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이런생각 저런느낌'에 해당되는 글 183건

  1. 2009.02.05 어리석은 자의 4 X 7 = ?
  2. 2009.01.30 전자신분증 도입을 바라보는 斷想
  3. 2009.01.25 소의 해에 기원하는 우談
  4. 2009.01.16 사람은 마음으로 얻어야 오래 간다
  5. 2008.12.31 2009년은 2008년과는 달랐으면 좋겠다. 4
  6. 2008.11.03 새로운 변화에 대한 생각들
  7. 2008.10.30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 2
  8. 2008.10.15 천고마비?? 삼고마비.. 2
  9. 2008.10.09 몰두할 수 있다는게 행복하다 8
  10. 2008.10.09 몰두할 수 있다는게 행복하다 8
  11. 2008.09.27 사주는 생활의 Tip이다 9
  12. 2008.08.24 올림픽의 아름다운 말들 9
  13. 2008.08.11 [최민호의 눈물]과 [박태환의 미소] 11
  14. 2008.06.20 [주인정신]과 [주인공정신] 16
  15. 2008.06.05 도를 넘어선 막말방송 7
  16. 2008.05.26 서로가 생각해보아야 할 블로그의 안타까운 일 15
  17. 2008.05.23 건배 구호에 담겨있는 의미 9
  18. 2008.05.16 不老具 13
  19. 2008.05.09 어버이날에 생각하는 부모에 대한 단상 10
  20. 2008.04.24 카멜레온 인터넷 12
  21. 2008.03.21 필명, 또 하나의 이름 39
  22. 2008.03.07 걸맞는 처신을 할 수 있을 때 당당하게 취하라 24
  23. 2008.02.23 실용주의와 아전인수 2
  24. 2008.02.12 숭례문... 현장보존으로 반성하자. 11
  25. 2008.01.13 진화하는 사극드라마의 명제 3
  26. 2007.11.19 감정대로 할 수 없기에 더 힘든 부모의 역할 5
  27. 2007.11.07 뒤바뀐 보호 3
  28. 2007.10.15 言治가 아닌 心治를... 1
  29. 2007.09.22 성묘에 대한 생각 11
  30. 2007.07.25 애국가는 어쩐다냐... 16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옛날에 4 X 7  = 27 이라고 주장하는 고집센 사람과
(옛날 언제부터 구구단 개념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치고)
28 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다투다가 자기 주장만 내세울뿐 결론이 나지않자
원님을 찾아가서 어리석은 놈을 가려달라고 간청하였다.

자초지종 사정을 듣고난 원님은 잠시 한심스러운 표정으로 두사람을 바라본 뒤
포졸에게 일렀다.

"여봐라~~~  27 이라고 한 자는 돌려보내고, 저 28 이라고 한 놈은 곤장 열대를 쳐라."

진리를 얘기하고도 졸지에 곤장세례를 받은 똑똑한 놈이
"왜 내가 틀렸느냐?" 며 볼멘 소리로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원님의 대답.

"야 이 한심한 놈아...  네가 어리석은 놈을 가려달라 하지않았느냐??
 그러니 27 이라고 한 놈은 무지해서 그렇다고 치고, 그런 무지한 사람과 맞대 싸운 네 놈이
 더 어리석은 놈이니 내 너를 매우 쳐서 지혜를 깨치게 하려 함이다." 




남이 잘못 알고있는 것, 혹은, 남의 사소한 언행은 대범하게 넘길 수도 있어야 하는데
그때마다 그걸 참지못하고 얕은 지식을 앞세워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짓을 나도 많이 하지않았나 싶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관대해지기 보다 나이를 앞세워 우기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게 우리네 아닌가.

스스로에게 이른다.

"제 어리석음을 알지못하고 그간 나댔던 죄, 곤장 삼십으로도 부족함이 많으나
 일단 그걸로 주의를 주고 향후 행동을 지켜볼 것이니 매우 쳐라.~~" 


:
주민등록증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웹서핑을 하다보니 주민등록증 개선안이 보이는데,
시안의 날짜가 2006. 1. 1 이고, 발행자명이 행정자치부장관인 것으로 보아
前 정부에서 기획된 案인거 같은데, 후속작업이 현 정부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는건지는
당연히 나는 알 길이 없지만, 기획 당시의 특징을 살펴보면 이렇다.   


새로 기획된 주민등록증은 이름도 [대한민국 신분증]으로
바꾸고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주민등록번호와 지문, 주소 등
주요정보를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한게 한 것이 특징이
다.




사진은 차세대 주민등록증 발전모델의 기본안.


새 신분증은 신분증 표면에 드러나는 정보를 성명, 영문성명, 생년원일, 성별, 사진, 발급일,
발급기관 등으로 한정하고, 대신 주민등록번호와 지문, 주소, 인증서,
비밀번호 등의 개인정보는
주민증에 내장된 IC칩에 담아
개인 사생활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게 했다.
(근데, 하단의 KR은 왜 들어갔는지 왠지 쌩뚱맞다)

아직 세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첨단 전자신분증으로 발전한다면 전자머니 기능을 포함하여
신분증 만으로 대금결제를 할 수 있는 명실공히 카드라이프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편리한 것은 좋지만 범죄지능이 늘 사회안전망을 위협하는 수준 이상임을 감안할 때
신분증 분실시 혹은 신분증 복제시 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엄청난 피해를
어떻게 사전 보호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런 전자개념에 익숙치않은 계층에 대한 계몽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계층에의 계몽이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쉽지않다는게 문제다.


과학수준의 발전과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새로운 개념이 생기면서
앞으로 또 뭐가 어찌 바뀔지 모르는 진화의 시대에 우리는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

그러니까 이 정신없이 변하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인터넷이나 책을 열심히 봐야한다.
그게 싫으면 그런 사람들과 자주 만나 얘기라도 듣던가...
하지만, 과거만의 이야기로 꽃을 피우다간 과거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변하는 시대에서 [안주]라는 단어는 이미 없다. 
빠르게 질주하는 시대에서 안주한다는 것은 퇴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대는 늘 그 시대에 맞는 추세(트랜드)를 요구한다.
앞서 갈 수 없으면 따라라도 가자.
하지만 따라가면서도 필수품은 잊지말자.

[여유]만은 챙기자.
그게 없으면 끌려가는게 된다.


:



   소처럼 묵묵히 자기 본분을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제가 좋아져 모든 사람들이 근심없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까운 사람들과 정과 마음을 좀더 넉넉히 나눴으면 좋겠다.


   결코 넘침이 없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촉촉히 적셔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잊고살았던 사람들과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가진게 충분하지 않더라도 나보다 부족한 사람을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遇   오래 전에 헤어졌던 사람을 우연히라도 만나는 반가움이 생활 속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더이상 집문제로 국민들이 위화감을 느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같은 실수를 두번 겪지않을 지혜로움이 있었으면 좋겠다. 


    새해엔 힘차게 미래를 향한 날개짓을 해보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L^.. 



:
지연이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논리적이면서도, 대인관계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감성적이다.
자기가 마음이 꽂힌 사람에게는 강한 애정을 쏟으며 마음을 다 열어놓는 지연이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는 편이다.

엊그제 지연이와 [친구]의 개념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내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친구에 대해서는 [가장]이라거나 혹은 [제일]이라는 절대개념의 수식어를 사용하지 마라.
누구누구는 [내 가장 친구 친구]라든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라는 표현을 쓰는 순간
상대방도 나를 같은 가치로 인정해주길 바라는게 대부분 사람 감정의 속성인데
둘이 매순간 붙어 다니지않는 한 각자의 생활영역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밖에 없잖아.
그런데, 내가 바빠서 만날 여유가 없음에도 그 친구가 나 말고 다른 사람들과 더 자주 어울리는 느낌을 받을 때
괜히 실망도 하게 되고 심할 경우 배신감도 느끼게 되지.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떤 친구가 있어...
그 친구는 성격이 사교적이라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다니는데, 특히 그중 몇몇과는 자주 만나는 편이야.
그런데, 본인이 진짜 고민이 있을 때는 나에게 연락을 해서 내게 속마음을 열어놓는거야.

이런 경우 이 친구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 친구가 생각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굴까??? 

신나고 즐거운 일은 남들과 즐기고 나에겐 우울하고 골치아픈 이야기만 하는 얄미운 친구인가..?
아님, 정말 어려울 때 가장 믿을만한 사람으로 나를 인정하고 찾는 고마운 친구인가..

모든건 생각하기 나름이야.
그럴 경우 그 친구와 자주 만나 즐기는 친구들도 서운할 수가 있어.
매일 우리와 만나면서 결정적인 사항은 딴 사람과 의논해??  그럼 우린 뭐야???

친구뿐 아니라 가까이 하는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야.
특정인에게 모든 것을 바라거나 의존하면 스스로 상처를 받아.
이 친구는 이런 면에서 장점이 있으니 이런건 이 친구와,
저 사람은 또 요런 장점이 있으니 그런 부분은 저 사람과...
주변 사람들의 장점을 보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편한 사람과 만난다는 기분으로 사람을 대하는게 좋은거 같아.
모든 대인관계는 서로에 대한 역할이 따로 있을거야.  서로가 상대에 맞는 역할, 그리고 그런 배역을 찾아 맞춰가는거지.  

물론 그러면서도 결국 끌리는 사람은 집약되겠지만,
중요한건,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감정으로 나와 맞춰주길 바라는 마음을 억제하는거...

근데, 그게 사실 말 같이 쉬운 일은 아니야.   그렇게되도록 노력하는거지.



지연이도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상처받고 아픔을 느끼면서 성장하고,
또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나중에 누군가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


늘 한해를 돌아볼 때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해]라고 한다.
2008년만큼은 그 표현이 어색하길 바랬건만,
[혹시나]는 [역시나]가 되고만 느낌이다.

벌려놓은 공사로 비좁아진 인도가
가뜩이나 썰렁한 장터를 더 을씨년스럽게 만든다.

찾는 발길은 없어도, 그렇더라도 가게는 불을 밝힌다.
저 불이 꺼질 때 저들의 마음 속에서 희망의 불이 지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해를 보낸다고 한다.
하지만, 한해는 우리가 보내지않더라도 간다.
보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2008년이 우리를 2009년 새해로 보내는 것이다.

새해에는 모든 불빛이 밝게 보였으면 좋겠다.
저 불이 꺼지고 새롭게 불이 켜질 때면
더 이상 저렇게 침울한 불빛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

며칠 전에 Google Application을 이용한 간이 인트라넷을 이용하는 내용에 대해 블로그에 소개한 적이 있다.
우리 회사에 도입을 해보니 그 기능과 효용가치가 너무너무 맘에 들어
일주일에 두번 출근하는 영등포 사무실에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지난 주말 이틀간 꼬박 작업을 했다.

그런데...  왠걸...   
이건 뭐... 별 반응들이 없다.
붙잡고 효용성을 설명하고 기능에 대해 설명을 해도 반응들이 신통찮다.
지금 하는대로 하면되지, 새삼스레 새로운걸 익힐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이다.
한마디로, 귀찮은거다.  그리고, 변화가 싫은거다.

이럴 때 필요한게 오너의 추진력인데,
영등포 사무실의 오너 역시 이런 방면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지라 결국 내가 헛일만 한 꼴이 되고말았다.
"저는 잘 모르니 사장님이 직원들에게 얘길하시죠. 저는 따라가겠습니다."  이런 식이다.

도움이 되겠다 싶어 기업체를 운영하는 친구 몇명에게 소개를 하고 개념을 설명을 했는데, 그쪽도 별 무반응이다.

사람들은 새로운걸 받아들이는데 인색하다는걸 새삼스레 깨달았다.

새로운 것을 활용하려면, 새로운 기능과 활용법에 대해 알아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걸 아는데 조금만 투자하면 훨씬 더 큰 가치가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 자체를 하지않으려 한다.
그것은 귀찮음일 수도 있고, 두려움일 수도 있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혼자 며칠 밤을 새가며 독학한 것을 그대로 다 해주겠다는데도 싫다니...
그것도 죄다 나보다 인지능력이 뛰어날 젊은 친구들이...  ㅡ.ㅡ


그런데, 뜻밖에도 블로그를 보고 어느 분이 내게 요청을 하셨다.
너무 좋은 시스템인거 같아 회사에 적용을 하고 싶은데, 도와줄 수 있느냐고.

