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1년에 한번씩 메가폰을 잡는 이준익 영화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최석환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여주인공이 없다는 것.

여운이 남는 엔딩씬.

그리고, 최근에는 음악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된다는 것.

 

이 영화에 대한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작가였다.  역시 최석환. 

[님은 먼 곳에]의 시사회 날, 이준익 감독은 매우 초조한 모습을 보인 반면,

최석환 작가는 시사회를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기자들이 이유를 묻자, 그가 한 대답은 이랬다.  감독이 잘 만들어 줬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이준익 = 최석환]의 변함없는 공식을 이어가는 것이리라.

괜히 이준익 감독이 만든 최석환이 아닌 다른 작가의 영화,

이준익이 아닌 다른 감독이 만든 최석환 작가의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지금 같아서는 언젠 그럴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이준익의 영화에 여자는 없다.  이준익의 영화는 늘 남자만이 존재했다.

수애는 이준익 작품의 첫 여주인공이다. 

때문에 첫 여주인공 선정에 이준익 감독은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준익의 첫 여주인공 수애는 그런 의미에서 의외이기도 하지만, 역시 이준익답다는 생각도 든다.

이준익의 캐스팅은 늘 최고 브랜드보다는 최고로 느껴질 수 있는 최적의 브랜드를 선택했다.

또 그런 사실을 알기에 수애 역시 많은 부담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이준익의 선택은 틀리지않았다. 수애는 이준익이 보여주고 싶었던 영상에 잘 녹아들었다.

시골의 순박한 새색시 순이가 촌티나고 동작 뻣뻣한 위문단 가수에서 섹시한 가수 써니로 변모하는 -
어찌보면 순이의 내재되었던 끼가 발산되는 과정을 
수애는 무리없이 보여주었다. 
마무리 부분, 상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보여준, 엇갈리는 애증이 함께 담긴 눈물어린 눈빛은 
수애가 보여준 최고의 씬이 아니었나 싶다.

 

정진영을 이준익의 남자라고 하면 어폐가 있을까... 
[황산벌]에서 기개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무장 김유신,
[즐거운 인생]의 무기력하면서도 꿈을 쫒는 순박한 가장 기영을 잘 나타낸 정진영.
이번에는 자기 목표를 위해서라면 의리와 신의까지 내던지는 비열한 정만을 맡아 양아치의 정수를 보여준다.


영화는

원치않은 결혼을 하게된 두 젊음을 전장으로 옮겨놓는다.

남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월남으로 떠나고,

여자는 시어머니에 대한 항거로 애정도 없는 남자를 찾아 월남으로 떠난다.

 

순이는 월남을 가기 위해 위문공연밴드의 가수 써니가 된다.

살아왔던 방식과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써니.

무대에서 노래하는게 어색하고, 그래서 뻣뻣한 시골처녀는
파월 한국군을 대상으로 한 첫 위문공연에서, 파병용사들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 즐기는 분위기에 편승해
차츰 어색함을 덜어가며 밴드 싱어로서 자리를 잡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도 자기가 월남에 온 목적을 망각하진 않는다.

결국 목적으로 했던 남편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 써니는 본래의 순이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순이에게 전장은 단지 남편을 찾기 위해 찾아간 총격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는 두려운 장소 일뿐,
이념이나 적이라는 전쟁의 개념은 없다.


 

[님은 먼 곳에]가 테마음악인줄 알았던 이 영화의 음악은 뜻밖에도 두개의 Main Theme Song으로 구성된다.
[님은 먼 곳에]와 [Danny boy].

 

써니가 부르는 [님은 먼 곳에]의 정작 먼 곳은,
정만이 떠나간 월남이 아니라, 순이에게서 떠나있는 정만의 마음이었다.
 
헬기에서 부르는 [님은 먼 곳에]를 듣는 순간 갑자기 짜릿한 전율을 느낀 것은 순이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

하지만, 영화 [님은 먼 곳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애증만이 아니다.

감독은 전쟁이라는 배경을 통해 알리고 싶은게 있었다.

증오하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심리변화를 보이는가를 두 젊은 군인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개인의 가치관과는 무관하게 국가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유도 모르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청년들의 아픔도 보여준다.

 

시골목동이 도시로 떠나는 사랑하는 소녀와 헤어지기 안타까워 부르는 이별 노래인 아일랜드 전통 민요
[Londonderry Air]를, 전쟁터에 나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애틋한 마음으로 개사한 [Danny boy].

 

이렇게 두 음악은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Two Track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님은 먼 곳에]는 전반적인 줄거리 흐름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의미없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꼭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없어도 영화의 전개에 전혀 무리가 없는 장면.

- 지하 땅굴에 은닉하고 있는 월맹군이 그 지하  땅굴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교육을 시키는 장면이다.

굳이 없어도 될 이 장면을 집어넣은 이유가 뭘까?

-  

선과 악의 개념을 떠나 어느 민족에게나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바로 이런 부분이 이준익다운 이준익의 감성 브랜드다.

 

영화가 종반으로 갈수록 궁금해지는 엔딩씬.  이번엔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역동적인 움직임의 칼라화면은 서서히 파스텔톤으로 변하며 일순 모든 움직임이 정지된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변하는 색채는 결국 흑백의 Mono Tone으로 마무리한다.

이런 처리는 여지껏 보여졌던 모든 영상이 마치 순이가 돌아본 과거의 회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정만 순이는 그 후 잘 살고 있는건가?   아님, 그렇게 헤어진건지

 

[님은 먼곳에]는 전반적으로 이준익 특유의 잔잔한 감성을 느끼게 하지만,
이전 그의 영화와는 달리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어디선가 임팩트가 부족한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공허하게 비어있는 순이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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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과 [名不虛傳(명불허전)]이라는 사자성어는

대단하다고 알려진 것의 실체에 대한 각기 다른 진실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국내최고의 안락한 시설을 자랑한다는 상영관의 좌석에 앉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 놈 놈]이라 표현)의 상영을 기다리며,
나는 이 영화에 어떤 표현이 어울릴지 호기심이 났다.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라는 국내 톱스타들의 共演이라는 점에서
헐리우드 최고스타들을 모은 [오션즈일레븐]이 생각나기도 했던 영화.

 

시작은 좋았다.

비밀지도에서부터 시작되어 빠르게 전개되는 화면은 처음부터 뭔지모를 음모의 냄새를 풍기며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고, 이어지는 만주벌판의 열차 총격장면에서는 긴박감을 고조시키며
이어지는 두시간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게 정점이었다.

그 뒤 영화는 보여주는 액션으로 관심을 유지시키다가 영화 중반 이후 만화가 되기 시작한다.

 

줄거리가 아닌 화면으로 보는 영화 [놈 놈 놈].

이 영화는 줄거리로 보면 재미가 없다. 
전반적으로 Plot 이 치밀하지 못한데, 특히 생각보다 스토리구성이 약하다.

영화 초입부에 보여준 비밀지도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쫒고 쫒기게 만드는 도구일 뿐,

영화의 줄거리에 미치는 의미는 없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비밀지도에 좀더 의미를 부여하여 지도가 스토리전개의 줄기가 되게끔 섬세하게 연결을 시켰더라면,
이 영화는 단순히 액션 뿐만이 아니라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까지 제공하여
관객의 눈만이 아닌 두뇌까지 자극하는 더욱 밀도있는 영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게 부족했기에 [놈 놈 놈]은 화면으로 보는 영화가 되어버렸는데,

화면으로 보는 영화의 특징인 액션도 처음의 팽팽한 구도가 후반으로 가면서 흐트러진다.

긴 시간 이어지는 일본군의 대규모 추격장면이 오히려 영화를 산만하게 만들었으며,

코믹액션물이 아닌 정통액션물에서의 코믹스런 부분은 감칠 맛 나는 수준으로 이입되어야 함에도

독립군을 사칭한 주점에서의 다소 엉성해보이는 코믹상황은 오히려 영화를 어설프게 만들었다.

 

산만할 수 있는 영화를 잡아주는 각기 다른 개성의 세 주인공.

[이상한 놈] 윤태구役의 송강호는 카리스마와 코믹스러움의 이질적인 두 모습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구사하며 송강호 만의 연기영역을 더욱 공고히 했다.

 

[좋은 놈] 박도원을 연기한 정우성.

