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폴더/나, 그리고, 가족'에 해당되는 글 280건

  1. 2006.04.09 입시에 몰수당하는 가정의 화목 9
  2. 2006.03.31 카투사 교육병의 편지 12
  3. 2006.03.29 내게 큰 행복을 안겨준 [효(孝)캠페인 광고] 28
  4. 2006.03.27 흥미로운 재원이의 행보 4
  5. 2006.03.25 이제 육군 이등병이 됐겠군...
  6. 2006.03.18 재원의 편지 3 6
  7. 2006.03.17 폼생폼사가 자기 style 이라는 재원이^^ 8
  8. 2006.03.16 아들에게 보낸 편지 2 11
  9. 2006.03.13 딸아이가 함께 한 musical Hamlet 14
  10. 2006.03.11 아이들의 미소 20
  11. 2006.03.09 재원이의 편지 12
  12. 2006.03.04 아들에게 보낸 편지 13
  13. 2006.02.27 8년전의 휴가계획 29
  14. 2006.02.25 군대 체질이라고...??? 15
  15. 2006.02.25 이런데... 부모들은 왜 아들이 군에 가는걸 걱정하는지 몰라.. 22
  16. 2006.02.21 이제 제대로 간 모양이구만...(돌아온 재원이의 옷) 27
  17. 2006.02.21 아들의 소식 10
  18. 2006.02.14 변화를 느끼며 기분좋았던 재원이의 입영 29
  19. 2006.02.13 아들의 팬 서비스 24
  20. 2006.02.02 우리 집 설 22
  21. 2006.01.24 부부간의 대화 14
  22. 2006.01.22 나도 셀카를 찍어보자... 13
  23. 2006.01.21 아들과 손자 17
  24. 2006.01.20 할아버지와 손자 34
  25. 2006.01.16 [열심히] 그리고 [잘] 19
  26. 2006.01.10 아들의 선거 전단지 3
  27. 2006.01.09 딸아이가 준 사랑의 그림 8
  28. 2006.01.09 딸아이의 유치원시절 시화(詩畵) 8
  29. 2006.01.04 새해 첫 가족나들이 - 삼류배우에게서 얻은 감동 8
  30. 2005.12.31 나의 2005년 13
딸아이가 모처럼 집에 왔다.
그리곤 모니터 앞에 엄마랑 둘이 앉아 열심히 인터넷 쇼핑몰을 찾아다니며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수능시험이 끝난 후 딸아이가 보여준 변화가 생각난다.


딸아이는 원래 제 엄마와 친구처럼 얘기하는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일방적으로 자기 스트레스를 풀기위한 방편으로,
엄마는 주로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딸아이에게서 수능시험이 끝난 후, 그 짧은 기간에 상당한 변화가 보였다.

일단 표정이 상당히 밝아졌고,
아빠 엄마에게 나름대로 뭔가 하려고 애쓰는 기미가 보인다.
특히 엄마에게는 더하다. 
수능이 끝난 며칠을 보면 얼마나 엄마에게 살곰맞게 구는지,
집사람이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무척 행복해 하는 모습이었다.

엄마와 나가면 팔짱을 꼭 끼려고 하고,
엄마가 운동하러 나가려 하면, 자기 나갔다 와서 같이 나가자고 꼭 기다리라고 하고,
엄마가 어디를 나가려 하면 컴퓨터 앞에 붙어 있다가도 잽싸게 외투를 입고 따라 나서곤 했다.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다.

하루는 토요일에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는데, 애랑 같이 밖에 나와 있다며 집사람이 전화를 했다.

좀 늦을거 같아 추운데 그냥 들어가라 했더니, 그러겠다더니 늦은 시각에 사무실로 들른다.
딸애가 아빠 혼자 늦게 고생하는데 같이 들어가자고 하더라나...
어떤 날은 친구를 만나고 들어오면서 꽃을 한아름 사다가 엄마에게 내밀기도 하고...

수능시험이 끝난 날, 저녁을 먹으며
' 아빠 엄마 12년동안 고생하셨어요. 뒷바라지 해주셔서 고마워요.' 한 마디에 흐뭇해 하며,
' 네가 그동안 애썼다.' 고 화답했는데,
그때 집사람이 '집에 딸이 있다는걸 이제야 실감한다' 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근데, 사실은 가족의 분위기가 원래 이래야 정상이 아닌가 ???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그릇된 입시 및 교육제도에게 모든 가정의 행복과 화목을
10 여년간 몰수당해 왔다고 생각하니 떨떠름하다.


:
 
 


육군훈련소에서 카투사교육대로 자리를 옮긴 후 재원이의 첫 편지가 왔다.
여전히 느껴지는 유머와 재치. ^^...

Military Academy를 나온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그 경험을 써먹을데와 때가 있네...ㅋㅋㅋ...*^^*..

샤브미 식구들도 재원이의 편지를 모두 반가워 한다.
샤브미 식구들의 안부까지 챙겨주는 재원이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맘에 든다.
하긴... 그러니 2001년에 처음 미국에 갈 때, 아파트 경비아저씨한테 전별금(?)을 받았지.

그리고...  역시 잊지 않았군...ㅎㅎㅎ...

재원이는 미국에서도 가족의 생일에는 꼭 저렇게 케익을 보냈다.
그런데.... 짜식이 무척 짜졌네...  전에는  커다란 케익을 한장 가득 채워서 보냈는데,
이제 구석에 쬐그만 케익으로 때워...??? 
다음 편지쓸 때 강력하게 어필을 해야겠구만... ^&^~~

처음 전화왔을 때 편지지 좀 보내 달라더니...  종이가 딸리긴 딸리는 모양이다.

미군 애들이 왜 그래...   우리나라가 방위비 분담액을 줄이자고 해서 그런가...



아~~참~~~  봉투에 꼬깃꼬깃 접어서 동봉한,  수료식 후 초록색 커버를 회수해 간  문제의 그 상장. ^^...
내가 생각해도 커버를 회수한건 좀 그렇긴 하다... ㅎㅎㅎ...



어~~~ 이병이야 ???...

:

 




1995년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커다란 기쁨과 행복과 그리고 보람을 느꼈던 해다.
당시 삼성생명의 광고팀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나는,  3월에 새로운 광고를 만들고 싶었다.
단순히 상품이나 회사를 알리기 위함이 아닌, 뭔가 사람들에게 신선하면서도 강하게 각인되는 것이 없을까...

같이 일하던 후배 서성식(현 삼성생명 광고스포츠파트장)과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찾다
[가족]이라는 컨셉에 착안했다.
5월은 가정의 달.  그리고 그 중 어버이날을 생각한 것이다.
그래... 가족, 그 중에서도 [부모]를 테마로 하자.
우리가 명절마다 힘든 귀성길을 마다않고 고향을 찾는 것도 결국 부모님을 뵙기 위함이 아니던가.

모든 사람들에게 부모님은 항상 마음의 고향이고, 무한한 바다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누구나 자라면서 그때그때 우리 스스로는 느끼거나 알지 못하지만, 우리의 성장을 바라보며
그때마다 마음 속에 담겨지는 부모의 애뜻한 심정을 담자.  

광고기획사와 함께 제작의도를 공유한 후, 처음 나온 copy초안은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느낌이 아니었다.
내용이 너무 애절하고 좀 심하게 표현하면 눈물을 유도하는 신파같은 느낌을 받았다.
예를들어 그때 초안 중에 이런 copy가 있었다.

'나이 마흔다섯...  회사에서 동기들이 승진을 했다.  그날 밤 당신은 홀로 소주잔을 기울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무슨 일이 있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당신은 별일 없다며 엷은 웃음을 지었습니다.'  

이건 내가 의도했던 것이 아니다. 나는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지,
어쩔 수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이 아니다.

몇번의 copy 수정작업을 거쳐 5월초 이 광고의 론칭이 나가자마자, 미처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반응이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전화와 편지가 밀려드는데, 글귀가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며,
이 광고를 포스터로 제작하여 보내줄 수 없느냐는 요청이었다.
군부대에서... 기동경찰대에서...  교도소와 학교에서.... 내무반과 교도실, 교실에 게시하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는 일본의 재일 조선인학교에서 국어교재로 사용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가슴 벅차하기도 했다.