어제 시스템을 구축해서 활용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니, 너무 고마워한다.
고마워하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해주는 설명을 들으며 하나하나의 기능에 대해 감탄하는걸 보면서,
'이 사람은 정말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내가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몰라도 살고, 안다고 꼭 더 잘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은 새로움에 대한 탐구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것을 알아나가는 것.
그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재발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욕구는 한이 없다.
아무리 생활이 어렵고 경제가 안좋아도 웰빙을 테마로 한 아이템은 주목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마케킹에는 [건강] [웰빙]이 키워드다.
건강식품, 건강자석, 웰빙음료 웰빙음식... 등등...

사람들은 저마다 몸에 좋다는걸 챙긴다.
또 그런 분야의 지식이 보이면 잊을세라 스크랩을 한다.
신문을 오리고, 인터넷을 캡쳐해서 저장하고.

한때 열풍이 불었던 로얄제리는 외국, 특히 호주쪽 여행객들의 필수 구입품목이었다.
비타민의 일종인 센트륨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
신토불이로는 늙은호박, 구운마늘 등 셀 수도 없이 많고, 요즘엔 보이차가 인기인거 같다.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여 
특정 질병의 예방에 좋은 야채와 곡물을 소개하는 프로까지 있다.

그 프로의 제목이 하필이면 외래어인 [비타민]이라는게 좀 맘에 안들긴 하지만,
여하튼, 그 프로에 보면 무엇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많이 섭취하는게 좋다는걸 매주 알려주는데,
매주 알려주는게 다르다보니 열심히 보면서도 나중엔 뭐가 어디에 좋다는건지도 헷갈린다.
그저 모든걸 많이 먹어야할거 같은데, 그 많은걸 다 많이 먹으려면 정작 소화기관은 괜찮은건지...

사람들과 같이 식사를 하다보면 흔히들 이런 말들이 오간다.
- 이거 많이 먹으면 노화방지에 좋대..
- 이게 치매방지에 그렇게 좋단다...
- 이거 많이 드세요. 혈압에 좋대요...



사람들이 이렇게 건강식을 챙기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오래 살기 위해서다.
그래서 오래 사는데 좋다는걸 많이 먹으려 한다.

그럼, 오래 살려면 정말 뭘 많이 먹어야 하는가?
무엇을 많이 먹으면 오래살 수 있는가?

분명한게 하나 있다.
많이 먹으면 100% 확실하게 오래 사는 것.


그건 바로 나이다.

나이를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래 사는데 필요하다는건 많이 찾아 먹으면서도,
정작 오래 사는데 필수적인 나이는 먹기 싫어한다.

나이를 안먹겠다고 버티는건 더 이상 살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과 같다.
왜??  지금 이 나이에서 끝을 보겠다는 얘기니까.


오래 살려면 나이를 피하지말고 많이 먹자.
그리고  즐겁고 맛있게 잘 먹자.

아울러 나이와 함께 차려진 각기 다른 맛의 밑반찬을 가리지말고 골고루 먹어보자.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 편식을 한다. 그리고 편식을 하는 사람은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모른다.

재료도 다르고 양념도 다른 많은 밑반찬들.  이런 것들을 바라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
단 맛도 보고, 쓴 맛도 보고, 매운 맛, 짠 맛도 느끼면서 그렇게 나이를 먹자.

아주 많이, 즐겁게 먹자.

:

지지난 주말 남당리에 가다보니 눈에 보이는 논마다 황금물결이다.
금년엔 예년과 같은 태풍이 없어서 아주 대풍인듯 하다.

천고마비... 
굳이 한자로 표기하지 않더라도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풍요로움의 계절 가을이다.

누런 벼이삭이 풍년의 무게를 이기지못해 묵직하니 고개를 떨구고 있고,
오곡백화가 한 해의 결실을 맺고 있다.

이렇듯 가을은 넉넉함을 주는 계절이다.


하.지.만.

금년 가을은 왠지 무겁다.
대풍으로 쌀가마가 무겁고, 묵직한 밤자루가 무거워야 하는데, 또 사실 그렇기도 한데,
그 못지않게 무거운게 또 있다.

쌀가마를 지지 않았음에도 어깨가 무겁고, 묵직한 과일자루를 보면서도 마음이 무겁다.


환율은 마치 미친 X 널뛰기하듯 종잡을 수가 없고
분명히 전 세계의 중앙은행과 함께 우리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에서도 서민경제와 중소기업 안정을 위해
금리를 내린다고 했음에도 시중은행의 금리는 상상 이상으로 치솟고 있다.
이런 연유로 덩달아 물가는 넓이뛰기와 높이뛰기를 동시에 하고 있다.

경제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三高로 인해 요즘 일반적인 국민들의 생활은 거의 마비상태다.

어제 뉴스를 들어보니 국산차는 판매실적이 저조한데,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수입차의 판매량은 늘고 있단다.
백화점의 일반매장은 매출이 떨어져도, 명품매장은 더 활기를 띠고 있단다.
어떤 사람들인지 참 궁금하다.


재원이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재원이의 미국비자 연기가 요즘 그렇게 다행일 수가 없다.
이런걸 새옹지마라고 하는건지...

요즘 자녀들 외국에 내보낸 부모들과 해외주재원 가족들은 정말 죽을 맛일거다.
원화를 제외한 대부분의 화폐가치가 모두 올라가고 있으니 앉아서 폭탄을 맞는 셈이기 때문이다.


국가위기설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곤 한다.
제 2의  IMF 얘기도 나오면서 시중에서는 벌써부터 부동산을 미리 정리해야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부는 다소 어려움이 있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며 국민이 합심하면 극복할 수 있는 수준이란다.
누구 말이 맞는건지 모르겠지만, 이 [국민의 합심]이라는게 참 우습다.

지금 상황에서 일반국민은 합심할 건덕지가 없다.
정부에서는 외화유출 억제책으로 자녀들 어학연수 보내지 말라고 하고, 외국여행 자제하라고 하는데,
지금 그럴 정신있는 사람들이 국민의 몇 퍼센트나 되겠나...

공교롭게도 현 집권여당은 10여년 전 IMF를 맞은 당시 집권여당과 뿌리가 같다.
그러니 당사자들은 지금 그 속이 오죽하겠냐마는, 국민들은 참 답답하다.

경제는 심리라고 늘 말한다.
그런데 국민들은 심리적으로 불안하다.
집단구성원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을 때 리더의 할 일은 불안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 리더는 무엇을 하고있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감동적인 명연설 하나로 대중에게 집단최면을 걸던 시절이 아니다.
구체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상징성이라도 보여줘야한다.

여당에서조차 의구심을 가지고있는 경제수장에게 집권자는 무엇을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코드인사라는 것이 이념이나 사상이 비슷한 사람을 쓰는걸 얘기하는거 같았는데,
요즘은 성질이 비슷한 사람을 쓰는걸로 그 의미와 개념이 바뀌는 모양이다.


어쨌든,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고, 꿩 잡는게 매라고 하니,
잘만 풀리면 뭔들 어떻고 누군들 어떻겠는가...

제발 이 마비(馬肥)의 계절에 마비(痲痺)가 풀렸으면 좋겠다.

: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요며칠 엄청 사서 고생하고있다.
지난 주말 연휴는 이틀간 거의 밤을 꼬박 샜고, 어제 그제도 기능을 숙지하느라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못했다.
마음만으로는 밤을 꼬박 새우고라도 빨리 기능을 제대로 익히고 싶지만, 낮에 또 일을 해야하니 그럴 수는 없고.

아직 기본기능에도 익숙치않은데다 사용 툴에 대한 지식도 없다보니 뭐가뭔지 혼란스럽기만 한데,
그러다보니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기가막힐 정도로 한심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스킨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선택한 스킨은 모든게 영문으로 되어있는데, 드림위즈에서 한글에만
익숙해있다보니 작은 영어로 쓰여진 [Reply]를 못보고 답변을 다는 기본기능이 왜 없나 생각했다.
그러니 [M/D]를 놓고 수정과 삭제기능을 찾아 헤맨건 당연한거고.

이틀 밤을 새운 댓가로 기본기능을 익혀 스킨을 잡고 프레임을 잡았다.
그런데, 드림위즈와 비교하니 모든게 불편했다.

드림위즈는 별로 머리쓸 일이 없이 관리항목에서 체크.. 체크.. 체크.. 하면 세팅이 된다.
참 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드림위즈 블로그 툴은 잘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이다.
이번에 다른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드림위즈 블로그가 사용하기에 정말 편할 뿐 아니라
상당히 구조가 좋다는 장점이 있다는걸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드림위즈의 한계였다.
드림위즈 사용자 중 다른 곳으로 옮겨간 사람들의 '드림위즈는 몇년간 변화할 생각을 안한다.' 는 불만이
무슨 의미인줄을 몰랐었는데, 이번에 그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드림위즈는 편의성은 높지만, 다양성이 부족한 양면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블로그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좋은 드림위즈가 고급기능에 목말라하는 유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다른 블로그를 돌아보며 드림위즈에서는 보지못한 용어를 보았다.
[플러그인]. 

이 계통에 특별한 식견이 없이 그저 주어진 틀 속에서 평범하게 즐기던 나에게 [플러그인]은 상당히 생소했다.
[플러그인]이라는게 결국 블로그의 표출기능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소프트웨어를 뜻한다는건 알았지만,
[플러그인]의 종류가 워낙 많고 기능도 다양해 하나하나에 대해 이해하려는 엄두가 안났다.

티스토리에는 현재 활용할 수 있는 43개의 플러그인이 있다.
앞으로도 계속 개발이 될거라고 한다.  물론 블로그를 꾸미는데 그게 다 필요한건 아니다.
43개중 하나도 모르더라도 블로그를 꾸밀 수 있다.   그런데 남들이 꾸며놓은 블로그 중
좋아보이고 뭔가 특이해 보이는 블로그는 플러그인들을 활용했기 때문이란걸 알았다.

예를들면, 드림위즈는 대문기능 설정이 편하게 되어있다. 폴더관리에서 기본화면으로 설정해주면 끝난다.  
티스토리에는 기본화면 기능이 없다.  아무리 폴더관리를 뒤져봐도 세팅하는 기능이 없다.
그래서 안되는줄 알았다. 그리고 실망했다. 이런 기본도 안되어있는가...

그런데, [플러그인]의 소프트웨어 중에 초기화면을 만드는 [태터데스크]라는게 있다는걸 알았다.
이거 이해하느라 얼마나 헤맸는지.... 기능을 설명하는 매뉴얼은 있는데, 읽어도 뭔말인지 개념이 안잡힌다.
머리 나쁜 사람이 할 수 있는건 몸으로 때우는 것 밖에 없다.
모든 기능을 차례대로 마구잡이로 대입시키고 그랬을 때 나타나는 화면의 현상을 보며, '아~~ 이런거구나...'
대충 이해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엄청 짜증이 날만 했지만, 결과를 본 내 얼굴엔 만족스런 웃음이 번진다.
좋네....  깔끔하구만...^^ 
 
오늘 43종에 달하는 [플러그인] 각각의 기능이 뭔지 개념만 훑었다.  세부적인 효과는 아직 더 공부를 해야 한다.
모든 기능을 제대로 알고 충분히 활용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건, 머리 싸매고 낑낑 대는만큼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드림위즈는 분명 활용하기 좋은 블로그다. 
앞으로도 서버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쉽게 손을 떼지는 못할거 같다.
하지만, 벌써 마음이 티스토리로 기우는 것이 언제까지 마음이 변하지않을지 장담은 못한다.
단지 드림위즈에서 맺은 이웃과의 친분이 마음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티스토리는 알면 알수록 즐거움을 준다. 골치는 아프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다.
드림위즈에서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방문객에서 즐거움을 누렸다면,
티스토리는 누가 오지않더라도 하나하나 새로운걸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정작 스스로 고무되는 것은,

새삼 밤잠 설치며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는게 즐겁고,
복잡한 것을 포기하지않고 몰두하는 집중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
 
:
티스토리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요며칠 엄청 사서 고생하고있다.
지난 주말 연휴는 이틀간 거의 밤을 꼬박 샜고, 어제 그제도 기능을 숙지하느라 새벽 4시까지 잠을 이루지못했다.
마음만으로는 밤을 꼬박 새우고라도 빨리 기능을 제대로 익히고 싶지만, 낮에 또 일을 해야하니 그럴 수는 없고.

