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나고 인터넷엔 느닷없이 뜨거운 논쟁 하나가 불붙었다.
선거 전 20% 격차까지 뒤쳐졌던 여론조사결과와 달리 민주당 한명숙 후보가 예상 외로 선전하여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에게 불과 27000표에 조금 미달하는, 그야말로 석패를 당하자,
한 후보 지지자들로부터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에게 패배의 책임을 물은게 논쟁의 발단이 됐다.

즉, 경기도에서 같은 진보신당의 심상정 후보가 선거 막판 후보사퇴를 통해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후보를
야권 단일후보로 하여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와 1:1 대결구도를 만들었듯이, 노회찬 후보도 후보사퇴를 했다면
한명숙 후보의 당선이 가능했고, 그런 맥락에서 노회찬 후보의 책임이 크다는게 한 후보 지지자들의 논리다.

반면에, 노회찬 후보 지지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당초 노 후보 지지성향의 유권자들이 더 있었으나, 그 중 상당수가 사표방지를 생각하며
한 후보에게 투표를 했기 때문에 빠져나갈 표는 이미 빠져나갔으며, 오히려 그로인해
노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실제보다 저평가된 것도 억울한데, 패배의 책임까지 씌우는건
얼토당토않다는게 노 후보 지지층의 항변이다.

하지만, 한 후보 지지층은, 그런 논리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더라도, 
만약 노 후보가 사퇴하여 야권통합을 이뤘더라면, 분명 결과는 달라졌을거라고 주장한다.



노회찬 후보의 득표수가 14만표를 상회했으니, 만약 노 후보가 사퇴를 했다면,
노 후보 지지층의 실망에 따른 기권표와 무효표를 감안하더라도, 오세훈 후보에게 뒤진 27000표 정도는
한명숙 후보로의 전환이 충분히 가능했을거라는 판단에 한 후보 지지층의 아쉬움은 더 컸을 것이다. 


투표행위는 지지대상과 지지유형에 따른 두가지 가치기준에 기인하여 이루어진다.
지지대상으로는 정당을 우선하는 경우와, 사람을 우선하는 경우로 구분이 되고,
지지유형은 적극적 지지와 견제로 나뉘어지는데, 지지하는 대상에 적극적으로 투표하는 것과,
반대하는 쪽을 이길 수 있는 대상에 투표하는, 즉, 저쪽만 아니라면 누가 되든 좋다는 논리다.

그런 기준으로 지난 서울시장 투표행위를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은 유형이 나온다.

먼저, 오세훈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의 유형이다.
- 오세훈 후보에 대한 지지보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유형.
- 한나라당보다 오세훈 후보에게 끌리는 유형.
- 여당에 대한 지지도보다 야당에 대한 비토심리가 더 큰 유형.    

반대로, 한명숙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의 유형도 비슷하다.
- 한명숙 후보보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형.
- 민주당보다 한명숙 후보에 대해 호감을 갖는 유형.
- 야당에 대한 지지보다 여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더 큰데, 기왕이면 경쟁력있는 후보를 밀어주자는 유형.

한명숙 후보 지지층이 노회찬 후보 지지층에게 아쉽게 생각하는건,
공동의 맞수에 대해 왜 이 세번째 논리를 생각하지 않았냐는거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에 한번쯤 되물을 수는 있지만, 그 이유만으로 노회찬 후보 지지자들이
올바르지 못했다고 추궁하는건 그들의 주권선택에 대한 결례라고 생각한다.

노회찬 후보의 입장에서 판단해보면, 진보신당의 공동대표인 심상정 후보가 이미 경기도지사 후보사퇴를
선언한 마당에 노 후보마저 서울시장 후보사퇴를 한다면, 그건 공당의 존재의미가 무색해진다.
더구나, 오세훈 후보와 한명숙 후보간의 지지율에 큰 차이가 없었다면, 대의라는 명분이라도 있지만,
두 사람의 표를 합하더라도 오세훈 후보와 큰 격차를 보인다면 명분도 실리도 없는 행위일 수 있다.
공당의 대표로서는 쉽지않은 선택이다.

노회찬 후보의 말대로, 한명숙 후보 진영에서도 후보단일화에 대한 의사표시가 없었다면,
한 후보 진영에서도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르고, 결국 그런 이른 패배의식(?)이
잡을 수 있었던 구명줄을 스스로 놓아버린건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이제 모든 사람들이 현실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패자는 판세를 면밀히 읽지 못하고 끝까지 최선의 수를 살리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하고,
승자는 왜 당초 예상과는 달리 힘든 승부가 됐는지를 반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세훈 후보의 "사실상 패배였다고 생각한다." 는 당선소감은 오히려 신선하다.

또 이번 선거결과로 기대되는게 있다.
지난 서울시는 시장과 시의회, 그리고, 구청장까지 일당 독식이었다. 때문에 견제라는건 없었다.
만약 이번에 한명숙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었다면, 앞으로의 서울시도 거의 견제가 없을 뻔 했다.
하지만, 이제 서울시는 그렇게 돌아가진 않을 듯 싶다.

견제는 조화를 통한 상생을 낳을 수도 있고, 부조화로 인한 공멸로 갈 수도 있다.

어느 길로 나아가느냐... 
우리나라 정치행정의 새로운 모멘텀이 될 시기에
우리 유권자가 선택한 선량들이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들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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