어찌보면 이 영화는 정우성의 배역을 위한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우성은 매우 폼나게 나온다.

로프에 의지해 공중을 날며 사격술을 자랑하는 모습이나 패거리가 없이 혼자 적을 섬멸하는
독고다이 모습을 보이는 것 등 싸움꾼으로서의 우아한(?) 모습은 모두 그의 몫인데,

특히, 대규모 일본군의 진영을 혼자 거꾸로 돌파하는 모습에서 그는 만화 속의 수퍼히어로가 된다.

하지만, 말을 달리며 장총에 실탄을 장전하는 모습이나, 또 장총을 회전시키며 장탄하는 멋진 모습은
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고, 촬영 중 고생은 정말 제일 많이 했을거 같다.

 

[놈 놈 놈]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이병헌이다.

크고 맑은 눈과 시원한 미소로 선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때로는 우수에 젖은 눈으로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이병헌이
[놈 놈 놈]에서는 나쁜 놈 박창이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최고라고 자부하면서도 내면에는 콤플렉스를 안고있는 악역을 보여주기 위해 평소 보여지던
그의 눈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광기어린 눈빛에 뺨의 흉터와 긴 앞머리를 더해
이미지변신을 꾀했는데,
특히, 이병헌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놀랄 정도의 근육질 몸매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한몫을 한거 같다.

이런 그의 변신에 대한 노력과 열정이 헐리우드까지 진출한 연기자로서의 그의 미래를 밝게 하는게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배용준과 대비된다.

 

 

[놈 놈 놈]을 보면서 머리 속을 뱅뱅도는 영화 [석양의 무법자].

 

영화를 보면서 정우성의 연기가 서부영화에 나오는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미지와 많이 닮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난 뒤에는 [놈 놈 놈]이 [석양의 무법자]의 패러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영화는 닮았다.

 

일단 [놈 놈 놈]이 웨스턴스타일 무비인 이유도 있겠지만,

[놈 놈 놈]과 [석양의 무법자]는 그것 말고도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제목.

[석양의 무법자]의 원래 제목은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거의 유사하다.

 

주인공의 캐릭터도 서로 비슷하다.

[좋은 놈] 박도원을 연기하는 정우성은 [The Good] 블론디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많이 연구(?)했다.

담배를 물고, 무표정한 얼굴에 가끔씩 빙긋이 웃는 표정까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조금 말이 많다는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나쁜 놈] 박창이의 이병헌 모습에서 나는 리 반 클립을 떠올렸는데, 리 반 클립 역시

석양의 무법자에서 [The Bad] 센텐자를 연기했다.

리 반 클립의 능글맞은 표정이 돋보였다면, 이병헌은 잔인함이 강조됐다.  

 

두 영화의 또 하나 닮은꼴은 [놈 놈 놈]에서 [좋은 놈]과 [이상한 놈]이 같이 붙어 다니는 것과 같이

[석양의 무법자]에서도 [The Good]과 [The Ugly]과 붙어 다닌다는 점이다.

다른점이라면 중간부터 붙어 다니느냐, 처음부터 붙어 다니느냐의 차이.

 

닮은꼴의 백미는 영화의 두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삼각대결 씬.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있다.

세 주인공 중 [나쁜 놈]은 왜 나쁜 놈인지 확실하게 알겠고,

[이상한 놈]은 하는 행동이 이상한거 같으니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거 같은데,

[좋은 놈]은 왜 좋은 놈인지를 모르겠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블론드는 가끔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에 [The Good] 같기도 하다.

하지만 [놈 놈 놈]에서의 박도원은 뭘 보고 [좋은 놈]이라고 인식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비슷한 부분이 많아 패러디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놈 놈 놈]을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웨스턴 무비 매니아인 김지운 감독이 한국판 서부활극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의도대로 [놈 놈 놈]은 우리나라에서 보여주기 어려웠던 스케일 큰 액션을
만주라는 광활한 공간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다.
단지 너무 스케일에 치중하다 보니 디테일에 조금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았다는 사람도 많지만,
글쎄
내 입이 짧아서인지 내 입맛에는 감칠 맛이 조금 부족했다.

 

하지만, 열심히 만들었다니까, 나도 열심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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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영화와 담을 쌓고 지냈는데, 요즘 갑자기 땡기는 영화가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일명 [놈 놈 놈],
이준익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대가 되는 [님은 먼곳에]
800억이 투자됐다는 오우삼감독의 [적벽대전] 등등..

그 중에 이미 개봉한 [적벽대전]을 먼저 만나보았다.
경험상 중국영화, 특히 무술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눈만 현란하지 알맹이가 별로 없어
비데오나 CD로 보는게 올바른(?) 관람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영화 [적벽대전]은 왠지 호기심이 갔다.


삼국지가 어떤 작품인가.

수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캐릭터와 변화무쌍한 시대적 상황을 통한 국가간의 이합집산,
그리고 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책략과 병법을 통해 
인간의 처세술은 물론 조직경영에 대한 문제점과 해법을 제시하는  
시대를 뛰어넘는 중국문학의 바이블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우리나라도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건성건성 혹은 만화책으로라도 한번쯤은 읽었을 소설이다. 
어떤 사람은 열번 이상을 읽었다는 사람도 많은데 얼마나 내용이 방대하고 스펙터클한지
읽을 때 마다 색다른 감흥을 받는다고 한다. 
설사 삼국지를 제대로 읽지않은 사람일지라도 등장인물의 이름과 주요내용은 어느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적벽대전은 삼국지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수많은 전쟁 중의 하일라이트다.
내가 이 영화에 강한 관심을 갖게된 것도 이 거대한 전쟁이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시아 감독으로서는 가장 브랜드가치가 크고, 액션영화의 거장이라는 [오우삼]이라는 브랜드도
이 영화의 선택에 한몫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우삼의 스케일이 궁금했다는 얘기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의 호기심을 가장 먼저 자극한게 있다.
모든 영화는 영화가 시작될 때 제작사, 배급사 등과 제작 스탶의 이름이 자막으로 소개된다.
이때 제작스탶은 가장 중요인물인 감독의 이름이 가장 나중에 소개되지만,
곧이어 등장하는 배우들은 주연부터 소개된다. 
여기서 주연이라 함은 배우의 명성보다는, 작품을 풀어나가는 중심이 되는 배역을 이름은 당연한 얘기.
더블캐스팅으로 주연급 배우가 여러명 등장하는 경우에도, 소개되는 자막의 순서는 배역의 비중을 우선시한다.

삼국지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질문에 대부분은 [유비]라고 답한다.
함께 도원결의를 한 관우 장비도 있지만 그중에서 유비가 서열이 제일 위이고,
조조 역시 유비와 더불어 삼국지를 이끄는 양대축이지만 악(惡)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유비에 밀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유비라고들 인정을 하면서도, 
삼국지의 내용인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제갈공명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삼국지는 사실상 제갈공명이라는 초능력자의 천재성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 [적벽대전]에서는 양조위(주유) 금성무(제갈량) 순으로 소개가 됐다.

왜일까?? 
그것은 천하의 제갈공명일지라도 적벽대전에서 만큼은 주유의 힘을 얻지 못했으면 승리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주유의 비중이 큰 전쟁이었기에 먼저 소개를 한건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이유를 달아보았다.
아무튼 나에게는 흥미로운 대목이었는데, 정작 주유는 영화시작 후 50분이 지나서야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는 생각만큼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중국영화에 대해 가졌던 [혹시나]가 [역시나] 였다고 표현하면 지나친 비하가 될런지...

하지만, 영화에 대한 감상법을 조금만 달리하면 그런대로 흥미로울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영화의 구성에 포커스를 두지말고, 알고있는 삼국지의 내용에 포인트를 맞춘다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소설을 통해 그간 머리 속에 축적되어 있던 삼국지의 내용과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영화에서 보여지는 영상과 대비시켜 보는 것이다.

삼국지의 주요인물 중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조조]다.
뒤를 이어 조자룡, 유비, 제갈량과 장비 관우 등이 등장하는데,
보여지는 인물과 머리 속에 담겨있던 상상의 인물과 이미지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장비는 내가 생각했던 장비와 흡사했고, 관우는 내 머리속의 관우에 비해서는 체구가 조금 작다는 느낌.
조자룡은 생각보다 조금 볼륨이 있는거 같고.