게중에 내가 눈시울을 붉혔던, 세 통의 기억에 남는 사연이 있다.

하나는, '부모님 돌아가신 후 어떤 이유로 남매의 정을 끊고 살고 있었는데,
이 광고를 보고 동생과 연락을 하여 같이 성묘를 가기로 했다. 남매의 정을 찾아줘서 고맙다'는 내용이며,

또 하나는, 자신이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재소자라며, '그동안 어머니를 원망만 하고 살았는데,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을거 같다.  형기를 마치면 어머님께 큰절을 올리고 그 동안의 잘못을 빌어야겠다.
마음 속의 부모님을 찾게 해줘서 고맙다' 는 내용이었다.

가장 가슴 아팠던 사연은,

자신이 젊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워낙 시골에서 힘들게 사셔서 아버지 사진도 하나 없었단다.
그런데,  결혼한 후, 언니네 집에 갔다가 우연히 아버지의 작은 사진을 보고는 너무 아버지가 그리워 언니 몰래
그 사진을 가져왔단다.  그 후, 하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사진을 잃어버렸는데 어떻하냐며 안타까워하는 언니를 보면서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면서도 늘 언니에게 미안해 하고 있었단다.
한편으론 두루마기를 입은 사진 속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양복도 한번 못 입어보고 죽은 아버지가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지더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그 분은, 뒤늦게나마 언니에게도 아버지의 사진을 돌려주고 싶다며,
우리에게 혹시 아버지의 사진을 확대해 줄 수 있느냐며 아버지의 사진을 보내왔다. 
한장 밖에 없는 사진이니 잊지말고 원본을 꼭 돌려달라는 신신당부와 함께.

사진은 증명사진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였으며, 오래되어 색도 많이 바랜 낡은 사진이었다.
바로 광고사 담당을 불렀다.  컴퓨터작업으로 어느 정도까지 선명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확인한 후,
그래픽을 이용해 사진 속 아버지에게 양복을 입혀줄 것을 요구했다.
양복도 한번 못 입어보고 죽은 아버지가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지더라는 딸의 애절한 바램을 실현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A4 사이즈 정도되는 크기로 양복차림의 아버지 상반신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 두개를 동생에게 보내주었다.

그 일을 계기로 3개월간 부모님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참으로 보람을 느꼈던 기간이다.

이 광고는 1995년  8개의 광고대상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고,
개인적으로는 각종 광고대상 시상식에서 많은 분들의 축하와 찬사를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나에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자랑스럽고 보람있는 작품이다.
그때 같이 작업을 했던 제일기획의 이창환대리(당시)에게도 다시한번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효(孝) 캠페인 국내광고상 수상내역]  

1995년 대한민국광고대상 金賞
1995년 중앙광고대상 大賞, 제작자賞, 카피賞
1995년 매경광고대상 大賞
1995년 한국광고대상 金賞
1995년 경향광고대상 金賞
1955년 서울광고대상 最優秀賞
1995년 국민일보 광고대상 大賞
1995년 세계일보 광고대상 大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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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원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논산 육군훈련소를 마치고 의정부에 있는 카투사교육대로 왔다고.
그곳에서 3주간 교육을 받은 후 자대배치를 받게 된다.

그러더니 한다는 소리가, 훈련소 수료식에서 연대장표창을 받았다나...
표창장과 메달까지 받았단다.  부상으로 나중에 휴가를 나올 때 휴가기간에 1박이 보너스로 추가된다고.
왠일이야...  경사났네~~~  ㅋㅋㅋ...


그러고보니 재원이에게는 묘한 구석이 있다.

재원이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책상에서는 늘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졌다.
하지만, 생각은 늘 자유로운 아이였다.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지만, 창의적인 부분이 있었고, 마음이 편했다.
재원이를 미국으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그런 자유로움을 살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0년 10월에 미국유학을 처음 생각하고 2001년 1월 13일에 떠났으니, 정말 준비 안된 유학이었다.
학교선정도 직접 매일 밤 인터넷으로 학교를 찾았는데, 그 때 내가 생각했던 조건은 다섯가지였다.

첫째, 동부에 위치한 학교. 
둘째, 우려되는 불건전문화에 대한 최소한의 예방과  빠른 언어적응을 위하여  전교생이 기숙사생활을 하는 학교.
세째, 신경쓸 일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교복을 착용하는 학교.
네째, 남녀공학이 아닌 학교.
다섯째, 한국학생이 가장 적은 학교.   

이런 조건을 걸어 검색을 하여 찾은 학교가  Valley Forge Military Academy 였다.
예비역 해군소장인 교장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교사 역시 예비역 장교인 학교.
아침 6시에 기상과 함께 일조행사를 하고, 밤 10시에 일석행사를 하는 등, 군조직과 비슷한 체계로
마치 우리나라의 사관학교를 연상케하는 시스템이 맘에 들었다.

재원이도 얼마 전 편지에서, 그때 Valley Forge의 경험이 지금 군생활 적응에 많은 도움이 되는거 같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갈 당시 재원이의 영어실력은 영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보잘 것이 없었다.
자기 말마따나 미국 입국심사를 받을 때 여권을 손에 쥔 채, 여권을 제시하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멍하니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니까. 

그런 녀석이 Valley Forge 에 가입학 한지 3주쯤이 지나 전화가 왔다.
자기가 학교에서 나눠준 책자를 제일 먼저 외웠다나...
'영어도 못 하는 놈이 무슨...' 싶어서, '무슨 내용인지 다 알아?' 하고 믈었더니,
'물론 80%는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지...' 하면서,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 채 그냥 달달 외웠단다.  

나중에 학교생활 매뉴얼인 그 책자를 소포로 보내왔는데,  책 앞장에는 [Korean Pride] 라고 적혀 있고,
뒷장에는 한글로 [나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이 책을 제일 먼저 외울 것을 다짐합니다.] 라고 적혀 있어
집안 식구 모두가 크게 웃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는 16주간의 가입교과정을 3등으로 수료했다.
저도 의외라고 생각했는지, 당시 지역신문에 조그맣게 실린, 외국인으로 3등을 했다는 기사와 함께
수료식에서 상장을 받는 사진을 스크랩하여 집에 보낸 적이 있다.    

학교성적은 그리 우수한 편이 못 되었다.
하지만, 집사람이나 나는 학교성적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영어도 못하던 녀석이 그나마 수업을 따라간 것 만으로도 의미를 찾았다.  이게 우리의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집사람이나 내가 재원이의 특성 중에 주목하는게 있다. 

재원이는 공부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 한다.
우선 본인이 강한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얘기를 해도 그다지 기대만큼의 동기부여를 받지도 못 하는거 같다. 

하지만, 몸으로 부대끼며 하는 것. 특히, 집단 속에서의 생활에는 묘한 경쟁심을 갖는거 같다.
때로 민감할 정도로 강한 자존심을 보일 때가 있는데, 아마 그런 자존심이 경쟁의식으로 나타나는거 같다.
그리고 조금은 치기어리게 보일 정도로 민족의식이 강하다.
미국생활에서 한편으론 안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염려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재원이의 특성이 어떤 행보를 보이며, 자신의 미래와 장래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다. 

:
오늘이 재원이가 5주간의 육군훈련소 교육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곳으로 둥지를 옮기는 날이네...
벌써 5주라...
세월의 속도처럼 사람과 사람의 체감속도가 다른게 있을까???

이제사 비로소 이등병이 됐구만.
지금부터 오는게 이등병의 편지. ㅋㅋㅋ...
계급장을 달면서 기분이 되게 좋았겠다.  아마..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을걸...

지금쯤이면 의정부에 도착했겠구만.
저녁도 먹었겠고..
첫 미군부대 식사라 다들 호기심이 컸겠다.

시설도 새로울테고.
이제 영어도 제법 써야 할테고.

암튼 재밌겠다.

재원인 좋겠다.
재미난 일이 많을테니.

복도 많아...
 
:
 




생활의 리듬을 찾아가는거 같아 다행이군...
집에서 보다 밥도 더 규칙적으로 잘 먹는거 같고... 