아직 기본기능에도 익숙치않은데다 사용 툴에 대한 지식도 없다보니 뭐가뭔지 혼란스럽기만 한데,
그러다보니 내가 생각해도 스스로 기가막힐 정도로 한심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자면, 스킨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선택한 스킨은 모든게 영문으로 되어있는데, 드림위즈에서 한글에만
익숙해있다보니 작은 영어로 쓰여진 [Reply]를 못보고 답변을 다는 기본기능이 왜 없나 생각했다.
그러니 [M/D]를 놓고 수정과 삭제기능을 찾아 헤맨건 당연한거고.

이틀 밤을 새운 댓가로 기본기능을 익혀 스킨을 잡고 프레임을 잡았다.
그런데, 드림위즈와 비교하니 모든게 불편했다.

드림위즈는 별로 머리쓸 일이 없이 관리항목에서 체크.. 체크.. 체크.. 하면 세팅이 된다.
참 편하다.  그런 의미에서
드림위즈 블로그 툴은 잘 만들어진 훌륭한 작품이다.
이번에 다른 블로그를 기웃거리며 드림위즈 블로그가 사용하기에 정말 편할 뿐 아니라
상당히 구조가 좋다는 장점이 있다는걸 알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게 드림위즈의 한계였다.
드림위즈 사용자 중 다른 곳으로 옮겨간 사람들의 "드림위즈는 몇년간 변화할 생각을 안한다." 는 불만이
무슨 의미인줄을 몰랐었는데, 이번에 그 의미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드림위즈는 편의성은 높지만, 다양성이 부족한 양면을 가지고 있다.
블로그에 입문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좋은 드림위즈가 고급기능에 목말라하는 유저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다른 블로그를 돌아보며 드림위즈에서는 보지못한 용어를 보았다.
[플러그인]. 


이 계통에 특별한 식견이 없이 그저 주어진 틀 속에서 평범하게 즐기던 나에게 [플러그인]은 상당히 생소했다.
[플러그인]이라는게 결국 블로그의 표출기능을 다양하게 만들어주는 소프트웨어를 뜻한다는건 알았지만,
[플러그인]의 종류가 워낙 많고 기능도 다양해 하나하나에 대해 이해하려는 엄두가 안났다.

티스토리에는 현재 활용할 수 있는 43개의 플러그인이 있다.
앞으로도 계속 개발이 될거라고 한다.  물론 블로그를 꾸미는데 그게 다 필요한건 아니다.
43개중 하나도 모르더라도 블로그를 꾸밀 수 있다.   그런데 남들이 꾸며놓은 블로그 중
좋아보이고 뭔가 특이해 보이는 블로그는 플러그인들을 활용했기 때문이란걸 알았다.

예를들면, 드림위즈는 대문기능 설정이 편하게 되어있다. 폴더관리에서 기본화면으로 설정해주면 끝난다.  
티스토리에는 기본화면 기능이 없다.  아무리 폴더관리를 뒤져봐도 세팅하는 기능이 없다.
그래서 안되는줄 알았다. 그리고 실망했다. 이런 기본도 안되어있는가...

그런데, [플러그인]의 소프트웨어 중에 초기화면을 만드는 [태터데스크]라는게 있다는걸 알았다.
이거 이해하느라 얼마나 헤맸는지.... 기능을 설명하는 매뉴얼은 있는데, 읽어도 뭔말인지 개념이 안잡힌다.
머리 나쁜 사람이 할 수 있는건 몸으로 때우는 것 밖에 없다.
모든 기능을 차례대로 마구잡이로 대입시키고 그랬을 때 나타나는 화면의 현상을 보며, '아~~ 이런거구나...'
대충 이해하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엄청 짜증이 날만 했지만, 결과를 본 내 얼굴엔 만족스런 웃음이 번진다.



좋네....  깔끔하구만...^^ 
이거..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대문을 꾸밀 수 있다.
 
오늘 43종에 달하는 [플러그인] 각각의 기능이 뭔지 개념만 훑었다.  세부적인 효과는 아직 더 공부를 해야 한다.
모든 기능을 제대로 알고 충분히 활용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건, 머리 싸매고 낑낑 대는만큼 만족감을 준다는 것이다.

드림위즈는 분명 활용하기 좋은 블로그다. 
앞으로도 서버가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쉽게 손을 떼지는 못할거 같다.
하지만, 벌써 마음이 티스토리로 기우는 것이 언제까지 마음이 변하지않을지 장담은 못한다.
단지 드림위즈에서 맺은 이웃과의 친분이 마음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티스토리는 알면 알수록 즐거움을 준다. 골치는 아프지만 그만큼 재미도 있다.
드림위즈에서 내 블로그를 찾아오는 방문객에서 즐거움을 누렸다면,
티스토리는 누가 오지않더라도 하나하나 새로운걸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정작 스스로 고무되는 것은,

새삼 밤잠 설치며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생겼다는게 즐겁고,
복잡한 것을 포기하지않고 몰두하는 집중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한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다.
 


:
나의 미래에 대해 알고싶은 것.
그건 일부 사람들만의 욕구는 아닐 것이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식구들에겐 어떤 일이 생길까...???
내가 구상하고 있는 일을 추진해도 좋을까?  과연 잘 될까??
이런   궁금증 혹은 호기심 때문에 생긴 단어들.
점. 사주. 역술...

붉은 천을 드리우고 이상한 문자나 그림으로 벽이나 천정을 장식한 채
젓가락통을 흔든다거나 작은 탁자에 쌀을 뿌리는 그런 집 말고,
나는 가끔 미래를 보여준다는 곳을 찾는다.

아무리 무늬만 교인이라지만 그래서 되겠느냐는 뼈속교인의 준엄한 질책이 있을 수 있지만, 
역술은 학문이라는 논리로 당위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것이 무늬만 교인의 강변이다.

역술이란게 전혀 근거없는 것만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된 것은 고모님 때문이다.
교사로 정년퇴임하신 고모님은 퇴임후 무료함을 달래기위해  역학을 공부하셨는데,
명절 때 마다 재미삼아 가족들의 사주를 보아주시면 그 신기함에 모두가 환호를 하며
저마다 앞다퉈 고모님께 생년월일을 내밀었다.

취미생활로 시작하신 고모님의 아마추어 실력이 저 정도라면 제대로 공부를 한 프로들은 어떨까???



역술가가 풀어주는 사주가 다 맞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게 다 맞는다면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역술 혹은 사주풀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무엇이 좋다면, 내가 어떤 일을 추진하는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좋지않은 이야기를 들으면, 매사 좀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조심하는 계기로 삼는다.

아무리 내 운세가 좋다 하더라도 아무 것도 행하지않고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하다못해 복권을 사는 행위라도 해야 당첨을 기대할 수 있다.
운세가 좋다거나 운이 온다는 말은 가만있어도 뭐가 된다는게 아니라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면 내가 하고자하는 일에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는 믿음을 갖게하는 것이다.

운이 안좋다고 하여 아무 것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지않은가.
사람들을 조심스럽게 대하고 의사결정을 해야할 사항에 대해
평소보다 면밀하게 검토하는 등  경거망동하지않는 처신을 하도록 노력하면된다.

운이라는 것은 살아가는데 수반되는 하나의 요소다.
운은 다소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삶의 재료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더라도 사용법을 모르면 의미가 없듯이
운도 쓸 줄을 모르면 무용지물이고, 제대로 못쓰면 가치의 극대화가 안된다.
 
운이 없다는 것은,  없는게 아니라 주어지는 순간 한눈을 팔아 보지못하는 것이다. 


역술에 대한 지름신이 강림하면 나는 몰아쳐서 여러 곳을 다니는데,
여기엔 나름대로 이런 이유가 있다.

역술가에 따라 개인차는 있겠지만, 
소위 멍석깔고 영업(?) 하시는 분들이 그래도 완전 맹탕은 아닐거라는 전제하에
여러 역술가의 풀이를 듣다보면 여러가지 중에 비슷하게 짚어내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렇게 여러사람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항은 그만큼 발생확률이 높다고 인정하고
좀더 신경을 쓰고자 함이다.  통계치의 축적을 통한 확률게임이랄까.

사주라는걸 어느정도는 인정하지만 100% 믿지는 않는다.
동일한 생년월일 동일한 時에 태어난 사람들이 지구상에 많을진데,
그 사람들의 운명이나 삶의 결과가 모두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시각에 태어났더라도 결국 각자의 환경과 개인의 성격 등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사주(역술)은 재미로 생각해야한다.
내 삶에 대해 누군가가 전해주는 가벼운 충고나 Tip으로 생각을 하면 즐겁다.

이런 성격때문에 잘될거라면 그 성격을 살려가면 되는 것이고,
이런 성격때문에 문제가 있다면 그 성격을 바꿔보려고 노력하면 된다.


사주는 현미경이나 망원경이 아니다.
내 삶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나의 먼 미래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주는 잠망경일지 모른다.
물 밖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시원스레 보여주진 않지만
빙빙 돌려가며 부분적인 것을 보며 항로를 판단해야하는...

그런데, 나는 사주가 프리즘이 아닐까 싶다.
능력과 노력, 그리고 생각이라는 삼각기둥 속에 있는 개개인의 세계가
각자의 삼각기둥을 어떻게 돌리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
역도에서 다리에 쥐가 나 앞으로 넘어지면서도 끝까지 바벨을 놓지않아
전 세계에 바벨투혼의 감동을 보여준 이배영선수.

'국민의 세금으로 훈련을 했는데, 국민들께 보답을 못해 죄송합니다.'

국민세금에 대해 신경쓰는 선수는 처음이었다.  정말 잔잔하면서도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극심한 슬럼프를 겪으며 야구 준결승 한일전에서 8회 역전 투런홈런을 친 이승엽선수.

'정말 너무너무 미안했습니다.  감독님과 후배들과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울먹이는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겪었을 마음고생과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가 왜 수퍼스타인지를 알게해준 한마디였다.



뚝심으로 남자구기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일궈낸 야구대표팀 김경문감독.

'결과가 좋으니까 모든게 다 좋게 포장되는거 같습니다. 
 선수들이 잘해줘서 제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용병술이 뛰어났다는 칭찬에 답하는 그의 겸허함에서 왜 선수들이 기대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지 알 수 있을거 같다. 



동메달 결정전 경기종료 1분을 남기고 작전타임을 부른 여자핸드볼대표팀 임영철감독.

'이건 너희들이 이해해야돼. 언니들 마지막 올림픽이야.'

그리고 남은 1분을 벤치에 앉아있던 고참들로 교체하여 일생의 마지막 올림픽을 장식하게 해준 아름다운 배려.
이런 멋스런 리더쉽이 있었기에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매번 올림픽에서 우리를 감동시키는가 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그것은 행동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마음에서 나온다는걸 깨닫게 된다.

환희의 기쁨과 벅찬 감동을 준 당신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바칩니다.
:
올림픽이 시작됐다.  앞으로 보름간은 TV보는 맛에 산다.
그리고 나만 아니라 많은 국민들이 환호와 탄식을 반복할 것이다.

주말에 우리나라는 유도, 수영, 양궁에서 금메달 세개를 낚았다.
하지만, 경기 전 금메달에 대한 기대감은 달랐다. 
양궁은 당연시 되는 종목이었고, 수영은 많은 기대를 걸면서도 조금은 반신반의 하는 분위기 였으며, 
따면 좋은 유도의 [최민호]는 인지도에서 많이 밀리는 편이었다.

그때문인지 금메달을 딴 순간의 국민들의 반응 역시 조금의 차이는 있었다.
세 종목의 결과에 모두 환호하며 기뻐하는 것은 같았지만, 강도와 느낌은 조금씩 달랐을 것이다.
아무래도 건국이래 수영 최초의 금메달인 [박태환]에게 가장 열광한거 같고,
다섯판을 내리 한판승으로 통쾌하게 장식한 유도의 [최민호]에게서도 강한 인상을 갖지않았을까 싶다.

