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이런생각 저런느낌'에 해당되는 글 183건

  1. 2015.02.08 10관왕의 자폭
  2. 2014.12.09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리턴
  3. 2014.08.15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교황님의 첫 마디
  4. 2014.05.24 해양경찰의 총제적 문제, 해체가 해결책인가?
  5. 2013.09.09 변해야 산다?
  6. 2013.08.16 40代가 주는 삶의 의미 4
  7. 2012.11.28 꽃놀이패를 쥔 안철수
  8. 2012.10.28 첨단 설비가 꼭 편한 것만은 아니다
  9. 2012.09.10 수입자동차에 대한 인식의 변화 2
  10. 2012.08.30 기발한 발상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
  11. 2012.08.13 런던올림픽 소회
  12. 2012.05.07 욕망과 꿈
  13. 2012.02.29 4년 만에 얻는 인생의 덤 2
  14. 2012.02.23 이 또한 지나가리라 2
  15. 2011.11.21 진보에 대한 안타까운 시각
  16. 2011.11.11 씁쓸한 모임에서 다시 생각하는 배려
  17. 2011.08.27 SK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의 해임을 보며
  18. 2011.07.28 우리는 아름다운 도시 이전에 안전한 도시를 원
  19. 2011.07.10 페이스북 유감
  20. 2011.05.04 내가 갖고싶은 페이스북의 의미
  21. 2011.04.17 밀리는 블로그? 2
  22. 2011.04.01 배신감을 느끼면 지는거다
  23. 2011.03.25 경조비 유감
  24. 2011.03.16 일본의 지진 참사를 바라보는 착찹한 심경
  25. 2011.02.15 지키고싶은 가치를 담아보는 것도 괜찮지않을까..
  26. 2010.12.03 연평도 도발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것
  27. 2010.11.09 누워서 침 거칠게 뱉기.. 2
  28. 2010.08.26 대한민국의 집값이 더 떨어져야 하는 이유 2
  29. 2010.08.19 법치주의, 공정한 사회, 국격.. 애드립이 아니길.
  30. 2010.08.08 재수생은 농촌으로 보낸다고??

 

- 분당 토지 매입 의혹
- 본인 병역 특혜 의혹
- 차남 병역 기피 의혹
- 학위 논문 표절 의혹
- 경기대 조교수 특채 논란
- 우송대 황제 특강 논란
- 삼청교육대 근무 이력
- 정치후원금 논란
- 타워팰리스 딱지 거래 및 부동산 투기 의혹
- 언론 외압 자폭

10관왕.

처음 지명시 적임자라 생각됐고, 여당 원내대표로서 그간 보여줬던 행보에 신뢰가 느껴졌다.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각하]라는 표현은 충직함에서 나온 해프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점점 불거지는 의혹은 역대 청문 대상자로부터 나왔던 모든 항목이 망라된 의혹의 종합세트가 된다.

가장 무난하리라 여겨졌던 후보자이기에 실망과 배신감이 더 크다.

더 답답한 것은,
이런 상황임에도 스스로 사퇴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예상과 함께,

당연히 무조건 통과되리라 믿고 기본적인 인사검증도 안 한 청와대의 눈 뜬 장님 행보다.

이어진 숱한 낙마 속에서 학습효과라는 게 전혀 없다.

조선시대 영의정과 지금의 국무총리 역할을 비교할 순 없으나, 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는 표현이 있다.
결국 각하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는 卒이다.

총리 내정자가 세 번 연속 낙마하는 건 국가와 국민에게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때문에 다른 의혹은 최선을 다 한 해명과 진솔한 사과로 못 이기는 척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밝힌 언론 통제 부분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스스로 사과한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나, 실제 간섭 효과가 있었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언론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일상의 인식이 문제다. 그것도

갓 언론인의 길에 들어선 말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기에 언론 길들이기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느껴진다.

더 가관인건,

공개된 녹취록에 대해 사적인 자리에서 편하게 나눈 대화까지 녹음하는 정당하지 못한 행위로 규정하는

새누리당의 참담한 인식. 개인의 사견이 아닌 집권 여당 대변인의 공식 브리핑이라 더 절망적이다.

 

:

 

뉴욕에서 인천으로 출발하려던 대한항공 기내 일등석.

오너인 회장의 딸 조현아 부사장이 자신에게 마카다미아를 서비스하던 승무원의 서비스 절차를 문제삼아

기내 서비스와 안전 및 보안 총괄 책임자인 사무장을 불러 질책하다 "비행기에서 내리라" 며 활주로로 이동 중인

항공기를 램프리턴시켰다는 기사가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언론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회사 임원은 누구나 승객의 안전과 서비스에 대한 지도 책임의 권한이 있다" 는 것이

15시간 만에 내놓은 대한항공의 (사과문이 아닌) 공식 입장. 
 
말 그대로 궁색한 이 변명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조현아 부사장의 판단에는 문제가 있다. 
 
운항중 기내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승객의 안전을 위한 모든 조치는 승무원의 책무고,

승무원의 행동지침은 가장 경험이 풍부한 사무장의 책임과 판단에 따른다는 것은 일반인도 알만한 상식이다. 
 
그럼에도 조현아 부사장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가장 노련한 기내 안전담당 책임자를

기내 서비스 절차를 문제삼아 임의로 내리게 했다. 그것도 이미 출발을 시도한 항공기에서. 
 
땅콩 서비스 절차와 비상시 승객의 안전을 위한 안전 책임자의 부재.
어느 것이 판단의 우선 순위일까?
대한항공이 내세운 임원의 책무와 권한을 기준하더라도 조현아 부사장은 임원으로서 최소한의 판단력도 결여된 사람이다. 
 
그냥 회사의 서비스 담당 최고 임원으로서 최고급 서비스를 지향하는 일등석의 기내 서비스 절차 부실에 대해

순간적으로 감정을 절제하지 못 했다는 것이 솔직한 사과가 되지 않았을까. 
 
또 하나 던지고픈 질문은,
조현아 부사장이 단순한 전문 경영인이라도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과,

그 경우에도 대한항공은 똑같은 논리로 회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부사장에게 책임을 묻지않고 옹호할 수 있겠느냐는 것. 
 
결국 공공재를 [내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문제다.

 

:

 

대한민국을 찾으신 교황께서 청와대에서 하신 공식 연설 첫 마디.
"고요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이라는 표현을 듣기가 참 민망했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결코 고요한 나라가 아니지 않는가. 
 
이어진 교황님 연설의 첫 key word는 [젊은이]였다.
젊은이는 미래를 이어주는 주체고, 때문에 건강해야 한다는 요지의 말씀. 
 
그런데, 이 시대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현실은 어떤가? 
 
꽃다운 나이에 이유도 모른 채 바다에 던져졌음에도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국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귀찮은 듯 서둘러 국면을 벗어나려 하고, 
 
수 많은 젊음이 국가 수호의 의무를 수행하려다 가혹행위로 소중한 목숨을 잃고 있음에도

저마다 책임을 회피하며 죽음의 진실을 호도하기에 급급하다. 
 
미처 미래로 연결짓지 못 한 젊은 미완의 생명들에 대한 진실을 덮는 게

교황께서 말씀 첫 머리에 언급하신 [고요한 나라]는 아닐 것이다. 
 
아래 문구는 교황께서 이탈리아 정치인들에게 일갈하셨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겉은 하얗고 반짝이지만 안은 시체밖에 들어있지 않다"는 교황님의 지적에

나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우리 정치인이 있을지, 그가 누구일지 궁금하다.

 

: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을 비통하게 만든 지 한 달 여가 지나고 있다.

사망 인원만으로도 너무나 가슴아픈 사고였지만, 이제 피기 시작하는 세대가 주를 이룬다는 게 모든 이의 마음을 더 먹먹하게 만든다.

그들의 희생은 그 어떤 가치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이번 사고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도출되어 남은 국민들의 안전이

조금이나마 개선되는 계기가 된다면 그들의 희생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남긴 값진 유산이 될 것으로 겸허한 마음으로 위로해 본다.

 

선장을 비롯한 핵심 승무원들의 무책임, 선박회사는 물론 그와 관련된 주변 기관의 부조리, 사고 처리를 위한 정부의 대응 체계 등

사고후 제기된 여러 문제점들이 국민들의 공분을 샀지만. 그중에 바다를 책임지는 해양경찰의 실태는 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급기야는 대통령의 입에서 [해양경찰 해체]라는 초강수가 나왔고, 그런 조치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감성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언론에 보도됐던 해경의 현실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또 해체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해경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는 내가 언론을 통해 알게 된 해경의 현실 몇 가지중 충격적인 사실 세 가지.

- 해양경찰은 대략 11,000명이며, 해경 연간 예산은 대략 1조원 정도다.

- 해양경찰의 32%가 수영을 할 줄 모르며, 500미터 이상 수영능력을 가진 인원은 전체의 22%에 불과하다.

- 해양경찰의 최고 수뇌부(아마 경무관 이상인 듯) 14명중, 해양경찰청장을 비롯한 7명은 함정 근무경력이 전혀 없다.

 

꼭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위 사실만으로도 왜 해경의 수준이 이 모양인지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예산중 인건비가 부분이 절반을 넘을거라 추정하면 교육훈련과 장비 등에 투여되는 예산은 끽해야 4500억 정도가 되지 않을까.

경비정 가격이 소나타 가격과 비교가 안될진대, 그 예산을 가지고 장비 개선이 얼마나 이루어지겠는가.

그러니 부산에만 있다는 특수구조대가 이용할 헬리콥터가 없어 사고현장까지 가는데 1시간 반이상이 걸렸다지 않는가.

 

그리고 바다를 책임지는 조직의 1/3 이 수영을 못 한다는 건 정말 어이가 없다.

바다에서 제 몸 하나 간수하기 바쁜 사람이 어찌 남을 구조하는데 앞장 설 수 있겠는가. 물론 육상 행정직 근무자에게

수영이 필수 요건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그건 순환근무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전문성 운운하며 둘러댄다면 그런 부분 때문에 현장과의 소통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되물을 때 무어라 답변할 것인가.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지휘부에 있다. 청장을 비롯해 절반이 함정 근무 경험이 없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된다.

배를 타보지 못 하고 바다를 모르는 지휘관이 어찌 장비를 비롯해 현장 인력의 어려움을 알겠으며, 구조 등 해상 전술에 대한

이해가 있을리 만무다. 그러니 장비 개선에도 어려운 예산으로 145억을 들여 골프장을 만든다는 발상이 나올 법하다.

엘리트 인력의 충원 차원에서 외부 우수인력의 특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우수 인력의 우수한 두뇌를 십분 활용키

위해서라도 현장 근무는 필연적이고 필수적이다. 그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계층이 나눠지며 소통이 안 되고, 조직의 갈등이 야기된다.

 

대통령은 해양경찰을 해체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조직을 해체한다고 조직원이 모두 옷을 벗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편제에 의해 어디론가 다른 조직으로 흡수될 것이다. 소속 기관이 바뀔 뿐 수영을 못 하는 건 똑 같을테고,

함정 근무 경험이 없는 것도 똑 같다. 조직의 문제에 앞서 조직을 움직이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으로 최고 수뇌부를 구성한 임명권자 역시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열악한 여건에서도 묵묵히 시키는대로 현장을 지키는 하부 계층의 사기를 꺾는, 극단적이면서도 결정권자로서는 가장 간편한

[해체]라는 조치보다는, 조직의 내부 문화를 바꾸기 위한 제반 제도에 대한 치밀하고도 치열한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고, 대한민국 50대이상 남성이라면 거의 경험했을 고스톱.

가끔 도박행위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하고 경찰의 단속 대상이기도 했지만,

일반인들에게 고스톱은 한때 친목도모의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집들이 등 가까운 사람들이 집에서 모이면 식사 후 필수코스처럼 뒤따르는 것이 고스톱이고,

골프를 치는 사람들도 라운딩 후 식사를 마친 후에는 고스톱으로 2라운드를 즐긴다.

