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에 해당되는 글 465건

  1. 2022.01.16 츤데레 오빠의 마음
  2. 2021.01.04 부모님의 결혼 71주년
  3. 2019.05.27 연그린9기 동기들의 인연 45주년 동기모임 4
  4. 2018.12.11 내 영혼의 친구들과 함께 한 1박2일
  5. 2018.09.20 종속이 아닌 존중의 의미
  6. 2018.09.19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
  7. 2018.09.18 청첩의 의미 2
  8. 2018.03.26 좋은 분들과 새롭게 인연을 맺은 즐거웠던 날 2
  9. 2018.03.20 결혼은 당사자가 주인공이다
  10. 2018.03.12 때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11. 2017.12.21 늘 한결같은 세월애 송년모임
  12. 2017.12.16 늘 넉넉함을 주는 대군과 멘토
  13. 2017.07.16 성숙한 셰프로 다시 만난 주바리
  14. 2016.12.01 36년 전 인연 김용포 대대장님
  15. 2016.11.05 33년 前後
  16. 2016.09.18 부인들께 감사드립니다.
  17. 2016.03.01 응답하라 1988~ 노효식 지배인님. 2
  18. 2016.02.02 사까미야 오너 셰프 윤재중 부장
  19. 2016.01.02 오랜 시간 함께 한다는 건..
  20. 2016.01.02 챙겨주는 아이들이 늘 고맙다
  21. 2015.12.23 딸이 보내온 크리스마스 선물
  22. 2015.10.18 나어린 새댁의 깊었던 사려 2
  23. 2015.10.06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송현중
  24. 2015.09.24 늘 미소가 정겨운 이원일 셰프
  25. 2015.06.08 40년 만의 보복(?)
  26. 2015.06.04 아내의 존재와 의미를 생각케 해준 母女여행 2
  27. 2015.05.13 변화를 꿈틀케 하는 만년필
  28. 2015.05.06 배낭여행의 추억
  29. 2015.05.03 내 에너지의 원천 1
  30. 2015.02.23 꼬맹이의 새해 소망


딸 출국 전일 아들이 우리(아빠 엄마 동생)를 집으로 초대했다.
코로나 방역지침에 의해 인원 수와 영업시간 등의 제약으로 외부에서 만나기엔 여러 제약도 있었지만, 자기가 직접 만든 음식으로 또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 동생 저녁 한번 해주고 싶단다.

오랜 유학생활로 인해 아들이 음식 만드는 걸 즐긴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지만, 과정을 지켜보니 손놀림이 제법 매끄럽다.
그렇게 직접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만들어 올려놓은 메뉴들.
오늘의 Food Code는 프랑스.
생각 이상으로 가짓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내가 아들 너무 잘 키운 거 같아.." 아내의 조크에, 내가
"김 여사님 너무 생색내시는 거 아닙니까?" 라고 받자,
며느리가 나선다. "어머니 생색 내셔도 돼요~ 게다가 맛있잖아요."

딸의 클로징 "아~ 오빠~ 너무 감동이야.. 눈물 나올 거 같아~"
평소 애정 표현에 인색한 츤데레 오빠의 마음이 와닿았던 모양이다.

아들~ 덕분에 좋은 음식과 함께 즐거운 시간 가졌어. 고마워~

:

부모님의 결혼 71주년.
아버님이 거동을 하실 수 없어 종일 침대에만 누워 계시고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같이 자리는 못 하시지만,

내년에도 두 분이 함께 이 날을 맞는다는 보장이 없어 더욱 의미있는 날.

 

증손주가 누워계신 할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 곁을 함께 했다.

혼자서도 지탱하기 쉽지 않은 세월을 함께 나누신 두 분께 축하와 경의를 표한다.

:

 

1974년에 만나 인연을 맺은 연그린9기 동기들이 인연 45주년 동기모임을 함께 했다.

 

- 언제 : 2018. 5. 25(토) ~ 5. 26(일)

- 어디서 : 대천한화콘도

- 누가 : 경익수 김재진 박중환 배기홍 유지설 이규학 이상범 이인철 정지섭 (9명)

- 무엇을 : 당구, 스크린골프, 해변가 산책, 버스킹 감상, 싱싱한 회 & 음주, 마이티, 토크

- 어떻게 : 놀고 마시고 걷고 떠들고

- 왜 : 함께 하면 그냥 즐겁고 정이 느껴지니까

 

 여름이 빨리 오긴 하나보다.

 5월임에도 이미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이 친구들과 함께 한 세월이 벌써 45년 이라니...

 

 5월 밤바다는 다소 서늘할만도 한데, 바람이 시원스럽다.

 

특별히 한 게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친구들이 곁에 함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 시간.

가나안농군학교 입교 에피소드 등 45년의 시간을 함께 회고해준 친구들이 고맙다.

 

:


11월의 마지막 주말 양평의 한화콘도에서 연그린 동기 정모가 1박2일로 있었다.

1월 거제 - 5월 용인에 이은 금년 세번 째 합숙모임.


일부는 일찌감치 양평에서 모여 스크린골프로 친목을 다지고,



나와 또 한 친구는 하남에서 점심을 함께 하며 우의를 다진 후, 오후 다섯 시쯤 양평 콘도에서 완전체로 합체.


오래된 콘도 시설이 썩 쾌적하진 않았지만, 그런 불편함이 느껴질 겨를이 없을 정도로

오래돼서 좋은 건 역시 친구뿐이라는 걸 상대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저녁은 양평에 거주하는 친구가 사전 예약해둔, 콘도에서 무려 18km나 떨어진 송어집에서.