흥미로운(?) 것은 금메달리스트인 당사자들의 대조적인 모습이다.
유도 금메달리스트 [최민호]는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흘린 감격의 눈물이 시상식까지 이어진 반면,
수영의 [박태환]은 금메달 확정 후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이 승자 임을 관중에게 인식시키고는
시상식 때도 시종일관 웃음을 띠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인터뷰의 모습도 그랬다.


같은 금메달을 따고도 스물여덟의 베테랑 선수는 오열을 했으며, 열아홉의 어린 선수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 두 사람의 모습을 그렇게 상반되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것을 [절박함]과 [여유], 그리고, [恨이 맺히며 하는 운동]과 [즐기며 하는 운동]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즐김의 의미가 대충 한다는 뜻이 아니다.

아테네올림픽 준결승에서 좌절한 최민호는 그의 나이를 감안할 때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다.
아테네올림픽에서 실패했지만 박태환은 이제 시작하는 나이다.

최민호는 그간 큰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이 없다. 
박태환은 작년 세계선수권 우승 및 월드시리즈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최민호는 그만큼 매스컴의 관심도 적었고 인지도도 낮다.
박태환은 그래서 늘 매스컴의 중심에 있으며 광고까지 찍어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최민호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뿐 아니라, 운동선수로서 장래에 대한 보장도 약하다.
박태환은 이번이 아니더라도 계속 기회가 있으며 장래를 걱정해야할만큼 여건이 나쁘지도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나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최민호는 [없어서] 운동을 한 사람인 반면, 박태환은 [있어서] 운동을 한 사람이다.

[이게 아니면 안되는 사람의 절박함]은 [이게 아니더라도 괜찮은 사람의 여유로움]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세계 정상급의 기량으로 4년마다 한번씩 온 국민을 열광시키며 감동을 주는 핸드볼이나 배드민턴선수들은,
왜 지역예선도 제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농구나 배구선수들이 자신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대우를 받고 
많은 인기를 누려야 하는지에 회의가 들 것이다. 

예선에서 탈락한 인기종목의 선수들은 눈믈을 보이지않지만,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비인기종목의 선수들은 진한 눈물을 보여준다. 

남은 기간 더 많은 소외받은 선수들의 한풀이 눈물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주인의식을 가지라.' 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신입사원에 대한 높은 분의 훈시에는 거의 단골로 사용되는 단어가 [주인의식]이다.

하지만, 나는 강의를 다니면서 주인의식을 강조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인의식] 의미를 다소 폄하(?)하곤 했다.

신입사원이든, 중견사원이든, 혹은 신임간부사원의 교육과정에 강의를 나갈 때 나는 이런 내용을 전하곤 했다.


여러분들은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주인의식...  이 말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주인의식이란 표현은 여러분에게 적합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강조해도,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결코 이 조직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내가 주인에게 가장 인정받고 신뢰받는 주인의 바로 밑에 까지는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내가 이 회사의 주인까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회장께서 언젠가 여러분들 중 한사람에게 이 회사를 넘겨주실거라고 보는가?  
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주인의식을 갖고 일 했는데
왜 내게 주지않느냐고 불평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고...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강조를 하면 똑똑한 머슴들은 오히려 냉소를 보이며 생각할 것이다.
'내가 주인이 못된다는거 뻔히 알고있는데, 왜 이리 사탕발림으로 꼬시시나...'

반면에, 무지한 사람은 주인의식을 가지라면 정말 자기가 주인인걸로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든걸 자기 멋대로 하려하고, 회사비품도 집에 가져가려 한다. '내가 주인인데...' 하면서.

때문에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이래저래 의미가 없다.
그럼,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하는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의식이 아니라, [주인공의식]이다.

드라마에는 꼭 회장만이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위치의 사람들은 조연이하일 경우가 많다.
드라마 주인공의 신분은 무척 다양하다.  평범한 회사원역도 있고, 시골의 머슴역으로도 나오고,
여러분과 같은 신입사원도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성공한 전문직이 주인공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그러면, 주인공 역이 무엇이든, 드라마에서 주인공역을 맡는 연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연기력이다.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이 비중있는 역을 맡고 연기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비중이 약한 역을 맡게되는게 섭리다. 가끔 소위 빽에 의해 연기력이 약한 사람이 비중있는 역을 맡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시청자에 의해 퇴출을 당한다.
  
연기력이 좋은 사람은, 바보역을 맡았을 경우 정말 바보같은 표정과 행동을 연기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그 배역이 정말 바보처럼 보여지게 만든다.
바보 역을 맡은 사람이 그 역을 어색하게 느낀다면 그는 시청자들에게 좋은 연기자라는 평판을 들을 수가 없다.
결국 연기력이라는 것은 그 역에 가장 어울리는 행동을 말한다.

그렇게 무슨 역을 맡든 그 역에 가장 어울리는 행동으로 그 역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에게
점점 비중있는 배역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런 단계를 거치면서 출연료도 올라가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높히며 스타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높은 연기력을 인정받기까지에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포기하지않는 집념이 필요하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게되든, 또 하는 일이 마음에 들던 안들던 간에
그 역할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 해라.
좋은 배우는 마음에 들지않는 역할에도 최선을 다해 좋은 연기를 보이려 노력한다.
여러분도 '내 배역이 주연이고, 내가 주인공' 이라는 생각을 가져주기 바란다.
설사 누가 쉽게 알아주지 않더라도 무명의 긴세월을 이겨내고 정상에 선 연기자들을 생각해보자.
연기자가 배역에 충실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고 출연료도 오르듯, 여러분도 여러분의 배역에 충실할 때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되며 연봉도 오르게 될 것이다.  

아무도 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이 회사의 주인공은 될 수 있는거 아니냐???



어디서든, 누구든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설사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다.

열정이 따라갈 목표만 있다면 말이다.
:

나는 TV 프로를 쟝르 구분없이 두루두루 폭넓게 보는 편이다.
밤에는 TV를 볼 기회가 별로 없지만 주말에 TV를 틀면 이것저것 특별히 가리지않고 본다.
가장 즐기는건 토론프로와 고발프로, 그리고 스포츠프로지만, 음악, 코미디, 드라마까지 다 즐긴다.

가끔 일일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남들이 경이롭다는(?) 눈길을 보낸다.
무슨 남자가 일일드라마까지 꿰고 있냐고...
근데, 사실 내가 일일드라마 방영시간에 집에 있을 수도 없다.
그저 어쩌다 우연히 재방송 한두번 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드라마라는게 스토리가 뻔한거 아닌가. 갈등구조라든지 스토리전개가 대충 그려지니까...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면 정말 짜증이 절로 나는 쟝르가 있다.
소위 연예인을 중심으로한 오락프로와 오락성 토크프로.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나, 특히 주말 저녁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보이는 얼굴들이 거의 똑같다. 
게다가 보여주는 내용이나, 행동, 그리고 말투도 다르지가 않다.
정해진 몇명이 이리저리 매트릭스처럼 조합을 이뤄가며 프로의 이름만 달리 할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방송에 나타난 변화 중의 하나는, 프로를 이끌어가는 MC의 교체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닌, 주체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아나운서가 대부분이던 MC의 자리가 어느순간 연예인으로 채워진 것이다.
오락프로는 물론, 토크프로와 시사프로까지 연예인으로 점령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연예인의 대부분은 개그맨 출신이다.

연예인이 프로를 진행한다고 해서 문제시 삼을 일은 아니다.  
연예분야의 전문성을 살린다거나, 연예인의 끼를 살려 더 부드럽고 흥겨운 진행이 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 개그맨이라고 안될 이유는 없다. 
연예쟝르 중에 가장 순발력을 요하고, 기지를 요하는게 개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좋고 입담 좋은 사람이 자칫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을 재치있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놀랍고도 부럽다.


그런데, 요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그들의 방송에 대한 인식이다.
언제부터인지 MC들과 패널들의 대화가 자유로움을 빙자한 장난투로 변하는가 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처음 한두사람에 의해 전파(?)되던 이런 행동이 유행을 넘어 당연한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는듯 하다.
소위 호통개그의 원조라는 이**를 비롯해, 박**, 김**, 전** 이 기세를 부리더니,
이제는 지**, 탁** 까지 거명하기도 숨찰 정도로 많은 연예인들이 너도나도 따라하기 바쁘다.
아니 따라하는 정도가지고는 양이 안차고 자극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점점 강도가 높아지더니,
이제는 아예 집단MC들이 출연진을 대놓고 윽박지르는 양상까지 치닫고 있다.

그런 현상에 불을 지핀 공로자가, 온라인방송 출신이라는,
이름(어차피 가명이겠지만)도 방송용어로는 비속어인 김**.
함께 하는 출연자 뿐이 아니라 시청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가히 안하무인격인 그의 언행을 보면
기가참을 넘어 역겹기까지 하다.


방송을 公器라고 한다.  국어사전에 명기된 公器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이용하는 도구.
2 공공성을 띤 기관이나 관직을, 사회의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르는 말.
   신문이나 방송 따위의 언론 기관 따위가 이에 속한다.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사회 구성원 전체는 방송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미래를 담당해야할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영향을 받고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숨 뿐이다.


모든 것에는 지켜져야하고 지켜줘야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방송이 상업화되고 시청율을 쫒는 해바라기가 되어버렸다지만,
방송 스스로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지켜야할 선은 방송인 모두가 스스로 지켜줘야한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송인이라고 말하고, 방송에서도 그들을 칭할 때 방송인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정말 자신들이 방송인이 맞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더 이상 오염시켜서는 안된다. 


또한, 방송은 시청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듯, 시청료를 내고 방송을 본다.

때문에 방송은 민의를 대변하며, 새로운 소식과 폭넓은 지식의 전달을 통해 시청자의 안목을 높혀줄 수 있어야 한다. 
오락프로의 경우는 시청자에게 건전함을 바탕으로한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의 방송 오락프로는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게 아니라, 출연자 그들만의 즐거움을 시청자가 지켜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반말은 기본이고, 막말에,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행동들을 보면 
이게 과연 공영방송이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이 있다.  
출연하는 연예인들이야 튀는 모습을 통해 존재감을 알려야한다는 생존의 문제 때문이라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프로를 만드는 PD를 비롯해 제작과 편성을 책임지는 책임자들이 가지고있는 인식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실질적으로 방송의 기능을 정의하는 그들이 방송에 대해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묻고싶다.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公器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인지...
아님, 교내 방송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아마츄어들인지... 


요즘 언론은 연일 광우병과 관련된 보도로 넘친다.
거리엔 며칠째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건강에 위해한 위험요소가 근본적으로 제거될 때 까지 쉽게 멈추지 않겠다는 기세다.

그렇다면,
국민의 정신건강, 그리고, 사회의 건강한 도덕성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도
이렇게 모든 언론과 모든 국민이 나서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신체적 오염이나 훼손은 의학의 발달과 함께 특효약에 의한 단기치유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의 오염이나 훼손은 특효약이 없다는게 문제다.
특히 지각력이 떨어지고 무의식을 통한 대중에의 전염성이 강해 장기적으로도 집단치유가 쉽지않다.

출연진 스스로가 자정을 하지 못하고,
이미 공범이 되어버린 제작자들이 문제인식을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시청자들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시청자마저 더이상 집단최면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근데...  어떻게 잡아야하지???
힘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뭉치는 것 뿐인데, 이미 많이 물이 들어버렸으니...

     
문득 유재석, 신동엽, 서경석 같은 이름이 생각나는건 왜일까...

:
다른 블로거의 사이트를 다니다보면 가끔 이런 문구를 보게 된다.

[이 폴더는 덧글 보기/쓰기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런 문구를 접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두가지다.

