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2001 유럽배낭여행'에 해당되는 글 153건

  1. 2008.11.13 너무나 정갈한 관광지 슈방가우
  2. 2008.08.12 마지막 쿠셋의 밤 9
  3. 2008.08.09 끝까지 애먹이는 프라하 11
  4. 2008.08.08 영토없는 국민의 서러움을 보여주는 유대인묘지 4
  5. 2008.08.02 경제성장의 박동소리가 들리는 프라하 12
  6. 2008.08.01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케 해주는 프라하 7
  7. 2008.07.31 인기 쨩인 천문시계 6
  8. 2008.07.30 한강의 다리를 생각케 하는 카를교 11
  9. 2008.07.26 년간 2000만 명이 찾는다는 프라하城 8
  10. 2008.07.25 프라하에서 놓칠 수 없는 구시가지 7
  11. 2008.07.19 경찰을 조심하라던 Praha 11
  12. 2008.07.16 얼을 빼놓는 [부다페스트 - 프라하]의 야간열차 8
  13. 2008.07.09 슬로바키아 이름 모를 역에서의 긴박했던 30분 11
  14. 2008.07.08 순박함과 담백함의 조화 부다페스트 7
  15. 2008.07.07 시민공원 영웅광장과 세체니온천 11
  16. 2008.07.05 파란만장의 역사를 간직한 부다성 18
  17. 2008.07.04 추워서 사진찍기도 겁난 어부의 요새 14
  18. 2008.06.25 신비로운 동굴교회 내부 9
  19. 2008.06.23 누구를 위한 요새인지... 내 땅에 있어도 내 것이 아니었던 치타델라 요새. 13
  20. 2008.06.21 왠지 쓸쓸해보이는 Gray tone의 Budapest 17
  21. 2008.06.19 못말리는 침낭딸랑 청년 7
  22. 2008.06.18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통합한 雪國 7
  23. 2008.06.17 지긋지긋하게 발음하며 찾아간 [Seegrotte] 13
  24. 2008.06.16 Wien에서 만난 안쓰런 동포청년... 7
  25. 2008.06.15 경공술을 하는 비엔나의 할머니들 7
  26. 2008.06.14 합스부르크家의 명성을 보여주는 쉔부른궁전 11
  27. 2007.12.15 그라벤과 케른트너 거리 3
  28. 2007.12.10 합스부르크제국의 명성이 느끼지는 도시 - Wien 5
  29. 2007.12.08 또 다른 개성의 중세도시 비엔나 5
  30. 2007.12.05 Pompei에서 헤어지고, Wien에서 만나고... 1
[ 2001. 12. 15.  Sat ]


독일의 첫 느낌은 굉장히 합리적 사무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생각 역시 머리 속에 담겨있던 편견에 의한 것일 수도 있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불필요한 말이나 행위가 없다는걸 느낀다..

검문하는 경찰도 그렇고, 환전을 할 때도 딴데처럼 여권제시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돈만 확실하면 된다.   뭘 물어봐도 필요한 답변만 한다.
다른 나라는 우리가 한마디 하면 자기가 서너마디 하던데...

워낙 이른 새벽에 도착해서 당장 Munchen에서 딱히 할게 없다.
제대로 문도 열지않은 도시를 이른 아침부터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해서 
Munchen에서 그다지 멀지않은 Fussen을 다녀오기로 했다. 
어차피 Munchen에서 보고 싶은건 저녁이 되야하기 때문이다.

Munchen 에서 Fussen 으로 갈 때도 승차권 검사시 
Eurail pass를 꺼내니 볼 생각도 안하고 "Thank you ~~" 다.


며칠 전 눈이 많이 왔는지 Fussen으로 가는 기차에서 보는 설경이 기가 막히다.



저 발자욱은 누구꺼길래 저렇게 곡선을 그리고 있는지...




시골마을에서 느껴지는 정취는 어디나 다 같은 모양이다.
눈이 밤새 왔는지, 아직 아무도 밟지않은 듯한 눈에서 평온함을 맛본다.
담의 그림낙서도 정겹고...


위도상 남쪽으로 내려와 좀 나을까 했는데, 여기도 엄청 춥다.

슈방가우의 Neuschwanstein城 (노이슈반스타인 맞지??  27년전 고등학교 졸업 후 처음 읊어보는 독일어 발음이다)
입구에서 만난 한국관광객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배낭여행 중이라니까 놀랍고 부러운 눈빛으로 묻는다.
경비가 얼마나 드느냐...  와이프랑 함께 왔느냐... 묻더니만, 와이프는 직장 때문에 함께 오지 못했다고 하자
다시 나를 바라보는데, "참...  마누라 잘만나 팔자좋은 사람이구나..." 하는 표정이다.
그럼...  마누라 잘 만난거 맞지...  아니, 만난게 아니라 잡은거다.




슈방가우 초입에 들어서니 마차가 줄을 이어 있다.
뭔가 했더니만, 노이슈반스타인城까지 가는 마차란다.
날도 추운데 차라리 걸어가면서 땀이라도 내는게 낫지, 빠르지도 않은 저거 탔다가는 추위만 더할거 같다.




추위를 무릅쓰고 여기  Fussen까지 온 이유는 오직 하나, 
저 멀리 산중턱에 걸려있는 노이슈반스타인城을 보기 위함이다.
이제 저기까지 걸어가야 하는데, 길이 미끄럽지는 않을라나...


마을 입구부터 마을을 지나는데 우리나라와의 차이점이 나타난다.

추운 겨울임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데, 
이 정도되면 우리같으면 도로변에 음식점, 잡상인이 진을 친다.
우리나라 어지간한 국립공원이나 대형 사찰 입구가 어디든 그렇지않은가.
근데 여긴 아니다. 레스토랑 몇개, 기념품가게 몇군데가 전부다.
그나마 토요일아라 문 닫은데가 많다.  레스토랑도 문을 연 곳은 하나 뿐이다.
지나는 관광객에게 소리를 치며 권유하는 호객행위는 일체 없다.

차분하면서도 깨끗한 관광지, 아주 쾌적한 관광분위기다.
그래서 더욱 멋지고 친근감이 간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노이슈반스타인城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나라인 독일로 들어가는구나...' 

쿠셋에 짐을 풀고 잠시 침대에 누우니, 
스위스에서 만난 영국에서 왔다는 한국 유학생이, 우리 일정에 체코가 있다는 말을 듣고 해준 말이 새삼 생각난다.

자기가 체코를 거쳐서 왔다면서,
'아저씨.. 체코가시면 거스름돈은 반드시 보는 앞에서 확인하시고, 계산서 내용과 영수증 항목 하나하나 확인하시고,
영수증 꼭 보관하세요.  그리고, 심지어는 경찰도 조심하셔야 돼요.'
라고, 단단히 주의를 줬는데,
정말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경찰에게 제일 먼저 당하다니... 


  고해성사하고 회개하시게... 



유럽에서 쿠셋 예약을 하면서 느낀 거 하나.

 

 

쿠셋의 한 compartment 에는 bed가 여섯 개 있다.  즉, 한 칸이 6인실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쿠셋을 타면서 보니, 한 compartment 에 손님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다른 승객은 다른 칸으로 배정한다.
그리고 모든 compartment 에 한 사람이라도 배정이 끝난 다음에야 다음 승객을 이미 사람이 있는 compartment 에
배정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단체 승객의 탑승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한 compartment 에 어느 정도 사람을 채운 후
다른 compartment 에 배정하는 게 맞을 수도 있는데...   청소도 덜 해도 되고.

이렇게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방법을 피하고 굳이 번거로운(?) 방식을 택하는 것은
가급적 개개인의 privacy를 최대한 배려하는 서구의 관습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 오늘 뮌헨行 쿠셋을 타면 총 여덟번의 야간열차 이용이 끝나게된다.
지겹기도 했지만, 막상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섭섭하네...  
오늘도 들락날락 잠을 안 재우려나...


새벽 한시쯤 쿠셋 문을 두드리더니 체코경찰의 검문이 시작된다.
아래 칸의 불가리아인이 체코경찰의 세밀한 검문을 받는다.
여권 이름이 틀리다는거 같은데, 가방을 뒤집 듯 구석구석을 다 뒤지더니,
곧이어 이어지는 독일경찰의 검문시 독일 경찰에 인계를 한다.

독일경찰 역시 여권의 사진 부착 부분을 돋보기로 세밀하게 보고는 어디론가 전화로 신원조회를 하는거 같던데,
결국 짐을 싸라면서 어디론가 데리고 간다.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나 보는 건줄 알았는데, 진짜 이런 일이 있네...
아마 테러 때문에 검문이 심한 것 같다.  우리도 반드시 South Korea 임을 확인한다.

근데, 끌려간 사람은 정말 정체가 뭘까???


기차가 뮌헨역에 도착하기 전 Choi가 하단의 젊은이와 얘기를 나누던 중, 체코인이라고 하자,
그제 무장경찰에게 현금 강탈당하고 받은 벌금영수증이라는걸 보여주며 이게 뭐냐고 묻는다.
참.. 어지간히도 분하긴 분했던 모양이다. 그 일을 아직도 확인하고 싶어하니..

초이가 내민 용지를 들여다 본 체코청년이 체코에서 운전을 했느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하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건 체코의 주차위반 벌금영수증이라나.

초이... 다시 한번 열 받는다.  ㅋㅋㅋ~~  이제 그만 하지...
가만... 그럼 호텔지배인의 말도 틀린거잖아...  물품보관증이라더니.      


자... 이제 마지막 쿠셋의 낭만을 음미하며 독일의 아침을 맞기위해 잠을 청하자.
내가 자는 동안에도 야간열차는 독일 뮌헨을 향해 달릴테니까.

 

:
 



마지막으로 구시가지와 비출라프거리 야경을 돌아보고 프라하역으로 돌아왔다.
이제 아침에 맡긴 배낭을 찾아 11시50분에 출발하는 뮌헨行 야간열차를 타야한다.


프라하역 물품보관소는 다른 곳과 달리 후불제다.
배낭을 찾으려 초이가 보관증과 함께 50Kr 지폐를 내니 안받는다.
무료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폐 수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 ... ??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지폐가 찢어졌다고. 
@<@.. 아니.. 멀쩡한 지폐가 뭐가 어찌됐다고???
기가 차서 어디가 찢어졌냐고 물으니, 끝부분 가장자리가 약간 갈라진걸 가리킨다.
기가 막힐 일이다. 아니 지폐라는게 사용하다보면 어느정도 훼손이야 당연한거 아닌가? 
또 완전 신권이 아닌 이상 이 정도는 흔한거잖아.

'이게 어디 찢어진거냐?' 고 항의하니, 이 친구가 우리 지폐를 받아들고는.
'이게 찢어진거 아니냐..' 며 갈라진 부분을 벌리며 자기가 더 갈라놓는다.
돈이 이거 밖에 없는데 어쩌냐고 물으니, 이 친구가 옆의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보여주며 뭐라고 묻는데,
이 놈이 남에게 한번 보여줄 때 마다 이렇게 찢어졌다며 점점 더 찢어놓는다.  황당하네...

그런데, 이 청소부 아주머니가 더 가관이다.
찢어진 돈은 받을 수 없다며 은행가서 바꿔오란다.   정말 어이는 일찌감치 멀리 날아가버린지 오래다.

어차피 영어는 안 통하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각자 자국어인 체코말과 한국말의 침 튀기는 설전이 이어진다.

- 찢어진 돈은 못 받아.
> 내가 찢은거 아냐. 오히려 쟤가 더 찢어놨지.
- 하여간 못 받아.
> 우리 기차타고 가야하는데, 그럼 어쩌라고?  그리고 다른 돈도 없어.
- 은행가서 바꿔와.
> 은행가서 바꿔주는거라면 니가 가서 바꾸면 되잖아.
- 은행 갔다와...
> 우리 지금 독일로 가야된다니까...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문 연 은행이 어딨냐?
- ... ...
> 아이씨~~  정말 짜증나네..  우리가 안 찢었다니까... 

청소부 아주머니의 말은 그녀의 동작과 가끔 들리는 영어 비슷한 발음으로 말의 의미를 유추해석한 것이고,
초이의 말은 순우리말로 보디랭귀지를 섞어 한 말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건, 각자 상대방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자기나라 말로 떠드는데도, 이게 제법 언쟁이 된다는거다.  
야~~~ 그거 참 신기하네...   어떻게 이렇게 싸움이 된다냐... ㅋ~~

결국 이 친구가 다른 나이 많은 남자에게 다가가 묻고는, 지폐를 받고 거스름돈을 주는데 이게 또 가관이다.
이 녀석이 완전 동전으로만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치면 1원짜리로만) 20Kr을 거슬러준다.
한마디로 엿 먹으라는 얘기지...?   정말 골 때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침에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거 아니냐고 한 농담이 실제상황이 될 뻔 했다.


동전으로만 한웅큼을 받은 초이가 기가막히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 도착하자마자부터 출발하기 직전까지 도대체 얘네들은 왜 이러는거야??
   형..  이거 뭐에 써?  몇푼 되지도 않는거 갖고다니기도 그렇고.. 버려??
> 버리긴...  그걸 왜 버려.  받은만큼 돌려줘야지.  그걸 가지고 그냥 프라하를 떠날순 없잖아.

어제 아침 내돈 500Kr을 은근슬쩍 날름하려했던 역내 매점으로 갔다.
가보니 그 매점의 카운터에 우리가 받은 것과 같은 쬐끄만 동전들이 널려있다.
그걸보니 얘들도 동전은 아예 돈으로 취급도 안하는 모양이다.

가만있자...  20Kr에 가까운 품목이 뭐가 있냐...
메뉴에서 Cola 한 캔에 19Kr 임을 확인하고, Cola 한 캔을 주문하여 수중에 확보한 후,
초이가 쥐고있던 동전을 다 내미니 이노마들이 머뜩한 표정을 지으며 초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짜증섞인 표정으로 돈을 받아 집어던진다.   햐~~ 정말 성질 더러운 놈들이네...

짜식들아~~   그러길래 마음을 곧게 먹어라.. 응!!!  ^&^~~

마지막으로 카운터펀치를 날린 초이가 이틀간 받은 마음의 상처에 그나마 위안을 받은 듯 하다. 



