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에 해당되는 글 280건

  1. 2012.09.01 아내의 두번 째 단체전시회 - 월산미술관 1
  2. 2012.08.28 친구가 남겨준 나의 한 순간 2
  3. 2012.05.12 취미는 세대를 초월하게 한다
  4. 2012.04.07 납골묘를 보며 드는 생각
  5. 2012.02.27 우리말이 점점 헷갈린다 4
  6. 2012.01.30 지연이의 애리조나 방문
  7. 2012.01.01 2012 목표 내지 희망
  8. 2011.11.28 생각치않고 지내던 내 모습
  9. 2011.11.04 정말 멋 없는 내 모습..
  10. 2011.09.11 母女
  11. 2011.08.27 마음 한 조각을 남겨둔 아이들
  12. 2011.07.21 2011 어머니 생신
  13. 2011.07.18 아이들 마음의 고향 유윤순 할머니
  14. 2011.07.14 忙中閑
  15. 2011.07.13 성장이 새롭게 느껴진 시간
  16. 2011.06.21 내 머리임에도 내겐 선택권이 없다니..
  17. 2011.05.22 꽃으로 전해드리는 마음
  18. 2011.05.19 아련한 그 때.. 서천봉사활동.
  19. 2011.02.13 가족임을 일깨워주는 지연이의 발렌타인 카드
  20. 2011.01.12 멘토님이 담아준 내 모습
  21. 2011.01.06 아침식단에서 느끼는 애정
  22. 2010.12.08 애물단지의 절묘한 탈바꿈
  23. 2010.12.01 벌써 12월?? 플필 사진을 통해 본 궤적
  24. 2010.08.31 재원이의 자동차
  25. 2010.07.23 재원이 화상 몰카
  26. 2010.07.06 나이들며 외롭지않고 행복해지려면 2
  27. 2010.06.30 내가 어려움을 견디는 방법 2
  28. 2010.06.26 아이들의 모든 것은 부모에게서 기인한다 2
  29. 2010.06.17 온달같은 남편 평강같은 아내
  30. 2010.06.16 더 달콤한 유혹이 갈 길을 정한다

 

 

두 달여 전 단체전에 처음 작품 한 점을 내걸었던 아내의 두번 째 단체전시회.
인사동에서 전시회 데뷔(?)를 하더니, 이번엔 분당 이매동에 위치한 월산미술관.

 

 

 

건물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규모가 작은 건물의 지하에 위치한 월산미술관의 내부는 오붓했다.

 

   

 

이번에 전시된 아내의 작품은 석 점.


아내는 그림을 매우 좋아한다.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직접 그리는 것 역시 초등학교 시절부터 꽤나 하고 싶었던 로망이었단다.
때문에 미대에 진학하고픈 욕구가 컸지만, 환경이 그 뜻을 허용하지 못 해 그림에 대한 열망은
늘 아내의 마음 한 켠에 켜켜이 쌓여 있었던 거 같다.

 

 



사람들은 때로 참 엉뚱한 데서 인연이 묘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결혼 후 집안 행사로 친척들이 모였을 때, 육촌 여동생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육촌 여동생이 아내와 중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이다. 2학년 때 같은 반까지 했었다고.

그 여동생이 며칠 전 아내와 상가에서 만나 옛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런 말을 했다.
"학교 다닐 때 그림 잘 그렸잖아.."

'그랬구나...'  육촌 여동생의 말을 듣고 있던 나의 독백이었다.


그런 오랜 갈망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학교에서 물러난 후 지쳤던 심신을 추스리는 듯하더니, 어느 날 부터인가 화구를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그리는 것은 아예 젬병이고, 볼 줄도 모른다.
그림에 대해 일자 무식이기 때문일까.. 아내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결혼 후 그림 그리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는데도, 자연스럽게 스케치가 되는 것도 신기했지만,
그보다 거침없이 용감하게(?) 쓱쓱 색을 입혀가는 모습도 내겐 놀라운 모습이었다.
  
 

 



처음엔 나무를 중심으로 풍경을 소재로 삼던 아내의 소재가 언제부턴가 [꽃]에 꽂히기(?) 시작했다.
단순한 꽃 그림이 아니라, 꽃잎과 꽃봉오리의 집합체. 
그러니까, 뭐랄까.. 꽃잎을 다소 몽환적인 분위기로 표현한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가..
아뭏든, 아내의 그림은 한동안은 이쪽으로 특화될 거 같다.
  
재밌는 건, 두 그림의 제목이다. [놀다 1] [놀다 2].
꽃과 [놀다]라는 제목에 연관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왜 제목이 [놀다]일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뭔가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있다.

감수성과 정서가 예민했을 시절부터 하고 싶었던 그림.
마음 속에 품었던 연상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아내에게는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놀이가 아니었을까.    
그러니까, 하고픈 것을 하는 그 순간, 아내는 흥겹게 놀고 있는 것이다.
   
  

 

 

블로그를 통해 나와 인연을 맺은 정 원장은 이제는 오히려 아내와 언니 동생 하는 절친이 됐는데,
전시회 소식을 듣고는 고맙게도 꽃바구니까지 들고 찾아주었다.
 

 


요렇게 그림 옆에 서니 제법 병아리 화가 티가 나는 거 같기도..
뭐.. 복장만 보면, 마치 내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 해도 통하지 않을까..??


첫 단체전에는 작품 한 점, 두 번째 단체전에서 석 점을 걸었으니,
언젠가는 개인전을 할 때도 오게 되겠지.

어후~ 화랑 대관하려면 내가 돈 많이 모아야겠네...*^^*

 

 

:

 

"인철이가 네 사진 멋진 거 하나 있는데, 그냥 주기 아깝다고 한 잔 사라고 하더라."

작년 년말에 기홍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잔 사는 건 문제가 아닌데, 일단 물건을 봐야 할 거 아니냐.." 고 반문했더니,
자기가 봐도 괜찮더란다.

내 사진을 담았다는 이인철은 대전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러면서 개인전까지 열 정도로 사진에도 일가견이 있는 친구.

그런 친구가 스스로 강한 자신감을 표했다면 일단 믿어야 한다.  

믿는 만큼 사진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지난 주말 친구들이 대산에서 모일 때 다시 연락이 왔다.
와인 두 병을 가져오면 사진을 주겠다며, 사족을 붙인다. 

정말 멋진 영정 사진이라고..

점점 궁금해진다. 

어차피 친구들과 마실 거.  와인 세 병을 가져갔다.


그렇게 해서 어제 메일로 전해 받은 사진.


자기는 사진에 일체 후보정을 하지 않는다며,
필름을 스캔하는 바람에 원본에 비해 화질이 좀 떨어진다고 했다.

그럼에도 기대 이상이다.

이런 사진이 있었는지, 나는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친구가 참 잘 담아준 거 같다.
나중에 시간날 때 원판 사이즈로 인화해서 준단다.  그럼 진짜 영정 사진이라나..


이 친구가 사진 강좌까지 하는데,
흑백사진을 배우는 제자들에게 보여줬더니 한 마디씩 하더란다.

- 똘똘하게 생겼네요.
- 글 쓰는 사람이세요?
- 친구 맞아요?

그러면서, 맨 마지막 말은 기분 나쁘더라고..^^



이렇게 좋은 사진을 담아준 이인철 교수~  고마워~
덕분에 두고 두고 간직하고픈 나의 한 순간이 남았다. ^L^.. 

 

:

 

 

 

 

난 개인적인 트위터 계정을 두 개 사용한다.

워낙 야구를 좋아하는데, 트위터에 야구이야기,
그것도 특정팀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면
야구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팔로워들에게 공해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예 두산베어스 이야기만 실컷 하기 위한 계정을 만든 것이다.

이 계정에서는 야구이야기만 하는데,
자연스레 팔로워들도 대개 야구팬, 특히 두산베어스팬들이 많다.

이 계정으로 트윗을 하다보니 코드가 맞는 몇 사람과 친분을 나누게 됐다.
한 사람은 한국전력에 근무하는 과장이고, 또 한 사람은 연세치대 본과 2학년에 재학중인 여대생이다.

조만간 만나 신나게 야구 수다를 떨거 같은데,
같은 기호의 20대 초반과 40전후, 그리고 50대 후반의 만남은 어떤 모습일런지 기대된다.

딸아이가 05학번인데, 09학번이라니..
취미는 세대를 초월하게 한다.


작년에 재원이가
"두산팬이라면 더 좋겠지만,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하면 좋겠다" 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

 

지난 주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소를 가족 납골묘로 변경하는 작업이 있었다.
묘지문화의 개선은 오래 전부터의 사회적 문제였던 만큼, 그간 아버지 형제분들께서
논의하셨던 것을 이번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묘역을 관리하는 공원관리사무소와 묘지 변경 및 이장에 대한 사전 협의를 마친지라,
합의된 사항에 대한 최종 확인을 거친 후 이장과 화장을 위한 개묘를 했다.

