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내내 내 시선과 관심이 집중된 건 김명민의 돌출된 구강구조와 발음이 새는 억양이었다.

김명민.
요즘 충무로의 잘 나가는 연기파 소장(?) 남자배우를 꼽으라면 단연 하정우와 김명민이 아닐까.
굳이 두 명품배우의 차이를 들자면, 하정우가 動的인 캐릭터의 강렬한 인상이 많았던데 반해,
김명민은 하정우에 비해 靜的인 캐릭터에서 존재감이 더 돋보였다.
[내 사랑 내 곁에]에서 루게릭병 환자의 완벽한 재현을 위해 엄청난 체중 감량을 실현했듯,
극중 캐릭터와 자신을 일치시키기 위한 노력과 집념이 뛰어난 맞춤형 연기자 김명민.
도회적인 이미지가 강한 그가 [페이스메이커]에서 운동과 가족 밖에 모르는 순수무구한
캐릭터의 구현을 위해 분장한 구강구조는 압권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궁금할 정도다.

안성기.
액션, 멜로, 코믹, 무협 등 영화가 보여주는 모든 쟝르가 요구하는 캐릭터에 알맞게 녹아드는
능력자이지만, 왠만한 영화팬들이 기억할 최근 10년내 내게 인상깊었던 안성기의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다. 냉혈과 순정으로 대표되는 [실미도]의 특수부대장과 [라디오스타]의 매니저.
나는 안성기를 대할 때 마다 왠지 알 파치노가 생각난다.


연기자에 대해 먼저 언급하는건, 영화의 내용보다 연기자의 연기가 더 강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에두르지 않는다면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할 대목이 없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국가대표] [맨발의 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들] [글러브] 등 최근 국내에서도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가 참 많이 제작됐다. 스포츠 영화에서 감동을 끄집어내지 못하면 앙꼬없는 찐빵마저 아니다.
스포츠 영화는 대부분 비인기종목이거나 성공하기 힘든 여건이 소재가 된다. 역경이 감동을 추출하는
소스가 되고, 어려운 환경을 풀어가는 과정이 감동의 제조과정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스포츠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거나, 스포츠의 사실적 근거에 바탕을 둔 픽션으로 양분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더라도 영화적 요소가 가미될 수 밖에 없어 일부 픽션이 가미되긴 하지만,
실화와 실화가 아닌 것은 감동을 도출하는 방법이 다르다.

실화는 과정에서 감동을 추출해야 한다.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실화라는 특성상 막판 반전을 모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픽션은 결과에서 감동을 끌어낼 수 있다. 연출자 임의대로 결과를 만들 수 있으므로 
얼마든지 반전이 가능하다. 때문에 실화에 비해 픽션은 감동적인 해피엔딩이 인위적으로 가능하다. 다만,
작의(作意)가 지나칠 경우 감동이 가벼워질 수 있는데, 내 시각에서 [페이스메이커]가 그랬다.


잘 나가다 [달려라 하니]가 돼버린 [페이스메이커].

내가 보는 관점에서 [페이스메이커]는 영화 중후반까지는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다.

동료 선수를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페이스메이커.
주만호(김명민)는 페이스메이커로 길들여진 마라토너다. 마라토너로서의 전성기마저 페이스메이커로 보내고
은퇴한 주만호에게 마라톤 국가대표 감독으로 복귀한 박성일(안성기) 감독이 찾아온다. 페이스메이커로서
주만호의 능력을 잘 알고있는 그는, 런던올림픽 금메달 획득을 위해서는 누구보다 확실하게 30km까지
페이스를 끌어줄 주만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페이스메이커로의 컴백을 권유한다.

좋아하는 마라톤을 할 수 있다는 설레임과 채무상환이라는 어쩌지 못하는 경제적 필요에 의해 박성일의 권유를
수용하고 대표팀에 합류하지만, 마라토너로서 풀코스 완주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게 영화 중후반
까지의 내용이다. 팀의 에이스를 위해 모든 걸 양보해야 하는 선수들의 비애, 톱클래스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
의 차별화된 처우 등을 보여준 중후반까지의 내용에 관객들은 자연스레 그들의 애닯은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관객들은 조건부로 대표팀에 합류한 주만호를 감독이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줄지
궁금해 하며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정밀검사 결과 의학적 관점에서 이제 풀코스는 고사하고 30km만 달려도
다시는 달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판정을 받은 주만호를 대상으로 감독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감동을 줄 것인가.

그런데...  [페이스메이커]는 영화 말미 갑자기 [달려라 하니]가 되어버렸다.
연극연출가로 [페이스메이커]가 영화 데뷔작인 김달중 감독은 후반 너무 많은 감동을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보니 픽션임을 감안하더라도 마무리에 인정할 수 있는 리얼리티가 없다.

경기 당일 주만호가 30km까지 주어진 역할을 마치고 달리기를 멈춘 지점까지 찾아온 동생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살려 형에게 빨간 우산을 펼쳐 보인 것, 일단 달리기를 멈췄던 상태에서 다시 마라톤을 재개해 완주
끝에 나온 결과, (솔직히 마지막에 그럴린 없겠지만 이러다가 혹시 우승을 하는건 아닌지 몹시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주만호가 보스턴대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장면들은 너무 현실과 거리가 먼 듯했다.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있지만, 이게 액션스릴러나 코믹영화가 아니기에 그렇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뭔가 울컥한게 분명 있었음에도, 그 울컥함이 영화내용에서 받은게 아닌,
그 순간 순간을 연기한 연기자의 표정에서 받은 것이라 감동이라는 느낌으로 오래 남겨지질 않았다. 
특히, 엔딩 씬은 감독이 의도한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는 매치가 안되는 느낌이다.
입 안을 상큼하게 해주는 개운한 디저트와 같이, 먹먹함에 젖어있던 관객에게 상큼한 웃음으로
기분전환을 시켜주려는 의도였다면 모를까.     

어줍잖은 무지한 생각이지만 차라리 이랬다면 어땠을까..

역할을 다 한 30km지점에서 속도를 늦춰가는 주만호의 눈에 들어온 작은 아이의 손에 들린 빨간 우산.
이 우산이 어린 시절 운동회의 데자뷰가 되어 계속 달리는 힘을 얻게 되고, 관객이 조바심을 느낄만한
애타는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후, 올림픽 참가 후유증으로 이제 다시는 마라톤을 할 수 없는
주만호를 찾아온 동생가족. 동생은 자기 아이들에게 [감동의 역주]라는 제하의 신문스크랩을 보여주며
마라톤 국가대표였던 큰아버지가 올림픽에서 전 세계인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안겨줬는지를 알려준다.

    
[페이스메이커]가 던진 숙제. 
[잘 하는 것]과 [할 줄 아는 것]중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하는 것이 의미있는 것일까?  


누군가의 영광을 위해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하며 묵묵히 희생하는 많은 페이스메이커들.
그들은 소모품이 아니다. 그들이 없이는 주인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페이스메이커가
아닌 당당한 킹메이커다. 그리고, 자신이 갖고있는 특화된 기능을 남을 위해 사용한다는 면에서 그들은
재능기부자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그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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