또 하나 재밌게 본 것은 주요인물이 사용하는 무기.
조자룡은 '조자룡 헌창 쓰듯 한다'는 말에 걸맞게 시종일관 창으로 승부를 하는데 근접전에서는 짧은 칼을 쓰기도 한다.
관우의 주무기인 청룡언월도도 비교적 묘사가 잘된거 같은데,
장비의 무기인 장팔사모는 영화에서 특색있게 보여지지않아 좀 아쉬웠다. 


영화의 내용은 별게 없다.

도입부에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구하는 장판교전투의 모습이 보여지고,
그 다음은 제갈공명이 손권에게 동맹을 청하러 가 주유와 의기투합하는 내용.
그리고 팔괘진을 이용하여 조조의 기병과 보병을 몰살시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검을 이용한 중국 전쟁영화가 그렇듯 화면 가득 피가 튀는 모습이 좀 역겹고 식상감을 주며,
가끔 너무 어설퍼보이는 C/G 화면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공중에서 보여지는 팔괘진법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보인다.
영화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엑스트라를 대상으로 꽤나 많은 진법훈련(?)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규모의 수전으로 위장하여 육지에서 유비와 손권의 동맹군을 치려던 조조의 계획이 실패하고
이제 본격적인 수전인 적벽대전에 들어가기 전 영화는 끝난다.

그때 곳곳에서 들려오는 장탄식과 궁시렁거림...  '어~?? 뭐야~~??'  '뭐 이래..??'

몇년전 [반지의 제왕] 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느꼈던 허탈함과 내가 내뱉은 말과 같다.
그때 반지의 제왕이 3부작이라는걸 모르고 왔다가 영화의 이상한 종결에 어리둥절했던 것 처럼
이번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적벽대전이 2부작이라는걸 몰랐던 모양이다.
적벽대전이라는 영화가 적벽대전 시작도 전에 끝나버리니 황당할 밖에.

그래서 영화제목을 끝까지 자세히 봐야한다.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  
이 영화는 제목에 충실하여 시작을 알리며 끝난다.
2부에서 본격적인 적벽대전이 보여질거 같은데, 제작비 800억원도 2부에서 쓰여지는 모양이다.

내가 내리는 결론은, 1부를 굳이 보지않아도 2부를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거 같으니
중국영화는 별로이면서도 삼국지에 소개되는 적벽대전이라는 이름때문에 이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나같은 사람들은 1부는 나중에 CD로 보시고 2부를 기다려도 괜찮을거 같다.

사족 - 금성무는 정말 멋지게 생겼다. 빙긋이 웃음짓는 모습도 매력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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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에 편협됨이 없이 양쪽의 말을 다 들으라는 것이며,

남에게 해가 되는 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라는 것이며, 

한마디 말하기 전에 두마디를 들으라는 것이다.
: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주인의식을 가지라.' 는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특히, 신입사원에 대한 높은 분의 훈시에는 거의 단골로 사용되는 단어가 [주인의식]이다.

하지만, 나는 강의를 다니면서 주인의식을 강조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것은 의미가 없다고 [주인의식] 의미를 다소 폄하(?)하곤 했다.

신입사원이든, 중견사원이든, 혹은 신임간부사원의 교육과정에 강의를 나갈 때 나는 이런 내용을 전하곤 했다.


여러분들은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주인의식...  이 말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주인의식이란 표현은 여러분에게 적합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강조해도, 똑똑한 사람은 자신이 결코 이 조직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나는 내가 주인에게 가장 인정받고 신뢰받는 주인의 바로 밑에 까지는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내가 이 회사의 주인까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회장께서 언젠가 여러분들 중 한사람에게 이 회사를 넘겨주실거라고 보는가?  
나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이렇게 열심히 주인의식을 갖고 일 했는데
왜 내게 주지않느냐고 불평한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일이고...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강조를 하면 똑똑한 머슴들은 오히려 냉소를 보이며 생각할 것이다.
'내가 주인이 못된다는거 뻔히 알고있는데, 왜 이리 사탕발림으로 꼬시시나...'

반면에, 무지한 사람은 주인의식을 가지라면 정말 자기가 주인인걸로 착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모든걸 자기 멋대로 하려하고, 회사비품도 집에 가져가려 한다. '내가 주인인데...' 하면서.

때문에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말은 이래저래 의미가 없다.
그럼, 여러분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하는가...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의식이 아니라, [주인공의식]이다.

드라마에는 꼭 회장만이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높은 위치의 사람들은 조연이하일 경우가 많다.
드라마 주인공의 신분은 무척 다양하다.  평범한 회사원역도 있고, 시골의 머슴역으로도 나오고,
여러분과 같은 신입사원도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며, 성공한 전문직이 주인공으로 설정되기도 한다.

그러면, 주인공 역이 무엇이든, 드라마에서 주인공역을 맡는 연기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연기력이다. 연기력이 뛰어난 사람이 비중있는 역을 맡고 연기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비중이 약한 역을 맡게되는게 섭리다. 가끔 소위 빽에 의해 연기력이 약한 사람이 비중있는 역을 맡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시청자에 의해 퇴출을 당한다.
  
연기력이 좋은 사람은, 바보역을 맡았을 경우 정말 바보같은 표정과 행동을 연기로 보여줌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그 배역이 정말 바보처럼 보여지게 만든다.
바보 역을 맡은 사람이 그 역을 어색하게 느낀다면 그는 시청자들에게 좋은 연기자라는 평판을 들을 수가 없다.
결국 연기력이라는 것은 그 역에 가장 어울리는 행동을 말한다.

그렇게 무슨 역을 맡든 그 역에 가장 어울리는 행동으로 그 역을 돋보이게 하는 사람에게
점점 비중있는 배역의 기회가 주어지고, 그런 단계를 거치면서 출연료도 올라가게 된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높히며 스타로 자리잡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높은 연기력을 인정받기까지에는, 연기에 대한 열정과 노력,
그리고 포기하지않는 집념이 필요하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이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게되든, 또 하는 일이 마음에 들던 안들던 간에
그 역할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 해라.
좋은 배우는 마음에 들지않는 역할에도 최선을 다해 좋은 연기를 보이려 노력한다.
여러분도 '내 배역이 주연이고, 내가 주인공' 이라는 생각을 가져주기 바란다.
설사 누가 쉽게 알아주지 않더라도 무명의 긴세월을 이겨내고 정상에 선 연기자들을 생각해보자.
연기자가 배역에 충실하며 연기력을 인정받고 출연료도 오르듯, 여러분도 여러분의 배역에 충실할 때
더 비중있는 역할을 맡게되며 연봉도 오르게 될 것이다.  

아무도 이 회사의 주인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이 회사의 주인공은 될 수 있는거 아니냐???



어디서든, 누구든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설사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야기다.

열정이 따라갈 목표만 있다면 말이다.
:

여린 풀,
손으로 잡아뜯으면 바로 뽑히거나 끊어질 것 같은 여린 풀이
바위에 뿌리를 박고 생명을 잉태하는 것을 보면 경이로운 느낌이 든다.




수분이라고는 전혀 없을 법한 각박해보이는 암벽에
저리도 풍성한 모습을 보이는 생명력은 감동으로 전해진다.  



시위대를 막기위해 서울광장에 컨테이너로 바리케이트를 쳤다고 한다.
그 안에 모래를 가득 채우고 아스팔트 바닥에 철심을 박고 용접까지 했단다.
 
네티즌들은 토목공사로 성공한 CEO다운 발상이라고도 하고,
서울시의 관광명물 명박산성이라고 빗대기도 한다.


왜 民草라 했겠는가.
民(백성)은 草(풀)와 같아서 힘없고 나약해보이지만,
때론 아무도 예상치못한 時空에서 강한 생명력과 적응력과 저항력을 보이기도 한다. 


草가 바위 속에서 생명을 가꾸듯,
컨테이너 방벽이 많을수록 民草의 뜻이 더욱 강하게 움튼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

아무리 연약해보이는 것도 강한 것 속에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키울 수 있음을 자연 속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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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물과 명예가 자신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것은 부끄러운게 아니다. 

재물은 남에 의해 취해서는 안되며, 스스로 재물을 취하기 위한 노력과 행동을 해야한다.

