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줄곧 사용하던 휴대전화 단말기를 PDA기능이 맘에 들어 몇달 전 PDA폰으로 바꿨다.
그런데...  통화시 울림현상이 너무 심하다.
나와 통화를 하신 많은 분들이 소리가 너무 울린다고 한다.  내 목소리도 울리고...

한번 A/S를 받았는데 마찬가지.
그래서 재차 방문을 했더니 PDA  담당기사가 자리에 없으니 다시 오란다.
며칠 뒤 다시 갔더니 또 자리에 없다.  그러면서 언제 다시 오라고 방문일을 지정해준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고객에게 기사 시간에 맞춰 찾아오라는 서비스센터가 요즘에 어딨냐며,
이소리 저소리 이것저것 짚어가며 마구 떠들었더니,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내가 목소리가 좀 크다보니...   급기야는 소장이 뚸쳐나와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러더니 집에 가 있으면 수리기사를 집으로 보내겠단다.
집에서 수리가 가능하냐 물었더니, 집에서 받아와서 수리후 다시 갖다 주겠다는 얘기다.
그럼 최소한 서너시간은 걸릴텐대, 그럼 그동안 나는 어떻하느냐 물으니, '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결국 참으라는 얘기.

그래서 또 한마디 했다.

내가 서비스센터 책임자라면,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고객을 위한 임시 대여폰을 준비하겠다.
그럼 받는 것은 어렵더라도 급할 때 걸 수는 있을거 아니냐.
그리고 수리 시간이 길어지면 착신전환 시스템을 이용하면 수신도 가능하다.
이왕이면 신제품으로 대여를 해주면 자사 제품 홍보도 될거 아니냐...

그러면서 홧김에 내가 생각해도 얄미운 사족을 달았다.
' 아~~ 고객의 상식에서 배운다면서요??? '

그랬더니 서비스센터 소장이 수첩에 메모를 하길래,
내 성질을 무마시키기 위한 행동으로 생각하고 돌아 왔다.

그런데,  며칠 전 그 소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말한 내용을 본사에 건의했더니, 좋은 제안이라며 그렇게 시행하기로 했단다.
결과를 알려줘야 할거 같아서 전화했다며, 좋은 의견을 줘서 고맙다고...


서비스체제가 좀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고객의 불만을 바로 반영하려는 자세가 기뻤다.
아울러, 나의 짜증을 다 받아주고, 본사에 전달까지 하고,  그리고 내게 다시 그 결과를
feed-back 까지 해준 서비스센터 소장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다.
[고객의 상식에서 배운다]는 것이 말만큼 쉬운게 아님을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늘 짜증나는 사람들을 대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
나비가 꽃을 찾아왔다.
은근한 향에 이끌려 꽃을 찾은 나비는 꽃술 깊숙히 재여있는 꿀을 즐기며
꽃에 대한 한없는 고마움으로 나날을 보냈다.

꽃은 나비가 고마웠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에 누구를 찾을 수 없고,
그러기에 자기를 찾아주는 나비가 더욱 고마웠다.
그리고 그런 고마움은 나비에 대한 사랑으로 변해갔다.

어느날, 꽃은 나비의 걸음이 점점 뜸해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 기다리는 마음은 안타까움만 변할 뿐 아무런 기대를 주지 못했다.

바람이 휘~익 지나갔다.

' 바람아.. 나비는 어디로 갔을까? '
안타까운 마음으로 꽃은 물어보았다.
넓은 대지를 휘감고 도는 바람은 모든 움직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는
기대감과 함께.

' 나비는 다른 꽃을 찾고 있겠지...'
바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 다른 꽃이라니...? 그렇게 나를 좋아했는데... 그리고 나 역시
나를 찾아주는 그가 고마워 내가 갖고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주었는걸.'
꽃은 놀라움과 함께 이해할 수 없다는 투의 낙담하는 모습으로 반문했다.

' 나비는 네가 특별히 자기만에게 무엇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다른 나비에게도 똑같이 그럴 수 있듯이 자기에게 했다고 생각하겠지.'

' 하지만 난 그렇게 단순하고 평범하게 생각하지 않았어.'

'그건 너의 생각일 뿐이야.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대상에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지.
우리가 받을 때와는 달리, 줄 때 더 진솔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것은,
그 후에 느낄 수 있는 너와 같은 외로움에 대한 선보상이라고 생각해야 할거야.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의 마음엔 늘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이런 차이가 주는 사람이 나중에 느낄 수 있는 외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돼.
때문에, 준다는 것은 주는 그 순간뿐 아니라 미래까지 주는거야.
진정한 베품은 마음의 관리가 선행될 때 가능한 것이지.'

' 물론 그렇지만, 그래도 그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 ?'

' 고마웠다는.. 즐거웠다는... 그런 인사치레를 원하니 ?
그런 인사치레를 받기위한 행위였다면 그건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지.
그런 의도적인 가식으로 자기만족을 얻으려 했다면,
나비에겐 이용당하고 있다는 자존심의 손상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
그런 감정은 결코 유쾌할 수 없을테고, 그렇다면 너의 그런 위선에
욕설을 퍼붓지 않고 훌쩍 떠난 것이 그 나름의 관용일 수도 있어.'

' 그건 아니야. 난 그런 계산된 행동을 한 적은 없어. 단지 그가 좋아서...'

' 그렇다면 그 자체의 즐거움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지. 그를 알고있던 동안
그로 인하여 느낄 수 있었던 기쁨만으로도 오히려 늘 고마운 생각을 해야 될거야.'

' 다 알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다만...'

' 다만 불쑥 떠난 행위를 이해 못한다는 거겠지.
사랑이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거야.
모든 것이 이해되는 상황에서 사랑이 새삼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사랑으로 [감싼다]고 표현하는거 아닐까 ?
말 그대로 부족하고, 모나고, 어려운 부분을 감싸는 것이지.'

' 나비가 다시 올까 ? '

'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살아가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활방식이 있어.
나비에게 필요했던건 네가 아니라 네가 간직했던 꿀이었겠지.
그러나 그런 것을 야속해할건 없어.  
우리는 늘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상대방도 같은 감각으로 느껴주길 기대하고
그것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어.
내가 당연시하는 평범함이 상대에게는 절실함일 수도 있는거야.
네가 나비를 기다리는 것은 낭만이지만,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은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있니 ?    사랑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공유의 개념으로 인식해봐.'