건축물은 이렇게 아름답고 예쁘게 꾸미는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관광객 못 잡아먹어서 난리들인지...
다들 그런거는 아닐테고, 우리가 하필이면 그런 사람들만 만났다고 생각을 해야겠지.
:
프라하에 오니 [hot wine] 이란걸 판다. 
말 그대로 와인을 데운건데, 스위스 라우텐브루터의 Valley House에서 이미 맛 본바가 있지만,
Cafe에서 상업적으로 파는건 Praha에서 처음 본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의 정종개념인데, 날씨가 추워서인지 이곳 사람들이 이걸 마시는걸 자주 본다.
거리에서도 들고 다니며 먹는 경우가 많다.

로마에선 로마법으로...  우리도 프라하에서는 추위를 느낄 때 마다 커피대신 이 hot wine을 마시며 다녔다.
재밌는건 설탕을 같이 준다는거다. 그리고 레몬을 얇게 잘라 띄워준다. 
요렇게 되면 마치 홍차같은데, 설탕을 안 타고 한잔을 마시니 은근히 얼굴에 취기가 느껴진다.
레몬을 띄우지않고 맛을 비교해보니, 레몬이 와인의 떫은 맛을 제거해주는거 같다.  


비출라프광장에서 다시 구시가지로 왔다.  아직 구시가지에 볼게 있기 때문이다.



구시가지광장에 있는 승마장.
일정한 공간 안에서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노새에 아이들을 태우게 하는 놀이시설인데,
우리나라 도심에선 이제 이런거 찾아보기 어렵지...
이런 것도 경제발달과정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구시가지 중심지의 레스토랑은 엄청나게 붐빈다.  주말이라서 그런가...
우리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는 웨이터는 생김새도 그렇지만, 하는 행동도 엄청 뺀질거린다.
맥주를 시키니 여긴 식당이라며 main dish를 강요한다.  여기 애들은 대낮부터 술만 마시는 놈들이 많은 모양이지..
안그래도 배가 고파 뭘 시킬 참이었지만, 대놓고 그러니 은근히 빈정상하네..

옆 테이블 손님도 웨이터의 강요에 열 받았는지 남자가 그냥 나가려 한다. 
여자가 그냥 먹자고 남자를 말리자, 남자가 갑자기 성질을 내더니 자기 모자며 목도리, 장갑을 집어던지는데,
심지어는 자기가 들고온 쇼핑한 것까지 두고 훌렁 나가버린다.
그러자, 여자가 남자가 두고간 모자, 장갑, 목도리며 쇼핑물건을 다 챙겨서 남자를 따라나가기 바쁘다.
그걸 본 초이 왈, '야~~ 어딜가나 여자는 다 불쌍하구나...'

서구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존중해주는게 에티켓이라고 하던데, 
동양이건 서양이건 성질 급하거나 다혈질인 사람은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요구하니, 웨이터가 자기 팁을 20% 얹었다.
이런 뺀질이... 지가 한게 뭐가 있다고 팁을 20%씩이나 달래...  
배낭여행 다니는 주제에 폼 잡고 생색낼 이유가 없다.
절반 딱 잘라 10%만 주니 바로 삐진다.  짜식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표정관리좀 해라. 
        

구시가지를 벗어나 블타바강 쪽으로 나가면 유대인지구가 나온다.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곳인데, 원래는 자의적이 아닌, 유대인이 거주할 수 있는 제한적 장소였다고 한다.



유대인지구에는 유대교의 사원인 시나고그가 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유대인 공동묘지가 나온다.
유대인들은 다른 장소에 매장될 수 없기 때문에 이곳 외에는 묻힐 수가 없다니,
영토가 없는 국민은 이렇게 죽어서도 차별을 받는게 참 서러울만 하다.
그러니까 군복무 기피하지 말고 확실하게 다녀오자.  



유대인묘지는 잘 정돈되고 보존되어 있는데, 다양한 형태의 묘비도 구경거리다.
(묘비를 구경거리라고 표현하는게 좀 어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묘지도 이 정도면 친환경적이다.
서구에서는 묘지가 공원화 되어있는 곳도 많은데, 우리도 이런데 대한 인식을 좀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주택가에 묘지를 조성한다고 하면, 아마 당장 플래카드 붙고 난리가 날거다.
 


묘비 자체가 미니족보다.
:
[ 2001. 12. 14.  Fri ]


또 눈이 온다.  요 며칠 아침마다 눈이 계속 내리고 있다.
어제는 구시가지를 돌았으니, 오늘은 신시가지를 보기로 한다.


뮌헨으로 떠나는 야간열차는 밤 10시 넘어 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배낭을 메고 다닌다는건 얼빠진 바보들의 행동이다.
바보들의 행진을 할 수 없는 우리는 기차역을 먼저 들렀다. 역 구내에 있는 물품보관소에 배낭을 맡기기 위해서다.
그곳에 배낭을 보관하고 가벼운 복장으로 실컷 돌아다니다 기차시간에 맞춰 역으로 돌아와 배낭을 찾으면 된다.

배낭을 역 구내에 있는 Coin Locker에 맡기려는데, 어째 좀 찜찜하다.
Locker의 시건장치도 후져보이는데다, 만약 언놈이 Locker를 뜯어버리고 배낭을 집어가면...
어디 하소연할데도 없는거 아닌가.
개운찮은 기분으로 하루를 돌아다니느니 비용이 좀 들더라도 안전한게 낫겠다 싶어 유인 물품보관소를 찾았다.
생각보다 싸다. 배낭 두개에 30 Kr. 우리 돈으로 1200원 정도니, 다른 도시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안그래도 도착해서부터 하도 기가 막힌 일이 많아 배낭을 맡기면서 초이와 나눈 이야기.
'이거.. 오히려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는거 아닌지 몰라...'  


신시가지의 중심은 바출라프광장이다.
바출라프광장 주변은 프라하의 최대 번화가이다. 

또한 바출라프광장은 체코의 근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과 공산사회주의 공화국이 이곳에서 선포되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유명한 시민혁명인 1968년 [프라하의 봄]때 소련군 탱크에 의해 수많은 시민들이 학살당한 곳도 이 곳이다.
그리고, 결국 자유를 획득한 [벨벳혁명]도 이곳에서 발원되었으니,
바출라프광장은 체코 체제 변천사의 역사적 중심지인 것이다.    



바출라프광장의 끝에 자리잡은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 앞의 동상은 보헤미아의 수호신인 바츨라프 대왕이다.



박물관에서 맞은 편으로 바라본 광장 주변의 모습.
길 양편에 호텔, 백화점, 사무실 및 레스토랑 등이 늘어진다.

근데, 정말 모든건 적응하기 나름인 모양이다.
체코에서 맞은 영하의 날씨는 우리에겐 너무 춥게 느껴지는데, 이 나라 사람들에겐 보통인 모양이다.
우린 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시려워 모자를 이중으로 눌러써 귀를 보호하고 다니는데
얘네들은 귀마개하고 다니는 사람을 못 봤다.

완전무장을 한 초이의 모습과 모자도 안쓰고 다니는 체코 청년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심지어 저 뒤에 돌아보는 할머니도 귀마개는 안한다.  추위에 웅크린 초이에 비해 얼마나 여유가 넘치시는가.

날씨 얘기가 나오니 또 하나 궁금한게 있다.
체코는 세계 축구강국이다.  그런데, 1년의 얼추 반 정도는 이렇게 추운 나라에서 대체 언제 축구연습을 하는거야... 


체코의 프라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비해 도시가 훨씬 활력이 있어 보인다.
식당의 분위기도 그렇고, 가는 곳 마다 경쾌한 팝송이 흘러나온다.

특히 차이가 느껴지는 곳은 쇼핑타운이다.
부다페스트에 비해 물건도 다양하고 디스플레이도 화려한데, 그보다 쇼핑나온 여성들의 옷차림이 한결 세련되어 보인다.
쇼핑센터를 들어가 보니일반적으로 가격들이 생각보다 싼듯 한데, 하지만, 옷값의 경우 브랜드 제품은 결코 싸지 않다.
몇몇 품목을 눈여겨보니, 스키복은 싼거 같다.  수제화인 가죽신발도 질이 아주 좋아 보인다.
Swiss Knife 도 스위스보다 싼거 같은데, 저게 정품인지는 모르겠다.

외국에서 Eye Shopping을 할 때 꼭 관심있게 살피는게 있다.  바로 제품의 원산지.
원산지를 살펴보는 이유는, 그 대륙에서 인건비가 저렴한 나라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건비가 싸다는 얘기는 아직 상대적으로 경제후진국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여기서도 리복은 Made in China 다.  그런걸보면 유럽에 비해 아직 아시아의 인건비가 경쟁력이 있는 모양이다.
가전제품 중 Audio/Video 는 일본제품이 완전 장악하고 있고, Casio는 여기서도 계산기와 전자수첩의 대명사다.

쇼핑센터의 특징은 서울에서와 같은 고층 대형백화점은 아직 눈에 띄지않고, 커봐야 3층 정도다.
아직은 백화점의 개념이 아닌듯 하다.  

아직 난방이라든가 휴지같은 생필품의 수준이 떨어지지만,
체코는 머지않은 시기에 빠른 경제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예감이 팍팍 온다.
비전문가인 내가 느낄 정도로 성장의 박동이 쿵쿵 울려오는 소리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넘치는 활력이 보여진다.
:


카를교에서 바라본 [블타바강].

내가 참 좋아하는 음악 중의 하나인 스메타나몰다우강으로만 알았던 블타바강은 다뉴브강보다 크진 않았지만 아름답다.
빈이나 부다페스트 등 다른 도시의 강과는 달리 건축물과 호흡하는 도시친화적 느낌이 든다.
특히, 강변을 따라 접해있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빽빽한 고층 아파트로 둘러진 한강보다 블타바강을 더 정취있게 만든다.

근데, 바로 앞에 보이는 건물은 강과 경계가 없네...  하긴, 베네치아에서는 골목마다 보던 모습이지만. 

참.. 그러고 보니 카를교에서 빠트린게 있다.



카를교의 교각에서 본 조각상.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모습이다.  옆에다 석가여래상 하나 같이 세운다면 몰라도. 


환전을 좀 해야하는데, 영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체코에 도착하자마자 두번을 데이다보니 모든게 미덥지가 않다.
금전과 관계되는 부분은 특히 더해 아무데서나 환전하면 꼭 뭔가 피해를 볼거 같아 은행을 찾는데 은행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 길거리에 환전상이 엄청 많다. 하지만 선뜻 내키지가 않아 망설이는데, 한 곳 입구에 큼지막한 입간판이 보인다.

[COMMISSION  0 %]

- 저거 믿어도 되는거야?
> 얘들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직접 물어봐.

초이가 '수수료 없는게 맞느냐?' 고 물으니 그렇단다.  좀 찜찜하지만 없다는데야 믿을 수 밖에.   
100불을 코루나로 바꾼 초이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 형.. 계산기 있지?  여기 환율로 100불이면 얼만지 한번 두드려봐.
> 왜?  안맞는거 같애?
- 좀 이상한거 같아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자기들이 고시한 환율에 비해 받은 돈이 좀 적다.
이유를 물어보니 커미션이 붙어 그렇단다.   커미션??  커미션이라니...???
너네 수수료 없다고 그랬잖느냐고 항의하니, 수수료 0 % 라고 크게 써놓은 입간판을 가리키며,
달러를 팔 때만 그렇고 달러를 살 때는 수수료를 받는단다.  입간판을 자세히 보니 0 % 밑에 
[For selling foreign currency] 라고 아주 조그맣게 적혀있다. 
그러니까 체코돈이 필요할 때는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죽일 놈들...  관광객이 대부분 체코돈을 필요로 하지 여기서 달러 바꾸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나.
고작해야 쓰고남은 돈 정도겠지.  그럼 처음부터 설명을 해주던가. 
하여간 하나하나 맘에 안들어...

갑자기 옛 남대문 지하도 입구에 줄지어있던 암달러상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우리도 그 때 그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숙소 입구에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여행 후 처음으로 이쪽저쪽에 그간의 배낭여행 리포트를 보냈다.

숙소에 들어와 샤워를 하는데 중간에 갑자기 물이 차거워진다.  온몸이 비누거품인 상태에서 참으로 난감하다.
아침에도 그랬다. 머리를 감는데 비누칠을 하는 도중 물이 차가워져 혼났다. 초이도 같은 경험을 했단다.
여기서는 군대 스타일로 3분 안에 끝내야하는 모양이리며 초이와 둘이 웃었지만,
어쩌면 이게 체코의 현 경제수준인지도 모른다.


그래...  오늘 하루 우리가 겪고 느낀 이런 것들이 불과 30~40년 전 외국인들이 느꼈던 우리의 모습이리라.  
오늘 내가 짜증이 났다는건 그만큼 우리 팔자가 좋아졌다는얘기겠지.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고...
:
자... 이제 다시 오전에 제대로 보지못한 구시가지를 둘러보자.


 

구시가지로 통하는 13개 출입문의 하나인 이 문은 한때 여기에 화약을 저장했었다 하여
[화약탑]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탑 위에 올라가 시내를 바라볼 수 있다는데, 글쎄...  저 정도 높이에 조망효과가 있을지...

카를교와 연결된 출입문과 전체적인 모양이 비슷한데,  특히 꼭대기 부분은 아주 똑같다.   
마치 망건을 씌운듯한 모습.




화약탑과 맞은 편 방향의 [구시가지 청사].
이것 역시 머리부분이 망건모양인걸 보면 저게 무슨 의미가 있는건가??

1338년에 지어졌다는 이 건물은 나치에 의해 대부분 파괴되고, 지금은 요것만 남았다고 한다.
이 청사의 한쪽 면에 그 유명한 천문시계가 있다.



천동설을 기반으로 만들었다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천문시계].

위에 있는 원이 시계인데, 작은 원은 1년에 한바퀴를 돈다니,
젠장...  도는건지 안도는건지 육안으로 확인하려면 며칠을 쳐다봐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달력의 개념이라는 아래 원에는 보헤미아 농민들의 생활을 12달로 나눠 그림으로 표현했다는데,
이 역시 육안 확인 불가. 

시계 위의 두개의 창문을 잘 보자.  지금은 닫혀있다.
잠시 후  이 창문이 열린다.



천문시계는 매시 정각이면 창문이 열리며 12사도들이 행진을 한다.

