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를 보다보면 왠만한 와이드프로보다  짧지만 더 재밌는게 있다.
바로 CF로 일컬어지는 광고.

15~20초로 제한된 짧은 시간에 잔상이 남는 비쥬얼을 동원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강한 임팩트로 담아야하는 CF광고는 그야말로 무한한 창의성의 전쟁이다.

요즘의 CF를 보고있노라면 과거와는 엄청나게 변했다는 것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촬영에 동원되는 물량이나 배경 등 기법은 물론이거니와 더 놀라운 것은 기발난 아이디어.
20~30년전의 광고가 CM Song을 통해 기억에 각인시키는 방법에 많이 의존했다면,
요즘의 광고는 콘티부터가 이채롭다.  그리고 그 콘티를 살려주는 copy가 감칠 맛이 엄청나다.

    
때문에 예전엔 TV를 보다가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곤 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광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 현상은 광고문구나 대사가 세간의 유행어가 되고, 광고가 패러디 대상이 되는 것만으로도 반증된다.

최근 몇년간 기발한 아이디어의 광고들이 꾸준히 선보였지만
그중에 특히 이동통신업계의 양대산맥인 SKT 와 KTF 에서 시리즈로 내놓은 CF들은 
온국민에게 광고라는게 지루하지않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는,
광고의 일반적인 패러다임을 바꾸어놓은 계기가 되지않았나 싶다.           

KTF의 [SHOW를 하라]는 세간살이를 바꾸고싶어하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의 재기넘치는 모습을 통해
모든 시청자들에게 핵폭탄같은 웃음을 선사하며 3G 영상폰의 특성을 1000% 이상 구현했고,
이에 뒤질세라 SKT는 [생각대로 T]의 로고송인[생각대로 하면되고~~]
힘든 시기에 모든 이들이 희망메세지를 담을 수 있는 국민 로고송으로 만들어버렸다.

광고는 이제 이렇게 우리 곁에서 함께 호흡하며 우리 실생활의 길라잡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한 광고를 보고 나는 절로 짜증이 났다.

그 광고의 copy는 (정확한 표현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런 문맥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물음에...   그랜져로 대답했습니다.]

이 광고의 제작팀과 특히 카피라이터에게는 매우 결례되는 말씀이지만,
정말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한마디로 속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관점에서,
특정 자동차를 사회적 신분의 척도로 내세운 이 카피는 결정적으로 두가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그랜져가 과연 사회적으로 인정받을만한 신분의 척도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CF에 등장하는 모델의 연령을 감안한다면 그 나이에 그랜져는 우월적 지위를 상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부를 궁금해하는 친구에게 그것을 내세울 정도라면 그는 타인을 배려할줄 모르는 소양이 덜된 사람이 아닌가.  
  
두번째 오류는, 역으로 그랜져가 사회적 신분의 척도라고 가정하는데서 나온다.
첫번째 오류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치기어린 과시로 보일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훨씬 경제적여건이 나은 사람 입장에서는 가소롭게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광고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요새 다 어렵잖아...  나도 힘들어서 외제차 팔고 그랜져로 바꿨어...'
이런 뜻도 되잖아... 하는 시니컬한 생각마저 드는건, 정말 요즘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2년쯤 전인가...  
"아버지는 내게 그러셨지..  인생을 즐기라고..." 라는 copy와 함께 
여성들과 화려한 레져를 즐기는 콘티의 신용카드 CF가 있었다.
그때도, 인생에 대한 아버지의 조언이 저런 늬앙스는 아닌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등장시켜 "**이가 사는 곳은 ***입니다." 라는 copy의 아파트 CF와
요즘 가끔 눈에 띄는 화려한 교복 CF도 젊은 층에게 미칠 수 있는 신분의 위화감을 생각할 때 안타깝다.



공익광고가 아닌 상업광고는 광고를 통한 매출증대, 즉 영리추구가 최대목적이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광고를 제작하고 더 막대한 비용을 들여 방송에 내보내는 이유다.
때문에 누구도 목적에 맞게 기획되고 제작된 광고에 대해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세심한 시각과 다양한 관점에서 콘티를 구성하고 카피를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사회의 층이 다양해지면서 그만큼 복잡한 인식의 스펙트럼을 맞추기가 점점 어려워지는게 사실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모든 사람을 편안하게 아우르고 하나로 묶는 수작(秀作)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광고는 정말 보는 재미가 있다. 
즐거운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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