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디로 너무 재밌다.

분야별 절도 전문가들이 모여 대형 다이아몬드를 훔친다는 소재부터
어딘지 한국판 [오션스일레븐]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은 영화.
때문에 자칫 어설픈 아류작이 아닌가 했던 어설픈 선입견을 한 방에 날려버린 영화.


영화는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주요 등장인물의 캐릭터 소개를 겸한 다이아몬드 탈취 예행연습(?) 과정.
그리고, 다이아몬드 탈취 및 도주 과정과, 탈주자들간의 생존게임으로 이어진다.

나름대로 각 분야별 전문가라 일컫는 도둑 열 명이 모였으니 전개과정의 커다란 줄기는
범죄스릴러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한 탕을 노리고 모여 겉으로는 의기 투합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차피 서로를 믿지 못 한다.
언제 배신할지, 또 언제 배신 당할지 서로의 머리 속은 바쁘지만, 어차피 배신마저도 공동의
목적 달성 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에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안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영화의 결말은 대개 둘 중 하나다.
함께 공모한 사람들 서로간의 배신과 음모가 진행되면서 핵심인물 한두명이 전리품을 독식하거나, 혹은,
좇고 좇기는 과정에서 전리품을 모두 날림으로써 도리에 어긋나는 헛된 욕망의 결말은 허무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도둑들] 역시 그렇다.

혹자는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가 너무 가볍지 않느냐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아마도 [오션스일레븐]의 쟁쟁한 배우들이 보여준 너무나 세련된 캐릭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난 그런 비교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동서양 문화가 달라 노는 물도 다르다면,
도둑 역시 한국인의 정서에 익숙한 한국형 캐릭터가 관객에게 더 편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일일히 언급하자면 글이 길어지겠지만, 국내 배우 몇만 간단히 짚어보자.

영화 전체의 큰 틀을 잡아나가는 마카오박 역의 김윤석은 역시 최고의 배우다.
[황해]에서의 터프하고 육중한 개장수 면정학과 달리 샤프한 모습으로 나타난 김윤석.
많은 체중 감량이 있었음에도 그의 카리스마는 여전하다.

김혜수는 늘 매력적이고 멋지지만, [도둑들]에서 김혜수보다 시선을 끄는 건 전지현이다.
전지현은 다소 천박한 듯하면서도 빠른 두뇌 회전으로 자기 이익을 위한 처세에 뛰어난 모습을 
상큼하게 보여준다. 또한, 다소 떠있는 듯하지만, 잔머리를 굴리며 배신을 일삼는 양아치 이정재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처음 이 영화에서 관심이 갔던 캐스팅은 김수현이었다.
TV 드라마 [해를 품은 달]로 일약 스타 덤에 오른 김수현이지만, 같이 출연한 다른 배우들에 비해 
범죄스릴러의 캐릭터로는 아직 나약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려(?)했던 대로 [도둑들]에서
김수현은 젊은 여성층의 유입을 위한 캐스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큰 비중이 주어지진 않았다.

아~ 홍콩배우 임달화도 참 멋지게 나오지만, 깜짝 놀랄 특별출연 신하균은 정규 배역 못지 않은
비중으로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큰 웃음을 준다. 특별출연이 영화의 처음과 끝을 동시에 장식하는
것도 아마 처음이 아닐까?  


범죄스릴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를 알 것이다.
그 영화들과 [도둑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영화를 본 사람들은 먼저 무얼 생각할까?
터는 거? 그리고, 마지막 극적인 반전?

그렇다.
[범죄의 재구성]에서는 한국은행의 돈을 털고, [타짜]에서는 또 다른 타짜의 패를 턴다.
[도둑들]에서는 특급호텔의 다이아몬드를 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수시로 작은 반전을 주다가
결말 부분에서 예측치 못한 큰 반전으로 관객의 허를 찌르는게 공통점인데,
가장 큰 공통점은 이 영화들의 감독이 같다는 것이다.     

최동훈 감독은 배신과 음모를 복선으로 깔고 욕망을 쫓는 사람들의 심리를 맛깔스럽게 재단하는
능력이 있다. 때문에 그의 영화는 전개될 스토리와 결말을 함께 추리해 나가는 재미로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그 중에도 영화 [도둑들]은 템포와 스케일에서 최동훈 감독 범죄스릴러의
결정판이라 생각한다.

워낙 많은 전문가들 각각의 역할을 보여주느라 영화 중반 다소 산만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꼬투리를 잡기 위한 트집이라 해도 할 말이 없다.
출연진이 주고받는 대화를 놓치면 흐름 이해가 벅찰 정도의 함축성있고 빠른 대사 때문에 
머리로 대사 따라잡기도 바쁜데, 부산을 배경을 한 액션은 관객의 눈까지 바쁘게 만든다.  
홍콩과 마카오, 부산을 연결하며 보여주는 와이어 액션은 [미션임파서블]이나 [본 아이덴티티],
그리고 [다이하드]에 전혀 뒤질 게 없다. 특히, 부산의 건물 벽을 타며 좇고 좇기는 액션은 압권이다.


최근에 본 국내 액션영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가 [최종병기 활]이었는데, [최종병기 활]과
[도둑들]은 장르가 조금 다르다. [최종병기 활]은 음모와 반전이 없는 정통 활극이기 때문이다.

잘 만든 영화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도둑들]은 내가 본 국내영화 중 가장 경쾌하면서도 통쾌한 영화다.

감칠 맛 나는 언어와 빠르게 전개되는 액션으로 두세번을 연속으로 보아도 쉬 물리지 않을 영화.
영화 팬의 엔돌핀마저 훔쳐 꺼내는 [도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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