 

모셨던 묘지를 열어 유골을 수습중. 저렇게 수습된 유골을 화장한다.
신기한 건, 유골의 형태만으로 생전의 모습을 뵌 적이 없는 돌아가신 분의 체구를 유추한 것이,
어른들의 말씀을 들어보니 대체로 맞더라는 거.

 

일 하시는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매장 후 12~3년이 되어야 육탈(肉脫 : 시신의 살이 썩어 뼈만 남는 것)이 된다고 한다.
아직 육탈이 안된 분은 시신을 얇은 관으로 옮겨 모셔 입관상태로 화장을 한다.
관을 옮겨 모시는 이유는, 원래 안치됐던 관은 습기로 인해 불에 잘 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

 

수습된 유골과 시신을 화장장에서 화장하는 동안 원래 모셨던 자리를 납골묘로 조성하고,
조성된 납골묘에 화장이 끝난 유골함을 안치 후 제례를 지내는 것으로 마무리.

언젠가는 우리 부부도 저 안에 자리하게 되겠지.
유골함 20~24기를 안치할 수 있는 납골묘가 두 개면, 숙부님들과 우리 사촌형제들까지 모두 함께
할 수 있으니 살아서도 자주 접하지 못하는 얼굴들이 죽어서야 한 뼘 거리에서 함께 하게 되는 셈이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부모님은 대전의 국립현충원으로 가시게 되니, 숙부님들과는 함께 하면서도,
정작 부모님과는 함께 하지 못한다는 거.


사실 아내와 나는, 우리는 사후 화장을 하여 우리 아이들이 즐겨 찾을 수 있는 조용한 곳에 뿌려지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수목장이 됐든, 아님, 호수나 강이 됐든, 꼭 성묘의 개념이 아니라,
아이들이 머리를 식히려 편하게 찾으며 부모도 생각할 수 있는 곳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페랄로에서 차를 마시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나중에 화장해서 운중지에 뿌리라 그러면, 애들이 여기와서 차 마시며 창 밖으로 내다보는게
 우리 만나는 거 아닌가..?  꼭 성묘가 아니더라도 편하게 자주 올 수 있는 거잖아.." 

:

글을 쓰다보면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슴 깊히 와닿는 감흥을 묘사하려다 늘 비슷비슷한 표현 밖에 못하는 어휘력의 부족에
스스로 짜증이 나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 대해 함축성있는 의미 전달이 가능한 관용어구나
고사성어를 떠올리려 바둥거리기도 하고, 전문용어나 사회 전반에 대한 식견이 부족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건 아닌지 두려울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나의 기본적인 지성이 이렇게 부족했었나 하는 답답한 자성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위에 언급한 건 그런대로 별 부끄럼없이 기죽지않고 버틸 수 있다.
더 당혹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국어를 잘 했다.  사실 국어 성적과 우리말 실력이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내 경우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 기본적인 것에 기초가 튼튼하다고 스스로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글을 쓰다 당혹감이 느껴지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써오던 맞춤법이 긴가민가 갸우뚱하게 되고, 띄어쓰기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내게 가끔 딸아이의 예리한 지적이 날아들곤 한다. 맞춤법이 틀린 부분을 지적하며,
"아빠~ 왜 그래..?" 하는 지적을 받을 때면, 아빠의 과오를 지적할 능력을 갖춘  딸아이가
대견하면서도, '어~ 내가 왜 이러지..  벌써 이러면 안되는데..' 하는 초조감이 들기도 한다.

때문에, 간혹 맞춤법에 의혹이 있으면 반드시 사전을 찾아 확인하곤 하는데, 문제는 띄어쓰기다.
띄어쓰기는 사전만으로 해결이 안 된다. 물론, 띄어쓰기 조금 부정확하다고 문맥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내용을 이해하는데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찌보면 쓰잘 데 없는 성격 탓이겠지만, 가급적 정확한 표기를 하고 싶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헷갈리게 될텐데, 지금이라도 한번쯤 그런 부분의 재정비가
필요할 거 같아, 서점에 들러 맞춤법에 대한 책을 살펴 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 이 책 저 책을 뒤지다 게중 맘에 들어 고른 이 책.

이 책은 아홉 개 부문으로 나눠 혼동하기 쉬운 표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맞춤법 : 갈게 / 갈께,  나무꾼 / 나뭇군,  부잣집 / 부자집,  뒤풀이 / 뒷풀이,  확률 / 확율 
- 표준어 : 개비 / 개피,  괴발개발 / 개발새발,  구시렁거리다 / 궁시렁거리다,  두루뭉수리 / 두루뭉실,  만날 / 맨날
- 어휘 : 간질이다 / 간지럽히다,  갑절 / 곱절,  계발 / 개발,  못 미쳐 / 못미처오랫동안 / 오랜 동안  
- 표준 발음  
- 외래어 표기
: 마사지 / 맛사지,  윈도 / 윈도우,  주스 / 쥬스,  비전 / 비젼,  카페 / 까페,  케이크 / 케익
- 띄어쓰기 : 하고서부터 / 하고서 부터,  귀가 시 / 귀가시,  너뿐 / 갔을 뿐,  서울역 / 도쿄 역,  알 만하다 / 알만하다
- 문장부호
- 문법
: 가능한 한 / 가능한,  그러고 나서 / 그리고 나서,  쓰라 / 써라,  예부터 / 옛부터
- 언어 예절 

위 부문별 예시에 대해 정확한 해석을 할 수 있으면 굳이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는데,
이 책의 내용을 대충 살펴보니 그동안 내가 전혀 모르고 사용했던 것 들도 꽤 많아 놀랐다.


내가 이 책을 보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찍 유학을 간 재원이가 후에 어찌 자기 아이들 맞춤법 교육을 시키겠나..
천상 할아버지 할머니 몫이 될 거라 생각하니, 우리 부부가 열심히 숙지해야 한다. ^^#  


사족 : 근데, 이 책 제목이 맘에 안 든다.
            [나만 모르는 우리말]이라니...
            [내가 모르는..]도 아니고, [나도 모르는..]도 아닌, [나만 모르는..]이라고 하니, 마치 나만 바보인 거 같다.

:

아이들에게 안타까운게 하나 있다.
재원이가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남매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10년이란 시간을 함께 하긴 했지만, 서로 의지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엄마에게 더 의존하던 어린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에는 부모보다 같은 또래의 친구나 형제 자매끼리 속마음을 열기가 더 편한 법인데,
아쉽게도 재원이와 지연이는 남매로서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재원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지연이는 오빠를 무척이나 그리워하며 보고싶어 했고,
그런 마음을 많이 표현하기도 했다.  재원이가 병역의무를 위해 귀국한다고 했을 때,
부모보다 더 재원이를 기다린건 지연이었다.  그리고, 오빠에 대한 그런 마음은 재원이가 제대 후
다시 미국으로 떠날 때도 여과없이 나타났다. 재원이가 표현에 서툴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표면적인 감정은 지연이에 대한 재원이의 감정보다, 재원이를 향한 지연이의 감정이 더 진했다.   

그런데, 그런 짙은 애정의 감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원이가 군 입대를 전후해 집에 있을 때
두 아이의 관계는 기대했던만큼 매끄럽지가 못했다. 지연이의 오빠에 대한 태도는 문제가 없는데,
의외로 재원이가 지연이에 대해 어색해 하는 모습이었고, 지연이도 그런 오빠가 느꼈졌는지,
어느 순간 둘 사이가 다소 데면데면해지는 모습이다.

아내와 나는 재원이의 그런 면을 이해한다.
어려서의 성장과정에서 늘 자신보다 앞서 나간 동생에 대한 기억이 오빠인 재원이가 지연이를 대하는데
여전히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게다가 둘이 함께 하지 못했던 기간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쩍 성장한
동생의 모습이 생소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게다가, 청소년기에 겪은 문화적 차이도 있을 수 있다.

어찌됐든 그런 시간과 공간의 거리감이 있던 두 아이가 지난 5월 10년 만에 함께 동거(?)할 기회를 가졌다.
재원이의 군입대를 전후한 기간에는 지연이가 기숙사에 있었거나, 연출 준비로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어
얼굴보고 대화할 시간이 없었던 차에, 지난 여름 방학 둘이 들어와 한 달을 함께 했다.

서로가 딱히 해야 할 일이 없었던 그 한 달은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까지 포함하여 말 그대로
네 식구가 처음으로 한가함을 함께 한 시간이었는데, 그 기간 중 재원이와 지연이의 다툼이 있었다.
그 날 다툼 후 화해를 위해 둘만의 대화를 한 시간 이상 가진 재원이는 지연이에 대해 전혀 몰랐던 새로운
면을 알았다는 말을 했다. 몰랐던 지연이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소중한 계기였던 것이다.