하지만, 명예는 스스로 그것을 추구하는 행동을 하기보다,  명예가 따라올 행동을 통해 남에 의해 취해져야한다.
:

나는 TV 프로를 쟝르 구분없이 두루두루 폭넓게 보는 편이다.
밤에는 TV를 볼 기회가 별로 없지만 주말에 TV를 틀면 이것저것 특별히 가리지않고 본다.
가장 즐기는건 토론프로와 고발프로, 그리고 스포츠프로지만, 음악, 코미디, 드라마까지 다 즐긴다.

가끔 일일드라마 이야기를 하면 남들이 경이롭다는(?) 눈길을 보낸다.
무슨 남자가 일일드라마까지 꿰고 있냐고...
근데, 사실 내가 일일드라마 방영시간에 집에 있을 수도 없다.
그저 어쩌다 우연히 재방송 한두번 본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드라마라는게 스토리가 뻔한거 아닌가. 갈등구조라든지 스토리전개가 대충 그려지니까...

그런데, 요즘 방송을 보면 정말 짜증이 절로 나는 쟝르가 있다.
소위 연예인을 중심으로한 오락프로와 오락성 토크프로.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나, 특히 주말 저녁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면, 보이는 얼굴들이 거의 똑같다. 
게다가 보여주는 내용이나, 행동, 그리고 말투도 다르지가 않다.
정해진 몇명이 이리저리 매트릭스처럼 조합을 이뤄가며 프로의 이름만 달리 할 뿐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방송에 나타난 변화 중의 하나는, 프로를 이끌어가는 MC의 교체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닌, 주체의 교체가 이루어졌다.
아나운서가 대부분이던 MC의 자리가 어느순간 연예인으로 채워진 것이다.
오락프로는 물론, 토크프로와 시사프로까지 연예인으로 점령당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연예인의 대부분은 개그맨 출신이다.

연예인이 프로를 진행한다고 해서 문제시 삼을 일은 아니다.  
연예분야의 전문성을 살린다거나, 연예인의 끼를 살려 더 부드럽고 흥겨운 진행이 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또 개그맨이라고 안될 이유는 없다. 
연예쟝르 중에 가장 순발력을 요하고, 기지를 요하는게 개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디어 좋고 입담 좋은 사람이 자칫 어색할 수도 있는 상황을 재치있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놀랍고도 부럽다.


그런데, 요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그들의 방송에 대한 인식이다.
언제부터인지 MC들과 패널들의 대화가 자유로움을 빙자한 장난투로 변하는가 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처음 한두사람에 의해 전파(?)되던 이런 행동이 유행을 넘어 당연한 트렌드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는듯 하다.
소위 호통개그의 원조라는 이**를 비롯해, 박**, 김**, 전** 이 기세를 부리더니,
이제는 지**, 탁** 까지 거명하기도 숨찰 정도로 많은 연예인들이 너도나도 따라하기 바쁘다.
아니 따라하는 정도가지고는 양이 안차고 자극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점점 강도가 높아지더니,
이제는 아예 집단MC들이 출연진을 대놓고 윽박지르는 양상까지 치닫고 있다.

그런 현상에 불을 지핀 공로자가, 온라인방송 출신이라는,
이름(어차피 가명이겠지만)도 방송용어로는 비속어인 김**.
함께 하는 출연자 뿐이 아니라 시청자도 아랑곳하지 않는, 가히 안하무인격인 그의 언행을 보면
기가참을 넘어 역겹기까지 하다.


방송을 公器라고 한다.  국어사전에 명기된 公器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이용하는 도구.
2 공공성을 띤 기관이나 관직을, 사회의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이르는 말.
   신문이나 방송 따위의 언론 기관 따위가 이에 속한다.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 사회 구성원 전체는 방송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사회의 미래를 담당해야할 우리의 아이들은 어떤 영향을 받고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한숨 뿐이다.


모든 것에는 지켜져야하고 지켜줘야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방송이 상업화되고 시청율을 쫒는 해바라기가 되어버렸다지만,
방송 스스로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지켜야할 선은 방송인 모두가 스스로 지켜줘야한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방송인이라고 말하고, 방송에서도 그들을 칭할 때 방송인이라고 칭한다.
그렇다면, 정말 자신들이 방송인이 맞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더 이상 오염시켜서는 안된다. 


또한, 방송은 시청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돈을 내고 영화를 보듯, 시청료를 내고 방송을 본다.

때문에 방송은 민의를 대변하며, 새로운 소식과 폭넓은 지식의 전달을 통해 시청자의 안목을 높혀줄 수 있어야 한다. 
오락프로의 경우는 시청자에게 건전함을 바탕으로한 즐거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의 방송 오락프로는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게 아니라, 출연자 그들만의 즐거움을 시청자가 지켜보는 격이 되고말았다.

반말은 기본이고, 막말에,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행동들을 보면 
이게 과연 공영방송이 맞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런데, 그렇게 방송을 진행하는 사람들보다 내가 더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이 있다.  
출연하는 연예인들이야 튀는 모습을 통해 존재감을 알려야한다는 생존의 문제 때문이라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프로를 만드는 PD를 비롯해 제작과 편성을 책임지는 책임자들이 가지고있는 인식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실질적으로 방송의 기능을 정의하는 그들이 방송에 대해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묻고싶다.
당신들은 대한민국의 公器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인지...
아님, 교내 방송제 프로그램을 만드는 아마츄어들인지... 


요즘 언론은 연일 광우병과 관련된 보도로 넘친다.
거리엔 며칠째 촛불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국민건강에 위해한 위험요소가 근본적으로 제거될 때 까지 쉽게 멈추지 않겠다는 기세다.

그렇다면,
국민의 정신건강, 그리고, 사회의 건강한 도덕성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도
이렇게 모든 언론과 모든 국민이 나서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신체적 오염이나 훼손은 의학의 발달과 함께 특효약에 의한 단기치유도 가능하다.
하지만 정신의 오염이나 훼손은 특효약이 없다는게 문제다.
특히 지각력이 떨어지고 무의식을 통한 대중에의 전염성이 강해 장기적으로도 집단치유가 쉽지않다.

출연진 스스로가 자정을 하지 못하고,
이미 공범이 되어버린 제작자들이 문제인식을 못하고 있다면,
이제는 시청자들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시청자마저 더이상 집단최면에 빠져서는 곤란하다.

근데...  어떻게 잡아야하지???
힘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뭉치는 것 뿐인데, 이미 많이 물이 들어버렸으니...

     
문득 유재석, 신동엽, 서경석 같은 이름이 생각나는건 왜일까...

:


당당하게 한자리 차지했다.


입주자는 누구든 기본적 주차권리를 갖는다.

'안그래도 비좁은 주차장에...'
하고 눈쌀 찌푸리는 사람이 속이 좁은건지

당당한 주차가 좀 심한건지


나.도.모.르.겠.다.

:
다른 블로거의 사이트를 다니다보면 가끔 이런 문구를 보게 된다.

[이 폴더는 덧글 보기/쓰기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런 문구를 접했을 때 느껴지는 감정은 두가지다.

[Thanks...] - 블로거라면 대개가 생각하는 블로그 에티켓 중의 하나가 내 집에 방문하신 분을 답방하는 것.
그런데, 빈손으로 남의 집 방문하는게 좀 찜찜한 것 처럼 블로그 방문해서 그냥 흔적없이 나올 때도 그런 경우가 있다.
사이트의 성격이나 포스팅의 내용이 내 성향과 다를 경우에는 덧글을 다는게 과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럴 때 위와 같은 문구가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반면에, 평소 교류가 있었던 분의 사이트에서 저런 문구를 접하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뭔 일이 있는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갑자기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뭔가가 어색하다.


덧글쓰기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는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본인의 성격에 의한 것.
블로그를 자신의 일상을 담고 돌아보는 자기만의 기록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내 집에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걸 원치않을 수 있다.
또 그런 댓글에 일일이 댓글을 다는게 번거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이 찾아오는건 어쩔 수 없지만, 조용하게 지내고 싶은건 본인의 성향이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또 다른 이유는, 블로그에 달린 댓글로 인해 상처를 입은 경우다.
광고성 댓글이야 짜증이 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방문객들 끼리 댓글을 통해 논쟁을 벌인다던지,
혹은, 내 글과는 무관하게 특정인들끼리 마치 채팅을 하듯 지나친 댓글을 주고받는다는지... 
이런 행위는 가끔 어이없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도 이런건 나를 편하게 생각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지만,
이보다 더한 경우가 소위 모독성 표현이나 스토커 비슷한 행동, 그리고 음해성 악플같은 것.
이런 경우는 인격을 모독당하거나, 인권을 침해당하는 것 처럼 참기가 힘들다.
주로 여성분들의 블로그에 이런 경우가 발생하는거 같다.  