군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보냈어... ㅎㅎㅎ....

:
 
 
 




글 속에는 그 사람의 상태가 보이는 법이다.

4장에 걸친 장문(?)의 편지 속에 담겨진 유머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몇번을 읽어도 유쾌함이 느껴지는건, 재원이의 밝은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납득하는 것에는 군소리 않고 순응하지만,
경우가 아니다 싶을 때에는 민감하게 대응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개선되었다지만) 아직 신세대들의 자유분방한 코드를 맞추기에는 제도적으로 한계가 있는
군의 생리에 얼마만큼 자신을 맞출 수 있을까가 관심거리였다.

한편으론 그런 이유로,
집단에 자신을 맞춰야 하는 이유를 터득하고,  그 방법을 체득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 군이라 생각해서
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군생활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재원이의 편지속에서,  조금은 힘들더라도,
킬킬거리며 즐겁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기를 맞추며  
주어진 몫을 다 하려는 마음가짐이 보여지는거 같아 다행스럽다.  

양심상 편하게 있을 수 만은 없다는 말이 제일 맘에 든다.

그런데,

폼생폼사는 무슨...  
원래 아무 생각없고, 단순한 사람이 폼생폼사 따지는 법인데,
저게 언제 머리 속을 채울라나...

정말 자기 style을 stylish하게 꾸밀 줄 알아야 할텐대...  그게 걱정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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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원이의 육군훈련소 교육기간도 이제 1주일 밖에 안 남았다.
하긴... 내가 [1주일 밖에] 지, 저는 [1주일 이나] 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재원이를 군에 보내놓고 걱정하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건강이나 안전이야 군에서도 신경을 쓸테고, 본인 스스로가 알아서 할 일이다.
집에서 걱정한다고 해결되거나 보장되는 것이 아닌만큼, 기우에 불과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2년이라는 기간동안 재원이가 정신적으로 하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다.

환경을 인내하고, 스스로를 인내하고, 그러므로써 정신적으로 성숙해 지기를 바라는데,
짜증과 불평불만 만  늘어나는건 아닐지 우려가 된다.

가급적 모든걸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어려울수록 여유롭게 행동하는 법을 익혔으면 좋겠다.
그런 아들을 기대하며 제원이에게 편지를 썼다.
재원이가 좋아하고 궁금해 할 야구 소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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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햄릿을 봤다.
딸아이가 조연출을 맡아 여러 스탶들과 함께 오랫동안 준비를 해온 작품이다.

딸애에게는 방학은 몰론 휴일도 없다. 한달에 한번 정도 집에 들른다. 
그것도 토요일 늦은 밤이 아니면 일요일 새벽에 들어왔다가 일요일 오후에 다시 내려간다.
서울에서 공연이 있을 때, 공연전 무대리허설 기간과 공연기간을 포함하여 1주일 정도 있는게
집에 가장 오래 있는 기간인데,  그나마도 매일 밤 12시가 넘어야 들어오기 때문에 제대로 얘기할 시간도 없다.

시켜서 하는 거라면 못할텐대... 그래도 자기가 좋아서 그러니 다행이다.

금년에 입학한 신입생들에게 선배가 딸아이를 소개하면서,
작년에 중앙대 연극과에서 올린 모든 연극에 한번도 안빠지고 모두 참여한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족에,
'어~~~ 내가 그랬었나...??' 하고, 자기도 놀랐단다. 

공연이 끝난 후 만난, 헤드폰 무선마이크와 워키토키로 무장한 딸아이의 모습에서
이제 제법 한 몫하는 일꾼의 티가 느껴진다.

아직도 마지막 공연이 끝나면 서운함에 눈물이 난다며 아빠 품에 안기는 딸애는, 오늘 막을 내린 공연 뒤풀이가 끝나고,
5월에 공연 예정작인 [어머니]의 스탶으로, 쉴 틈도 없이 바로 준비에 들어간단다. 


오늘 공연을 보기 위하여 번개를 쳐서 일부러 시간들을 내어준,
딸애가 고등학교때 부터 몸담았던 사진동호회 보안사 (보이지않는 사진들의 약자라든가...) 회원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다들 직장생활을 하는 사회인들인데도, 딸애가 고등학교때 부터 그렇게들 귀여워하며 졸업식까지 참석하여
사진을 찍어주더니, 지금은 아이가 시간상 동호회활동을 하지 못하는데도 공연때 마다 빠짐없이 참석을 해준다.     

동호회원 중에 Kevin 이란 회원은 처음 딸애의 부탁으로 연극 팜플렛 사진을 촬영하여준게 계기가 되어,
이제는 중앙대 연극과 공연이 있을 때 마다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안성까지 내려가 
연습과정부터 사진을 찍어 판넬까지 만들어 주는 후원자가 되어버렸다.


연극에서는 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도 없이 무대에 올려졌던 햄릿이지만,
뮤지컬로 공연되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오늘 참 추운 날이었지만,  두시간 반 동안은 학생들의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에 후끈 달아오를 수 있었다. 





엔딩 장면.





출연진의 무대인사.



 

마지막 공연이 끝난 후, 출연진과 스탶의 어울림.
앞줄 오른쪽, 분홍티 청바지가 딸아이.
 




Kevin 이 판넬로 만들어 공연장 입구에 비치한 사진중 딸아이(오른쪽)의 모습이 보인다.
판넬 좌상단에 kevin Style [musical Hamlet] 이라는 사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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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들여다 보면 참 재미있다.
그 속에는 그 때는 알지 못했던 그 시절의 시간과 느낌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저 웃음...

저 티없는 웃음이,

재원이가 살아가며 만날 많은 사람들에게 애정과 희망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살아가며 만나게 될 여러 힘든 상황에서도 재원이가 좌절하지 않게,
재원이를 밝게 지켜주는 힘으로 마음 속에 항상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음...  치아가 엉망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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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원이의 편지는 늘 직접 말로 듣는 것 보다 더 재밌다.
나는 이런 재원이의 위트와 유머감각을 좋아한다.

유머는 여유에서 나온다.
아무리 언변이 좋거나 재치가 있는 사람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유머가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재원이의 유머에 기분좋아 하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환경에 여유롭게 적응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재원이의 편지를 읽으면,  마치 이 녀석이 지금 무슨 재밌는 극기훈련이나 캠프를 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걱정은 커녕  이거 너무 편한거 아냐... 하고, 편지를 받아 본 후, 식구들이 아무 생각없이 웃을 수 있는 것이
재원이가 가족들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일 것이다.


재원이는 초등학교 때 부터 엄마의 지시에 의해 매일 일기를 썼다.
그런데, 재원이의 일기는 좀 남달랐다.  읽는 재미가 느껴진다. 
같은 내용을 쓰는데도 읽는 재미가 느껴지는 이유는,  그림을 곁들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운동을 했더니 알통이 나왔다]는 글을, 
[운동을 했더니 (팔뚝의 알통을 그려 놓고) 여기가 이렇게 됐다] 고 표현한다. 


늘 삶을 재밌게 사는 재원이가,  그래도 군대에서, 
세상이란게 때로는 긴장하며 진지해야 할 때도 필요하다는걸 느껴야 하는데...

2소대 독사 소대장에게 걸렸어야 했는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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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원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편지만 하겠냐만은,  그래도 군에서 받는 편지는 반가우니까.

------------------------------------------------------------------------------------------------------
 

사랑하는 아들...

사진으로 본 군복입은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리던데, 이제 군복이 더욱 잘 어울릴라나...
육군훈련소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니, 요즘 군대 정말 많이 좋아졌더군.

식단을 보니, 적어도 메뉴만으로는 아빠보다 더 잘 먹는거 같고...
물론 질의 차이는 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네가 느끼는 체감 미각은
서울에서 먹은 신선설농탕 보다 훨씬 맛있지 않겠나...

훈련병 사진도 볼 수 있고, 가장 놀라운 것은 군복을 직접 빨지 않아도 된다는거...
그거 정말 부럽더라.  아빠 때는 장교들도 직접 빨래를 했는데...

