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누구나 현 정권 최고 실세라고 인정하는 정치인.
때문에 지난 재보선 전에는 그의 출마 여부가, 재보선 중에는 그의 당선 여부가,
그리고, 그가 당선된 후에는 그의 역할이 이슈가 되듯, 그는 현 정치권 최고의 뉴스메이커다.

그런 그가 국회 복귀 후 대형 말폭탄을 터트렸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고용과 취업 시스팀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 한쪽에선 일손이 모자르고 다른 한쪽에선 일자리가 모자라다"
민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정치인으로서 충분히 할만한 말이다. 문제는 그가 대안으로 언급한 방안.

기사화된 그의 방안 중 놀랄만한 두가지.
- 대졸이든 고졸이든 대기업에 취업하려면 지방공단이나 중소기업에서 1, 2년 일하게 한 뒤 입사 지원자격을 줘야 한다.
- 재수생들은 우선 공장이나 농촌에서 1, 2년 일하고. 그 성적을 갖고 대학가라. 어떻든 놀고먹는 애들은 없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재오 의원은,
대기업들도 경력 있는 사람 뽑으면 좋지않느냐고 했고, 재수 삼수 학원 보내는게 다 사회적 비용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재오 의원의 이런 논지는 깊히 생각하지 않더라도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의 소지가 있다.


먼저, 중소기업 근무 후 대기업 취업자격 부여는 직업선택의 자유인 국민의 기본권 침해라는 위헌적 요소 이전에
중소기업을 농락하는 조심모사식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이리되면 중소기업의 위치는 더욱 위험해진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문제가 중소기업의 대기업 직원 양성소 전락이다.
갓 졸업한 사회 초년병을 인건비를 포함해 각종 부대비용을 들여 기껏 1~2년 교육시켜놓으면
의무기한을 채운 후 대부분 대기업으로의 전직을 생각할테고, 이리되면 중소기업은 결국 훈련센터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꼭 좋아할만한 일 일까?  글쎄.. 대기업은 기업문화를 만들고 직원의 로열티를 형성하는데 있어,
경우에 따라 백지에 그림 그리는걸 더 선호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는, 중소기업의 산업보안 문제다. 중소기업에서 근무 후 대기업으로 전직시,
전직자의 복무경력에 따라 산업기밀 유출이라는 민감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신입사원 선발시 학력을 무시하지 못하듯, 앞으로는 대기업이 신입사원 선발시, 근무했던 중소기업에 대한
등급화가 우려되며, 근무평점 등 근무이력에 대한 신상파악 등이 사생활 침해의 우려도 있다.

중소기업 경영주 입장에서도 그렇다. 
일정기간을 채운 뒤 떠날지도 모를 직원들에게 우리 직원이라고 정을 쏟을 수 있겠으며, 직원들에게 
소속감이나 애사심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설사 꼭 함께 하고싶어 깊은 애정으로 관리를 한다하더라도,
그럴수록 떠난 후의 허탈감은 더 클 수도 있다. 장기근속 직원들과의 위화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렇듯, 당장은 중소기업 인력확보에 도움이 될런지 모르겠으나, 결국에는 잦은 이직에 따른
직무 연속성의 단절 등 중소기업의 상실감과 피해의식만 커지지않을까 걱정된다.     


재수생들을 1~2년간 공장이나 농촌으로 보낸다는 것은 더 심각하다.
안그래도 사교육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판국에, 이리되면 사교육이 어찌될까?
대학 진학을 못하면 공장이나 농촌으로 가야하는데, 정말 목숨 걸 일이다.

예전, 백성의 신분을 구분짓는 士農工商이라는 계급과 같은 기준이 있었다.
이제 대학에 합격하면 士가 되고, 떨어지면 農工이 되고, 그게 두려우면 아예 商이 되어야할 판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하던가, 공장이나 농촌 갈 각오를 하고
대학 진학에 도전하는 도박을 해야할 판인데, 여기에 남학생의 경우 또 하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공장이나 농촌에서 1~2년을 보내면 이제 병역의무가 기다리고 있다. 청춘이 어디서 맴돌게 되는건지.
물론, 재수 삼수를 하더라도 1~2년이 걸린다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농촌에서 1~2년을 보내고도
또 다시 재수 삼수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이울러, 공장이나 농촌에서 1, 2년 일하고 그 성적을 가지고 대학을 가라고 했는데, 입학사정관 제도에 대해서도
정당성 및 공정성에 대해 말이 많은 판에, 농촌에서의 성적은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지도 난해하다.  
이 의원은 사회적 비용의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내 생각에는 이리 됐을 경우, 사회적 비용의 심각성은 더 커진다.               


이재오 의원은 "종합병원 가려면 동네병원 진단부터 받아야 하듯, 대기업 가려면 중소기업 의무적으로 해보고 보내야 한다" 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예화가 맞지않는 말이다. 종합병원과 동네병원의 예를 들고 싶었다면, 차라리 이렇게 걸지.
"종합병원 가려면 동네병원 진단부터 받아야 하듯, 물건을 사려면 동네마트부터 의무적으로 가보고 대형마트에 가야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어떻든 놀고먹는 애들은 없어야 한다"고도 했고, "모든 것을 일 중심으로 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재오 의원은 "이제부터 이재오의 정치는 세상의 눈으로 정치를 보는 것이며,
예전처럼 정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가 생각하는 [세상의 눈]이라는게 
국민의 눈과는 거리가 있는 듯 느껴지며, 문득 조지 오웰의 작품 [1984년]에 등장하는 Big Brother가 생각난다.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라는 긍정적 의미와 권력자들의 사회통제 수단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있는 Big Brother.


국민권익위원장을 역임한 이재오 의원.
그는 그때부터 이 구상을 생각했었다던데, 이러한 구상이 과연 국민의 권익이 존중된 것인지도 의문스럽다.

그는 이 구상을 입법하겠다고 했다.
이제 궁금한건, 이 법안이 나왔을 경우, 한나라당의 반응이 궁금하고,
그 이후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정말 궁금하다.

사족을 달자면, 왜 병역 미필자에 대한 처방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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