전에도 몇몇분이 이런 일로 깊히 상처를 받고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오늘 한분이 내게 쪽지를 남겨주셨다.    
[블로그에 이상한 글을 남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분간 모든 글쓰는 란을 닫는다]는...


오픈된 공간이니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을테고, 생각하는 바도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지나친 관심의 잘못된 표현이나 과도한 예의 역시 상대방은 불편할 수 있다.

차제에 나 역시 관심과 예의라는 명분으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
술자리에서 의례하는 의식(?)이 있다.
첫 잔은 모두 함께 잔을 높히 들고 구호를 외치는 것 - 소위 말하는 건배다.

소수일 경우에는 구호를 외치며 모두의 잔을 함께 가볍게 맞대고,
다수일 경우에는 잔을 높이 들고 구호를 외친 후 앞사람 옆사람 등 가까운 사람끼리 잔을 맞댄다.

언제부터, 또, 왜 그러는지는 아마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거 같다.
옛날에 술을 통한 독살의 위험을 서로 방지하기 위하여 서로 잔을 부딪히며 술이 튀면서 섞임으로써
서로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함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거 같은데,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누구든 태어나서 처음 술잔을 잡으면 이 건배부터 배우게 된다.
아마 서로에 대한 친근감과 일체감의 표시, 그리고 함께 하는 공동체의 목표에 대한 공감대 형성을 위함이 아닐까.

세계 각국에 건배 문화가 있는 것을 보면
술을 앞에 놓고 생각하는 마음은 인종을 떠나 다들 비슷한 모양이다.

건배시의 구호를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치어스]라고 하는거 같은데, 같은 영어권이면서도
캐나다에서는 [토스트]라고 한다고 들었다.  왠 토스트???  (이건 칼라님이 아실라나...)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몇가지 주워들은 서당개의 풍월로 네덜란드에서는 [프로스트]라고 들었고,
프랑스의 구호는 발음이 어려워 잊어먹었다.  당시 무슨 티켓에 메모를 했었는데... 없네...

한자문화권인 동북아시아의 경우, 우리는 [건배], 일본은 [간빠이]라 하고, 중국은 [칸페이]라고 한다는데, 
한자를 읽는 언어상 발음의 차이일 뿐 한자는 똑같다.
 
건배의 한자표기 [乾杯]의 乾은 [하늘 건]이라는 뜻 외에도 [마를 건]이라는 뜻도 있다.
한자 풀이만으로 직역하면 [잔을 마르게 한다]는 의미이니, 결국 [잔을 비우자]는 의미가 되겠다.
결국 주당들이 호방한 모습으로 소리높여 제창하는 [원샷]이 건배의 정확한 의미가 아닌가 싶다.


하고싶은 얘기를 꺼내기 위한 서두가 너무 길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건배구호에 대한 이갸기를 하려했던 것인데...

건배구호를 들여다보면 짧은 구호 속에도 시대의 시류가 포함되어 있음을 느낀다.
삶의 모습과 정신, 그리고 톡톡 튀는 풍자가 집단의 구호 속에 녹아있는 것이다.

건배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간은 [위하여~~~]다.
[위하여]는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가장 롱런하고 있는 건배구호의 바이블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위하與]는 여당의 구호이고, 야당은 [위하野]라고 해야한다고 하지만, 어쨌든 스테디셀러다.

직장인들의 단체회식장소에서는 이 [위하여]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위하여!' 하고 선창을 하면  모두가 만세삼창을 하듯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하고 화답하는데,
이때 원칙은 '위하여'를 길게 끌지않고 단호하고 기백있게 스타카토로 짧게 끊어쳐야 한다는 점.            

예전 내가 학창시절에는 [지화자 좋다]라는 구호를 시용하기도 했다.
사회자나 모임의 좌장이 '지화자~~' 하고 선창을 하면, 참석자들이 '좋~~다~~~' 하고 화답을 한다.
이건 [위하여]와는 반대로 자락을 길게 끌어줘야 한다.  고유의 토속적인 흥겨움이 묻어나는 구호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한때 [개나발]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라는 의미인데, 산업화시대 말기 노사간의 갈등 해소를 위해
주로 직장에서 유행한 구호라 할 수 있다.

1990년 IMF가 도래하면서 생긴 구호는 역시 [IMF]다.
IMF로 인해 직장을 잃은 동료들끼리 모여 한잔 술과 함께 마음을 달래며 자신들의 처지를 희화화한 구호.
'I am F'  대학 F 학점을 비유하여 자신들은 사회의 실패자(a failure) 혹은, 바보(fool) 라는 자조적인 아픔이 담겨있다.

건배 구호는 아무래도 술자리모임이 잦을 수 밖에 없는 직장과 관련된 구호가 많은데,
[개(계)나리]라는 구호도 역시 직장에서 제조(?)된 구호다.
이 구호는 평소 위계질서가 비교적 엄한 조직에서 분위기쇄신 차원에서 사용되는 구호이다.
[계급장 떼고, 나이 잊고, Refresh하자]는 의미로, 권위를 버리고 하나가 되자는 의미.

또한, 외곽지나 오지, 혹은, 근무여건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구호가 있다.
[나가자].  [나라를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자신을 위하여] 묵묵히 일하자는 다짐.


년령층에 따라 달라지는 구호도 있다.

사십대 중년들 사이에 유행하는 구호 [진달래]는 [진하고 달콤한 미래를 의하여]라는 의미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담고있지만, 이게 변형되어 가끔은 여성에 대한 작업용멘트로 쓰이는 모양이다.

오십대의 구호는 [나이아가라]다. 한사람이 '나이야~~' 선창하면 일행이 '가라~~'라고 화답한다.
나이를 잊고 열심히 재밌게 살자는 뜻.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노년층의 구호는 [구구팔팔 일이삼사]라고 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이틀 앓다가 삼일째 깔끔하게 죽자]는,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다가
자식 속 썩이지말고 깨끗하게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는 바램인 것이다.
    
반면에, 술을 즐기는 예전 세대의 호방한 집단 음주문화보다 
술 보다는 분위기를 즐기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구호는 그들의 술에 대한 취향만큼이나 모던하다.
예를 들면, 20대들은 [원더걸스] 같은 구호를 즐겨 사용한다고 한다.
[원하는 만큼  더하지말고 걸러가면서 스스로 알아서 마시자]라는 의미로, 과음하지말고 주량껏 마시면서 즐기자는 
신세대들의 감각이 돋보이는 구호라고 생각된다.  사실 바람직한 얘기다.


최근엔 상당히 세련되면서 낭만적인 구호도 많이 생성되고 있다.  
[멋지게, 진솔하게, 인생을 생기있게]라는 뜻을 담은 [멋진인생]이라는 구호도 있지만,
비슷한 내용의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배구호가 있다.  

당.신.멋.져.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그리고 져주면서 살자.

내가 이 구호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마지막 문구 - [져주면서 살자] 때문이다.
각각의 멘트가 좋지만, 특히 져주면서 살자는 말이 은근하게 와닿는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져주는] 삶.  
져주는 것이 항상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갖추지 못하고 부족함이 많아 보일 때 져주는 것은 [져주는 것]이 아닌 [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마음과 정신이 여유롭고 객관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이 져주는 모습이 멋지게 보이는 것이다.  

중후한 인생의 멋이 묻어나오는 [당신멋져].
정말 그렇게 당당하고 신나고 멋지면서도 져주면서 사는 넉넉함마저 보여줄 수 있다면
남들이 나에게 '당신 멋지다.' 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내가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이 그런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정겨운 이들과 함께 어울릴 술자리가 있다면 술잔을 맞대며 외치련다.

당신멋져~~~
:

차라리..  정녕 혼자라면 외롭지 않을 수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더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건 아닐까...  

무언가 감정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아직 결코 혼자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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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를 하다보면 도움이 되는 것들.