잘 지내고 있지?  건강하리라 생각한다.
네 말대로 밸리포지의 경험이 너의 적응력을 더 높여주는거 같아.
생각 이상으로 잘 적응을 하고 있는거 같아 아빠도 무척 다행으로 여기고,
또 너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단다.
네 편지를 아빠 블로그에 올렸더니, 모두들 부러워하더라.
아들이 성격도 좋고 적응을 잘 해서 좋겠다고...

그럼~~~ 미국에서 블루치즈까지 구경하고 온 사람인데, 그까이꺼 뭐... 대충... ㅋㅋㅋ...

현모가 첫주 일요일에 전화를 했더라.
재원이 소식이 궁금하실거 같아 알려드린다며, 네 주소까지 알려주더구나.
그래도 그렇게 신경 써주는 것이 참 고맙더구나.
너와 현모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너는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을까???
아빠 생각엔 좀 아닌거 같은데...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해 절대적인 판단을 해서는 안돼.
아마 너도 이번 기회에 현모에 대해 조금은 다른 판단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단점이 있는 법이고, 내 마음에 안드는 면이 있다.
그걸 어느 정도 내가 이해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의 관계가 달라지는 거야.
가급적 사람들에 대해 좋은 점만 생각해라.
우연한 계기지만, 어쩌면 현모와 새롭게 친숙해 질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지.

또 앞으로 누구와 어떻게 어떤 자리에서 만나게 될지 모르는게 세상일이다.
현모와도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날 수도 있는거야.

그리고, 그곳에서 가급적 많은 친구들과 교분을 쌓으렴.
너는 특히 국내에 인맥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네가 한국에서 활동할 것을 대비하여
기회 닿는대로 여러 사람들과 친분관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네가 성격이 좋고 사교적이라 그런건 잘 하리라 생각하지만...

샤브미 식구들이 네 안부를 간혹 묻곤 하는데, 네 편지 얘기를 해줬다.
백점장이 제일 관심이 많고, 이모랑 영수, 재영이도 궁금해 하더구나.
정은이가 나간 다음 새로 남자직원이 합류했어. 남자가 와서 재영이랑 대욱이는 완전 김이 샜지.
입이 댓발은 나왔다. ㅋㅋㅋ... ^&^~~~
근데 아주 잘 생겼다. 언뜻 보면 박찬호.  또 언뜻 보면 탤런트 김석훈.
요즘 분위기가 아주 좋아. 재희도 꽃미남이 와서 그런지 오히려 더 명랑해졌고,
영수는 여전히 성실하고, 꽃미남도 성격이 좋더라.

지하 NAKED TREE 때문에 골치 아프다. 아직 사람들이 꼬여 들지가 않네.
분위기가 바뀐걸 알면 서서히 좋아지겠지.
엄마가 너 첫 휴가 나오면, 네가 아는 애들 몽땅 naked tree로 집합시키라 그러란다.

한 내무반에 10명이란게 제일 맘에 안드네.  그래가지고, 새우잠 자는 잠버릇이 고쳐지겠나... 
옴짝달싹 못하게 꽉꽉 낑겨 자야 하는데...    

암튼 주어진 시간에 늘 충실하게 보내렴.
그리고, 연무에서 식사하며 아빠가 말했듯, 조금 힘들어 하는 동료들 잘 챙겨주고.
아직 네게 전우라는 단어는 생소하겠지만, 정말 전쟁상황 이라면 너를 지켜줄 사람은
너와 같이 있는 네 전우 뿐이라는걸 잊지마라.

사람은 어려울 때 지탱이 되준 사람이 오랬동안 기억에 남는 법이야.
동료들 중에 너보다 힘들어 하는 동료들에게 신경을 더 써 주렴.
더구나 네가 소대장 훈련병이라며...
리더는 조직을 머리로 끌고 나가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끌고 나간다는 것을 명심해라..

남들은 자식 군대 보내놓고 날씨가 추워지면 걱정한다는데, 엄마와 난 날이 추워지면, 재원이 쌤통이다.
라며 웃는데... 이건 좀 너무 심한건가...???  그만큼 우리 아들의 높은 생존력을 믿는다는거 아니겠어...

군소리 안 하고, 싫은 내색 한번 안 내비치고, 그리고 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밝은 모습으로 인사를 하며 조국의 부름에 기꺼이 응한 네가 우리 모두는 자랑스럽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삼촌은 물론, 지연이도 오빠가 최고래. 오빠같은 남자가 필요하단다. 

사랑스러운 아들이 자랑스러운 아들로 느껴지게 해준 네게 다시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2006. 3. 2

                                    - 늘 새로운 정과 함께, 성숙해져 가는 재원이가 느껴지는 아빠가.

P.S : 방금 끝난 World Baseball Classic  대만과의 1차전은 2:0 으로 이겼어.
      서재응-김병현-구대성-박찬호의 해외파(이제 구대성은 한화로 복귀했지만)가 깔끔하게 던지고,
      홍성흔은 2루타로 결승타점, 이종범이 역시 2루타로 추가타점을 올렸네. 홍성흔은 비록 병살타가
      하나 있지만, 3타수 2안타. 기대했던 이승엽은 별로, 최희섭은 첫타석에서 큼직한 2루타.
      문제는 김동주... 내야안타를 치고,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하다가 자기 몸에 팔을 접질려 병원으로
      실려 갔는데, 어찌됐는지 모르겠다. 만약 부상이라면 항상 시즌 전 부상징크스가 재현되는건가...
      본인도 안타깝겠지만, 김경문감독도 환장할 일이지. 
      너와 같이 보지를 못해 무척 아쉽지만, 남은 경기도 아빠가 네 몫까지 열심히 응원할께...   

:



책상과 책꽂이의 묵은 자료들을 정리하던 집사람이 빛바랜 신문 한장을 건네준다.
신문의 맨위 상단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 1998년 7월 20일 월요일  제 23938호   동아일보

아~~~  맞다... 이런 적이 있었지...

동아일보에 우리와 또 한가족이 나왔는데, 혹시 그분들께 누가 될지 몰라 또 다른 가족에 대한 기사는 가리고 스캔을 했다. 
나도 예전에 여러가지 했었네...


사진 속 아이들의 모습에서 8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적지않은 변화가 있었음을 느낀다.
앳띠기만 했던 아이들이, 이제 하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연습을, 
또하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리려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러고보니  가족들이 함께 휴가를 다녀본게 언젠지...
재원이가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에는 매년 겨울 다 같이 스키장을 다니곤 했는데,
재원이가 떠난 후 에는 같이 여행을 다니질 못했다.

사실 작년에 재원이가 귀국할 때 하와이에서 가족들이 만날 계획도 생각을 했었는데, 샤브미 오픈으로 불발이 되었다.
하긴... 그게 아니었어도 딸아이도 방학이 더욱 바빴지만...
이제 재원이가 제대를 하면 가족들이 시간을 내 봐야겠다.

   
:


재원이가 입대하던 날,  집사람이 한 얘기가 생각난다.
'쟤는 꼭 무슨 캠핑가는 기분으로 들어가는거 같아...'

생활이 재밌고 싫지 않다니, 정말 그런 캠핑간 기분으로 즐기고 있는 모양이다.
스스로 체질이라고 생각하니 다행이다.

그래... 모든건 다 마음먹기 나름이지. 
솔직히 재원이라고 자발적으로 군대를 가고싶어 했을까..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라면 재원이도 군대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거다.
하지만, 국민의 의무라는 개념보다는,  남들이 다 하는, 해야하는 것임을 알고
한번도  빠질 생각을 한다거나, 가기 싫다는 내색없이 긍정적으로 임하고 있는 것이 대견하다.

즐길 줄 안다는 것은,
살아가는 방법, 특히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것을 극복할 줄을 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성당은 간식먹으러 간거구만...  군대는 군대네...  그깢 간식때문에 성당을 가는걸 보니.
하긴, 군인에게는 - 특히 훈련병이나 쫄병에게는 - [그깢] 간식이 아니지... 
어찌됐든 포교활동 하는데 코스트가 가장 적게 먹히는 곳이 아마 군대가 아닌가 싶다.

