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직장생활을 마치고 나니 모든게 홀가분 했다.
꼭 해보고 싶었던 배낭여행을 다녀 오고, 느긋하게 이쪽 저쪽을 배회하며 여유를 한껏 즐겼다.
평소에는 꿈도 못 꾸던 여러가지를 많이 해 보았다.
그중 가장 매력있는 것이 주중골프였다.
주중에 골프를 친다는 것은 나와는 별 세계의 선택받은 사람들만의 특권인줄 알았는데,
내가 삶의 방식을 선택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능한 일 이었고,
역설적으로 말하면, 직장에서 선택을 못 받아도 가능한 일 이었다.
골프장 부킹 잘 되고,
그린피도 싸고,
굳이 새벽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또 오가는 교통도 한가하고...
다 좋은데... 문제가 있었다.
나만 시간이 많다는거다.
같이 갈 만한 사람은 주중에는 시간이 안 나거나, 회원권이 없어 비용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매번 동반자의 비회원 그린피를 같이 부담하자니, 몫돈 들여 회원권 산 의미가 없고...
방법이 없을까...???
방법을 생각한 것이 나와 같은 골프장의 회원권을 소유한 사람들의 동호회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2002년 9월 동호회에 가입했으나, 그 동호회 내부에서 작은 문제가 생겼다.
결국, 생각이 같은 분들과 그 동호회에서 나와, 2002년 12월 지금의 [시그너스동호회]를 결성했다.
이제 2년반이 된 이 동호회에서 나는 커다란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고 있다.
대부분이 40을 넘긴 생면부지의 중년들이, 그것도 사이버상에서 처음 만나
이렇게 짙은 정을 나눌 수가 있는건지 나 자신도 의아하고 믿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명보다는 필명으로 호칭되고 통하는 이 모임은 이해관계가 없다보니, 서로가 편안하다.
그리고 어떻게 이렇게 좋은 분 들이 모여 들었는지, 정말 면접심사를 해도 이렇게 서로 통하는
분들이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골프를 매개로 만났지만, 우리 모임은 골프는 단지 매개일 뿐, 인간적인 情으로 뭉쳐 있다.
잦은 먹거리번개와 부부동반 모임, 그리고 가족 등반모임 等으로 우리는 형제처럼 지낸다.
사회에서는 보통 상하 5년은 친구라지만, 우리는 1~2년 차이에도 형 동생으로 관계가 설정된다.
그만큼 사람들이 살겹다.
그리고, 서로에게 배려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또 믿어주는 아량들이 있다.
또 구속력이 없는 사이버상의 비공식 모임 임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참여와 열정들도 대단하다.
이런 믿음과 열정으로 신설 동호회로서는 처음으로 2003년과 2004년, 2년 연속
에이스골프 선정 최우수 골프 동호회로 선정되는 기쁨도 누렸다.
작년 5월 에이스골프 주관 골프 동호회 연합모임에서, 최우수동호회 대표로서의 인사말을
요청받은 자리에서, 나는 우리 동호회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다.
' ... ... 시그너스동호회는 세가지가 없는 3無 동호횝니다. 회장이 없고, 회칙이 없고,
회비가 없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다른 세가지가 있습니다.
정이 있고, 흥이 있고, 그리고, 만남이 있는 동호회. 그게 바로 우리 시그너스동호횝니다.'
내가 가끔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소리가 있다.
내가 어디가서 교수, 의사, 한의원 원장, 기업체 사장들에게서 집단으로 '형' 소리를 듣겠느냐고...
이 모임을 통해 나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을만나, 그동안 직장생활에서 접해보지 못 했던
다양한 세계를 접하고 넓은 시각을 배우고 있다.
우리 동호회에서 만난 동생들, 그리고 형님들께 늘 감사한 마음을 지닌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