'거리와 맛은 비례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새벽 4시 반까지 이어진 전투를 마치고 아침 8시 반에 일어나니, 부지런한 친구가 라면과 햇반으로 정성껏 아침상을 마련해 놓았다.

100분 간 야간전투 복기를 마치고 양평 다운타운으로 이동하여 단체 봉술대결.


마무리 점심은 유지설이 양평 유지로 자리매김 했음을 절감한 고깃집에서.



여기 암돼지 모듬구이는 근래 맛 본 고기 중 최고.


이인철 덕에 잘 묵었고,

정지섭 덕에 아침 잘 먹었고,

배기홍 덕에 당구 잘 치고,

유지설 덕에 맛난 송어회와 고기 잘 먹고,

박중환 덕에 졸립지 않은 즐거운 드라이빙.


합숙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누구하나 뒤로 빠지는 경우없이 각자 먼저 나서 궂은 일 이것저것 챙기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내가 참 좋은 사람들과 이토록 오랜 인연을 맺고 있구나' 하는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참 뒷끝없이 감칠맛나게 좋은 친구들이 있어 행복하고 고맙다.

계속 지금처럼 서로 먼저 나서서 챙길 수 있도록 모두 건강하길 기원한다.


:


결혼식의 마지막 단계.


신랑 신부의 양가 부모님에 대한 인사시

부모들은 대개 앉아서 자녀들의 인사를 받는다.

달리 이상할 것 없는 지극히 자연스런 모습이지만,
그런 모습이 뭔가 내 맘에는 늘 자연스레 와닿지가 않았다.

작은 행동이고, 지극히 상징적인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아들이 선택한 배우자에게 신고(?) 받는 게 아닌,

아들을 통해 새로운 환경을 선택한 새 식구의 의사와

새로운 가정의 가장이 되는 아들의 선택을 같이 존중하고 싶었다.



:



아들의 결혼에는 주례 대신 양가 아버지의 덕담으로 대신했다.
통상적인 이야기가 아닌, 아이들에게 필요한 메시지가 뭘까..

그런 생각을 모아 아이들에게 들려준 [행복의 요건]



▣ 다름을 인정하자

30년 이상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의 생각이 다른 게 당연하다.
나와 다른 행동과 생각을 틀렸다고 생각하지 말고,
생각의 기준점이 다르다고 이해하자.
부부간 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간도 마찬가지다.
부모와 다른 자녀들의 생각을 이해하려 한다.
그게 어른들의 몫이기에.


▣ 남들과 비교하지 마라

비교의 결과는,
우월감에 빠져 교만해지거나 우울함에 빠져 자신감을 잃게 된다.
누구네 시가, 누구네 아내 등 [누구네]와 비교하지 말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여 내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확인해라.


▣ 효도하려 애쓰지 마라

부모가 자식에게 가장 바라는 건 자녀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
양가 부모에 대한 효도 문제로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다.
부모 이전에 두 사람의 삶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사는 게 가장 큰 효도다.
설사 부모들이 서운함을 느끼더라도 그 서운함 역시 부모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 자신의 선택을 옳게 만들어라

오늘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을 했고, 앞으로도 수 많은 선택을 하게 될 것.
그 선택이 늘 올바를 수는 없지만, 선택을 올바르게 만드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건,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
수시로 뒤돌아보며 선택에 대해 후회하거나 아쉬워하기 보다,
올바른 선택이 되도록 만들어라.
그리고, 먼 훗날 함께 뒤돌아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가정을 꾸미길 바란다.



:



4월 딸의 결혼에 이어 지난 토요일 아들이 결혼했다.

딸의 경우 국내에서 한 결혼이 아니었으니 그러기도 했지만, 아들의 결혼에도 청첩장을 만들지 않았다.

주기적인 모임을 갖는 사람들이야 자연스레 알게 됐지만, 그외 누구에게도 개별 연락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왜 청첩을 안 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거창하게 국내경기 침체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 세대가 소득보다 지출이 많아지는 시점이라 가까운 분들께 부담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 덧붙였다. 


내 나름으로는 정을 나누는 분이라 생각하여 청첩을 했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참석을 못 하면,

상대는 미안하거나 부담스러울테고, 나도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겠나.

내가 평소 마음에 두고 있는 대상에게 괜한 서운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청첩장을 돌리지 않으면 어차피 내가 알리지 않았으니 누가 오지 않더라도 서운할 이유가 없다. 

아름아름 알게 된 사람이 뜻하지 않게 찾아주면 오히려 너무 고마운 거고. 


주변에서 우려섞인 염려의 말씀을 자주 들었다.

내 외도와 달리 서운해 하는 분들이 계실 거라는.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런 분들에게 죄송스런 이해를 부탁드려야겠다. 


"아들이 지난 토요일 결혼했습니다.

가까이 정을 나누던 분들께 사전에 개별 연락 드리지 못해 죄송하지만, 마음에 소홀함이 있었던 게 아니라,

앞으로도 서로 더 편하게 다가가고자 함이었으니, 

제 속 뜻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거듭 죄송함과 함께 변함없는 정을 담아 인사드립니다.^^"




[사족]

페이스북에 올린 위 내용을 보고 지인 한 분께서 스타벅스 쿠폰을 보내주셨다.

이런 문구와 함께.

"이건 절대 축의금 아니고, 평소 좋아 하는 형님 큰 일 치루셨기에 차 한잔 대접하는 겁니다 ㅎㅎ

입 맛에 맞으실지... ㅋㅋ"


얼마나 정겹고 고마운지...^^

:


남의 얘기로만 듣던 상견례.