꽃은 생각했다.
'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공유다. 상대의 생존을 이해하는 공유다.'

문득 꽃은 어디선가 다른 꽃을 찾아 방황하는 나비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동시에 그간 갖고있던 야속함이 알 수 없는 측은함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부끄러움과 함께.


봄은 이렇게 꽃과 나비와 바람의 곁을 지나가고 있다.
:


작년,
여름이 찾아드는 6월에 태백을 찾아
태백산을 올라 내려오니 석탄박물관이 있다.

석탄박물관을 돌다보니 태백을 소재로 한 詩가 몇편 걸려있는데
그중 2개의 詩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시간에 쫒겨 옮겨 적질 못하고,
그냥 가기에는 싯귀(詩句)가 너무 가슴을 적셔
급한 마음에 카메라 렌즈에 맡겼다. 

이것은 그중 하나.
.
.
.
이 글을 읽을 때 마다

가슴을 저미는 슬픔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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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법이 세간의 화두가 된지 이미 시간이 좀 흘렀지만,
오늘 문득 생각해보니 참으로 이해가 안되는 구석이 있다.

성매매라는게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거라고 하던데,
그렇게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서민시장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되었다.

온갖 사회단체의 그 흔한  발기인 한번 못해 본 나같은 不焦야  뭐 
성매매시장이 문을 닫던 문전성시를 이루던 별상관이 없지만은, 
그래.. 개인의 성기까지 국가가 관리한다는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생각이 부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내 생각에는 [바람을 피우는 것]과 [오입을 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뭐.. 결국 집이 아니라 밖에서 겉도는 외도라는 관점에서는 별반 다를게 없겠지만,
그래도 뉘앙스의 차이는 크다고 본다.

오입을 한다는 것은 그냥 동물적인 성적욕구에 의해 사정을 하는 것이고,
바람을 피우는 것은 눈치를 보며 하는 애정행각이 아닌가 싶은데,
결국 섹스를 하긴 하겠지만 사정을 위한 성적욕구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정신적 방황욕구랄까...

그러다보니 오입을 하는데는 현장에서의 금전적 거래가 필수조건 이다.
하지만, 바람을 피우는데는 금전거래가 엄격하지 않다.
물론 스케일 큰 거래는 있을 수 있지만, 현장에서의 즉석 결제는 생략된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성매매방지법은 전 국민에게,  오입은 죄가 되지만,
바람피우는 것은 눈 감아 주겠다는 얘기가 아닌지 모르다.

공식적인 상거래는 범죄가 되고, 비공식적인 물밑거래는 죄가 안된다???
노동은 처벌의 대상이고, 레져는 문제될게 없다???

어찌됐건,
내 성기까지 국가의 관리대상이 된다는게 영 찜찜한게 안스럽다.
그래서...  전과자는 안되야 되겠기에 화장실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놈을 살살 달래본다.

` 야~~~ 너.. 내가 돈이 좀 있거나, 돈 많은 여자 만날땐 죽은듯이 있어야 한다.
안그러면 나.. 신세 조지는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내가 돈이 없고, 무일푼 여자 만날땐 괜찮아.
그땐 정신적 교감으로 어찌어찌 해보지 뭐...`
:
참 재미난 나라다.
어쩜 그렇게 종류별로 다 찾아 먹는지...
구석구석 잘도 찾는다.

요즘 핫 이슈가 되어버린 수능 부정행위에 연루된 학생이, 그게 뭐 그리 큰 잘못이냐고 했단다.
하긴 남들이 일반적으로 할 수 있는 컨닝을 좀더 머리써서 체계적으로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정치인들은 거액의 검은 돈을 떡값이라고 한다.
며칠 전에는 공항터미널의 사장이 입주점포주로 부터 거액의 돈을 받았단다.
정선 카지노에서는 134억을 잃은 사람도 있다.

유영철은 20명 이상의 생명을 앗고도 반성할 줄 모른다.
수많은 화재사고를 당하고도 소방법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별로 없는듯 하다.
사후약방문이 그렇게 많이 나와도 부실공사는 여전하다.

우리가 맘놓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과연 몇가지나 될까...
만두소가 문제를 일으키더니,
시화호의 전어가 온동네로 내다팔린다.

최전방의 철책이 뚫리고도 수법이 어설프다고 별거 아닌 양 넘어간다.
그렇게 많은 질타를 받으면서도 청와대에서 고교동문회를 하는 등 여전히 시비거리를 쏟아낸다.

짝퉁도 종류별로 없는게 없다.
가짜 명품뿐만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되기위해 학력도 짜가를 만든다.

경찰이 음주운전을 하고
교도관이 깍두기 왕초를 받들어 모시고,
판사가 향응을 받고,
그나마 요즘 세무서 얘기는 많이 들어간듯 하다.

학부모는 빗나가는 아이를 혼내기는 커녕 교사를 몰아부치고,
학교는 여전히 학교 발전기금이라는 명목하에 학부모로 부터 찬조금을 걷어들인다.

군대를 불법으로 기피하고 마지못해 끌려가는 연예인이 눈물속에 영웅대접을 받는다.
軍의 꽃이라는 장군 진급심사에도 뭔 말이 그렇게 많다.

편법 증여를 받은 재벌2세는 과다한 증여세가 억울하다고 고소를 한다.
가장 숭고해야 될 적십자사는 혈액관리 부실을 터트린 내부고발자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초일류기업은 노조결성을 막기 위해 차명 휴대폰을 이용한 불법 위치추적을 하고도 모른척 한다.
이미 막대한 연봉을 받고있는 종업원들은 그래도 적다고 불법 파업을 한다.


순박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사는 사람은 모두 모자른 놈들이고,
주위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은 미친 놈들이다.

위에서 부터 아래 까지
나이많은 사람들로 부터 아이들 까지
도덕불감증이 끝도 없이 퍼지고 있다.

광우병이나, 사스, 조류독감에는 그토록 민감한 반응들을 보이며
방역조치를 외치면서도 도덕불감증엔 조용하다.

하긴 그래서 불감증이겠지만...