 



작년 말 겨울방학을 맞아 지연이가 오빠가 있는 애리조나로 가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냈다.
지연이가 오빠를 찾아 가리라는건 의외였다. 워낙 계획에 의한 자기 생활이 분주한데다, 둘의 일상코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원이도 처음 지연이가 방문 의사를 표했을 때는 그냥 하는 지나가는 말로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어찌됐든, 지연이는 방학을 하자마자 애리조나로 건너가 열흘을 오빠와 함께 지냈다. 
추운 뉴욕을 일시라도 벗어나 학업에 지친 심신을 달래보고 싶었겠지만, 그 장소로 오빠를 택한 배경에는, 
지난 여름 둘이 다투며 함께 나누었던 대화를 통해 오빠와 래포가 형성된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때의 소통이
오빠에게 다가갈 오픈 마인드의 계기가 됐다는 얘기다.

재원이는 처음 자신을 찾는 지연이를 위해 나름 사전 준비를 많이 하는 모습이었다.
지연이에게 보여줄 곳도 생각하고, 지연이가 관심있어하는 뮤지컬 관람을 위해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용돈으로 라스베가스의 호텔과 뮤지컬 티켓 예매에도 신경을 쓰는거 같았다.  




지연이가 뉴욕으로 돌아간 후, 두 아이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들은 우리에겐 대단히 긍정적이었다.
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함께 생활하는 동안 서로의 성격을 잘 아는 두 아이가 서로에게 배려하려는
노력을 많이 한거 같다. 재원이는 지연이가 싫어할만한 성격의 사람들과의 접촉을 가급적 피하며
지연이의 의사를 많이 묻는거 같았고, 지연이 역시 오빠의 프로그램에 맞추려 노력한거 같다.
"나는 별로 먹고싶지 않더라도, 준비한 오빠 생각해서 다 먹었다."는 지연이의 에피소드가 그렇다.^^

지연이가 재원이의 생활권에 들어간만큼, 아무래도 재원이의 일상을 함께 접하며 우리보다  재원이의
주변 등  독립된 생활을 볼 기회가 많았을 지연이의 오빠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오빠와 가까이 하는 사람들 모두 술 담배를 안하더라면서, 오빠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을 보니 학생은 없고 
모두 직장인들이라는게 가장 놀랐단다. 신분이 아직 학생이라 당연히 학생들과 어울려다닐거라 생각했던 
오빠의 대인관계가 새삼스러웠던 모양이다.

 



남매가 서로에게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그래서
서로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면 지연이의 애리조나 방문은 상당히 유의미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남매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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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족의 건강
     누구보다 아내가 아픈 곳 없이 건강했으면 좋겠다.

 
2. 아이들의 만족스런 결과 도출
     재원이도 졸업 후 원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지연이도 졸업공연 준비가 잘 이루어지기를.

 
3. 부모님에 좀 더 관심을
     아직 같은 연배분들에 비해 너무 건강하시지만, 기력이 많이 쇠해지셨다.
        
 4. 효율적 자산운용
     지난 2년 운이 많이 따랐다. 자만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차분하게.
 
 
5. 지인들과 더 돈독한 인연
     오랜 만남이 있었던 사람들, 새로 함께 한 사람들.
     모두에게 실망스럽지않도록 좋은 모습으로 성실하게 노력하자.
 
 
6. 휴양림 순회
     아내와 함께 하며 대화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기회가 되면 좋은 사람들도 함께.

 
7. 새로운 배움의 생성
     새로운 것이든, 예전에 하던 것이든, 혹은, 얕게 알고있던 것에 대해 조금만 깊이를 더했으면.

 
8. 더 젊게 살기
     생각도 외모도. 그리고, 행동까지.

 
9. 미움은 줄이고 이해는 넓히고
     남 탓 하지 말고, 원인을 나로 부터 찾자.

10. 집안 일에 좀 더 신경을
      생각나면 바로바로 미루지 말자.

11. 바디라인 개선
      운동을 좀더 체계적으로. 가급적 식이도 좀 신경쓰면 좋은데..

12. 2013년을 위한 준비
      2013년엔 해야 할 게 있다. 차근차근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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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생활을 하며 매일 똑같이 양복에 넥타이를 매는게 무척이나 답답했다.

그렇게 20년 이상을 보내고 회사를 떠난 뒤 제일 홀가분했던 것이
양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오죽했으면, 그 이후 양복을 입는 횟수가 1년에 다섯 번이나 될까..?
경조사 때나 양복을 입는데, 그것도 싱글이 아닌 콤비 스타일에 노타이다.

1년에 360일은 주로 면바지나 청바지를 즐긴다.
옷을 입는데 남의 시선을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맥주를 한 잔 마시다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는데, 벽면이 거울이다.

거울에 내 모습이 보이는 순간 문득 내 모습이 궁금했다.
'정말.. 내 모습이 어떤거야..?' 

이제 50중반을 넘어선 나의 겉 모습이 남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내 기분에만 취해 마주한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건 아닌지...


이제 조금씩 쟈켓도 걸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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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의 내 모습이 얼마나 근엄(?)한지 알았다.
여기서 근엄이란 심각하고 딱딱하고, 한 마디로 재미없다는 의미다.

주름진 얼굴은 웃어야 그나마 해맑아 보이는데,
인상쓴 모습은 나이만 들어보이는, 제대로 밥맛이다.

무의식의 표정을 바꾸려면 어케야 하나... 생각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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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여름


내가 사랑하는 모녀는 아름다웠다.
:

큰 손님(?)을 치렀다.
방학을 이용해 아이들이 다녀갔다.
재원이는 진로 문제 등 서로 이야기 나눌게 많아 40여일 머물다 2주전 돌아갔고,    
지연이는 종합검진을 비롯해 몸 전체 점검과 휴식을 위해 봄 학기 강의가 끝나자 마자
오빠보다 먼저 들어와 90여일 머물다 지난 수요일 돌아 갔다.
재원이는 얼추 2년 만의, 지연이는 1년 만의 귀국이다.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한 시간이었기에 여행을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지연이도 계속 치료를 받아야 했고, 재원이 역시 이것저것 생각할 게 많아 가족여행을 접었는데,
예년에 비해 줄기차게 이어진 장마와 집중호우를 생각하면 여행을 다녀도 고생일 뻔 했다.
재원이는 정말 비 구경만 하다 간듯 하다.

지연이가 집에서 식구들과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낸건 학교 다니면서부터 처음이다.
늘 쉼 없이 뭔가를 찾아 몰두하며 쉬는 시간이 없던 지연이는 대학시절 방학 기간에도
늘 학교와 공연장에서 사느라 식구들과 한가로이 지낸본 적이 없었는데,
3개월간을 아무 것도 안 하고 시간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엄마와 함께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 것도 처음이다.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엇갈리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범위가 많이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또래들에 비해 감성은 아직도 애들 같다는 생각. 
대학원을 다니는 딸이 그 많은 시간을 엄마 아빠와 인사동을 나가고 영화를 보러 다닌다는게 그렇다.

또 하나 느낀 점은,
가족이 너무 일찍 떨어져 오랜 시간이 흐르면 가족간에도 애정 표현이 어렵더라는거.
특히, 재원이와 지연이가 그렇다. 그렇게 오빠를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던 지연이나,
또 그런 지연이의 마음에 반응하는 재원이나 뭔가 서로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듯 하다.
특히, 재원이가 자기에 대한 지연이의 애정에 반응하는데 조금은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며,
감수성이 순수한 시기에 일찍 떨어져 지낸데 기인하는거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앞으로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간극이 줄어들 수 있겠지만,
오히려 점점 함께 할 시간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많을거라 생각하니
서로에게 안타까운 생각이 들며 아쉽다. 


큰 녀석 둘이 한동안 공간을 차지하다 떠나고나니 갑자기 집이 휑한 느낌이다.
이제 또 다 같이 모이는건 지연이가 대학원을 졸업하는 2년 후나 될까..

 


2주 전, 재원이가 떠나며 엄마 아빠, 그리고, 동생에게 카드를 놓고 떠났다.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난 수요일 지연이도 떠났다.
90일 동안 해준게 없이 부족함이 많았다는 아쉬움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켠이 먹먹했는데,
신발이 무수히(?) 널려있던 현관의 텅빈 공간이 그 마음을 부추긴다.

약간은 허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 놓여있는 지연이의 카드.



이렇게 마음 한 조각을 남겨두고 떠난 아이들에게 고맙다.


