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재원이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전화다.
두 분이 인터넷을 하시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원이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서로의 목소리만 들려줄 뿐
사진 등 지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을 뿐 더러 즉시적인 의사소통도 어렵다.

재원이와 나는 버스 안에서도 필요하다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내가 스마트폰이나 트위터 등 새로운 것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내가 사는 시대, 그리고, 다음 세대와 소통을 하기 위해서다.

변화와 진화에 조금만 관심을 놓쳐도 급변하는 환경을 따라가고 이해하기가 힘든게 요즘이다.
나이가 들수록 모든걸 따라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데, 그나마 이슈가 되는 것 만이라도
따라갈 데 까지 따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이런걸 모른다고 해서 생활하는데 지장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평균수명은 길어지는데, 벌써부터 놓치고 다니면 10년,
그리고 그 후의 세상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치 우리 부모 세대가 컴맹이라 우리와 소통이 안 되듯, 우리도 그리 될 것이다.
변화의 가속도를 감안하면 지금 우리 부모세대보다 더 극심한 소외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사회는 점점 [다변화]된다.
가족들은 서울과 지방이 아닌 세계 곳곳으로 나뉘어 살게 될지도 모르고,
파발 - 편지 - 전화 - 메일 - 스마트폰으로 이어지는 의사소통수단도 갈수록 진화될 것이다.
무엇이 어떤 방법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올지 전혀 상상이 안된다.

내 손자 손녀들은 어떤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게 될까?
그 아이들이 다루는걸 내가 이해하고 같이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겁이 난다.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가지 못하면 단절이다.
사회와 단절되고, 사회 구성원과도 단절된다.

의욕있는 한 시대를 보내셨던 우리 윗세대 분들이 경로당에 모여 그들만의 대화만으로 
사회에서 멀어지듯, 변화가 귀찮아지면 우리도 그리 된다.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은 동시대의 이슈를 같이 공유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러자면 흐름을 같이 타야 한다.



누군가의 아이폰에 이런 애플리케이션이 깔려있는걸 봤다.



급히 찍느라 초점이 안 맞았는데,
아이폰 화면 상단에 매일미사, 카톨릭성경, 카톨릭성가, 카톨릭성인 이라는 아이콘이 있다.




매일미사를 터치하면 왼쪽 화면이 나오는데, 친절하게 Today 라고 알려준다. 
터치를 하면 오른쪽 화면과 같이 오늘 미사 절차에 따른 기도문을 보여준다.




카톨릭성경 아이콘을 터치하여 볼 수 있는 화면들이다.




마찬가지로 카톨릭성가를 터치하면 원하는 성가의 가사와 악보는 물론 성가를 들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이 아이폰을 들고 미사를 본다면,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린 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것이다.
'미사시간에 휴대폰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마 신부님과 수녀님도 같은 생각을 하시고, 성격 급하신 신부님은 점잖게 한말씀 하실지 모른다.
"미사시간에 휴대폰은 집어 넣으세요. 피치못할 전화라면 밖에 나가서 하시죠." 

하지만, 이 사람은 열심히 미사를 드리는 중이다. 그것도 아주 효율적으로..  
무거운 성경책이나 성가집을 들고다니지 않으면서도 수시로 기도문을 외우고 성경을 필독하며,
성인에 대해 알아볼지도 모른다.


세상은 이렇게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바뀌고 있다.

너무 앞서나가도 튀는 행동으로 남의 오해를 살 수 있다.
하지만, 알지 못하면 남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게 된다.

내가 새로운 것에 억지로라도 관심을 가지려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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