이제 의식불감증이라도 고치자.
그리고 省感帶를 키워 나가자.
:
우리가 자주 듣는 말중에 하나가 [귀가 엷으면 안된다] 는 말입니다.
남들의 말에 확인도 없이 쉽게 부화뇌동해서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이겠죠.

수도 없이 언론에 오르내리는 뇌물수수나 촌지봉투,
최근에 사회적문제가 되고있는 인터넷을 통한 범죄공모나 집단자살,
심심찮게 터지는 유명 연예인들의 섹스비디오와 유행처럼 번지는 누드좔영,
허황되고 과장된 감언에 넘어가는 사기사례...

이 모든 것들이 ' 이렇게하면 일이 성사될 수 있다...'  
혹은 ' 이러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는 솔깃함에
그만 마음이 끌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죠.

우리민족은 기본 심성이 순수해서인지 그  도가 조금 심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오죽하면 [냄비근성] 이라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쓰겠습니까...

그 열기가 다소 식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어지는 로또복권 열풍과
얼마전 시티파크 분양만해도 그렇죠.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것은
엷은 귀(耳)에 마음(心)이 너무 쉽게 움직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부끄럽다는 의미의 한자 치(恥) 는
귀(耳)에 마음(心)이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부끄러운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알려주는 교훈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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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중 '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 ' 는 말이 있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해서 본전도 못건지는 실없는 사람 되지말고,
잘 모를땐 아무 말 말고 가만있는게 차라리 낫다는 얘기죠.

그리고, 우리가 흔히 하는 body language 중,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입에다 둘째 손가락을 갖다대며 ' 쉬~잇 ' 그러죠.

두개를 합하면,
말하고 싶더라도 입(口)에다 손가락대고 가만 있으면, 가운데는 간다는 뜻이고,
[中]은 이런 가르침을 주는 의미였습니다.

결국 아무 말 않고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것은 예전에도 진리였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입을 열지말고 마음으로 섬기는게 [忠]이라고 가르치셨네요.
즉, 忠이란 말로 떠드는게 아니라,
입을 닫고 마음으로 입을 받치는 것 이라고 선조들은 생각하셨나봐요.


요즘 각 정파마다 구당모임이니 뭐니 말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忠]의 의미를 새겨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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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吉이란 선비[士]와 입[口]가 결합된 모양이죠.

옛사람들은 선비가 끼니를 때울 수 있으면 吉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만큼 청빈한 생활을 강조한 것인지...
아님, 순수하고 소박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大吉]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선비가 생각할 때 일가족이 끼니를 때울 수 있으면
[大吉]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차떼기가 어떻고...
몇천억 편법증여가 어떻고...

옛 선조들은 무능해서, 끼니만 때울 수 있으면 吉하다고 생각한걸까요???

자족할 줄 아는 소박한 삶의 지혜를 입춘대길의 문구를 보며 다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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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엔 남자들이 수렵생활을 하거나 농사를 짓는걸 고생이라고 생각했나봐요.
그리고 상대적으로 여자들이 집안에서 하는 일은 무척 편한 것 처럼 보였나보죠.
그러면서 여자는 돌아다니지말고 집에 있어야 편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집안에 여자가 있는 것(安)을 [편안 안]으로 표기를 했나보죠.

요즘 여성들을 옛날 여인네와 비교를 하면 육체적으로는 더 편해진 반면,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어진거 같아요.

요즘은 집에있는 여자들이라도 기계덕분에 손으로 직접하는 일은 별로 없죠.
세탁기, 청소기, 식기세척기...   그나마도 이제 남자들이 도와주는 추세가
늘고있고요.
[김장철]이니 [장독대]라는 개념도 이젠 먼 단어가 되어버렸죠.
할인점에서 입맛에 맞는 맛있는 김치를사다 먹으니까요.

반면에 머리쓸 일은 더 많아진게 사실입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면서 남자이상으로 머리도 써야하고,
전업주부는 전업주부대로  주식투자, 부동산투자, 애들 교육문제,
남편 외도 감시...等等

이제 여자가 집에 들어앉아 있는 [安]의 훈도, 
[편안 안]이 아닌 [무기력 안]으로 바뀌어야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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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 부] 라고도 하고, [지아비 부] 라고도 하나요?

아무리 큰(大)것이라도 하늘(天)을 뚫지는 못하는 법인데,
夫는 天을 뚫고 올라갔습니다.

사내는 하늘을 뚫을 정도의 기개와  힘(?)이 있어야
하늘보다도 높은 지아비로 존재할 수 있다는 뜻 이겠지요.

여성들이 보편적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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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도 되기 전 유지태가 범인이라는 내용이 인터넷에 떠돌던 영화.
그래서 시사회가 끝난 후 기자회견시 유지태가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며,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라고 해명까지 한 영화.

아마 실험영화를 제외하고 내가 본 영화중 출연인물이 가장 적은 영화가 아닌가 싶다.
출연인물 총 7명. 환영 속에 나오는 아이까지 하면 8명.
그리고 배경이라곤 모두 눈. 뉴질랜드에서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이런 영화의 제작비는 얼마나 들었는지.. 새삼 호기심이 든다.

南極日記는 남극탐험대가 원정도중 일어나는 미스테리극이다.
미스테리극은 미스테리를 제공하는 어떤 계기와, 미스테리한 상황을 풀어나가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시시각각 변해가는 극중 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영화의 묘미를 좌우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南極日記는 좀 기대에 못 미친다.
영화는 초반에 우연히 발견한 (80년전인지 100년전인지 좀 헷갈리는데)
영국탐험대의 원정일기를 미스테리의 계기로 제공한다.
인원 구성에서부터 영국탐험대와 영화 속 남극탐험대의 상황을
우연인 것 처럼 일치시켜 나간다.

영화는 유지태를 통해 영국탐험대의 남극일기에서 뭔가 의혹을 제시하고,
관객들에게 다가올 상황에 대한 예측과 호기심을 갖게 하려 하는데,
여기서 좀 궁금하면서 아쉬운게 있다.
유지태는 늘 남극일기의 그림에서만 의혹을 제기할 뿐 일기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극중에서 영어를 모른다거나, 일기장이 완전 파손된 것도 아닌데...
일기의 내용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러다 보니 미스테리의 본질이 뭔지를 모른다.
그리고 본질을 모르니 풀어나가는 과정도 없다.
그저 목표에 대한 집착과 죽은 아들의 환영에 사로잡힌 탐험대장의 광기가
미스테리의 본질이고, 대원들은 거기에 끌려 다닌다.

