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해는 떨어졌고 날씨까지 엄청 추우니 주머니가 빈 사람은 갈 곳이 없다.
온기도 없는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神에게 구원을 청하는 일 뿐이다.

"神이시여...  왜 제게 이런 어려움을 주시나이까...  제게 광명과 은혜를 주시옵소서..."

허구헌날 기원을 하지만 생활에 별다른 변화의 조짐이 없자, 기다림에 지친 나머지 짜증스럽게 내뱉은 말.

"에이~C...  神은 죽었구만.  그러니 이렇게 기도를 해도 대꾸가 없지..."


겨울에 유럽을 돌며 떠오른 생각 하나.

유럽, 특히 북쪽으로 갈수록 겨울에 해가 무지 짧아진다.
오죽하면 처음 암스테르담에 도착해서는 4시도 안됐는데 들어가 잘 생각을 했고,
부다페스트 스케이트장에 켜진 조명을 보고 늦게까지 스케이장을 연다고 생각한 것이 3시반이었겠는가.

해가 일찍 떨어지고 상점이 일찍 문을 닫으니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집에 일찍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집에 들어간다고해도 잠 잘 시간은 아니니 그 긴긴 저녁에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니 괜히 심심해서 이쪽에 있던 가구 저쪽으로 옮겨보고, 형광등에 뭐도 씌워보고,
또 멀쩡한 벽에 오만가지 치장도 해보고..  천정에 이것저것 매달아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인테리어가 발달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장난질(?)은 그나마 있는 사람들의 몫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추위에 떨며 담요 한장 걸친 채 웅크리고 앉아 온갖 상념에 빠져들기만 한다.

- 나는 왜 이러고 살아야하나..
- 인간이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가...
- 인간의 존엄성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
- 구원자란 존재하는걸까...  그 실체는 무엇인가...
- 산다는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보니 철학과 신학이 발달한건 아닐까...


좀 우스한 유추지만, 유럽에서 인테리어와 철학, 신학이 발달한 이유가 나름대로 있는 것 같기도하다.
그럼 이런 질문이 되돌아 올 수도 있겠다.
"겨울에 날씨 추운데가 유럽뿐이 아니잖아..  북아메리카도 있고, 북아시아도 있는데 왜 유럽이 유독 그래?"

근데, 환경이나 조건이 같다고 모든 현상이 동일하게 나타나는건 아닌다.
북아메리카는 신대륙이라 할만큼 영국인이 이주하기 전까지는 문명이라는게 없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향이나 인식의 틀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건 북아시아도 마찬가지였을거다.  제국은 있었지만 문화적환경은 처져있었다.
반면에 유럽은 오랜 기간에 걸쳐 문화를 꽃피운 대륙이다.
없는 자들도 봐온건 있고 그만큼 생각의 깊이가 다르다.

또 하나 차이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유럽이 다른 대륙에 비해 빈부의 차이가 컸을 것이다.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과 북아시아의 부족민들은 비슷한 집단생활을 통해
남들과 자신의 생활수준을 비교하여 크게 다름을 느끼지 못한 반면,
유럽은 부유층과 서민층, 그리고 빈곤층의 격차가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부유층은 모든 것을 동원해 화려함을 추구하고, 서민층은 있는 것으로 오밀조밀 무언가 만들어내고,
빈곤층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뒤처진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것이 같은 기후환경이지만 다른 문화가 생성된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인류학자는 아니더라도,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저런 것을 서로 연관하여 생각해보며,
엉뚱한 해석을 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여행의 재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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