우리는 시간을 잘 맞췄다.
아까 닫혀있던 두개의 창문이 열리고 12사도들의 행진모습이 보인다.



행진이 끝날 무렵 창문 위의 닭이 울어 시간을 알리면서
사도 둘이 창문에서 인사를 한 후 창문이 닫히는데,
이걸 보기 위해 구시가지 광장의 많은 사람들이 매시 정각이면 이 앞으로 모인다.
놓치면 다시 근처에서 1시간을 배회해야 하기 때문에 수시로 시계를 보며 시간을 확인한다.

이 시계가 우리가 측우기와 해시계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와 비슷한 1500년경에 만들어졌다니 놀랍다.


오후 4시가 넘자 사방이 어둑어둑해지는데, 광장의 한쪽에 설치된 임시무대에서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들린다.



 뭔가 가보니, 어린이와 어른들이 혼재된 합창단이 무대 위에서 합창을 하고 있다.
X-mas 리허설이라서인지, 아니면 비형식 합창단이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각자의 복장이 자유롭다.

추위 때문에 털모자에 목도리, 장갑을 끼고 방울을 흔들며 노래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고 정겹게 느껴진다.  
지휘 아줌마도 목도리와 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깜찍한 아이들의 발랄한 노래소리를 더 듣고 싶었으나, 초이가 추위를 호소하는 바람에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
프라하성을 나서 카를교를 향해 내려가는데 눈에 띄는 건물 하나.



기념품가게는 초연히 지나치더라도 이런건 절로 눈길이 간다.

육안으로 보면 문양이 되게 멋진데, 렌즈로는 좀 어두운가?? 
윗 부분만 다시 한번 당겨보자.



계단형 윤곽에 가볍게 준 곡선이 
전체적으로 직선인 건물에서 느껴질 수 있는 각지고 딱딱한 이미지를 웅장하게 승화시킨다.
그보다  세밀한 모자이크가 색채의 단조로움에도 참 화려한 느낌을 주는데,
중간중간 사람의 형상이 보이는걸로 미루어 여기에도 뭔가가 상징화되어 있는듯 하다. 
 

프라하성과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카를교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다.
한강을 연결하는 수많은 다리에 비해 길이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짧지만,
그럼에도 강변 풍경 외에 다리에는 볼게 없는 단순한 한강의 다리에 비해 볼거리가 있다. 



다리 중간 중간 난간의 동상들은 14사도라고 한다.
체코는 國敎는 없지만 천주교가 오래동안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이런가 보다.

이걸 보면서 서울 한강의 다리도 테마별로 꾸미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이를테면,
한강대교는 문학의 다리로 하여 이효석, 김영랑 등의 흉상과 더불어 작품을 소개하고
원효대교는 종교의 다리라 하여 원효대사와 김대건신부 등 한국의 역사적 종교지도자들을 소개하고
잠실대교는 과학의 다리로 최무선, 장영실, 우장춘 등을,
서강대교는 미술의 다리로 김홍도, 이중섭, 김기창 등을,
또 행주대교는 구국의 다리로, 올림픽대교는 체육의 다리로 하여
각 분야별로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업적을 보여줄 수 있다면,
산책을 하면서 우리의 역사를 배우고 알릴 수 있는 좋은 문화코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해외연수 다니는 공무원들이 꼭 틀에 짜여진 세미나 나 포럼만 다닐게 아니라
이런 감성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카를교를 건너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입구는 전형적인 옛 중세의 모습이다.

적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강을 건너는 다리 입구에 세워진 좁은 출입문.
많은 병력의 출입을 제어하는 효과를 염두에 뒀겠지.
입구의 높이도 말을 탄 병사가 창을 들었을 때의 높이를 생각했을거야.

카를교 다리와 입구에 펼쳐진 화가상들의 작품도 정취가 있어 보인다.
하기사 보는 사람 입장에서 정취고 낭만이지, 당사자들에게는 이런 표현은 한가한 사치일 뿐이리라.
추워죽겠는데 무슨 놈의 정취...


    

구시가지에서 카를교 방향으로 바라본 카를교 종탑.
어딘지 다소 균형이 안맞아 불안해 보이는데도, 오랜 세월 저렇게 버티고 있다는게 신기하다. 



종탑의 전면에는 변함없이 정교한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다.

아치형 위의 방패 문양.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가문이 가문을 상징하는 고유의 방패문양을 사용했다는데,
저 문양들도 그런 것들과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


구시가지에서 블타바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프라하성 원경.

프라하 건축물은 여러가지 관점에서 특징지을 수 있겠지만,
쉽게 눈에 띄는 것 중의 하나는 지붕의 색이다.

빨간 색이라고 하기엔 농도가 좀 연한 것 같은, 진한 붉은 벽돌 색이라고 할까...
붉은 색이 주류를 이루면서 다음으로 눈에 뜨이는 색이 옥색이다.
흥미로운 것은 둥근 돔 형태는 모두 옥색이다.  돔에는 붉은 색이 없다.
반면에 일반 주택의 형태를 갖춘 건물은 거의 대부분 지붕이 붉은 색이다.
그리고 빌딩형태의 건물 지붕은 붉은 색과 옥색이 공존하는데, 붉은 색이 압도적으로 많다.
느낌상 공공건물이 옥색을 많이 띠는거 같지만, 그건 내 느낌일 뿐이다.
무엇으로 구분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왜 프라하는 지붕의 색이 이렇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도시 전체의 아이덴티티를 위한 것인지, 자연발생적인 현상인지...   
그리고, 프라하가 아닌 다른 도시 역시 이럴지도 궁금한데, 아마 지방은 더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를 건너 한참을 꼬불꼬불 올라가면 프라하성 후문 입구가 나온다.

보초를 서는 근위병들의 모습이 마치 장난감병정 같지 않은가... 
가까이서 보면 정말 어린 티가 나고 귀엽다.   근데.. 우측에 너~~  보초가 근무 중에 웃어도 되냐??  

후문 입구에서 눈에 띄는 말발굽형 보도블록.
저건 로마타일인데, 어떻게 여기도 저런 형태의 돌을 깔았을까...
단순히 본따온건지, 아님, 로마와 역사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프라하성에 있는 이 건물은 지금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는데,
대통령의 주 생활공간 임에도 경비가 심하거나 그렇진 않다. 
옛 공산국가의 이미지만 생각하면 엄청 삼엄할거 같은데, 이런 모습에서도 체코의 자유화가 실감난다.

저 뒤에 보이는 뾰족한 탑은 [성 비타 성당].



930년에 짓기 시작한 [성 비타 성당] 역시 건축기간만 400년 정도 걸렸고
최종 마무리는 20세기에서야 끝났다니 유럽의 성당 건축에 대한 정신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단순히 공기지연은 물론 아닐테고, 이걸 장인정신이라고 표현하기도 좀 늬앙스가 아닌거 같고...
하여간 참 질기다.



성당 전경을 한 앵글에 담을 수 없어 윗 부분만 다시 보았다.
디자인과 무늬 하나하나가 섬세하면서도 화려하다. 




[성 비타 성당]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성 십자가 성당].
[성 비타 성당]과는 달리 아담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성 십자가 성당]은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용 기도실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위치도 호젓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근무교대를 하고 지나가는 근위병을 붙잡고 한 컷.
얼굴은 어려보이는데, 에~구~~  내 키는 키도 아니네...  
근무 끝났으면 좀 웃어도 되잖아...



 
우리는 이상하게 투어코스를 남들과 반대로 다니는 경향이 많다.
헝가리에서도 일반적인 관광코스와 반대로 다녔는데,
프라하성에서도 남들은 정문으로 들어가 후문으로 나오는데, 우리는 후문으로 들어가 이렇게 정문으로 나왔다. 

저봐...  다들 들어가고 있잖아...  저 왼쪽 구석에 우리처럼 얼빵하게 반대로 도는 친구가 하나 보이는군. 
이거 인생이 이렇게 후문인생이 되면 안되는데... ㅡ.ㅡ

하여간 여기가 프라하성 정문이다.

정문 위의 저 무지막스러운 조각은 1770년 오스트리아 제국시절에 만들어졌다는데,
당시 지배국이 피지배국에게 보내는 메세지인가??
너네 반항하거나 까불면 이렇게 되는 수가 있다...


여기서 카를교까지는 한참을 내려간다.
동네 골목과 같은데, 내려가는 길 양쪽에는 수많은 기념품점과 식당 들이 있다.
그거 일일히 기웃거리다간 여기서만 반나절이니 그냥 눈을 정면으로만 고정시키는게 낫다.

프라하성을 찾는 관광객만 한해에 2000만명이라니 참 부럽다.
우리나라는 그럴만한 곳이 어디 있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곳이 없는게 안타깝기만 하다.
:

'야~~  당한건 당한거고 당한만큼 구경이라도 해야지, 방구석에서 하루종일 뭐하려고??
 그리고, 또 어떤 놈이 어떻게 뒤통수 치는지 궁금하지않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진 초이를 달래 호텔 밖으로 나왔다.


시내 투어를 위해 프라하 지도를 구하니 [Prague]라고 되어있다.
Prague??  이게 프라하의 오리지날 명칭이냐 물으니 체코어로는 [Praha]가 맞단다. 
Prague가 영어식 이름이란다.  영국이 그렇게 부른다고..

영국도 거 웃기는 짬뽕들이다.
Netherland에서도 Dutch라는 국가표가 표기는 또 뭐냐고 물으니 영국이 붙인 이름이라고 했었다.
그 나라 사람들의 표기와 발음을 존중해 줘야지, 고유명칭을 자기들 멋대로 표기하는건 또 뭔 심보야..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  우리나라야 고려시대가 있었으니 Korea라 하더라도, Japan의 근거는 뭐야?
하여간 웃기는 영국이다. 무지 시건방지거나...

그런데 체코 얘네들도 또 그렇다.
지네 나라말로 Praha면 지들이 그렇게 써야지, 지도에 Prague라고 쓰는건 또 뭐냐고..??
존심도 없나...


조그만 산언덕 위에 있는 옛 공산정권하에 공산당 서기장 집무실로 쓰던 커다란 건물은
이제는 사람의 발길이 뜸한 채 덩그러니 비어있다.

저 동상의 주인공은 또 누구일까?



갑옷과 같은 服制를 보거나 말을 타고있는 걸로 미루어 중세 이전의 인물인거 같다.
이 사람도 헝가리의 마차시 대왕과 같이 한때 이 지역을 주름잡았던 난세의 영웅이었던 것 만은 확실하겠지. 


구시가지를 보지않으면 프라하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구시가지로 접어드니 이런 건물이 보인다.
내 눈에는 굉장히 멋지고 유서깊은 듯 보이는데, 이 동네에서는 이 정도는 별거인가 보다.



볼만한 것은 여기 다 있기에 구시가지 광장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광장에는 가판장이 많은데, 가판장의 디자인과 규격을 통일하여 깔끔해 보인다.

오른 쪽에 보이는 동상은 [얀 후스 기념비].
종교개혁자인 얀 후스는 교회와 교황 등 교회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 화형당했는데,
이 기념비는 그와 그의 추종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가 화형당한 후 500년 후에 세웠다고 한다.
500년 후에도 잊지않고 기리는걸 보면 죽어서도 확실하게 이름을 남긴거 맞네.
그런 사람인줄 알았더라면 사진을 제대로 찍어놓을걸... 




광장 동쪽의 [틴 성모 성당].

전형적인 고딕양식을 보여주는 틴 성당은 그동안 보아왔던 성당의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여지껏 보았던 성당의 모습이 곡선을 기조로 직선을 가미한데 비해 틴 성당은 유난히 직선을 강조한 듯 하다.
근데, 저렇게 하늘을 찔러대도 괜찮나...  불경죄 아닌가..


구시가지 광장 한복판의 [얀 후스 기념비] 앞에 서서 360도 몸을 돌리면  주변 골목 사이로 
아기자기하고 멋스런 구경꺼리가 눈에 많이 들어오는데, 이게 오히려 사람을 고민스럽게 한다.
광장을 중심으로 골목이 방사형으로 나있기 때문이다.
시간 여유가 많다면 왔다갔다 하면서 다 돌아보면 되겠지만, 우리같은 겉핥기 배낭족은 잘 선택해서 핥아야 한다.
맛있는 곳을 놔두고 잘못 맛없는 곳만 핥으면 약오르잖아.

지도를 놓고 팔방으로 뚫린 거리의 구조와 해가 지는 시간들을 고려하여
일단 [프라하城]으로 나갔다가 다시 광장으로 돌아오기로 했다.
어차피 해가 짧아 하루에 다 돌아보기는 어려울거 같은데, 어두워지면 프라하성의 출입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광장이야 시간 제한이 없으니 야경이라도 볼 수 있을테니까.  




광장 한쪽에 꾸며놓은 크리스마스 트리.

와~~  거.. 트리 스케일 한번 크네...
:
[ 2001. 12. 13.  Thu ]


아침 5시45분.
길지만 정신없었던 밤을 보내고 우여곡절 끝에 체코 Praha에 도착했다.
참.. 힘들게 왔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숙소를 잡기도 애매하여  늘 하던대로 뮌헨行 쿠셋예약을 위해
지하1층으로 내려가 창구에 줄을 서있는데, 무장경찰 3명이 다가오더니 초이에게 여권을 요구한다.

뭐야?  이건...
별로 기분좋은 일은 아니지만 경기관총으로 무장한 우락부락한 체구가 만만치않아 보인다.
초이가 여권을 건네주고 나도 여권을 꺼내 손에 쥐고 있는데, 내 여권에는 관심도 없다.  왜지???

초이의 여권을 훑어보던 경찰이 수첩을 꺼내 초이의 passport 에서 뭔가를 적어내려간다.
순간, 아차~~!!  뭔가가 잘못돼고 있음을 느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며
벌금이 300 Kr 란다. (코루나 : 1kr = 약 38원)

초이가 몰랐다고 하자, 이쪽저쪽에 붙어있는 금연마크를 가리킨다.
그렇더라도 벌금규정이 어디 있느냐고 초이가 항의하자 막무가내로 300 Kr 를 내란다.

- 형.. 어떻해?  아.. 이새끼들 너무 하는거 아냐??
> ... 아니.. 말도 안되는 얘긴거 같긴 한데, 그런데 쟤들이 니 여권을 가지고 있으니 방법이 없잖아..
   쟤들이 그냥 니 여권을 가져가면 그것도 골치아프잖아...