한정된 공간 속에 한정된 인원만이 등장하는 이런 類의 영화는
등장인물간의 팽팽한 갈등구조가 흥미의 성패를 좌우한다.
그런데, 南極日記는 그게 약하다.
구성원들이 자칫 터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서로 유지해야 하는데,
대원들은 카리스마 강한 대장 송강호에게 제대로 대항을 못한다.

너무 쉽게(?) 조난을 당한 대원이야 버리는 카드라고 쳐도,
처음으로 송강호에게 대어들던 대원도 간단히 제거된다.
그리고,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로 송강호를 설득하려던 부대장 역시
너무 무기력하게 제압당한다.
유일하게 송강호에게 대립각을 세울 권한이 주어진 유지태도 영화 종료 5분 전
너무 늦게 맞짱을 뜨다 보니, 전체적인 긴장감이 덜 하다.

그나마, 그래도 관객들의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킨 채, 집중토록 한 것이 성과랄까...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等에서 각기 다른 캐릭터를 맛깔스럽게 묘사한
송강호의 연기는 그 폭이 상당히 넓어지는 느낌이다.
굳이 한가지 꼬투리를 잡자면 대사 처리中 낮은 톤의 억양이나 음색이
[쉬리]를 생각나게 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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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의 과학수사를 표방한 영화.
그러나 실망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영화 포스터가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한 영화.

출연자의 면면을 보면 남자 연기인의 밸류가 괜찮은 편이다. - 차승원, 박용우, 지성.

차승원은 그간 출연했던 배역에서 코믹배우의 캐릭터가 굳어져
이번에 연기와 이미지 변신을 꾀한 흔적이 많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
화면 빈도수가 굉장히 많은 주연으로서 극 전체를 끌고 나가는 전체적인 카리스마가 약하고,
지능적인 연쇄 살인사건을 쫒는 수사관으로서의 집요함과 섬세함을
표정에 담아내지 못하는 느낌이다.
어딘지 유약하다.

특히, 그의 대사 처리 능력은 관객들로 하여금 왜 그가 아직도
코믹 영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그가 좀더 큰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 어울리는
억양과 발성법을 더 익혀야 할듯.

오히려 박용우의 경우 전체 상영시간에서 보여지는 빈도수는 낮지만, 카리스마가 더 돋보인다.
차승원과 박용우의 대사 처리 능력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을듯.
그것은 단순히 목소리가 좋고 나쁨만의 차이는 아니다.

지성은 이 영화의 포스터에 차라리 [우정출연]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이롭지 않았을까?
한 마디로 그는 이 영화에서 조연도 아닌 평범한 출연자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의 전반적인 구성도 탄탄한 맛이 없다.
중간중간 빠르고 긴박한 느낌을 주기 위한 노력은 보였지만, 그것은 단순한 기법일 뿐,
연출력이라고 평하기에는 어딘가 궁색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차승원이 자기 아버지의 이중성이 드러날 수 있는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는 증거를 바다에 버려 가문의 명예를 지키려 하듯,
이 영화 역시 끝부분이 두리뭉실 마무리되는 아쉬움이 있다.

영화의 전반적인 느낌이 주인공의 캐릭터와 일치하는,
기대를 다소 맥빠지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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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고3 이 되는 딸아이 스트레스도 풀어줄겸, 그리고 옛 향수에 젖어보고 싶기도 해서
집사람과 함께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중인 뮤지컬 [맘마미야]를 보고 왔습니다.

1년에 상하반기 한편씩 적어도 두번은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보려고 노력하는데,
2004년 상반기 의무방어전을 일찍 마친 셈이죠.

결론은 아주 좋았습니다.
줄거리는 별게 없는데, 어차피 줄거리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었기에
아쉬움보다는 만족감과 흥겨움이 더 컸습니다.

이미 우리 젊은시절의 전설이 되어버린 그룹 [아바]의 주옥같은 곡들을
안무와 함께 감상할 수 있었던게 너무 좋았어요.

맘마미야는 1999년 런던에서 초연된 이후 세계각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며 공연중인
빅히트 뮤지컬인데, 일본에서는 작년 11월에 막을 올려 이미 7개월분의 표가 매진될 정도랍니다.
우리나라가 9번째라고 하더군요.

제가 이 공연을 보기 전 궁금했던 것은, 국내공연을 앞두고 訪韓한 아바의 리더이자
아바의 모든 노래를 작사 작곡하고 맘마미아의 노래 선곡에도 직접 참여했다는
아바 멤버 비욘 울베이어스의 반응이었습니다.
일단 매스콤을 통해 전해진 반응은 [만족]이었다는데, 울베이어스가 만족한 수준이
어느정도였는지가 궁금했죠.

아마츄어인 제가 봐도 전반적인 가창력은 괜찮은거 같더군요.
모든 노래를 극중 의사전달을 위해 한국가사로 개사를 했는데,
사실 대사형태로 개사한 노래 부르기가 쉬운건 아니거든요.
박자나 리듬이 조금씩 어긋날 수가 있는데 몇군데를 제외하곤 무리없이 소화가 잘 된거 같아요.

그중에서도 주인공인 도나役을 맡은 박혜미氏는 정말 멋지더군요.
음색, 발성, 그리고 댄스까지... 그 매력에 푸욱~ 빠졌습니다.
주인공인 도나役은 더블 캐스팅인데, 박혜미氏는 정말 좋았습니다.
그리고 늘씬한 롱다리 타냐와 귀여운 숏다리 로지를 도나의 친구로 결합한 것도
아주 절묘했고요.

흥미로왔던 부분은 무대장치였습니다.
아주 단순한 하나의 세트였는데, 그것을 절묘하게 변환시키면서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더군요.
맘마미야가 공연됐던 나라들 중에서 가장 첨단기술이 도입됐다고 합니다.

