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라는 표현을 종종 쓰는데,
후회는 없을지 몰라도, 최선을 다 한 다음에 남는건 아쉬움이다.

지난 토요일 밤 전국을 뜨겁게 달군 남아공 월드컵 16강전 한국과 우루과이의 경기가 그랬다.
이기기를 살포시 기대했지만 객관적 전력으로 볼 때 사실 그 기대는 승리에 대한 기원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태극전사들 예상을 뛰어넘어 정말 너무 잘 싸웠다.
먼저 실점 후 경기를 지배하여 동점골을 터트렸기에 후반 34분의 실점은 너무 아쉬웠다.

모든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겠지만, 그날 이영표와 차두리의 움직임을 발군이었다.
사력을 다했다는 표현이 이럴 때 필요한 용어가 아니겠는가.
특히, 이영표는 정말 '저러다 죽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장한 표정으로
전후방을 질주했는데, 아내 역시 이영표의 눈에서 섬뜩할 정도의 광채를 몇번 보았다고 한다. 





차라리 많이 밀리는 경기로 끝났더라면 '그래도 선방했다' 고 생각하고 말 것을,
너무 잘했기에 진한 안타까움이 남는건 선수들 포함한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같은 마음이었을게다. 


이렇게 온 국민을 열광시키고 한마음으로 엮어주던 대한민국의 월드컵은 끝났다.

그런데, 월드컵이 끝까지 대한민국을 하나로 묶은건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월드컵 때문에 점화된 쟁점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16강 진출 후 불거져나온 대표선수들의 병역특례문제다.
16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쟁점의 동력이 약해진거 같지만...

여기서 잠깐 운동선수들의 병역특례 변천사를 보면, 
1973년 스포츠강국의 기치 아래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3위 이상을 하면 병역특례를 주었다. 그러다 경기력이 향상되면서 수혜자가 너무 많아지자 1990년에
올림픽은 금 은 동메달리스트, 아시안게임의 경우는 금메달리스트만 해당되는 것으로 강화됐는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루자 월드컵 축구 16강도 특례대상이 되고,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야구가 세계 4강에 오르자, 덩달아 특례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타 종목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2007년에 다시 1990년의 규정으로 되돌아갔다.

병역특례가 없었다면 지금의 박지성이 있었겠느냐가 특례지지론자의 논지다.
박지성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했다면 지금과 같은 기량을 갖춘 프리미어리거가 되기는 어려웠을테고,
그렇다면 이번의 월드컵 16강도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축구가 더 빠르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기량을 갖춘 유망주들이 축구 선진국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야 하는데,
병역특례가 없으면 어렵다는 주장은 분명 틀린 논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건 축구애호가들의 논리일 뿐 타 종목과의 형평성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당장 작년 WBC 준우승을 한 야구에서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축구팬들은 축구 월드컵 16강과
야구 WBC 준우승은 가맹국 수와 세계 수준으로 볼 때 가치가 다르다고 하지만, 세계 수준과
한국의 수준을 비교하여 비인기종목을 비롯한 모든 종목의 순위 가치를 정한다는건 어려운 일이다.

월드컵 16강 진출에 병역혜택을 주었을 경우 생기는 또 하나의 문제.

현행 월드컵 본선 대진방식에 따르면 조별로 4개국이 리그전을 벌여 정해진 규정에 의해
상위 2개국이 16강전에 진출하게끔 되어있는데, 이는 경우에 따라 상당한 편차가 있을 수 있다.
즉, 특정 국가가 전패를 하고 나머지 세 나라가 물고물릴 경우 3개국이 2승1패가 되어 골득실에 따라
승점 6점으로 탈락할 수도 있는 반면, 반대로 특정국가가 전승을 하고, 나머지 3개국이 서로 비길 경우에는
2무1패로 승점 2점만으로도 골득실에 따라 16강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월드컵에서 2무1패로 16강에 올라 병역특례를 받았는데, 그 다음 대회에서 2승을 올리고도
병역특례를 못받는다면 출전했던 선수 입장에서는 이 또한 얼마나 불합리하게 느껴지겠는가.
같은 월드컵 대표선수 사이에도 제도의 불합리에 의한 형평성 논란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6월 한달 즐겁고 행복한 순간을 맞이했다고 하지만, 월드컵 대표팀의 본선 성적은 1승 1무 2패다. 
아시아 예선부터 긴 시간 애쓴 것은 맞지만, 본선 참가선수들이 올린 승수는 단 1승 뿐이다. 

온 국민들이 일치단결할 수 있는 민족적 자긍심을 주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도록 우수 선수들에게
기량향상을 위한 여건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모두에게 납득할 수 있는 제도가 사전에 공지되고 시행되어야지, 
결과를 놓고 분위기에 편승하여 특정인에 의해 즉흥적인 것 처럼 언급되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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