 옛 향수를 자극하는 노래를 새로운 감각으로 편곡하여 삽입하는 노래의 복고현상을 많이 보인다.
이런 영화음악의 복고 경향은 장년층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며, 젊은 층에게는 새로운 쟝르의 음악을 접하게 함으로써
관객 층을 넓혀 나가는 마케팅 요소도 가미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서도 스무 살 주인공은 70년대 노래 몇 곡을 직접 부르는데, 조만간 심은경이 부른 70년대 노래의 음원이 불티나게
인기를 끌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가창력도 좋지만, 편곡도 참 잘 좋았다. 게중 특히 요절한 70년대 가수 김정호가 불렀던
[하얀나비]의 재해석은 이 노래의 음원이 나오면 무조건 구입을 하고플 정도로 나에겐 엄청난 감흥을 주었다.
영화 [수상한 그녀]에는 가슴 뭉클한 두 번의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 오두리(심은경)의 [하얀나비]가 흐르는 동안 세피아톤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녀가 살아온 삶의 궤적.
그 중 아이를 돌볼 틈이 없어 일을 하는 동안 발목이 묶인 채 기어다니는 아이의 모습은 관객에게 먹먹함을 안겨 준다.
- 또한, 오두리와 그녀의 아들 반현철의 병원 대화 장면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함축된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다.
반현철이 오두리에게 전하는 대사 "어머니 평생을 자식 키우느라 고생하셨다. 이제는 자신의 삶을 위해 사시라"
황동혁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이 장면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했다.이 시대의 부모와 할머니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 말이 우리 시대 자식들의 마음일 거라고도 했다.
정말 70 인생을 살아본 듯 자식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애증을 애닯게 담아 낸 심은경.
자신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어머니의 삶이 뒤늦게나마 보상받기를 눈물로 바라는 성동일.
관객의 눈물샘을 쏙 뽑아내며 뒤바뀐 세대를 명 연기로 보여준 두 배우의 이 장면은 황동혁 감독의 바램을 잘 녹아냈다.
두번에 걸쳐 진한 최루가스를 뿌리는 영화는 마지막에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대박 반전으로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초반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며 전체적으로 연출 측면에서 세련되거나 깔끔한 맛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모든 관객의 코 끝을 찡하게 만들며 눈가를 잔잔하게 적시는 영화.
[수상한 그녀]는 누구와도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강력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아~ 잊을 뻔 했는데, 참 인상적인 장면이 하나 있다.

자식들이 자신을 노인요양원에 보낼 생각 임을 안 오말순 할머니가
사진관 앞을 지나다 젊은 오드리 햅번의 사진을 보며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는 장면.
거울을 통해 나타난 오말순 할머니의 표정에 아무나 표출할 수 없는 나문희의 연기 내공이 드러난다. 역시~~
P.S : [수상한 그녀]에 나오는 곡 중 하나인 [나성에 가면]을 부른 장미여관과 심은경의 동영상.
http://me2.do/xjK6arM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