극이 끝나고 출연진 인사에 이어진 뒷풀이도 좋았습니다.
전 출연진이 나와 [댄싱 퀸], [맘마미야], [하니하니]를 부르며 群舞를 추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스탠딩 콘서트 분위기로 돌아버리더군요.
객석의 관중들도 같이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함께 호흡하는 모습이 흥겨웠어요.
여고생들이 교복을 입고와서 손뼉을 치며 춤추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시대의 음악에 이 시대의 10 대들이 함께 호흡해 주는게 왜그리 반갑던지요.

굳이 아쉬웠던게 있다면,
우리가 알고있는 ABBA의 주요 곡들이 거의 망라되었는데, [엘 에스 두]가 빠진게 좀 아쉬웠고,
전체적인 짜임새는 조금 약한듯 합니다.

공연 첫날인 1월25일 두번의 curtain call 이 있었다는 보도를 보고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어제는 관객들이 욕심(?)을 많이 안부리더군요.
열심히 박수를 치면서 많이 아쉬워했던 대목이었습니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CD를 구입해 돌아오는 차안에서 들어봤는데,
한국 공연내용이 아니고, 영국에서 공연한 오리지널 이더군요.
방금전 보고 들었던 감흥이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꼭 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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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가족들과 [바람의 파이터]를 보았습니다.

한마디로 실망.
스포츠신문에 연재됐던 방학기氏의 원작 만화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도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기대에 훨씬 못 미치더군요.

우선 캐스팅 자체도 양동근이 소화하기는 중량감이 많이 떨어집니다.
차라리 설경구가 어땠을까 싶었는데, 역도산 촬영중이라니...
아님, 야인시대에서 신마적역을 맡았던 최철호가 맡았으면 어땠을지...

스토리도 핵심이 없어요.
어정쩡한 멜로가 가미되어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지고,
그나마 그 러브스토리도 결말이 없습니다.
최배달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는데,
소시적의 어정쩡한 모습만 보일 뿐, 강한 파이터로 성장하는 삶의 모습과,
그후 극진 실전가라데를 전 세계에 뿌리내리는 과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습니다.
곁가지에 치중하다보니 본류를 놓친거 같더군요.

영화의 구성도 제가 보기엔 엉성합니다.
촬영기법이나 전개방법에 참신한 맛이 없더군요.


박스오피스 1위라고 하길래,
그리고 만화보다는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는게 영상이기에
기대를 좀 가졌었는데,
어줍잖은 항일영화 이상이 아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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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고 떠올린 첫 생각은,
이제 우리나라 스크린쿼터제 폐지해도 되겠다... 였습니다.

여지껏 본 한국영화중 최고의 블록버스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질적인 면에서 최고라는건 아닙니다.
먼저 개봉된 [실미도]와는 영화의 맛이 다릅니다.
고기와 생선회의 맛이 다르듯 말입니다.
때문에 두 영화를 놓고 어떤 영화가 더 재미있냐... 혹은 더 잘된 영화냐...고 묻는건
의미가 없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스케일이 매우 큽니다.
장면장면이 화면을 꽉 채우고도 부족하다는 느낌.
첫 씬(scene)인 유해발굴 현장부터 화면을 압도하더니,
중공군의 인해전술 반격장면이 웅장하더군요.
그중 기차를 이용한 피난장면은 문득 [쉰들러 리스트]의 유태인 수송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전투장면도 상당히 리얼하게 처리가 되었습니다.
개인화기와 중화기의 폭발과 폭음에 대한 영상과 음향효과가 아주 실감이 납니다.

좀 아쉬운건 전투장면이 다소 많게 느껴진다는 점.
그러다보니 중간중간 약간의 지루함이 느껴질 수가 있더군요.
상영시간이 2시간 20분인데 전투장면을 10~15분정도만 줄였다면
오히려 아쉬운 여운을 느낄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전투장면의 리얼리티에 너무 욕심을 내다보니 클로즈업 씬이 잦았고,
또한 신체 사지의 일부분이 절단되는 장면의 중복이 다소 튀는 느낌을 주더군요.

[태극기 ...]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특징은 스토리전개의 도구가 전쟁이면서도
적과 아군에 대한 선악 개념이 없다는 겁니다.
이 영화에서 이데올로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쟁은 즐거리를 풀어나가는 매체일뿐,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리고 주인공들에게 있어 전쟁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거칠 수 밖에 없는
과정일 뿐입니다.
적을 무찌르고 이기는 것 역시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에게 돌아가기 위한 수단일뿐
그들에게 그 이상의 공명심이나 영웅심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쟁의 목적이나 승리는 국가와 지휘관의 가치이고 목표일뿐,
국가로 부터 뭔가 하나라도 혜택받은 기억이 없는 병사들에게는
그저 얼떨결에 헤어진 가족만이 살아야하는 이유인거죠.

'일제시대에는 싸우는 이유라도 있었지... 도대체 이 전쟁을 왜 해야하는거야...???' 라는
대사 속에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의 한 축을 볼 수 있습니다.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진태(장동건)가 그토록 자기가 죽이려고 애쓰던 북한군 최정예부대의
소대장으로 변신하고, 다시 자신이 거느리던 북한군 부하들에게 총을 겨누는 것은
오로지 동생에 대한 끝없는 애정때문일뿐, 자신의 영달이나 이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동생에 대한 진한 애정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생을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무감각한 전쟁병기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장동건의 연기,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만을 생각하는 형과, 그럼으로써 점점 비인간적인 전사로 변해가는
형에 대한 애증의 심리를 표현하는 원빈의 연기가 돋보입니다.
특히 장동건은 이제 선이 굵은 연기자가 되었다는 느낌을 주더군요.

우리나라 영화음악의 발전에도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Ending OST가 마음을 촉촉히 적시네요.

[태극기 ...]는 [실미도]와 같은 특정인에 대한 실화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겪었던 많은 사람들의 실화이기도 합니다.

궁금한게 있습니다.
왜 제목이 [태극기 휘날리며] 일까???
전장에서의 비극적인 형제애, 가족애를 주 테마로 한 이 영화에서
태극기는 영화의 전개나 내용과 전혀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왜 제목에 [태극기]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
아마도 강제규감독은 분단의 현실속에서 이산의 아픔을 안고있는 우리 민족에게
태극기를 가족의 의미로 던지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이 영화를 학생들이 보아야 하는 이유는,
TV 뉴스를 통해 보이는 이산가족들이 왜 그리도 슬피 우는지를 알아야하기 때문입니다.
:



재밌습니다.
멜깁슨의 [패트리어트(늪속의 여우)]와 같은 전형적인 미국인 지들 영웅만들기...
[패트리어트]가 영국군과 맞서 싸우는 美 기병대장교 출신의 영웅담이라면
[라스트 사무라이]는 일본군과 맞서 싸우는 美 기병대장교 출신의 영웅담.

