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력을 키우자
보고 듣고 느끼고/이런생각 저런느낌 2010. 7. 22. 03:30 |지난 월요일, 동호회 활동을 함께 했던 사람들 중 마음을 열고 정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이런저런 정담을 나누며 농담이 오가던 중 대학교수로 있는 후배가 이야기를 꺼냈다.
"대학교수를 애인으로 두면 좋은 점이 뭔지 아느냐?" 며 다섯가지를 꼽아나가는데,
이야기를 듣던 모두가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 후배가 꼽은 [대학교수가 애인으로 좋은 다섯가지]는,
첫째, 대학교수는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워 원하는 시간을 맞추기가 용이하다.
둘째, 교수이므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무래도 주워듣는 이야기가 있다.
세째, 일단 시작하면 50분은 한다.
네째, 10분간 쉬고 속강이 가능하다.
다섯째, 정 시간이 안나면 조교를 내신 보내기도 한다.
다섯가지 중 중간 이후는 성적인 늬앙스가 포함되어 있고, 그 자리에는 여성도 있었지만,
얼굴을 붉히거나 불쾌한 기색을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유쾌히 웃었을 뿐이다.
한 국회의원이 대학생들과 식사 중에 했다는 말로 인해 대한민국의 인터넷과 언론이 연일 뜨겁다.
국회의장배 대학생 토론대회의 심사위원이었던 그가 한 말 중에 문제가 된 부분은 대략 세가지다.
- 심사위원들은 토론내용보다 얼굴을 본다. 토론 조 편성시 못생긴 애 두명에 예쁜 애 하나를 끼면 이상적이다.
그럼 그 애에게 집중이 잘되기 때문이다.
- (아나운서를 희망한다는 여학생에게) 아나운서를 하려면 다 줘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느냐?
- (청와대를 방문했던 여학생에게) 대통령이 너만 보더라.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
사모님만 안계셨다면 네 (전화)번호를 땄을 것이다.
정말 누가 들어도 한심한 이야기다.
더구나 대통령까지 언급한 부분은... 이걸 뭐라 평해야 할지. 당장 네티즌들이 난리가 났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여대생 전화번호나 따는 사람으로 만들어놨으니..." 라는 답답하다는 표현부터,
"그 국회위원이 대통령과 시돈간이라던데, 그렇다면 평소 취향을 다 알고 있다는건가?" 라는 비아냥까지.
역대 국회의원 최고의 망언으로 규정지은 한나라당도 사안의 심각성 때문인지 언론보도 당일
바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한다.
당사자는 기자회견을 통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며, 정치생명을 걸고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했지만,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대학생들의 증언은 언론보도가 사실인 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은, 성희롱이나 특정 계층에 대한 비하발언 등 언어폭력이 문제가 되는 경우,
일단 부정을 하고, 사실관계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사석에서 나눈 이야기라고 한다.
위에 문제가 된 국회의원도 그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토론대회라는 공식행사가 끝나고,
편안하게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온 농담이라고 하고 싶겠지.
그래서 [사석]이라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석(私席)은 단어 그대로 사사로운 자리다. 국어사전에도 '사적인 모임의 자리' 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식행사 후에 있은 식사는 사적인 자리가 아닌, 공식행사의 연장이다.
공식행사 후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국회의원과 대학생의 모임 자체가 사적인 자리가 될 수 없다.
요즘 트위터가 유행하면서 트위터를 통해 각종 번개모임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런 모임도 엄밀히 말해 사적인 모임이라고 하긴 어렵다.
자리에 함께 한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친분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사사로운 자리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전에는 말을 함에 있어서도 격식을 갖추는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서두에 우리 모임에서 후배가 한 이야기를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저 이야기를 평소 격의없이 지내는 모임에서 했기 때문에 모두가 유머로 받아들인 것이지,
만약 그 후배가 여학생이 함께 한 자리, 혹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에서 강의 도입부에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한 의도로 저런 이야기를 했더라도, 당초 의도와 관계없이 충분히 비난의 소지가 있다.
그 국회의원의 말 중에 맞는 말도 있다.
일반적인 남자들 대부분이 예쁜 여자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여성들 역시 멋진 남성에게 호감이 갈 수 있다. 마음이 가는거야 감정이고 심리적인 것이니 탓할 수 없다.
문제는 느끼는 감정과 말로 표현하는건 다르다는거다. 느끼는 감정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다.
때와 장소를 가려 품고있는 마음을 밝히거나 행동하는 것 - 그게 이성이고, 사람의 인품을 평하는 척도가 된다.
또 하나, 내게 거슬리는건 그 국회의원의 말투다.
보도된대로라면, 그 국회의원은 대학생들에게 "너" 라는 호칭을 사용한거 같다.
우리 부부는 여지껏 어디를 가더라도 아무리 어려보이는 종업원들에게 반말을 해본 적이 없다.
"아가씨~ 미안하지만 야채좀 더 줄 수 있어요?" 이런 식이다. 구순을 바라보시는 우리 부모님도 그러신다.
그런데, 이제 갓 마흔을 넘은 초선의원이 벌써부터 그런 말투를 보인다면, 잘 나갈수록 더하지 않겠는가.
상대방에 대한 호칭이나 말투에는 그 사람을 대하는 인식이 깔려있게 마련이다.
성적인 내용이 담겼다고 해서 모두 성희롱이 되지는 않는다.
한때 강남에 [코미디클럽]이라는 곳이 있었다. 개그맨들이 평소 방송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섹스를 소재로 한 개그만을 하는 곳이었는데, 상당히 농도짙은 내용이 많았음에도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뭐.. 농도짙은 내용이 많아서 반응이 뜨거웠는지도 모르지만..)
일반 모임에서도 성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때로 분위기를 띄우는 유머로 호평을 받기도 한다.
하이조크가 되느냐, 성희롱이 되느냐는 모임의 성격, 대상, 그리고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산업훈련용어 중에 [래포]라는 용어가 있다. 공감대라고 이해하면 되는데, 함께 느낄 수 있다면 모든게 이해된다.
문제는, 내가 느끼는걸 모두가 느끼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그걸 구분하는게 분별력있는 이성이다.
그 국회의원에게는 분별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우리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
다시는 그런 정치인이 민의의 대변자가 되지 않도록 우리도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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