또한 직장인들은 퇴근 후 삼삼오오 사우나를 찾아 고스톱을 즐기기도 했다. 

한낮 동네 복덕방에 모여 한가로이 고스톱을 즐기는 모습도 익숙한 광경이었고,  

喪家에는 문상객을 위해 으례 모포와 화투가 필수도구로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듯 한때 우리 사회의 친목 아이콘이었던 고스톱이 이젠 주변에서 차츰 사라지는 듯하다. (내가 안해서 그리 생각되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장례식장에서도 화투를 보기가 어렵다. 나역시 고스톱해본 지가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고스톱의 변천사를 보면 사회의 시대상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기본 규칙에 그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룰이 새롭게 생성되고, 점점 자극적이 되어가는 게 고스톱이다.

단순한 규정에 흥미를 잃게 되면서 대박을 추구하는 규정이 생기고, 그러다보면 상대적으로 쪽박을 차는 상대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런 모습이 참여하는 사람이나 옆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더 열광케 한다.

 

 

우연찮게 요즘 판매되는 화투를 보니 예전엔 전혀 보지 못했던 패가 많아졌다.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예전엔 원래있던 화투 패중에서 (두 장으로 인정하는) 쌍피를 정하곤 했는데, 이젠 아예 보너스 패를 만들었다.

변수가 많아진다는 건,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두뇌활동이 왕성해진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보편적인 것에 만족하지 못 하고 점점 자극적이 되어간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정서가 안정적이지 않고 피폐화된다고 할까..

 

궁금한 건, (내가 고스톱을 해본지 오래 돼서 잘 모르겠지만) 저런 새로운 패들이 수요자들의 욕구에 의해 생성된 것인지,

아니면, 고스톱을 즐기는 사람들의 대박 심리를 자극하여 판매 제고를 위한 화투 제조사들의 아이디어인지 모르겠다.

만약 후자라면 우리 사회의 건전성을 위해 저런 마케팅은 자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

 

살아가는 데 가장 좋은 시기는 40 초중반인 듯 싶다.

 

정상적으로 사회활동을 한다면,

큰 사치는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 내 하고 싶은 몫은 할 수 있으면서,

충분하진 않더라도 어디가서 업신여기진 않을 적당한 경험과 안목,

그리고, 열정과 창의가 가장 조화로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인관계에서도 꾸미기에 따라

젊은 층에게 크게 불편함이 느껴질 정도의 Old한 계층으로 보이지 않으면서도,

연배가 많으신 어른들에게는 크게 어려 보이지 않는..

어느 쪽으로부터도 어색하지 않게 대우받을 수 있는 나이층이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 40 중반에 무작정 나선 6주간의 유럽 배낭여행은 내 삶에 새로운 사고와 함께 자신감을 심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

 

안철수씨가 야권 단일후보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했다.
지지자들은 많이 아쉽겠지만, 본인이 정치를 계속 할 거라 했던만큼
이제 나이 오십 세인 정치인으로서는 최고이자 최선의 선택이 아닌가 싶다.

다가오는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5년 후를 생각한다면 비록 당장
대망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이번 대선의 최대 수혜자는 안철수이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승리한다면, 당연히 안철수는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서
문재인 정권 5년간 그에 상응하는 역할과 보상을 받으며 5년 후의 입지를 다질 것이며,

박근혜가 승리한다면, 안철수에 대한 아쉬움은 상대적으로 더욱 커지며
5년 후 대선에서 10년간 이어진 보수정권 교체의 절실한 희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안철수의 입장에서는 후자의 경우가 5년 후 대망을 이루기에는 더 좋은
여건일 수 있는데, 이런 정황을 생각 못할리 없는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이
이번 대선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서로를 보듬을지 흥미롭다.

문재인의 입장에서야 무조건 안철수를 끌어들여야 하겠지만,
안철수의 입장에서는 어느 만큼의 지원이 향후 입지에 유리한지
유불리에 대한 셈법이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세 사람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자.

▶ 박근혜로서 최선의 상황 : 안철수의 문재인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낙선.
▶ 박근혜로서 최악의 상황 : 안철수의 문재인 적극적인 지원으로 문재인 당선.

▶ 문재인으로서 최선의 상황 : 안철수의 지원없이 당선. (국정운영에 안철수에 대한 빚이 없다)
▶ 문재인으로서 최악의 상황 : 안철수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낙선.

▶ 안철수로서 최선의 상황 : 문재인 적극적인 지원 후에는 어떤 결과든 나쁘지 않다.
                                       문재인 당선시 영향력 행사라는 명분이 있고,
                                       문재인 낙선시에는 5년 후 정권교체의 유력한 주자가 될 수 있다.
▶ 안철수로서 최악의 상황 : 문재인 소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당선.
                                       생색도 못 내고 대우도 못 받고...


정치는 참 어렵다.
정치인으로서의 처신은 더 어렵고, 정치인으로서 결정적인 순간에서의 판단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 어려운 일을 기를 쓰고 하려 한다.

왜???

 

 

:

 

이사한 지 열흘이 지났다.
아내의 성격이 원래 살림 느는 걸 싫어하는데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그나마 또 미리 정리를 한 덕분에
이사 후 정리는 하루 이틀 사이에 끝나버렸지만, 신규 입주 아파트다보니 하자 보수가 며칠 이어졌다.

이사의 풍속도도 점점 달라진다.
혼자 자취나 하숙하는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이사는 요즘 포장이사가 대세다.
중요 품목만 미리 정리해두면 이사짐센터가 물품의 포장부터 시작해 이사간 집의 수납까지 모든 걸
마무리 해준다. 물론, 주인의 습성에 따라 부분적으로 집주인이 직접 다시 챙겨야 할 부분이 있지만,
예전처럼 이사할 사람이 직접 짐을 싸거나 풀 필요가 없다.

이사를 위해 사전에 종이상자와 신문지를 잔뜩 준비해 일일히 그릇 등을 쌌던 모습은 이제 민속화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 돼버린지 오래다. 물론, 여건에 따라서 아직 그런 모습들을 볼 수 있겠지만, 도심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번에 이사를 하며 그런 모습마저 또 변화하고 있음을 체험했다.
여지껏의 이사는 짐 풀고 정리하면 사는 데 지장이 없었는데, 이번엔 그걸로 끝이 아니다.

새로 건설한 아파트이기에 더 그렇겠지만, 뭔 놈의 사용설명서가 이리도 많은지..

 


보안과 생활의 기본이 되는 전자도어 및 난방과 온수, 조명 제어장치를 비롯해, 홈네트워크, 보일러,
무선 AP, 정수기와 오븐, 심지어 음식물 탈수기와 행주와 도마, 칼의 살균장치까지, 15종이 넘는 갖가지
사용설명서를 읽고 이해하기도 벅차다. 그렇다고 이런 노력을 안 할 수도 없다.
내용을 이해 못 해 작동을 못하면, 편하라고 있는 물건으로 인해 오히려 짜증이 나고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설명서를 읽으며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난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단지 부모님 뿐만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 내게 와닿을 우려일 수 있다.
앞으로 문명은 더 발전할테고, 그와 비례해 새로 지은 집들은 더욱 첨단설비로 무장할텐데,
나중에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가 벅차질 시기가 되면 그땐 어쩌나~  

큰 일이다.   

:

 

나도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갖고있는 사고의 굴레 안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자신의 기준과 다른 가치관에 대해 내색을 하고 안하고 정도가 아닐까 싶다.

나는 외국 제품에 대해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갖거나 집착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외국 제품을 사용한 경우도 많지만, 국내 제품에 앞서 외국 제품을 우선시하는 빈도는
감히 국내 소비자 평균 이하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외국 제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을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외국 제품에 과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소비 성향은 개인의 취향일 뿐, 애국심과 결부하여 생각하는 건 지나친 국수주의라고 생각한다. 


수입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들에 대해 대부분 신분 과시욕구가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디자인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국산자동차의 수준이  수입자동차에 비해 많이 뒤처졌던 게
사실이지만, 요즘은 국산자동차의 디자인이 수입자동차에 비해 전혀 부족함이 없고, 전자기능 등
편의장치는 오히려 앞서가기도 하는데, 굳이 자동차 값과 부품 값 등 유지관리 코스트가 높고
A/S가 열악한 수입자동차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입차를 살 바에야 차라리 같은 가격으로 더 업그레이드된 국산차가 낫다고 생각해왔다.


자동차를 바꿀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용 중인 자동차에 이런 저런 문제가 생겨 년초 150만원을 들여 정비를 했는데,
타이어를 교체해야 할 시점이 되니 생각이 복잡해진다.
지금부터는 수리비 등 정비 비용이 점점 많이 발생할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차제에 차량을 교체한다면 어떤 차량을 구입해야 하나...

나름 두 가지 기준이 설정된다.

하나는, 승하차시의 편의성.
개인적으로 차체가 높아 시야가 넓고, 적재공간이 넉넉한 SUV를 선호하지만,
이번에는 내 욕구를 접고 승용차를 선택해야 할거 같다. 부모님이 연세가 많아지시니,
자주는 아니지만, 차체가 높은 SUV 차량을 타고 내리실 때 많이 불편해 하시기 때문에
이번에는 차체가 낮은 승용차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는, 고유가 시대에서 연료 값과 연비를 생각치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단가가 비싼 가솔린엔진보다 디젤엔진을 장착한 차량을 찾게 된다.
디젤이 가솔린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가도 싸지만, 리터당 연비 또한 높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으로 구입대상 차량을 검색하니 생각치 못 했던 결과가 나온다.
부모님을 모신다는 목적에 부합되려면 좌석 공간이 비교적 넉넉한 중형차 이상은 돼야 하는데,
국내산 자동차의 경우 중형차 이상에서는 디젤 차량이 없다. 

그런데, 수입자동차에는 중형차 이상에도 디젤엔진을 탑재한 다양한 차종이 많았다.
당연히 연비 역시 국산자동차에 비해 50% 이상 높은데, 이 지점에서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에 많은 오류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수입자동차는 비싸다는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이다.


                           
비교 기준이 완벽하게 동일하진 않지만, 비슷한 수준의 국산자동차와 수입자동차 두 종씩의 비교 제원이다.
(전문가가 보면 많은 차이점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평범한 일반인의 시각에서 비슷한 옵션으로 본 것이다)

일단 국산차량은 모두 가솔린엔진이며, 수입 디젤자동차에 비해 연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물론, 배기량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실 국내 도로에서 배기량이 3000cc 이상일 필요도 없다.
국산자동차의 배기량이 큰 이유는, 무거워진 중량을 원활히 움직이게 하기 위함이다.
가솔린과 디젤의 리터당 단가 차이가 큰데다 리터당 연비마저 차이가 크니, 연료비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차량 구입가격은 보는 바와 같다.

또한, 위에 비교 대상인 국산자동차는 대형으로, 수입자동차는 중형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그건 표현 그대로
배기량의 기준으로 구분된 것일 뿐, 자동차의 실내공간을 가늠할 수 있는 축거의 수치에는 큰 차이가 없다.


며칠을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하며 얻은 결론은, 그간 가지고 있던 내 생각이 많이 틀렸다는 것.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수입차의 효용가치가 훨씬 높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수입차를 이용하는 청장년 층에 대한 인식 또한, 겉 멋이 들었다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야무진 선택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인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수입차로 마음이 기울고 있는 자신에 대한 합리화 아니냐고 비난을 받더라도, 따로 변명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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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남들과는 다른 시각과 안목을 가진 사람에 의해 설계되고 창조된다.

남들이 버리는 소재에서 일반인이 생각치 못 하는 창의를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결과물을 보며,
누구는 웃으며 기발한 재치에 탄복을 하고,
또 누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인격을 문제 삼으며 탄식을 한다.

어느 한 편을 나무랄 순 없다.
전자는 미래 창조에 필요한 구성원이며,
후자는 과거 보존에 필요한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사회 구성원은 다 각각의 역할이 있다.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집단을 이해하지는 못 하더라도 맹목적 비판만 하지 않는다면,
미래와 과거는 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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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 한순철 선수의 은메달을 끝으로 런던올림픽은 끝났다.
그리고, 올림픽과 함께 폭염도 끝나는 모양이다. 선선한 바람이 분다. 아마 올림픽 기간중엔

선수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선수들이 흘리는 땀의 의미를 이해하라고 그렇게도 더웠나보다.