초이의 얼굴이 슬슬 붉어진다.  열받고 있다는 증거.
그래도 어쩌겠는가. 여권이 우선인걸.
300코루나를 주니 이노마들이 뭔가 우리 옛날의 버스표 같은 쪽지 한웅큼을 주며 벌금영수증이란다.

영수증도 안주던 슬로바키아 애들보다는 낫네.
근데, 무슨놈의 영수증을 이렇게 많이 줘...??  그냥 한장에 300 이라고 적어주면 되지..

경찰이 간 후 Choi가 홧김에 그 영수증이란걸 휴지통에 버리길래,
'나중에 혹시 불심검문에 조회 후 벌금냈느냐고 트집잡으면 어쩔려구...??' 하니,
'그런가..?  이 새끼들 그럴수도 있겠네..' 하더니 다시 줍는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12000원정도니 까짓것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얼떨결에 당했다는게 불쾌한건데,
시간이 지나면서 초이의 흥분지수가 가라앉기는 커녕 점점 올라가더니 나중에는 급기야 뚜껑이 열리게 된다.


떨떠름한 기분으로 다시 1층으로 올라와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던 초이의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대합실 실내 온천지에 담배물고있는 놈들 투성이다.
게다가 사방 벽에 버젓이 금연마크가 붙어있는데도 말이다.

어.. C~8~~  나만 재수없었던거야?? 

치미는 울화를, 하필이면 경찰이 있었던 곳에서 피웠다는 불운한 재수 탓으로 돌리려하던 초이를
더 열받게 만든건 초이의 눈에 들어온 경찰들이었다.

수많은 경찰들이 몇몇씩 짝을 지어 대합실을 왔다갔다 하면서도,
그 많은 경찰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은 흡연자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나의 동반자 초이를 충격 속에 빠뜨리며 돌아버리게 만들었다.

화살 설맞은 멧돼지마냥 코평수를 넓히며 코속으로 에어펌핑을 하는 초이.

- 야~~ 분하지만 어쩌겠냐...  그만 씩씩거리고 뭐좀 먹어야지..
> 아~~ C~8~~ 안 먹어.. 이 새끼들 정말 사람 열받게 만드네...  그러니까 나를 호구로 봤다 그거지...
- 야.. 그래도 배고프지않냐?  뭐 사올까??  내가 뭐라도 사올께.
> 아.. 싫어.  형이나 먹어..


거.. 열받은 사람한테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나는 배가 고프니 어쩌겠어.. 나라도 먹어야지.
역 구내에 있는 매점에서 음료수와 애플파이를 사고 얼마냐고 물으니 52코루나 라는데,
1000코루나 지폐를 내고 받은 거스름돈을 언뜻 보니 400 얼마 밖에 안된다.

'내가 가격을 잘못 들었나?  520코루나 였나??  그럼 4만원인데, 말도 안되지...' 싶어
다시 얼마냐고 물으니 계산기에 52라고 찍어준다.
그래서, 내가 1000코루나를 냈다고 하니, 아니라며 자기는 500코루나를 받았다나...

@<@..  아니 뭐 이런 놈들이 다 있어..?? 
순간, 인터라켄에서 만난 영국유학생의 말이 생각난다. '체코에 가시면 거스름돈 꼭 확인하시고요...'
햐~~ 이게 진짜네...   이런 일이 정말 생기는구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따졌다.
'아니다. 내가 분명히 1000코루나를 냈다.' 고 주장하니, 둘이서 뭐라고 수군거리더니
자기들이 허리에 찬 벨트지갑을 열어보이면서
'이 안에 1000코루나 지폐가 없지않느냐? 우린 오늘 1000코루나는 받은 적이 없다' 고 대꾸하고는
더 이상 내 말을 들으려하질 않는다.  마치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듯.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계산기에 1000을 찍어 보여주며, 'I paid blue paper money!!' 라고
악을 쓰듯 고함을 지르니, 또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뭐라 궁시렁대더니만
말도 없이 500코루니 지폐를 내게 던지듯 내놓고는 딴짓을 하며 나를 외면한다.

짜식들이.. 누굴 상대로 사기를 칠라 그래...  근데, 정말 눈 뜨고도 코 베이는 동네네...
 

숙소를 잡아 체크인을 하면서 지배인에게 물었다.

'체코에서는 금연지역에서 담배를 피면 벌금을 내느냐?'  
돌아온 대답은, '그런 얘기 들어본 적이 없다.'

그때까지 기력을 잃고 소파에 앉아있던 초이가 다시금 맛이 간다.
경찰이 벌금을 내라서 냈다고 하니, 이 친구 웃으면서 하는 말,
경찰이 용돈이 좀 필요했던 모양이란다.   점점 그로기상태가 되어가는 초이.

버스표 같은 벌금영수증을 보여줬다.
-그럼 이건 뭐냐?
> 물건을 맡기면 주는 일종의 물품보관증 같은거라고나 할까...
초이를 패닉에 빠뜨린 결정타 !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나갈 준비를 마치자,
자기는 구경할 의욕을 완전히 잃었다며 잠이나 잘테니 혼자 나가란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연방 '이놈의 체코...' 를 달고 있다.

천하의 초이가 체코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어처구니없이 당한 것이다.
그 체코 경찰관 입장에서는 어리뻥뻥한 동양인에게 멋지게 한껀 올린 것이고.
그러게 담배를 왜 못 끊어가지고 사냥감이 되나... ㅉㅉㅉ...

한밤중에 슬로바키아 승무원에게 당하고, 새벽에 체코 무장경찰에게 당하고...

영국유학생이 경고한 세가지 중 두가지를 도착하면서 당하고 겪은 것이다.
경찰 조심하라는게 무슨 뜻인줄 몰랐었는데, 제일 먼저 체험학습을 하게될 줄이야...


그나저나      
야...  이 동네 정말 곳곳이 지뢰밭이구나...  조심, 조심, 또 조심이다.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집중하자.
그런데, 이거 이렇게 엄한데 정신쓰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겠나...




이렇게 중후함이 느껴지는 도시의 곳곳이 지뢰밭이라니...
:
프라하가는 길은 왜 이리도 멀고도 험한건지...

깜깜한 밤에 자다 일어나 이름도 모르는 역에서 슬로바키아의 열차승무원에게 통행세 1860을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지불을 한걸로 대충 마무리가 되고, 이제 잠좀 자나보다 했더니,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시간쯤 지나니 또 누가 들어와서는 체코 승무원이라는데, 
사실 내눈에는 헝가리인이나 슬로바키아인이나 체코인이나 다 그 모습이 그 모습이고 구분이 안된다.
자기들이 그렇다니까 그런줄 알밖에.

체코 승무원의 요구사항은 기차요금을 지불하라는 것.
체코는 Eurail 적용이 안된다고 들었으니 낼건 내야지...  그건 주고.

그리고 또 한시간이 지나니 이번엔 체코 세관원이 들이닥친다.
밤 8시50분에 출발해서 12시30분까지 좀 쉴라치면 들이닥치고, 끝났나 싶으면 또 쳐들어오고,
하여간 이놈저놈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들락거리는데, 무려 아홉번을 들락거리며 잠을 못자게 한다.
잠이 좀 들만하면 이놈이 문열고, 또 겨우 들만하면 저놈이 깨우고...  이게 고문이다.

야~~ 이제 고마 잠좀 자자구~~~


근데, 기차승무원들은 국적이 어디고간에 운행구간의 특성에 대해 서로 잘 알텐데,
슬로바키야 영토 통과시 통행요금에 대해 체코 승무원에게 물어봐도 모른단다.
단지, 체코 승무원은 체코貨나 슬로바키아貨 어느나라 화폐로도 지불 가능하다는데,
내 돈 먹은 놈은 슬로바키아 돈으로만 지불이 가능하다고 그랬다.
결국 승무원들의 묵인하에 뭔가가 이루어지는 듯 하다.


9시간의 야간열차.
충분한 수면을 취할 것으로 기대했던 시간의 반을  3국의 직무별 유니폼 식별하는데 소비하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프라하 까지의 남은 시간을 계산하는 사이에 기차는 체코 속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눈을 감고 잠을 재촉하는데,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만난 영국에서 왔다는 한국인 유학생의 충고가 생각난다.

'아저씨.. 체코에선 주의하실게 있어요.
 거스름돈은 꼭 보는 앞에서 확인하시고요, 물건사시면 영수증 내역 꼭 확인하세요...  그리고...'

맞아..  경찰도 조심하라고 했지...
근데, 경찰도 조심하라니...??  @>@..

이틀사이에 뭔일이야 있겠나...
:



순박하면서도 강인한 더벅머리 청년과의 짧은 만남.
부다페스트에서의 1박2일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쉬운 여운을 간직한 채 8시 50분 체코 Praha行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적(?)을 만날 줄이야...

기차가 출발을 하고 30분쯤 지났을까... 
잠자리를 준비하느라 배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헝가리 군인이 들어와 passport를 요구한다.   옜다~~
그러더니 곧 이어 이번엔 슬로바키아 경찰이 들어와 또다시 possport를 요구한다. 
사진 잘 나온거 소문났나...  그래 실물보다야 못하겠지만 너도 한번 봐라...

잠시 지나니 또 누가 들어온다. 
이번엔 세관원이라며, 술 담배가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세관원이 들어와 똑같은 질문을 한다.
아이 씨~~~  이것들이 누굴 겁주는건지... 완전 뺑뺑이를 돌리고 있네...

조금 전에 이미 확인했다고 하니, 자기는 슬로바키아 세관원이란다.  
그럼 아까는 헝가리 세관원이라는 얘기???
초이가 나를 구슬른다.  '형.. 아무소리 말고 여권 줘요...'
하긴.. 초이 우려대로 괜히 시비를 자초할 필요는 없다.

다른 나라를 들어갈 때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Wien 에서 Budapest 를 올 때도 세관신고서를 작성했다.
그것도 다른 것은 체크하지 않고 술과 담배의 소지유무만 확인하더니, 지금도 술 담배만 확인한다.
아마 아직 이 동네에서는 술이나 담배의 밀수입과 밀매가 성행하는 모양이다.


Budapest를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지나 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어서니,
여승무원이 찾아와서는 슬로바키아 영토를 지나니 요금을 내란다.  엥~~ @>@...  이게 뭔소리..??  
헝가리에서 체코를 가려면 슬로바키아 영토를 거치는데, 결국 통행세를 내라는 얘기다.

뭐 이런 개떡같은 얘기가... 
쌍팔년도 만주벌판 마적들도 아니고, 봉이 김선달 후손이 언제 슬로바키아로 이민을 온건지...

- 기차요금에 포함되어 있는거 아니냐..  
-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등등 말을 해봐도 지는 지 나름대로 얼마를 내라 그러는거 같은데, 금액이나 단위도 모르겠고,
서로 말이 제대로 안통하니 저도 답답했는지 여승무원이 일단 그냥 돌아간다.  다시 오겠지.

역시..  잠시 후 같이 온 남자승무원 말이 1860을 내야 한단다. (화폐단위는 제대로 듣질 못해서...) 
더이상 따지는건 의미가 없을거 같아 '슬로바키아 화폐가 없으니 달러도 가능하냐?' 고 물으니,
달러는 받지않는다며 30분 후에 중간역에 잠시 정차하니 그때 현금인출기에서 인출을 하란다.

30분쯤 후인 밤 10시반.
이 친구 정말 정확한 시간에 우리를 깨우더니 따라 오라길래 파카를 걸치고 일어서는데 초이가 묻는다.

- 형이 갈라구?
> 내가 갔다올께..
- 내가 갈까?
> 어차피 추가경비는 내 카드로 쓰기로 했잖아. 
- 괜찮겠어?
- 안괜찮으면??    ... 다녀올테니 기다려.

자다말고 슬로바키아의 어딘지도 모르고 생판 이름도 모르는 깜깜한 역에 내려 돈을 빼라니...
그래.. 한번 가보자.  이래서 슬로바키아 땅도 한번 밟아보는구나...

사실 좀 겁이 난다. 
이거 열차 못타는 일이 생기는거 아냐..?? 
그럼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어찌해야 하나...  게다가 배낭과 여권 모두 기차 안에 있잖아... 

승무원을 따라 내려 플랫폼의 지하도로 향하며 열차 정차시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30분이란다.
그리고 뒤돌아보며 내가 내린 플랫폼 번호를 단단히 외웠다. 
4번 플랫폼이지...  나중에 또 열차를 헷갈리면 큰일난다.

역 구내의 어느 기계 앞에서 멈추더니 승무원이 여기서 돈을 인출하란다.
기계의 안내 메세지를 보니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당연하지. 슬로바키아 문자니..
작동법을 알려달라고 하니 옆에서 열심히 설명을 한다.
시키는대로 카드를 넣고 작동을 하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듯 에러메세지 같은게 뜬다.
무슨 뜻이냐 물으니 기계에 현금이 없단다.

현금이 없다구???  이렇게 경사스러운 일이...  돈이 없다는데야 어쩌겠어. ^^
입가에 번지는 흐뭇한 미소를 반쯤은 감추며, 어거지로 안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떻하냐고 물으니,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따라오라며 다른 기계 앞으로 안내를 한다.  이런 젠장할...

한번 해본 솜씨로 눈치코치껏 1000짜리 지폐 두장을 들고가니 인출했냐고 묻고는 자기 달라더니
잔돈을 찾아볼 생각도 안하고 바로 지갑에서 500을 꺼내 내게 건네준다.
어~~??  1860이라더니 왜 500을 거슬러주지??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는 척 하다가 잔돈이 없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500을 거슬러주면 고맙다는 생각이라도 들텐데,
돈을 받자마자 거침없이 주는 돈 500을 받고보니, 완전 짱구가 된 기분이다. 
뭐야.. 이거??  이 자식들이 이거 정가도 없는거 아냐...  아님, 완전히 자기가 먹는거거나...

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없단다.  나중에 다른 승무원이 또 요구를 하면 어떻하느냐고 물으니 그런 일 없을거란다.
그러면서 'No problem...' 만 몇번 외친다.  얘가 오밤중에 수입 잡았구나...

