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 골목길에도 이발소가 있었다.
베이지색 팔걸이에 황토색 바닥과 등받이가 있는 의자 세개.
그 의자의 한쪽 끝에는 면도용 칼을 가는 긴 가죽띠가 달려있고,
화장대 위에는 비누거품을 내기 위한 컵에 원형 브러쉬가 담겨 있었다.
꼬마들은 의자에 앉으면 머리가 등받이 아래로 파묻히기 때문에
아이들이 오면 긴 널판지를 팔걸이 위에 걸쳐놓고 그 위에 앉힌다.
흰색 가운을 목에 두르고 그 널판지 위에 앉아 있노라면 왜 그리도 졸립던지..
고개가 절로 아래로 떨어질 때 마다 이발사 아저씨는 "졸면 안돼.." 하시며
양 손으로 고개를 위로 들어올리시지만, 그래도 잠시 후 다시 떨어지는 머리.
정신이 번쩍 들어 잠이 깨는건, 날이 무뎌진 오래 된 바리깡과
가위에 머리가 낑겨 머리카락이 뽑혀지는듯한 고통이 가해지면서이다.
조발이 끝나면 비누거품을 묻혀
귀 밑단과 귀 뒤에서 목에 이르는 머리의 양 가장자리에 묻히고는,
가죽에 면도용 칼을 위 아래로 두세번 갈아 머리 가장자리에 대고
피부를 살짝 당기며 누르면 머리와 피부의 경계부분이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머리를 깎고 나면 가끔 머리에 회색얼룩이 번진 것 같은 경우가 있는데,
이발기계에서 옮은 기계충이라고 했고, 이런 기계충을 예방하기 위해
이발 후 머리에 파우더를 뿌린 기억도 있다.
겨울에는 이발소 한가운데 있는 난로 위에 물통이 있었다.
머리를 감기기 위해 찬물과 섞을 물을 끓이는 것이다.
그리고, 벽면과 벽면을 잇는 철사줄에는 항상 수건을 말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전면 거울을 바라보면 액자가 걸려있는데,
그 액자에는 하천 옆에 물레방아가 있는 그림과, 이런 문구가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
.
이 글이
러시아의 시인 알렉산드르 푸쉬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詩의 한구절이라는걸 나중에야 알았다.
신기했던건
똑같은 그림과 싯귀가 당시 왠만한 이발소에는 다 있더라는 것.
마치 이발소 영업허가의 전제조건이었던 것 처럼.
나도 이발소를 가본지가 언젠지 모르겠다.
블루클럽, 나이스가이 등 저렴한 남성전용 컷트 전문점이 많아졌고,
이제는 미용실에 남성들이 드나드는 것도 전혀 어색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앞면도를 하고싶은 마음에 이발소를 찾고싶은 마음도 가끔 들지만,
요즘 이발소는 본연의 기능보다 외적인 기능이 앞선 곳이 많아 부담스럽다.
저 이발소를 보는 순간, 들어가 이발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왠지 저 안에는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지금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그리던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을 때 다가올 실망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