즐거리는 인터넷 사이트를 보시면 되는거고,
톰크루즈의 눈빛연기가 캡이고,
일본인 주인공(와다나베 켄 이라카던가???)의 카리스마가 짱 입니다.
노대통령에게 권하고 싶더군요.
비록 영화속의 인물이지만, 리더의 역할과 리더쉽이 무엇인지를 느껴보시라고.

일본의 정통 사무라이들은 참 멋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야꾸자로 변색되기 전에는...
그들의 [무사도]라는 것에 대해 한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몇년 전,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나찌의 유태인 학살을 소재로 한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나오며
이 사람이 한국의 일제36년사를 영화로 만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나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일본의 사무라이와 같은 영화테마를 찾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선비정신이나 양반을 테마로 해서는 요즘같은 역동적인 화면의 스피드를 즐기는 관객에겐
어필이 안될거 같고.

산간마을에 위치한 사무라이 본거지의 풍광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벚꽃이 흐날리는 장면 역시 영상미의 극치.
그리고 이 영화가 미국사람이 만든 일본을 무대로 한 미국영화인지,
일본사람이 미국인을 캐스팅하여 만든 일본영화인지 바보같은 의문도 듭니다.

실미도를 보면서도 느낀거지만, 비록 영화속의 인위적인 설정임을 알면서도,
죽음에 대한 무모한 도전을 이성적인 무모함이라고 탓하면서
동시에 비장함이 느껴지는건...
그게 바로 감독의 역량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 영화를 본 요즘의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나서 액션만을 즐겼는지,
혹은 혹시라도 이런 메세지를 받진 않았는지 묻고 싶더군요.

[국가와 개인의 발전과 경쟁력을 위해 개방을 통한 세계화는 피할 수 없지만,
결코 동화되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민족의 혼과 정신은 지키고 계승되어져야 한다]
:



내용은 다들 아시죠?
한 30년전 실미도사건을 영화화한 것인데,
일본에서 시사회를 마치자 관객이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더군요.
너무 슬픈 영화라고...

영화가 끝난후 좌우를 둘러보니 눈물짓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한시대의 흉악범들을 미화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리고 역사는 항상 그당시의 당위성이라는게 있기때문에
그 당시 모든 결정권자들의 비인간적인 판단을 정당화하거나 증오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중요한건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사회악이었던 흉악범들을 너무 미화한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또 어찌보면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도 몰랐었던
내면에 숨겨졌던 인간적인 면을 잘 끄집어낸거 같기도 하고.

암튼 잘 만들어진 영화인거 같아요.
특히 가까운 시대의 암울한 역사를 모르는... 아니 역사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꼭 권하고 싶어 저도 제 딸아이에게 꼭 보라고 했습니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영화자체만의 감상에 빠져 선과 악에 대한 개념이나 기준이 흔들려서는 안된다는거죠.

영화 [실미도]에서는 위정자 혹은 권력자들의 변동에 따라
그들의 판단에 따른 무고하고 어이없는 희생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줍니다.
결과만 놓고본다면 있을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위죠.

하지만, 역사는 항상 그 시대 그 시점의 상황을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따라서 역사상의 의사결정에 따른 평가는 항상 그 시점의 상황을 기준으로 평가해야지,
현재를 기준으로 옳고그름을 평가하는 것이 꼭 정답이 될 수는 없겠죠.
그렇다고해서 당시의 시대상황을 이유로 모든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음도 물론입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중립적인 시각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꼭 보세요.

한두명의 비중있는 주인공에 의해 영화가 이끌어지지 않는 것도 신선합니다.
:



지난 토요일 집사람과 최근에 인기가 있다는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일종의 에로사극인데, 참 많이 놀랐습니다.
한국영화... 정말 많이 발전한거 같아요.

나름대로 찐하고 야한 장면도 꽤 많은데
그런 장면들이 깔끔한 영상속에 모두 자연스레 녹아들더군요.
영상과 대사가 군더더기가 없이 모두 맛갈스럽게 처리가 된거 같았고.

적당한 에로와 적당한 코믹이 잘 조화가 되면서,
전반적으로 껄끄럽게 튀는 구석이 없는 것이 좋았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아주 돋보이게 처리했더군요.
고관대작 부인들의 옷차림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여지껏 본 사극중 가장 아름다운 한복을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

화려하고 우아하면서도 기품있는 한복의 美,
옛 귀부인들의 화장도구,
운치있는 후원의 연못 등등...
한국의 전통미를 아주 아름답게 살려냈다는 점에서
이런 작품은 외국에 내놔도 한국의 전통미 홍보에
손색이 없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영상미가 좋았다는 느낌인데,
장소헌팅도 좋았고, 카메라앵글도 참 좋았던거 같아요.
강화포구로 나왔던 장소도 가보고 싶고,
기와담 옆 감나무를 위에서 부각앵글로 처리한 장면도 기억에 남는군요.

간혹 들리는 낭랑한 글읽는 소리가 담백한 양념 맛을 더했고,

영화를 보기 전엔 다소 어울릴거 같지않게 느껴졌던 캐스팅도 좋더군요.
이미숙의 캐스팅이야 아주 제격이고,
그저 준수한 청춘스타로만 여겨졌던 배용준의 순진한 한량역도 좋았습니다.
전도연의 요조숙녀 열녀역 내숭연기를 음미하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
조삼모사 [朝三暮四]


춘추전국시대에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란 사람이 원숭이를 많이 기르고 있었는데
먹이가 부족하게 되자,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앞으로 너희들에게 주는 도토리를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로 제한하겠다'고 말한다.

이에 원숭이들은 화를 내며 아침에 3개를 먹고는 배가 고파 못견딘다고 하였다.

그러자 저공은 '그렇다면 아침에 4개를 주고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좋아하였다는 일화다.

