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이 연기를 잘 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광해]에서 이병헌은 군주인 광해와 천민인 하선을 1인2역으로 표현하는데,
오로지 표정만으로, 그 표정 중에 특히 눈빛과 웃음으로 절대지존과 티끌같은 백성의 차이를 표현한다.
1인2역이라고는 하지만, 광해와 하선의 비중은 2:8 정도이기 때문에 몰입도와 비중은 하선이 크다.
그렇더라도 짧은 시간 표출되는 광해의 카리스마는 크게 느껴진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선의 인간미 넘치는 휴머니즘도 진하게 와닿는게 영화 [광해]다.

영화는 전반에 코믹한 웃음을, 그리고, 후반에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
간간히 현대적인 용어로 웃음을 자아내게 하지만, 그런 시도가 시대극이라는 설정과 전혀 어색하거나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그만큼 관중의 몰입도를 이끌어낸 연출의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광해]의 주연급은 이병헌과 한효주, 그리고, 유승룡이지만, 한효주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내가 관심을 둔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관계 설정.

도승지 허균(유승룡)은 광해(이병헌)가 독살 위험에 처하자, 광해가 치료를 받는 기간동안 광해와 닮은
하선(이병헌)을 가짜 왕으로 내세워 국정 공백으로 인한 혼란을 메우려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가짜 왕 하선과
조정의 실제 고위관료인 도승지와의 겉과 속이 다른 주종관계가 관객에게 유쾌한 에피소드를 제공한다.

 

 

또한, 내관의 수장으로 왕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는 상선이, 하선이 가짜 왕 임을 알면서도 담담하게 하선을 
받아들이며 왕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지장이 없도록 보좌하는 모습도, 기존의 사극에서 등장하는 정치적
혼란기의 정치색 짙은 내관과 차별화됐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두번 째 관전 포인트는, 최근 대선과 맞물려 생각케 되는 진정한 위정자의 모습이다.


가짜 광해를 내세운 도승지 허균은 하선에게 자기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
"경의 뜻대로 하라." 가 허균이 하선에게 코칭한 유일한 왕의 의사표현이다.
하지만, 처음 허균이 시킨대로만 행동하던 하선은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들의 영달만을 위한
대신들의 처사에 실망을 금치 못하며, 스스로 겪고 있는 천한 백성의 입장에서 답답한 마음에 어느 순간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신을 가짜 왕으로 내세운 도승지는 물론, 광해와 정적관계인 대신들을 긴장케 한다.

그렇게 가짜 광해 하선이 내세우는 백성을 위한 정치는 단순하다. 
백성들이 고초를 겪는 제도를 타파하고, 국가에 필요한 재정도 있는 자가 없는 자의 몫을 대신하는 것이다.  

아울러,
감독은 하선을 통해 시대가 요구하는 위정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선은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눈물짓는, 가식이나 위선을 배제하여 백성과 마음을 함께 나누며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지도자의 모습을 제시했다. 왕이 수라상을 다 비우면 시중을 드는 궁녀들이 굶게 된다는 것을
알고는, 팥죽 하나만으로 수라상을 물리는 군주. 

아랫 것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이런 군주의 모습에,
왕의 호위무사인 도부장은 목숨을 받쳐가며 가짜 왕의 탈출을 도왔고,
상선 역시 가짜 왕 하선의 아랫사람까지 배려하는 마음에 감명을 받으며 그의 안위를 걱정한다.
도승지 또한 점차 하선에게서 백성을 생각하는 진정한 군주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선을 죽이라는 왕명을 받은 추격대에게 "너희에겐 가짜 왕일지 몰라도 나에겐 진짜 왕이다." 며
하선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도부장과, 배를 타고 떠나는 하선에게 먼 발치 선착장에서 두 손 모아  고개 숙여
예의를 보인 도승지의 모습은, 시대를 떠나 진정한 위정자를 그리는 경의와 소망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영상도 좋았던 영화 [광해].

왕의 행적을 기록하는 [광해군 일기]의 광해군 8년 2월 28일에 기록된,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는 문구.
그리고 실제 행적이 기록되지 않은 일주일을 단초로 15일간의 가짜 왕 시나리오를 만든
작가의 상상력에 경의를 표한다.
 

사족을 달자면, 대선주자 세 분은 전시행정으로 보여지는 민생현장을 돌기에 앞서,
이 영화를 보며 국민이 기대하는 진정한 리더, 그리고, 참 위정자의 의미를 깨달았으면 싶다.

 

 

'보고 듣고 느끼고 > 영화겉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호인  (4) 2014.01.03
더 테러 라이브  (2) 2013.08.08
도둑들  (0) 2012.07.30
가비  (2) 2012.03.21
세이프 하우스  (0) 2012.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