1. 기록문화가 확립된다.  
    평소 같으면 그냥 흘려보내기 쉬운 자기의 생각이나 일상을 나중에라도 돌아볼 수 있다.
    아~~  내가 언제 어떤 생각을 했었구나...    아~~ 내가 그때 거길 다녀왔구나...

2. 생각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글을 올리든, 사진을 올리든, 일단 어떻게 올릴 것인지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하게 된다.
    또 다른 사람들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표현 하나에도 좀더 신중하게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3. 생활에 의미를 부여하는 이점.
    며칠간 글이나 사진을 올리지않으면, 왠지 그 며칠은 아무 생각없이 지낸거 같다.
    그러다보면 뭔가 일을 벌려야 할거 같고, 무슨 생각이라도 해야할거 같다.

4.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여러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만의 관점이 아닌 다른 각도에서 삶을 바라보기도 한다.

5. 뭔가 하나라도 배우게되는게 있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배우는 것도 있지만,  글을 올리다보면 철자법 같은 것이 애매할 때도 있는데,
    그럴 경우 사전을 찾아보며 잊혀져 가는 것을 다시 익힐 수가 있다.
    비단 철자법 만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나 상식적인 것도 새롭게 찾아보게 되는 것이 많다.

6.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알게 된다.
    평소 생활의 틀 속에서 접하던 계층의 사람들이 아닌, 다양한 지역, 다양한 연령층,
    그리고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런 만남을 통해 단조로왔던 생활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그 외에도 사람들마다 블로그를 통해 얻거나 즐기는 것이 다 다를 것이다.
위에 몇가지 생각나는대로 언급한 것만 보더라도
블로그 - 이게 정말 정신을 늙지않게 하는 도구 [不老具]가 아닐까 싶다.

:




어느덧 여든 중반이시고 여든을 바라보시는 두분.

비슷한 연배분들에 비해 무척 건강하시지만,
걸음의 보폭이 작아지고 계단을 오르실 때 허리가 숙여지는 모습에서
어쩔 수 없는 세월을 느끼게 된다.


나이를 먹어서도
부모는 늘 든든한 존재이고 싶은데,
나이를 먹으며 부모에게 서운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자라면서 가끔은 이해가 안될 정도로 엄한 꾸지람을 들으며 서운함도 느꼈었지만,
어느순간 분명히 한말씀 하실만 한데도 말을 아끼시는 모습에서 그때와는 다른 더 큰 서운함을 느끼게된다.


나에 대한 꾸지람이 점점 적어지고 있음을 느낄 때,
그리고 내가 드리는 말씀에 알아서 하라며 특별한 언급없이 동의하실 때 마다
마음이 뿌듯해지기보다 예전의 무서운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워지며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부모님의 나이드심이 아쉽고, 그런 작아져가는 모습에서 애잔함을 느끼면서도
그런 부모님보다 아이들에게 먼저 관심이 가는건

나도 부모이기 때문일까...
아님, 내가 아직도 철이 덜든 자식이기 때문일까...

後에 재원이나 지연이가 우리보다 자식들에게 더 신경을 쓰더라도 서운해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




때론  어색한 만남보다





혼자인 것이 더 풍요롭게 보일 수 있다.



함께 한다는 것이
때론 불편할 수도 있는 것 처럼

혼자라는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닌 편안함일 수도 있고
 
더 많은 이들이 내게 다가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혼자라는 것.
그것은 生에 남은 마지막 로망이다.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이미 혼자가 아닌 것이다.

:

 



멀어져가는 사람의 뒷모습에선
늘 애잔한 느낌을 받는다.

될 수만 있다면
뒷모습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싶다.

:
나이는

내가 즐겁게 살아가는 기간이다.

즐겁게 살아가는 기간은 길수록 좋은거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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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말 군사적목적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1990년대 웹의 개발과 함께 인류사회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터넷은 그 기능과 특성만큼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그런 인터넷의 특징을 살펴보자.


각종 동문사이트나 동호회활동으로 사람들을 만나게하는 人터넷은  
더 나아가 다양한 채팅으로 인연을 맺게 해주는 姻터넷이 되기도 한다.

독특한 개성과 전문성있는 블로그로 많은 누리꾼에 의해 스타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는 認터넷도 되며,
때로는 악성게시물과 무분별한 댓글로 인해 문제를 야기하는 因터넷의 경우도 있다.  

이렇게 중독성 강한 특성으로 사람들을 잡아끄는 引터넷은, 
그러나 각종 해킹으로 인한 피해, 그리고 예기치못한 장애와 버그로 인해 버벅거리며 속도가 늦어질 때는
끓는 속을 쓸어내리며 답답함을 참아야 하는 忍터넷이 되어 우리의 인내심을 시험하기도 한다.  

이렇듯 다양한 기능과 특성을 갖고있는 인터넷.
이미 이메일 등으로 전 세계를 동시생활권으로 만든 인터넷은 앞으로도 파워풀한 하드웨어의 개선과
상상을 초월하는 웹의 진보로 5억㎢의 지구촌을 이웃으로 만드는 隣터넷으로 진화할 것이다.

:

한 TV프로에서 사찰이 소재한 산에 대한 입장료 징수와 
주지스님들의 고급승용차 이용 및 골프장 출입에 대한 내용이 보도됐다.

여러가지 내용이 취재 보도되었지만, 그중에서도 고급승용차에 대한 몇몇 주지스님과의 인터뷰가 귀를 잡아 끈다.

고급 SUV차종인 베라크루즈를 타는 주지스님의 말씀.
> 쏘렌토나.. 뭐 그런거 다들 타는거 아닌가요???


1억6천만원이 넘는 고급 외제승용차를 이용하는 한 주지스님과의 인터뷰 내용.

기자 : 외제승용차를 이용하고 계시는데...
스님 : 왜 외제는 안된다는거죠? 국산승용차는 괜찮고, 외제승용차는 안된다는 생각 자체가 이상한거 아닌가요?

(외제라서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었을텐데...  역시 스님들은 선문답이 체질인 모양...)


또 다른 외제승용차를 이용하는 주지스님의 말씀.

기자 : 이용하시는데 불편함만 없으면 되지, 꼭 비싼 승용차가 이용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스님 : 그거야 뭐... 사람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를 수 있으니까...


몇몇 주지스님에게 던진 기자의 공통 질문. 

기자 : 무소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스님 :
무소유라는게 꼭 물질로만 생각할건 아니고... 정신이 자유로우면 되는거지...


염화시중의 미소라고 했던가...
이 프로를 통해 전해주시는 주지스님들의 무언의 법어를 통해 난 깨달음을 배웠다.

정신이 잘못 자유로워지면 방종이 된다는걸...

:




생전에 꽤나 커피를 좋아하셨던 분인가 보다.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고인에 대한 애뜻한 情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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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연함과 우유부단함은 어떻게 다를까?

원칙주의자와 고지식한 사람은 어떻게 구분될까?

평소 보여지는 행동양식과 생활철학이 남들에게 알마나 공감을 줄 수 있는가...  그것이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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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은 우리에게 봄이 왔음을 소리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개나리는 늘어진 가지에서 멋이 느껴지고 운치가 있는 법인데,
마치 옛날 초등학생 앞머리를 잘라놓은 것 처럼 일자로 저게 뭐람???

아마 늘어진 가지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거추장스러울거라 판단해서 저런거 같은데,
그래도 저건 아니지 싶다.

자르더라도 좀 운치있게 자연스런 느낌을 살릴 수는 없었을까...
가출했다 붙잡혀와 머리를 잘린 것 같으니...


시민의 감성은 무시한 채, 
일하기 편한 획일행정의 한 단면을 보는거 같아 이 봄을 보는 마음이 참 씁쓸하다. 

개나리도 울고싶을걸...
:


저 안에 뭐가 들었기에 저렇게 살벌한 그림이...

근데, 정말 잘 그렸다.  세차하기가 너무 아까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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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조선시대 선인들을 보면 한 사람을 칭하는 여러개의 이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인의 본명 이외에 어렸을 적에 부르는 아명(兒名), 그리고 장가를 간 후에 이름대신 불렀던 자(字),
그리고, 본명이나 字 이외에 허물없이 사용하기 위해 지은 호(號)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자기 이름 하나만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그랬는데... ... 오로지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 하나만으로 한평생을 살아갈줄 알았고,
호(號)라는 것은 유명인사나 지체높으신 분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요즘은 인터넷을 좀 하거나, 인터넷을 통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이름들을 갖게 되었다.
  