결국 조3모4나 조4모3이나 하루에 지급되는 도토리의 양은 같다는 의미에서,
어눌한 사람에게 눈속임하는 약은 사람의 행동을 꼬집는 한편,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는 원숭이의 아둔함에 빗대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전체를 못 보는 어리석음을 탓하는, 다 아는 고사성어다.


그러나,
과연 원숭이의 그런 행동이 아둔한 걸까?
원숭이 입장에서 뒤집어 보자.


원숭이들은 저공의 家勢가 기울어져 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도토리의 품질도 떨어지는거 같았고, 무엇보다 크기도 잘아지기 시작했음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저공의 얼굴 표정에 언제부터인가 그늘이 지고 있으며,
웃음이 사라지고 있음도 느꼈다.

무엇보다도 저공의 부인이 저공에게 하는 말투가 점점 그 공손함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아침만 해도 그렇다.
저공의 부인은 밥솥의 밑바닥을 긁어가며, 큰소리로 불만을 터트린 것이다.

'사람 먹을 것도 점점 부족해 지는데, 왠놈의 원숭이들은 저렇게 많이 길러가지고...'

처음엔 무심코 넘기던 원숭이들에게도 슬슬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러다 이 집안이 망하는게 아닐까...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나...
이러다 몽땅 굶어죽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들자, 자구책을 위한 원숭이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언제 먹이가 끊길지 모른다.
당장 오늘 오후부터라도 도토리 배급이 중단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한단 말인가.
받을 수 있을 때 많이 받아야 한다.  아침에 하나라도 더 받아 놔야지.
그래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축을 해야 한다.

이쯤되면 원숭이들이 아둔한게 아니다.
원숭이들의 영민함에 저공이 당한건지도 모른다.



경제학용어에 [기회이익], [기회손실]이라는 말이 있다.
타이밍에 따른 이익과 손실이다.

나중에 받을 것을 먼저 받아 잘만 굴리면 그게 곧 이익이 된다.  선투자다.
먼저 줘야 할 것을 나중에 주면, 그만큼 금융비용이 준다. 그래서 어음이 생겨난다.

어느 기업에 부도의 징후가 보이면, 은행은 대출금을 회수하려 한다.
납품업자들은 서로 먼저 돈을 받기 위해 매달린다.


朝三暮四는 경제학적으로 볼 때, 상당한 의미가 있는 행위이다.
그 옛날 춘추전국시대에 원숭이들은 기회손익에 대한 경제이론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朝三暮四는 결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전체를 못 보는 어리석음을 탓하는 고사성어가 아니다.
朝三暮四를 기회이익을 극대화 시킬 줄 아는 선견지명을 가진 현명함을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한다면,
조금은 비약일라나...
  
:

어느 교수 후배가 모임 사이트에 올린 글 입니다.

나름대로의 아픔을 표했더군요.

우리 사회가  큰 틀의 전체적인 판단 하에서 개개인의 어느 부분을 수용하며 이해하여조화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인지, 누구에게 돌을 던지고, 어떤 이를 감싸 안아야 하는건지,또 하나의 고민을 하게 됩니다.

 

-----------------------------------------------------------------------------

 

우리 큰아들 제가 미국 유학 가서 태어나서 이중국적자가 되었는데, 요즈음 사회 분위기가 아주 죽입니다.

요상한 법이 생겨가지고 꼭 아들 넘 군대 보내기 싫어서 미국 가서 열심히 애 만들어 온 꼴이 됐네요.

자식들 국적 포기 시키는 넘들은 교수 등등 사회 지도층 이라네요.

저요, 미국에서 6:1 경쟁 뚫고 6개월 석사 장교 마치고 미국에서 절라 열심히 해서, 한국 와서 소위 제가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일하고 있는데... 그리고 6월 초에는, 한국을 대표해서 비엔나의 IAEA 가서 절라리 떠들고 와야하는데... 강의 열심히 하는라, 그 가고 싶은 수요일 주중 정모도 못 가는데...

그런데 6개월 하는 것에 왜 그렇게 경쟁률이 높았을 까요? 군대 하기 싫어서? 아니죠. 경쟁과 발전에 효율적이었으니까...

오늘 저는 엄청 서글펐습니다. 제 아들 넘이 15세 인데 어쩔 수 없이 국적 포기하는 매국노가 되면서, 그리고 1살 짜리 아들 넘을 국적 포기 시키는 분들을 보면서... 개네들 앞으로 육사를 갈 수도 있고, 진짜 군대가 본인의 적성에 맞을 수도 있는데, 이상한 논리 때문에 모두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미리 병역 기피하는 매국노가 되네요. 제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한나라당의 홍준표의원이 입법해서 6월 부터 시행한다는 법에 의하면, 앞으로 이중국적자가 군대를 마치지 않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각종 불이익을 준다네요. 입법 취지는 뭔가 있었겠지만, 요즘 사태로 당사자도 당혹해 한다는데... 그렇게 또라이 일줄은 저도 몰랐네요.

근데, 우리는 완벽한 미국인인 미셀 위를 보고 우리라고 흥분하고, 요즈음 핵문제가 불거지지만, 박정희 시대에 우리나라 핵 프로그램을 주도 했던 분이, 한국 국적을 포기한 이휘소(벤자민 리)박사인 것을 아시는지. 그 분이 민족을 생각해서 결국은 시카고 남부 고속도로에서 의문의 교통사를 당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은 것을 아는지... 그 분이 한민족 최초의 노벨물리학상 실제 후보 였다는 것을 아시는지... Globalization을 외치면서, 화교와 유태인들이 전 세계에 퍼져서 조국을 돕는 것은 어찌 생각하는지... 우리와 우리 자식들은 어딜가던 얼마나 한민족과 한반도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을 왜 이렇게 서글프게 미워하는지? 대한민국의 0.1%가 쬐까 혜택을 받아서 그 중의 0.01%가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키워줄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지. 이게 진짜 조국인지? 앞으로 모든 불이익을 다 주겠답니다. 제 자식에게...