하지만, 지금 그걸 끝까지 따지고 항의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열차에서 내려 몇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열차가 출발하는거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초조하고 급해지면서 빨리 기차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급히 지하도를 거쳐 4번 플랫폼으로 올라가니 초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열차 승강구에 매달려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승무원이 내가 열차에 오르는걸 보고는 손을 흔든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초이가 안도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 형.. 어떻게 잘 처리됐어??
> 별안간 내가 상당히 멍청해지는거 같은데...  내가 멍청한건지, 저놈이 멍청한건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초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는다.
그렇게 둘이 한참을 웃었다.  웃어야지 어쩌겠나...

- 참... 너 만약에 열차 떠날 때 까지 내가 안오면 어쩌려고 했어?
> 그러면 일단 프라하역에서 형이 올 때 까지 죽치고 기다려야지.  형이 어떻해서든 프라하에 못 올 사람이 아니잖아.

그렇게라도 인정을 받으니 좀 낫네...


그나저나, 이상범이 카드의 패스워드가 슬로바키아의 이름모를 역 대합실에 있는,
문자도 모르는 ATM기에서도 조회가 되고 승인이 떨어지다니...  정말 놀랍다.

ㅋㅋㅋ...  당연한 것을 가지고 뿌듯하게 생각하는 나도 아직은 무늬만 문명인인 모양이다. 


여행기간 중 가장 겁나고 긴장했던 한밤중의 30분.
하지만 프라하역의 아침은 Choi가 열받고 뒤집어질 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


시내에 있는 오페라극장.


시간이 남아 미리 프라하發 뮌헨行 쿠셋예약을 하기위해 역으로 나가 International 창구 앞에 줄을 서서
창구에 근무하는 아줌마의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살펴보니 뭐가 좀 이상하다.
명색이 국제선 티켓팅을 하는 곳인데 컴퓨터가 보이지않는다.

뿐만아니라 모든걸 수작업으로 처리하는데 먹지를 대고 볼펜으로 직접 수기를 한 후 스탬프를 앞뒤로 열심히 찍어댄다.
저거 완전 쌍팔년도 식인데 예약을 믿어도 되는거야 ?   어째 예약이 될거 같지가 않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미덥지 못하더라도 International 창구는 여기 뿐이니 기다려 볼 밖에...

우리 차례.  쿠셋예약을 부탁하니,
'No possible...' 하면서 뭐라고 한참을 얘기하는데, 내가 알아들은 단어는 'only' 한 단어 뿐이다. 
only ??   오로지 뭐가 어케 된다는게야...  Choi 에게 뭔말인지 알아들었냐고 물으니 한마디도 모르겠단다.
젠장...  나는 only 는 들었는데... 
진짜 only, only만 들었다.  들은건 오직 [오직]이라는 말뿐.

오직 한자리 밖에 없는건지...  오직 몇시간 전에만 예약이 가능하다는건지...  아님, 쿠셋이 아닌 좌석만 있다는건지...
하여간 우리가 뜻하는건 아닌거 같아 결국 예약 포기.

헝가리의 수준이 이 정도인지, 우리의 수준이 이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헝가리가 아직 고객이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닌거 같다.   





이미 언급했듯이, 부다페스트는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상점 음식점 등의 분위기에서 아직 경제적 부족이 느껴지지만,
헝가리는 빠른 성장이 가능할거라는 예감이 든다.

식당도 비교적 한산하면서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아니다.  조용하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음악은 경쾌하고 활기차다.  미래를 향한 가벼운 발걸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가끔씩 울리는 장엄한 헝가리풍 민속음악에는 이 민족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듯 하다. 

작은 듯 보이는 건물도 소박해 보이지만, 그 형식에는 전통이 보인다. 




1박2일의 짧은 겉핥기로 맛본 헝가리에 대한 미각은 담백함이었다.
:
두나江을 건너 시내중심부를 가로질러 시민공원으로 향했다.



시민공원 초입의 영웅광장에 폼나게 자리잡은 건국천년기념비.

꼭대기는 대천사 가브리엘이라는데, 가브리엘?? 
로마 [천사의 성]이 본토인줄 알았더니 거기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가끔 보이는걸 보면,
이 분의 명성이나 활동영역도 상상 이상인 모양이다.

하여간 가브리엘 대천사가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이슈트반에게 왕권을 부여하라고 로마교황에게 계시를 내리셨단다.
원기둥 하단의 기마상은 어부의 요새에 일곱 원뿔로 형상화된 일곱 마자르족의 족장들이라는데,
에구~~  우리 환인님과 환웅님, 그리고 우사 운사 풍백과 단군님의 형상은 어디 있나... 




영웅광장 옆에 있는 박물관. 
입구 위의 조각들과 선이 범상치않은데, 꼭대기 탑부의 벽돌 모자이크도 독특하다.
뾰족한 부분의 사람조형은 긴긴 세월을 어찌 견디는건지...  


시민공원 안쪽으로 들어가니 조명이 환한 곳이 있다.



아이스링크. 
외국에 나와 스케이트장을 보니 색다른데, 스케이팅을 지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야~~ 여긴 야간에도 이렇게 불을 켜놓고 오픈을 하는구나...  생각하고 시계를 보니 세시반.
정말 해가 많이 짧아졌다.


이건 또 뭐냐???



공원 중앙에 이렇게 고풍스러운 대형 돔건물이 보인다.
저것도 박물관인가 싶어 가까이 가보니...

 

저렇게 건물 앞 우물 같은 곳에서 김이 모락모락나고 있고, 주변 잔디는 눈이 녹아 있다.
알고보니 이 웅장한 건물이 온천목욕탕이다.

 

세체니 온천.

이 안에 유황온천과 사우나가 있다는데, 반드시 수영복을 착용해야 한단다.
우린 수영복도 없고, 빡빡한 일정 때문에 패스.  근데, 여길 그냥 지나치는건 정말 아쉽다. 

그나저나..  세상에...  이런 멋진 건물도  유럽에선 목욕탕이다.  우리나라 일제시대 총독부 수준인데...


영웅광장으로 돌아나오는데 좀전에 들어가며 본 건국천년기념비의 조명받은 모습이 더 멋지다.

  

겨우 오후 4시반이 조금 넘었음에도 여긴 이미 밤이다.
중앙탑 양쪽의 wing 부분을 좀더 자세히 보자.



좌우에 있는 인물은 헝가리 역사상 14인의 영웅이란다.
천년 역사 속 14인이라면  불멸의 영웅일텐데, 무엇을 한 어떤 분야의 위인들인지 궁금하다.
선정작업 만만치 않았겠다...  
:
부다왕궁을 보러 부다성으로 향했다.  근데, 여기서 생긴 에피소드랄까...  해프닝 하나.



성을 들어가는데, 성문 입구에 차단기가 있고 차량이 티켓을 뽑도록 되어있다.
나갈 때 그것으로 주차정산을 하는 모양인데, 그 옆을 지나다보니 누군가 보턴을 눌러놓고는
티켓을 안가져갔는지 티켓이 반쯤 나온 채로 걸려있다.

뭔지도 궁금하고, 또 얘네들은 어떤 형태로 만드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다가가서 티켓을 뽑아
내용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승용차 하나가 서더니 창문을 열고는 대뜸  'Can I help you?' 하는게 아닌가. 
도움 받을 일도 없지만 말 주고받는게 더 힘들거 같아  'No thanks.' 하니, 이노마가 하는 말이,
'그건 차량용이고 너는 티켓 없어도되니 그거 안뽑아도 된다.' 며 그냥 들어가란다.

나참...   어이상실.  @<@..
일마가 누굴 바지저고리로 아나...   그냥 웃으며 우리말로 그랬다. '나도 알아... 마~~~'

초이가  뭐라 하드냐고 묻길래 얘길해주니 '웃기는 놈들이네...' 하며 웃는다.

하긴... 그놈들은 또 지들끼리 이럴지도 모른다.
'야... 저 동양놈들은 어느나라에서 온 멍청인줄 모르겠지만, 저도 티켓을 뽑아야 들어가는줄 아는 모양이지...
 정말 별 멍청한 놈들 다 보겠네...  골 때린다 정말...'

어쩌면 내게 말을 건넨 녀석은 아는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얘기할지도 몰라.
'내가 전에 부다성 입구에서 이런 얼빵한 놈을 봤는데... ...' 하면서.  ㅋ~~ 




부다왕궁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한 재건과 파괴, 그리고 복구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13세기 중반에 처음 지어졌다고 하는데,
몽고의 습격으로 거의 파괴되었다가 15세기에 마차시1세에 의해 재건되었으나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다시 파괴되었고, 이후 17세기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또다시 막대한 손상을 입었으며 1950년에 재복구되었다고 하니,
거의 200년에 한번꼴로 수난을 당한 셈이다.

남의 나라를 치더라도 좋은건 좀 냅두지않고...
하긴 옛날 영화를 보면 점령군 군사들은 제일 먼저 집에 횃불부터 집어던지더라. 




현재 왕궁은 국립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이 건물은 미술관이라던가... 역사관이라던가...??




마차시샘.

부다페스트에서는 곳곳에서 [마차시]라는 이름을 만나게되는데,
마차시가 대체 누구길래...  궁금해서 알아본 그의 이력은 대충 이렇다.

마차시는 터키에 대항한 헝가리의 민족영웅 후냐디의 아들로서,
재위 중 터키 폴란드 보헤미아는 물론 당시 오스트리아의 막강한 합스부르크왕조까지 굴복시킨
한마디로 당대의 지역 짱이었다.

나폴리왕의 딸과 결혼하여 이탈리아 문화를 받아들이고, 포조니대학을 창설하여 학술진흥에도 힘썼으며,
헝가리 언어체계까지 정비한, 헝가리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역사상의 인물이란다.

그러고보니 마차시대왕은 우리나라의 세종대왕과 비슷한 면이 많다.
사이즈는 좀 차이가 나지만, 대마도와 함경도 6진 개척 등 당시의 변방 양아치들을 제압한 것이나,
집현전을 통해 학술진흥에 정진한 것이나, 불후의 한글을 제정한 것 등등...
그리고 우리도 [세종]이라는 명칭을 간간히 볼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세종재단.. 세종오케스트라... 등등.
근데, 동상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거야...??   


저 마차시샘에는 사연이 있다고 한다.
전쟁 중 적에게 쫒겨 사경을 헤매던 마차시대왕이 한 여인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살아나 사랑에 빠졌지만,
두 사람의 신분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여인은 자살을 했다는 슬픈 사랑의 이야기...
오른쪽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 여자란다.


세종대왕과 그게 차이가 나는구만. 
세종대왕님은 여자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셨던거 같은데...


 

이건 덜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제대로 복원을 안한 것인지,
아님, 질곡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놔둔 것인지...

어이구...  그래도 저게 5층이네...
저렇게 티나게 두들겨맞고도 버티고 있는걸 보면 대단히 단단한 놈인가보다. 
:


어부의 요새는 19세기 초 도나우강에 살던 어부들이 외적의 침입을 방어한 곳이라고 한다.
건축형태가 고딕과 로마네스크양식의 결합된 모습이다. 



어부의 요새에 둘러있는 원뿔형의 7탑은 헝가리를 건국한 일곱 마자르족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문득 스페인 세고비아의 알까사르성이 생각난다.

어휴~~  근데 왜 이렇게 추운거야...
이곳저곳 또 이것저것 카메라에 담아두고 싶은 영상은 많은데, 인간적으로 너무 춥다.
거짓말 같겠지만, 손이 시려워서 셔터 한번 누르기가 힘들다. 
발도 왜그리 시려운지 계속 동동거리게 되는데, 한곳에서 진득하니 렌즈 들이댈 생각이 전혀 안든다.  
그나마 겨울바람이라도 피해볼 요량으로 탑 안에 들어가서 한컷.  


 

어부의 요새 옆에 있는 마차시교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는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마차시도 온후경.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마차시도 따뜻한 다음에 구경이다.   추워~ 추워~~


유럽을 다니면서 계속 느끼는거지만, 유럽인들은 동상을 참 멋지게 만든다.
동상이라는게 본시 그 나라 역사상의 누군가를 추앙하며 후세에 귀감으로 삼겠다는게 목적이고,
그 정도의 대상이라면 그 행적이 범상치는 않았을거라는 기본인식이 유럽사람들에게는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삶의 가치에 걸맞는 무게감을 동상이라는 조형물로 담아내는 듯 하다. 



어부의 요새에 있는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성 이슈트반 기마상.

폼이 나잖아...  밑에 만백성도 머리를 조아리며 숭배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광개토대왕이나 장보고 등은 우리 역사에서는 드물게 국외로 활동영역을 넓힌 인물이 아닌가.
충분히 저 양반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보는데...




기념탑도 그렇다.  폼생폼사.
좌우간 유럽인들은 단순한건 안하느니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탑은 마차시교회 옆에 있는 삼위일체상인데, 오스트리아 그라벤거리에서 본 삼위일체상과 같이
페스트가 사라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유럽 각국에서 페스트에서의 자유를 기리며 이처럼 비슷한 형태의 삼위일체상을 만든 것을 보면,
당시 유럽은 종교에 의지하는 마음이 상당히 강했던 모양이다.
:
겔레르트언덕의 초입에 있는 동굴교회. (우리는 이것을 거꾸로 내려왔지만)
이름도 모르는 이 동굴교회를 좀 멀리서 보면 이렇다.

 

바깥에서 보면 완전 바위산인데, 저 안으로 들어서면 놀라움에 젖어들게 된다.




여기가 동굴교회 입구.

철문이 있는걸로 미루어 늘 개방을 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동굴교회 입구 앞에 있는 동상인데, 왜 이 곳에 고대 이집트풍의 동상이 있는지 궁금하다.
뭔가 연관성이 있음은 분명한거 같은데... 

말의 안장이 길게 드리워진 것을 보면 지체 높으신 분이 타시는 말인거 같구만.
그럼 저 옆에 있는 사람은...  행색이나 폼은 수행원인듯 한데, 품에 안고있는 것이 교회의 모형이다.
그렇다면 저 동상이 뜻하는 것이 뭘까???

상당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교회의 형상을 가지고 찾아왔다.
그게 이 동굴이다.  무엇을 유추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혹시... 이 동굴에 탄압받은 성인이 계셨던건 아닐까...???
은둔의 생활을 하거나, 아님, 암벽의 동굴 속에서 오랜 감금생활을 한건지도... 


안으로 들어가면 이런 모습들이 펼쳐진다.