글을 쓰는 문인이나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필명.
그 필명이라는 것이 인터넷시대와 함께 누구나 사용 가능한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필명에도 약간의 흐름이 있는거 같다.
처음에는 인터넷 등에 자신을 노출하기 싫어하는  익명본능에 의해 필명을 사용했다.
그러다보니 알파벳의 이니셜을 사용한다던지, 혹은 그냥 상징성만 표시한다.
인천싸가지, 얼굴없는 그림자, 석양의 노숙자, 지나가던 사람... 예를 들자면, 뭐 이런 식이다.

조금 멋을 부리는 낭만주의자는 좀더 세련되게 한다.
프리스타일, 푸른계곡, 제로존...  이런 유형이다.

주부들은 엄마라는 뜻의 영어 애칭인 마미의 줄임표현인 [맘]을 아이이름 뒤에 붙이는걸 즐기는 것 같다.
수니맘, 제인맘...  등등...

인터넷의 온라인 상에서 그렇게 통용되던 필명이, 인터넷을 통한 번개모임이나 동호회모임 등의
오프라인 모임으로 활성화되면서 또 한번의 변화를 맞는다.
서로가 인터넷의 필명에 익숙하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도 서로를 필명으로 호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서로가 부르기 편하고 기억하기 편한 필명을 사용하게 된다.

온라인을 매개로 한 모임에서 필명은 참으로 효과적인 호칭이다.
실명을 사용할 경우, 서로 나이 차가 나는 경우 이름에 [氏]를 붙여 부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직함을 함께 부르자니, 요즘 직함이 어디 한두개인가...
교수님, 원장님, 사장님, 또 전무님, 상무님, 이사님...  워낙 복잡하니 헷갈리기 일수다.
그에 비해 필명은 끝에 [님]만 붙여 부르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아주 편해 좋다.


사람들이 필명을 정하는 모습을 보면 참 재밌다.
회사이름을 사용하는 분, 동네이름을 사용하시는 분, 또 아이들의 이름을 따서 사용하시는 분도 계시고,
종교를 갖고 계시는 분들은 종교 이름을 사용하시는 분들도 많다.

처음 인터넷 동호회에 가입을 하면서 필명을 무엇으로 할까... 많은 생각을 했다.
나 역시 당시 온라인 상에서 사용하던 필명이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표내지 말자는 의미로 사용하던 [달그림자].
하지만, 서로 만나 호칭을 하기에는 [달그림자]는 어딘가 좀 멋적다.
내 스스로 '달그림잡니다.' 하는 것도 어색하고, 공공장소에서 누가 나를 부를 때를 생각하니 서로 왠지 쑥쓰럽다.


나만의 생각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의미를 담고,
'ㅇㅇ라고 전해 주십시요...'  이렇게 말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울 수 있고,
길거리에서 큰 소리로 부르더라도 부르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편할 수 있고,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도 그 세월에 어울릴 수 있게 가볍지 않으며 낭만적인 필명이 무얼까... 

그런 나름의 기준으로 만든 필명이 지금의 [江河]다.
큰 내 江, 물 河...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자는 내 삶의 의미를 담고,
전화를 걸어서도 '강하라고 좀 전해 주십시요' 하더라도 전혀 어색함이 없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장소에서 후배가 '강하兄~~~' 하고 크게 불러도 부르는 사람이나 나나 자연스럽고,
그리고 내 나이 칠십이 넘어 묘비에 넣어도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 것도 같다.
게다가 발음하기도 편한 것 같고...


이제 [江河]는 내 이름보다 더 친숙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또 하나의 내 이름이 되어버렸다.
동호회 후배들의 자녀들도 나를 [강하아저씨]라고 부른다.

집사람도 '발음도 부드럽고 나이들면서 사용하기에도 품위도 느껴지고, 당신 이미지와도 잘 맞는거 같다.' 며
필명을 참 잘 만든거 같단다.

아이들의 필명을 생각한다면, 위에 설정한 기준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글로벌시대에 맞게 영어 표기도 자연스러운 것.

그런 의미에서 지연이의 필명은 참 맘에 든다.  [mio].
이 [mio]라는 이름이 지금은 브랜드로도 사용되고 있지만, 지연이가 저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 브랜드가 나오기 훨씬 전인 지연이가 중학생일 때라고 기억한다.  
지연이는 연출을 하면서 나름대로 또 하나의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Yi RiJin].  mio 라는 이름에 [아직 깨닫지 못했다]는 의미의 [未悟]라는 한자를 붙여주었었는데,
RiJin에는 이롭게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利進]을 붙여주고 싶다.

동호회에서 내게 필명 작명을 의뢰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다.
부끄럽지만 그럴때 나는 가급적 그 분의 성품과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으려 애쓴다.
그렇게 이미지와 연관되는 뜻을 살리려다보니 깊히 알지도 못하는 한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3년생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 격이다.     
 
블로그를 하면서도 많은 필명을 접하게 된다.  
모든 분들의 필명이 모두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호감이 가는 필명이 있다.
rosa, 破天, 자낭화, 二茶...  풍겨지는 느낌이 좋고, 힘있는 카리스마라든가, 편안함, 부드러운 여유가 묻어나는 듯 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모든 부분의 트렌드도 변한다.
그 트렌드를 앞서 선도하지는 못하더라도 따라갈 줄은 알아야 그나마 시대를 즐겁게 살 수 있다.
필명시대가 왔다면 시대에 뒤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하나쯤은 준비해야 한다.
일시적인 것이 아닌, 스스로 애정이 느껴질 필명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맞자.

내게 너무 사랑스러운 [江河]로 살아가는 지금이 나는 너무 즐겁고 만족스럽다. 
:




거리가 많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냥 바로 옆 테이블이다.
그렇다고 중간에 형식적인 칸막이도 없다.

그럼에도 한쪽은 흡연구역이고, 바로 옆은 금연구역이란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준법정신이 너무 강하다.

금연구역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흡연구역에서는 담배를 피운다.

손님들의 욕구와 건강을 알뜰하게 살펴 만족시켜주는
살겨운 배려가 고마울 뿐.

100% 담배연기로 만든 담배비빔공기 출시다.

:
재물의 가치는 소유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데 있다.

많이 가진 것을 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적게 가진 것을 쓰는 것은 무지한 사람의 객기다.

많이 가진 것을 이용하는 것은 선한 사람의 몫이다.  적게 가진 것을 이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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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시작한 골프를 2005년 부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고교동창모임, 대학동창모임, ROTC모임 등 매번은 아니더라도 띠엄띠엄 참석하던 각종 골프모임을 모두 접고,
작년에는 보유하고 있던 회원권도 처분하고, 그나마 내가 만든 골프동호회의 방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의무방어전하듯 한달에 정모만 두번 나가던 것을, 작년 말로 방장에서 물러난 이후는 골프채를 잡지도 않았다.

골프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다. (운동인지 레져인지 취미인지는 아직도 구분이 잘 안되지만...)
골프를 처음 시작한 것도 집사람의 권유에 의해서였는데, 사실 처음에는 집사람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연습장 레슨비만 해도 적은 돈이 아니지만, 배우더라도 필드에서의 1회 라운딩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 비용이면 가족 전체가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데, 당시 우리 집의 수입과 아이들에 대한 지출 등을 감안할 때
나 혼자의 취미생활을 위하여 그 비용을 사용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사람의 강권에 의해 결국 골프를 접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시작하여 좋아하던 골프를 멀리하게된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은 시간이 별로 나지 않는다. 
건물을 짓고 샤브미를 운영하면서 한가로이 연습장을 다닐 시간도 없을 뿐 더러  더우기 필드에 나갈 여유가 없다.
한번 라운딩을 나가면 왕복 이동시간을 포함하여 얼추 한나절이 다 지나는게 다반사인데,
처음 가게를 연 입장에서 주인이랍시고 골프장에 나다니는 것이 직원들에게 왠지 미안하고 개운치가 않다.
가게가 안정되고 성업 중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얼추 10년을 치면서 아마튜어 골퍼 입장에서 평균치 이상을 어지간히 이루다보니 흥미도 좀 떨어진다. 
어느 한계에 이르니 스코어도 매번 비슷하고, 그 이상이 되려면 완전히 매달려야 하는데, 그럴 이유는 없을거 같고...
그러니 다소 시들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역시 비용이다.
건물을 짓고 가게를 오픈하느라 받은 대출이자가 엄청나게 발생하다보니 소비를 줄일 수 밖에 없고,
가장 대표적인 소비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 것이 코스트가 높은 취미생활인 골프였기 때문이다.