2012년 런던올림픽은 역대 그 어느 올림픽에 비해 대한민국에게 여러모로 의미가 많은 올림픽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금메달 13개를 초과한 금메달 신기록을 세우지 못한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대한민국은 당초 목표였던 금메달 10개와 종합순위 10위의 목표를 초과 달성하여,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종합 5위에 올랐다.

 

 

 

우리보다 몇 십배 넓은 엄청난 영토와 수억의 인구를 보유한 나라, 그리고 우리보다 월등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유럽의 수많은 나라 중, 우리보다 위에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와 개최국 영국 뿐이다.
물론, 금메달 숫자가 각 나라의 국력을 가름하는 잣대가 될 수 없으며, 국민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라고
생각하는 건 옳은 판단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에서 선발된 자원들이 다양한 종목에서
고르게 세계 정상권에 올랐다는 건 우리가 자긍심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러한 자긍심은 대한민국이 획득한 메달 종목에서도 나타난다.
레슬링과 복싱은 과거 대한민국의 주된 메달 밭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메달을 획득하는 종목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올림픽 메달의 기대 종목이던 레슬링과 권투는 우리에게 더 이상 메달 소식을
들려주지 못 한 반면, 예전엔 생각지도 못 했던 종목에서 메달을 안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양궁이 그랬고, 예전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던 수영과 사격, 그리고 펜싱에서 메달을 일궈내고 있다.
선수 개개인의 환경은 알 수 없지만, 소위 헝그리 스포츠라는 격투기종목에서 (일반적인 시각에서) 투자가
필요해 보이는 종목으로 메달권이 바뀐다는 건, 생활수준이 얼마만큼이나마 향상됐다는 반증이다.


이번 런던올림픽이 대한민국에게 더욱 각별했던 이유는, 당초 기대 이상의 성적 때문이 아니다. 
런던올림픽은 몇몇 종목에서 있었던 이해하기 어려운, 유난히 대한민국에게 아쉬웠던 심판 판정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마음의 상처를 안겨 주었다.

수영 박태환의 예선 실격판정의 번복을 시작으로, 유도 조준호의 심판위원장에 의한 심판 전원일치 판정의 번복,
그리고, 전 세계의 Hot Issue가 된, 세계 언론이 역대 올림픽 5대 오심으로 인정할 정도로 역사에 남을만한 펜싱
신아람의 게임 종료시간 1초 해프닝. 그것 만이 아니었다.
축구 비주류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축구는 영국과의 8강전과 브라질과의 4강전에서 연거푸 심판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다. 8강전의 심판은 영국에게 두 번의 페널티킥을 허용했지만, 4강전의 심판은 반대로 두 번에 걸친 
우리의 페널티킥 기회를 외면했다.

때문에 London Olympic은 Random Olympic 혹은, Wrong Done Olympic 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는데,
나 역시 올림픽 기간에 다음과 같은 멘트를 트위터에 올렸었다.
   

                   

올림픽은 우리에게 금과옥조와 같은, 의미있게 되새겨볼만한 많은 어록을 남겼다.

유도 김재범은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죽기살기로 임해 은메달을 땄는데, 이번엔 죽기로 싸워 금메달을 땄다." 는,
축구 대표팀 홍병보 감독이 한일 4강전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인용할 정도로 비장한 말을 했고,
레슬링 송대남의 "내 메달을 모두가 깜짝 금메달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겐 정해진 금메달이었다." 는 말과
같은 레슬링 김현우의 "나보다 많은 땀을 흘린 선수가 있으면 금메달을 가져가도 좋다." 는 말은, 이들이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느끼게 하는 말들이다.

또한, 배구 김연경은 "일본에 지니 눈물도 안 난다" 는 통한의 감정을 토로했으며,
펜싱 감독은 "유력인사들이 금메달을 하나 딴 김연아에게는 많은 관심과 후원을 하며서도, 금메달을 몇 개 딴
펜싱선수들과는 차 한잔 같이 한 적이 없다." 는 말로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표하기도 했다. 

어록은 선수들만 하는 게 아니다.
펜싱 1초 오심을 패러디해, TV 앵커는 "1초 후에 뵙겠습니다." 시니컬한 멘트를 날렸고,
코미디 프로에서도 "1초만 맞아볼래~" 라는 대사를 날렸다.

올림픽을 바라보던 네티즌들의 어록 역시 빠질 수 없다.
올림픽 소식을 알리는 수 많은 기사에는 재기발랄하고 촌철살인같은 댓글이 수도 없이 올라오는데, 그 중
내가 꼽은 압권은 축구 대표팀 마지막 경기인 한일전 종료 직전 투입되어 극적으로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김기희 선수에 대한 댓글이다. "김기희 44분 군 입대, 48분 제대." 


국민들의 밤 잠을 설치게 했던 올림픽은 끝났다.

많은 순간들이 우리의 마음에 짜릿한 전율과 가슴 먹먹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 TOP 3 를 꼽으라면 사람들은 무엇을 꼽을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가장 인상적인 세 장면은,

 

 

첫째, 마지막 올림픽의 회한을 바벨에 손 키스로 표현하던 장미란의 모습.

 

 

 

둘째, 체조 양학선의 마치 지남철과 같았던 두번 째 시도 완벽한 착지.


그리고, 축구 박주영의 일본 수비수 세 명을 제친 결승골 장면이었다.


 

 

이 사진은 구자철의 쐐기 골 장면.
13번 구자철을 끝까지 마크한 일본 수비수도 13번이라는게 재밌다.


올림픽 마지막 소회.

많이 나아졌지만, 앞으로도 우리 선수들이 더욱 즐기는 올림픽이 됐으면 좋겠다.
즐긴다는 의미는, 최선을 다한 결과에 대해서는 아쉽더라도 너무 애닯아하지 말고, 함께 기량을 겨룬 상대를
축하할 수 있는 도량과 여유를 가지길 바란다는 의미다. 그런 모습이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쑨양에 대한 박태환의 태도는 상당히 보기 좋았다.


결승에서 패하고도 우리 선수들을 환한 미소로 축하하는 루마니아 선수들의 표정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보름간 숱한 감동을 안겨준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선수들 너무 수고 하셨습니다.

 

:

 

욕망과 꿈.


어느 것이 더 이루기 쉽고,
어느 것이 더 이루기 어려운 걸까?

욕망은 이성이 동력이 되는 반면,
꿈은 감성으로 다가간다.

욕망은 쫒는 것이고,
꿈은 추구하는 것이다.

욕망은 계속 이루고 이뤄도 끝이 없지만,
꿈은 이루어진 하나로 모든게 행복하다.

때문에
욕망을 쫒는 사람은 이루고도 늘 조급한 반면,
꿈을 추구하는 사람에겐 이루지 못해도 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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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은 4년 만에 찾아오는 윤년이다.
윤년에는 2월이 29일까지 있다.
즉, 4년 만에 하루가 덤으로 더 있는 것이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다.
4년 만에 인생에게 주어지는 보너스 날. 


이런 생각을 해봤다.

4년 마다 오는 2월 29일에는 모든 공식적인 사회활동을 중단하면 어떨까?

4년에 한번 우리 삶에 덤으로 주어지는 24시간.
그 24시간 만큼은 모든 사람들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위해 사용한다면,
사람들은 무얼 할까?
 

이번 총선에서 윤년 안식일제를 공약으로 제시하는 정당이 있으면
정당 지지 투표는 무조건 그 정당으로 할텐데..^^

:

다윗 왕이 자신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 궁중의 세공을 불러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단다.

"반지를 하나 만들어 문구를 새기는데, 내용은 기쁠 때 그 기쁨을 자제할 수 있고,
 반대로 좌절에 빠졌을 때 용기를 얻을 수 있는 문구여야 한다."

궁중에서 일 하는 세공이니 만큼 반지를 만드는 거야 일이 아닐 수 있지만,
문제는 기쁨을 자제함과 동시에 좌절을 극복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어찌보면 상반되는 의미를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문구가 문제였다.

이에 세공이 지혜의 상징인 솔로몬 왕자를 찾아 조언을 구했고,
솔로몬 왕자는 이런 문구를 알려주었단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주말 밤,
아내와 함께 TV의 교양프로그램을 보다가 우연히 듣게 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표현.
아내는 이 표현을 듣는 순간 탄성을 질렀다.  위에 적은 글은 이 경이로운 문구의 출처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이야기다.


그래.. 영원한 것은 없다.
살아온 삶이 어느덧 오십을 넘어 육십을 향하지만, 삶이 늘 같지만은 않았다.
즐거운 일도 있었고 걱정에 빠져 우울했던 적도 많았지만, 그런 희비는 어느 순간 
항상 나를 스쳐 지나가곤 했다. 즐거움이나 걱정이 머물러 있기만 한 적은 없었다.

만약, 둘 중에 하나가 항상 내게 머물러 있었다면, 나는 이미 남을 생각치 못하는 오만한
사람이 되었거나, 아님, 좌절감에 빠져 세상을 원망만 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무리 즐거웠던 일이라도 시간이 흐르며 평상심으로 돌아오고, 큰 걱정에 빠져있다가도
나도 모르는 순간 그 질곡에서 빠져나와 일상을 누리곤 했다.

머무는 것은 없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지나가고 흘러간다.
時流라는게 결국 시간의 흐름을 의미하지만, 그 의미는 단순히 시간이 머물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그 상황 역시 머물지 않는다는게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가 맞는 모든 것이 한 때라는 얘기다.

우리가 겪고 있고, 또 앞으로 겪게 되는 모든 일을 담담히 받아들이자.
지나치게 들떠 기뻐할 것도 없고, 깊이 시름에 빠져 좌절할 일도 아니다. 

결국, 그 또한 지나갈 것이기에.
      


오래 전부터 늘 마음 속에 담아두는 문구가 있다.
"뒷 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

이제 평범함 속에 담긴 오묘한 진리 하나가 역시 내 마음 속 깊히 담긴다.
"This, too, Shall pass away."

:

사람은 대개 나이를 먹으며 점점 더 보수화된다고 한다.
물론 남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 자기 생각이 깊어지고 아집이 강해진다고 하지만,
그보다 자기가 견지하던 가치관이 더 고착화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그런데, 가끔 스스로 놀라는건, 나는 반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거.
정치를 예로 들자면, 난 철저한 親與 세력이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는 늘 집권 세력에 표를 던지곤 했다. 
그러던 내가 언제부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野 쪽으로 지지가 바뀌고 있었다.
與野야 선거 결과에 따라 뒤바뀌는거니 정치사회적 표현을 빌자면 우에서 좌로 좌클릭됐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내가 어느 시점에서 새로운 영향을 받을만한 사람을 새로이 알게 됐다거나, 그런 서적을 접한 것도 아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여전히 오래 전부터 알았던 사람들이 대다수고, 책도 즐겨 보던 쟝르에서 변한게 없다.
물론 새로 알게된 사람들도 많지만, 그들과 정치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걸 좋아하는 취향상 나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이 느껴졌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우리 또래에서 나는 정치이념 측면에서 비주류인데,
그게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임에서 내가 금기로 삼는 소재가 몇 가지 있다.
정치, 종교, 그리고 학력에 대한 이야기다. 이 세 가지는 이야기를 하다보면 논쟁의 과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분위기까지 경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소재가 언급되면 난 가급적 입을 다문다. 아무 의미가 없는 쓸데없는 소모전이 되는게 싫어서인데, 
이런 사람이 꼭 있다.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으면 자기 생각에 모두 동조하는 걸로 여겨 더욱 주장이 거세지는.. 

