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보고 듣고 느끼고/영화겉핥기 2012. 2. 8. 02:22 |[머리쓰는 나쁜 놈]과 [주먹쓰는 나쁜 놈]이 붙었다.
'붙다'는 의미에는 '함께 뭉치다'는 의미와 '맞부딪치다'는 의미가 있다.
둘이 한 팀으로 뭉치면 두려울게 없다. 상대적으로 경쟁하는 맞은 편 입장에서는 무섭다.
어떻게든 둘 사이를 갈라놔야 한다. 어부지리를 택하고자 하는 측도 마찬가지다.
그럼, 둘이 부딪치면 누가 이길까?
장기전으로 가면 머리가 주먹을 이긴다. 단순한 주먹에 비해 머리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주먹은 자기의 힘만으로 상대를 제압하지만, 머리는 주변의 힘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한다.
영화에서는 주먹을 쓰는 정통(?) 건달도 아니면서 건달 행세를 하는 그런 [머리쓰는 나쁜 놈]을
반달이라 칭한다. 주먹이 반달로 지칭된 머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머리가 영원히 자기에게 충성하도록 품어 안는 것인데, 머리쓰는 [나쁜 놈]은 결코 자기
분수로 만족하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그래서 선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배신의 낌새를 보일 때
확실하고 냉정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주저하다가는 뒤통수를 맞게 된다.
그런데, 머리쓰는 나쁜 놈이나 주먹쓰는 나쁜 놈보다 더 나쁜 놈이 있다. 받아먹으며 공생하는
봐주는 나쁜 놈이다. 이 나쁜 놈은 자신에게 부여된 권력으로 머리쓰는 놈과 주먹쓰는 놈을
입맛에 따라 조종한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그런 나쁜 놈들의 유형과 함께, 그들의 욕망과,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그들이 각자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지, 또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그 야합과 분열의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악마를 보았다]와 [추격자]에서 각각 악역의 극치를 보여준 최민식과 하정우.
관록과 무게감이 느껴지는 두 사람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력이야 별도의 설명이 필요없고,
조진웅도 이미 많이 익숙한 연기자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직 일반 팬들에겐 낯설은 조 검사 역의 곽도원,
박 상무 역의 김성균 등 많은 개성있는 연기자들의 인상적인 연기가 나쁜 놈을 더 나쁘게 만들어준다.
또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는 폭력집단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는 보기드믄
이색적인 캐릭터가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대부'라는 호칭이다. 영화에서 최형배(하정우)는
최익현(최민식)을 '대부'라고 호칭한다. 갱영화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대부'는 말론 브란도의 [대부]인데,
말론 브란도는 거대한 마피아 조직을 통솔하는 말 그대로의 God Father 였지만, 최익현은 조직의 보스가
아니다. 그럼에도 조직의 보스인 최형배가 족보상 증조부 위치인 최익현에게 '조부'라는 호칭대신 '대부'
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그가 갖지못한 권력층에 대한 해결능력을 기대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 하나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이색 캐릭터는 조범석 검사다.
대개의 영화에서 일반인에게 익숙한 형사부 검사는 수사관을 통솔하며 수사를 지휘하는 역할이다.
검사가 피의자를 강하게 몰아부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가혹수사는 대개 수사관의 몫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조범석 검사는 말과 행동에서 수사관 이상의 언행을 보인다.
'이에는 이' 라는 함무라비법전式 논리가 그가 폭력조직을 다루는 의식의 근거다.
1990년을 시작으로 120분 이상 1982년부터 1990년까지를 지루하지 않게 넘나드는 느와르를 통해
조직의 질서를 파괴하는 배신과 야합, 혈연 등을 이용한 지하조직과 사법기관의 비정상적인 유착,
로비를 통한 권력기관의 이권 개입 등, 존재해왔고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사회악을 고발하면서
감독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 학생이고, 건달은 싸워야 할 때 싸워야 건달" 이라면서도,
"건달끼리 상대의 구역은 인정하고, 건달끼리의 싸움에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는 영화 속 조폭
두목의 말을 빌어 감독이 우리 사회에 던지고자 했던 화두는 [지배계층의 역할론]이 아니었을까.
사정기관은 단죄를 해야 할 때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고 단죄를 해야 하며,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을
인정하고, 정치인은 그 처신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마지막에 보이지않게 깔아놓은 반전을 나름대로 음미해보는 것도 재밌을거 같다.
검사로 임용된 최익현의 아들은 자기 아들의 돌 잔치에서 아버지 최익현과 단둘이 있는 창가에서
"아버지..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는 말을 전한다. 성장과정에서 아버지가 조폭에게 불려가고
수사관에 의해 연행되는 모습이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을 검사 아들이 아버지에게 바친(?) 이 말이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단순한 고마움일까?
최익현 아들의 검사 임용식에서 "연수원 차석졸업이면 로펌이나 법원으로 갈 수 있었을텐데.. 요즘
검사 재미없는데.. 재밌는 친구네." 라는 조범석 검사의 시니컬한 반응은 최익현 아들의 속마음을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될 듯 하다.
그리고, 엔딩 씬의 마지막 대사. 손자를 안아든 최익현의 귀에 울리는 "대부님~" 이라는 환청.
영화 속 시간의 흐름은 최형배의 형 집행만기 출소를 가늠케 하는데, 이 대목에서 배신자 최익현에
대한 최형배의 복수와 그런 최형배에게 수모를 겪은 아버지의 지난 날을 기억하는 검사 아들의 대결을
상상해보는 것도 영화에 몰입했던 관객의 권리가 아닐런지..
사족 하나.
요즘 연기자들은 자기가 맡은 배역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연기를 잘 한다.
어떤 캐릭터든 리얼하게 표출하는 연기력을 보며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중 개인적으로 호러 스릴러의 트로이카로 최민식, 김윤석, 하정우를 꼽는데,
김윤석 하정우의 조합도 보았고, 최민식 하정우의 조합도 보았지만, 최민식 김윤석의 조합은
본 기억이 없다. 두 배우가 함께 한다면, 정말 놓치기 아까운 명장면들이 나올거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를 그 장면들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