[Thanks...] - 블로거라면 대개가 생각하는 블로그 에티켓 중의 하나가 내 집에 방문하신 분을 답방하는 것.
그런데, 빈손으로 남의 집 방문하는게 좀 찜찜한 것 처럼 블로그 방문해서 그냥 흔적없이 나올 때도 그런 경우가 있다.
사이트의 성격이나 포스팅의 내용이 내 성향과 다를 경우에는 덧글을 다는게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위와 같은 문구가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반면에, 평소 교류가 있었던 분의 사이트에서 저런 문구를 접하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뭔 일이 있는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가 어색하다.


덧글쓰기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본인의 성격에 의한 것.
블로그를 자신의 일상을 담고 돌아보는 자기만의 기록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내 집에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걸 원치않을 수 있다.
또 그런 댓글에 일일이 댓글을 다는게 번거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이 찾아오는건 어쩔 수 없지만,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건 본인의 성향이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 다른 이유는, 블로그에 달린 댓글로 인해 상처를 입은 경우다.
광고성 댓글이야 짜증이 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방문객들 끼리 댓글을 통해 논쟁을 벌인다던지,
혹은, 내 글과는 무관하게 특정인들끼리 마치 채팅을 하듯 지나친 댓글을 주고받는다는지... 
이런 행위는 가끔 어이없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건 나를 편하게 생각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지만,
이보다 더한 경우가 소위 모독성 표현이나 스토커 비슷한 행동, 그리고 음해성 악플같은 것.
이런 경우는 인격을 모독당하거나, 인권을 침해당하는 것 처럼 참기가 힘들다.
주로 여성분들의 블로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거 같다.  

전에도 몇몇분이 이런 일로 깊히 상처를 받고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오늘 한분이 내게 쪽지를 남겨주셨다.    
[블로그에 이상한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분간 모든 글쓰는 란을 닫는다]는...


오픈된 공간이니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을테고, 생각하는 바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나친 관심의 잘못된 표현이나 과도한 예의 역시 상대방은 불편할 수 있다.

차제에 나 역시 관심과 예의라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
술자리에서 의례하는 의식(?)이 있다.
첫 잔은 모두 함께 잔을 높히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 - 소위 말하는 건배다.

소수일 경우에는 구호를 외치며 모두의 잔을 함께 가볍게 맞대고,
다수일 경우에는 잔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친 후 앞사람 옆사람 등 가까운 사람끼리 잔을 맞댄다.

언제부터, 또, 왜 그러는지는 아마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 같다.
옛날에 술을 통한 독살의 위험을 서로 방지하기 위하여 서로 잔을 부딪히며 술이 튀면서 섞임으로써
서로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함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누구든 태어나서 처음 술잔을 잡으면 이 건배부터 배우게 된다.
아마 서로에 대한 친근감과 일체감의 표시, 그리고 함께 하는 공동체의 목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함이 아닐까.

세계 각국에 건배 문화가 있는 것을 보면
술을 앞에 놓고 생각하는 마음은 인종을 떠나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건배시의 구호를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치어스]라고 하는거 같은데, 같은 영어권이면서도
캐나다에서는 [토스트]라고 한다고 들었다.  왠 토스트???  (이건 칼라님이 아실라나...)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몇가지 주워들은 서당개의 풍월로 네덜란드에서는 [프로스트]라고 들었고,
프랑스의 구호는 발음이 어려워 잊어먹었다.  당시 무슨 티켓에 메모를 했었는데... 없네...

한자문화권인 동북아시아의 경우, 우리는 [건배], 일본은 [간빠이]라 하고, 중국은 [칸페이]라고 한다는데, 
한자를 읽는 언어상 발음의 차이일 뿐 한자는 똑같다.
 
건배의 한자표기 [乾杯]의 乾은 [하늘 건]이라는 뜻 외에도 [마를 건]이라는 뜻도 있다.
한자 풀이만으로 직역하면 [잔을 마르게 한다]는 의미이니, 결국 [잔을 비우자]는 의미가 되겠다.
결국 주당들이 호방한 모습으로 소리높여 제창하는 [원샷]이 건배의 정확한 의미가 아닌가 싶다.


하고싶은 얘기를 꺼내기 위한 서두가 너무 길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건배구호에 대한 이갸기를 하려했던 것인데...

건배구호를 들여다보면 짧은 구호 속에도 시대의 시류가 포함되어 있음을 느낀다.
삶의 모습과 정신, 그리고 톡톡 튀는 풍자가 집단의 구호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건배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간은 [위하여~~~]다.
[위하여]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가장 롱런하고 있는 건배구호의 바이블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위하與]는 여당의 구호이고, 야당은 [위하野]라고 해야한다고 하지만, 어쨌든 스테디셀러다.

직장인들의 단체회식장소에서는 이 [위하여]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위하여!' 하고 선창을 하면  모두가 만세삼창을 하듯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하고 화답하는데,
이때 원칙은 '위하여'를 길게 끌지않고 단호하고 기백있게 스타카토로 짧게 끊어쳐야 한다는 점.            

예전 내가 학창시절에는 [지화자 좋다]라는 구호를 시용하기도 했다.
사회자나 모임의 좌장이 '지화자~~' 하고 선창을 하면, 참석자들이 '좋~~다~~~' 하고 화답을 한다.
이건 [위하여]와는 반대로 자락을 길게 끌어줘야 한다.  고유의 토속적인 흥겨움이 묻어나는 구호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한때 [개나발]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의미인데, 산업화시대 말기 노사간의 갈등 해소를 위해
주로 직장에서 유행한 구호라 할 수 있다.

1990년 IMF가 도래하면서 생긴 구호는 역시 [IMF]다.
IMF로 인해 직장을 잃은 동료들끼리 모여 한잔 술과 함께 마음을 달래며 자신들의 처지를 희화화한 구호.
'I am F'  대학 F 학점을 비유하여 자신들은 사회의 실패자(a failure) 혹은, 바보(fool) 라는 자조적인 아픔이 담겨있다.

건배 구호는 아무래도 술자리모임이 잦을 수 밖에 없는 직장과 관련된 구호가 많은데,
[개(계)나리]라는 구호도 역시 직장에서 제조(?)된 구호다.
이 구호는 평소 위계질서가 비교적 엄한 조직에서 분위기쇄신 차원에서 사용되는 구호이다.
[계급장 떼고, 나이 잊고, Refresh하자]는 의미로, 권위를 버리고 하나가 되자는 의미.

또한, 외곽지나 오지, 혹은, 근무여건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구호가 있다.
[나가자].  [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묵묵히 일하자는 다짐.


년령층에 따라 달라지는 구호도 있다.

사십대 중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구호 [진달래]는 [진하고 달콤한 미래를 의하여]라는 의미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있지만, 이게 변형되어 가끔은 여성에 대한 작업용멘트로 쓰이는 모양이다.

오십대의 구호는 [나이아가라]다. 한사람이 '나이야~~' 선창하면 일행이 '가라~~'라고 화답한다.
나이를 잊고 열심히 재밌게 살자는 뜻.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노년층의 구호는 [구구팔팔 일이삼사]라고 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이틀 앓다가 삼일째 깔끔하게 죽자]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다가
자식 속 썩이지말고 깨끗하게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인 것이다.
    
반면에, 술을 즐기는 예전 세대의 호방한 집단 음주문화보다 
술 보다는 분위기를 즐기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구호는 그들의 술에 대한 취향만큼이나 모던하다.
예를 들면, 20대들은 [원더걸스] 같은 구호를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원하는 만큼  더하지말고 걸러가면서 스스로 알아서 마시자]라는 의미로, 과음하지말고 주량껏 마시면서 즐기자는 
신세대들의 감각이 돋보이는 구호라고 생각된다.  사실 바람직한 얘기다.


최근엔 상당히 세련되면서 낭만적인 구호도 많이 생성되고 있다.  
[멋지게, 진솔하게, 인생을 생기있게]라는 뜻을 담은 [멋진인생]이라는 구호도 있지만,
비슷한 내용의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배구호가 있다.  

당.신.멋.져.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그리고 져주면서 살자.

내가 이 구호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마지막 문구 - [져주면서 살자] 때문이다.
각각의 멘트가 좋지만, 특히 져주면서 살자는 말이 은근하게 와닿는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져주는] 삶.  
져주는 것이 항상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갖추지 못하고 부족함이 많아 보일 때 져주는 것은 [져주는 것]이 아닌 [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음과 정신이 여유롭고 객관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져주는 모습이 멋지게 보이는 것이다.  

중후한 인생의 멋이 묻어나오는 [당신멋져].
정말 그렇게 당당하고 신나고 멋지면서도 져주면서 사는 넉넉함마저 보여줄 수 있다면
남들이 나에게 '당신 멋지다.' 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내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정겨운 이들과 함께 어울릴 술자리가 있다면 술잔을 맞대며 외치련다.

당신멋져~~~
:

블로그를 하다보면 도움이 되는 것들.


1. 기록문화가 확립된다.  
    평소 같으면 그냥 흘려보내기 쉬운 자기의 생각이나 일상을 나중에라도 돌아볼 수 있다.
    아~~  내가 언제 어떤 생각을 했었구나...    아~~ 내가 그때 거길 다녀왔구나...

2. 생각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글을 올리든, 사진을 올리든, 일단 어떻게 올릴 것인지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표현 하나에도 좀더 신중하게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3. 생활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점.
    며칠간 글이나 사진을 올리지않으면, 왠지 그 며칠은 아무 생각없이 지낸거 같다.
    그러다보면 뭔가 일을 벌려야 할거 같고, 무슨 생각이라도 해야할거 같다.

4.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여러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만의 관점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기도 한다.

5. 뭔가 하나라도 배우게되는게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배우는 것도 있지만,  글을 올리다보면 철자법 같은 것이 애매할 때도 있는데,
    그럴 경우 사전을 찾아보며 잊혀져 가는 것을 다시 익힐 수가 있다.
    비단 철자법 만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나 상식적인 것도 새롭게 찾아보게 되는 것이 많다.

6.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알게 된다.
    평소 생활의 틀 속에서 접하던 계층의 사람들이 아닌, 다양한 지역, 다양한 연령층,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런 만남을 통해 단조로왔던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그 외에도 사람들마다 블로그를 통해 얻거나 즐기는 것이 다 다를 것이다.
위에 몇가지 생각나는대로 언급한 것만 보더라도
블로그 - 이게 정말 정신을 늙지않게 하는 도구 [不老具]가 아닐까 싶다.

:




어느덧 여든 중반이시고 여든을 바라보시는 두분.

비슷한 연배분들에 비해 무척 건강하시지만,
걸음의 보폭이 작아지고 계단을 오르실 때 허리가 숙여지는 모습에서
어쩔 수 없는 세월을 느끼게 된다.


나이를 먹어서도
부모는 늘 든든한 존재이고 싶은데,
나이를 먹으며 부모에게 서운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자라면서 가끔은 이해가 안될 정도로 엄한 꾸지람을 들으며 서운함도 느꼈었지만,
어느순간 분명히 한말씀 하실만 한데도 말을 아끼시는 모습에서 그때와는 다른 더 큰 서운함을 느끼게된다.


나에 대한 꾸지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음을 느낄 때,
그리고 내가 드리는 말씀에 알아서 하라며 특별한 언급없이 동의하실 때 마다
마음이 뿌듯해지기보다 예전의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워지며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부모님의 나이드심이 아쉽고, 그런 작아져가는 모습에서 애잔함을 느끼면서도
그런 부모님보다 아이들에게 먼저 관심이 가는건

나도 부모이기 때문일까...
아님, 내가 아직도 철이 덜든 자식이기 때문일까...

後에 재원이나 지연이가 우리보다 자식들에게 더 신경을 쓰더라도 서운해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

1960년대 말 군사적목적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1990년대 웹의 개발과 함께 인류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터넷은 그 기능과 특성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그런 인터넷의 특징을 살펴보자.


각종 동문사이트나 동호회활동으로 사람들을 만나게하는 人터넷은  
더 나아가 다양한 채팅으로 인연을 맺게 해주는 姻터넷이 되기도 한다.

독특한 개성과 전문성있는 블로그로 많은 누리꾼에 의해 스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는 認터넷도 되며,
때로는 악성게시물과 무분별한 댓글로 인해 문제를 야기하는 因터넷의 경우도 있다.  

