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애먹이는 프라하
돌아다니기/2001 유럽배낭여행 2008. 8. 9. 09:41 |

마지막으로 구시가지와 비출라프거리 야경을 돌아보고 프라하역으로 돌아왔다.
이제 아침에 맡긴 배낭을 찾아 11시50분에 출발하는 뮌헨行 야간열차를 타야한다.
프라하역 물품보관소는 다른 곳과 달리 후불제다.
배낭을 찾으려 초이가 보관증과 함께 50Kr 지폐를 내니 안받는다.
무료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폐 수령을 거부하는 것이다.
... ... ??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지폐가 찢어졌다고.
@<@.. 아니.. 멀쩡한 지폐가 뭐가 어찌됐다고???
기가 차서 어디가 찢어졌냐고 물으니, 끝부분 가장자리가 약간 갈라진걸 가리킨다.
기가 막힐 일이다. 아니 지폐라는게 사용하다보면 어느정도 훼손이야 당연한거 아닌가?
또 완전 신권이 아닌 이상 이 정도는 흔한거잖아.
'이게 어디 찢어진거냐?' 고 항의하니, 이 친구가 우리 지폐를 받아들고는.
'이게 찢어진거 아니냐..' 며 갈라진 부분을 벌리며 자기가 더 갈라놓는다.
돈이 이거 밖에 없는데 어쩌냐고 물으니, 이 친구가 옆의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보여주며 뭐라고 묻는데,
이 놈이 남에게 한번 보여줄 때 마다 이렇게 찢어졌다며 점점 더 찢어놓는다. 황당하네...
그런데, 이 청소부 아주머니가 더 가관이다.
찢어진 돈은 받을 수 없다며 은행가서 바꿔오란다. 정말 어이는 일찌감치 멀리 날아가버린지 오래다.
어차피 영어는 안 통하니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각자 자국어인 체코말과 한국말의 침 튀기는 설전이 이어진다.
- 찢어진 돈은 못 받아.
> 내가 찢은거 아냐. 오히려 쟤가 더 찢어놨지.
- 하여간 못 받아.
> 우리 기차타고 가야하는데, 그럼 어쩌라고? 그리고 다른 돈도 없어.
- 은행가서 바꿔와.
> 은행가서 바꿔주는거라면 니가 가서 바꾸면 되잖아.
- 은행 갔다와...
> 우리 지금 독일로 가야된다니까...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 문 연 은행이 어딨냐?
- ... ...
> 아이씨~~ 정말 짜증나네.. 우리가 안 찢었다니까...
청소부 아주머니의 말은 그녀의 동작과 가끔 들리는 영어 비슷한 발음으로 말의 의미를 유추해석한 것이고,
초이의 말은 순우리말로 보디랭귀지를 섞어 한 말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건, 각자 상대방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자기나라 말로 떠드는데도, 이게 제법 언쟁이 된다는거다.
야~~~ 그거 참 신기하네... 어떻게 이렇게 싸움이 된다냐... ㅋ~~
결국 이 친구가 다른 나이 많은 남자에게 다가가 묻고는, 지폐를 받고 거스름돈을 주는데 이게 또 가관이다.
이 녀석이 완전 동전으로만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치면 1원짜리로만) 20Kr을 거슬러준다.
한마디로 엿 먹으라는 얘기지...? 정말 골 때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침에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거 아니냐고 한 농담이 실제상황이 될 뻔 했다.
동전으로만 한웅큼을 받은 초이가 기가막히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한마디 한다.
- 도착하자마자부터 출발하기 직전까지 도대체 얘네들은 왜 이러는거야??
형.. 이거 뭐에 써? 몇푼 되지도 않는거 갖고다니기도 그렇고.. 버려??
> 버리긴... 그걸 왜 버려. 받은만큼 돌려줘야지. 그걸 가지고 그냥 프라하를 떠날순 없잖아.
어제 아침 내돈 500Kr을 은근슬쩍 날름하려했던 역내 매점으로 갔다.
가보니 그 매점의 카운터에 우리가 받은 것과 같은 쬐끄만 동전들이 널려있다.
그걸보니 얘들도 동전은 아예 돈으로 취급도 안하는 모양이다.
가만있자... 20Kr에 가까운 품목이 뭐가 있냐...
메뉴에서 Cola 한 캔에 19Kr 임을 확인하고, Cola 한 캔을 주문하여 수중에 확보한 후,
초이가 쥐고있던 동전을 다 내미니 이노마들이 머뜩한 표정을 지으며 초이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짜증섞인 표정으로 돈을 받아 집어던진다. 햐~~ 정말 성질 더러운 놈들이네...
짜식들아~~ 그러길래 마음을 곧게 먹어라.. 응!!! ^&^~~
마지막으로 카운터펀치를 날린 초이가 이틀간 받은 마음의 상처에 그나마 위안을 받은 듯 하다.

건축물은 이렇게 아름답고 예쁘게 꾸미는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관광객 못 잡아먹어서 난리들인지...
다들 그런거는 아닐테고, 우리가 하필이면 그런 사람들만 만났다고 생각을 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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