사랑하는 아들 딸~
2년 후 함께 재회할 때까지 우리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Figh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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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은 어머니의 여든 한번째 생신.



예정시간보다 30여분 일찍 도착한 무스쿠스 여의도점은 아직 손님이 없어선지 깔끔한 느낌이 든다.



동생이  모시고 나올 두 분을 기다리며 먼저 커피 한잔.



셔터를 맡긴 서버가 사진을 많이 찍어보지 않은 모양이다.
얼굴이 안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위치 조정을 해줬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버님은 아예 사라지셨고, 아내는 살짝 있다는 표만 난다.



생신모임의 느낌이 예전같지 않은 것은 한 해 한 해 점점 연로하신 모습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동년배 분들에 비해 많이 건강하심을 복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기력이 많이 약해지신 모습에 마음이 편치 못하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뵙는 재원이와 지연이도 안스러운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그래도 금년 생신에는 미국에 있는 손주들이 함께 해서 마음이 좀 나으셨을까..
재원이, 지연이에 조카 재윤이까지 함께 한게 그나마 다소 위안이 된다.

이 날도 어김없이 계산을 치르신 아버지.
당신 아내의 생일은 늘 당신께서 직접 축하하고 싶다는 마음에 우리는 항상 민망하기만 한데,
건강하셔서 이렇게 오래도록 어머니 생신 챙겨드리시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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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교직에 있었던 관계로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아이들을 돌봐준 분이 계셨다.
10년 이상을 한 집에서 함께 하며 아이들을 키우셨는데, 특히, 첫 정인 재원이에게 얼마나 각별한 정을 주셨는지
재원이를 키우는 동안 이웃 아이 엄마들로 부터 부러움 섞인 시샘을 많이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신 뒤에도 재원이를 잊지못해 할머니의 친손자들을 습관적으로 재원이라고 불러
자식들이 원성(?)이 많았다고.
 
태어났을 때부터 친손자 이상의 애정을 쏟으며 키워주신 할머니를 아이들도 잊지 못하는데,
방학을 이용해 들어온 아이들이 그 유윤순 할머니를 보고싶어해 안성으로 찾아뵀다.



반가이 애들을 맞아주시는 할머니에게는 훌쩍 커버린 모습에서도,
25년 전 당신이 업고 다니던 아이들의 어린 시절 모습이 생생히 보이는 모양이다.
할머니는 어린 아이들에게 존대말까지 가르칠 정도로 지금 두 아이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신 분이다.

 


할머니의 둘째 아들이 할머니를 위해 데려왔다는 강아지 [아담].
우리는 아담의 이름을 재원이를 생각하며 [원]으로 바꾸라고 종용했다.^^



초면임에도 고새 정이 들었는지 온 몸을 바짝 붙인 채 둘이 저러고 잔다.  서로가 엄청 더울텐데..



할머니가 차려주신 저녁밥상.
모시고 나가 식사를 하려 했으나, 오랜만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직접 한끼를 차려주고싶은
할머니의 마음을 외면하기 어려웠다.

여지껏 우리 식구들의 특성을 잘 기억하고 계신 할머니.

할머니 : 이 호박무침은 아빠가 좋아하던 반찬이고, 재원이는 국이 없으면 밥을 안 먹었어.. 
지연이 : 할머니~ 나는?  나한테는 기억나는거 없어?
할머니 : 너는 주는대로 아무거나 잘 먹었어~
지연이 : 에이~ 나도 좀 까탈스럽게 굴걸..  그럼 기억나는게 있었을텐데..  ^L^.. 



언제 또 만나게될지 모를 아이들과 함께.



감자 한 상자를 비롯해 오이, 깻잎, 청국장, 자두 등.. 한 살림 차려주신 할머니.
헤어지며 아이들을 바라보며 울컥 하시는 모습에서 아이들 역시 찡한 감정을 느꼈다.

깊은 애정으로 아이들을 밝고 바르게 키워주신 유윤순 할머니~ 
늘 그런 마음이었지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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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맹이의 표정이 재밌다.
:

집 근처에 막걸리를 파는 전 집이 하나 있다.
전에 부터 한번 들러보고 싶었음에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건 아내가 술을 못하기 때문이다.
혼자 막걸리잔을 들기엔 너무 궁상맞아 보이고, 술 못하는 사람을 앞에 앉혀놓는 것도 미안하고..

그러던 차, 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잠시 들어오면서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
토속적인 것을 좋아하는 지연이가 그 집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지난 월요일, 후줄근하게 내리는 밤비의 분위기에 맞춰 막걸리집을 찾았다.



주방에 대롱대롱 걸려있는 주전자들.
확실히 막걸리는 주전자와 매치가 될 때 정취가 더해지는거 같다.


    
막걸리 종류가 많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느린마을]은 없다.
일단 유자막걸리에 등갈비찜, 모듬전으로 주문.



등갈비찜에 기본으로 딸려나오는 계란찜이 먼저 나왔다.



유자막걸리가 상표는 동동주로 되어 있다.  1.9리터의 빅 사이즈인데 약간 단 맛이 난다.
등갈비찜은 가격대비 좀 실망스럽고, 모듬전 역시 다른 집의 모듬전에 비해 아쉬운 느낌이다.



오랜만의.. 아니, 처음 맞은 네 식구들의 술자리라 마음이 업 됐는지,
술을 전혀 못하는 아내가 왠 일로 한 잔을 마시며 오히려 재원이에게 술 좀 하라며 독려하지만,
역시 술을 잘 안하는 재원이의 선택은 잔치국수.    

우리 식구 중 그나마 나와 대작이 가능한 지연이 덕분에 한 통 더.
이번엔 선택한 알밤막걸리는 농밀도와 맛이 유자막걸리와 전혀 다르다.
앞에 보이는 두 잔 중 오른쪽의 알밤막걸리는 왼쪽의 유자막걸리에 비해 보여지는 색이 다르다.
알밤막걸리가 구미를 당긴다.



그래서 파전까지 하나 더.
아~ 저 노르스름한 색.. 지금 봐도 땡긴다.


모처럼 일가족 술자리에 그냥 들어가기 서운해, 2차는 TOM N TOMS 에서 빙수로. ㅋ~
그리고 집에 들어가서는 정작 내가 제일 먼저 다운. 다음 날, 식구들의 집중 성토를  받았다. 

아내의 말, "지연이가 술을 제대로 마시데..  그리고, 제법 술자리를 즐길 줄 알더라~"



아이들과 함께 친구처럼 술자리를 할 수 있다는 것.
술을 함께 할 수 있는 여러 대상 중 가장 편하고 정겨운 자리가 아니겠는가.

성장한 아이들을 느껴보고 싶었던 꼭 해보고픈 자리였는데,
또 다른 의미에서 아이들의 성장이 느껴진 의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 자리를 함께 해준 재원이와 지연이에게 고맙다.
:

방학을 맞아 귀국한 지연이가 공항에서 내게 던진 첫 말.
"아빠 머리가 그게 뭐야~ 당장 아빠 머리부터 손봐야겠어."

그리고 지난 주말 지연이에 이끌려 미용실을 가게 된다.
"아빠에겐 선택권이 없어. 내 뜻대로 할거야. 아주 짧게.."

흠~  어쩌자는건지..  내 모습이 어떻게 바뀔지 나도 궁금하다.

 


오래만에 지연이와 함께 한 사진.
언제 이렇게 분위기가 바뀌었나.. 
이제 완연히 숙녀 티가 나는데, 아직도 아빠와 빙수 먹으러 다니니..

저 머리가 헤어샾으로 향하는 도중, 그러니까, 변경 직전의 모습인데,
내가 보기엔 괜찮구만, 저 머리가 대체 뭐가 문제라는거야?


미용실에 들어가 지연이가 부원장과 뭔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와중에 느닷없이 들려오는 단어.. [퍼머]..  @ㅁ@~

나 : 퍼머를 한다고요?
부원장 : 따님께서 아버님은 선택권이 없으시다는데요~

그리고, 얼마 뒤...

 


이게 뭔 모습인지..  상당히 낯선 상황에 처한 내 모습.

커트만 하는 줄 알고 따라나섰는데..  
더구나, 내 머리임에도 내겐 선택권도 주어지지 않다니...

이렇게 제법 지루할만한 시간이 흐른 후, 

 

 
정작 퍼머를 한다던 지연이는 저렇게 좌측에서 머리 손질만 하고 있고,
엉뚱하게도 퍼머의 유탄은 내게 튀었다.

흥미로운건, 퍼머 머리에 대한 상반된 반응.

남자들은 대부분 별 반응을 안 보인다.
뭔가 어색하고 이상하긴 한데, 그런 반응을 보이면 내가 무안해 할까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반응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그것도 나름대로 나에 대한 배려다.