 
30년을 알고 지낸 사람 중 진보진영이라면 무조건 친북좌파, 나아가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사람이 있다.
전에도 그런 주장을 하길래, 그 때 웃으며 "친북좌파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거 같은데요.. 
[親Book坐破] 책과 친하게 지내며, 앉아서 책을 독파하자는게 뭐가 나빠요?" 라며 농담투로 말을 막았는데,
얼마 전 모임에서 또 다시 같은 논리로 열을 올리기에 참다 못해 반문했다.

- 나 직전 세 번 대통령 선거에서 모두 야당 후보 찍었고 박원순도 지지하고,
   또 스스로를 진보라고 생각하는데, 30년 알고 지내는 동안 나를 빨갱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
> 그건 아니고...
- 내가 박원순을 지지했다고 하지만, 그의 정책을 지지한다는거지 박원순 개인에 대해 전혀 모른다.
   여권에서 문제시 삼는 박원순 개인에 대한 의혹 중 분명 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역으로, 야권에서 제기하는 나경원에 대한 의혹도 모두가 네거티브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개인에 대한 문제를 떠나 정책에 대한 선호다.



이념 혹은 사상과, 정책에 대한 가치관을 구분 못하는게 문제다.

사회관습이나 진화현상에 대해 지킬 건 지켜가며 신중하게 대처하자는게 보수의 가치관이고,
버릴 건 과감하게 버리고 좀더 적극적으로 빠르게 수용하자는 것이 진보의 가치관 아닌가.
보수와 진보는 대응방식이 다를 뿐이지, 상대방이 틀린게 아니다. 

그럼에도 변화를 보는 가치관과 대응방식의 차이를,
아직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적 시각으로 구분짓는 사고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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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달마다 만나는 모임에 지방에서 꾸준히 참석하는 친구가 있다.
친구들에 대한 열정이 한결같은 그 친구가 늘 고맙다.

만날 때마다 자신의 행적에 대해 다소 과하게 이야기하는 친구가 있다.
이번에도 딸이 해외에서 결혼한다는 이야기부터 (신랑 신부 및 양가가 모두 한국에 있는데 나가서 한단다)
부부의 해외여행 이야기며 딸아이 집 사준 이야기, 스웨덴제 청소기 사준 이야기 등을 열거한다.

일부러 자랑하는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마음이 편치 못한건,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가 우리 중 경제적 여건이 제일 어렵기 때문이다.
자녀가 넷인데, 뒤늦은 결혼으로 막내가 아직 초등학생이다.

하는 일도 쉽지 않은 친구가 당일로 내려가면서까지 매번 교통비 들여가며 서울까지 오는게
그래도 친구들 얼굴 한번 보고 정담을 나누고싶어서 일텐데,
그런 친구들에게서 자신과는 다소 멀리 느껴지는 듯 한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자괴감과 상실감은 어떨까. 
그 친구는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정담을 기대하고 올라와서는 상처만 안고 내려간다 생각하니 착잡하고 씁쓸하다.
물론 나만의 과잉반응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서로 신경 써주는 것이 오래오래 정을 나누는 비결이 아닌가 생각한다.
친하고 가까울수록 허물이 없다지만, 그 허물을 건들지않는 작은 노력과 세심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본다.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무슨 이야기를 해도 상관없다. 맘껏 자랑을 해도 좋다.
하지만, 차이가 있는 사람을 앞에 두고 말로는 "힘내~ 힘내~" 하면서,
자신이 누리는 걸 자랑스레 나열하는건 (좀 과하게 표현하면) 야비한 행동이라 생각된다.

또한, 여럿이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대다수가 공감하는 대화보다,
소외될 수도 있는 한 사람을 생각하며 대화를 이끄는 것이 그 구성원의 그릇의 크기다.


늘 갖는 생각이지만,
상대를 기쁘게 해주는 것 보다,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게 해주는게 배려다.  
:

단지 태어났을 뿐인 오너와 개인의 노력으로 성장한 리더는
태생적으로 의사결정과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소유와 경영의 차이점을 알고 그 한계를 지킬 수 있을 때
존중받고 신뢰받을 수 있는 오너가 되지않을까..



:

전국이 집중호우로 인한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로 난리다.
TV로 집중취재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과 한심한 생각이 동시에 든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인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 뭐라 할 말이 없다.
올림픽대로가 물에 잠긴거야 한강변이라 그럴수도 있다고 백번 이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강남대로, 대치동 등에서 차량이 완전히 물에 잠긴 모습은 일상적인 판단으로는 이해가 안간다.

작년 추석 연휴,
그때도 집중호우로 광화문과 홍대입구, 그리고 강남역의 침수가 대대적 뉴스거리가 됐었다. 
그리고 1년이 채 안되어 서울의 핵심인 광화문과 강남 일대는 전혀 개선된게 없이 또 다시 같은 모습을 보였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오세훈 시장의 재임기간중 서울의 수해방지 예산이 1/10로 줄었다고 한다.
오세훈 시장은 디자인 서울을 강조하는 사람이다. 세계인이 놀랄만한 인상적인 명품 도시를 만들고,
그럼으로써 더 많은 지구인이 찾고싶은 그런 서울이 오세훈 시장이 추구하는 필생의 치적이다.

하지만, 
요즘의 아수라장을 보면서 오세훈 시장이 지향하는 디자인 서울의 핵심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도시 이전에 안전한 도시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즈니스 외의 목적으로 서울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관광객이지, 탐험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오세훈 시장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하다.

:

요즘 페이스북 이용자가 부쩍 늘었다.
아직 트위터가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점점 페이스북 애용자들이 급증하는 느낌이다.

전에도 한번 간단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불특정 다수와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다는 대전제의 공통점을 기반으로 하지만,
운영방식의 개념은 확연히 다르다. 각각의 차이점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점을 들라면, 그 불특정 다수를
내 의지대로 선별할 수 있고 없고가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가장 큰 차이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페이스북은 누구와 교류하려면 자기가 원하는 대상에게 친구 승인 요청 절차를 밟아 서로 인정한 사람끼리
교류를 하는 반면, 트위터는 상대의 승인절차없이 내가 원하는 대상을 임의로 follow 할 수 있다. 
즉, 페이스북은 서로 인정하는 대상끼리 자기 생각을 전할 수 있지만, 트위터는 누구든 원하는 사람의 
생각을 받아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물론, 페이스북도 (밑에서 조금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공유 옵션을 이용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내 생각을
보여줄 수 있고, 트위터도 블록 기능을 활용하여 내가 원치않는 사람이 내 생각을 전해받는걸 차단할 수 있지만,
페이스북이 사전 조치가 가능한 반면, 트위터는 사후조치일 뿐, 사전조치는 아니다.

또한, 페이스북은 블로그와 같이 포스팅한 내용에 대해 자유롭고 편하게 댓글과  답글을 달 수 있어 
어떤 사안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한번에 볼 수 있다는 편리함이 있고,
한번에 올릴 수 있는 내용의 용량이 트위터에 비해 더 크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여러사람들에게 폭넓게 생각을 전파하는데는 트위터가 페이스북에 비해 압도적인 강점이 있다.
위에 언급한 대로 선택의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치인이나 연예인, 혹은 스포츠 스타 등
대중성을 중시 하는 사람들은 트위터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은 팬들이 알아서 먼저 자신들을 팔로우하게 되고, 자기의 생각을 밝히기만 하면
자동으로 수 많은 팔로우어들에게 전파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트위터에는 retweet 기능이 있어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SNS의 특징이 교류와 소통이고, 교류와 소통의 의미 구분이 쉽진 않겠지만,
굳이 구분을 한다면, 페이스북은 교류에, 트위터는 소통에 더 무게중심이 있다고 보면 될까..


그런 이유로 대중성을 중시 여기는 사람들은 트위터를 중시하는 반면,
친화적 인간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에 더 애정을 갖게 되는데, 
페이스북 마니아도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두 특성으로 나뉜다.
불특정 다수를 포함한 폭넓은 교류의 장으로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사람이 있고,
소수의 지인을 대상으로 정담을 나누는 사랑방 형식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있다.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있는 내용이지만,
페이스북에는 내 사이트 접근 권한과 개인정보 공개에 대한 여러가지 다양한 옵션이 있다.

페이스북의 인간관계는 크게 [친구, 친구의 친구, 모든 사람] 세 분류로 나뉘어지는데,
개인 신상정보에 대한 공개여부를 포함하여, 담벼락(페이브북에서 표현하는 개인 사이트)에
글을 남기는 권한까지 위 분류에 따라 대상을 제한할 수 있으며, 친구 중에서도 특정인만을
지정하여 특정 부분의 접근을 허용하거나 불허할 수 있다.
아울러, 페이스북에서 아예 자신을 검색할 수 없도록 할 수도 있다.
친구 관계의 성립은 친구 요청과 승인에 의해 이루어진다.

페이스북의 또 하나 특징은, 개인정보를 등록하면 페이스북이 자동적으로 공통점이 있는 사람을 찾아
알려준다는 것이다. 학력이나 직장 등 사회경력을 세세히 등록할수록 공통점이 있는 사람을 찾아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때문에 소식을 몰랐던 뜻밖의 지인을 찾을 수도 있다.
때문에 개인정보를 세세히 등록하면 누군가를 찾는데 서로 도움이 되는건 사실이다. 
나를 찾는 사람이나 내가 찾는 사람의 검색 폭이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원치않는 사람에게까지 내 존재가 드러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의 등록과 공개여부는 각자의 선택이다.     

폭 넓은 교류의 장으로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고,
친구관계도 적극적으로 맺는다. 일부 비즈니스나 마케팅 목적이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 친구맺기를 통해 새로운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친분을 맺고 있다.
그리고 그런 단계를 거쳐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기도 한다.

반면에 페이스북을 개인적인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자기 생각과 생활에 대한 기록을 담는 사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보수적으로 운영한다.  모든 개인정보는 비공개로 하고, 친구맺기도 상당히 소극적이다.

내 경우는 후자에 속하는데, 나는 페이스북을 사랑방 개념으로 운영한다.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오픈된 친분을 맺는 것에 비하면 다소 의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온라인에서 하나쯤은 내가 원하는 공간을 갖고싶기 때문이다.
또 그것은 페이스북의 몇가지 단점 때문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에는 여러가지 재밌는 기능이 많지만, 반면에 몇가지 이해가 안되는 짜증스러운 기능이 있다.
너무 인적 네트워크에 치중하다보니 일종의 과잉 친절(?)을 보이는데, 대표적인게 이런거다.


저렇게 내가 친구를 맺은 사람들의 교류 내용까지 내게 전달이 된다는거다.
이건 어찌보면 사생활 침해같기도 한데, 어찌됐든, 나와 관계가 없는 내용이 내 사이트를 점유한다는게
사실 짜증스러운 일인데, 친구가 많을수록 저런 빈도수는 당연히 많아질 수 밖에 없고,
그럼으로써 저런 내용들로 내 사이트가 도배되어 내가 보고픈 내용을 찾아야 한다는건 일종의 공해다.

또한, 아무리 친구가 많아도 내 글이 덮히는 경우는 없는 블로그와는 달리,
페이스북은 친구가 많을수록 친구들이 하나씩만 올리더라도 내 글은 물론,
정작 내가 궁금히 여기는 사람들의 글은 밑에 묻혀 찾기가 힘들어진다.


그런저런 이유로 블로그와는 달리, 나는 페이스북을 상당히 보수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개인정보는 일체 등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용의 공개는 친구만으로 한정하며,
친구맺기 또한 지극히 한정적으로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가끔은 본의아닌 오해를 받기도 한다.

고교나 대학동창, 심지어는 직장생활을 함께 한 동료나 선후배로 부터 친구 요청을 많이 받는데,
거의 승인을 하지않기 때문이다. 한번은 고교동창의 친구 요청에 응답을 하지 않았더니,
그 친구로 부터 이런 쪽지가 왔다. "상범아.. 네 담벼락이 너무 높구나.."

친구 요청을 받고 응답을 하지않는 경우, 아무래도 내게 친분을 보여준 상대방에게 무척 미안하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쯤은 여유로운 공간을 갖고싶은 마음이다.
누구 눈치 안보고 내 생각을 가감없이 자유로이 표출하고 싶은..

