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이름 모를 역에서의 긴박했던 30분
돌아다니기/2001 유럽배낭여행 2008. 7. 9. 04:26 |
순박하면서도 강인한 더벅머리 청년과의 짧은 만남.
부다페스트에서의 1박2일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쉬운 여운을 간직한 채 8시 50분 체코 Praha行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여기서 마적(?)을 만날 줄이야...
기차가 출발을 하고 30분쯤 지났을까...
잠자리를 준비하느라 배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헝가리 군인이 들어와 passport를 요구한다. 옜다~~
그러더니 곧 이어 이번엔 슬로바키아 경찰이 들어와 또다시 possport를 요구한다.
사진 잘 나온거 소문났나... 그래 실물보다야 못하겠지만 너도 한번 봐라...
잠시 지나니 또 누가 들어온다.
이번엔 세관원이라며, 술 담배가 없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잠시 후, 또 다른 세관원이 들어와 똑같은 질문을 한다.
아이 씨~~~ 이것들이 누굴 겁주는건지... 완전 뺑뺑이를 돌리고 있네...
조금 전에 이미 확인했다고 하니, 자기는 슬로바키아 세관원이란다.
그럼 아까는 헝가리 세관원이라는 얘기???
초이가 나를 구슬른다. '형.. 아무소리 말고 여권 줘요...'
하긴.. 초이 우려대로 괜히 시비를 자초할 필요는 없다.
다른 나라를 들어갈 때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 Wien 에서 Budapest 를 올 때도 세관신고서를 작성했다.
그것도 다른 것은 체크하지 않고 술과 담배의 소지유무만 확인하더니, 지금도 술 담배만 확인한다.
아마 아직 이 동네에서는 술이나 담배의 밀수입과 밀매가 성행하는 모양이다.
Budapest를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지나 슬로바키아 국경을 넘어서니,
여승무원이 찾아와서는 슬로바키아 영토를 지나니 요금을 내란다. 엥~~ @>@... 이게 뭔소리..??
헝가리에서 체코를 가려면 슬로바키아 영토를 거치는데, 결국 통행세를 내라는 얘기다.
뭐 이런 개떡같은 얘기가...
쌍팔년도 만주벌판 마적들도 아니고, 봉이 김선달 후손이 언제 슬로바키아로 이민을 온건지...
- 기차요금에 포함되어 있는거 아니냐..
-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등등 말을 해봐도 지는 지 나름대로 얼마를 내라 그러는거 같은데, 금액이나 단위도 모르겠고,
서로 말이 제대로 안통하니 저도 답답했는지 여승무원이 일단 그냥 돌아간다. 다시 오겠지.
역시.. 잠시 후 같이 온 남자승무원 말이 1860을 내야 한단다. (화폐단위는 제대로 듣질 못해서...)
더이상 따지는건 의미가 없을거 같아 '슬로바키아 화폐가 없으니 달러도 가능하냐?' 고 물으니,
달러는 받지않는다며 30분 후에 중간역에 잠시 정차하니 그때 현금인출기에서 인출을 하란다.
30분쯤 후인 밤 10시반.
이 친구 정말 정확한 시간에 우리를 깨우더니 따라 오라길래 파카를 걸치고 일어서는데 초이가 묻는다.
- 형이 갈라구?
> 내가 갔다올께..
- 내가 갈까?
> 어차피 추가경비는 내 카드로 쓰기로 했잖아.
- 괜찮겠어?
- 안괜찮으면?? ... 다녀올테니 기다려.
자다말고 슬로바키아의 어딘지도 모르고 생판 이름도 모르는 깜깜한 역에 내려 돈을 빼라니...
그래.. 한번 가보자. 이래서 슬로바키아 땅도 한번 밟아보는구나...
사실 좀 겁이 난다.
이거 열차 못타는 일이 생기는거 아냐..??
그럼 말도 안통하는 곳에서 어찌해야 하나... 게다가 배낭과 여권 모두 기차 안에 있잖아...
승무원을 따라 내려 플랫폼의 지하도로 향하며 열차 정차시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니 30분이란다.
그리고 뒤돌아보며 내가 내린 플랫폼 번호를 단단히 외웠다.
4번 플랫폼이지... 나중에 또 열차를 헷갈리면 큰일난다.
역 구내의 어느 기계 앞에서 멈추더니 승무원이 여기서 돈을 인출하란다.
기계의 안내 메세지를 보니 뭔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당연하지. 슬로바키아 문자니..
작동법을 알려달라고 하니 옆에서 열심히 설명을 한다.
시키는대로 카드를 넣고 작동을 하는데, 뭔가 문제가 생긴 듯 에러메세지 같은게 뜬다.
무슨 뜻이냐 물으니 기계에 현금이 없단다.
현금이 없다구??? 이렇게 경사스러운 일이... 돈이 없다는데야 어쩌겠어. ^^
입가에 번지는 흐뭇한 미소를 반쯤은 감추며, 어거지로 안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어떻하냐고 물으니,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따라오라며 다른 기계 앞으로 안내를 한다. 이런 젠장할...
한번 해본 솜씨로 눈치코치껏 1000짜리 지폐 두장을 들고가니 인출했냐고 묻고는 자기 달라더니
잔돈을 찾아볼 생각도 안하고 바로 지갑에서 500을 꺼내 내게 건네준다.
어~~?? 1860이라더니 왜 500을 거슬러주지??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는 척 하다가 잔돈이 없는 시늉이라도 하면서 500을 거슬러주면 고맙다는 생각이라도 들텐데,
돈을 받자마자 거침없이 주는 돈 500을 받고보니, 완전 짱구가 된 기분이다.
뭐야.. 이거?? 이 자식들이 이거 정가도 없는거 아냐... 아님, 완전히 자기가 먹는거거나...
영수증을 달라고 하니 없단다. 나중에 다른 승무원이 또 요구를 하면 어떻하느냐고 물으니 그런 일 없을거란다.
그러면서 'No problem...' 만 몇번 외친다. 얘가 오밤중에 수입 잡았구나...
하지만, 지금 그걸 끝까지 따지고 항의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열차에서 내려 몇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열차가 출발하는거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초조하고 급해지면서 빨리 기차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뿐이다.
급히 지하도를 거쳐 4번 플랫폼으로 올라가니 초이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열차 승강구에 매달려 나를 기다리고 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아까 그 승무원이 내가 열차에 오르는걸 보고는 손을 흔든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초이가 안도하는 표정으로 묻는다.
- 형.. 어떻게 잘 처리됐어??
> 별안간 내가 상당히 멍청해지는거 같은데... 내가 멍청한건지, 저놈이 멍청한건지...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초이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는다.
그렇게 둘이 한참을 웃었다. 웃어야지 어쩌겠나...
- 참... 너 만약에 열차 떠날 때 까지 내가 안오면 어쩌려고 했어?
> 그러면 일단 프라하역에서 형이 올 때 까지 죽치고 기다려야지. 형이 어떻해서든 프라하에 못 올 사람이 아니잖아.
그렇게라도 인정을 받으니 좀 낫네...
그나저나, 이상범이 카드의 패스워드가 슬로바키아의 이름모를 역 대합실에 있는,
문자도 모르는 ATM기에서도 조회가 되고 승인이 떨어지다니... 정말 놀랍다.
ㅋㅋㅋ... 당연한 것을 가지고 뿌듯하게 생각하는 나도 아직은 무늬만 문명인인 모양이다.
여행기간 중 가장 겁나고 긴장했던 한밤중의 30분.
하지만 프라하역의 아침은 Choi가 열받고 뒤집어질 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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