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최대의 작전으로 일컬어지는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상륙작전에서 연합군의 포로가 된, 
독일 군복을 입은 동양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강제규 감독이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으로 군복을 세 번 바꿔 입은 한 조선인의 비극적인 전쟁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마이웨이]는 여러모로 한국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게 만드는 영화다.
28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도 그렇지만, 여지껏 한국의 전쟁영화에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없었다.
6.25 한국전쟁이나 월남전, 그리고, 가끔 일제식민시대의 일본과 만주를 배경으로 한 중일전쟁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마이웨이]에서는 일본과 소련, 소련과 독일, 독일과 연합군의 전투가 몽골과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프랑스 노르망디까지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그 속에 각각 지배자 일본과 피지배자 조선의 아들로 태어나
마라톤의 쌍벽을 이루다, 경성에서 부터 12,000km의 전장을 함께 하며 증오에서 애정으로 이어지는 조선과 일본의
두 젊은 마라토너 김준식과 하세가와 타츠오가 있다.  


마이웨이는 여러 부분에서 강제규 감독의 前作인 [태극기 휘날리며]과 비교케 한다.

우선 영화의 전개 패턴.
중간 그룹에 있던 한국인 마라토너가 종반에 선두그룹으로 스퍼트하는 런던마라톤대회로 시작되는 영화는
곧 17년 전 과거로 돌아가, 스퍼트를 시작한 마라토너가 이 대회에 참가하기 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보여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영화는 다시 런던마라톤으로 돌아와 엔딩을 하는데, 이 패턴이 7년 전의 데쟈뷰를 보는 듯 하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작업으로 시작되는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바로 유골이 묻히게 된 과거가 영화의 본류이며,
엔딩은 다시 현실의 발굴작업으로 돌아온다.

전투씬도 그렇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두밀령 고지전투, 평양 시가지전투, 낙동강 방어선전투 등 치열한 전장의 모습을
다양하게 묘사했던 강제규 감독은 [마이웨이]에서도 노몬한전투와 독소 시가지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여러 형태의 전투장면을 스케일 큰 영상으로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한데, 바로 이 부분에서 스케일에
대한 욕심이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전투장면이 조금 지루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마이웨이]에서도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다. 포격과 총성, 
군인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장면이 자주 길게 반복되는 것은 진부함을 줄 수 있다. 최신 음향을 이용한
상영관을 덮치는 효과음이나 막대한 물량의 스펙터클이 영화의 스케일을 보여주는건 아닐 것이다.

주인공이 전장에서 적군으로 전향을 하는 것도 두 영화의 공통점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 주연 장동건. 하지만, 두 영화가 받아들이는 장동건은 달랐다.  
[태극기 휘날리며]의 장동건은 자연스럽게 배역에 녹아들었다. 하지만 7년이 지난 [마이웨이]에서의
장동건은 많이 어색하다.  우리나이로 사십이 넘은 장동건은 그가 아무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남배우라
하더라도, 20대 청년을 연기하기에는 세월이 용납치 않았다.


[마이웨이]를 조금 집중해서 보면 몇 가지 곱씹게 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생각되는거 - 인간이 갖는 신념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마이웨이]는 오랫동안 지속되는 극한 상황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준식(장동건)은 끝까지 변하지않는 [합리적인 인간애]를 견지한다.
적과 아군을 떠나 인간을 중시 여긴다. 일본군 군영에서 탈출시 쉬라이(판빙빙)를 데려가려는 모습,
탈출 도중 기습하는 소련군을 보고 기습 사실을 알리려 동료들만 보내고 다시 일본군영으로 돌아가는 모습,
그리고, 소련군 포로수용소에서 타츠오와의 목숨을 건 대결에서 타츠오를 살려주는 장면들이 그렇다.
그런데, 실제 이런 본성의 소유자를 보긴 쉽지않을 듯 하다.

전형적인 일본의 무사도 정신을 갖춘 타츠오(오다기리 조).
패배를 치욕으로 생각하며 황군으로서 천황에 대한 충심을 목숨보다 우선하는 그도 결국 소련군과 독일군
포로가 되어 그가 그토록 자부하는 일본군 장교에서 소련과 독일의 병사로 전향을 거듭하며 목숨을 이어간다.
포로수용소에서도 천황에 대한 예를 강조하는 전형적인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할복을 해야 할 그가 택할 선택은 아니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 모습 또한 생존을 위해 인간이 택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명예라는 포장의 개죽음과, 치욕이라는 지탄을 받으며 미래를 위해 이어가는 목숨 중
어느 것이 더 의미가 있는지 그 순간에는 아무도 모른다. 긴 시간이 흐른 후 판단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실을 새로운 인생의 기회로 생각하고 충실히 적응하는 종대(김인권).
준식의 여동생을 좋아하는 준식의 절친 종대는 소련군 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을 통제하는 얀톤으로 변신하여
일본군 시절 징용된 조선인을 학대하던 일본군 포로들을 철저하게 응징하며 조선인 포로들을 옹호하지만,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친구를 사형대에 세우게 된다. 윤리적 시각에서 상당히 야비하고 치사한 행태로
비난받을 수 있지만,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가장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이웨이]가 타츠오를 통해 보여주는 멋진 교훈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징용된 조선인에게 명예로운 황군으로서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던 타츠오는 소련군의 포로가 된 후,
일본군 시절을 잊으라는 소련군 지휘관에게 "자신들의 사상마저 바꿀 권한은 없다" 고 항변하면서도,
같은 포로 신분인 조선인 군인들에겐 여전히 천황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다, 준식에 의해 "소련군에 대해서는
'자신들의 사상마저 바꿀 권한은 없다' 고 하면서 왜 조선인에게 사상을 강요하느냐" 는 지적을 받는다.
   