여성들은 상당히 긍정적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젊어 보인다는 등, 퍼머가 잘 나왔다는 등, 심지어 아무데서 한거 같지 않은데 어디서 했느냐는 등..   
아마 해본 사람과 안해본 사람의 차이인거 같다.

이제 1주일이 지나 처음보다는 덜 하지만, 아직도 스스로는 영 어색하다.
마치 영구가 벙거지 하나 뒤집어쓰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나마, 어울린다며 조금 지나면 훨씬 자연스럽고 더 멋있을거라는 여자분들의 격려에
어색함을 조금씩 덜어간다.

내 머리에 그렇게 큰 돈 써보긴 처음이라는 말에 대한 모든 여자분들의 반응은 똑같다.
"엄청 싸게 하신거예요~  여자들 머리 좀 길면 두배 세배 이상 들어요.." 
WOW~ 여자들 돈 많이 벌어야겠다.. 


어제는 거래은행에 들러 여직원들에게
정말 젊게 산다면서, 변신의 끝이 궁금하다는 극찬(?)을 받았다.
맨 위 변경 전 사진과 비교해가며 지금 퍼머 머리가 훨씬 낫단다.
자초지종을 듣고는, 따님의 감각이 대단하다는 평과 함께. 

지연이의 말.
"아빠~ 딸내미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니까.. ^&^~"
 
: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셔서 참 다행이다.

꽃으로라도 마음을 품어드릴 수 있으니.


화원에 들러 빈 화분에 꽃을 이식하고,

작은 꽃바구니와 함께 봄을 전해드린다.

:



대학 1학년, 내가 활동하던 연세적십자회에서 충남 서천으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당시 봉사단 조직은 활동목적에 따라 네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네의 공동시설 개량 및 보수를 담당하는 [성인반].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신 생활정보 등의 계몽활동과 밭 일을 도와주는 [부녀반].
낮시간 일터로 나간 부모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돌보아주는 [아동반]. 
마을 청년조직인 4H회와 연대하는 [청소년반].

이중 남녀 혼성조직인 아동반과 청소년반은 인기가 있었던 반면,
남녀가 분리된 성인반과 부녀반은 비 인기조직이었는데,
남학생 중 체격이 좋고 일좀 할거 같은 회원들은 무조건 성인반,
후덕하고 말주변과 넉살이 좋은 여학생이 주로 부녀반에 편성되었다. 

일단 회원들에게 희망하는 반을 지망받은 후 정원에 따라 조정하는데,
당시 체구가 왜소했던 내가 성인반에 편성된건 지금 생각해도 의외다.

어찌됐든..
서천 봉사활동에서 아직도 기억나는건, 바닷가에 집채처럼 쌓여있던 조개껍질을
다른 곳으로 옮겨 처분하던 일인데, 처음 그 조개묻이를 보고 모두들 얼마나 놀랐던지... 
세상에.. 그렇게 많은 조개껍질을 여지껏 본 적이 없다.

매일같이 바닷가에서 리어커로 조개를 실어 나르는게 일과인 그때.
어찌해서 우리와 인연을 맺은 당시 중앙대 사진학과에 재학 중이던 최재영 선배가
봉사현장에 같이 내려와 우리 활동을 사진으로 담았다.
(우리 활동을 기록하기 위함이 아니라, 본인이 작품활동을 위해 우리를 모델로 했다는 말이 맞다)

저 사진도 그 때 최재영 선배가 담은 컷 중 하나인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 저 사진을 무슨 사진전에 출품해 당시 문교부장관상이라던가..
국무총리상이라던가 하여간 꽤 대단한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저 사진 속 인물들의 이름이 확실히 기억나는 사람이 몇 안되지만,
그래도 수상작품의 선두가 나라는게 괜히 뿌듯하다.


최재영 선배가 모델료를 대신해 내게 건네준 사진 두 장.


가운데 친구의 지친 모습이 더 강렬해 보여서일까.. 개인적으로 이 사진이 임팩트가 더 강한 느낌이다.

근데, 진짜 저건 미는거야? 찍어누르는거야??  내가 뒤돌아보는 이유가 있는거 같아..

 


대학 1학년 만 20세 미만의 피부가 이 모양이니...  지금 오히려 용 됐지~ *^^*


최재영 선배는 동아일보와 월간동아 사진부 기자로 활동했었는데, 지금은 뭐 하시는지.. 문득 보고싶다.
:

지연이에게서 카드가 왔다.
발렌타인데이라고 보낸 것이다.



지연이의 특성상 카드를 아무렇게나 고르진 않았을거다.
여러 종류의 카드 중 나름대로 의미를 찾았을텐데, 저 세 문장에 그 마음이 들었으리라 생각한다.

You treat me like princess.. 

지연이에게 이런 말을 들을만큼 해준게 뭐가 있나..  미안한 마음이 든다.


 

늘 많이 보고싶고, 많이 감사해하는거 알죠?
많이 사랑해주고, 내 편 되어주고, 응원해주고 지지해줘서 고마워요.

빼곡하게 채워나간 카드의 마지막 문구.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가족임은 분명함을 일깨우게 한다. 
:


 

지난 금요일 멘토님이 담아주신 내 모습.

갤럭시S의 [Retro Camera] 어플을 이용한 것인데,
같은 갤럭시S 인데도 이렇게 느낌이 다르다.

역시 실력이 있는 사람은
같은 도구로 같은 피사체를 담아도 감각이 남다르다.
이렇게 멋스럽게 담아 주시다니... 

아내가 보더니 뭐라 그러더라...
소설쓰는 사람 같다던가.. 예술하는 사람 같다던가...
아예 블로그 문패도 이걸로 바꿀까...^^


좋은 모습 담아주신 멘토님...  고맙습니다.  ^L^..

:

늦게 잠자리에 들기에 아침 잠이 많은 나.

일어나보니, 병원 진료예약으로 일찍 집을 나선 아내가 그런 나를 위해 아침 식단을 준비해 놓았다.


 

이제 아침식사는 거의 생략하다시피하기에 운동을 하는 나에게 적합하게 맞춘 간단한 식단.



 
그리고, 준비되어 있는 커피.


아무 것도 아닌듯한 이 식단에서 아내의 애정이 느껴진다.

나는 행복한 남편.
:

살다보면 세월의 흔적이 집안 구석구석 켜켜이 쌓이곤 한다.
가재도구도 늘고, 옷도 늘어나고, 그 외 알게 모르게 쌓여지는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적당한 시기에 한번씩 소탕작전(?)을 벌이지 않으면 안되는데,
집에 있는 물건을 처분하기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오랜 기간 한번도 찾지 않았고, 심지어는 있었는지 조차 몰랐던 것도
막상 버리려면 뭔가 아쉽고, 왠지 쓰임새가 있을거 같아 선뜻 결단이 내려지지 않는데,
이럴 때 일수록 눈 딱 감고 내놓아야 한다. 그 때가 지나면 또 찾을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큰 맘을 먹어도 안되는게 하나 있다.
그런데, 이게 부피도 적지 않고, 무게 또한 만만치가 않아 더 고민스럽다.
버리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자니 엄청 부담이 되고.. 애물단지도 이런 애물단지가 없다. 

사진.

개인 뿐 아니라, 가족의 삶의 기록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사진을 버리긴 정말 쉽지 않다.
그렇지만 별로 들여다보지도 않는 두껍고 무게가 나가는 앨범은 사실 큰 짐이다.

그래서 사진을 모두 스캐닝한 후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아니 처분하기로 했다.
버리는게 아니라 처분한다는 의미는, 사진을 원상태로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냥 버리는건 왠지 찜찜하여 파기 후 버려야 하는데,
내 모습 가족들의 얼굴을 세단한다는 것도 기분이 좀 그렇다.

그렇더라도 안할거라면 몰라도 처분하기로 한 이상 방법이 없다.
그렇게 나와 아내의 흔적은 사라졌는데 (물론 스캔은 해놓았지만),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만큼은 그런 식으로 처분하기가 아내의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며칠을 아이들 사진과 씨름을 하던 아내가 짜낸 묘수.




별거 아닌거 같지만, 이걸 만드는 과정을 옆에서 바라보며 아이들에 대한 아내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진의 선정과 배열을 몇번씩 바꾸기도 하고, 아울러 두 아이에 대한 균형에도 어찌나 신경을 쓰던지..
   
아내는 이것을 액자로 만들어 적당한 시기에 아이들에게 기념으로 주겠다고 한다.
어제 액자를 맡겼다는데, 어떤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지 자못 기대가 크다.  

:

벌써 12월이다.  또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
뭔 세월이 이리 빨리 가는지...  세월의 속도는 나이와 비례한다던데..