나름대로는 페이스북을 블로그나 트위터와는 각기 특성에 맞춰 활용법에 차별을 두고 있는데,
스마트폰을 통해 페이스북을 간편히 애용하다보니 아무래도 블로그가 좀 소홀해진다.
때문에 블로그에서 인연을 맺은 분들께 소홀해지는거 같아 마음이 찜찜할 때도 많다.

하지만, 블로그에 무심해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려 한다.
블로그는 내게 온라인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터전이기 때문이다.
:

난 블로그에서와 달리 페이스북에선 친구신청을 잘 받지않는다.
모르는 사람은 전혀 받지않을뿐 더러, 동창 등 아는 사람들의 신청도 거의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페이스북의 특성이다.
친구의 모든 동정에 대해서까지 일일히 노티가 되는 페이스북은 어떤 때는
나와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영역의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알림으로 도배가 된다.
이게 대체 내 영역인지, 동네 장터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난잡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또 하나의 이유는, 블로그와 차별화시키기 위해서다.
블로그는 오픈 공간으로 활용하고, 페이스북은 사랑방으로 사용하고 싶어서다.
블로그와는 조금 달리 개인적인 사생활을 갖고 싶다고 할까..
때문에 잘 모르는, 혹은 적당히 아는 사람들과 형식적이고 립서비스적인 이야기가 아닌,
서로 잘 아는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블로그를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느끼는 피로감이 있다.
내 블로그 방문자에 대해 예의상 답방을 하고, 댓글에 대해 답글을 다는게
처음 블로그를 시작하여 인맥을 만들어 나갈 땐 재미있지만, 어느 정도를 지나면
상당히 부담스럽다. 때문에 잘 맺어진 일정 인맥 이상은 외연 확대를 안하게 된다.
그런 피로감을 페이스북에서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가 않다.

때문에 노출되는 개인정보도 상당히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친구 승인을 하지 않은 분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많지만 이 자리를 빌어 이해를 구한다.
그 분들 중엔 꼭 나와 대화를 하겠다기 보다, 페이스북을 처음 시작하며 아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호기심에
친구 신청을 한 경우도 많을 것이기 때문에 내게 친구 신청을 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한번은, 페이스북을 통해 고교동창으로부터 메모가 왔다.
그 친구는 내게 친구신청을 했지만 의례적인 신청으로 생각해 친구 승인을 않고 있었는데, 
"상범아~ 네 담벼락이 너무 높구나~" 라고 메모를 보낸 것이다.

ㅋ~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바로 승인을 했다.^^ 


소셜 네트워크의 의미를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걸까~ 

:

요즘 블로그가 예전같지 않다. 몇가지 변화가 있다.

우선, 활발한 활동을 하던 블로거들의 포스팅이 많이 줄었다.
나 부터도 1주일에 다섯번 정도의 포스팅을 하던게 최근엔 주 2회 정도가 고작인데,
많은 분들의 포스팅이 눈에 띄게 줄었다.  심지어는 (일시적일지언정) 방을 닫은 분들도 꽤 된다. 

또 하나의 변화는 댓글이 현저하게 줄었다는거.
사실 특정분야 파워블로거가 아닌 일반적인 블로그의 댓글은 오는 정 가는 정이다.
특히 드림위즈 블로그 문화가 그렇다. 내 블로그의 댓글도 많이 줄었는데,
나 역시 다른 분 블로그 방문이 그만큼 줄었다.

이렇게 전에 비해 블로그가 다소 소강상태인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 듯 하다.

하나는, 전반적인 사회분위기, 특히, 경기가 어렵다보니 저마다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진거 같다.
모든게 내가 편하고 신이 나야 이것저것 손을 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마련인데,
내 마음이 편치 못하고 머리 속이 복잡하니 무엇을 하는게 귀찮고, 남에게 관심보일 겨를도 없다.

마음의 여유 못지않게 블로그가 소강상태인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어찌보면 이게 더 큰 이유일 수도 있는데, 바로 스마트폰의 등장에 따른 SNS의 다양화다.
스마트폰이 대중화 되면서 트위터와 페이스북 활용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페이스북의 경우 그 특성이 아주 독특하다.
정보 전달기능이나 대중 전파가 우선시 되는 트위터와 달리, 페이스북은 미니 블로그 성격이 강하다.
인적 네트워킹이 강력하면서도, 블로그에 비해 단문의 글을 올리기에 적합하다.
블로그가 뭔가 글의 틀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이 있는 반면, 페이스북은 소소한 일상을
간단하고 짧게 주절대기 편하다. 블로그에 비해 문장을 만든다는 부담이 없다. 게다가,
굳이 책상 앞에 앉아 PC를 켜지 않고,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쉽게 글을 올리는 편리함마저 있다.
블로그는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글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PC가 필요하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페이스북으로 옮겨간다.

내 경우를 봐도 블로그에서 자주 왕래하며 댓글을 주고 받던 블로그 친구들을 
요즘은 블로그가 아닌 페이스북에서 더 자주 만나고 거기서 댓글을 달며 소통한다.
블로그에 비해 페이스북이 채팅 기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굳이 블로그에 형식 갖춰 글을 올릴 이유가 없어진거다.

물론, 페이스북의 내용은 블로그에 비해 가볍고 깊이가 덜 하다.
페이스북에도 노트 기능이 있고, 페이지 기능이 있어 블로그처럼 장문의 글을 올릴 수도 있으나,
에디터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져 다양한 편집이 안되는 한계가 있다.
비교하자면, 흑백TV 와 칼라TV의 차이라고 할까.. 
때문에 블로그는 여전히 블로그만의 활용가치가 있다. 특히, 특화된 영역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이제 대중적인 관심은 가볍고 빠르고, 인적 네트워킹이 뛰어난 페이스북으로 넘어간게 사실이다.


어쨌든,
그렇게 블로그 영역이 다소 시들해지다보니, 한때 활발하던 블로그번개도 덩달아 시들해졌다.
한때 가끔씩 자주 (가끔씩 자주라는게 말이 되나??) 얼굴을 보던 분들도 그때가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제 정말 오랜만에 블로그 친구 두 분이 까사미오를 찾아주셨다.


자낭화님과 별님.

햇수로 따지면 한 삼년만에 뵙는거 같은데.. 오죽하면 자낭화님이 처음엔 어색했다고 하셨을까.
오랜만에 만나 처음엔 서로 그간의 안부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보니 모두가 갤럭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스마트폰 어플에 대한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고, 그 단계를 지나니 
급기야 페이스북으로 화제가 간다. 모두 페이스북을 활용하고 있는 중.
자연스레 페이스북에서 다시 친구가 맺어지고, 서로 말로는 블로그에 비해 깊이가 없네..
페이스북은 마치 시장 장터 같네.. 하면서도, 결국 페이스북으로 귀결되는 현상이.. ㅡ.ㅡ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고, 뭐든 시대조류의 대세를 거스를순 없다.
무엇을 활용하느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이 시대와 어떻게 소통하느냐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원하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넓게 활용하면 될 것이고,
자기 내면과 소통하기를 원하면 블로그를 깊이있게 활용하면 된다.

어무 것도 안하는거. 그것만 피하면 된다.
: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기술한 중학교 교과서 검정결과 발표로 인해 국내 여론이 떠들썩하다. 
당연히 떠들썩해야 하는게 맞다.  그런데, 그 중에 실소가 나오는  부분이 있는게 안타깝다.

3주 전쯤 발생한 일본의 대지진에 대해 국내에서는 예상보다 큰 위로행렬이 이어졌다.
배용준을 필두로 한 한류 연예인 스타들과 박찬호 박지성 최경주 등 각 종목 스포츠 스타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일본돕기 모금활동이 이어지고, 온라인 상에서도 일본에 대한 위로 문구가 넘실됐다.
그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됐고,
무언가 한일관계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차에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이 중학교 교과서 개정을 통해 공식화됐고,
요 며칠간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눈길을 보내던 네티즌들은 그런 일본에 대해 어이상실이라는 반응이다.
그렇게 성의껏 일본의 재난에 대해 걱정을 하고 마음을 썼는데, 배신감을 느낀다는거.

일본은 오래 전부터 집요하게 영토문제에 집착해 왔다.
영토와 역사에 대한 일본의 접근은 긴 기간에 걸쳐 치밀하고 계획적이며 지속적이다.
그런 일본이 일시적 재난에 대한 구호품과 구호성금, 그리고, 위로의 마음을 받았다 해서
그간 품고있던 야욕(그들 입장에서는 민족의 가치)을 포기하겠는가.
그걸 기대했다면 그건 너무나 나이브하고 유아적인 감성이다.
지난 번 블로그에 올린 [일본의 지진 참사를 바라보는 착찹한 심경]에서
일본의 遠謨를 우려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처지가 안스러워 도움을 주려면 순수한 마음에서 이것저것 재지말고 순수하게 도와주자.
도움을 주며 내심 다른 걸 기대하지 말자. 쓸거 쓰면서 괜히 쪼잔해 보인다.
통 크게 행동하기가 불편하면, 차라리 모른 척 하는게 낫다.
독도 문제가 나오면 서로 생각이 달라질텐데, 그런 마음을 가리며 일본 재난에 기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기부천사 김장훈의 생각이 더 진실되고 당당해 보이는 이유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그러려니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여지지만, 이런 와중에도
여전히 TV 모니터 상단에 고정된 KBS의 일본 지진 구호성금 모금 전화번호는 참 보기 거북하다.

[부러우면 지는거다]라는 말이 있다.
일본의 행동에 배신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배신감을 느끼면 지는거다.
우리 것을 가지고 왜 상대의 반응에 실망하는가.
우리 가치관에 근거하여 우리 할 바를 하면서 당당하게 맞서자.


:

얼마 전, 축의금으로 인해 상심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몇가지 사례가 기사에 실렸는데,

하나는, 남편의 경조사비용 때문에 냉가슴을 앓는 가정주부의 하소연.
생활이 그리 여유로운 편이 아님에도, 남편의 경조비는 기본이 10만원.
게다가 오지랖까지 넓어, 온 집안 친인척에 대한 경조비 지출은 장손이라 그렇다치더라도,
꼭 챙기지않아도 무관한 경우까지 경조비를 들이미는(?) 통에 보통 속상한게 아니란다.
아이들 학원비도 부족한 형편에 꼭 그리 해야 하느냐는 투정에,
"이게 다 선투자니 보험든다고 생각하라" 는게 남편의 대답이라고.

두번째 사례는, 축의금 때문에 감정상한 제법 가까운 60대 여고동창생 이야기.
일찍 혼사를 치룬 친구 아들 결혼 축의금으로 3만원을 축의한 중년부인.
늦게 자식을 본 관계로 뒤늦게 자녀 결혼을 시켰는데, 옛날 자기가 3만원 축의했던 친구가
자기에게도 역시 3만원을 한 이유로 서로 말다툼까지 했단다.
그때 3만원과 지금 3만원의 가치가 어떻게 같냐는게 서운함의 발단.

세번째 사례는, 아이 돌잔치에 대한 한 젊은 주부의 넋두리.
자기 아이 돌잔치 때 친구들이 5만원씩을 모아 건네받았는데, 그로부터 한달 후
다른 친구 아이의 돌잔치가 있었단다. 불과 한달의 시차인지라 화폐가치를 논할 것도 없으니
별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그런데 친구들 사이에 고민거리가 된건 돌잔치 장소가 호텔이라는거.
결국 친구들이 10만원을 모았다며, 한달 사이에 지출이 두배가 된게 억울한거다.
호텔밥 먹겠다고 한 적도 없는데, 순전히 부모의 욕심때문에 친구들 비용부담은 커지고,
괜히 자기 자식에겐 소홀히 해준거 같아 미안하고.. 이래저래 속상했단다.

