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기 유감 2 - 아쉬움만 남았다.
돌아다니기/2001 유럽배낭여행 2009. 5. 18. 02:03 |
많은 분들의 댓글을 통한 격려에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배낭여행기 폴더의 저장글 갯수 151이라는 숫자를 보고 나도 깜짝 놀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렇게 쌓였구나...
아마 처음부터 150회에 걸쳐 올릴 생각을 했다면 절대 불가능한 수치다.
지레 겁을 먹고 시작도 하지 않았을테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렇게 길게 끌고갈 수 있었던 분명하고 확실한 원동력이 있다.
블로그를 방문해 달아주신 많은 분들의 댓글.
그런 댓글이 없었더라면 아마 중도에 중단됐을지도 모른다.
지쳐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도, 요즘 여행기가 안 올라온다는 한 줄의 댓글에 사명감(?)을 느끼곤 했다.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몽상이 나를 끝까지 몰고간 것이다.
많은 분들의 댓글 - 배낭여행기를 마칠 수 있게해준, 나에겐 가장 큰 격려였다.
여행기를 올리며 느꼈던 몇가지 아쉬움을 끝으로 이제 모든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첫번째, 괸심을 갖지못했던 일상사진.
카메라의 저장매체가 당시로는 고용량인 256MB 메모리카드였지만,
37일간 곳곳의 다양한 모습을 욕심껏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때문에 이삼일에 한번 씩은 촬영한 사진 중 중복된 것이나 질이 떨어지는 것을 삭제하곤 했다.
여기에 여행후 사진을 CD로 제작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사진들을
일부 다시 정리했는데, 이게 참으로 미련한 짓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다.
대부분의 일반 여행자들은 여행사진을 찍을 때 기념이 될만한 것을 담는 반면,
전문 작가나 여행가들은 보통사람들이 별로 눈여겨보지 않는 이면의 모습이나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본질을 중요시한다.
그런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이역(異域)의 생경한 문화와 관습을 경이와 감동으로 전하는 것이다.
경험이 부족한 나역시 그랬다. 주로 유적의 모습을 담았으며,
그나마 곁가지로 담은 모습마저 정리를 하며 많이 없애버린 것이다.
그런데, 글을 올리다보니 그런 곁가지(?) 사진들이 무척 아쉬웠다.
소소한 이야기일수록 사진을 곁들이면 더 재밌고 감칠 맛이 있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 것이다.
나의 경험부족에서 온 시행착오였다.
두번째, 다양성이 부족한 단조로운 소재.
외국에 갈 기회가 있을 때 마다 관심을 갖고 들러보려는 곳이 있다.
현대식빌딩의 화장실 - 오피니언 리더층의 꾸미지않은 시민의식을 알고싶을 때.
초등학교나 중학교 - 그 나라 현재모습의 근원과 미래의 모습을 보고싶을 때.
재래시장 - 서민들의 생활상이 궁금할 때.
유흥가 - 가장 본능적인 욕구가 궁금할 때.
이번에도 그러고싶었지만, 37일간의 일정은 유적지만 돌기에도 너무 빡빡했다.
물론 처음부터 일정을 그리 잡을 수도 있었겠지만, 유럽이 처음인 초이에게 나만의 관심사를 강요할 순 없었다.
여행기를 올리며 가장 아쉬웠던 게 이렇듯 내용의 소재가 유적 중심으로 너무 단조로웠다는 점이다.
유럽 각 지역의 다채로운 모습과 사람들의 오밀조밀한 삶을 다양하게 보지 못한 게 무척 아쉽다.
세번째, 절감한 표현능력의 한계.
무얼보든 느낌은 단순해도 별 문제가 없다.
대단한 걸 여러 곳에서 보더라도 그때마다 "야~~" 하고 감탄만 해도 된다.
유럽을 돌며 커다란 유적물이나 대단한 탑을 볼 때 마다 "대단하다~~' 하고 놀라기만 하면 됐다.