그 느낌은 어떤 걸까 궁금했는데, 우리의 상견례는 잊고 지냈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느낌이었다.

첫 말을 어떻게 꺼내고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신경 안 쓰일 수 없었는데,

7시에 만나 장소를 옮겨가며 11시에 헤어졌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적(?)인 상견례가 아니었나 싶다.


일단, 편한 복장으로 격의없이 만난 것이 주효했고,

아이들이 서로의 집을 열심히 드나들며 강한 신뢰와 애정을 심어준 게 부모들간의 거리를 좁히는데 큰 도움이 된 거 같다.

우리도 아들 짝지에 대한 무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아들에 대한 상대 부모님의 강한 신뢰로 인해,

서로 감사하며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즐겁고 재미있는 장면도 많았다.


- 7시에 만나 10시에 식당 영업이 종료됐으면 그걸로 상견례가 끝나는 게 일반적 상황일 거 같은데,

아이들의 제안으로 500m 떨어진 카페로 차량 이동하여 11시에 종료.


- "아버님~ 커피는 카드뽑기로 하시죠~"

카페에서는 아들의 제안으로 양가 참석자 모두의 신용카드를 모아 복불복 카드뽑기로 예비신부가 2차 비용 부담.

딱딱할 수 있는 분위기를 놀이문화로 반전시켜준 아들의 재치에 감사~


- 그리고 생각치도 못 했던 뜻밖의 서프라이즈.



뜬금없이 테이블 위에 펼친 화려한 떡케잌과 선물.

'뭐지..?'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아버님 생신 축하드립니다~"

예비신부 댁에서 준비한, 며칠 안 남은 내 생일 축하 이벤트였다.



상견례장에서 받은 뜻밖의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 식당 지배인의 엉뚱한 드립도 재미를 더했다.

예비처제를 바라보며 "신부님이 너무 고우시고, 두 분 너무 잘 어울리세요."라는 뻘드립에 모두가 뻘쭘.

뒤늦게 상황파악이 된 지배인이 황망한 표정으로 주인공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두 분 완전 선남선녀세요~"라며 뒷수습에 나섰지만,

아들 왈, "이미 말에 진정성이 느껴지질 않아.." ^^


마치 이미 알고 지냈던 것처럼 격의없이 편하고 즐거웠던 시간.

좋은 분들과 새롭게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되어 기쁘고,

즐거운 자리가 되도록 노력해준 아이들에게도 너무 고맙다.


:


갑자기 아이들 결혼이 성사되다보니
막연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새삼 현실로 다가온다. 
 
결혼은 혼인 당사자들이 주인공이 되야 하는데,
왜 청첩장에 oo xx의 장남 ◇◇ 라는 식으로 표기되어야 하나..
결혼 당사자들이 부모의 예속물이 아니지 않나.
난 당사들의 이름만 넣어 그들이 주인공이었으면 좋겠다. 
 
결혼식날,
아버지는 앙복을 입으면서
어머니는 굳이 한복을 입는 건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어머니들도 편하게 양장을 하면 안 되나..? 
 
주례가 꼭 필요할까?
결혼 당사자들이 평소 흠모하던 분이 없다면,
구색용으로 평소 자주 연락도 안 하던 은사나 부모 지인에게 부탁하느니,

오히려 양가 부모들의 덕담으로 대신하는 게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토요일 아들 상견례가 있다.
지난 주 새로 맞을 딸에게 얘기했다.
"상견례라고 해서 서로 지나치게 격식을 안 갖췄으면 좋겠다.
아버님이 괜찮으시다면 넥타이도 생략하고 서로 편한 복장으로 뵙는 게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기 더 편할 거 같은데, 아버님께 한번 여쭤보렴~" 
 
지난 주말 새로 맞을 딸의 아버지가, 역시 새로 맞을 아들에게 말하셨단다.
"아버님께서 편하게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고 전해드리렴~" 
 


세상 살다보면 체면때문에 서로 먼저 꺼내기 망설여지는 것들이 많다.
그만큼, 누군가가 먼저 편하게 말을 꺼내면 공감되는 것들도 많다.
환경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흉허물없이 얘기하다보면 의외로 서로 비슷하기도 한 게 우리네 삶이다. 
 
먼저 얘기하고 편하게 다가가자.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느껴지면 그때 맞춰줘도 늦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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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오랜만에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 금년들어 처음인 듯하다.

블로그에 글을 올려야지 올려야지 생각을 하면서도

facebook과 brunch 등 스마트폰에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SNS 툴이 일반화되다 보니

PC를 이용한 블로그 포스팅이 뜸해진다. 

물론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여 블로그 포스팅이 가능하지만, 전체적인 구도가 안 잡혀 사용하기가 꺼려진다.

이 또한 게을러짐의 변명에 불과하겠지만.



작년 12월 31일, 우리 부부는 무척 행복한 해바뀜을 맞았다.

프랑스에서 MBA중인 딸아이가 방학을 맞아 잠시 들어온데다,

연말에 보드를 타다 쇄골이 골절되어 접합수술을 받은 아들 덕(?)에 

YOUNG GUY들이 집으로 모여들어 송구영신의 순간을 함께 한 것이다.

우리로서는 계 탔다고나 할까..



이렇게 함께 해바뀜을 보낸 아이들이 금년에 모두 삶의 변화를 추구한다.

약속이나 한 듯 함께 급물살을 타더니 급기야 불과 2주도 안 되는 기간에 국경을 넘나들며 상견례를 하게 됐다.