또한, 밀려오는 소련군 탱크에 무조건적인 돌격을 명령하며 후퇴하는 부하들을 죽이는 광기어린
지휘관이던 타츠오는, 소련군과 독일군의 시가전에서 죽음이 뻔한 돌격을 독려하는이성을 잃은   
소련군 지휘관의 모습에서 자신의 데쟈뷰를 보며 아연한다. (이 장면의 편집이 참 멋있었다.)      


배우들을 간단히 살펴 보자.

판빙빙은 그 역할이 너무 단순하고 짧았다.
장동건보다는 오다기리 조의 연기가 더 좋았다는 생각인데, 가장 돋보인건 김인권이다. 순박한 종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독해지는, 그런 한편 자포자기의 허무를 보여주는 얀톤까지, 가히 충무로의 씬스틸러라는
명칭이 허명이 아니다. 인기있는 까메오를 찾아내는 것도 이 영화가 주는 잔재미다. 


[
마이웨이]는 한국 전쟁영화의 도약에 대한 기대감과 강제규 감독에 대한 아쉬운 한계가 함께 한 영화다.

위에 언급한대로, 2차 세계대전으로 전쟁영화의 외연을 넓히며 그에 걸맞게 촬영의 스케일을 키웠다는건
분명 찬사를 보낼만 하다. 노르웨이의 헬기 촬영팀 [블루 스카이]를 동원한 항공촬영은 전장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주었고, 탱크와 오토바이 등 고증에 입각한 2차 대전 당시의 소련군과 독일군 장비의 재현도
리얼리티 면에서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또 하나 놀라운건, 거의 모든 전투장면을 담아낸 촬영장소가 새만금이었다는 것. 
새만금에서 일본 관동군 주둔지와 몽골의 노몬한 전투지, 소련군의 포로수용소. 그리고, 소련군과 독일군의
시가전까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제외한 모든 전투장면을 담아냈다는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동유럽인 라트비아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향후 한국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더하게 한다.

아쉬운 한계는, 위에 언급한대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상케 하는 부분과, 웅장함의 추구에 따른 조금의 지루함.
또 하나, 옥에 티는 리얼리티다. 소품에 대한 리얼리티는 대단한데, 줄거리에 대한 리얼리티는 뭔가 아쉽다.
몇 가지 짚어본다면, 원수지간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화해 과정도 중간이 떠있는 느낌이고, 소련군의 기습을
알리기 위해 탈출을 포기하고 부대로 되돌아가는 준식의 모습은 너무 이상적이다.  또한, 준식이 일본군영이나
포로수용소에서 거의 매일 달리기 훈련을 한다는 것도 의아스럽지만, 노르망디에서 마저 육상훈련을 하다 두 사람이
조우하는 모습은 전쟁터에서 동화를 읽는 느낌이다.  물론, 준식의 달리기가 소망하는 미래를 향한 상징적인 의미라
할 수도 있지만, 어색한건 사실이다. 가장 궁금한 장면은 마지막 엔딩 부분. 타츠오가 어떻게 준식의 이름으로
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지... 평소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런 영화에서는 그게
아닌거 같다. 감독이 의도하는 바는 알겠는데, 그래도...
       
   
   
마지막으로 흥미를 끌게 하는건 OST.
[태극기..]에서 웅장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으로 영상 이상의 뭉클함을 안겨줬던 이동준 음악감독이 만든
[To Find My Way]를 안드레아 보첼리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부분적인 아쉬움이 느껴지는건, 강제규 감독에 대한 절정의 기대감 때문이리라.
1000만 관중 돌파로 대한민국 영화 흥행사를 새로 썼던 강제규 감독. [태극기 휘날리며] 이후
7년 만에 그가 보여준 [마이웨이]는 분명 한국 전쟁영화의 방향을 틀어주는 새로운 시도이긴 한데,
이게 과연 1000만 관중을 넘어설까?  내 판단은... 글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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