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득이
보고 듣고 느끼고/영화겉핥기 2011. 11. 17. 14:52 |이 시대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아젠다이면서도 그러려니 하며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교사와 학생간의 관계,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 및 처우와 함께 파생된 다문화 가정의 문제 등을
이웃과 이야기하듯 담담하면서도 담백하게 엮어나간다.
학창시절을 회상해보면 이런 친구가 꼭 있다.
정상적이지 않거나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학업에 소홀한 친구 중에,
주먹이 강하지만 그 주먹을 친구들을 괴롭히거나 하며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않는 등,
자신이 직접 피해받지 않을 때는 사용치않는 친구. 자신이 처한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사회에 대해 반항을 표출하기 보다 묵묵히 혼자 연소시키는 친구.
완득(유아인)이는 이런 친구다.
엄마가 누군지도 모른 채 나이트클럽에서 춤 추는 장애인 아버지를 따라 나이트클럽과 장터를 전전했고,
자기를 낳아준 생모가 필리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돌출적인 반항이나 방황하는 행동의 표출이 없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생존본능으로 싸움을 잘 하지만, 장애인인 아버지를 멸시하는 대상 외에는 주먹을 쓰는
경우가 없다. 자신의 불만 해소를 위해 방황하며 괜히 먼저 남들에게 시비를 거는 뒷 골목의 반항아가 아니다.
가끔 아버지에게 매를 맞지만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담임에게 구타를 당하면서도 반항하지 않는다.
교회에 가서 담임이 벌을 받기를 기도할 뿐이다. 같은 반 급우들이 완득이에게서 뿜어나오는 포스(?)에
겁을 먹고 경계하지만, 그걸 이용하여 급우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굴복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자기와는 처지가 다른 아이들로 생각하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완득이의 담임 동주(김윤석)는 부유한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학대하는 등
오로지 富만이 삶의 명제인 아버지에 반발하여 교사 외 시간에는 외국인 고용자 권익을 위해 일한다.
동주를 보다 문득 떠오르는 캐릭터가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언제나 마음은 태양]으로 개봉됐던
[To Sir with Love]에서 시드니 포이티어가 연기한 문제아 학교 교사 마크.
제도에 의한 억압과 경쟁보다 자율과 개성을 인정하며 스스로 생각할 줄 아는 인성을 중요시 하는
두 사람의 차이점은 [사랑의 매]다. 마크는 어떠한 경우에도 매를 들지 않지만 (이건 문화의 차이도 있다),
동주는 과감하게 매를 든다. 그것도 빡세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동영상을 찍는 학생에게 신고하라고
소리치며 개의치않는다. 요즘 분위기로는 인터넷 상에서 동영상이 돌고 난리가 날 법한 사건이지만,
영화에서의 아이들은 별 문제삼지 않는다. 자신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주는 담임 동주의 마음을
같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교사와 학생에게 필요한건 서로에 대한 신뢰라는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화 [완득이]는 강렬하거나 짜릿하게 와닿는 임팩트가 있는 영화가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장면이 편하고 훈훈하게 마음에 스며든다.
멋진 장면도 없고 인상적인 연기도 없고, 배경 음악도 기억에 남는게 없지만,
필리핀 엄마에게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함께 영월 장터에 간 완득이가
시장에서 엄마에게 구두를 사주며 관계를 묻는 가게 주인에게 "어머니예요. 우리 어머니.." 하는 장면과
버스터미널 대기실에서 엄마가 완득이를 안는 모습, 그리고, 그 때의 피아노 선율은 관객들의 눈과 가슴을
촉촉하게 만든다.
김윤석과 유아인은 마치 우리 곁의 사람들을 보는 듯 편한 모습을 보인다.
인상적인 연기가 없다고 했지만, 그들이 보여준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 삶의 모습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두 사람의 모습이 값지게 느껴졌다.
특히, 황해, 거북이 달린다, 추격자, 즐거운 인생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각각의 캐릭터에 맞게 소화한
김윤석은 이 영화에서 기름기가 쏙 빠진 담백한 모습을 보이는데, 강한 캐릭터보다 밋밋한 캐릭터가
더 연기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역시 김윤석..'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울러 하나 짚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영화에서 완득이의 필리핀인 어머니는 오랜 세월 끝에 만난 아들에게 시종 존칭을 사용한다.
우리 사회에서 어려서 헤어진 자식을 오랜만에 만나 존칭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거 같다.
어찌보면 그만큼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고용자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일반적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죄의식을 느낄 이유가 없음에도 말이다.
이 영화에는 폭력이나 섹스 등 말초신경을 자극할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
화려하거나 스케일이 웅장한 영화도 아니다. 극적인 반전도 없고, 줄거리에 기승전결도 애매하다.
그럼에도 이런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호평을 받고 꾸준히 관객이 든다는게 아직 우리 사회의 순수한
감성이 퇴색되지 않은거 같아 괜히 마음이 훈훈하다.
[라디오 스타]와 같이 참 예쁘게 만든 영화.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영화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갑자기 생각난 사족 하나.
요즘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2]을 볼 때 마다 멘토의 역할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영화에서 동주를 보며 멘토에 대한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