그리고 생각보다 넓은 내부에 여러 용도의 공간이 신비롭게 구분되어 있다.





작은 미사실.

동굴 벽을 기조로한 내부 인테리어가 좁은 공간임에도 장엄함이 느껴진다.




내부에 있는 또 하나의 출입문.   이 안이 본당인 모양이다.




미사를 집전하는 곳이다.
동굴 천정에 설치된 조명도 이채롭지만, 폭이 좁은 동굴 속에서 이렇게 미사를 볼 수 있다니...  



미사를 위한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
하나 궁금한건, 찬송가를 부를 때 동굴 속이라 너무 울리지 않을까??  


동굴 안이 이렇게 정교하고 정밀할 줄이야...
어떻게 저 안을 저렇게 활용할 생각을 했을까...???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혼자 한참을 둘러보고 나오니, 한참 떨어진 밖에서 기다리던 초이가 좀 지루했나보다.

- 뭐 그렇게 오래 걸려?
> 야~~ 말도 마...   내부가 엄청나...  너 정말 아까운거 놓쳤다.

의외의 반응을 보인 초이.

- 에이... 거짓말 말아요.  괜히 나 약오르라고 그러는거지..??
> @>@...  허~~ 참...


     

오전에 돌아본 곳이 저 안에 다 있다.

사실 좌측 도로에서 동굴교회를 보며 올라갔어야 했는데, 우리는 반대로 우측 끝으로 올라가
치타델라 요새를 거쳐 능선을 타고 동굴교회 방면으로 내려온 것이다.


치타델라 요새에 우뚝선 해방기념 동상이 크긴 크구나...  
:
오늘은 행로가 좀 번거롭다.
눈 오는 날 약간의 산행을 해야한다. 
겔레르트언덕에 있는 치타델라요새를 찾아가야 하는데, 지도를 보니 대중교통 수단이 있기는한데
우리 숙소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정류장까지 가는 방향이 목적지와 반대다.
반대로 걸어가서 버스를 타고 다시 오느니 차라리 직접 걸어가는게 나을거 같다.




큰길로 나가는 골목을 도는데,  이건 또 뭐하는데냐??? 
거참...  예사롭지않은 건물이 보인다.  입구의 생김새도 그렇고...
궁금하긴한데, 이게 뭔지 알아볼만큼 한가하지가 않다.  그냥 이런 희한한게 있네... 하고 가자.


겔레르트 언덕치타델라(Citadella)요새에 오르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아무래도 우리가 길을 잘못 잡은거 같다. 
여기가 그렇게 외진 곳이 아닌거 같은데,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호젓한 언덕길만 걸었다.
하지만, 눈도 오는데 어찌보면 매번 보는 - 입구에 대충 기념품상회 같은 상가가 있고, 편의점이나 스낵코너 같은 -
뻔한 모습을 보느니 가벼운 트래킹을 하는 것도 괜찮지.

치타델라 요새는 일반적인 요새와는 좀 특이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대개 요새라 하면, 전투시 적의 공격으로부터 필사적으로 사수해야하는 아군의 전략적 요충지로
결코 공략하기 힘든 지형이나 구조를 그 특징으로 하는데, 치타델라는 요새의 생성부터가 좀 반대다.

헝가리가 적으로부터의 방어를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가 헝가리의 독립운동을 진압한 후, 헝가리 국민을 감시하기 위해 건설하였단다.
40년쯤 후 오스트리아 군대가 철수한 뒤에는 이번엔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이 점령하여 방공호로 사용되었다니,
그러니까 이 요새는 남의 나라가 건설하여 남 좋은 일만 시킨 것이다.

방공호로 사용된 이력 때문인지 이 요새의 성벽 곳곳에 포격과 탄흔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정상에 오르니 커다란 동상이 하나 우뚝 서있다.



해방기념 동상.

1945년 소련이 나치독일로 부터 헝가리를 독립시켜준 기념으로 세운 동상이라는데,
헝가리 국민이 야자수 잎을 들고 독립을 기뻐하는 모습이다.

근데, 결국 이것 역시 결코 독립도 아니었고, 기뻐할 일도 아니었잖아... 

우측에 저 꼽사리 낀 애는 뭐야???




치타델라 요새에서 바라본 두나江.

두나강은 오스트리아의 도나우강 보다 훨씬 멋스럽게 보이는데, 실은 두나도나우나 다 같은 강이다.
알프스 북부에서 발원하여 독일의 빈에서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등 유럽의 여러 나라를 거쳐 흑해로 흘러드는
긴 강인데, 여러나라를 거치다보니 같은 강임에도 각국에서 부르는 명칭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우리에게 익숙한 다뉴브강도 도나우강의 영어이름이다.   헷갈려...


치타델라 요새에서 능선을 따라 거의 큰길까지 내려와서 생각지도 않은 것을 보게된다.

길을 따라 거의 내려왔는데, 우측 능선 위로 동굴 같은게 보인다.

- 저건 뭐지??    한번 들러보자.
> 무슨 방공호 같은데 폐쇄된거 같으니 그냥 가요.

하지만, 이 호기심을 누가 말리나.

- 그래도 얼마 안 머니 잠깐 가보자..
> 아~  다리 아프고 힘들어.  나 여기서 담배 한대 피고 기다릴테니 형 갔다와. 



그래서 혼자 이 곳에 들렀는데...

초이...너 정말 후회할 결정 했다.
아니, 보지도 못했으니 좋은 걸 몰라 초이가 후회할 일은 아닌거 같고,
그냥 갔으면 내가 정말 아쉬울 뻔 했다.
:
[ 2001. 12. 12.  Wed ]




아침부터 눈이 계속 내린다.
미끄럼을 조심해야지...  괜히 말년에 피곤해진다.


헝가리는 생각보다 문화도시인거 같다.  곳곳에 문화유산이 넘친다.  중세의 것을 잘 보존하고 있다.
헝가리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라고 하던데, 그럼에도 곳곳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많다.

하긴... 여지껏 유럽에서 넘치도록 보았던게 모두 문화유산이니 새삼스러울거도 없지만,
그래도 볼 때마다 늘 새롭게 와닿는다.



눈이 내리는 겨울이라 그런 느낌을 받는건지, 구 공산주의 체제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Budapest는 회색도시의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데, 한편으로는 아직 낮은 경제수준도 느껴진다.
단편적인 것만으로 경제의 수준을 논할 수는 없지만, 지하철 화장실의 두루마리 화장지도 예전에 우리가 사용하던
재생휴지가 걸려 있고, 수세식 변기도 벽 위의 줄을 잡아당기는 재래식 양변기다.

거리의 상점도 어딘지 쓸쓸해 보인다.
언급했듯이 진열되어 있는 상품도 화려해보이지 않고, 무엇보다 승용차가 노후된게 많다.
모델도 구형모델이 많이 눈에 뜨인다.




[마챠시성당]

왕궁이나 교회는 유럽답게 웅장함이 보이는데, 가만... 공산주의체제 시절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었나? 
  
물가는 무지하게 싸다.
지하철 요금이 우리나라보다 싼데는 처음이다.  100 ft 이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470원 정도.
어제 저녁을 둘이 양껏 먹었는데도 5300ft.  4.76배니까 두사람 배불리 먹고 약 2500원.  여행할 맛 난다.
반면에 희한하게도 코카콜라 값은 다른데와 비슷하다.  서구물품이라 그런가..??




모스크바광장 앞의 건물.

유럽을 다니며 공통적으로 와닿는 것은, 이들은 오래된 왕궁이나 건물들을 결코 그냥 덩그러니
빈 상태로 놔두지 않는다는거다.
박물관으로 쓰던, 기념관으로 쓰던, 아님, 상가나 사무실 등 어떤 용도로라도 횔용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유지관리가 잘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지나는 사람들을 보니, 헝가리 여자들은 다른 나라 여자들에 비해 유난히 모자를 많이 쓰고 다닌다.
이렇게 자주 내리는 눈 때문인가...   모자의 형태도 여러 유형인데, 나름대로 다 멋이 있다. 
:
어~~  노루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하얀 대지 위를 띄엄띄엄 노루들이 수놓고 있다.
한마리씩 가끔 보이는 걸로 미루어 민가에서 방목하여 기르는거 같지는 않고, 야생노루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이런 철도변에 노루가 서식하진 않을테고, 아마 먹을게 없어 내려온거 같은데,
본연의 목적을 잊은 채 지나가는 열차에 눈을 맞추고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쟤는 오늘 일용할 양식은 구한건지...

여긴 아까 국경지역보다 눈이 더 많이 온거 같다.
지금도 오고있는데, 지나는 마을의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이 눈에 뒤덮혀 형체가 안보일 정도다.

마을을 지나 야산을 지나는 듯 하더니, 벌판을 가로질러 다시 삼림이 우거진다.
나무들이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아름답다.
여긴 온 세상이 완전히 눈 천지다.  그리고 그 눈 천지에 나무가지에 소담스럽게 내려앉은 눈으로 눈꽃이 피었다.
마치 봄날 매화나무에 매화가 만발한 것 같다.

잠시 기차를 세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렇게 멋지고 기가막힌 끝이 없는 설경을 감상하게 될 줄이야.
이 풍광만으로도 헝가리 여행은 족할거 같다.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안에서 자기와는 얘기도 안하고 여행기록만 챙기고 있으니
초이가 심심했던 모양이다. 



헝가리 수도인 Budapest 에서의 숙소인 Fortuna Hotel 은 원래 호텔이었는데,
영업이 안되어 Youth Hostel 스타일로 바꾼거 같다.
투숙객이 없어 넓은 방을 받았는데,방 규모로 봐서는 꽤나 고급 방이었던 듯 하다.
지금은 침대를 네개나 배치했는데, 이 방을 초이와 둘이 사용한다.

프론트에 있는 여자는 뭐가 뒤틀렸는지 처음부터 계속 무뚝뚝하다.  뭐.. 안좋은 일이 있나...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2~3일전 우리 대통령이 부다페스트를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맞느냐?' 고 물으니,
'Yes.' 한마디 하고는 끝이다.

얘네들은 고객만족, 친절서비스라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구나...

호텔의 그런 썰렁함이 헝가리의 경제현황을 설명하는 듯 하다.
짐을 풀고 주변을 걸으며 아이쇼핑을 하는데, 쇼윈도우에 진열된 상품들이 우리 기준으로는 유행이 좀 지난 듯한  
올드패션의 느낌이 난다.  그나마 디스플레이된 모습도 어딘가 어색하고 세련된 맛이 없다.
게다가, 크리스마스가 불과 보름 앞인데도 쇼윈도우에 시선을 주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전반적으로 거리의 느낌이 활기가 없이 스산하다.

근데, 여기에도 중국식당은 보인다.  프론트에서 들은 바로는 평양식당도 있다고 하던데...


어제 Wien의 숙소에서 만났던, (배낭을 분실했다는) 침낭 딸랑 청년을 우연히 역에서 만났다.
자기는 베네치아로 가는데, 헝가리를 들리는게 목적이라 잠시 내렸단다.
사진만 찍고는 바로 베네치아로 간다면서 일회용 사진기를 건네며 사진좀 찍어달란다.
이미 어둠이 내린 거리를 배경으로 사진한장 딸라 찍고는 헝가리여행 끝이라는데... 
심하다..   우리보다 더한 친구구만.
근데, 이 어둠의 거리를 저 플래쉬도 안 터지는 일회용 카메라로 찍으면, 나중에 헝가리 흔적이 보일까??

침낭하나 딸랑 들고 버티는 것만으로도 이 친구의 면모를 알 수 있었지만, 이 친구가 정말 재밌는 친구다.

사진을 찍어주니 고맙다며 베네치아行 티켓을 사러 간다던 사람이 조금 지나니 우리에게 다시 온다.
매표소에 가니 이 역에는 베네치아 가는 기차가 없다는거 같다며, 베네치아 가는 역을 몰라 어쩔줄을 모른다. 
그러니 우리보고 어쩌라고...???   
계속 안절부절하며 서성대길래, 지나는 사람에게 물어 전철을 타고 다른 역으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거 같은데 왜 그래..

고맙다며 가던 친구가 다시 돌아온다. 그러더니 무척 민망한 표정으로 한마디.
'저... 아저씨 죄송한대요.  제가 헝가리는 잠시 거쳐가려고 환전을 하지않았는데, 지하철 표를 사려니...
 그렇다고 작은 돈은 환전이 안될거 같고, 죄송하지만 헝가리 돈 환전하셨으면 2불 정도만 바꿔주시면 안되요??'

으이그~~~  내가 미쳐...  

굳이 2달러를 건네주려는 청년에게 됐다며 지하철표를 사서 건네주니, 아저씨들 못만났으면 큰일날뻔 했다며
연신 고맙다며 달려간다.

무슨 여행을 저렇게 하냐??  멀어지는 그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초이와 둘이 한참을 웃었다.

그나저나 너 임마...  앞으로도 큰일 몇번 날거 같다.


헝가리의 식당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녁을 먹으러 들어가 발견한 메뉴.



굴라쉬스프.

요게 언뜻보면 한국의 레스토랑이나 부페에서 볼 수 있는 야채스프 같은데, 그보다 훨씬 농밀도가 진하고 매콤하다.
마치 육개장 같다고나 할까.  안에 고기도 무척 연하고 국물색깔도 실제로는 사진보다 완전 육개장이다.
:

짧은 시간의 만남이지만 오스트리아인은 여지껏 본 유럽인 중 가장 소탈하고 순박한 느낌이 전해진다.
길을 물어도 참 친절하게 알려준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잘 가르쳐주지만 표정에서 와닿는 느낌이 다르다.
운좋게도 그런 사람들만 걸린건가...

또 나라 자체도 깨끗한 느낌을 주고, 시골풍경도 우리와 정취가 비슷하다.


오던 길을 되돌아 Wien으로 돌아왔다.


오스트리아의 국회의사당.

우리나라 국회가 여의도에 울타리까지 쳐놓고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여기 국회는 저렇게 대로변에 있다.   그래도 할 일은 다 하겠지...




비엔나대학을 보는 순간 갑자기 옛 동숭동의 서울대학교가 생각났다.
왜 그랬을까...


Wien역에서 14:33분 기차를 타기 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역내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열차시각까지 시간이 없어 조금 다급한 마음에 웨이트리스를 부르니, 다른 손님 서빙 중이니 기다리란다. 
이런 곳이 유럽이다.  드라이함과 간결한 쿨함이 묘하게 공존하는 곳.