특히, 결혼에 굳이 관심이 없어보이던 아들의 최근 행보를 보며,

각자의 동반자가 따로 있고, 또 그 짝과 함께 하게 되는 때가 따로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사랑은, 그리고 삶의 동반자는..



약속하지 않고도 한 곳을 바라보고,




은연중에 같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이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함께,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배려하며 함께 하길 바란다.

:


한때 회원이 147명에 달했던 온라인 골프동호회 [시그너스 친구들].

내가 이 동호회를 만들며 내걸었던 다소 특이한 규칙 하나는, 여성의 경우 부부동반 입회가 아니면 가입을 불허한 것.

남녀 혼성모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을 근원적으로 예방하기 위함이었는데,

결과는 만족스러웠고, 특히 여성회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골프를 중단하며 내가 만든 동호회에서 탈퇴하자,

가까이 지내던 회원들이 수년간 애썼다며 2009년 12월 위로모임을 만들어 준 게 계기가 되어

8년째 격월로 만나며 이제 한 식구가 되어버린 [세월愛].



어제 송년모임의 건배 구호는 "세월을 사랑하며~"


건강상의 이유로 정말 오랜만에 얼굴 본 간매와 재벌,

오랜 정을 잊지 못해 뒤늦게 모임에 함께 해주신 백탄님,

정겨운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불원천리 대전과 태백에서 달려와준 해탈과 점톤,

늘 모임의 최소 정족수를 채워주는 백로,

편안하고 안락한 송년모임 장소를 만들어준 판다,

무엇보다, 8년동안 이어지는 우리 모임의 계기를 제공해주신 망고님,

아울러, 불쑥불쑥 모임의 재정적 지원을 해주신 망고님의 짝지님까지..

모두 함께 해서 무척이나 즐거웠던 시간.



:


30년 40년 50년 이상을 제각각 살다

온라인이라는 좁다면 좁고 광활하다면 광활한 공간에서

30대 40대 50대에 연을 맺은 사람들.



셋이 함께 하는 기회가 1년에 서너 번이 될라나..

송창식의 어느 노랫말 비슷하게

술 마시고 노래 하고 당구 치며 정을 쌓다 보니

어느덧 40대 50대 60대로 시간의 두께가 더해졌다.



각기 1950년대 1960년대 1970년대 출신의 대표주자라는,

우리만의 되도 않는 자부심으로 맞닥뜨리는 당구는

어느 순간 물고 물리는 천적관계가 되어버렸다.

물론, 가급적 티 안 내려는 지능적 경로사상의 산물이겠지만..


렌즈가 보여주는 만큼의 넉넉함이 좋다.

그리고, 늦게 맺은 인연이라 삶이 더 가치있는 거 같다.


:



드림위주 블로그에서 만난 주바리.

그때 드림위즈 블로거들은 참 정감있었다. 때문에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는 오프라인 모임도 자주 가졌고,

그 인연으로 여지껏 만남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데, 주바리 역시 그 멤버 중 하나다.

하지만, 주바리의 얼굴을 직접 마주한 지는 어언 10년이 지났다.


강산이 변한다는 예전 어느 시점에 생각지도 않았던 주제를 들고 나를 찾아왔고,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다소 듣기 거북한 답변을 건넨 걸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의 소재를 다시 파악한 게 약 4~5년 전?

온라인을 통해 만난 아우를 근 5~6년 만에 다시 온라인에서 만난 거다.

그동안 이 아우는 많은 변화를 겪은 듯했다.

이태원에 제법 알려진 식당으로 자리를 잡은 걸 알았음에도, 한번 들른다고 맘만 먹은 지 3~4년.

예전에 함께 일했던, 지금은 사무실이 한남동인 후배와 연락이 닿아 벼르고 별렀던 이곳을 찾았다.



[심야식당2 주바리 프로젝트].

10년도 훨씬 전에 사용하던 본인의 닉네임을 달고 개업한 식당.

페이스북을 통해 대화는 주고 받았지만, 얼굴을 마주한 건 대충 10년만이다.

그럼에도 전혀 시간의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고 친근하게 맞아준 주바리가 고맙다.



동행했던 후배를 보내고 오랜만에 둘이 대화 보따리를 풀면서 마신 맥주들.

이거 모두 수입 맥주던데 "10년만에 형님 만났는데.."라며 자기가 내는 거라니..

후배와 함께 하며 마신 건 자기는 아직 번다며 후배가 계산하고, 후배 보낸 후 둘이 마신 건 주인장이 내고..

나, 복 받은 백수 임이 분명하다.


:

과천으로 가는 내내 많이 설레었다.
36년만의 해후니 왜 안그렇겠나.


알아 볼 수 있을까..
우려와 기대감으로 약속 장소로 들어가 둘러보는 순간,
눈길이 꽂히는 백발의 한 분.


78~80년 군 복무시절 모셨던 김용포 대대장님.
군대가 학교 졸업 후 첫 사회생활이었으니, 그러고보면 내겐 사회의 첫 상사였던 분이다.

제대 후 36년만 임에도 첫눈에 서로 알아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정말 우연히 대대장님의 소식을 듣고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1기 후배 우호승 중위(?)와 함께 점심을 모셨다.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 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을 얼마나 또렷이 기억하고 계신지..
많은 이야기를 함께 나눈 시간내내 마치 옛 일기장을 펼쳐 보는 듯한 행복감을 맛보았다.

말씀 편하게 하시라는데도, 극구 이상범 씨.. 우호승 씨.. 라며 경어를 써주신다.