금년에 한게 뭐가 있나... 기억을 더듬어봐도 딱히 떠오르는게 없다.
나쁜 기억이 없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도 있지만,
특별히 해놓은게 없다는건 늘 아쉬움이 남는다.

그나마 마무리해야 할건 없는지 책상 위의 서류와 파일을 이것저것 뒤적이다
문득 모니터에 열려있는 블로그 화면이 눈에 들어온다.

블로그를 시작한지 만 5년 반이 넘지 않았나 싶어
처음 블로그를 시작한 사이트의 관리화면을 보니 이렇게 되어 있다.



이 통계가 얼마나 정확한건지는 모르겠으나,
통계치대로라면 블로그를 엉성하게 운영한거 같진 않다.
내 삶의 기록이라 생각하고 일상의 모습을 나름대로 열심히 담아보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보여주신거 같다.

블로그를 통해 많은 분들을 알게 됐고, 그 분들과 온라인을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내 휴대폰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블로그에서 알게된 분들의 연락처 스물 둘.
이분들은 적어도 한번 이상은 만났던 분들이지만, 절친한 만남이 이어지는 분들도 꽤 있다.
스물 두 분 중  네 분은 거주지가 해외시고, 해외에 계시다 들어와 지금은 가족끼리 만나는 분도 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렇게 대단한 인연을 맺게된 것도 삶의 낙(樂) 중 하나 임이 분명하다.
삶의 방식이 비슷한 것도 있겠지만, 서로 상대에 대한 배려가 선행됐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닐까.
반면에, 자주 접하던 분들이 어느 순간 온라인에서 보이지 않을 때는 아쉽기도 하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 잠시 고민하던게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개인정보 공개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실명과 나이를 공개키로 한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함.
'난 이런 사람이니 그리 아시고 대해 달라' 는.. 
그렇게 하는 것이 온라인에서 사람을 만나는데 더 편하고, 또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글을 올리거나, 다른 분의 글에 댓글을 달더라도 나 또한 더 조심하게 되고.
물론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쉽게 가능한 이야기다. 여자분들은 아무래도 좀더 조심스럽지 않겠나.

그러고보니 블로그를 개설한 사이트 대문에 게시된 플필 사진도 제법 바뀐거 같다.     
한 여름에 겨울 옷 차림이 이상하기도 하고, 반대로 겨울에 여름 옷 차림이 어색한거 같아
바꾸기도 했지만,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부터 한번쯤 대문에 걸렸던 순서대로.

저 중에는 상당 기간 오래 버틴 것도 있고, 잠시 머물다 밀린 것도 있다. 
무척 애정이 가 계속 버티게 하고픈 사진도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바꿔주는건,
지난 모습에 연연하는게 오히려 스스로 안스럽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주하면 드러날 현재의 모습을 굳이 과거의 모습으로 치장하며 외면할 이유가 있을까..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며 느낌은 다를 수 있지만, 과히 크게 추해보이진 않는다면,
이뤄놓은건 없을지라도 그릇된 마음으로 크게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구나 싶어 안도한다.

속에 품고 있는 마음이 세월에 용해되어 얼굴로 스며든다니 말이다.
:


미국에 있는 재원이는 자동차없이 지냈다.
재원이의 거주지가 애리조나라고 하면 미국에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거기는 정말 차가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병역의무를 하러 귀국하려면 다시 처분해야 하니 그때까지 미루는걸로 뭉갰다.


군목무를 마치고 Arizona로 복귀한 재원이.

재원이는 한번도 자기 입으로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저 처분만 바란다는 입장. 그런 재원이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작년 복학 후 처음으로 자동차에 대한 의견을 넌지시 꺼낸다.

그냥 차를 사달라고 하기가 미안했는지, 복학하여 학업에 대한 의지도 다질 겸
학점에 옵션을 걸어 조건부 자동차 구입 여부를 타진해왔다.

그때 내 반응은,
'학생이, 특히 복학생이 공부하는건 당연한건데, 그게 조건꺼리가 되나..' 였다.
때문에 그 조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두고보자는 식으로 유보하고 있었다.  
결과는, 자기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켰지만, 내가 긍정을 하지 않았기에 두번째 뭉갰다.
재원이도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서운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게 작년 년말 이야기다.


그런데, 두어달 전 부터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재원이의 자동차 구입이 화두가 됐다. 
LA에 거주하는 재원이 이모(집사람의 언니)에게서 재원이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더니,
집사람을 잘 아는, 역시 미국에 사는 언니의 친구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재원이 자동차 구매에 대해 압력(?)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들의 논지는 이렇다.
- 애리조나에서 살아봐서 아는데, 애리조나는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되지 못해 자동차가 필수다.
- 때문에 애리조나에서의 자동차는 일상생활에서도 필요하지만, 자동차가 생활의 경쟁력이다.
- 애리조나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행동에 제약을 받아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도 못할 뿐 더러,
- 취업준비를 할 때도 기동력이 떨어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얼마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으면, 남의 아들 차 사주라고 미국에서 국제전화까지 하셨을까..
생각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필요성이 절실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 곳은 기온이 40도가 넘는다는데... 

이번에도 역시 집사람이 먼저 결단을 내린다.
"준희언니가 차는 꼭 필요하다고 미국에서 두번씩이나 전화를 하는데, 사줘야겠네..."


그런 과정을 거쳐 재원이가 구입한 자동차.

   

이리저리 알아보고 구입한 이 차는 2000년 모델이니 10년된 중고차다.
10년된 차라 하니 우려되는 부분도 좀 있지만, 생각해보니 내 차는 1998년형이다.
아직 아무 문제없이 잘 달리는 내 차를 생각하면, 내 차보다 신차(?)인 이 차도 관리상태에 따라 
큰 문제는 없을거 같기도 하다.  재원이도 인수 하자마자 정비업소에서 점검을 받았는데,
몇가지 손을 보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재원이가 보내준 사진으로 보니 일단 외모는 번듯한게 제법 스타일리쉬하다. 자기 닮은 차를 샀어..
재원이에게 전화로 " 와우~ 차 폼나던데.. 그리고 아빠 차보다 더  새 차 아니야.. 부럽다~" 고 하니,  
재원이의 대꾸. "에이~ 아빠가 그걸 부러워하시면 안되지.. 내 차는 2도어잖아.."


자동차가 경쟁력이라고 하더니, 차를 구입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잡은 재원이.
일이 늦게 끝나더라도 집에 올 걱정을 안해도 되니 좋단다.
그럼, 여지껏 일자리 하나 변변히 잡지 못했던게 차가 없었기 때문???
하긴.. 생각해보니 대중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으니 일을 하더라도 시간에 구애를 받을 법 하기는 하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비용 - 주유비, 보험료, 정비비 등 - 은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열심히 돈을 번단다.

재원이가 차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사람 언니 친구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얘~ 내 아들 차를 사준 것도 아니고, 니 아들 차를 사준건데, 왜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니..." 


녀석.. 복도 많아..  자기는 가만있어도 옆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정말 그렇다.  이상하게도 주변에 후원자가 많다는거, 이게 재원이의 강점이다.

그래서인지 자동차를 구입한 후 재원이의 Facebook에는 이런 글이 올랐다.




재원아..  좀더 좋은 차를 사주지 못해 미안..
다음엔 네가 마음에 드는 차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지연이가 미국으로 떠나며 자기가 사용하던 웹캠을 두고 갔다.
집에 있는 PC와 연결하여 엄마 아빠 얼굴을 보여달라면서..

그런데, 지연이가 떠난지 한달이 지나도록 내가 차일피일 미루고 있자
급기야 지연이의 원성이 하늘을 찌른다.  아빠 뭐하고 있느냐고..

더 이상 미뤘다간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걸로 여겨질까봐 지난 주 부랴부랴
PC와 연결을 하고, Skype에 계정등록을 했다.

사실, 그간 Skype에 계정등록을 해야 한다는걸 전혀 생각을 못한 채 사용법을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지연이는 평소 아빠가 이런 부분에서 앞서가는 사람이라 인정(?)하여 당연히 알거라고 생각했는지
사용절차에 대해 알려주지도 않은 채, 왜 빨리 설치하지 않느냐고 채근만 한 것이다.
그러던 중 밤에 잠이 오지않아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던 차에 왜 문득 Skype 생각이 나던지..
느껴지는게 있어 벌떡 일어나 PC를 열고 Skype를 검색하여 프로그램 다운받아 계정 등록하고,
카메라와 마이크 테스트까지 마치고는, 아침에 의기양양하게 화상채팅을 통한 모녀 상봉을 시켜줬다.

그게 지난 주 일이다.
소리가 퍼진다는 지연이의 피드백을 받아 헤드셋까지 구비하여 지연이와는 몇 차례 영상통화를 했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재원이와는 영상통화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제 오전 재원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집에 있으니 바로 화상 연결하겠다고. 