음식 잘 나온다는건 이미 식단으로 입증이 된거고...
변기도 좌변기에 시설도 깨끗하다...  완전히 유스호스텔이구만...

그나저나,  딴거보다 저 녀석  군에서 새우잠 자는 습관을 고쳐서 나와야 하는데, 너무 널널한거 아니야...
그것만 고쳐도 군대간 보람은 있을거 같다.
그런건 어떻게 두들겨 패서라도 고칠 수 없나??




 
 

참... 요즘은 지휘관 역할 하기도 힘들겠다.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이건 완전히 신병이 상전이다.
이러니 지휘관이 다른 고유 업무에 신경을 쓸 수 있나...

너무 이러는건 오히려 좋은거 같지도 않다.


:



요즘 군대 정말 너무 좋아졌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관심이 없었으니까), 재원이가 군에 간 후, 조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니,
정말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군 체계 확립의 범위안에서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자녀들에 대한 가족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려는 노력인거 같다.
가족들이 군에 입대한 자녀들의 신상과 일상생활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도록
최대한의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는 노력이 곳곳에서 돋보임을 느낄 수 있다.  

육군훈련소 홈페이지(http://www.katc.mil.kr/index.htm)에 들어가면 왠만한 궁금증은 어지간히 해소가 된다.
주민등록번호를 검색하면 훈련소의 소속부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속부대를 검색하면 위와같이 사진도 볼 수 있다.  사진은 확대도 가능하기 때문에 얼굴을 얼마든지 크게 볼 수 있다.

재원이녀석은 뒷줄 맨 왼쪽에 있구만...  그래도 제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든든하다.
사진을 확대해서 보니, 소대원들도 모두 순박하면서도 건강하고 밝은 모습을 보여 기분이 좋다.
그늘져 보이거나  어두운 얼굴들이 없다.
 

홈페이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면 사진 뿐만아니라, 
하루의 일과는 물론 5주간의 교육내용과,  무얼 먹는지 식단까지 알 수 있고,
게시판을 통하여 훈련병에게 글을 남길 수도 있으며,  언제 훈련소를 수료하고,  어디로 배치됐는지도 알 수 있다.
군대에서의 주특기(병과)도 본인이 갖고 있는 자격증과 몇가지 기록을 입력하면 바로 검색이 된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최대한 보장하려는 의도인거 같다.



구분

(2.20)

(2.21)

수(2.22)

(2.23)

(2.24)

(2.25)

(2.26)

떡만두국
김장김치

닭고기미역국
돼지고기김치볶음
맛    김
김장김치

두부된장국
돼지고기감자조림
오징어젓무침
김장김치

쇠고기무국
돼지고기야채볶음
맛    김
김장김치

호박된장국
두부김치볶음
맛   김
김장김치

치킨버거
샐러드버거
크림스프

불고기버거
 치즈버거
쇠고기스프

000

버섯찌개
카레밥
비엔나소시지볶음
김장김치

생선묵국
궁중떡볶이
상추초무침
김장김치

부대찌개
잡채밥
두부양념찜
김장김치

호박된장찌개
오징어채무침
계란찜
김장김치

돼지고기김치찌개
생선묵볶음
고추참치통조림
김장김치

조갯살미역국
오삼불고기
시금치무침
김장김치

두부김치찌개
쇠고기불고기
콩나물무침
김장김치

000

오징어무국
양념닭고기튀김
고등어무찜
김장김치

쇠고기육개장
야채튀김
명태무찜
김장김치

아욱국
닭고기감자찜
마파두부
김장김치

순두부찌개
동그랑땡튀김
민대구살찜(튀김)
김장김치

민대구매운탕
닭고기튀김
두부양념찜
김장김치

닭고기육개장
돈까스
야채샐러드
김장김치

꼬리곰탕
무생채
김장김치

 

 

 

ㅇㅇㅇ

 

 

 

 

후식

우유, 사과맛스타

우유, 사과(후지)

우유

우유

우유,
떠먹는발효유

우유

우유

이번 주 육군훈련소의 식사 메뉴.

음...  오늘 점심은 돼지고지에 생선에 참치통조림까지 먹었군...   나는 수제비 먹었는데...
저녁을 보자...    민대구매운탕에 닭고기튀김 이라...   얼~쑤~~~  게다가 후식으로 떠먹는 발효유까지...


홈페이지를 보니, 요즘은 훈련복도 단체로 수거해서 세탁공장에서 세탁을 한다.
우리는 장교들도 직접 빨았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야...
이런데 왜들 울고불고 그런다는지 이해가 안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개선된 면을 모른 채, 예전에 겪었던 자기들의 경험만 떠올리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얼마전에 집사람이 모임에 나갔다 오더니 재밌는 말을 한다.
재원이가 입대했다고 하자,  동료 교사가 자기 아들은 절대 군에 못 보낸다고 하더란다.
왜 못 보내느냐고 물으니, 아이가 내성적이라서 적응을 못할거라나...

그럴수록 보내야 하는거 아닌가???
그 이전에 자기 자식의 능력을 그렇게 못 믿는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 부모가 먼저 아이들의 열등의식을 조장하려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더 재미난건 그 아들이 법대생이란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 어머니와, 
누구보다 먼저 법을 지켜야 하고,  법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들을 바로 잡을 판검사를 지망하는 법대생 아들.

이들의 가치관이 이럴진대,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민간인에게 무기를 탈취당한 군인이나,  철책이 뚫린걸 모르고 있던 경계병들도 일단 군대는 갔다.

군입대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이런 병사들을 얼빠진 군인이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
재원이의 옷이 소포로 배달되어 왔다.
옷이 와야 확실하게 입대를 한거라고 하더니, 이제야 비로소 군입대가 제대로 확정된 모양이다.




음~~  이런 박스에 온다는 말이지...

이 소포를 받을 때 대부분 부모들 - 특히, 어머니들 - 이 마음이 찡하다던대,
우린 재밌어 하는걸 보면  혹시 애정결핍 아닌지 몰라...






그래...  요 녀석이 그냥 맹숭맹숭 보낼리가 없지...

Just Do it !

재원이는 처음 미국에 갔을 때도
기숙사 방의 책상 위 벽에  [ Just Do it ! ]과 [ I can Do ]라는 문구를 붙여 놓은 사진을 보냈었다.
아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자신감을 갖기 위해 스스로를 세뇌시키는 주문일수도 있고,
혹은, 이런 마음으로 생활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가족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재원이의 저런 생각과 행동이 마음에 든다.   





입영대상자 집합을 할 때, 짐꾸리기 힘들다고 파카를 벗어놓고 가더니,
정말 저 상자에 두터운 파카까지 집어 넣으려면 애좀 써야할뻔 했다.

그때  춥지않겠냐고 물으니, '들어가면 바로 옷 줄텐대 뭘...' 하더니,  그 말이 맞았네...


저 박스안에는 재원이의 편지도 한통 들어 있었다.
모든 훈련병들에게 한통씩 적게끔 했겠지...



[ 편지에 하도 쓰지 말라는 것들이 많아서 도대체 뭐라 해야할지... ㅋ ]

재원이다운 표현이다.   근데, 이 말은 써도 돼나...??

편지 보낸 날이 2월14일.
그 와중에도 발렌타인데이 까지 챙기는 재원이의 저 센스...     CoooooI~~~~~~~~~  맘에 들어...  ^&^~~


군대 편지지 귀엽네...
:
어제 - 일요일 - 낮에  육군훈련소 조교로 있는 재원이의 친구 현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재원이의 소식을 전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동안 자기와는 중대가 달라 직접 접촉을 하지는 못했는데,
일요일 종교행사 때 찾아보니 성당에서 있더란다.
짜식이 평소엔 성당엘 안 나가더니, 그럴 땐 나간다.
하기사 한군데 틀어박혀 있는걸 못 참는 성격이다 보니 돌아다녀야겠지.

근데, 처음 미국의 고등학교에 갔을 때도, 영어 한마디 제대로 못 하던 상태에서 성가대에 가입을 했던걸 생각해 보면,
그래도 몸과 마음이 허전할 때는 뭔가 그곳이 끌리는 모양이다.  