"학교 졸업 후 첫 조직생활이라, 계급만 장교였지 아무 것도 몰랐던 20대 초중반의 철없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이끌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하자,


오히려 "각종 부대 경연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아 온 덕분에 왕자 포병을 만들 수 있었다."고 화답하시며,

동기분들께 36년 전 초임 장교들이 연락해와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고 하니 다들 부러워 하시더란다.


대대장님~ 건강하신 모습을 뵈어 너무 좋았습니다.
내년에 다시 한번 뵙겠습니다.^^


:


33년 전,

우리는 신반포성당 제단 앞에 서있었고,

신부님께서는 우리 두 사람의 손을 포개 놓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이 결합은 인간의 힘으로는 깰 수 없는 결합입니다."


그로부터 정확히 33년이 지난,

묘하게도 요일까지 똑같은 날.

다행히 인간 이 외의 힘이 작용하지 않아

우리는 함께 마라도 성당 앞에 있다.


33년을 굳건히 버텨준 아내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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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보내느라 애쓴 마나님들의 노고를 위로하고자 소심한 남편들이 마음을 모아 만든 자리.

 

우리야 40년 넘는 세월을 통해 걸러진 관계지만,

단지 남편이라는 매개가 연결고리인 아내들은 각기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법 함에도,

남편들의 우정을 생각해 서로 이해하며 맞춰주는 아내들이 더 없이 고맙다.

 

 

아울러, 아내들이 가장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시가와 남편에 대한 뒷 담화를 빙긋이 웃으며 경청하는 우리 친구들의 넉넉한 마음도 좋다.
육십 갑자를 한 바퀴 돌다보니 그리 되나 보다.

도량 넓은 부부들의 즐거운 수다 자리가 오래도록 건강하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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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일, 눈이 왔다. 그리고 그 날,
설경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오랜만에 찾은 [왈츠 앤 닥터만]에서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직원 한 분이 반가이 내게 다가온다.
"혹시 삼성에서 교육을 담당하셨죠?  이..상..범 선생님 이셨던가.."
순간.. 시간을 거스르며 아스라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응답하라 1988년 가을 쯤.
호텔신라에서 서비스 직종 직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 마인드]를 주제로 4시간 강의를 했다.
강의를 마치고 나오니 로비에서 기다리던, 다소 연배가 있어 보이는 분이 인사를 건넨다.
"오늘 강의 너무 잘 들었습니다. 좋은 내용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경우 무척이나 고맙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내용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다는 보람과 함께,

'내가 오늘 헛된 말장난을 하진 않았구나' 하며 안도하게 된다.

사실 매일 서비스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서비스 마인드]라는 내용은 듣기에 따라 진부하고 뻔한 얘기일 수 있다.
그런데, 나보다 한참 연배가 위로 보이는, 베테랑의 면모가 느껴지는 분이 그리 인사를 건네 주신 게

그 어떤 교육생의 덕담보다 내 기억에도 고맙게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또 6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주말 조안면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강변 자전거도로를 따라 산책을 하던 중 마주친

[왈츠 앤 닥터만]의 창문 너머에서 그 분의 모습을 발견하곤 반가운 마음에 들어 갔다.

 

잊지않고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는 노효식 지배인님.

 

 

올해 일흔 넷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정정하신 모습.  

이 연세에 아들 딸, 나아가 손주 뻘 되는 고객들에게 서빙을 하며 여전히 밝은 삶을 영위하시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커피를 대접받은 아내가 고마움에 "어떻게 이렇게 기억을 하세요? 기억력이 무척 뛰어나신가 봐요.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를 건네자

돌아온 답례.

 

"워낙 강의가 좋았거든요. 제가 그 걸 못 잊죠~"

 

돌아오는 길에 어깨에 뽕을 잔뜩 넣고 아내에게 일갈했다.

"내가 어떤 강사였는지 알겠지~^^"

 

 

노효식 지배인님~ 잊지않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며,

늘 이렇게 밝고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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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중 부장을 처음 만난 건,

그가 르네상스 호텔 옆 골목의 일식당 [小島]에서 주방장 보조로 일하던 1993년 쯤이었던 거 같다.

 

성실하고 사근사근하다는 것.
단순히 직업으로서가 아닌, 하는 일에 대해 무척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 내가 그에게서 받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후 어느 날 들렀더니 보이지 않아 내심 서운했던 그를 다시 만난 건 7~8년이 지난 2005년.
아는 곳이 있다는 친구를 따라 들른 일식당의 오너가 되어 있는 그를 만났을 때 얼마나 놀랐던지..
너무 반가워하는 우리 두 사람을 보며 오히려 어안이 벙벙해 하던 친구의 모습이 재밌었다.

 

그 후 다시 7~8년 만에 들른 [사까미야].

 


세월의 흔적이 배어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너무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반가이 맞아주는 윤재중 부장.

 

수 많은 요식업종이 명멸하는 이 힘든 시기에 한 곳에서 18년간 식당을 유지할 정도로

요리 실력과 경영 능력을 인정받은 오너 셰프지만 그의 명찰은 여전히 윤재중 부장이다.

 

참치뱃살을 비롯한 각종 회는 물론, 참복에 무안 세발낙지,

항아리를 통째로 들고와 테이블에서 직접 다져주는 저온에 장시간 숙성시킨 흑산도 홍어까지.

 


정성이 느껴지는 다양한 그의 요리에 모처럼 행복한 미각을 느낀 시간이었다.