그래서 영상통화를 통해 PC모니터에서 근 1년 만에 보게된 재원이.
이 녀석의 첫 마디. "아빠~ 아빠 코만 벌렁거리는거 같아.. 카메라 각도좀 조절해봐요."

카메라를 그냥 책상 위에 놓았더니, 앵글이 밑에서 위로 비추는 각이 되고, 결국 콧구멍만 클로즈업 된다는 얘기.
이런.. 부랴부랴 카메라를 스피커 위에 올려놓으니 비교적 정면 각이 나온다. 지연이는 그런 얘기 안하더만...

그런데, 한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화면에 스냅샷이라는 글자가 뜬다.
호기심에 눌러보니 사진 형태로 캡쳐가 되네.  그렇게 본인도 모르게 잡은 재원이의 몰카.



근데, 그곳 시간으로 밤 열한시가 넘은 시간이니 얼굴은 맛이 좀 갔다 하더라도, 턱이 왜 이리 길게 나오지..?

얼마나 방 안이 더운지, 방에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음에도,
대화 도중 연신 두 손으로 이마와 머리의 땀을 닦는 모습을 보니 좀 안스럽다.


영상통화가 색다른 맛은 있다.
목소리만 듣는 것에 비해 동작으로 설명이 가능하고, 보여줄 수가 있으니..
재원이가 먼저 보여준건 자기가 키우는 고양이 몽이.
나 역시 오랜만에 꼬맹이를 재원이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지난번 지연이와 영상통화시 꼬맹이가 보고싶다 하여, 카메라 앞에 꼬맹이를 들이밀었는데, 
영상통화를 알리가 없는 꼬맹이가 이리저리 몸을 빼려다가,
지연이가 "꼬맹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 신기하게도 순간적으로 모니터를 돌아본다.
아마 귀에 익은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뭘 알고 그런건지... 

어찌됐던, 세상은 정말 좋아졌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런지 정말 궁금하다.
그리고, 백년쯤 후에는 정말 지금으로선 상상도 안되는 일들이 펼쳐질텐데,
그게 뭔지 보지 못하는게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

얼마 전, 일본에서 잠시 들어온 후배와 식사를 하고 차 한잔을 나누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 재원이 졸업하고 들어오려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요?
> 뭐 꼭 들어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가능하면 미국에 계속 있는게 좋고.
- 그래도.. 나이들며 아이들이 없으면 외롭지않겠어요?
> 그러니까 외롭지않게 살 준비를 해야겠지..


아내는 아이들이 미국에서 살기를 바란다.
나는 바란다고 하기까지는 좀 그렇지만,
들어오길 종용하고싶지는 않다.
아이들의 의사에 맡긴다는 생각이다.

한 집안의 종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家系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전통사상의 잣대로 보면 어른들께 곱지않은 시선을 받을 수 있다.
당장 부모님부터 마뜩잖게 생각하실지 모른다.
하지만, 개인의 인생이 지난 관습에만 얽매여 선택의 폭이 좁혀져야 한다는 것도
결코 바람직스럽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넓은 삶이 있는데, 굳이 삶의 영역을 좁혀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그런 삶에서 자기만의 가치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또한 인정을 해줘야한다.
내가 아이들의 의사에 맡긴다는 이유다.


아이들이 굳이 한국으로 들어오기를 종용하고싶지않은 이유가 있다.

재원이가 대학을 들어갈 때 해준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는 인맥사회다. 그런데, 너는 한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으니
 전혀 인맥이 없는거와 같다. 때문에 네가 만약에 한국으로 돌아와 무엇을 하려면
 인맥없이도 할 수 있는 너만의 특화된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게 없다면 들어올 생각을 마라." 

이게 하나의 이유고, 또 하나는 좀 우스운 이야기같지만,
재원이와 지연이의 아이들에게까지 이 지긋지긋한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를 겪게 하기가 싫어서다. 
   


아이들이 성장한 후,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않으려면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부모가 자유로워지려면 어찌해야 할까?
한마디로 말하면, 할 일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돌아다니며.
그러자면 대인관계가 넓어야 하거나,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 주말에 찾아뵐께요."  했을 때, "우리 주말에 바쁘다. 니들끼리 놀아라."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때 
서로가 편하다.
그런데, 부모가 아무 할 일이 없으면 무료하고 심심하고,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녀들이 보고싶은데, 그런 그리움이 충족되지 못하면, 그리움은 서운함과 야속함으로 바뀌고 만다. 

부모자식이 서로 나이가 들면, 자녀들도 얻을건 얻어야 하고, 부모는 비울건 비워야 한다.

자식들도 나이가 들어 가정을 꾸미고 사회활동을 하다보면, 
자기
가족끼리 놀러도 가고싶고, 아내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도싶고, 
친구들과 어울리고도싶고, 때로는 아무 생각없이 집에서 잠을 자며 쉬고싶지 않겠는가.

우리도 그랬는데, 문화생활이 발달되는 앞으로는 그런 욕구가 더 강해질 것이다.


할 일이 없으면 아이들 생각만 하게 되고, 그게 곧 부담이 된다.
자녀들이 의무감이 아닌, 진정성을 가지고 부모에게 다가오게 하고 싶다.
그러자면, 자녀들을 편하게 해주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부모로서 나이가 들며 필요한게,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노력을 하고, 그런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친구를 만들고, 여행 사진 원예 등의 취미생활을 통해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원망하지않고 사랑의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외롭지않을 수 있는 비결이라 생각한다. 


원망과 애정과 외로움은 내 마음의 여유에 달렸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부지런히 뭔가에 재미를 느끼려 한다.




:

처해있는 환경이 어려울 때 주위에서 이런 격려들을 한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머잖아 좋은 일이 있을거야. 희망을 가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 지금 어려워도 이 고비만 넘기면 곧 좋은 일이 있겠지.
 참고 그 날을 기다리자."

그런데.. 세상일이 그런 바램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게 현실이다.

기다림은 지루하다.
그리고, 기다림의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불현듯 다가오는게 허망이고,
원망과 분노와 좌절이 뒤를 잇는다.


내 환경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 나는 생각을 달리 한다.

"앞으로 지금보다 더 큰 어려움이 올 수도 있다.
 지금 이 정도에 힘들어한다면, 더 어려울 때는 어쩌려고...
 그래도 이 정도면 견딜만한거지.."

이리 생각하면 기다림이 없다.
기다림이 없으니 지루함도 없고, 허망과 좌절도 없다.
혹시 있을 수도 있는 더 큰 어려움에 대비해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마음가짐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생각을 찾으면 된다.
그리고, 그 생각이 익숙해지게 마음을 맞춰가면 된다.



   
:

앞서 내 성격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내는 나와 반대다.  늘 미리 생각한다.
지연이도 그런 엄마를 닮아 항상 모든 일에 계획적이다.

문제는, 재원이가 나를 닮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 
때문에, 나와 같은 습성이 굳어지는게 염려되어 미리 대응하는 습성을 길러주기 위해
어려서부터 의도적으로 재원이를 옆에서 많이 챙기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게 오히려
재원이를 타성에 젖게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챙겨주다보면 스스로 생각하는 기능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내가 한 말이 있다.
"당신을 제대로 닮았으면 재원이도 해야 할 때는 자기 몫을 하겠지."

고무적인건, 최근에 재원이와 대화를 나누노라면 생각이 많이 깊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모들이 가끔 착각하는게 있다. 스스로가 지극히 표준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자녀의 행동이 실망스러울 때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대체 누굴 닮아 그러니..."  혹은,  "하는 짓은 꼭 지 아빠(엄마) 닮아가지고.."

친자관계가 확실하다면, 자식의 DNA가 누구 DNA겠나..
자식의 하는 행동이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부모에게 있다.
결국 부모의 유전인자가 작용했을테니까.

[지 아빠(엄마) 닮아 저 모양]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책임회피다.
아빠를 선택한 사람도 엄마고, 엄마를 선택한 사람도 결국은 아빠인데,
의사결정을 한 본인들에겐 책임이 없다며 선택권도 없던 아이들만 몰아붙이는 격이 아닌가.
그렇게 분별력이 없으니 애들도 그 모양이지.. 누워서 침뱉기다.
그러니, 절대 그런 표현은 해서는 안된다.

또 하나 부모들이 때때로 착각하는건 자녀들을 같은 세대로 생각한다는거다.
"그 시끄러운 노래가 뭐가 그렇게 좋아?"  뭐.. 이런 식의 대화.

