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 12. 11.  Tue ]


아침에 눈을 뜨니 눈이 온다. 
그 눈이 하루 종일 제법 많이 온다.  첫눈을 오스트리아 Wien에서 맞은 것이다.

오늘 일정은 유럽 최대의 지하호수라는 Seegrotte를 보고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이국에서 맞는 첫눈의 상큼한 느낌과 함께 필라델피아부뤼케역에서 뫠들링으로 향했다.
뫠들링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데, 이 버스를 타는 데 엄청나게 헤매며 고생을 한다.

서울에서 미리 살펴본 유럽 안내책자에는 Seegrotte를 지그로테로 표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이 발음 때문에 엄청난 시간을 소비하게 될 줄이야...

뫠들링역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지그로테로 가는 버스를 물으니 아무도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들, 대기 중인 버스의 기사 등 여러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릴 뿐 반응이 신통찮다.  
그런데, 분위기를 보니 지그로테로 가는 버스 노선을 모르는 게 아니라 [지그로테]라는 지명을 모르는 듯한 반응이다.

엥~~ @>@...  발음이 잘못 됐나?? 
이런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안내 책자를 들고 나오거나 지명을 원어로 적어오는 건데... 실수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이제 [지그로테]와 비슷하게 발음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가
초이와 나의 입을 통해 쉼없이 튀어 나온다.

그로테.. 지로테...  지그테...  지그로... 엑센트를 각 음절별로 주는 것 부터 시작하여,
제그로테, 지에그로테,  세그로테, 시그로테 등 [z]로 예상되는 앞글자의 변형과 모음의 변화도 시도해보고,
지그로트, 제그로트, 세그로트, 시그로트 등 끝에 붙을 거로 추정되는 [e]의 묵음화도 도모해 보고...
지로테, 시로테, 제로트, 시로트 등 앞에 시도한 온갖 변형에 [g]의 묵음화까지...
게다가 각각에 대해 엑센트를 따로 한 것은 물론.

이러기를 20여분...  정말 미치고 환장할 일이다.  그리고 슬슬 초조해진다.
이 정도 읊어댔으면 비슷한 거 하나쯤은 알아들어야 하는 거 아냐?? 
해도 너무하네 정말...  이러다 못 가는 거 아냐..??

마음이 낙담 쪽으로 기우니 몸도 지쳐 간다.  
지쳐 가는 목소리로 지그테...  운운하는데, 한 사람이 반응을 보인다.  어~~~??
우리에게 '지**테?' 하고 되물으며 그 지명을 아는 듯한 표정을 짓는데, 뭐라 발음한 건지... 
다시 물어보니 지그오테 비슷하기도 하고, 지고오테 라고 하는거 같기도 한데, 이게 참 묘하다.

몇번 들으니 지그오테지그호테의 중간,
그러니까 [오]와 [호]의 중간쯤에서 [ㅎ]을 목구멍 뒤로 슬쩍 삼키는 듯한 비음 소리가 나는데,
한글로 정확히 표현하기는 애매하지만, [ㅎ]이 살짝 들락날락 하니까 여기서는 [지그호테]라고 하고싶다.

이거... 내가 음문학 탐사를 나온 것도 아니고...
하지만 생각해 보니 외국인이 [언둔포]라고 묻는다면, 영등포로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하튼 이렇게 버스를 타고 20여분 거리의 HinterbUhl 에서 내리니 한적한 우측 큰길에 [Seegrotte] 입구가 보인다.
근데 HinterbUhl 은 뭐라고 읽는 거야?? (여기서 U는 독일어 알파벳의 u 움라이트를 의미)    힌터뷜인가...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독일군의 요새 [Seegrotte].   눈이 많이 내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연합군의 폭격을 피해 이 곳 지하에서 비행기 부품을 생산했다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넓고 크기에 이 속에 부품 생산기지가 있다는 건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저 입구의 오른 쪽에 매표소를 겸한 매점이 있다.  입구 왼쪽은 기념품점.
그 곳에서 입장권을 사면 되는데, 입장권을 사더라도 임의로 들어갈 수는 없다.
보트를 타고 지하호수를 둘러보는 관광 특성상 이미 들어가 관람 중인 관광객의 일부가 나와야 입장이 가능하다.

출입구로 입장을 하면 가이드가 나와 동굴에 대한 전체적인 내력과 관람 절차에 대한 설명을 한 후 지하로 내려가게 된다.



레일을 이용해 탄광촌의 객차와 같은 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상상보다 거대한 지하공간이 펼쳐지는데,
부분부분 사진 촬영에 제한을 받아 모든 곳을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원래는 광산이었던 곳을 나치독일이 더 깊히 파들어가 2000명 정도가 일을 하는 비행기부품 생산기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둘러본 Seegrotte의 지하호수.
동굴내부에는 저런 작은 수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가끔 암벽에 정박되어 있는 작은 보트들이 보인다.
아마도 당시에 생산기지간 자재 수송에 쓰이지 않았나 싶다.




배를 타고 도는 동안 암벽사이에 뻥 뚫린 구멍들을 자주 보게된다.
저 건너 편은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인데, 에이... 사진이 꽝이다. 받쳐주질 못하네...  자동카메라의 한계.

투어시간은 대략 1시간 정도.
굴이 굉장히 깊고 넓어 일단 그 안에 혼자서 잘못 들어가면 빠져 나오기가 힘들 거 같다.

우리도 강원도 환선굴 등 한 굴 한다는 동굴도 있고 호수동굴도 있지만, 생산기지로서의 역할을 한 것은 없는 걸로 아는데, 
남북통일만 되면 우리도 엄청난 게 많을 걸...   북한 애들이 또 굴.. 하면 한가닥 하잖아.
개네들이 파놓은 거 만만치 않을텐데, 그거 관광자원화 하면 덕분에 후손들이 덕좀 보겠다.

나치독일이 자국민 고생시키지 않고 남의 나라 사람들 인건비도 없이 날로 부려 먹으려고 오스트리아에 이걸 만들었겠지만,
어찌됐던 고생한 선조들 덕에 후손들이 관광수입을 얻고 있으니,  조상을 잘 둔거야...? 잘 못 둔거야...??

어찌됐던 고생하며 찾아온 보람은 있는 거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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