현모의 말에 의하면, 소대장 훈련병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데, 알아보니 잘 적응을 하며 지내고 있단다.

당연한 얘기지...  며칠 됐다고 벌써 적응을 못하면 어쩌누...


며칠 전 후배가, 재원이 옷이 배달되어 왔느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옷이 와야 완전히 입대를 한거라나...
왜냐고 물으니, 최종 신검에서 불합격되면 사람이 돌아오는 수가 있단다.

'거~~ 무슨 황당한...  그런 일이 생기면 지가 자살을 해야지.. 
 그동안 퍼들인 돈이 얼만데, 국가공인 불량품이 돼서 돌아와...' 


현모가 이런저런 얘기를 전해주며 재원이 주소를 불러준다.
무심코 듣고있다 물어보았다. 

'근데... 이거 왜 불러주는거냐? 어따 쓰는데...??'
> 혹시 재원이한테 편지하시려면...

웃음이 나온다.  현모에게 말해주었다.

간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리고 5주밖에 안되는데, 그동안 무슨 별일이 있다고.
또 만약 우리가 편지를 보내면, 같이 훈련을 받는 동료들이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나.
저놈은 집에서 주소를 어떻게 알고 벌써 편지가 오나...  
주변의 눈초리가 좋을리 없고, 결국은 재원이에게도 좋은게 아니다.

또, 그런 것 때문에 다른 훈련병들이 군에 대해 불신이 생기기시작한다.
끗발있는 놈은 벌써 저렇게 누군가 챙기는구나... 

그런건 바람직한게 아니다. 자칫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대우받는게 재원이를 위해서도 좋다.


그래도 친구 부모에게 뭔가 챙겨주려는 현모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재원이 녀석은 복도 많다.  이렇게 군에서도 챙겨주는 친구가 있으니...
  
:
재원이가 입영을 할 논산 연무의 육군훈련소를 가족들이 함께 갔었다.
나는 장교로 임관을 했기 때문에 논산훈련소는 처음이다.
군부대 자체를 정말 오랜만에 가보았다.

그런데, 입영부대 정문을 들어서면서 군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다.


[Panasonic] DMC-FX9 (1/769)s iso80 F5.6


입구에 세워놓은 입간판에서부터 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가급적 딱딱한 느낌을 배제하고, 군에도 감성적인 면이 있음을 보여주려 노력하는거 같았다.  



[Panasonic] DMC-FX9 (1/1000)s iso80 F5.6


입영을 앞둔 입영대상자와 가족 등 환송객간의 어색함과 조금은 애닯은 감정을 풀어주기 위한
연주회와 노래자랑 프로그램 안내.


 
[Panasonic] DMC-FX9 (1/200)s iso80 F5.6


군악대의 연주가 30여분 정도 흥겹게 이어진 뒤, 입영대상자와 가족들의 노래지랑이 열렸다.
생각보다 많은 가족들이 나와 스스럼없이 노래솜씨를 뽐내는 것을 보고 약간은 놀랬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입영대상자의 긴장감을 풀어주는데 많은 도움이 될거 같다.

사진을 찍을 때는 연주회 시작 직후였는데, 나중엔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젊은 군인들의 연주솜씨도 좋았고, 역시 현역군인인 사회자들의 진행솜씨도 매끄러웠다.
한가지 좀 아쉬웠던건 어쩔 수 없는 긴장감 때문이었는지 사회자와 군악대의 열정적인 연주에 비해
박수등 호응도가 다소 떨어졌다는 점.
우리도 이런 분위기를 축제처럼 즐길줄 아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데, 욕심일까... 

예전에는 [충성], [효도]라는 구호가 붙었던 자리에, [존중]과 [배려]라는 구호가 붙어있는 것 만으로도
군이 변화를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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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원이와 미국에서 같은 고등학교를 나오고 같은 대학을 다니다 먼저 입대한 친구 현모를 만났다.
현모는 육군훈련소에서 조교로 복무중인데, 공교롭게도 현모가 재원이네 훈련병들을 담당하게 됐단다. 
참... 세상이 좁다.  재원이로서는 그것도 복이라면 복이랄까...

재원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아리조나에서 현모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제 고참 상병인 현모의 의젓하고 늠름한 모습에서 예전의 어려보이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재원이도 저렇게 되겠지... 생각하니,  기대가 크다.




[Panasonic] DMC-FX9 (1/158)s iso80 F5.6


집합 직전 가족들과 기념사진.
나중에 짐꾸리기 불편하다고 파카도 벗어놓고 갔다.

만나는 사람들 마다 많이 서운하겠다고 위로들을 해주는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서운하거나 안스러운 기분이 별로 들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빨리 군에 가기를 기다려(?)왔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또, 일찌기 한번 이별을 경험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집사람은 카투사로 가는게 조금은 불만이다.
군대가 나약함을 강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너무 편해지는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재원이의 군입대를 조금 아쉬워하는 이유는 더 엉뚱하다. 
여지껏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저 녀석이 군대를 가야하니 어쩔 수 없이 한번은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제 군복무를 마치면 의무적으로 들어와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왠지 그게 서운하다.




[Panasonic] DMC-FX9 (1/322)s iso80 F5.6


생각했던 것 보다는 당사자와 가족들이 많이 담담하고 의연한 모습들을 보이는거 같아 보기가 좋았다.
눈물을 흘리고 그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재원이에게 입대 전날  두가지 말씀을 해 주셨다.

군에서 참는 것을 배워라. 
참는다는 것이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는 것 뿐만이 아니라, 감정을 자제하는 법과,
먹고싶은 것을 참아야 하고, 자고싶은 것도 참아야 하고, 그런 욕구를 참는 것을 배워라.

그리고, 군에서는 주어진 일에 충실하는게 효도하는 것이다.



나도 재원이에게 두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앞으로 2년간 너의 시간은 국가가 관리한다.  주어진 시간에는 그 시간에 주어진 일에 집중해라.
식사시간에는 아무리 먹기 싫어도 밥을 먹고, 자야할 시간에는 무조간 자라.  
훈련을 받을 때는 훈련에만 집중해라.

또 하나는, 집단생활을 하다보면 나 혼자만 잘한다고 편한게 아니라,
내가 아무리 잘해도 구성원의 잘못으로 같이 피해를 보는 경우가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이다.
무슨 일을 하던 쳐지거나 적응을 못하는, 소위 고문관이라는 동료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서도 뺀질거리는 놈들에겐 무슨 행동을 해도 좋지만,

본인은 하고자 하는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적응을 못해 뒤쳐지는 동료에게는
눈총을 준다든지, 짜증을 낸다든지 하는, 비난하는 행동을 절대 해서는 안된다.
그런 친구들은 본인이 더 당황하고 허둥대기 마련이니, 오히려 네가 더 감싸안고 짐을 덜어줄 수 있도록 해라.
그런 포용력을 베풀면 반드시 사람들이 네게 돌아온다.

성격이 비교적 좋은 편 임에도, 어떨 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재원이가
군 생활을 통해 그런 부분이 많이 원만해 졌으면 좋겠다. 



어제 저녁부터 재원이가 나랏밥을 먹기 시작했으니,
이제 내가 내는 세금이 우리 가족에 의해 일부가 직접적인 환수가 되는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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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작년 6월 15일 근복무를 위해 귀국한 재원이가 정확히 귀국 8개뤌만인 내일 입대를 한다.

보통 아이들은 훈련소 입대 직전에야 머리를 깎는다고 하길래,
어제 저녁, 언제 이발을 할거냐고 물으니, 일요일 아침에 할거라고 하더니
정말 아침 일찍  이발을 하고 왔다.

왠일이야고 물으니, 팬 서비스 차원이라나...
모두들 자기 머리 깎은걸 보고 싶어 할테니 미리 깎고 보여주겠단다.
그리고, 할아버지께 입대신고를 드리러 가는데, 어차피 깎을거  이발을 하고 인사를 드려
자신의 담담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할아버지가 더 좋아하실거 같단다.   

가족들과 같이 점심식사를 하는데,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재원이의 사촌동생 녀석이 갈비탕에서 갈비 하나를 꺼내 재원이에게 건네주며 한마디 한다.
'형.. 이거 내가 형한테 주는 선물이야..  내가 고기만 발라줄께...'

