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먼 곳에
보고 듣고 느끼고/영화겉핥기 2008. 7. 27. 14:36 |
평균 1년에 한번씩 메가폰을 잡는 이준익 영화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최석환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여주인공이 없다는 것.
여운이 남는 엔딩씬.
그리고, 최근에는 음악이 영화의 주요 소재가 된다는 것.
이 영화에 대한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작가였다. 역시 최석환.
[님은 먼 곳에]의 시사회 날, 이준익 감독은 매우 초조한 모습을 보인 반면,
최석환 작가는 시사회를 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기자들이 이유를 묻자, 그가 한 대답은 이랬다. “감독이 잘 만들어 줬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서로에 대한 믿음이 [이준익 = 최석환]의 변함없는 공식을 이어가는 것이리라.
괜히 이준익 감독이 만든 최석환이 아닌 다른 작가의 영화,
이준익이 아닌 다른 감독이 만든 최석환 작가의 영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지금 같아서는 언젠 그럴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이준익의 영화에 여자는 없다. 이준익의 영화는 늘 남자만이 존재했다.
수애는 이준익 작품의 첫 여주인공이다.
때문에 첫 여주인공 선정에 이준익 감독은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준익의 첫 여주인공 수애는 그런 의미에서 의외이기도 하지만, 역시 이준익답다는 생각도 든다.
이준익의 캐스팅은 늘 최고 브랜드보다는 최고로 느껴질 수 있는 최적의 브랜드를 선택했다.
또 그런 사실을 알기에 수애 역시 많은 부담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이준익의 선택은 틀리지않았다. 수애는 이준익이 보여주고 싶었던 영상에 잘 녹아들었다.
시골의 순박한 새색시 순이가 촌티나고 동작 뻣뻣한 위문단 가수에서 섹시한 가수 써니로 변모하는 -
어찌보면 순이의 내재되었던 끼가 발산되는 과정을 수애는 무리없이 보여주었다.
마무리 부분, 상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보여준, 엇갈리는 애증이 함께 담긴 눈물어린 눈빛은
수애가 보여준 최고의 씬이 아니었나 싶다.
정진영을 이준익의 남자라고 하면 어폐가 있을까...
[황산벌]에서 기개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무장 김유신,
[즐거운 인생]의 무기력하면서도 꿈을 쫒는 순박한 가장 기영을 잘 나타낸 정진영.
이번에는 자기 목표를 위해서라면 의리와 신의까지 내던지는 비열한 정만을 맡아 양아치의 정수를 보여준다.
영화는…
원치않은 결혼을 하게된 두 젊음을 전장으로 옮겨놓는다.
남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월남으로 떠나고,
여자는 시어머니에 대한 항거로 애정도 없는 남자를 찾아 월남으로 떠난다.
순이는 월남을 가기 위해 위문공연밴드의 가수 써니가 된다.
살아왔던 방식과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써니.
무대에서 노래하는게 어색하고, 그래서 뻣뻣한 시골처녀는
파월 한국군을 대상으로 한 첫 위문공연에서, 파병용사들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 즐기는 분위기에 편승해
차츰 어색함을 덜어가며 밴드 싱어로서 자리를 잡아간다.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가면서도 자기가 월남에 온 목적을 망각하진 않는다.
결국 목적으로 했던 남편을 만나게 되는 그 순간, 써니는 본래의 순이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순이에게 전장은 단지 남편을 찾기 위해 찾아간 총격이 벌어지고 사람이 죽는 두려운 장소 일뿐,
이념이나 적이라는 전쟁의 개념은 없다.
[님은 먼 곳에]가 테마음악인줄 알았던 이 영화의 음악은 뜻밖에도 두개의 Main Theme Song으로 구성된다.
[님은 먼 곳에]와 [Danny boy].
써니가 부르는 [님은 먼 곳에]의 정작 먼 곳은,
정만이 떠나간 월남이 아니라, 순이에게서 떠나있는 정만의 마음이었다.
헬기에서 부르는 [님은 먼 곳에]를 듣는 순간 갑자기 짜릿한 전율을 느낀 것은 순이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리라..
.
하지만, 영화 [님은 먼 곳에]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애증만이 아니다.
감독은 전쟁이라는 배경을 통해 알리고 싶은게 있었다.
증오하는 대상에 대한 감정이, 극한 상황에서 어떤 심리변화를 보이는가를 두 젊은 군인을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개인의 가치관과는 무관하게 국가의 정치적 목적에 의해 이유도 모르는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 청년들의 아픔도 보여준다.
시골목동이 도시로 떠나는 사랑하는 소녀와 헤어지기 안타까워 부르는 이별 노래인 아일랜드 전통 민요
[Londonderry Air]를, 전쟁터에 나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보내는 애틋한 마음으로 개사한 [Danny boy].
이렇게 두 음악은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Two Track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님은 먼 곳에]는 전반적인 줄거리 흐름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 의미없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꼭 있어야 할 이유도 없고, 없어도 영화의 전개에 전혀 무리가 없는 장면.
- 지하 땅굴에 은닉하고 있는 월맹군이 그 지하 땅굴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교육을 시키는 장면이다.
굳이 없어도 될 이 장면을 집어넣은 이유가 뭘까?
-
선과 악의 개념을 떠나 어느 민족에게나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닐까.
바로 이런 부분이 이준익다운 이준익의 감성 브랜드다.
영화가 종반으로 갈수록 궁금해지는 엔딩씬. 이번엔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
역동적인 움직임의 칼라화면은 서서히 파스텔톤으로 변하며 일순 모든 움직임이 정지된다.
그리고 다시 서서히 변하는 색채는 결국 흑백의 Mono Tone으로 마무리한다.
이런 처리는 여지껏 보여졌던 모든 영상이 마치 순이가 돌아본 과거의 회상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정만 순이는 그 후 잘 살고 있는건가? 아님, 그렇게 헤어진건지…
[님은 먼곳에]는 전반적으로 이준익 특유의 잔잔한 감성을 느끼게 하지만,
이전 그의 영화와는 달리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는데, 어디선가 임팩트가 부족한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
공허하게 비어있는 순이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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