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재원이는 자동차없이 지냈다.
재원이의 거주지가 애리조나라고 하면 미국에서 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거기는 정말 차가 있어야 하는 곳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지만,
병역의무를 하러 귀국하려면 다시 처분해야 하니 그때까지 미루는걸로 뭉갰다.


군목무를 마치고 Arizona로 복귀한 재원이.

재원이는 한번도 자기 입으로 자동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저 처분만 바란다는 입장. 그런 재원이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는데,
작년 복학 후 처음으로 자동차에 대한 의견을 넌지시 꺼낸다.

그냥 차를 사달라고 하기가 미안했는지, 복학하여 학업에 대한 의지도 다질 겸
학점에 옵션을 걸어 조건부 자동차 구입 여부를 타진해왔다.

그때 내 반응은,
'학생이, 특히 복학생이 공부하는건 당연한건데, 그게 조건꺼리가 되나..' 였다.
때문에 그 조건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두고보자는 식으로 유보하고 있었다.  
결과는, 자기가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켰지만, 내가 긍정을 하지 않았기에 두번째 뭉갰다.
재원이도 아쉬움이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서운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게 작년 년말 이야기다.


그런데, 두어달 전 부터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재원이의 자동차 구입이 화두가 됐다. 
LA에 거주하는 재원이 이모(집사람의 언니)에게서 재원이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더니,
집사람을 잘 아는, 역시 미국에 사는 언니의 친구가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재원이 자동차 구매에 대해 압력(?)을 넣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들의 논지는 이렇다.
- 애리조나에서 살아봐서 아는데, 애리조나는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되지 못해 자동차가 필수다.
- 때문에 애리조나에서의 자동차는 일상생활에서도 필요하지만, 자동차가 생활의 경쟁력이다.
- 애리조나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행동에 제약을 받아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도 못할 뿐 더러,
- 취업준비를 할 때도 기동력이 떨어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얼마나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했으면, 남의 아들 차 사주라고 미국에서 국제전화까지 하셨을까..
생각하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필요성이 절실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 곳은 기온이 40도가 넘는다는데... 

이번에도 역시 집사람이 먼저 결단을 내린다.
"준희언니가 차는 꼭 필요하다고 미국에서 두번씩이나 전화를 하는데, 사줘야겠네..."


그런 과정을 거쳐 재원이가 구입한 자동차.

   

이리저리 알아보고 구입한 이 차는 2000년 모델이니 10년된 중고차다.
10년된 차라 하니 우려되는 부분도 좀 있지만, 생각해보니 내 차는 1998년형이다.
아직 아무 문제없이 잘 달리는 내 차를 생각하면, 내 차보다 신차(?)인 이 차도 관리상태에 따라 
큰 문제는 없을거 같기도 하다.  재원이도 인수 하자마자 정비업소에서 점검을 받았는데,
몇가지 손을 보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재원이가 보내준 사진으로 보니 일단 외모는 번듯한게 제법 스타일리쉬하다. 자기 닮은 차를 샀어..
재원이에게 전화로 " 와우~ 차 폼나던데.. 그리고 아빠 차보다 더  새 차 아니야.. 부럽다~" 고 하니,  
재원이의 대꾸. "에이~ 아빠가 그걸 부러워하시면 안되지.. 내 차는 2도어잖아.."


자동차가 경쟁력이라고 하더니, 차를 구입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잡은 재원이.
일이 늦게 끝나더라도 집에 올 걱정을 안해도 되니 좋단다.
그럼, 여지껏 일자리 하나 변변히 잡지 못했던게 차가 없었기 때문???
하긴.. 생각해보니 대중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으니 일을 하더라도 시간에 구애를 받을 법 하기는 하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비용 - 주유비, 보험료, 정비비 등 - 은 자기가 해결하겠다고 열심히 돈을 번단다.

재원이가 차를 구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사람 언니 친구분께서 전화를 주셨다.
"얘~ 내 아들 차를 사준 것도 아니고, 니 아들 차를 사준건데, 왜 내가 이렇게 기분이 좋니..." 


녀석.. 복도 많아..  자기는 가만있어도 옆에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사람이 있으니.
정말 그렇다.  이상하게도 주변에 후원자가 많다는거, 이게 재원이의 강점이다.

그래서인지 자동차를 구입한 후 재원이의 Facebook에는 이런 글이 올랐다.




재원아..  좀더 좋은 차를 사주지 못해 미안..
다음엔 네가 마음에 드는 차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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