어디서든 그 맛을 못 잊을 정도로 내가 최고로 꼽는, 참치를 다진 그의 데마끼를 맛보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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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를 확인하던 화원 주인장이 놀란다.

하긴..  혼자 이 기간을 채우지 못 하는 경우도 많은데,
66년을 함께 한다는건 서로에 대한 배려,
건강과 정서의 공유없이는 쉽지 않은 일....


그런 의미에서 두 분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할만큼 축복 받으신 건 맞지만,
그 기간 남 모를 슬픔은 왜 없었겠나.

자녀 셋을 잃고도 꿋꿋하게 마음을 추스리며
세월을 인내하신 두 분께 존경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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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즐기다가도
해가 바꾸는 순간 타이밍 맞춰
새해 인사를 건네주는 아들.

자신들의 바쁜 일상 속에서도...
매 순간 부모를 챙겨주는 아이들.

긴 시간 함께 한 교감이라 생각하니
전하고픈 교감을 이해하고 받아준 마음이 고맙다.

늘 건강하게 앞으로는 우리보다
본인들이 꾸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탄력있는 삶을 꾸려 나가길 소망한다.

엄마 아빠는 우리끼리 잘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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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ect  Shave라는 면도용품 kit.

 

대개 면도시에 shaving foam만 사용하는데 반해,
면도 전 바르는 오일과 면도용 크림 그리고 면도 후 바르는 연고로 구성되어 있어,

피부가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안 그래도 면도기를 새로 구입할 예정이었는데, 마침맞은 선물.

사용 만족도가 높으면 더 좋은 걸 보내주겠다는데,

더 좋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
면도기가 더 멋있다는? 아님,
바르는 용품이 더 고급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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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한창 사회활동을 하실 때 간간히 주례를 서셨는데,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혼부부가 인사를 왔을 때 아버지는 신부에게 팁을 주셨다.

 

"시부모에게 사랑받는 방법 하나 알려줄까~   신랑 생일에 시어머니께 '어머니께서 고생하신 날이잖아요~' 하며

 작은 선물이라도 하면 무척 좋아하실거야. 이건 내 며늘아이에게 배운 거야."

 

그랬다. 결혼 후 처음 맞은 내 생일이래 여지껏

아내는 내 생일에 내 선물은 안 챙길지언정 어머니에 대한 선물을 잊은 적이 없다.


"오늘 애비가 한 게 뭐가 있어요. 어머니께서 애쓰신 날이잖아요. 애비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결혼후 처음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뭉클했다.
부모님께서도 생각치 않았던 며느리의 행위에 적잖이 놀라셨던 모습이 생생하다.

 

아내 자랑?
아내 자랑일 수 있다.

하지만, 만으로는 스물 다섯이 채 안 된 나이,
우리나이로 하더라도 스물 여섯의 나이에 어떻게 그런 지혜로운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육십이 된 지금 생각해도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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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장에서 부장으로 있을 때 신입사원으로 만난 송현중. ROTC로는 20기수 아래 후배다.
국내에서 사회생활을 오래 하지 않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난 이 친구의 소식을 접한 건 페이스북을 통해서다.
우연히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 시카고에 자리 잡았다는 소식을 알게 됐고, 언제 한국에 오면 한번 보자는 댓글을 주고 받았는데,

9월 토요일 늦은 시각에 거짓말같이 연락이 왔다.  비즈니스로 잠시 들어왔는데 뵙고 싶다고.

 

그렇게 수서에서 함께 한 자리.
서로의 근황과 함께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기억도 안나는 이야기를 한다.

 

"그때 부장님이 제게 물으셨습니다. '현중氏는 자기계발을 뭘 하나? 지나고보니 많이 아쉬운 게 나를 위한 투자를 못 한 거야.

아직 젊으니 자기계발 해야지. 뭘 할 건지 결정하고 보고해~' 그래서 제가 학원 등록을 하고 말씀드렸더니,

부장님이 김재호 과장을 불러 '김 과장~ 송현중氏 일주일에 무슨무슨 요일은 학원가야 하니 그날은 무조건 일찍 퇴근시켜~' 그러셨어요.

그 다음부터 김 과장님이 그날만 되면 '야~ 퇴근해~' 그러셨네요.

그러면서 '부장님 엄청나게 질문이 많으신 분이다. 보고할 때 준비 철저히 하라' 고 교육시키셨어요.

 

그리고 부장님이 늘 강조하셨던 말이 '모든 것에 왜? 라는 궁금증을 가져라.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한 생각을 해라' 고 하신 걸 아직 담아두고 있습니다."

 

나는 기억도 안 나는 말을 기억한다는 것도 새삼스럽지만, 직장에서 상사가 늘 좋은 말만 했겠나...

그럼에도 좋은 말만 기억해준 후배가 너무 고맙다.

 

오스템 임플란트 시카고 지사장으로 맨땅에 헤딩하 듯 시카고에 한국 의료제품 시장을 확보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년부터 독립하여 치과관련 재료 납품 비즈니스를 한다는데, 나름의 계획과 함께 특유의 투지가 미래의 성공을 기대케 한다.

 

정말 몇 년만에 귀국해 만날 사람이 많을텐데도 잊지않고 연락준 그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현중氏~ 잊지않고 연락주어 고맙고, 만나서 너무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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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금토동 달래네길에 [두둑한상]이라는 두부요리 전문점이 생겼다.
달래네길에 생긴 표지판을 보고 정식 오픈도 하기 전 찾아간 게 인연이 되어 알게 된 [두둑한상]의 젊은 오너 이원일 대표.

