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보고 듣고 느끼고/영화겉핥기 2015. 9. 30. 02:29 |
사도(思悼).
역사적으로 너무 뻔한 이야기라 관심을 갖지 않았던 영화인데 아들이 추석 전날 예매를 해줬다.
'너무 뻔하다는 건 감독도 알텐데, 뭔가 나름대로의 전하고픈 메시지와 표현방법이 있겠지.. 더구나 이준익인데..'
그런 생각에 이준익 감독은 전혀 예상치 못 한 엉뚱한 관점에서 부응해줬다.
예상과 달리 영화 초반에 일찌감치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
영화는 사도세자를 일찌감치 뒤주에 가둬놓고 그가 왜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음을 맞아야 하는지를 풀어나가는데,
대개의 사극에서 보는 아버지와 아들의 왕권에 대한 정치적 투쟁이 아닌, 아주 단순한 모티브로 접근한다.
그릇된 조기교육의 폐해.
내가 전해받은 이준익 감독의 메시지는 엉뚱하게도 이거였다.
태생의 한계로 신하로 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 하는 콤플렉스를 안고 즉위한 영조는,
자신의 후계인 세자만큼은 신하들에게 꼬투리를 잡히지 않는 완벽한 군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그가 추구하는 완벽한 군주란 신하들보다 우월한 지식과 식견을 겸비한 군주.
때문에 어려서부터 초호화 강사진으로 조기 교육을 밀어붙였지만,
세자는 성장하면서 자신의 취향인 미술에 관심을 보이며 예술가의 덕목(?)인 자유분방함을 추구한다.
태생적 콤플렉스가 있는 아버지가 대를 이을 자식에게 요구하는 지향점.
끼있는 아들이 자신의 세계를 표출하고픈 지향점.
아버지와 아들이 추구하는 두 지향점이 서로 어긋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없이 부자간 갈등의 골은 깊어가고
결국 아들에게 실망한 아버지에 의해 아들은 죽게 된다.
아들을 왕으로 만들고 싶었던 아버지와 사람으로 살고 싶었던 아들.
아직도 자식을 판검사나 의사로 키우고 싶은 부모와 좋아하는 것을 하고픈 자녀.
"이 영화는 강남 학부모들이 봐야 하는 영화네.." 영화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내가 가장 먼저 꺼낸 말이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中 기억나는 대사가 세 개 있다.
"잘 하자~ 자식이 잘 해야 애비가 산다."
(수렴청정을 하면서 영조가 세자에게 한 말)
부모의 역할은 자식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것이지 자식에게 묻어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우리가 왜 이제서야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지 모르겠다."
(세자의 주검앞에서 영조가 세자에게 가졌던 기대와 애정을 독백하며)
어려서부터 대화가 없이 성장한 후의 대화라는 건 자식에겐 간섭에 지나지 않는다.
"왕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윤허하고 책임을 묻는 자리다."
(세자가 신료회의에서 의사결정을 하려 하자 영조가 세자에게 하는 말)
이 시대 정치인들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묻고 싶다.
송강호야 언급이 필요없는 한국 영화의 대표적인 배우지만, 유아인은 완전히 물이 오른 느낌.
[베테랑]에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망나니 재벌 2세를 맛갈스럽게 소화하더니,
[사도]에서도 미세한 손가락 움직임 하나하나의 디테일을 살려가며 대선배 송강호에 밀림없는 연기력을 보여준다.
반면에 문근영은 다소 어색한 느낌. 문근영의 연기력을 탓하기 보다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랄까.
가장 뜸끔없는 건, 영화 마지막에 나온 소지섭.
[14년 후]라는 자막과 함께 성장한 정조로 소지섭이 나왔을 때 뭔가 임팩트있는 엔딩이 그려질 줄 알았다.
그런데... 소지섭이 보여준 건, 사도세자 묘에 성묘간 것과 사도세자의 부인인 어머니를 위로하는 춤 추는 장면 뿐.
이건 소지섭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이랄까.
특히, 정조의 춤 추는 장면을 아무 의미없이 지나칠 정도의 롱테이크로 끌고가 엔딩이 너무 지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