이렇게 중독성 강한 특성으로 사람들을 잡아끄는 引터넷은, 
그러나 각종 해킹으로 인한 피해, 그리고 예기치못한 장애와 버그로 인해 버벅거리며 속도가 늦어질 때는
끓는 속을 쓸어내리며 답답함을 참아야 하는 忍터넷이 되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기능과 특성을 갖고있는 인터넷.
이미 이메일 등으로 전 세계를 동시생활권으로 만든 인터넷은 앞으로도 파워풀한 하드웨어의 개선과
상상을 초월하는 웹의 진보로 5억㎢의 지구촌을 이웃으로 만드는 隣터넷으로 진화할 것이다.

:
예전 조선시대 선인들을 보면 한 사람을 칭하는 여러개의 이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인의 본명 이외에 어렸을 적에 부르는 아명(兒名), 그리고 장가를 간 후에 이름대신 불렀던 자(字),
그리고, 본명이나 字 이외에 허물없이 사용하기 위해 지은 호(號)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기 이름 하나만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랬는데... ... 오로지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 하나만으로 한평생을 살아갈줄 알았고,
호(號)라는 것은 유명인사나 지체높으신 분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요즘은 인터넷을 좀 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이름들을 갖게 되었다.
  
글을 쓰는 문인이나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필명.
그 필명이라는 것이 인터넷시대와 함께 누구나 사용 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필명에도 약간의 흐름이 있는거 같다.
처음에는 인터넷 등에 자신을 노출하기 싫어하는  익명본능에 의해 필명을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알파벳의 이니셜을 사용한다던지, 혹은 그냥 상징성만 표시한다.
인천싸가지, 얼굴없는 그림자, 석양의 노숙자, 지나가던 사람... 예를 들자면, 뭐 이런 식이다.

조금 멋을 부리는 낭만주의자는 좀더 세련되게 한다.
프리스타일, 푸른계곡, 제로존...  이런 유형이다.

주부들은 엄마라는 뜻의 영어 애칭인 마미의 줄임표현인 [맘]을 아이이름 뒤에 붙이는걸 즐기는 것 같다.
수니맘, 제인맘...  등등...

인터넷의 온라인 상에서 그렇게 통용되던 필명이, 인터넷을 통한 번개모임이나 동호회모임 등의
오프라인 모임으로 활성화되면서 또 한번의 변화를 맞는다.
서로가 인터넷의 필명에 익숙하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도 서로를 필명으로 호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부르기 편하고 기억하기 편한 필명을 사용하게 된다.

온라인을 매개로 한 모임에서 필명은 참으로 효과적인 호칭이다.
실명을 사용할 경우, 서로 나이 차가 나는 경우 이름에 [氏]를 붙여 부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직함을 함께 부르자니, 요즘 직함이 어디 한두개인가...
교수님, 원장님, 사장님, 또 전무님, 상무님, 이사님...  워낙 복잡하니 헷갈리기 일수다.
그에 비해 필명은 끝에 [님]만 붙여 부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주 편해 좋다.


사람들이 필명을 정하는 모습을 보면 참 재밌다.
회사이름을 사용하는 분, 동네이름을 사용하시는 분, 또 아이들의 이름을 따서 사용하시는 분도 계시고,
종교를 갖고 계시는 분들은 종교 이름을 사용하시는 분들도 많다.

처음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을 하면서 필명을 무엇으로 할까... 많은 생각을 했다.
나 역시 당시 온라인 상에서 사용하던 필명이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표내지 말자는 의미로 사용하던 [달그림자].
하지만, 서로 만나 호칭을 하기에는 [달그림자]는 어딘가 좀 멋적다.
내 스스로 '달그림잡니다.' 하는 것도 어색하고, 공공장소에서 누가 나를 부를 때를 생각하니 서로 왠지 쑥쓰럽다.


나만의 생각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의미를 담고,
'ㅇㅇ라고 전해 주십시요...'  이렇게 말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울 수 있고,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부르더라도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편할 수 있고,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 세월에 어울릴 수 있게 가볍지 않으며 낭만적인 필명이 무얼까... 

그런 나름의 기준으로 만든 필명이 지금의 [江河]다.
큰 내 江, 물 河...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자는 내 삶의 의미를 담고,
전화를 걸어서도 '강하라고 좀 전해 주십시요' 하더라도 전혀 어색함이 없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후배가 '강하兄~~~' 하고 크게 불러도 부르는 사람이나 나나 자연스럽고,
그리고 내 나이 칠십이 넘어 묘비에 넣어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 것도 같다.
게다가 발음하기도 편한 것 같고...


이제 [江河]는 내 이름보다 더 친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또 하나의 내 이름이 되어버렸다.
동호회 후배들의 자녀들도 나를 [강하아저씨]라고 부른다.

집사람도 '발음도 부드럽고 나이들면서 사용하기에도 품위도 느껴지고, 당신 이미지와도 잘 맞는거 같다.' 며
필명을 참 잘 만든거 같단다.

아이들의 필명을 생각한다면, 위에 설정한 기준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글로벌시대에 맞게 영어 표기도 자연스러운 것.

그런 의미에서 지연이의 필명은 참 맘에 든다.  [mio].
이 [mio]라는 이름이 지금은 브랜드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지연이가 저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 브랜드가 나오기 훨씬 전인 지연이가 중학생일 때라고 기억한다.  
지연이는 연출을 하면서 나름대로 또 하나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Yi RiJin].  mio 라는 이름에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의 [未悟]라는 한자를 붙여주었었는데,
RiJin에는 이롭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利進]을 붙여주고 싶다.

동호회에서 내게 필명 작명을 의뢰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다.
부끄럽지만 그럴때 나는 가급적 그 분의 성품과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려 애쓴다.
그렇게 이미지와 연관되는 뜻을 살리려다보니 깊히 알지도 못하는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3년생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 격이다.     
 
블로그를 하면서도 많은 필명을 접하게 된다.  
모든 분들의 필명이 모두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필명이 있다.
rosa, 破天, 자낭화, 二茶...  풍겨지는 느낌이 좋고, 힘있는 카리스마라든가, 편안함, 부드러운 여유가 묻어나는 듯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모든 부분의 트렌드도 변한다.
그 트렌드를 앞서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따라갈 줄은 알아야 그나마 시대를 즐겁게 살 수 있다.
필명시대가 왔다면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하나쯤은 준비해야 한다.
일시적인 것이 아닌, 스스로 애정이 느껴질 필명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맞자.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江河]로 살아가는 지금이 나는 너무 즐겁고 만족스럽다. 
:

1995년 시작한 골프를 2005년 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고교동창모임, 대학동창모임, ROTC모임 등 매번은 아니더라도 띠엄띠엄 참석하던 각종 골프모임을 모두 접고,
작년에는 보유하고 있던 회원권도 처분하고, 그나마 내가 만든 골프동호회의 방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무방어전하듯 한달에 정모만 두번 나가던 것을, 작년 말로 방장에서 물러난 이후는 골프채를 잡지도 않았다.

골프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다. (운동인지 레져인지 취미인지는 아직도 구분이 잘 안되지만...)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도 집사람의 권유에 의해서였는데, 사실 처음에는 집사람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습장 레슨비만 해도 적은 돈이 아니지만, 배우더라도 필드에서의 1회 라운딩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비용이면 가족 전체가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 당시 우리 집의 수입과 아이들에 대한 지출 등을 감안할 때
나 혼자의 취미생활을 위하여 그 비용을 사용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사람의 강권에 의해 결국 골프를 접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좋아하던 골프를 멀리하게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은 시간이 별로 나지 않는다. 
건물을 짓고 샤브미를 운영하면서 한가로이 연습장을 다닐 시간도 없을 뿐 더러  더우기 필드에 나갈 여유가 없다.
한번 라운딩을 나가면 왕복 이동시간을 포함하여 얼추 한나절이 다 지나는게 다반사인데,
처음 가게를 연 입장에서 주인이랍시고 골프장에 나다니는 것이 직원들에게 왠지 미안하고 개운치가 않다.
가게가 안정되고 성업 중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얼추 10년을 치면서 아마튜어 골퍼 입장에서 평균치 이상을 어지간히 이루다보니 흥미도 좀 떨어진다. 
어느 한계에 이르니 스코어도 매번 비슷하고, 그 이상이 되려면 완전히 매달려야 하는데, 그럴 이유는 없을거 같고...
그러니 다소 시들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역시 비용이다.
건물을 짓고 가게를 오픈하느라 받은 대출이자가 엄청나게 발생하다보니 소비를 줄일 수 밖에 없고,
가장 대표적인 소비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 것이 코스트가 높은 취미생활인 골프였기 때문이다.


모든 골프모임에의 참석을 중단한 어느 날 가까운 친구에게서 왜 골프모임에 나오지 않느냐는 전화가 왔다.
[돈이 없어서]라는 나의 대답에 이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리고는 내뱉는 말, '얌마... 강남의 건물주가 돈이 없어서 골프를 못 친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래!!  바로 그 말 때문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들려준 변명아닌 변명은 이랬다.

누구든지 다 너처럼 생각할거다.  하지만, 내가 매월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천오백만원이 넘는다.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내기도 바쁘다.  골프모임에 나가려면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무슨 기금 같은걸 모금할 때, '20만원씩 걷도록 하자. 상범이는 아무래도 남들보다 여유가 있으니 50만원 내고...'
이럴 때, '난 니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여유가 없으니  그렇게 못낸다.' 고 하면 다들 뭐라 그럴까...
'허구헌날 이쪽저쪽 골프는 치러다니면서, 돈 얘기만 나오면 맨날 여유가 없다지...  쫀쫀한 놈.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 같아도 그럴테니까.  그럼, 그런 소리 듣지않으려면 어떻해야돼??
아예 아무데도 나가질 말아야지.  감당하지 못할 행동은 하지않는게 맞다.  


하루는 후배가 찾아와 묻는다.
'형...  차를 새로 하나 뽑으려하는데, BMW로 뽑으면 어떨까???'
그 후배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네가 BMW를 타는만큼 주위사람에게 넉넉하고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면 타라.  하지만, 폼만 잡을거라면 타지마라.
BMW를 탄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남들에 비해 생활에 여유가 있는걸로 보인다.  남들은 그런 시선으로 너를 본다.
그렇다면, 그 차를 타고나간 모임에서 가끔씩은 네가 지갑을 열 수 있어야 남들이 너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멋진 사람으로 인정을 하지, 매번 더치패이를 한다거나, 오히려 돈이 없다는 식으로 꽁무니를 빼면 결국은 폼만 잡는
쫀쫀한 사람이라고 뒤에서 수근대지 않겠니. 


무엇을 하고 싶으면,
무엇을 취하고 싶다면,
거기에 걸맞는 행동과 처신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

그게 가능하다면 당당하게 취하고 행동하자.
그럴 여유가 안되거나, 그럴 마음이 없다면 하지 않는게 낫다.
자칫 허세만 가득한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거나, 오히려 초라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분수다.
또한 모나지않는 삶의 조화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

신 정부 장관내정자들의 평균 재산이 39억원이라고 한다.
부동산의 경우 공시지가 기준으로 산정했을테니 시가로 따진다면 50억은 충분히 될 것이다.

머리가 멍해진다.  이런 현상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다.
재테크에 능력있는 분들로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됐으니 이제 정말 우리 경제가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갖게될까.
하지만, 오전에 네티즌의 반응이나 언론의 동향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않았음이 확인된다.
그게 더 슬프다.  국민 대다수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어째서 본인들은 생각을 못하는지 그게 서글픈 것이다.

재산이 많다는 것이 흠결이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공인의 경우는 다르다. 엄연히 시각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 여권에서는 재산이 많더라도 투기한 것이 아니고 정당하게 세금을 냈으면 문제될게 없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 그런 단순논리의 사고를 가지고있는 사람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정치라는게 무엇인가?
정치란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백성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백성의 삶을 이해하고 신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장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장관이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한다는건 일반 국민들과는 어딘지 동떨어져 보인다.
게다가 이번 장관 내정자들의 다수는 강남에 아파트를 몇채씩 보유하고 있다.
지난 5년간의 강력한 부동산억제정책에 모질게 버텨왔다는 얘기다.