저요,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다시는 미국 유학 안가는 것이 꿈입니다. 너무 힘들었고, 몰랐으니까 했죠. 근데 거기서 애를 났다는 죄로, 국적과 군대 가지고 사회 분위기가 저 같은 사람과 자식들을 몰아 붙이고, 직업을 속여야 하고, 사회 지도층이 등등하면 햇갈리죠. 어떻게 저희가 원정 출산하면서 자식 군대 기피 시키려는 사람들과 똑 같습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아들을 미국에서 낳고, 할 수 없이 법 때문에 1살에 국적 포기 시키고, 절라리 가난해져서 미국 보낼 상황이 안되면, 그 아들 넘은 한국에서 그 알량한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는 골 때리는 가난한 미국인으로 얼마나 햇갈릴까? 왜 애들의 미래를, 심각하게는 18년이나 앞서서 밀어 붙일까? 왜 대다수의 이중국적자 부모가 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에서 호적 까지 없애가면서 쌩 난리를 치고,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심각한 반성도 없이 모두 죄인으로 몰아갈까? 그런데, 세계화는 무엇인가? 골프를 시키는 아들 넘을, 2년 이상 꼭 군대에 보내야 하는가? 등등 아주 햇갈리네요. 분명한 것은 우리와 제 아들 모두 한민족인데 이렇게 까지 심각하게 한국 국적에서 다급하게 밀려나야 하는 것인지...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우리의 자식들에게는 당당함을 주어야 한다고... 왜 개네들 가슴에 미리 멍에를 짊어 주어야하는지... 태어나면서 민족주의적 전투의식을 심어 준 스파르타도 아테네 police에 망했고, 화랑의 정신은 남았지만 신라는 부패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으로 끊임 없이 뻗어간 민족과 국가는 최소한 지구에서는 잘 나가죠.

제발, 원정 출산 등 치사한 짓 하는 사람들만 잡고, 열심히 외국에 가서 경쟁하고 이기려는 한국인들은 도와 주면 안되나요.

아뭏든 제 아들은 15세가 넘어서 그 나마 덜하지만, 오늘도 목동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는 번호 대기표 220번째를 들고, 갓난 아기가 한국에서 자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불이익을 감수 하면서 국적을 이탈하려는 사람이 줄을 잇고, 많은 국민과 매스컴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단지 2년 몇 개월의 군대를 기피하려한다는 이유로... 그게 진짜 이유일까요? 그런데 개네들이 진짜 한국 군대를 가고 싶어하고, 본인의 의사를 결정할 나이가 될 때,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는 것을 알면, 누가 위로해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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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쁜 서양蘭이다.
100만 화소 폰카에 잡혀 자태를 제대로 뽑내지 못한 것도 팔자려니...

근데... 얘는 언제까지 저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난...  너랑 오래 같이 있고 싶으면서도
네가 오랫동안 내 곁에 있게끔 할 자신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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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7월 5일 한강 최초의 다리인 한강철교가 개통되고,
1917년 사람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한강대교가 만들어진 이후
현재 사람이 걸어다닐 수 있는 한강의 다리는 무려 22개나 된다.
이렇게 많이 생길지는 예상을 못했던듯 처음엔 제1한강교, 제2한강교, 제3한강교로 명명되던
한강의 다리는 마포대교가 생기며 한강대교, 양화대교, 한남대교등 지역명으로 바뀌어 간다.

외국여행을 많이 다녀 본 사람들은 도심 한복판을 이렇게 큰 강이 가로지르는 도시는
세계에서도 드물다고 한다.
하지만, 한강이 처음부터 도심을 가로 지르는 강은 아니었다. 
정작 도심을 가로 지르던 것은 청계천이었고, 한강은 서울의 도심을 둘러싼 외곽 강 이었다.

그러던 것이 한남대교를 시작으로 잠실 영동 천호 성수 반포대교의 연이은 준공으로 급속히 개발된
한강이남의 신 시가지가 한강을 에워싸면서, 도심의 외곽을 싸고돌던 한강이 어느덧
도심을 관통한 것 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한강의 다리는 그 숫자만큼이나 많은 애환과 이야기꺼리를 낳았다.
6.25 때의 한강대교 폭파는 수많은 사람에게 죽음과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성수대교 붕괴는 전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반면에 한남대교 하나로 허허벌판 논밭이 대한민국 최고의 요지인 강남으로 변모되면서
부동산투기와 함께 졸부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기도 했다.

사회 인프라적인 측면에서 다리는 생성과 창조를 위한 탯줄이다.
연결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서민에게는, 다리는 휴식의 공간이기도 하고, 도피의 공간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강바람을 즐기며 다리를 건너며 휴식과 사색을 즐기기도 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삶에 대한 애환을 곰씹어 보기도 하고, 
또 간혹은 그릇된 삶에 무너진 사람들의 죽음의 장소이기도 했다.


이런 한강의 다리에 새로운 생명을 담을 수는 없을까.
한강의 많은 다리를 문화 예술의 장소로 바꿀 수는 없을까.

한강대교를 [문학의 다리]로 하여, 각 교각마다  이효석, 현진건, 등 한국 문인들의
흉상과 대표작들을 소개하면 어떨까.
한남대교를 [시인의 다리]로 하여 박목월, 조지훈, 유치환 등 시인들을 기리고,
원효대교는 [미술의 다리]로 하여 이중섭, 김기린, 이상범 등을,
양화대교는 [과학의 다리]로 하여 최무선, 장영실 등을
그리고, 올림픽대교에는 손기정, 양정모, 황영조 등을 ...

이런 식으로 한강의 각 다리마다 민속도, 영화, 음악등의 테마를 부여하여
김홍도, 신윤복, 허균, 나운규, 윤석중등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 예술인들과
그들의 작품이나 업적을 소개하면 어떨까.

한강다리 하나에 들어간 평균 조명 설치비용은 6억∼7억원, 사용한 조명등의 개수는
500∼1,000개이며, 조명 전기료는 다리마다 월 120만∼150만원 정도라고 한다.
이 비용은 오로지 야간만을 위한 투자비용이다.

문화예술을 위한 테마별 간이박물관을 설립하여 운영하려면 얼마의 비용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한강의 다리에 테마를 부여한다면, 한강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지않을까.
우리의 자랑스러운 예술인들을 되새길 수 있고, 우리의 문화 역사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으며,
외국인에게도 대한민국의 문화와 예술을 알릴 수 있는 작은 명소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청계천복원과는 비교가 되지않는 작은 일이지만, 시민들에게는 그 못지않은 잔잔한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한강의 다리를 여유롭게 거닐며 우리의 문화와 예술혼을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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