그리고, 종종 자신의 과거를 잊는다는 것도 부모의 문제 중 하나.
"공부좀 해라.. 너는 학생이 그렇게 공부하길 싫어해서 대체 뭐가 되려고.."
본인은 그 시절에 얼마나 공부에 관심이 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내는 저런 말 할 자격이 있지만, 나는 없기 때문에)
 

자신의 단점을 알고 그 단점을 나름대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생각.
배우자간 서로의 단점을 정확하게 짚어 조언해줄 수 있고, 그걸 인정하는 마음.
아울러 서로에게서 보이는 단점을 보완해줘가며 조화를 이뤄가는 부부간의 노력.
아이들의 문제는 나로부터 기인한다는 생각으로 자녀를 바라보는 부모의 시각.

개인과 가정의 모습은 이런 요인들에 의해 결정되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단점과 장점을 수용하고 융화시키는 방법.
그게 그 가족의 격과 가정의 가치를 결정한다. 


   
:

세상에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라고 칭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만, 문제점 많은 나의,
그중 가장 큰 문제점은 모든걸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다는거다.
그러다보니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뇌기능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최근 이런 부분에 대해 아내에게 미안한게 많다.
지난 몇년동안 이런저런 일을 벌리다보니 은행빚이 제법 되고, 그에 따른 금융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거기에 최근 딸아이까지 유학을 가다보니 미국에 있는 두 녀석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압박 수준이다.
이런 여건에서 해법이란게 뭐가 있겠나..  결국 집을 내놓기로 했다.
그렇게해서 일부라도 대출상환을 하면 그만큼 대출이자라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데, 집 문제는 사실 작년부터 집사람이 꺼냈던 이야기인데 내가 밍기적거리고 있었다.
남편 입장에서 나이가 들며 집을 늘리지는 못할 망정, 있는 집을 판다는게 미안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런 내게 집사람이 단호하게 입장을 표명했다.
"당신이 뭐 때문에 망설이는지 알겠는데, 나 집에 대한 욕심같은거 없어요. 
 더구나 이제 지연이까지 나가고 우리 둘만 남았는데, 뭘 망설여?  집 팔고 전세가자구..
 괜히 쓸데없이 집만 끼고있으면 뭘해. 차라리 이자 줄이고 그 비용으로 여유롭게 생활하는게 낫지."

며칠 전 친구와 만나고 있는 중 아내에게서 집보러 왔었다는 전화가 왔다.
 "이사해?" 통화내용을 듣고있던 친구가 묻는 말에 위에 언급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집 파는게 쉬운 결정은 아닌데.." 하며, 이 친구 갑자기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 하는 말,
"그래도 부부가 의견일치를 보니 참 좋네. 난 집사람한테 집 얘기 꺼냈다가 난리가 났다.."
우리나라에서 사업하는 사람치고 부채없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친구도 나와 비슷한 처지인데,
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집을 팔아 채무변제를 했으면 좋겠는데, 집사람이
"이 나이에 집도 없이 어떻게 사느냐" 며 반대하는 바람에 어쩌질 못한다고.


지난 주말 아내와 집을 보러 다녔다. 부동산사무실을 들렀다 나오던 중 갑자기 아내가 웃으며 묻는다.
"여보.. 둘이 손잡고 전세집 보러 다니는 기분이 어때요?"  갑작스런 질문에 나온 나의 대답.
"..으응.. 뭐.. 그냥 괜찮네..." (사실 그 상황에 달리 뭐라 그러겠는가..)  그 말에 아내가 맞받아친다.
"이이는 정말.. 큰일이네.. 나이 오십중반에 전세집 보러 다니는게 뭐가 괜찮아.. 괜찮기는... 문제가 많은거지.."
그러더니 웃으면서 덧붙인다. "근데, 왜 나도 신혼집 보러다니는 기분이 나지.. 우린 이게 문제야..
가진 것도 없으면서 맨날 마음만 느긋하다는거. 그렇지않아요?"  내 얼굴을 쳐다보는 아내의 시선을 느끼며
나는 그냥 딴 곳만 바라보며 걸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마음은 복잡한데,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말해주는 아내의 깊은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아내가 덧붙인다.
"우리 앞으로 2년마다 새로 진 아파트 전세 들어갑시다. 그럼 우린 항상 새 아파트에서 살고.. 좋네~"  


엊그제 아내가 그런다.
"여보.. 우리 둘이 원래부터 같았는지, 아니면, 살면서 내가 당신을 닮아간건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우리랑 행복을 느끼는게 많이 다른거 같아..  우리는 그냥 우리가 좋은 것만 생각하잖아..
 근데, 다른 사람들 보면 안좋은걸 먼저 생각하고 비교하고 그러더라구. 집 보러 온 사람들이 둘러보고
 맘에 안드는걸 얘기하는데, 우린 이 집에 살면서 좋은 면만 보고 있다가 안좋은 얘길 들으니 거 되게 이상하데..
 그런걸보면 우리만 너무 뭘 모르고 자아도취식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는건지..
 이래서 우리는 뭐가 안되나봐..." 

아내가 나를 닮아간게 아니라, 어쩌면, 아내가 남편의 그릇 크기에 맞춰 왔는지도 모른다.
꿈도 많았을테고, 이상도 있었을텐데, 낙천적인 철없는 남편의 스케일에 맞춰가며
대신 방향을 잡아나가느라 애쓰는 아내가 고맙다.

그래서, (아내는 이런 집안 이야기가 마뜩잖을 수도 있지만)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다.


집을 보러다니고 와서 아내가 웃으며 그런다.
"나중에 당신이 저택 하나 사주겠지...^^"




두 마음으로 한 곳을 보는게 부부라는걸 알려주는 아내가 고맙다.


여보~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

매일 하는 운동방식을 조금 바꿨다.

3분할에서 2분할로 바꾸고, 시간을 줄이기 위해 워밍업을 생략하고,
근육운동의 마지막 코스로 하던 복근운동의 순서를 맨처음으로 돌렸다.
시간에 쫒기거나 마지못한 일이 생겨 운동시간을 단축해야할 경우에도
복근운동만은 거르지않기 위함이다. 복근운동 30분으로 운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며칠 전, 다니는 Fitnsss Center 에서 인바디 측정을 실시했다.

4월말에 측정하고 40여일만인데, 근육량 300g 증가, 체지방 900g 감소.
트레이너의 판단에 의하면 아주 이상적인 결과란다. 

신체 각 부분별로 표준이하가 없는게 다행인데,
특히 기분좋은건 몸통의 근육량이 표준이상이라는 것.
그간 꾸준히 복근운동에 공을 들인 효과가 나온거 같아 기분이 좋다.

한가지 찜찜한건, 상체 오른쪽은 표준인데, 왼쪽은 표준이상이라는거.
상체 양쪽이 불균형이라는 얘기.  짝짝이란 말이지..
이건 운동을 하면서도 느꼈던 부분이다. 늘 왼쪽에 힘이 더 들어간다.
그러다보니 어깨와 가슴도 왼쪽이 상대적으로 발달이 더 된 느낌이다.  
이게 왼손잡이와 연관이 있는건가.. 

또 하나,
체지방은 감소됐는데 복부비만율 수치가 석달째 소수점까지 변화가 없다.
왜 이럴까??  그 궁금증도 트레이너가 풀어줬다.
복부비만율이란 개념이 엉덩이와 허리둘레의 상관관계를 일컫기 때문에
수치에 그리 심각할 필요가 없다고. 결국 엉덩이가 작다는거??


어쨌든, 입던 바지는 요새 줄줄줄...
계절도 바뀌고 해서 바지를 새로 장만했는데, 30인치가 편하게 맞는다.


운동방식을 바꾼건 아내의 조언 때문.
내 나이에 가슴과 팔의 근육이 과다하게 발달되어 보이는게 둔해 보일 수 있으니,
단단해 보일 정도로만 하고, 대신 복근운동을 많이 하는게 좋겠다는 얘기.
(참.. 애들이 엄마 말 듣는거보다도 말을 더 잘듣는다.^^)
트레이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줬다. 복근이 단련되면 가슴이 돋보인다는..

암튼, 그렇게 몸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니 상태 유지에 대한 압박이 만만치않다.
하지만, 이 압박은 아주 유쾌한 압박이다. 압박을 즐긴다고나 할까.
운동을 꾸준히 하는건 물론이고, 특별히 음식을 챙겨 먹지는 않지만,
양에는 신경을 많이 쓴다. 과식을 하지않으려 무지 참는다.
주류 중에 맥주를 제일 즐기던 내가, 요즘은 오히려 맥주가 제일 신경쓰인다. 

요즘 날이 더워지니 운동하기 귀찮다는 생각이 들고, 몸이 좀 처지는 느낌인데,
신기한건, 귀찮으면서도 막상 시작을 하면 할건 다 한다는거. 

"몸 좋아졌다." 는 말과 옷 맵시의 유혹이, 쉬고싶다는 유혹보다 더 달콤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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