오늘 오전에 대통령 당선인이 장관내정자와의 간담회에서 서민경제 안정을 위해 노력하라고 강조했단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서민경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도 장바구니 물가를 모른다.  배추 한포기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난 비싼건지 아닌지 감각이 없다.
아울러 종부세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31평 아파트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를 유학보내고있는 나에게 환율은 큰 관심사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수준에 맞는 것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상위 1%의 초상류층 사람들의 인식에 서민물가가 얼마나 현실감있게 느껴질까.
내 좁은 소견으로, 그들은 물가보다 종부세 등의 부동산 세법에 더 큰 관심이 가지 않을까 싶다.
강남에 아파트를 몇채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부동산 가격안정 정책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투기만 아니면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단순논리라고 폄하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강남에 아파트가 있고, 자녀들을 유학보내고, 전국 곳곳의 토지를 보유하고, 골프 및 콘도회원권을 다수 보유한 장관들.
그들이 내놓을 부동산정책과 교육정책이 어떤 것일지, 그들이 생각하는 환경정책과 복지정책은 어떤 것일지, 
국민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괴리감, 그리고 이질감을 그들은 너무도 모른다.  모른 척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청와대 수석 내정자에 대해 교수 재직시 제자논문 표절의혹이 제기되자. 당선인 측의 반응은 이랬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는 인정되지만, 직무수행에 지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다른 인수위 관계자가 했다는 기사를 보며 나는 경악했다.
'약심검증만 해도 60%가 떨어져 나가더라. 솔직히 20여년 전에 자녀교육을 위해 위장전입 생각 안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신 여당은 과거 장상氏와 장대환氏의 총리인준과정에서 자녀의 국적,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등의 문제점을 적시하며
그들을 낙마시켰다.  현 정부에서도 김병준氏의 교육부총리 지명에 논문표절의혹을 제기하여 개가(?)를 올렸다.
과거나 현 정부의 편을 들고자하는게 아니다. 난 오히려 그때 그 검증이 잘됐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잣대가 다르면 안된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고도의 도덕관을 요구했으면, 본인들도 그 잣대를 기준으로 삼는게 당연하다.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키워드 중 하나가 [실용주의]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지역편중이나 다른 사람들의 지적은 문제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탕평]이라는 말이 왜 생겼을까...
그렇게 능력있는 사람만으로 모든게 뜻대로 잘 이루어졌다면, 우리 역사의 힘든 고비마다 당시의 통치자들은
왜 인사에서 탕평책을 선택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답은 [민심수습] 혹은 [국민화합]이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들의 집단이라도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전대의 통치자들이 전해주는 교훈인 것이다.


실용주의는 분명 소신을 갖고 합리성과 효율을 지향하는데 매력적인 이념이다.
하지만, 이것이 아전인수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더더욱 유유상종처럼 보여져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영남에 기반을 둔 사람이 영남사람만 쓰면서 '능력을 최우선으로 했다' 고 표현하는 것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으며,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다소 문제는 있지만 직무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 고
감싸는 것은 생각에 따라서는 자신의 기준으로 본 도덕적 불감증 때문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잘 해보고자 의욕적으로 내세운 [실용주의]가치를
[아전인수]와 [유유상종]이라는 오해에 물들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
숭례문의 복원에 대해 말들이 많다.

복원기간이 3년이 걸린다느니... 복원비용이 220억원이 든다느니...
복원 후 국보로서의 자격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게다가 대통령 당선인의 국민성금으로 복원 제안에 대해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복원을 하지 않는건 어떨까.
복원을 한다한들 정말  복원된 숭례문이 국보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신라금관을 녹여 그 금으로 다시 금관을 만들었다고 신라금관이 되는건 아니니까.

차라리 복원을 하지말자.
오히려 화재현장의 잔해를 그대로 보존하자.
현장을 거대한 투명한 물질로 덮어씌여 이 참혹한 모습이 훼손되지 않도록 영원히 보존하자.
그리고 국보 1호 임을 커다랗게 명기하자.

현장에는 숭례문의 작은 모형을 만들어 놓자. 
그럼으로써 조상의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고 저 지경으로 만든 
부끄러운 우리의 모습을 대대손손 우리 후손들에게 보여주자.

우리의 무지함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 후손들이 교훈을 삼도록 하자.
그게 진정한 우리의 반성이 아닐까.
:
요즘 TV드라마에 사극의 비중이 엄청 높아졌다.
특히 한때는 MBC의 [주몽]을 필두로 SBS의 [연개소문], KBS의[대조영] 등 고구려를 소재로 한
대하드라마가 가히 사극의 전성시대를 이뤘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가 바뀐 지금도 공중파 3개 채널에서는 사극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최근 몇년동안 이어지고 있는 사극 열풍의 트렌드는 두가지다.
[퓨전]과 [블록버스터].

내가 기억하는 퓨전사극의 시작은 [다모(茶母)]가 아닌가 싶다.
물론 그전에도 몇몇 퓨전스타일 사극드라마가 있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은 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스타일의 사극으로 인기몰이를 한 것은 [다모]일 것이다.
그리고 [황진이]와 최근 방영되는 [홍길동].

블록버스터사극의 기억되는 시발점은 [성웅 이순신].
그리고 [해신]에 이어 그 이후 방영되는 사극은 거의 블록버스터 수준이다.

사실 퓨전과 블록버스터가 딱히 구분되어지지는 않는다.
블록버스터에는 이미 퓨전의 개념이 녹아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퓨전과 블록버스터 결합의 결정판은
작년 년말 종연된 MBC의 [태왕사신기]가 아닐까.


사극에서의 퓨전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하게 말하면, 어투(말투)와 복식(의복)의 현대화.
거기에 하나 더 붙인다면 사회관습의 현대적 해석일 것이다.

종전의 사극은 너무 어렵고 지루했다.
모든 등장인물들은 표정부터 행동까지 너무 근엄했고, 말투 또한 상당히 어려웠다.
이야기 전개도 느릿했고, 드라마의 배경이나 성격이 전체적으로 진부할 수 밖에 없었다.
매번 비슷한 소재와 배경 속에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이다.

기존의 고연령층에게는 그런 것이 통할 수도 있었겠지만,
변화의 소용돌이가 일상처럼 느껴지는 젊은 층에게 그런 드라마는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를 바라보는 것 이상의 따분함일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사극의 분위기가 가벼워지고 경쾌해졌다.
조선시대의 화법도 요즘의 말투처럼 변했고 빨라졌다.
복장도 훨씬 단순해졌을뿐 아니라 시각적으로 친숙해지고, 문화적 패러다임도 친밀하게 와 닿는다.

스케일도 엄청나게 커졌다.
전투장면도 어지간한 영화이상으로 박진감과 웅장함이 넘친다.
투여되는 인적 물적 물량도 예전의 사극에 비하면 상상을 초월한다.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까지 동원되어 볼거리가 많아졌는데,
거기에 역동적인 카메라워킹과 세련된 연출기법이 가미되어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화면전체에서 드라마의 힘이 넘친다.

특히, 방영 초기에 시청율이 결정나는 드라마의 특성상
요즘 새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1,2회에 가장 화려하고 농축된 화면으로 승부를 건다.
[대조영]에 이어 년초부터 방영되고 있는 [대왕세종]의 1회 처음 도입장면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렇게 사극은 이제 남녀노소 구분없이 모든 계층에게 사랑받는 쟝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극이 사랑받는다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안그래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젊은 층에게 사극이라는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게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아울러 특정 사안이나 특정인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역사를 재해석할 수 있다는 것도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와 인식의 발달에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려되는 것이 있다. 
드라마에서 전개되는 내용과 역사적 사실과의 간극이다.

역사적 고증사료가 미비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작가와 연출자의 상상력에 의해
전개될 수 밖에 없다.  주몽의 성격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는 어디에도 없다.
대조영과 이해고, 대중상과 설인귀가 어떤 형태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도 알 수 없다.
모두가 작가의 상상력과 연출자의 의도에 의해 보여지는 것을 우리는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실제처럼 받아들이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문제다.

모든 드라마가 그렇듯, 사극 역시 어쩔 수 없는 창작이라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지켜져야 할 선은 있다고 본다.
역사적 사료가 없는 것이야 어쩔 수 없더라도, 사료가 존재하는 역사에 대해서는 사실에 근거해야 할 것이다.
[대왕세종]의 도입부는 장차 세종이 되는 어린 충녕대군의 납치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게 역사적 사실인지는 나도 혼란스럽다.

앞서 말했듯, 요즘 사극은 젊은 층에게도 매우 인기가 높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에게는 사극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사극에 의한 역사왜곡은 상당히 위험한 사회적문제가 될 수도 있다.

사극도 재미가 있어야함은 물론이다.
그런 재미를 위해 퓨전도 필요하고, 블록버스터도 필요하다.
하지만, 재미만을 우선하여 역사적 실체가 변질되는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극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적사실에 근거하는 것이다. 


史劇은 분명 진화하고 있다.
진화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나 사물이 점점 발달하여 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史劇의 진화는 [劇의 진화]가 아닌 [史의 진화]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김포외국어고등학교 입시문제 유출사건의 후유증이 무척 크다.
한 중학생의 인터넷 제보로 수사가 시작된 사건의 개요는 대략 이런거 같다.
 
김포외고 교직원이 학원 원장과 학부모에게 문제 일부를 유출하고,
학원에서는 입시 당일 자기 학원에 다니는 수험생들을 수험장으로 이동시키는 도중
학원버스 안에서 유출된 문제를 학원생들에게 배포하였다고 한다.

지난 주말, 경기도 교육청은 이미 발표한 합격자 중,
문제가 된 학원에 다닌 수험생과 직접 문제를 받은 학부모의 자녀 등 54명을 불합격처리한다고 발표했는데,
일요일 뉴스를 보면 더 늘어날 것 같다고 한다.

불합격처리 방침이 발표되면서 해당 학생의 부모들이 도 교육청을 찾아가 항의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보여졌다.
어떤 부모는 땅바닥에 뒹굴며 '우리 아이는 버스를 안타고 내가 직접 태워다줬다.' 고 울부짖고 있었고,
보여진 대부분의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비정상적인 교육열과 수시로 바뀌는 원칙없는 교육제도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니 차치하더라도
이 문제로 빚어진 결과를 대하는 부모들의 모습에 조금 답답함이 있다.

우선 부모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어떤 학부모의 말 처럼 학원버스를 이용하지 않은 학생도 있을 수 있고,
학원버스 안에서 예상문제지를 받고서 들여다보지도 않고 눈을 감은 채 휴식을 취한 학생도 있을 것이다.
예상문제가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능력으로 충분히 합격할 수 있었던 우수한 학생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들이 받은 예상문제가 바로 입시문제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불합격처리된 학생들은 그 학원에 다닌 것이 죄가 된 선의의 피해자일 수 있다.

그러니 정말 억울한 학생들이 무척 많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부모들의 심정을 모르는게 아니다.
하지만, 부모 이전에 당사자인 수험생들의 마음은 어떻겠는가.
더구나 그 아이들은 이제 갓 열다섯살의 감수성 강한 어린 청소년들이 아닌가.

이번에 불합격처리된 아이들은 어른들의 과욕이 빚어낸 희생양이다.
진정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라면 이 시점에서 부모들이 해야 할 가장 우선적인 것은
크게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추스려주는 것이 아닐까.

사태에 대한 책임추궁과 배상방법은 부모들끼리 별도로 협의를 하면 된다.
억울한 심정만으로 집단항의를 한다고 해서 발표된 조치가 바뀌지는 않는다.
불합격처리에 대해 공동으로 대응할 부분도 있고, 개인적으로 소명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해 납득할만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결국은 법의 판단을 구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지금 더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있을 아이들을 안정시키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다음 단계를 준비시키는게 순서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의 뜨거운 시선을 의식할 아이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라고 마음을 북돋워주면서,
다시 치러질 재시험에서 실력으로 합격하면 오히려 당당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주며 차분히 준비를 시키거나,
혹은, 외고가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아님을 인식시키며 아이의 진로에 대해 생각하는 등,
아이가 빨리 충격에서 벗어나도록 배려하는 차분한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실의에 빠져 방 안에서 혼자 방황하고 있을 때 교육청 앞에서 농성만 하는 아빠 엄마보다,
곁에서 마음을 달래주고 차분하게 다음 진로를 찾아주는 아빠 엄마에게서 더 안정감을 찾을 수도 있다.
또 그러한 믿음은 자라면서 부모가 커다란 나무그늘로 느껴지는 더 큰 신뢰감으로 뇌리에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본다.