제법 단골 티도 내고 나름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끼며 지냈는데, 언젠가 오랜만에 찾아가니 업종이 바뀌었다.
무척 아쉬웠고, 늘 순수한 웃음의 젊은 사장의 거취도 궁금했는데...

 

어느 날 TV를 보다가
@ㅁ@~~ 깜놀...
요즘 대세 프로인 셰프들의 요리 경연 화면 속에 보이지 않는가.. 이원일 대표가 아니라 이원일 셰프의 모습으로.

 

너무 반가웠지만, 마음 뿐 딱히 연락을 취할 방도도 없어 매주 화면 속에서 만나는 걸로 만족하고 있다가,

아내가 100% 호밀빵을 제조하는 곳을 알아보다 이대 앞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어제 빵 구입차 찾아가 만난 이원일 셰프.

 


이미 유명 스타 셰프가 되어 찾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그래도 옛 기억을 잊지 않고 문 밖까지 나와 반갑게 맞아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미국을 들어가게 되어 부득불 [두둑한상]을 접었고, 이제 다시 본업인 한식당을 오픈하기 위해 장소를 알아보고 있다는 이원일 셰프.

이번 추석 때 한식요리 인가를 위해 뉴욕에 간다는데, 셰프 전성시대인 요즘 한식이 전문인 그가

우리 요리를 널리 알리는 젊은 전도사가 되길 바란다.

 

* 두둑한상에 대한 기억 [www.kangha.kr/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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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절친한 대학동창들은 재수하여 대학에 들어온 친구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재수가 허물은 아니니 친구들이 다 이해해 줄 거라 믿고)

이 말인즉슨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많다는 얘기.

 

대학시절 술자리에서 친구들이 가끔 놀리는 경우가 있었다.
"이상범~ 어린 사람과 놀아주는 걸 영광으로 알어~^^"

 

40년이 지나서야 이제 내가 친구들에게 보복(?)을 한다.
"니들 영광으로 알아~ 요즘 젊은 사람 누가 노땅들 상대해주냐~ 나니까 놀아주는 거지..^^"

 

세상에 태어나는 건 순서가 있지만 세상을 뜨는 건 순서가 없다는데,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겠나.
먼저 가면 가장 많은 친구들의 환송을 받을테고,

끝까지 남은 친구가 홀로 친구들 뒤치닥거리 다 해줘야 하니, 뭐가 좋고 나쁘고도 없을 듯하다.

언젠가일지 모를 그때까지 조물주의 제비뽑기를 다들 즐겁게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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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이태리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내친 김에 아내에게 母女여행을 권했다.

아이가 고등학교 때는 입시 준비로,

대학을 들어가서는 특수한 전공으로 인해 함께 할 시간이 적었고,

졸업후에는 유학으로 아예 마주하질 못 했으니,

딸아이가 자주적인 思考를 한 이후로 母女만의 시간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앞으로 역시 함께 할 시간이 쉽지 않을 거 같아서다.

엄마와 딸의 여행은,
자라고 키우면서 서로가 서운했고 아쉬웠던 부분에 대해 이해하고,

아울러 그간 미처 생각치 못 했던 서로의 이면을 인식하는 데도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母女의 여행은 母女뿐 아니라, 남겨진 父子에게도 긍정적인 좋은 의미를 안겨 주었다.

엄마가 깨우지 않으면 일어날 줄 몰랐던 아들은 이전보다 먼저 일어나 씩씩하게 출근을 하고,
나역시 아내의 일상을 부분적이나마 체험하며 아내의 존재와 빈 공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아내가 떠나기 전에는,

사람 만날 생각으로 집에서 식사할 일이 별로 있겠나 싶었는데,

오히려 집에 충실해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홀로 남아 외로움을 느낄 꼬맹이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2001년 나의 유럽 배낭여행 이후 가장 오랜 기간 떨어져 있는 차제에 홀로서기 생존체험(?)을 해보고 싶었다랄까..

이제 오늘, 24일 만에 母女가 돌아온다.

요 며칠 아내 맞을 준비에 바빴다.
처음 장기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에게, 최소 3~4일간만이라도

집안 일 신경 안 쓰고 여행의 여운을 음미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부터 챙겨봐야 할 항목을 list up 하며 떠오른 것은 易地思之(역지사지).
체크리스트의 일들이 나에겐 일종의 이벤트(?)지만,

아내에겐 식구들을 위해 늘상 반복되는 일상이었다는 생각이 드니, 고맙고 미안했다.

아래 체크리스트를 통해 남자들은 (아내든 어머니든) 평범한 주부들의
(밥과 빨래라는 가장 기본적 일 외에)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에 대해 한번쯤 인식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뭐.. 이거 외에도 넘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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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만년필을 무척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필체가 좋은 편이 아니기에 만년필을 사용하면 그래도 정성들여 필기를 할 거같은 기분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때 만년필에 대한 일화.

 

근무하던 빌딩 지하 삼성플라자에 몽블랑 코너가 있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물었다.

 

- 남대문 수입상가와 가격 차이가 크네요..
> 거기 물품은 가짜가 많죠.
- 저희가 보기엔 똑 같던데 구분이 되나요?
> 그럼요.. 저희야 딱 보면 알죠~

 

한 달 후,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몽블랑 만년필을 구매후 삼성플라자 몽블랑 코너를 찾았다.