곳곳의 웅장한 성당들을 보면서도 "웅장하네.." 하고 경탄하면 됐다.
하지만, 글로 옮기다보니 생각도 못했던 게 문제로 다가왔다.
수많은 유적지에 대해 글을 올리면서, 그때마다 매번 "대단하다" 혹은 "웅장하다" 고만 표현할 수는 없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새로운 것에 대해 매번 유사한 표현만 사용한다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미없고 지루하고, 또 짜증나겠는가.
글이라는 게, 쓸 때는 느끼지 못 하지만 작성된 글을 읽어보면 같은 접속어나 수식어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나 습관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어휘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도 글을 쓴 다음에는 반드시 몇 번을 읽어보며 나도 모르게 반복 사용하는 표현을 수정하여
문맥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다른 소재의 이야기들을 단편적으로 글로 표현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걸
비슷비슷한 소재들에 대해 계속 묘사해야 하는 여행기를 올리며 표현력의 한계를 절감한 것이다.
50년동안 한국어로 생각하고 표현해왔는데 왜 이렇게 사물이나 느낌에 대한 다양한 묘사를 못 하는지...
정말 어휘 구사력이 너무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마지막으로, 현실성의 결여.
2001년 11월~12월에 다녀온 배낭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한 건 2005년 8월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난 건 2009년 5월이다.
더구나 글의 형태가 "~~였다. 혹은, ~~했었다." 라는 과거나 과거분사형이 아닌,
여행중 작성한 기록에 따라 "~~한다. ~~에 있다." 는 식의 현재진행형으로 기술되다보니,
길게는 8년전의 이야기가 마치 지금 보고 느낀 것 처럼 오해를 불러올 수가 있다.
2001년에 내가 본 것이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일 수도 있고,
때문에 당시 받은 느낌과 지금 전해지는 느낌이 다를 수가 있기 때문에,
중간에 내 블로그에서 여행기를 읽으시는 분들, 특히 최근에 같은 곳을 돌아보시거나
그 지역에 거주하시는 분들께 민망하기도 하다.
특히, 최근에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여행정보를 얻는 경우도 많아, 자칫 내 블로그를 통해
이미 바뀌어버린 잘못된 정보를 취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든다.
그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여행 중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지금 무얼하는지 궁금하다.
첫 기착지인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사법시험 합격자들은 중견 법조인이 됐을까?
직장을 다니며 경비를 벌어 배낭여행 다니기를 2년 주기로 반복한다던 아가씨는 그후 몇 번을 더 다녔을까?
나폴리에서 만난 캐나다에 유학중이던 청년과, 인터라켄에서 만난 영국 유학생은 지금 어느 나라에 있을까?
융프라우에서 만났던 젊은 여성 사무관도 지금쯤 중견 간부가 됐겠다. 참 예의바른 아가씨였는데...
터키를 한달간 돌아본다던 청년.
로마의 민박집에 늘어져있던 청년들.
여행 첫날 배낭을 잃어버리고 침낭과 1회용 카메라를 들고다니던 청년도 생각난다.
마지막 날 프랑크푸르트에서 본 청년은 독일유학을 예정대로 마쳤을까??
그들에게 당시의 여행은 무엇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지금 어떤 모습으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 나가는지도 궁금하다.
만날 수만 있다면 그때의 이야기와 함께 사는 모습들도 보고싶다.
아~참~~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한국관의 여사장님과 아주머니는 어떻게 지내실까...
한때 르포라이터를 동경하던 시절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가리워진 이면을 들추어 숨어있는 의미를 찾고 싶었다.
모두에게 익숙한 평범함을 재조명하여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직장생활을 마치고 기회가 만들어지면 해보고싶은 일이었는데,
여행기를 작성하며 깨달았다. 내겐 너무 역부족인, 희망사항일 뿐이었음을.
이면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새로운 의미나 가치를 묘사하고 표현할 능력도 나에겐 허락되지 않았음을 안 것이다.
여행이 주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여행을 정리하며 얻는 교훈도 소중함을 알게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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