정서적으로 성숙이 덜된 아이들에게 부모의 행동이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의 문제점을 부모들의 과잉보호에서 원인을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모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실의의 모습을 보일 때 아이들은 많은걸 상실한다.
예기치 못한 큰 일에도 냉정함을 잃지않는 부모에게서 아이들도 삶을 배우게 된다.

     
이런 일을 겪고있는 아이들에게 지금 부모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그  아이들의 성장에 외고입학 이상의 더 큰 의미와 영향을 주게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어른과 아이의 감정이 같이 작용해서는 안된다.
감정대로 할 수 없기에 더 힘든게 부모 역할 아닐까.
:
연세대학교 치의학과 편입학 관련 금품수수 기사가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했을 때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었다.

모든 보도는 혐의사실이 있는 사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정창영 연세대학교 총장의 부인 최모씨...]  혹은 [연세대학교 정창영 총장의 부인 최모씨..] 

일반적으로 언론은 피의사실이 어느정도 인정되기 전 까지는 실명보도를 하지 않는다.
일종의 명예훼손이나 인권보호 차원 에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피의사실 확인 전 최모씨의 인권보호는 좋은데,
그렇다면, 연세대학교와 정창영 총장의 명예는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 것인지...

최모씨는 금품을 직접 수수한 혐의를 받고있는 비리혐의의 1차 당사자이다.
그에 비하면, 정창영 총장은 직접적인 연관성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으며,
연세대학교의 경우도 이 건과 관련된 대학 차원의 편입학 부정혐의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즉, 사건의 초기개요는 편입학 청탁과 관련된 대학총장 부인의 단독 금품수수다.
그럼에도, 혐의사실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대상은 익명으로 보호된 반면,
청탁과의 연계성이 입증되지 않은 대상은 실명으로 노출됐다는 것이 어째 앞뒤가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모대학 총장 부인 최윤희씨]는 아니더라도, [모대학 총장 부인 최모씨]가 올바른게 아니었나 싶다.
모든게 순식간에 노출되는 인터넷의 특성상 결국은 드러나겠지만.
작은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어이없게 피해를 보는 경우가 아마 많을 것이다.
 
개인이 보호받을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보호해줄 의무를 스스로 생각하는게 언론의 정도가 아닐까. 
이슈의 선점을 우선시하는 언론에게 우리는 너무 나약함을 느낀다.
:
임기만료 되는 검찰총장의 후임 인선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입장이 완연히 달랐다.
청와대의 후임 인선절차에 대해 한나라당은 차기 정권에 넘겨야 한다는 것.

하지만, 차기 검찰총장의 인선은 이루어지는거 같다.
그러자 언론에서 벌써 떠든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도 과연 이번에 인선되는 총장이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
자진 사퇴의 수순을 밟지 않겠는가??

사실 언론의 이런 보도도 좀 짜증스럽다.
정말 걱정이 돼서 그러는건지,
아님, 그리 되도록 넌지시 바람을 잡는건지, 
언론의 속마음을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누구 편을 들자는게 아니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입만 열면 떠들던 법치주의.
그리고 검찰 독립
이 두가지 기준만 가지고 판단해보자.


정부 각 조직 수장의 자리에 공백이 있어서는 안된다.
특히, 검찰이라는 조직이 어떤 조직인가...???  
검찰의 수장을 몇달씩 비워두라는건 말이 안된다.
또, 검찰총장의 임기는 보장을 받는다.

임기가 만료된 정부조직의 長 자리는 적법한 절차와 규정에 의해 후임을 선임하면 된다.
선임 절차에 문제가 없고, 선임된 사람이 직무에 반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역시 규정에 준한 임기를 채우면 되는것이다.

그것이 법치이고, 독립이다.

한나라당은 선임 예정자에 대한 검증을 철저히 하고, 직무 수행자로서의 적격성을 판단하면 된다.
차기 정권에 임명권을 넘기라는 주장은 법치에도 어긋날 뿐 더러, 검찰 독립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임명되는 사람이 문제가 없으면 누가 해도 될 것을, 굳이 내가 하겠다는 의도는 무엇인가?

돌려말하면, 현 정권에 대해 그토록 비판하던 코드인사를 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그런 주장이 과연 검찰 독립에 합당한 주장인지 궁금하다.


政治를 하며 민심을 얻고자 한다면,
말의 유희에 의한 言治가 아닌, 비운 마음으로 하는 心治가 되었으면 좋겠다.
:

지난 주 일요일 당진에 성묘를 다녀왔다.
그곳에는 증조, 고조, 증고조 할아버지가 계시다.
둘째 할아버지도 그곳에 계신다.
그러니 벌초 겸 다녀온 것이다.

당진에 가면 5촌당숙들과 6촌형제들을 만난다. 보통 50여명이 모인다.
내게는 증조할아버지가, 5촌당숙들께는 할아버지로서 한뿌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숙들의 돌아가신 아버님들이 그곳에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어제는 천안공원묘지에 다녀왔다.
그곳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천안에서는 숙부님들과 사촌형제들을 만난다.
보통 15명 정도가 모이는데, 대개는 며칠 전 당진에서 본 얼굴들이다. 
범위가 좁혀지면서 참석인원은 적어지지만, 혈연관계로 보면 그만큼 더 가까운 혈족이다.
천안공원묘지는 관리를 잘 해주기 때문에 특별히 벌초할 일은 없다.

해마다 두번, 한식과 추석전후 에는 이렇게 당진과 천안을 찾는다.
그런데, 성묘를 다닐 때마다 상반되는 두가지 상념이 머리 속에서 충돌을 일으킨다.
전통의례로써 [조상님 모시기]와 [경제활동 측면에서의 효율성]이다.


성묘가 주는 긍정적 요인이 있다.
우리나라 전통철학의 근본이 되는 유교적 관점에서의 조상에 대한 인사는 차치하더라도
점점 만남의 기회가 줄어들어가는 친척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사실 나만 하더라도 당진 성묘가 아니면 6촌형제들을 볼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되면 결국 누가 누군지 잊고 사는게 되는거 아닌가.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모임이 너무 형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게 사실이다.
산지사방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서로 시간을 맞춰 모여서
산소 앞에서 절만 하고,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는 바로 뿔뿔이 흩어진다.
특히, 주중일 경우 각자의 일을 미루고 나와야 한다. 

나는 할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뵌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둘째 할아버지는 어린시절의 기억에 남아있다.
둘째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어렸을 적 우리 집엘 오시면
늘 나를 무릎에 앉히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워해 주셨다.
그때 그분의 그 인자하신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때문에 다른 분들의 산소에서는 기계적인 절을 올리지만,
둘째 할아버지께 절을 드릴 때는 그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담아 절을 올린다. 

감사하는 마음은 상대를 기억할 때 진정성이 생기는 것이다.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마음으로 절을 올리고는 서둘러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기 바쁜
이런 의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뵌 적 없는 조상님들에게 그런 마음을 담지 못하는 내가 문제가 있는건가...  
   

나의 아버지 입장에서는,
천안에는 부모님이 계시고, 당진에는 할아버지 이상, 그리고 숙부님들이 계시다.

내 부모님 두 분은 아마 국립현충원로 모시게 될 것이다.
납골당을 이용하시게 되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으로 모시겠지만,
묘소를 쓰신다면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모시게 된다.

그렇게되면 나의 경우,
부모님은 대전, 할아버지는 천안, 그 위 할아버지들은 당진에 계시게 되는데,
나 혼자 움직이는거라면 그나마 별 문제될게 없다. 
내가 편리한 시간에 혼자 시간을 내어 하루에라도 세 곳을 찾아뵈면 되니까.

문제는 내가 종손(宗孫)이라는거.
당진에는 6촌형제들을 불러 모아야 하고, 천안에는 사촌형제들을 모아야 한다.
대전에는 내 동생과 시간을 맞춰야 한다.

예전에는 선산이라는 개념이 있어 종중 소유의 땅에 친척들을 같이 모셔 함께 제사를 모셨지만,
요즘이야 다들 따로 모시지 않는가.
그러니 참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다음 세대는 이런 혼란이 오히려 없을지 모른다.
전통적 사고에 대한 인식이 흐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제사나 성묘에 대한 문화는 사회적 이슈로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전에 신문에서 읽었던 어떤 교수의, 자식에게 남긴 유언 내용이 생각난다.
' 내가 죽거든 화장을 해서 강물에 보내기 바란다.  그리고 일체 나를 위한 제사나 별도의 의식을 하지 마라.
  단지, 너희 형제간의 우의를 위하여, 내 생일이나 내가 죽은 날 너희들끼리 모여 식사를 같이하기 바란다.'
이런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그때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뭉쿨했었다.


남아있는 세대에 대한 배려...  그것이 가는 세대의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된다.

:

얼마 전 국가에서 모든 계량단위를 통일한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그간 우리사회에 전래되어 통용되는 단위에 대해 국제 표준화를 기한다는 취지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이해가 되며, 일면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무게를 잴 때 쓰이는 단위인 [근](斤)이나 [관](貫)만 하더라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똑같은 한 근이라도 고기나 한약재를 달 때는 600g인데 반해, 과일이나 채소를 달 때는 375g이 된다.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한 관의 공식 무게는 3.75kg이다. 
그럼, 고기 한 관의 무게는 얼마인가?
공식 표준무게인 3.75kg인가?  아닌 고기 한 근의 열배인 6kg이 맞는가?
우리같은 성인도 혼돈이 오는데, 지금 자라는 아이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도 무게를 재는 단위는 우리 것만 주로 다룰 뿐, [온스]나 [파운드]와 같은 외국의 단위는 크게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길이의 단위는 매우 복잡하다.
똑같은 옷을 다루고 있음에도 한복집에서는 [치]와 [자]를 나타내는 [척](尺)을 사용하는데 반해,
양복은 [inch]로 사이즈를 표시한다. TV나 모니터와 같은 가전제품에서도 [인치]로 표시하고 있다. 
거리를 따질 때도, 시골에서 길을 지칭할 때는 [리](里)로 표시하지만, 야구장에서는 [feet]로 표현한다.

넓이의 단위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것은 역시 [평](坪)이다.
좀 넓은 면적을 나타내는 단위로는 [마지기]가 있는데, 이 역시 밭과 논의 면적이 일정치가 않다.
밭 한 마지기는 약 100평인데 비해, 논 한 마지기는 지역에 따라 150~300평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부피의 단위로는 [되]와 [되]의 열 배인 [말]을 표기하는 [두](斗)가 있다. 
하지만 이건 고체의 부피를 나타내는 것이고, 액체의 부치는 주로 [홉]으로 표기하는데,
이 [홉]이 한 평(坪)의 십분의 일인 면적도 의미한다는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기에 영국 등에서 쓰이는 여러 단위가 더해지니 무척 혼란스러운게 사실이다.
그러니 그런 혼동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긴 하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이런 단위를 공식으로 사용하면 경고와 함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점이다.
사람의 속성이 말로만 해서는 오랜 습성을 고치려하지 않으니, 일정부분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 밖에 없음은 알겠는데,
갑자기 이런 강제적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이 좀 어색하게 받아 들여진다.
좀더 계몽기간을 주는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사실 미국에서도 아직 [mile]을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뭐.. 어찌됐던 변화에 따라가야 하니, 나와 관련된 단위라도  알아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 아파트의 면적은 100평방미터이고, 나의 허리칫수는 80cm, 우리 집 TV는 107cm다.


근데, 생각해보니 정말 뜨악한게 있다.

애국가.
애국가의 가사 중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 있는데,
앞으로 공식석상에서 애국가 제창을 하면 모두에게 과태료를 물려야 하나...
그렇다고 애국가 가사를 [무궁화 천이백km 화려강산...]이라고 하자니 뭔가 이상하고...  

정부에서 이건 어떻게 해결하려는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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