모든 골프모임에의 참석을 중단한 어느 날 가까운 친구에게서 왜 골프모임에 나오지 않느냐는 전화가 왔다.
[돈이 없어서]라는 나의 대답에 이 친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금치 못한다.
그리고는 내뱉는 말, '얌마... 강남의 건물주가 돈이 없어서 골프를 못 친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냐...???'
'그래!!  바로 그 말 때문이다.'  내가 그 친구에게 들려준 변명아닌 변명은 이랬다.

누구든지 다 너처럼 생각할거다.  하지만, 내가 매월 부담해야 하는 이자가 천오백만원이 넘는다.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 내기도 바쁘다.  골프모임에 나가려면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무슨 기금 같은걸 모금할 때, '20만원씩 걷도록 하자. 상범이는 아무래도 남들보다 여유가 있으니 50만원 내고...'
이럴 때, '난 니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여유가 없으니  그렇게 못낸다.' 고 하면 다들 뭐라 그럴까...
'허구헌날 이쪽저쪽 골프는 치러다니면서, 돈 얘기만 나오면 맨날 여유가 없다지...  쫀쫀한 놈.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 같아도 그럴테니까.  그럼, 그런 소리 듣지않으려면 어떻해야돼??
아예 아무데도 나가질 말아야지.  감당하지 못할 행동은 하지않는게 맞다.  


하루는 후배가 찾아와 묻는다.
'형...  차를 새로 하나 뽑으려하는데, BMW로 뽑으면 어떨까???'
그 후배에게 이렇게 답변했다.

네가 BMW를 타는만큼 주위사람에게 넉넉하고 여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면 타라.  하지만, 폼만 잡을거라면 타지마라.
BMW를 탄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남들에 비해 생활에 여유가 있는걸로 보인다.  남들은 그런 시선으로 너를 본다.
그렇다면, 그 차를 타고나간 모임에서 가끔씩은 네가 지갑을 열 수 있어야 남들이 너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멋진 사람으로 인정을 하지, 매번 더치패이를 한다거나, 오히려 돈이 없다는 식으로 꽁무니를 빼면 결국은 폼만 잡는
쫀쫀한 사람이라고 뒤에서 수근대지 않겠니. 


무엇을 하고 싶으면,
무엇을 취하고 싶다면,
거기에 걸맞는 행동과 처신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자.

그게 가능하다면 당당하게 취하고 행동하자.
그럴 여유가 안되거나, 그럴 마음이 없다면 하지 않는게 낫다.
자칫 허세만 가득한 실없는 사람으로 보이거나, 오히려 초라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분수다.
또한 모나지않는 삶의 조화를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
 


내가 풍요로움을 보여줄 수 있을 때 내 주변이 풍요로울 수 있다.

비록 지금 스스로 풍요롭지 못하더라도 뿌리를 깊히 내리고 묵묵히 때를 기다릴 줄 알자.
:

신 정부 장관내정자들의 평균 재산이 39억원이라고 한다.
부동산의 경우 공시지가 기준으로 산정했을테니 시가로 따진다면 50억은 충분히 될 것이다.

머리가 멍해진다.  이런 현상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궁금했다.
재테크에 능력있는 분들로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됐으니 이제 정말 우리 경제가 나아질거라는 희망을 갖게될까.
하지만, 오전에 네티즌의 반응이나 언론의 동향을 보니 내 생각이 틀리지않았음이 확인된다.
그게 더 슬프다.  국민 대다수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어째서 본인들은 생각을 못하는지 그게 서글픈 것이다.

재산이 많다는 것이 흠결이 될 수는 없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공인의 경우는 다르다. 엄연히 시각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 여권에서는 재산이 많더라도 투기한 것이 아니고 정당하게 세금을 냈으면 문제될게 없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 그런 단순논리의 사고를 가지고있는 사람은 정치를 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정치라는게 무엇인가?
정치란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백성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럼으로써 백성의 삶을 이해하고 신망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장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게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장관이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한다는건 일반 국민들과는 어딘지 동떨어져 보인다.
게다가 이번 장관 내정자들의 다수는 강남에 아파트를 몇채씩 보유하고 있다.
지난 5년간의 강력한 부동산억제정책에 모질게 버텨왔다는 얘기다.

오늘 오전에 대통령 당선인이 장관내정자와의 간담회에서 서민경제 안정을 위해 노력하라고 강조했단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서민경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도 장바구니 물가를 모른다.  배추 한포기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난 비싼건지 아닌지 감각이 없다.
아울러 종부세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다.  31평 아파트 하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아이를 유학보내고있는 나에게 환율은 큰 관심사이다.
이렇듯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수준에 맞는 것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상위 1%의 초상류층 사람들의 인식에 서민물가가 얼마나 현실감있게 느껴질까.
내 좁은 소견으로, 그들은 물가보다 종부세 등의 부동산 세법에 더 큰 관심이 가지 않을까 싶다.
강남에 아파트를 몇채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부동산 가격안정 정책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투기만 아니면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단순논리라고 폄하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강남에 아파트가 있고, 자녀들을 유학보내고, 전국 곳곳의 토지를 보유하고, 골프 및 콘도회원권을 다수 보유한 장관들.
그들이 내놓을 부동산정책과 교육정책이 어떤 것일지, 그들이 생각하는 환경정책과 복지정책은 어떤 것일지, 
국민들이 느끼는 소외감과 괴리감, 그리고 이질감을 그들은 너무도 모른다.  모른 척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청와대 수석 내정자에 대해 교수 재직시 제자논문 표절의혹이 제기되자. 당선인 측의 반응은 이랬다.
'일부 문제가 있다고는 인정되지만, 직무수행에 지장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또 다른 인수위 관계자가 했다는 기사를 보며 나는 경악했다.
'약심검증만 해도 60%가 떨어져 나가더라. 솔직히 20여년 전에 자녀교육을 위해 위장전입 생각 안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나.'

신 여당은 과거 장상氏와 장대환氏의 총리인준과정에서 자녀의 국적,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등의 문제점을 적시하며
그들을 낙마시켰다.  현 정부에서도 김병준氏의 교육부총리 지명에 논문표절의혹을 제기하여 개가(?)를 올렸다.
과거나 현 정부의 편을 들고자하는게 아니다. 난 오히려 그때 그 검증이 잘됐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중요한 것은 잣대가 다르면 안된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고도의 도덕관을 요구했으면, 본인들도 그 잣대를 기준으로 삼는게 당연하다.


대통령 당선인의 인사 키워드 중 하나가 [실용주의]다.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얘기다. 지역편중이나 다른 사람들의 지적은 문제삼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탕평]이라는 말이 왜 생겼을까...
그렇게 능력있는 사람만으로 모든게 뜻대로 잘 이루어졌다면, 우리 역사의 힘든 고비마다 당시의 통치자들은
왜 인사에서 탕평책을 선택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답은 [민심수습] 혹은 [국민화합]이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들의 집단이라도 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전대의 통치자들이 전해주는 교훈인 것이다.


실용주의는 분명 소신을 갖고 합리성과 효율을 지향하는데 매력적인 이념이다.
하지만, 이것이 아전인수로 오해되어서는 안된다.
더더욱 유유상종처럼 보여져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영남에 기반을 둔 사람이 영남사람만 쓰면서 '능력을 최우선으로 했다' 고 표현하는 것은,
다른 지역 사람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도 있으며,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다소 문제는 있지만 직무수행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 고
감싸는 것은 생각에 따라서는 자신의 기준으로 본 도덕적 불감증 때문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잘 해보고자 의욕적으로 내세운 [실용주의]가치를
[아전인수]와 [유유상종]이라는 오해에 물들게 할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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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은  허풍이고, 

모르는 것을 말하는 것은  기만이며,

모르는 척 해야할 것을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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