 

- 이거 생일 선물 받은 건데, 제가 가는 촉을 쓰거든요.
  혹시 F촉이 있으면 교환 가능할까요?
> 어디서 구매하신건데요?
- 삼성동 현대백화점에서 교환하면 된다던데, 제가 사무실은 이 건물이지만 집이 불광동이라..
  보면 아시겠지만 한번도 사용은 안 했고요.

 

이리저리 살피더니 내가 원하는 것으로 바꿔준다.

쥐뿔~ 남대문 제품은 가짜가 많고 척 보면 안다더니..


내가 구매한 게 정품인지 짝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난 소위 정품을 보증한다는 것과 교환을 한 셈이다.
(그 몽블랑은 미국에서 조카가 왔을 때 선물로 줬다)

 

최근 다시 만년필을 쓰고 싶어 찾아보니 예전에 사용하던 것과 선물받은 것들이 나온다.
모두가 오래된 모델들이지만 그래도 정겨운 게 뭔가 자꾸 메모를 하고 싶어지면서

스마트폰으로 인해 멀어졌던 다이어리도 챙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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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오스트리아 여행 계획이 있다며 오스트리아에 대한 tip을 묻는다.

문득 14년 전 유럽배낭여행이 떠올라 포스팅했던 블로그를 뒤져보니 새삼 여러 생각이 든다.

 

배낭여행을 다녀 온 것은 2001년 11~12월.
당시는 블로그가 활성화되기 전이기도 했지만,

여행기를 블로그에 포스팅한 시기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7~2008년이다.

6~7년이 지나서도 나름 생생한 여행기를 올릴 수 있었던 건 나의 여행습관인 기록의 힘이 컸다.
노트 두 권에 빼곡하게 적힌, 보고 듣고 느끼고 행한 세세한 내용을 읽는 순간

몇 년 전의 여행이 생생하게 복기된다는 게 스스로 놀랄만큼 신기했다.

 

여행을 준비하며 큰 맘먹고 구매한 니콘 쿨픽스 카메라.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최신형 300만 화소 디지탈 카메라로 60만원 이상을 주고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2000만 화소급 미러리스 카메라 가격이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도 대부분 800만 화소 이상이니,

300만 화소 카메라는 거저 준다 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다.

 

더 놀라운 격세지감은 디지털 카메라용 메모리카드의 용량.
역시 당시에는 최고 용량이라고 구입한 카메라 메모리카드의 용량은 무려(?) 256MB.
1G 용량도 서랍 속에 썩혀 있는 요즘 같으면 "그거 가지고 뭘 찍어?" 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겠지만,

요즘엔 말도 안되는 그 용량으로 5주 이상 유럽의 이곳저곳을 참 열심히도 담았다.


용량 확보를 위해 사진 사이즈 줄이고, 매일 밤 숙소에서 사진을 리뷰해서

맘에 안 드는 건 삭제 처리하면서 살아남은 사진들. 256MB 용량의 극악한 환경에서 버젓이 살아남아

그럴 듯하게 블로그를 장식한 300만 화소 사진들이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여행기 내용을 읽어 보면 왜 그리 띄어쓰기의 오류가 많은지..

마음이 급했던 건지, 당시 내 문법적 두뇌 회로에 장애가 있었던 건지..

언제 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추억여행도 할 겸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 가며 오류를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배낭여행시 시용했던 카메라가 생각나 니콘 사이트에 들어가 찾아보니 14년 전의 모델이 나온다.

내 기억에는 쿨픽스 990모델에 300만 화소였는데, 990 모델은 없다.

사진 950 모델의 스펙을 보니 210만 화소다. 내가 잘 못 알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생김새는 딱 얘다.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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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로부터이든 칭찬받는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중에도 내가 느끼는 가장 큰 칭찬은 가족들에게 받는 칭찬.

아내, 아들, 딸에게 받는 칭찬이 즐거운 건,
가장 긴 시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러기에 가장 잘 알기도 하고, 반면에
뒤집어보면 습관적 타성으로 무심할 수도 있는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았기 때문.

"스쿼트할 때 이 자세가 맞아요?"
"아빠가 운전은 잘 하지. 주차는 예술이고~"
"난 왜 당신하고 다니면 뭐든지 해결될 거 같다는 생각에 걱정이 안되지.."

립서비스라 하더라도
나는 이런 말에 에너지가 솟는다.

딸아이가 맘에 드는 가방 몇 개를 고른 후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는 이 중에 어떤 게 난 거 같아?"
"아빠한테 물어 봐. 이런 건 아빠가 감각이 있으니까"

감각은 아내가 나보다  월등하다.
단지 아내가 나의 센스를 믿어준다는 게 기쁘다.

"내가 예능적인 면은 아빠에게 받았나봐.
아빠 나이가 육십인데도 지금도 음악이 나오면 화음을 어떻게 넣을지 생각하잖아~"

"미증유가 무슨 뜻이예요?"
"자기소개서 작성한 거 한번 봐주세요"

뭐든 던지면 문제 해결이 될거라 믿어주는 가족이 있는데,

언제 뭘 물어올지 모르니 모든 걸 게을리 할 수가 없다.

내 탐구의 원천이자, 변화를 추구하며 새로움에 적응해야 하는 이유 역시 가족의 칭찬이다.

같은 이유로 나 역시 가족들에 대한 칭찬에 넉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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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한테만 말하는 비밀인데요..

 아빠가 엄마보다 오래 사셔야 돼요~"

왜냐고 물으니,
아빠가 엄마 뒤치다꺼리 다 하고 가야 한단다....
짜식이..  결국 엄마 편이라는 얘기네..

얌마~ 네가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다.

네 뒤치다꺼리까지 다 해줄테니 염려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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