이제 아쉬움을 안고 헝가리로 향한다.


헝가리를 향해 달리는 기차의 차창 밖 풍경이 시간이 흘러 헝가리쪽으로 다가갈수록 하얘지는데,
쌓인 눈의 높이도 점점 달라진다.  계속 이어지는 밭에 눈이 점점 쌓이니 어느덧 雪國이 펼쳐지고 있다.
오랫만에 보는 雪景이다.  꾸준히 내리는 눈으로 차창 양 옆이 온통 하얗다.

몸은 나른한데 마음은 푸근해지며 머리 속이 맑아지는 이런 기분을 남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집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한달만에 훌쩍 떠나온 내 결단에 만족스런 미소가 번진다.
아울러, 그런 나의 행동을 군소리 한마디 안하고 지지해준 집사람에게도 고맙다.
서울의 우리집 가장은 지금쯤 출근을 하겠구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국경지대 역에 도착하니 군복을 입고 무장을 한 군인들이 왔다갔다 한다.
여지껏 역에서 군인의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어쩐지 이상하다.
첩보영화의 한 장면 속에 우리가 끼어있는 듯한 스릴감을 맛보고 있는데
일군의 무장한 군인들이 올라오더니 여권검사를 하고 내린다.
그리고 열차가 출발을 하는데, 아까와는 다른 패션의 군인들이 또 여권 제시를 요구한다.
아까는 오스트리아 군인이고, 이번엔 헝가리 군인이다.

여지껏 국경을 넘나들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가... 
암튼.. 야들 겁주네...
:

[ 2001. 12. 11.  Tue ]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온다. 
그 눈이 하루 종일 제법 많이 온다.  첫눈을 오스트리아 Wien에서 맞은 것이다.

오늘 일정은 유럽 최대의 지하호수라는 Seegrotte를 보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이국에서 맞는 첫눈의 상큼한 느낌과 함께 필라델피아부뤼케역에서 뫠들링으로 향했다.
뫠들링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이 버스를 타는 데 엄청나게 헤매며 고생을 한다.

서울에서 미리 살펴본 유럽 안내책자에는 Seegrotte를 지그로테로 표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발음 때문에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게 될 줄이야...

뫠들링역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지그로테로 가는 버스를 물으니 아무도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들, 대기 중인 버스의 기사 등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릴 뿐 반응이 신통찮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지그로테로 가는 버스 노선을 모르는 게 아니라 [지그로테]라는 지명을 모르는 듯한 반응이다.

엥~~ @>@...  발음이 잘못 됐나?? 
이런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안내 책자를 들고 나오거나 지명을 원어로 적어오는 건데... 실수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제 [지그로테]와 비슷하게 발음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초이와 나의 입을 통해 쉼없이 튀어 나온다.

그로테.. 지로테...  지그테...  지그로... 엑센트를 각 음절별로 주는 것 부터 시작하여,
제그로테, 지에그로테,  세그로테, 시그로테 등 [z]로 예상되는 앞글자의 변형과 모음의 변화도 시도해보고,
지그로트, 제그로트, 세그로트, 시그로트 등 끝에 붙을 거로 추정되는 [e]의 묵음화도 도모해 보고...
지로테, 시로테, 제로트, 시로트 등 앞에 시도한 온갖 변형에 [g]의 묵음화까지...
게다가 각각에 대해 엑센트를 따로 한 것은 물론.

이러기를 20여분...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그리고 슬슬 초조해진다.
이 정도 읊어댔으면 비슷한 거 하나쯤은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냐?? 
해도 너무하네 정말...  이러다 못 가는 거 아냐..??

마음이 낙담 쪽으로 기우니 몸도 지쳐 간다.  
지쳐 가는 목소리로 지그테...  운운하는데, 한 사람이 반응을 보인다.  어~~~??
우리에게 '지**테?' 하고 되물으며 그 지명을 아는 듯한 표정을 짓는데, 뭐라 발음한 건지... 
다시 물어보니 지그오테 비슷하기도 하고, 지고오테 라고 하는거 같기도 한데, 이게 참 묘하다.

몇번 들으니 지그오테지그호테의 중간,
그러니까 [오]와 [호]의 중간쯤에서 [ㅎ]을 목구멍 뒤로 슬쩍 삼키는 듯한 비음 소리가 나는데,
한글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애매하지만, [ㅎ]이 살짝 들락날락 하니까 여기서는 [지그호테]라고 하고싶다.

이거... 내가 음문학 탐사를 나온 것도 아니고...
하지만 생각해 보니 외국인이 [언둔포]라고 묻는다면, 영등포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이렇게 버스를 타고 20여분 거리의 HinterbUhl 에서 내리니 한적한 우측 큰길에 [Seegrotte] 입구가 보인다.
근데 HinterbUhl 은 뭐라고 읽는 거야?? (여기서 U는 독일어 알파벳의 u 움라이트를 의미)    힌터뷜인가...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독일군의 요새 [Seegrotte].   눈이 많이 내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 이 곳 지하에서 비행기 부품을 생산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넓고 크기에 이 속에 부품 생산기지가 있다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저 입구의 오른 쪽에 매표소를 겸한 매점이 있다.  입구 왼쪽은 기념품점.
그 곳에서 입장권을 사면 되는데, 입장권을 사더라도 임의로 들어갈 수는 없다.
보트를 타고 지하호수를 둘러보는 관광 특성상 이미 들어가 관람 중인 관광객의 일부가 나와야 입장이 가능하다.

출입구로 입장을 하면 가이드가 나와 동굴에 대한 전체적인 내력과 관람 절차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레일을 이용해 탄광촌의 객차와 같은 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상상보다 거대한 지하공간이 펼쳐지는데,
부분부분 사진 촬영에 제한을 받아 모든 곳을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원래는 광산이었던 곳을 나치독일이 더 깊히 파들어가 2000명 정도가 일을 하는 비행기부품 생산기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둘러본 Seegrotte의 지하호수.
동굴내부에는 저런 작은 수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가끔 암벽에 정박되어 있는 작은 보트들이 보인다.
아마도 당시에 생산기지간 자재 수송에 쓰이지 않았나 싶다.




배를 타고 도는 동안 암벽사이에 뻥 뚫린 구멍들을 자주 보게된다.
저 건너 편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인데, 에이... 사진이 꽝이다. 받쳐주질 못하네...  자동카메라의 한계.

투어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굴이 굉장히 깊고 넓어 일단 그 안에 혼자서 잘못 들어가면 빠져 나오기가 힘들 거 같다.

우리도 강원도 환선굴 등 한 굴 한다는 동굴도 있고 호수동굴도 있지만,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없는 걸로 아는데, 
남북통일만 되면 우리도 엄청난 게 많을 걸...   북한 애들이 또 굴.. 하면 한가닥 하잖아.
개네들이 파놓은 거 만만치 않을텐데, 그거 관광자원화 하면 덕분에 후손들이 덕좀 보겠다.

나치독일이 자국민 고생시키지 않고 남의 나라 사람들 인건비도 없이 날로 부려 먹으려고 오스트리아에 이걸 만들었겠지만,
어찌됐던 고생한 선조들 덕에 후손들이 관광수입을 얻고 있으니,  조상을 잘 둔거야...? 잘 못 둔거야...??

어찌됐던 고생하며 찾아온 보람은 있는 거 같네.

 

:

금강산도 식후경.
다 먹자고 하는 일인데...
이런 표현이 아니더라도, 추운데 객지나와서 굶으면서 다닐 수는 없지. 
관광에 몰입하고 탄력을 받으면 먹는 시간도 아깝고 배고픈줄도 모르는데,  
날이 추운데 시장끼가 느껴지니 안먹으면 괜히 서글플거 같다.

유스호스텔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메뉴를 보니 'Schnitzel' 이란게 있는데, 앞에 붙는 접두사가 여럿이다.
마치 우리의 불고기덮밥, 유부덮밥... 하는 식이다.   뭐가뭔지 알 수가 없으니 셋이서 골고루 하나씩 주문.



이런 식이다.
밥까지 주는거, 샐러드가 강조된거, 딸랑 고기만 나오는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Wiemer Schnitzel' 이 가장 익숙할거 같다.  돈까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저녁을 먹고 Y.H에 들어와 언뜻 TV를 보니 축구화면이 나오는데, 빨간 상의와 푸른색 하의가 보인다. 
'야~~ 여기도 우리와 비슷한 유니폼을 입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화면이 클로즈업 되면서
낯익는 얼굴이 보이는데 히딩크감독 얼굴이 보인다.

TV를 보고있던 사람에게 '우리 팀이다.' 그랬더니, '한국이냐?' 고 물으며 미국과 경기를 했단다.
어디가 이겼느냐고 물으니, 그건 자기도 모르겠다고. 
오스트리아 Wien에서 히딩크 얼굴을 보니 그것도 반갑네... 


숙소에 들어오니 우리 방에 새로운 여행객이 들었다.  뜻밖에도 한국청년이다.
나폴리에 이어 한방에서 한국청년과 함께 하는게 두번째인데, 이 친구... 행색이 좀 특이하다.
소지품이 치솔과 치약을 담은 비닐봉투와 침낭 뿐이다.  배낭도 없고 침낭만 들고 다니는 여행이라니...

사연을 들어보니 브뤼셀역에서 한시간 정도 깜빡 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배낭이 없더란다.
잠이 든 사이에 누군가가 배낭을 집어간 것이다.  그래서 침낭 하나만 남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나온 여행 초기에 당한 일이니 얼마나 황당하고 답답하겠는가.

여행다니며 시계, 카메라 등을 잃어버렸다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태리 로마노광장이 어떻고, 스페인이 어떻고... 또 쿠셋안에서 어쩌고 그런다.
왜들 그리 당할까??     우린 운이 좋은건지...  아님, 우리가 그렇게 없어보이나???

그런데, 이 친구가 행동과 생각이 좀 특이하다.
갈아입을게 전혀 없어, 숙소에 들어오면 남들이 다 잠든 후에 샤워를 하고 속옷과 양말을 빨아
방안의 스팀 위에 널어놓고 알몸으로 침낭에 들어가 잔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남들이 방을 비웠을 때 일어나 밤새 마른 속옷을 입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물어보니 신용카드는 가지고 있던데, 그 상황이라면 작은 배낭이라도 장만해서
일단 꼭 필요한 필수품은 구매를 해야하는거 아닌가...  
더구나 여행일정이 아직 많이 남았던데.

여러모로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
Wien 할머니들을 조심하자.

쉔부른궁전을 가기 위해 지나가는 할머니에게 지하철 역을 물으니, 쭉 5분만 가면 있단다.
'할머니 걸음으로 5분이면 2~3분이면 되겠네' 생각하며 걸어가는데, 왠걸... 15분쯤을 가니 나타난다.
그때만 해도 '그 할머니 이상한 할머니네...  우리가 잘못 알아들었나...??' 그랬다.

쉔부른궁전을 들어갈 때는 정문으로 들어갔지만, 글로리에테 옆에 후문이 있어 나올 때는 후문으로 나왔다.
그러니 방향감각이 또 흐트러진다.  마침 할머니 한분이 지나가길래 다시 지하철 역을 물었다.
곧장 가다 왼쪽으로 꺾어지란다. 

일러준 길을 따라 한참을 가고있는데, 웬 할머니가 불쑥 우리를 지나 앞서 나간다. 
보니 아까 우리에게 길을 알려준 그 할머니가 맞는데,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우리와의 격차가 점점 벌어진다.
'어~~ ~~ !' 하며 할머니를 쫒아가는데 엄청나게 정신없이 빨리 걷지않으면 따라잡기가 힘들다.
무슨 노인네 걸음이 저리도 빨라???   할머니 맞아???  
저 할머니 걸음속도를 보니 올때 지하철 역까지 5분 걸린다는 그 할머니 말이 맞는 말인거 같다.

경공술들을 익혔는지...   
아마도 추운 지방의 사람들이라 빠른 걸음, 빠른 동작이 몸에 밴 모양이다.  


지하철 얘기가 나왔으니, 지하철에 관한 이야기 하나.  

이곳 Wien에서는 지하철 수익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여지껏 지나온 유럽 대부분의 도시가 열차나 지하철, 트램, 버스 등 모든 대중교통수단의 티켓검사가 자유로왔지만
여긴 특히 더한거 같다.  티켓을 검표대에 꽂아 체크하고 다니는걸 거의 못 본다. 
우리도 몇번을 공짜로 무임승차를 했다.  일단 티켓 한장을 끊고 체크는 안하면서 계속 사용하다
걸리면 몰랐다고 우기자는 것이 우리의 뻔한 술책이다.  읽을 줄도 모르고 말도 모르는 사람 붙잡고 오래 끌겠나...

무임승차하다 걸리면 벌금이 엄청 나다는데, 얘들은 그런거 확인을 어떻게 하나??  대부분 그냥 다니는거 같던데...  
유럽을 다니며 티켓검사를 나폴리 버스에서 딱 한번 했다.
사실 그때도 무임승차를 하려다 왠지 기분이 이상해 표를 샀는데, 하마터면 개망신 당할 뻔 했지... ^^


Venezia에서 부터 쌀쌀해지던 날씨가 Swiss를 지나며 이제 완전히 춥다. 
분수들이 얼어붙을 정도니...   날이 추워지고 해도 점점 짧아지니 투어 효율이 뚝 떨어진다.
오후 4시가 넘으면 벌써 어두워지고, 기온이 떨어져 추위가 제법 심하게 느껴지니
제대로 뭘 살펴보기가 귀찮아진다.  여행도 집중력이 필요한데, 온도계만큼 집중력도 떨어지고 있다. 

대충 보고 빨랑 들어가자.  우리도 걸음이 빨라진다.



국립극장.  오스트리아 Wien의 국립극장이면 대단한 곳 아닌가...
왠지 요한 스트라우스의 경쾌한 왈츠 선율이 울려퍼지는듯 하다.
왈츠...  그거 몸치인 내가 그나마 제일 자신있어하던 춤인데... ㅋ~~




그리스에나 있을 법한 이런건 여기 왜 이렇게 버젓이 있는지 모르겠다.
관리를 안하는건지, 고풍스러우라고 일부러 놔두는건지...