아이들의 생각은 늘 순수하고 귀엽고, 이쁘다.




[Panasonic] DMC-FX9 (1/20)s iso125 F2.8


이발을 하고 엄마와 기념사진 한 컷.

입고있는 상의는 재원이가 나온  Valley Forge Arcademy 의  운동복이다.
마치 사관학교 체제인 그 학교는 입학할 때 삭발을 한다.

평소에도 머리 길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서 그런지
삭발한 모습이 그리 어색해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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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집에서 차례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성당에서 미사로 대신한다.
하지만, 금년 설엔 어머니의 제안으로 성당미사와는 별도로 집에서 차례를 지냈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49제가 안 끝났으니, 차례를 지내는게 좋겠다는 말씀에 모두들 동의했다.





자...  준비가 다 된거 같으니 이제 시작해도 되겠습니다.



  

-  재원이가 증조할아버지 할머니께 군입대 신고를 겸해서 제일 먼저 잔을 올려라.

아버님의 파격적(?)인 제안으로 서열이 한참 아래인 재원이가 특별 예우를 받았다.


 

 

지금부터는 서열순으로... 
장남이신 아버님이 대표로 향을 붙이시고..



 

아드님들 절을 받으시고.

뒤에 줄줄이 기다리는 자손들 많아 행복하시겠습니다.


 

 
 
따님과 며느님들 인사도 받으시고.



손자며느리, 손녀, 증손녀의 절도 받으세요.



 

나도 간만에 정장에 넥타이를 한번 매봤네.



 

바쁜데 언제 일일히 받냐...    서열순으로 이열횡대 합동으로... 
세배받을 사람들은 준비 끝났는데,  세배할 사람들은 준비됐느냐~~~



 

큰애야~~~  혼자 차례 준비하느라 애썼는데,  여기 작은아버지들께서 준비하신 보너스다...

집사람만 신났다.


   


 
니들은 세뱃돈 없다..

이날 유일(아니 유이)하게 수입이 없었던 나와 동생.


 

 

지금부터 돈이 풀리기 시작한다.  아예 돈다발을 손에 쥐신 인천 숙부님.



 

지금부터는 전체 인원과 대상별 연령을 잘 파악하여 분배를 잘 해야 한다. 
 
-  너.. 얼마씩 주는거냐??
> 형님은 저 신경쓰지 마세요..

-- 야~~~ 니들 뒷줄꺼도 잘 챙겨 가....



 

한분꺼도 빠트리지 말고 잘 챙겨야지...




 
챙길거 챙기고, 풀거 풀어 분배가 끝났으니,  이제 먹는 일만...





메이저 리그.


 
 
마이너 리그.


 

리틀 리그.



새로 나온 5천원권을 미리 준비하여 사촌동생들과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고,
미혼으로 혼자이신 고모님께도 두장을 봉투에 넣어드렸더니,
숙부님 한분이 '조카~~~ 왜 차별대우 해...' 하신다.

졸지에 다섯 숙부님들께 추가 분배...
어~~~  뜻하지 않았던 예상외의 지출...  출혈이 컸네...

그래도 숙부님들께서,  '설날 조카한테 세뱃돈 받아보긴 태어나서 처음이네...' 하시는 말씀에
마음이 뿌듯해진다.

이래서 명절인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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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 평균적인 부부와 비교할 때, 우리는 부부간에 어느정도 대화를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와이프 : 우린 미주알 고주알이지.

우리 부부는 대화가 많은 편에 속하는거 같다.
단정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은 다른 부부의 경우를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대화 외에 우리는 보조수단을 많이 이용한다.
처음에는 편지가 그 기능을 많이 담당했다..
그때는 벼게밑과 화장대가 우리 편지의 우편함이었다.
내용은 말로 다하지 못한 상대방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표현이다.
학년이 바뀔때면 난 꼭 집사람의 학교로 편지를 보냈다.
주로, 새로 담임을 맡게된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인터넷이 활성화되면서 요즘은 이메일이 편지의 역할을 대신 한다.

대화에 있어 필요조건은 [꺼리] 와 [시간]이다.

입이 가벼운 사람일수록 꺼리는 많다.
나는 입이 가벼운 남자다.
집사람과 마주 앉으면 그날 내게 일어난 이야기가 다 나온다.
심지어는 이발소가서 안마받은 이야기, 룸살롱에서 옆에 앉은 아가씨 이야기까지...
거기에 대해 덧붙인다면, 룸살롱 갔다는 이야기를 하면 집사람이 꼭 묻는게 있다.
아가씨 팁을 줬느냐.  그러면서 덧붙인다.
줄 돈이 없거나 주는게 아까우면 가질 말던지, 이왕 갔으면 줄건 줘야하지 않느냐. 그런데 나오는 여자들 목적이 뭔대...
처음에 이 말의 진위를 파악하는데 난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내가 단골로 다녔던 룸살롱, 단란주점, 식당의 주인들 대부분이 여자지만  집사람이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끔 옛 단골집을 오래만에 간다고 하면, 집사람이 사장 갖다주라고 떡을 맞춰줄 정도니까...  

하지만 어디서든 예외없는 법칙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역시 집사람에게 얘기하지 않는 영역이 있다.
결혼생활 20년동안 내가 갖고있는 고민이나 내가 겪는 갈등에 대해서는 얘기해본 적이 없다.
고리타분한 생각이겠지만, 집안의 모든 좋지못한 문제에 대한 고통은
결론이 날 때 까지는 혼자 감내하는게 낫다는 생각이다.
혼자 해도 충분한 걱정거리를 불필요하게 가족들이 미리 알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음은 시간인데,

신혼초 우리는 갓난아이를 재워놓고 심야영화를 많이 봤다.
TV영화나 비디오가 아닌 극장을 많이 찾았다.
요즘 우리의 고민은 아이들 눈치 안채게 영화보는 것이다. 
딸아이가 고등학교때, 딸아이는 엄마 아빠가 자기 모르게 본 영화티켓이 집구석에서 발견될 때 제일 배신감을 느낀단다.

또하나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것은 쇼핑을 같이 하는 것이다.
쇼핑만큼 집사람의 소비패턴과 기호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없다.
먹거리 장을 따라 나서면 아이들의 취향과 기호식품까지 알 수 있다.
엄마들은 자신의 취향보다 아이들의 취향을 우선 생각하기 때문이다.

쇼핑은 부부에게 많은 대화의 소재와 시간을 제공해 준다.  

딸아이가 중학생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 자기 부모가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 고 하더란다.
아무생각없이 손을 번쩍들고 둘러보니 자기밖에 없더라나...

우리의 질문 : 네가 볼 때 엄마 아빠가 천생연분인거 같니???

딸의 대답 : 그렇지않어??  근데 왜 다른 애들은 손드는 애가 없지...

우리의 행복한 대답 : 그게 다 니가 주책이란 얘기야.

그렇더라도  우린 서로에게 물었다.
' 우린 그래도 성공한 부분가비여...'

딸애는 지금도 그런다.  엄마 아빠 사는거 보면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집사람은 묻는다. ' 야~~ 엄마 아빠 싸우는거 봐도 그런 생각이 드냐??? '
딸래미의 대답이 걸작이다.
' 그게 다 사는 재미지~~~  그런 것도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냐...'

집사람의 엉뚱한 걱정은,  딸아이가 세상 남편의 표준을 아빠로 보기 때문에 나중이 걱정된단다.
나에겐 좀 과분한 표현이긴 한데,  어쨌던,
딸애에 의해 붙여진 우리부부의 영예스런 별명은 [못 말리는 한쌍의 바퀴벌레] 다.


그런데,  요즘은 전에 비해 대화가 상당히 줄었다. 
샤브미를 비롯해 새로운 일을 벌리며,  [대화꺼리]는 많아졌는데,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 또 하나 느낀 것은 대화에 있어 필요조건은 [꺼리] 와 [시간]뿐 만이 아니라,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

안그래도 시간이 많이 즐었는데,  게다가 피곤하니 바로 잠이 드는 경우가 많다.
일요일인 어제도 거의 하루를 잠으로 보냈다.