마지막 사례는, 친구 딸의 결혼소식을 접하고 고민이 많았던 어느 중년 남자의 이야기.
경제적으로 어려워 축의를 할 형편은 안되는데, 어려서부터 알고지내던 아이라 모른 척 지날 수도 없어
고민 끝에 결혼을 축하한다는 마음을 정성껏 담은 편지를 축의금 대신 접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친구의 딸로 부터 너무 마음 써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는 전화를 받았다는 이야기. 


위 사례를 실은 기사의 결론은 우리 사회 체면문화로 인한 과한 경조비가,
특히 경기가 안좋은 시기에 서민에게 큰 부담이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누가 그 말을 모르나..  그렇지 못하니 문제지. 


위 사례들을 보며 하나하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첫번째 사례 남편의 대답이 경조비에 대한 요즘 일반적인 사고인듯 하다.
지난 달 아들을 결혼시킨 대학친구와 나눈 이야기가 있다.
오랫동안 서로 연락도 없던 사람의 주소를 묻는 친구에게

- 청첩장 보낼거라면 보내지 마라.
> 왜? 그 사람 성격이 안좋냐?
- 성격이 안좋은게 아니라, 10년도 넘게 연락 안하던 사람에게서 이런거 오면 기분좋겠냐? 그리고 너도 미안하지 않아?
> 남들도 다 그렇게 하던데.. 또 누가 그러더라. 일종의 거래라고..
- 언놈이 그런 표현을 썼는지 모르겠다만, 넌 축복받아야 할 네 아들 결혼이 거래 대상이라고 생각하냐?
> .. .. 아니 뭐 그건.. 아니더라도, 그냥 축하해주러 온다고 생각하면 안되나..
- 그냥 축하가 되냐? 그럼, 넌 사람들이 빈 손으로 와서 "정말 축하합니다" 하고 밥만 먹고 가도 고마울 수 있겠어?

내가 속이 좁고 사고가 편협된 탓도 있겠지만, 수년간 연락도 없이 지내던 사람이 불쑥 전화를 해와
주소를 묻고는 청첩장을 보내올 때는 사실 짜증난다. 그런게 사실 민폐라는 생각이 드는건 비단 나만일까?   
평소 관심도 없이 지내던 사람에게까지 그런 행동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경조비 금액도 그렇다. 각자 서로의 형편에 맞추면 되는데, 사실 위에 언급된 표현대로 체면이란게 문제다.
어느 사이 우리 사회에서는 경조금의 액수가 마치 그 사람과의 친분의 척도처럼 되어버렸다.
사실 친분의 척도가 어느 정도 맞긴 하다. 아무래도 절친한 경우에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더 쓰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건, 경조비를 내는 개인의 경제적 형편을 감안하기 보다,
다른 사람의 경조비 금액과 상대비교를 하여 자기에 대한 정의 깊이를 가늠하려 한다는거다.
일단 와주면 고마운거 아닌가.. 못 내거나 덜 내는 사람은 사실 그만큼 더 미안하고 마음도 불편한건데..


자기가 몇년 전에 축의한 금액과 똑같은 금액의 축의를 받아 맘 상한 두번째 사례의 경우,
세월의 기간을 따져가며 돈의 가치가 다르다고 맘 상했다는 중년부인의 논리는 언뜻 맞는거 같지만,
한가지 중요한 포인트를 간과하고 있다. 화폐가치만 놓고 따지면 분명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 부인은 소득의 변화를 생각하지 못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소득은 어느 시점까지는 늘어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 시점이 몇살 때인지는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일정 시점의 변곡점을 지나면 소득보다 지출이 많아지며 경제적 압박이 더 커진다.
그 중년부인은 소득활동이 왕성할 때의 3만원과 소득이 정지된 시점의 3만원의 차이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단순히 화폐가치만 따졌기에 맘이 상했을 것이다.

화폐가치와 돈의 가치는 다르다. 화폐가치는 절대적이지만, 돈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모든 사람들의 처한 환경에 따라 같은 규모의 돈이라도 가치는 다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각자의 처지는 인정하기 보다 배려해야 하는 것이다.
경조비 금액의 가치도 그런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텔에서 돌잔치를 하는 바람에 돌 축하비용이 두배가 되어버린 세번째 사례.
사실 호텔에서 연회를 한다는건 그렇게 못하는 사람에 비해 일반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거 아닌가?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 축의를 더 한다는게 사실 더 이상한거다. 내 생각이 그렇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 뜻있는 자리에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자리가 되면 더 의미가 있을텐데 말이다.


마지막 네번째 사례의 경우, 혼주와 친구의 관계가 보통 이상은 넘는다고 보인다.
부끄러움을 진정한 축복의 마음으로 극복한 친구도 그렇고, 그런 친구의 마음을 헤아린 혼주도 그렇고,
그런 두 어른의 마음을 읽은 딸의 마음도 모두 넉넉해 보인다.   


나 역시 경조금으로 고심하는 경우가 많다.
여유가 된다면야 걱정할 필요도 없고 모두에게 마음 편해질 수 있겠지만, 그만한 여유가 안되니 늘 고민이다.
소득증가는 없는 상태에서 아이들 교육 등 지출은 많아지는데, 우리 나이가 특히 주변의 경조사가 많아지는 시기다.

하지만, 나름대로 맘 편히 생각하려 노력한다.
생각하기에 따라 상대가 내게 섭섭할 수도 있고, 스스로 미안하기도 하지만, 가급적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속으로 상대에게 건네는 복화술이 있다.

"이보시게~  지금 다소 섭섭하시더라도 몇년 뒤에는 오히려 내게 고마울 수도 있을걸세.
 그때 부담 지금 미리 덜어준다고 생각하시게나.."

: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커다란 참사가 일어났다.
일본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이어지는 원전의 위험설에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가 경악하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다. 
직접 대재앙의 피해를 입은 일본은 국가 초비상사태이며, 현재의 피해상황은 물론,
앞으로 이어질 수 있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도 전 세계의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TV를 통해 보여지는 일본의 모습은 정말 참담하다. 
마치 영화에서 CG로 만들어 보여지는 모습이 현실에서 벌어졌다. 실로 충격이다.
영상으로만 보아도 충격적인데, 실제 현실로 저 상황을 맞은 사람들은 얼마나 공포스러웠을까..

국내 언론에서는 연일 현장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쓰나미가 몰려오는 장면, 지진으로 흔들리는 건물의 모습, 피해 현장의 여러 모습들, 
그 각각의 현장 속 일본인들의 모습까지..

그리고, 그런 모습들 속에서 세계는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애닯은 마음과 함께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슬픔을 억누르는 모습들, 약탈과 사재기 등 무질서와는 거리가 먼, 그 와중에서도 질서를 지키며
정부와 공무원들의 지시에 따르는 시민의식, 재난상황에 대비하는 잘 훈련된 모습 등,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은 타인의 눈에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사고시 마다 통곡하고 절규하는 모습을 부각하는 우리 언론과, 상황을 팩트 위주로 이끌어가는
일본 언론이 비교되기도 한다.


일본은 한국인에게 참으로 미묘한 애증의 나라다.
강제징용이나 정신대, 국보급 문화재의 유출 등 식민지시대의 여러가지 폐해는 아직도 논란이 많고,
독도로 인한 영토 문제와 교과서 역사 왜곡에 대해서도 일본은 그들의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다.
그러면서도 일본문화나 일본제품에 대한 우리의 선호도는 무척 높은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일본여행을 즐기고, 일본인들과 친분을 맺고 있으면서 역사와 영토문제에 대해서 냉정해지는건
어쩔 수 없다. 다만, 생각이나 개인 성품에 따라 호불호의 극명한 차이는 있다.
때문에 이번 일본의 대참사를 지극히 편협되게 보는 시각도 있는거 같다.
한마디로 "그렇게 다른 나라에 피해를 주더니 천벌을 받았다" 는 시각이다.

과거 1세기 전 일본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주변국에 피해를 준건 변명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우리는 그들에게 외침을 받았다. 그렇더라도 오늘의 재앙에 대해 지난 역사와
결부시켜 감정을 표현하는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지금의 일본인들이 입고 있는 참담한 피해를 그들의 조상이 행한 행동에 빗대어
권선징악이니 인과응보라고 결부시키는건 너무도 잔인하고 편협하지 않는가.
물론, 아직도 정치가와 극우집단은 자신들의 선조들이 행했던 행동에 대해 당위성을 주창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수많은 일본인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건 존중받아야 하며, 그 틀이 무너졌을 때는 서로가 도와 그 틀을 복원시켜야 한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어느 한구석에라도 존재한다면, 언젠가는 공동체가 형성된다.
일제 강점기 때도 한국인을 배려하고 도우려는 일본인은 있었을테고, 지금도 왜곡된 역사에 대해
부끄러워 하며 한국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본인들이 있다.

지금 일본의 고통을 즐기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가 경멸하는 일본 극우집단과 다를게 없지않은가.
세계 각국과 같이 우리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도 다양한 구호방안을 모색하는거 같다.
그중 의미있는건 한류스타들의 기부행렬. 10억을 기부한 배용준을 비롯해 일본에서 한류 열풍을 일으킨
배우와 가수 등 많은 연예인들이 일본 피해자들을 위해 기부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사랑받은 보답을 하겠다는 이런 마음들이 양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본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 아주 작은 우려가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이런 참사를 통해, 일본의 일부 과격 우익단체가, 과거 역사 속 자기 선조들이 그토록 한반도를 탐했던 사실을,
자국과 후세를 위한 선견지명이었다고 생각하며 그 실패를 아쉬워하지는 않을런지, 아울러, 앞으로 국가 존립과
민족의 생존을 위한 영토 확보를 생각하며 또 다른 정벌론을 원모(遠謀)하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다.
그건 우리라도 그럴 수 있는 민족의 생존본능이다.

이런 우려가 쓸데없는 기우가 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일본에 더 이상의 재난이 없었으면 좋겠다.
자연의 변화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한 예방과 대비로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됐으면 좋겠다.
아울러, 그 어떤 경우라도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도록 우리 자신이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

대학 동아리 홈피에 올린 글에, 누가 "강하선생.. " 운운하며 댓글을 달아 놓았는데,
댓글을 올린 이가 [도방하]라고 되어 있다.

도방하는 또 누구?
알아보니 모 대학 법대학장으로 있는 동기다.

전화를 걸어 의미를 물으니, 중국 고사에 나오는 [내려놓는다]는 의미란다.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한자가 궁금했다. 
내려놓는다는 의미로 보아서는 [하]는 내리다의 [下]일거 같고,
[방]은 놓는다의 [放]일거 같은데..  그럼 [도]는 뭐지?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도]는 도시 할 때 그 [都]야. 그게 [모두]라는 의미란다. 그러니까 [모두 내려놓는다]는 의미지."


그 단어에 뭔가 끌리는 느낌이 있어 좀 더 알아보았더니, 인터넷에 이런 내용이 있다.  

흑씨l(黑氏)라는 수행자가 석존에게 꽃 공양을 하려고 오동꽃 두 송이를 들고 왔다.
부처님이 이를 보고 조용히 불렀다.

- 선인아..
> 예.
- 놓아버려라.

그는 손에 들고있는 꽃을 버렸다.

- 놓아버려라.
> 빈손인데, 무얼 또 놓습니까?
- 놓아버려라.

모든 집착을 버리는게 放下라면, 내려놓는다는 마음까지 내려놓는 都放下가 禪家(선가)의 제일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무얼 가려서 내려놓는 것은 放下가 아니라, 간택이요 분별이라고 가르친다. 


그 친구는, 어느 날 문득 '이제 슬슬 내려놓으며 살아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도방하]를 필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름 외에 號(호)라는게 있다.  
원래 사전적 의미의 號는 허물없이 사용하기 위해 지은 이름인데,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저명한 인사들이나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약간은 권위적인 호칭으로 인식되어 범인들이 사용하면 왠지 주제넘게 여겨지곤 했다.

