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
보고 듣고 느끼고/영화겉핥기 2008. 7. 14. 12:21 |
한동안 영화와 담을 쌓고 지냈는데, 요즘 갑자기 땡기는 영화가 많아졌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일명 [놈 놈 놈],
이준익감독의 작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기대가 되는 [님은 먼곳에]
800억이 투자됐다는 오우삼감독의 [적벽대전] 등등..
그 중에 이미 개봉한 [적벽대전]을 먼저 만나보았다.
경험상 중국영화, 특히 무술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눈만 현란하지 알맹이가 별로 없어
비데오나 CD로 보는게 올바른(?) 관람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 영화 [적벽대전]은 왠지 호기심이 갔다.
삼국지가 어떤 작품인가.
수많은 등장인물의 다양한 캐릭터와 변화무쌍한 시대적 상황을 통한 국가간의 이합집산,
그리고 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책략과 병법을 통해
인간의 처세술은 물론 조직경영에 대한 문제점과 해법을 제시하는
시대를 뛰어넘는 중국문학의 바이블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으며,
우리나라도 왠만한 사람들이라면 건성건성 혹은 만화책으로라도 한번쯤은 읽었을 소설이다.
어떤 사람은 열번 이상을 읽었다는 사람도 많은데 얼마나 내용이 방대하고 스펙터클한지
읽을 때 마다 색다른 감흥을 받는다고 한다.
설사 삼국지를 제대로 읽지않은 사람일지라도 등장인물의 이름과 주요내용은 어느정도 알고 있을 것이다.
적벽대전은 삼국지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며, 수많은 전쟁 중의 하일라이트다.
내가 이 영화에 강한 관심을 갖게된 것도 이 거대한 전쟁이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시아 감독으로서는 가장 브랜드가치가 크고, 액션영화의 거장이라는 [오우삼]이라는 브랜드도
이 영화의 선택에 한몫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오우삼의 스케일이 궁금했다는 얘기다.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의 호기심을 가장 먼저 자극한게 있다.
모든 영화는 영화가 시작될 때 제작사, 배급사 등과 제작 스탶의 이름이 자막으로 소개된다.
이때 제작스탶은 가장 중요인물인 감독의 이름이 가장 나중에 소개되지만,
곧이어 등장하는 배우들은 주연부터 소개된다.
여기서 주연이라 함은 배우의 명성보다는, 작품을 풀어나가는 중심이 되는 배역을 이름은 당연한 얘기.
더블캐스팅으로 주연급 배우가 여러명 등장하는 경우에도, 소개되는 자막의 순서는 배역의 비중을 우선시한다.
삼국지의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질문에 대부분은 [유비]라고 답한다.
함께 도원결의를 한 관우 장비도 있지만 그중에서 유비가 서열이 제일 위이고,
조조 역시 유비와 더불어 삼국지를 이끄는 양대축이지만 악(惡)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유비에 밀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유비라고들 인정을 하면서도,
삼국지의 내용인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제갈공명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어찌보면 삼국지는 사실상 제갈공명이라는 초능력자의 천재성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 [적벽대전]에서는 양조위(주유) 금성무(제갈량) 순으로 소개가 됐다.
왜일까??
그것은 천하의 제갈공명일지라도 적벽대전에서 만큼은 주유의 힘을 얻지 못했으면 승리가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그만큼 주유의 비중이 큰 전쟁이었기에 먼저 소개를 한건 아니었을까 나름대로 이유를 달아보았다.
아무튼 나에게는 흥미로운 대목이었는데, 정작 주유는 영화시작 후 50분이 지나서야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는 생각만큼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중국영화에 대해 가졌던 [혹시나]가 [역시나] 였다고 표현하면 지나친 비하가 될런지...
하지만, 영화에 대한 감상법을 조금만 달리하면 그런대로 흥미로울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영화의 구성에 포커스를 두지말고, 알고있는 삼국지의 내용에 포인트를 맞춘다면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자면, 소설을 통해 그간 머리 속에 축적되어 있던 삼국지의 내용과 등장인물의 이미지를
영화에서 보여지는 영상과 대비시켜 보는 것이다.
삼국지의 주요인물 중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람은 [조조]다.
뒤를 이어 조자룡, 유비, 제갈량과 장비 관우 등이 등장하는데,
보여지는 인물과 머리 속에 담겨있던 상상의 인물과 이미지를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장비는 내가 생각했던 장비와 흡사했고, 관우는 내 머리속의 관우에 비해서는 체구가 조금 작다는 느낌.
조자룡은 생각보다 조금 볼륨이 있는거 같고.
또 하나 재밌게 본 것은 주요인물이 사용하는 무기.
조자룡은 '조자룡 헌창 쓰듯 한다'는 말에 걸맞게 시종일관 창으로 승부를 하는데 근접전에서는 짧은 칼을 쓰기도 한다.
관우의 주무기인 청룡언월도도 비교적 묘사가 잘된거 같은데,
장비의 무기인 장팔사모는 영화에서 특색있게 보여지지않아 좀 아쉬웠다.
영화의 내용은 별게 없다.
도입부에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을 구하는 장판교전투의 모습이 보여지고,
그 다음은 제갈공명이 손권에게 동맹을 청하러 가 주유와 의기투합하는 내용.
그리고 팔괘진을 이용하여 조조의 기병과 보병을 몰살시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검을 이용한 중국 전쟁영화가 그렇듯 화면 가득 피가 튀는 모습이 좀 역겹고 식상감을 주며,
가끔 너무 어설퍼보이는 C/G 화면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공중에서 보여지는 팔괘진법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보인다.
영화라는걸 감안하더라도 엑스트라를 대상으로 꽤나 많은 진법훈련(?)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규모의 수전으로 위장하여 육지에서 유비와 손권의 동맹군을 치려던 조조의 계획이 실패하고
이제 본격적인 수전인 적벽대전에 들어가기 전 영화는 끝난다.
그때 곳곳에서 들려오는 장탄식과 궁시렁거림... '어~?? 뭐야~~??' '뭐 이래..??'
몇년전 [반지의 제왕] 1부의 마지막 장면에서 내가 느꼈던 허탈함과 내가 내뱉은 말과 같다.
그때 반지의 제왕이 3부작이라는걸 모르고 왔다가 영화의 이상한 종결에 어리둥절했던 것 처럼
이번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적벽대전이 2부작이라는걸 몰랐던 모양이다.
적벽대전이라는 영화가 적벽대전 시작도 전에 끝나버리니 황당할 밖에.
그래서 영화제목을 끝까지 자세히 봐야한다.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
이 영화는 제목에 충실하여 시작을 알리며 끝난다.
2부에서 본격적인 적벽대전이 보여질거 같은데, 제작비 800억원도 2부에서 쓰여지는 모양이다.
내가 내리는 결론은, 1부를 굳이 보지않아도 2부를 보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거 같으니
중국영화는 별로이면서도 삼국지에 소개되는 적벽대전이라는 이름때문에 이 영화에 관심을 가졌던
나같은 사람들은 1부는 나중에 CD로 보시고 2부를 기다려도 괜찮을거 같다.
사족 - 금성무는 정말 멋지게 생겼다. 빙긋이 웃음짓는 모습도 매력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