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라는 속담과 [名不虛傳(명불허전)]이라는 사자성어는

대단하다고 알려진 것의 실체에 대한 각기 다른 진실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국내최고의 안락한 시설을 자랑한다는 상영관의 좌석에 앉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 놈 놈]이라 표현)의 상영을 기다리며,
나는 이 영화에 어떤 표현이 어울릴지 호기심이 났다.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라는 국내 톱스타들의 共演이라는 점에서
헐리우드 최고스타들을 모은 [오션즈일레븐]이 생각나기도 했던 영화.

 

시작은 좋았다.

비밀지도에서부터 시작되어 빠르게 전개되는 화면은 처음부터 뭔지모를 음모의 냄새를 풍기며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고, 이어지는 만주벌판의 열차 총격장면에서는 긴박감을 고조시키며
이어지는 두시간에 대한 기대를 부풀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게 정점이었다.

그 뒤 영화는 보여주는 액션으로 관심을 유지시키다가 영화 중반 이후 만화가 되기 시작한다.

 

줄거리가 아닌 화면으로 보는 영화 [놈 놈 놈].

이 영화는 줄거리로 보면 재미가 없다. 
전반적으로 Plot 이 치밀하지 못한데, 특히 생각보다 스토리구성이 약하다.

영화 초입부에 보여준 비밀지도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쫒고 쫒기게 만드는 도구일 뿐,

영화의 줄거리에 미치는 의미는 없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비밀지도에 좀더 의미를 부여하여 지도가 스토리전개의 줄기가 되게끔 섬세하게 연결을 시켰더라면,
이 영화는 단순히 액션 뿐만이 아니라 긴장감 넘치는 서스펜스까지 제공하여
관객의 눈만이 아닌 두뇌까지 자극하는 더욱 밀도있는 영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게 부족했기에 [놈 놈 놈]은 화면으로 보는 영화가 되어버렸는데,

화면으로 보는 영화의 특징인 액션도 처음의 팽팽한 구도가 후반으로 가면서 흐트러진다.

긴 시간 이어지는 일본군의 대규모 추격장면이 오히려 영화를 산만하게 만들었으며,

코믹액션물이 아닌 정통액션물에서의 코믹스런 부분은 감칠 맛 나는 수준으로 이입되어야 함에도

독립군을 사칭한 주점에서의 다소 엉성해보이는 코믹상황은 오히려 영화를 어설프게 만들었다.

 

산만할 수 있는 영화를 잡아주는 각기 다른 개성의 세 주인공.

[이상한 놈] 윤태구役의 송강호는 카리스마와 코믹스러움의 이질적인 두 모습을
능청스러울 정도로 구사하며 송강호 만의 연기영역을 더욱 공고히 했다.

 

[좋은 놈] 박도원을 연기한 정우성.

어찌보면 이 영화는 정우성의 배역을 위한 영화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우성은 매우 폼나게 나온다.

로프에 의지해 공중을 날며 사격술을 자랑하는 모습이나 패거리가 없이 혼자 적을 섬멸하는
독고다이 모습을 보이는 것 등 싸움꾼으로서의 우아한(?) 모습은 모두 그의 몫인데,

특히, 대규모 일본군의 진영을 혼자 거꾸로 돌파하는 모습에서 그는 만화 속의 수퍼히어로가 된다.

하지만, 말을 달리며 장총에 실탄을 장전하는 모습이나, 또 장총을 회전시키며 장탄하는 멋진 모습은
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고, 촬영 중 고생은 정말 제일 많이 했을거 같다.

 

[놈 놈 놈]에서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이병헌이다.

크고 맑은 눈과 시원한 미소로 선한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때로는 우수에 젖은 눈으로 고뇌하는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던 이병헌이
[놈 놈 놈]에서는 나쁜 놈 박창이를 완벽하게 표현한다. 
최고라고 자부하면서도 내면에는 콤플렉스를 안고있는 악역을 보여주기 위해 평소 보여지던
그의 눈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광기어린 눈빛에 뺨의 흉터와 긴 앞머리를 더해
이미지변신을 꾀했는데,
특히, 이병헌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놀랄 정도의 근육질 몸매도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한몫을 한거 같다.

이런 그의 변신에 대한 노력과 열정이 헐리우드까지 진출한 연기자로서의 그의 미래를 밝게 하는게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배용준과 대비된다.

 

 

[놈 놈 놈]을 보면서 머리 속을 뱅뱅도는 영화 [석양의 무법자].

 

영화를 보면서 정우성의 연기가 서부영화에 나오는 크린트 이스트우드의 이미지와 많이 닮았다고만 생각했는데,
영화가 끝난 뒤에는 [놈 놈 놈]이 [석양의 무법자]의 패러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영화는 닮았다.

 

일단 [놈 놈 놈]이 웨스턴스타일 무비인 이유도 있겠지만,

[놈 놈 놈]과 [석양의 무법자]는 그것 말고도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제목.

[석양의 무법자]의 원래 제목은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거의 유사하다.

 

주인공의 캐릭터도 서로 비슷하다.

[좋은 놈] 박도원을 연기하는 정우성은 [The Good] 블론디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많이 연구(?)했다.

담배를 물고, 무표정한 얼굴에 가끔씩 빙긋이 웃는 표정까지..

클린트 이스트우드보다 조금 말이 많다는게 차이라면 차이랄까.

[나쁜 놈] 박창이의 이병헌 모습에서 나는 리 반 클립을 떠올렸는데, 리 반 클립 역시

석양의 무법자에서 [The Bad] 센텐자를 연기했다.

리 반 클립의 능글맞은 표정이 돋보였다면, 이병헌은 잔인함이 강조됐다.  

 

두 영화의 또 하나 닮은꼴은 [놈 놈 놈]에서 [좋은 놈]과 [이상한 놈]이 같이 붙어 다니는 것과 같이

[석양의 무법자]에서도 [The Good]과 [The Ugly]과 붙어 다닌다는 점이다.

다른점이라면 중간부터 붙어 다니느냐, 처음부터 붙어 다니느냐의 차이.

 

닮은꼴의 백미는 영화의 두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삼각대결 씬.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있다.

세 주인공 중 [나쁜 놈]은 왜 나쁜 놈인지 확실하게 알겠고,

[이상한 놈]은 하는 행동이 이상한거 같으니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거 같은데,

[좋은 놈]은 왜 좋은 놈인지를 모르겠다.

[석양의 무법자]에서 블론드는 가끔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에 [The Good] 같기도 하다.

하지만 [놈 놈 놈]에서의 박도원은 뭘 보고 [좋은 놈]이라고 인식해야 하는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비슷한 부분이 많아 패러디라는 생각도 하게 되지만, 그렇다고 [놈 놈 놈]을 평가절하할 생각은 없다.

웨스턴 무비 매니아인 김지운 감독이 한국판 서부활극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의도대로 [놈 놈 놈]은 우리나라에서 보여주기 어려웠던 스케일 큰 액션을
만주라는 광활한 공간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다.
단지 너무 스케일에 치중하다 보니 디테일에 조금 소홀하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있다는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많았다는 사람도 많지만,
글쎄
내 입이 짧아서인지 내 입맛에는 감칠 맛이 조금 부족했다.

 

하지만, 열심히 만들었다니까, 나도 열심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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