그러던 것이 온라인문화의 활성화로 많은 사람들이 닉네임 혹은 필명이라는, 
본명 외의 다른 호칭들을 많이 애용하게 됐는데, 이게 사실 호(號)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앞선 시대의 분들이 한자문화를 기반으로 했다면, 요즘은 영어 등
다양한 표기법에 의한 작명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號, nickname, 필명(筆名)... 
무엇이 됐던 각자가 자신을 표현하고픈 호칭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자신이 늘 내세우고 남들에 의해 불려지는 애칭에,
스스로 견지하고싶은 가치, 삶의 지표를 담아보는건 어떨까..

특히, 삶의 전환점을 돌은 시점이라서인지 더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친구도 그래서 어느 날 [도방하]를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 친구와의 뒷 이야기.

- 너는 강하가 무슨 의미라 그랬지?
> 큰 내 강(江)  물 하(河). 그냥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자는 의미..
   그러고보니 이제 너하고는 [하 브러더스]네. 도방하.. 강하.. 
- 줄여서 하하지. 
> 그러네.. 우리가 하하네. ^&^~

:

11월 23일 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포격이 있는지 열흘이 지났다.

보고를 받은 대통령의 지시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도 있었고,
군의 대응에 대한 여러가지 비판과 그에 대한 군의 해명도 있었다.

보복을 포함한 응징의 수준에 국론도 강온으로 흔들렸고,
전 정권의 대북정책과 현 정권 대북정책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서로 비난이 많다.

무기체계와 국방예산이 육군에 편중됐다는 지적도 있고,
해군의 통제를 받는 해병대 위상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북의 3대 세습 등 도발행위에 대한 원인 분석에 골몰하며 재도발 가능성도 제기되고, 
느닷없이 일사천리로 추진된 주먹구구식 국방예산의 졸속 증액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증시 폭락과 환율 급등 등 심각하게 우려됐던 경제 여파에 대해서는
국내 경기의 맷집이 많이 좋아졌다고 안도하기도 한다.

화염에 그을린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고 방송카메라에 내보인 집권여당 대표와,
평생을 군에서 보낸 전문가로서 그 보온병의 구경을 설파한 3성장군 출신 국회의원은
전쟁의 우려에 불안해하던 전 국민의 얼굴에 헛웃음이나마 웃음을 되찾아 주기도 했다.

년내 경기도 포격설이 나오는 가운데 오늘 신임 국방장관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 중이다.


그래... 다 좋다.
국정에 대한 모든 사안에는 옹호집단과 비판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여당과 야당으로 양분되는 정치집단은 정당의 존립과 연계되니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고,
언론에게서도 객관성 있는 공정 보도의 기대를 접은지 이미 오래다.
어찌보면 객관적인 보도라는게 참 밋밋할 수도 있다.
재계야 어차피 손익의 셈법에 따라 움직일테고, 학계 역시 개인의 가치관이다.

그러니, 각계 각층에서 쏟아져 나오는 여러 처방과 비판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아주 소박하게 절실히 바라는게 하나 있다.

연평도 도발과 우리 군의 대응에 대한 보도에 따르면,
연평도에 배치된 해병 보유의 무기 중 고장이 나 작동이 안된 자주포가 있었다 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사건 초기 잠시 문제 제기가 된 후, 그 후에는 잠잠하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심각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부분 도발이 빈번했던 적과 가장 근접해 있는 최전방 접경지역에 배치된 중화기가,
그것도 1/3 이 고장난 상태로 있었다는건 분명한 책임 소재를 물어야 한다.

보유 무기에 대한 일상적인 정비 부실이라면 해당 지휘관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고,
자체적인 정비의 한계를 넘어 상급부대에 교체를 포함한 조치를 요구했음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요구가 묵살당한 라인이 어느 선인지를 파악하여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문책과 조치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연평도의 무기는 예비사단을 비롯해 교육부대에서 교보재로 활용하는 교육용 무기가 아니다.
국토 방위의 최일선에 배치된 실전용 화기이며, 더구나 자주포는 개인화기도 아닌 중화기다.

이런 무기가 작동이 안된 이유가, 처음에는 적의 포격에 의해서였다고 하다가,
추후 고장상태 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는건 책임회피 의도가 분명하다.


고장난 무기를 주며 전투를 하라는건 미필적 고의 살인이나 진배없다.

내 아들이 작동도 안되는 고장난 무기를 들고 전투에 대비하고 있다고 하면,
안그래도 병역의무에 대해 생각이 많은 어느 부모가 아들을 군에 보내겠는가.

뉴스를 보니, 젊은 청년들의 해병대 입대 포기자가 없을 뿐 더러
오히려 자원입대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조국에 대한 우리 청년들의 애국 열정을 생각해서라도
다른건 다 흐지부지 말 풍년으로 넘어가더라도,
고장난 자주포의 정비 및 관리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자.

이거라도 철저히 해서,
병역미필 정권이라 군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오명을 제발 좀 씼었으면 좋겠다.

신임 국방장관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



[자제합시다]도 아니고, [하지맙시다].
과연 정부나 기타 단체의 나름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할까..??

내가 삐딱선을 탔는지 모르겠지만, 안그럴거 같다.
그렇다면.. 자기가 세금도 안내는 단체의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은 차량 이용을 할텐데,
내 돈으로 세금 내가며 차량을 굴리는 사람들은 이용을 하지 말라니..

이번에도 역시 솔선수범이나 노블리스 오블리제와는 거리가 멀고,
순진한 민초들만 몰아부치는거 같아 씁쓸하다.
      

"인사드렸으면 어른들 말씀 나누게 방에 들어가 문 닫고 공부해라."

요즘 부모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엔 집에 손님이 오셨을 때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많이 하던 이야기다. 

G20 정상회의를 대비해 정부 및 언론에서 실시하는 대국민 홍보를 접하다보니
문득 예전에 많이 듣던 저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지만, 그 때도 부모님들이 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이런 말씀은 안하셨던거 같다.

"혹시 저희 아이들이 칭얼거리거나 떼를 쓰더라도 일체 모른 척 하시고 관심갖지 말아주세요."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시위에 동참할 경우 국내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내용의 홍보 전단지를
공항에서 나눠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언론을 통해 접했다. 


대한민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이런 생각을 할까 걱정된다.

'얼마나 시위가 많고 과격하기에..??  코리아.. 살벌한 모양이구나..' 


손님맞을 준비를 위해 마당을 쓸고 인사를 똑바로 하라고 국민 계몽을 하면서,
또, (어차피 돌아가며 하는 것임에도) G20 정상회의 의장국이라는 대단한 자기 PR을 하면서,
정작 정부는 누워서 침을 쎄게도 뱉어내고 있다.

국격을 높힌답시고 인권을 제한하더니, 스스로 국격까지 훼손하는 모습이라니...  

:

새로 개발된 지역의 대단위 단지.

이리저리 들러보다 교통이라든지 조경 등이 마음에 드는 단지가 있으면,
거주하시는 분들에게 궁금한 몇가지를 물어보곤 했다.

그런데, 한 단지에서 거주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한다. "여기는 매매나 전세가 안되는 곳이에요."
아무 사전 정보없이 갔던 터라 이유를 물어보니, 그 단지는 임대아파트란다.

그 지역에는 단지별로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로 구분되어 있는데,
분양아파트는 말 그대로 분양을 받아 개인 명의 소유권 이전이 완료되어
집주인이 마음대로 매매나 전세를 줄 수 있지만,
임대아파트는 임대계약자가 5년간 실거주 후 분양을 받기 전에는 
일체의 명의 변경이나 재전세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


하지만, 대한민국은 역시 대단한 융통성의 나라다.

한군데 중개업소에 들러 얘기를 나누던 중,
"저 단지가 마음에 들던데, 저긴 임대아파트라면서요?" 하고 무심히 말을 던지자,
그 단지에 아주 싸게 나온 전세물건이 있다고 정보를 준다.
"임대아파트인데 어떻게 전세가 되느냐?" 고 묻자, 다 하는 방법이 있다며 집을 보겠냔다.
내부에 대해 관심이 있던 터라 집구경이나 할겸 따라 나섰는데...

그 집에 들어가 집주인을 소개하는 첫 마디.

"여기 사모님이 아주 부자세요. 집이 여덟 채나 되시고요, 여기 사장님도 사업을 크~게 하세요." 
그 소리를 들은 주인 여자분의 반응도 재밌다. "아이.. 뭘.." 하면서도 그 말을 자랑스럽게 즐기는 표정.

전세가 안되는거 아니냐는 질문에, 청산유수처럼 줄줄이 흘러나오는 주인 여자의 처방.
전세금은 이러이러하게 설정을 해줄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자동차 주차문제도 관리소장을 잘 아니 문제없이 해결을 해줄 것이며,
주민등록을 옮기는 문제도 알려주는데, 이게 또 가관이다.
아래 층에 친정어머니 혼자 있으니 그 집에 동거인으로 전입을 하면 된단다.
그러니까 요즘 말 많은 위장전입이다.  

물론, 그 집에 대해서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부동산투기의 실체를 확실하게 본 셈이다.

집이 여덟 채나 된다는데, 그런 사람들이 정직하게 모두를 자기 명의로 하지는 않았을테고, 
그럼 그만큼 여러 사람의 명의를 빌렸을터인데, 그 사람들은 집 없는 사람들이 아니겠나.
또 하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곳의 청약율이 최소 1500 : 1 이 넘었다던데,
그 와중에 모녀가 같은 단지 같은 동에 당첨됐다는게 과연 정상적인 확률로 가능한 일 일까?
집이 여덟 채라는 말만 안들었어도 억세게 운좋은 모녀라고 생각했을거다.

그 집에 대해 관심이 없는걸 눈치챈 중개인이 넌지시 다른 미끼를 던진다.
임대인 명의변경이 가능한 임대아파트가 있다며, 지금 사서 3년 6개월만 지나면 차익이 많을거라는..

합법적으로 임대인 명의변경이 가능한 다섯가지 경우가 있단다. 들은 얘기를 복습삼아 정리하면,
임대인이 외국에 나갈 경우, 타 道로 이사할 경우, 임대인의 사업장이 바뀔 경우, 이혼할 경우,
그리고, 요양이 필요한 경우에는 임대인 변경이 합법적으로 가능한데, 마침 그런 물건이 있다는거다.

명의변경에 필요한 우선 매입가격이 생각보다 괜찮게 생각되어, 나중 큰 시세차익을 노리기보다,
금융비용을 감안해 손해만 아니라면 눌러앉을 집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정말 나중에 문제될만한
사항이 없는지 궁금한 점을 조목조목 짚어보는데, 대답의 늬앙스가 조금씩 달라지면서 일관성이 없다.

의구심이 들어 확인차 인근 다른 중개업소에 들러 상담을 하면서 느낀 또 우스운 현상 하나.
중개인이 상당히 조심스러워 하며 말을 아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부동산 불법거래 단속반으로 생각했던거 같다.
이야기를 나누며 의심이 풀렸는지 내가 궁금해 하는 임대 명의변경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다.
자신도 부동산중개업을 하지만, 나중에 문제될 소지가 많다는거다.

아무리 저렴한 가격이더라도 조금이라도 불법이나 편법의 소지가 있는건 개운치가 않아 포기해버렸다.
그런 매물이 많다는게 더 의아스럽고, 공증을 비롯한 안전장치를 해준다 하더라도,
문제 발생시 어쨌든 불법과 편법에 동참한 사람이 뭐가 당당하다고 권리주장을 하겠는가. 

그런게 싫어 관심을 끊었더니, 그 중개업소에서 뻔질나게 연락이 온다. 
남들 다 그렇게 한다는데, 그 말이 더 불신을 키우며 나를 짜증스럽게 한다.


집이 여덟 채 있는 것도 어찌보면 탁월한 능력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사회적 분위기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그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니, 스스로 자랑스럽고 만족하더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남들에게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근데, 그 사람은 더구나 자기 딸이 교사라고 했다.  그 교사의 가치관은 어떨지 궁금하다.

