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름]에 대한 우문현답
보고 듣고 느끼고/이런생각 저런느낌 2009. 3. 4. 21:53 |몇년전 역술을 하시는 분을 만나 나눴던 이야기 한토막.
나 : 선생님 혹시 성명학도 공부를 하셨습니까?
그 : 뭐때문에 그러시죠?
나 : 흔히들 이름도 좋은 이름과 나쁜 이름이 있다지않습니까?
좋은 이름은 부를수록 계속 좋은 기운이 쌓이게 되지만, 나쁜 이름은 부를 때 마다 복을 깎아내린다고...
그 : 말씀하시죠..
나 : 네.. 요즘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서 보통 필명이라는걸 사용하는데,
저 역시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자'는 의미로 江河라고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사용하다보니 이제는 제 본명보다 이 필명으로 불리우는 경우가 더 많아지더군요.
그러다보니 이 江河라는 필명이 제게 맞는 이름인지 궁금해서요.
그러자 그 분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듯 하더니 말을 잇는다.
그 : 여기 감자하고 고구마가 있다고 생각합시다.
감자를 들여다보며 "넌 지금부터 고구마다. 고구마야... 고구마.., 고구마... 고구마..."
이렇게 백날을 고구마라고 불러본들 감자의 본질이 변하겠습니까?
감자는 감자일 뿐이죠.
혹시 김봉수나 백운학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김봉수... 백운학...
나도 익히 들어본 이름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한때 대한민국의 난다긴다하는 정계,관계,재계 인사치고 그들을 찾지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명성을 떨치던 역술과 작명의 거장들이 아닌가.
소위 복비나 작명료만 해도 엄청났다는데, 한가닥한다는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이름을 지으러 찾아오기도 하지만,
해가 바뀌거나 각종 조직의 인사철이 되면 찾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던 분들이다.
나 : 그 분들 명성은 저도 들어봤습니다.
그 : 만나보셨습니까?
나 : 아닙니다. 제가 학생시절에 명성을 날리셨으니 저와는 세대가 다르기에... 단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엷은 미소가 언뜻 스치는가 하더니 건조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그 : 고관대작들이 손(孫)을 보면 좋은 이름을 받기위해 다들 찾곤했던 분들이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좋은 이름이 뭡니까? 출세하고 명예얻고 재물을 취할 수 있는 이름일텐데..
그럼, 그렇게 최고로 인정받은 그 분들의 자손들은 다 잘됐을까요?
그 정도 되는 사람들이 자기 자손 이름 작명에 얼마나 신경을 썼을텐데,
그 자손들은 다 대학도 잘 들어가고 결혼생활도 순탄하고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됐을까요?
그러네... 그들 중에서도 대학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을테고, 잘 안풀리는 사람도 있었을테고..
흥미로운 지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 : 문제는 이름이 아니고, 그 사람이 가지고있는 운(運)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運이 들어올 때가 있고 運이 나갈 때가 있습니다.
運이 들어올 때는 뭘 해도 잘되고 運이 나갈 때는 뭘해도 안됩니다.
그러니까 運이 들어올 때 기회를 잘 살리고 運이 나갈 때 손실을 최소화하는게 중요하죠.
예를들어, 김우중氏 보세요. 한때 김우중氏가 대한민국 재계를 주름잡을 때 많은 작명가들이
김우중氏의 이름을 풀어 사주와 엄청나게 잘맞는 정말 좋은 이름이라고 칭송했습니다.
이름덕을 본다고들 했죠. 하지만, 지금 김우중氏의 처지가 어떻습니까?? 이름 때문이라면 계속 잘 나가야지요.
결국 김우중氏도 운이 들어올 때 그 운을 잘 살려 명성을 얻은 것이고, 운이 나가기 시작하니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이름이란 남이 부르기 편하고 본인이 들어 즐거우면 좋은 이름입니다.
선생님처럼 본인이 의미를 담아 그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으면 그게 좋은 이름이지요.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오며 [좋은 이름]이란게 정말 있긴 있는건지 다시한번 생각해봤다.
있다면 어떤 것이 [좋은 이름]인지, [좋은 이름]의 정의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그리고, [좋은 이름]이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건지도.
[유관순]이라는 이름은 어떤 이름일까?
한 나라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겼으니 좋은 이름 같은데,
스물도 안된 나이에 단명했으면 나쁜 이름인가?
[관순]이 아닌 다른 이름이었다면 생이 달라졌을까?
[이완용]은 어떤가?
암울했던 식민시대에 죽을 때 까지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니 개인에게는 재물과 명예를 준 좋은 이름인데,
후세에 가장 치욕적인 이름이 된걸 보면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거 같기도 하고.
한 나라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을 역임한 후 수감생활을 하신 분들의 이름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정몽주가 다른 이름이었다면 선죽교에서 철퇴를 맞는 일이 없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호칭을 달리 부른다고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그 분의 말씀에 수긍이 간다.
작명법에 대해 주워들은 풍월이 있다.
한자로 이름을 지을 때 한자 획수가 짝수와 홀수로 구성돼야지, 짝수나 홀수로만 구성되면 좋은 이름이 아니라는.
그런데, 江河는 한자 획수가 6획과 8획으로 모두 짝수다.
그 부분이 좀 아쉬우면서도 스스로 부여한 뜻도 좋고 발음도 맘에 들어 아쉬움을 담은 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날의 우문현답으로 나의 마음 한구석에 담겨있던 오랜 아쉬움을 모두 날려보낼 수 있었다.
그래.. 맞아...
남이 부르기 편하고 내가 들어 좋으면 그보다 좋은 이름이 어디 있겠나.
중요한건, 내가 담았던 의미대로 순리대로 사는게 내 이름과 내 삶을 스스로 돋보이게 만드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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