시청이라는데...   성당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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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벤과 케른트너거리를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걷다보니 도심을 빠져 나오게 된다.
그리고 보이는 江.  서울의 한강과 같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도나우강이다. 



푸른 도나우강의 월츠...
이런 낭만을 기대하고 찾은 도나우강은 매우 평범한 강이다.  물도 상당히 탁하고...   
설레임을 안고 한국에서 찾아온 배낭족에게 도나우강은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Luzern의 맑고 투명한 강물이 생각난다.


지하철을 타고 다음 목적지인 쉔부른궁전으로 향했다.

합스부르크왕가의 여름궁전이라는 쉔부른궁전은 입구부터 이 궁전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왕의 상징인 독수리상이 올려진 하얀 기둥을 양 옆으로 세운 정문을 지나니 거대한 궁전이 모습을 보인다.



저 큰 궁전의 수 많은 창문들...  저게 다 방이라는 얘긴데, 그 시절에 저 많은 방들은 대체 무슨 용도로 쓰였을까?

빈( Wien) 시내에 구왕궁에 신왕궁까지 있었으니 저곳에 새로운 정부조직이 있을 이유도 없고,
기록에 의하면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인 마리아 앙뜨와네뜨가 15세 까지 이 곳에서 살았다는데,
저 많은 방들을 침실이나 거실, 혹은 집무실로 사용했을 리도 없고, 연회장을 만들고,
시종장의 비서에 비서, 궁녀들을 포함한 식솔들이 하나씩 차지한다 해도... 
아이구~~  누가 어디있는지 찾아 다니는 것도 일이겠다.




쉔부른궁전 뒤 편 광장같이 넓은 쉔부른정원 끝의 분수와 분수 뒤에 보이는 글로리에테.

사진 오른 쪽 끝의 초이가 그 장대함에 넋을 잃고있다.



[쉔부른]의 의미가 [아름다운 분수]라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분수의 아름다움을 볼 수가 없어 아쉽지만 그 자태 만으로도 아름답다.




그리스 신전의 느낌을 주는 글로리에테.

女帝 마리아 테레지아가 프로이센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고 전쟁 전몰자의 넋을 기리기 위해 1757년에 세웠다는데,
어린 딸을 위한 쉔부른궁전과 이것만 보더라도 여자가 엄청 스케일이 컸나보다.

사실 이 정도면 둘 중의 하나다.  스케일이 크거나, 아님, 엄청 허영심이 많거나...
하지만 허영심만으로 거대 제국을 융성하게 통치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고,
그녀의 동상을 보더라도 추앙받을만한 리더십이 있었음은 분명한 거 같다.

겨울이라 물이 얼은 커다란 연못을 두고있는 글로리에테는 지금은 카페로 이용되고 있으며, 공연도 하는 모양이다.
오후 4시가 채 안됐음에도 벌써 조명을 받은 모습에서 전성기의 영광이 보이는 듯 하다.




글로리에테에서 내려다본 쉔부른정원.

이 궁전 안에 동물원도 있고 온실도 있다는데, 동물원은 저 정원 왼 편에 있는 거 같다.
하지만 해가 짧아 돌아볼 시간이 없어 패스.  

쉔부른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궁전을 모델로 하여 17년 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만들었다고 하는데,
1994년도에 본 베르사이유궁전의 정원에 비하여 전혀 손색이 없는 것 같다. 
입구에서 받은 팜플렛의 사진을 보니 곳곳에 꽃들이 만발한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아마 봄이나 여름의 모습인거 같은데, 겨울이라 좀 썰렁하긴 하지만 반면에 웅장한 맛이 있다.



작년 12월에 중단됐던 유럽배낭여행기.
내가 무슨 성가족성당을 짓는 것도 아니고, 2001년에 다녀온 여행기를 7년이 지나도록 완결을 못짓고 있다.
작년 12월 갑자기 글쓰기가 귀찮아지면서 여행기를 올리는 거조차 짜증이 나 중단하고 말았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뭔가가 계속 찜찜하다.  마치 화장실에 들어가 정리를 못하고 나온 것만 같은...

문득 그때 여행수첩을 다시 집어드니 스스로 죄의식이 느껴진다.
이제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독일이 남았는데 어떻게든 마무리를 해야할거 아닌가...
하지만, 그 자체도 양이 많아 생각만으로도 지치는 거 같고, 그렇다고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긴 싫고...
에이~~~  왜 이건 시작해 가지고...  여행을 다닐 때 마다 메모하는 습관이 이럴 땐 지겹다.

어쨌든 매듭을 짓자.  
모르는 분들은 아마 내가 최근 여행을 다녀온 걸로 생각하실텐데,
사기를 치는거 같아 죄송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다.

이미 7년전의 이야기라 정보로서의 가치도 전혀 없는 것이지만,
내 생활의 묵은 기록을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다시 이어 본다.
금년 안에 끝낼 수 있으려나...   쉬엄쉬엄 느긋하게 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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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벤거리는 서울의 명동과 비슷한거 같다.
한때는 수도의 최고 중심가였으나 지금은 보행자 전용도로로 카페와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그라벤거리의 복판에 있는 이 탑.
뭔지는 모르겠지만 첫눈에 범상치 않은 모습에 뭔가 사연이 있을 걸로 생각해 무직정 카메라에 담았는데,
흑사병이라 불리는 페스트 기념탑이란다.  당시 유럽에 창궐하던 공포의 페스트가 사라진 기념으로 세웠다고.


 

그라벤거리에서 케른트너거리로 빠지는 중간에 있는 슈테판성당.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이라는 슈테판성당은 그 규모나 웅대함이 스페인의 성가족성당 못지 않다
.
오랜 역사를 상징하듯
 외벽이 검은 빛을 띄고 있는데, 기둥마다 성인과 동물들의 조각되어 있으며,
슈테판성당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지붕은 청색과 금색 벽돌 250만 개로 씌워져 있다는데,
그 숫자가 정말인지는 시간이 없어 세어보지 못해
 장담을 못 한다.  그냥 그렇다고 들었다.


Wien의 중심가인 케른트너거리는 예술의 거리다.
길을 걷다보니 바닥에 밟히는 게 있다.



모짜르트, 왈츠의 아버지라는 요한 스트라우스, 하이든... 
이 외에도 많은 예술가의 사인이 각인된 동판이 처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흥미를 돋군다.


아침에 역에서 만난 상우.
유스호스텔에 짐을 풀고 나오는데, '저... 저 오늘 아저씨들 하고 같이 다녀도 돼요?'
대놓고 그러는데 뭐라 그러겠는가.  안된다고 그럴 수도 없지만, 또 굳이 안될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 친구가 또 혹이다.  한참을 가다보면 상우가 안 보인다. 
우리는 빨리 걸으며 불필요한 것은 지나치고 요점만 보는데 익숙한데, 상우는 온 동네를 다 기웃거린다. 
그러니, 안 보인다고 그냥 우리끼리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안 그러면 상우가 우리를 찾느라고 이동을 못 할텐데...
가다 안 보이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또 가다 안 보이면 기다리고...  젊은 친구가 왜 이렇게 걸음이 느려...
한참을 기다려도 안 오면 거꾸로 찾으러 다닌다. '죄송해요.. 필름을 사느라...' 그러며 상점에서 나온다.

느긋한 성격에 동작이 조금 느려서 그렇지, 그래도 심성은 요즘 젊은 아이들 답지 않게 예의바르고 싹싹하다.
저녁을 먹고 계산을 하는데, 우리 몫만 낸다는 것도 남사스러워 상우 식사비까지 함께 계산을 하려하자,
극구 만류를 한다. 외국에서 젊은 사람 만나 반가워서 밥한끼 사고 싶어서 그렀다는 데도,
'그럼 제가 불편해서 같이 못 다녀요.' 하며, 끝까지 자기 몫을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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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아한 기품과 낭만적 분위기가 감도는  모짜르트 동상.

유럽 음악의 중심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수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했지만,
또 유럽의 날고긴다는 중세 음악가들치고 오스트리아를 거치지않은 사람도 드물거같다.

수많은 음악 거성 중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로 부터 가장 사랑받는 음악가 중의 하나인 모짜르트의 동상에는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꽃다발이 아직도 끊이지가 않는단다.   근데... 지금은 없네...
재미있는건 이 동상의 앞 잔디 가운데는 모짜르트에 대한 추모의 의미인지 붉은 꽃들로 조경된 [높은음자리]표가 있다.
(분명히 그 사진도 찍은거 같은데 왜 없을까...???)




합스부르크 공국의 여제였던 [마리아 테레지아] 女帝의 동상.
4명의 기마무사들이 호위를 하고 있는데, 기둥에는 모짜르트와 하이든 등 음악가들의 부조가 있다.
女帝의 고상한 면모를 보여주기 위함인지, 혹은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음악가들로부터도 존경을 받는다는,
위정자의 정치선전용 의도인지 알 수가 없다.
 
어찌됐던, 전에도 얘기했지만, 유럽사람들...  동상 하나는 끝내주게 만든다.




Wien에는 오스트리아가 한때 유럽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합스부르크제국의 주역이었다는 명성을 입증하듯
문화 예술 체육 등 다양한 방면의 흔적들이 아직도 도시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미술사 미술관의 맞은 편에는 저 정도 규모의 자연사 박물관이 또 자리잡고 있으며,
스페인승마학교도 흥미로운 명소 중의 하나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친인 카를6세가 세웠다는 스페인승마학교.
처음에는 말 사육장으로 만들었는데, 종마 개량도 하다가, 관광객을 위한 馬術공연도 한다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보지를 못했다.  

1572년에 설립됐다니, 400년이 넘은 전통있는 승마학교인데, 왜 하필 스페인 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는지 모르겠다.
말을 스페인에서 들여온건지, 말 조련사들을 스페인에서 초빙한건지,  뭔가 이유가 있긴 있을텐데...



승마학교 가운데 지붕부분인데, 승마학교답게 조갇을 했다.
근데, 양 옆의 널브러진 여인들에게 광분하는 말들은 왜 그래???
이 조각도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호기심많은 사람이 궁금한건 많은데,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답답하다.
묻고싶어도 말이 안 통하고...  으이그~~~    초이는 어디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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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Vienna)로도 잘 알려진 Wien은 좋은 도시다.
고풍스럽고 화려한 유적을 갖고 있으면서도 왠지 도시 전체가 검소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사람들도 차분하면서도 친절하다.

또 도시가 중세적이고 상당히 화려하면서도, Roma에 비해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사용했다는 호프부르크 구왕궁.
건물의 웅대함도 파리나 로마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구왕궁 안으로 들어가면 이렇게 사방이 건물로 둘러쌓인 정원이 나온다.
조금 답답한 느낌도 있지만, 폼도 난다.




구왕궁을 지나면 헨델광장이 나타나고, 그 뒤로 보이는게 신왕궁이다.
신왕궁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지막 왕국으로 건축되었지만, 완공 전 왕가의 패망으로 실제로 사용되진 못했단다.
2차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저 왕궁의 발코니에서 연설을 했다고 하니, 죽 쒀서 누구 준 꼴이 된건가...  

신왕궁 앞의 동상 오이겐公은, 원래 프랑스 귀족 가문으로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당시 적국인 오스트리아의 군인이 되어 수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우고 오스트리아의 융성을 구축하여
프리드리히 2세로 부터 사실상의 국왕이라는 칭송을 받았다고 한다.
어떤 여유로 조국을 등지고 적국의 영웅이 됐는지는 모르나, 동상까지 세워질 정도면 대단했던 모양이다. 
   
신왕궁 안으로 들어가서 생각지 못했던 또 하나의 동상을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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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 12. 10.  Mon ]


유럽 사람들은,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 일을 즐기는 것 같다.
Austria로 오는 야간열차의 승무원도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승객을 위해 서비스 한다.

이번 여행 중에 느낀 이곳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의 기준은,
첫째. 자신, 둘째. 자기 앞에 있는 현재 고객중심이다.

고객이 앞에 서 있어도 자기들끼리 하던 이야기는 끝내야 고객을 상대한다.
그리고 일단 상담을 시작한 고객과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기다리는 사람이 몇명이 있건,
현재 고객이 완벽하게 만족하고 납득할 때 까지 철저히 그 사람만 상대한다.
못알아들으면 짜증한번 안내고 똑같은 이야기를 몇번이고 반복한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도 앞 사람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뒤에서 군소리 한번 안한다. 

우리 같으면 상담자가 뒷 손님이 기다린다고 하거나,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뭔소리가 나와도 나올텐데 여긴 그런게 없다.
간혹 정 급해서 앞 사람 상담 중에 'Excuse me..' 하고 잠깐 기어들라치면
상담자의 입에서 나오는 단호한 한마디는 'Wait !!' 이다.  민망할 정도다.


아침에 Wien역에 도착하여 환전을 하려고 서있는데, 누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얼떨결에 인사를 하면서도 머리 속이 바쁘다. '누구지??  낯은 익는데...'
아~~~   맞다. Napoli Y.H에서 만났던, 캐나다에 산다는 유학생이다.
근데, 나를 일본인으로 알았다는, 내가 중국인으로 착각했던 친구가 안보인다.

친구는 어디가고 혼자냐고 물으니,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친구는 스페인으로 가고, 자기는 으로 왔단다.
나폴리에서도 서로 의견이 안 맞아 한명은 폼페이, 한명은 시내구경을 따로 하더니 결국 동서로 갈라지고 말았다.
나중에 메일을 통해 파리나 런던의 민박집에서 만나기로 했단다.

이름이 박상우라는 그 학생이 숙소는 어떻하실거냐고 묻는다.
우리는 한국에서 Y.H 예약을 하고 왔다고 하니, 그렇게까지 준비를 하셨냐며 놀란다.
초이가 무게를 팍 잡는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여지가 많거든..'
내 속은 요렇게 속삭이고 있다. '웃겨~~ 지가 했나... *^^*'
아무튼 우리가 예약한 유스호스텔로 상우와 같이 가보기로 했다.

유스호스텔을 찾아가는데, 버스에서 내려 길을 물으려고 'Excuse me..' 하면,
그 다음 말을 묻기도 전에 손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어봤으면, 배낭맨 사람에겐 바로 손이 나오나... 


유스호스텔에서 박상우, 초이와 함께.

얼굴이 선한 상우는 집은 대전인데, 고등학교 때 캐나다에 유학을 간 대학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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