나는 근 20년을 서울의 노른자위라는 강남에 살면서도 강남 집 값은 떨어져야 하며,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소위 강남 3구의 세금을 더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높은 세금을 감당할 능력이 되는 사람은 그곳에 살면서 남들의 부러움을 느끼며 살 자격이 있고,
그럴만한 능력이 안되는 사람은 그곳을 떠나 자기 수준에 맞는 환경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남들의 부러움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그 당당함의 댓가로 내는 세금으로 열악한 지역의 
환경을 개선하는게 공정한 사회로 가는 초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울러 전국적으로 집 값이 더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그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장관 내정자가 쪽방 투기를 하고, 위장전입을 밥 먹듯 했다.
청와대에서는 그런 사항이 사전에 다 검증됐다고 하면서도 임명을 했고, 
만천하에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당사자들은 이런저런 변명과 "죄송하다, 반성한다." 는 사죄를 하지만,
책임을 통감하며 사퇴하겠다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정한 사회의 이면이다.
:

참 오랜만에 글을 올리면서도 마음이 우울하고 무겁다.

개각을 할 때마다 '이번엔 누가 무슨 일로..?' 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것도 단골메뉴가 되어버린 [위장전입]으로.

2002년 총리 지명자에 대해, 당시 야당이었던 현 집권당 한나라당의 공세는 집요하면서도 추상같았다.
맹모삼천지교의 심정으로 이해해달라는 총리 내정자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범법자" 라 했고,
결국 그 내정자는 총리후보에서 낙마했다.

그 다음 정권에서 부총리 부인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을 때도 한나라당은 집요하게 위법사실을 추궁했다.
20년 전의 일이니 양해해달라는 사실상의 읍소에도 공직자의 자세를 강조했고, 결국 부총리는 사퇴했다.


정권이 바뀌었다.

그리고, 첫 조각명단이 발표되면서 부터 상황은 반대가 되고 말았다.
집권당에서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추상같은 호령으로 추궁하던
한나라당 의원들은 문제점이 드러난 후보자들을 감싸고 비호하기에 급급해졌다.

당시 기가 막혔던 장면은, YTN의 인기코너였던 [돌발영상]의 한 장면.
야당 당사에서 장관 내정자들의 이런저런 흠결을 내세우며 도덕성을 문제삼는 장면에 이어,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웃음 띤 얼굴로 "이거.. 전에 우리가 엄청 심하게 문제삼았던 것들이야." 하며
농담을 주고받는 듯한 화면이 나온 것이다.  그때 그 화면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한 언론사의 인터넷 기사에 올려진 자료다.

넘쳐나는 장관들은 그렇다치자. 대통령도 알고 뽑았으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총리와 검찰총장, 경찰청장에 대법관까지는 좀 경우가 다르다.

총리는 萬人之上의 자리다.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는 자리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은 법 집행을 지휘하고 책임지는 자리다.
리더, 특히 공직자에게는 누구에게나 솔선수범이라는 덕목이 우선시되지만,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은 특히 준법을 실천하며, 위법을 최일선에서 단속하는 집단의 수장이다.

대법관은 더하다.
검찰총장과 경찰청장도 사람이기에 위법을 할 수 있다지만, 그런 위법자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게 법관의 책무라면, 대법관은 법관들의 잘못된 판단마저도 바로잡아
엄정한 법치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하는 직책이다.

그런데, 스스로 위법을 한 총리가 어떻게 공무원들의 청렴을 강조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런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이 어떻게 위법사실을 들어 기소를 지시할 것이며,
또, 자신도 지키지 못한 위법사실에 대해 대법관은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이제 위장전입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무감각증이 깊어간다는 사실이다.
여권의 한 의원은 "예전엔 몰랐는데, 국정운영을 해보니 그런거까지 다 따지면 쓸만한 사람이 없더라" 고 했다.
청와대에서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법적으로는 문제될게 없다."

법적으로 문제될게 없다니...  나는 법 전공자가 아니라 모르지만,
법에는 분명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이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건, 법을 모르거나, 아니면, 법을 무시하는 발언이 아닌가.


더 심각한 문제는 청와대가, 인사검증시 다 파악이 됐던 사항이라고 인정한 부분.
도덕성에 다소 결함이 있더라도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개인능력이 있으면 기용한다는게
대통령의 인사철학이라는 말도 나온다.

문맥만으로만 해석하면, "꿩 잡는게 매" 라는 의미에서 그럴 수도 있다.
기업체 CEO의 입장이라면 충분히 그런 인사를 할 수 있다. 기업의 1차적인 목표는 성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경영은 다르다.  국가경영의 목표가 성과지향적으로 된다면, 그 나라는 정신이 사라지게 된다.

리더그룹의 가치관이 중요한 이유는,
- 어떤 부류의 집단이 리더가 되느냐에 따라 구성원의 사고와 행동규범의 기준이 달라지게 마련이고,
- 건전치 못한 리더집단에 의한 조직은 규율과 자제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모든 집단에게는 지도층을 따라하려는 모방심리가 있으며, 지도층이 자신의 행동과 다른 기준으로
집단에게 제재를 가하려할 경우, 집단은 반발을 하게된다.  


현 대통령은 이런저런 현행법 위반사항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법치를 강조하니 국민들이 그 말을 이행하겠는가.

또, 새로운 인사가 발표될 때 마다 대통령과 유사한 위법사실이 필수사항처럼 드러난다.     
그러니, 끼리끼리 혹은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나온다. 내가 죄될게 없다고 생각하니,
나와 같은 행동을 한 다른 사람들의 결함이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인격적으로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을 나라의 지도층으로 인선해놓고는, 國格을 높여야할 때라고 강조한다.  

修身 制家 治國 平天下 라 했다.
그런데, 인격이 안되는 사람들이 국가를 대표하는데, 국격이 높아지겠나..

위장전입을 한 서민들은 주위 사람들이 모르는데도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온 나라에 위장전입 사실이 밝혀진 사람들은 "적절치 못한 처신이었다." 는 말 한마디로
어물쩡 이 나라의 고위직이 되어 그 가문의 족보에 기록되고, 퇴직금도 받고, 적지않은 연금도 받게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강조한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법치주의, 국격, 공정한 사회.. 

권력자가 자기 주변에 대해 엄격하게 법치를 적용하면, 
사회는 공정성을 찾게 되고, 그런 공정한 사회의 틀 속에 국격은 높아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이 강조하는 법치와 공정성의 범위에, 
그의 사람들만큼은 늘 제외되는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래서는 법치도, 공정한 사회도, 국격도, 국민들에겐 연극배우의 애드립에 지나지 않는다.  
:

이재오.
누구나 현 정권 최고 실세라고 인정하는 정치인.
때문에 지난 재보선 전에는 그의 출마 여부가, 재보선 중에는 그의 당선 여부가,
그리고, 그가 당선된 후에는 그의 역할이 이슈가 되듯, 그는 현 정치권 최고의 뉴스메이커다.

그런 그가 국회 복귀 후 대형 말폭탄을 터트렸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고용과 취업 시스팀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한쪽에선 일손이 모자르고 다른 한쪽에선 일자리가 모자라다"
민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충분히 할만한 말이다. 문제는 그가 대안으로 언급한 방안.

기사화된 그의 방안 중 놀랄만한 두가지.
- 대졸이든 고졸이든 대기업에 취업하려면 지방공단이나 중소기업에서 1, 2년 일하게 한 뒤 입사 지원자격을 줘야 한다.
- 재수생들은 우선 공장이나 농촌에서 1, 2년 일하고. 그 성적을 갖고 대학가라. 어떻든 놀고먹는 애들은 없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재오 의원은,
대기업들도 경력 있는 사람 뽑으면 좋지않느냐고 했고, 재수 삼수 학원 보내는게 다 사회적 비용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재오 의원의 이런 논지는 깊히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먼저, 중소기업 근무 후 대기업 취업자격 부여는 직업선택의 자유인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는 위헌적 요소 이전에
중소기업을 농락하는 조심모사식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이리되면 중소기업의 위치는 더욱 위험해진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중소기업의 대기업 직원 양성소 전락이다.
갓 졸업한 사회 초년병을 인건비를 포함해 각종 부대비용을 들여 기껏 1~2년 교육시켜놓으면
의무기한을 채운 후 대부분 대기업으로의 전직을 생각할테고, 이리되면 중소기업은 결국 훈련센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꼭 좋아할만한 일 일까?  글쎄.. 대기업은 기업문화를 만들고 직원의 로열티를 형성하는데 있어,
경우에 따라 백지에 그림 그리는걸 더 선호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중소기업의 산업보안 문제다. 중소기업에서 근무 후 대기업으로 전직시,
전직자의 복무경력에 따라 산업기밀 유출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신입사원 선발시 학력을 무시하지 못하듯, 앞으로는 대기업이 신입사원 선발시, 근무했던 중소기업에 대한
등급화가 우려되며, 근무평점 등 근무이력에 대한 신상파악 등이 사생활 침해의 우려도 있다.

중소기업 경영주 입장에서도 그렇다. 
일정기간을 채운 뒤 떠날지도 모를 직원들에게 우리 직원이라고 정을 쏟을 수 있겠으며, 직원들에게 
소속감이나 애사심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설사 꼭 함께 하고싶어 깊은 애정으로 관리를 한다하더라도,
그럴수록 떠난 후의 허탈감은 더 클 수도 있다. 장기근속 직원들과의 위화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당장은 중소기업 인력확보에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으나, 결국에는 잦은 이직에 따른
직무 연속성의 단절 등 중소기업의 상실감과 피해의식만 커지지않을까 걱정된다.     


재수생들을 1~2년간 공장이나 농촌으로 보낸다는 것은 더 심각하다.
안그래도 사교육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판국에, 이리되면 사교육이 어찌될까?
대학 진학을 못하면 공장이나 농촌으로 가야하는데, 정말 목숨 걸 일이다.

예전, 백성의 신분을 구분짓는 士農工商이라는 계급과 같은 기준이 있었다.
이제 대학에 합격하면 士가 되고, 떨어지면 農工이 되고, 그게 두려우면 아예 商이 되어야할 판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던가, 공장이나 농촌 갈 각오를 하고
대학 진학에 도전하는 도박을 해야할 판인데, 여기에 남학생의 경우 또 하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공장이나 농촌에서 1~2년을 보내면 이제 병역의무가 기다리고 있다. 청춘이 어디서 맴돌게 되는건지.
물론, 재수 삼수를 하더라도 1~2년이 걸린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농촌에서 1~2년을 보내고도
또 다시 재수 삼수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울러, 공장이나 농촌에서 1, 2년 일하고 그 성적을 가지고 대학을 가라고 했는데, 입학사정관 제도에 대해서도
정당성 및 공정성에 대해 말이 많은 판에, 농촌에서의 성적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도 난해하다.  
이 의원은 사회적 비용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내 생각에는 이리 됐을 경우, 사회적 비용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이재오 의원은 "종합병원 가려면 동네병원 진단부터 받아야 하듯, 대기업 가려면 중소기업 의무적으로 해보고 보내야 한다" 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예화가 맞지않는 말이다. 종합병원과 동네병원의 예를 들고 싶었다면, 차라리 이렇게 걸지.
"종합병원 가려면 동네병원 진단부터 받아야 하듯, 물건을 사려면 동네마트부터 의무적으로 가보고 대형마트에 가야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떻든 놀고먹는 애들은 없어야 한다"고도 했고, "모든 것을 일 중심으로 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재오 의원은 "이제부터 이재오의 정치는 세상의 눈으로 정치를 보는 것이며,
예전처럼 정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눈]이라는게 
국민의 눈과는 거리가 있는 듯 느껴지며, 문득 조지 오웰의 작품 [1984년]에 등장하는 Big Brother가 생각난다.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라는 긍정적 의미와 권력자들의 사회통제 수단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있는 Big Brother.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한 이재오 의원.
그는 그때부터 이 구상을 생각했었다던데, 이러한 구상이 과연 국민의 권익이 존중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그는 이 구상을 입법하겠다고 했다.
이제 궁금한건, 이 법안이 나왔을 경우, 한나라당의 반응이 궁금하고,
그 이후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하다.

사족을 달자면, 왜 병역 미필자에 대한 처방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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