그래서 요즘 집사람에게 많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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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어색하진 않지...

표정도 그렇고,  폼도 제법 자연스러워 보이는구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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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님은 군에서 인생의 30년을 보내셨다.
옛날식 표현으로 전형적인 무인이시다.

5.16 군사혁명은 박정희 대통령이 수반이었지만, 그 주축 세력은 육사 8기였다.
아버님도 육사 8기시다.
혁명을 도모하던 동기생들께서 아버님에게도 혁명에의 참여를 권하셨다고 한다.

아버님의 답변은, '군인이 정치에 나서서는 안된다.' 는 것.
자식인 내가 생각해도 아버님은 참군인이셨던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안에 군 미필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병과학교 16주 교육중 15주를 마치고 마지막 주말휴가를 나왔을 때, 어머니가 물으셨다.
'너.. 어디로 배치되는지 혹시 얘기 들은거 있니??'

마침 휴가를 나오기 직전, 1군으로 갈거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1군으로 가는거 같은대요..' 라고 말씀을 드리니,  어머니가 그러신다.
'이 양반이 결국 그렇게 일을 벌리셨구나...'

무슨 말씀인가 몰라 여쭈어보니, 아버님이 어머니께 미리 그러셨단다.
'당신.. 혹여라도 상범이 후방으로 갈거라는 생각 말어.  그애는 성격이 하도 낙천적이라 군대에서 틀을 잡아야 사람이 돼.
 그래서 전방으로 보낼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이런... 남들은 빽 써서 편한 데로 간다던데, 나는 빽 써서 전방 가네...  차라리 내버려뒀으면 복불복으로라도
 후방 갔을지도 모르는데...'


배치받은 자대로 들어가기 전 날, 아버님은 내게 이런 조언(?)을 해주셨다.
'그 부대는 지뢰가 많은 곳이다.  확실한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마라.  길인거 같다 싶으면 가지 말라는 얘기다.'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아들이 카츄사에 합격을 했을 때, 집사람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어떻하지...   재원이 카츄사로 간다고 하면  아버님이 못마땅하게 생각하실텐대...'
> 왜??
'한국군으로 안 가고 미군부대에 근무한다고...'


아버님께,  '재원이가 카츄사 시험에 합격했어요...' 라고  보고를 드리니,
'그래...???  그거 잘 됐구나...  재원이한테 축하한다고 그래라...'  그러신다.

연세가 드시면서 마음이 유해지신건지,
아님, 아들을 대하는 것과 손주를 생각하는 마음이 다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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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아버지가 손자를 호출하셨다.

군입대를 앞둔 손자에게 
생각이 다른 상급자의 지시를 받았을 때의 처신법 등, 군생활을 할 때의 마음가짐을 비롯하여,

성인이 된 손자에게
우리나라에서 내려오는 한 집안의 장손이라는 개념과 의미에 대해 말씀을 하셨다.


아버님은 내가 임관을 하여 병과학교 교육을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아 부임을 하기 전날도
나를 안방으로 불러 장교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군생활을 먼저 했던 선배장교로서 후배장교에게 하는 말이다...'

그때 내게 하신 말씀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어떤 경우에도 병사들을 구타하지 말라는 것.
구타는 가장 무능한 장교가 선택하는 부하관리방법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장교는 대학교수가 아닌, 유치원교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
대학교수는 솔선수범 없이 말로 전달만 해도 되지만,
유치원교사는 늘 아이들에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아이들이 그대로 따라한다는 비유법으로,
장교는 늘 앞장서서 먼저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을 해 주신 기억이 28년이 지난 아직도 새롭다.


손자에게 이런저런 말씀을 하신 후,  마무리로 하신 말씀. 

'재원이 너 군대 가고 나면,  내가 이제 언제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겠니...  
 이게 할아버지로서 마지막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 나이로 연세 여든둘.   
마지막에 하신 말씀이 왠지 마음에 시리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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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딸아이와 같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딸애가 불쑥 이런 말을 한다.

'아빠... 열심히 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더라... 
 난 여태까지 열심히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대학 들어와서 1년만에 그게 아니라는걸 알았어.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잘 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더라구...

 우리 무대연습할 때 보면 진짜 모두들 열심히 하거든...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결과가 안 좋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잘 못하면 누구도 인정을 안해주니까.
 열심히 하는거 보다 중요한건 잘 하는거 라는걸 요즘 많이 느껴.

 물론 잘 하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하는건 맞지만, 중요한건 잘 하는거야.
 잘 했을 때 당당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열심히 했다는 말일거 같애.
 그러니까 잘 해야 돼.'


듣고보니 정말 그렇다.

우리는 [열심히]라는 말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무엇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 듣는 것 만으로도 왠지 뿌듯하다.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안부를 전해 들을 때 열심히 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뭔가가 잘 될거 같은 기대감을 갖게 된다.

정말 주위를 둘러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운동선수들은 겨울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고,
학원이나 도서관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야시장이나 새벽시장엘 나가 봐도 추운 겨울임에도 다들 생업에 열심이다.

그런데,
열심히 하면 정말 다 잘 되는 것일까...    
물론 열심히 하면 잘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가 다 잘 되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승엽보다 열심히 운동하는 선수들도 많을 것이다.
최경주도 연습벌레라고 하지만  타이거 우즈 보다는 못한다.
수많은 사법고시 준비생들이 거의 모든 사생활을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하지만 좌절을 맛 보는 사람이 더 많다.

열심히 한 것 만으로 후회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열심히 했기 때문에 더 비애를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인정은 잘 한 결과로써 받는 것이며, 열심히 한 과정은 단지 감안될 뿐이다.

 
딸의 나이 이제 갓 스물에 벌써 생존경쟁의 원리를 알아 나가는 것이 안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스스로 깨달아 나가는 것이 대견하기도 했다.

이제 아이가   [잘 하는 것]과 공명심에 사로 잡힌 [성과위주]를 구분할 줄 알기를 바란다.
  

이제 딸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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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이 초등학교때 학생회장에 입후보한 적이 있었다.

나름대로 선거참모들과 조그만 머리를 맞대고 선거전략을 짜는 모습을 보니
나도 뭔가 하나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럼... 가문의 장손이 출사표를 던졌다는데, 애비가 기만있을 수는 없지...


사실, 그 당시 우리 아들이 될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했다.
아이는 중간에 전학을 왔기 때문에 교우관계의 저변도 약했을 뿐만 아니라,
성적 등 당시의 여러 정황이 아웃사이더에 가까웠지, 주류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아이에게 초등학교 시절의 멋진 추억거리를 하나 남겨주고 싶었다. 

위의 선거용 전단지는 내가 직접 카피를 쓰고, 후배의 디자인 도움을 얻어 만든 것이다.
마침 인쇄업을 하는 아는 사람 있어, 제작과정에서 돈은 하나도 안들어 갔다.

아들이 당선이 되면 크게 한 턱 내는, 이른바 후불 조건이었는데,
아들은 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 효도를 했다.   ^-------^  


그래도 전단지 효과가 있었는지,  생각보다 선전하여 2등을 했지..  아마...

:

 

아빠께
드리고싶은
(이런것이 사랑의 그림이에요)





엄마께 드리고싶은
(이런것이 사랑의 그림이에요)



내 기억에 이 그림은 어떤 특수 물감으로 그린 걸로 알고 있다.
그냥 보면 백지인데, 물 속에 담그면 색이 나타나는...
그래서 딴에는 [이런 것이 사랑의 그림...] 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나 싶다.
그냥 봐서는 보이지 않아 모르지만, 속에 뭔가가 담겨져 있다는...  

특수물감 탓인지 스캐닝을 하니 글자의 색이 실제와 조금 다르게 나와,
그림 아래 딸아이가 표현한 색으로 토를 달았다.

엄마와 아빠에게 보낸 글의 내용은 같지만,
같은 문구의 칼라를 반대로 표현한 것이 재밌다.  

:
묵은 앨범을 뒤지다보니 아이들의 어렸을 적 흔적이 여럿 나온다.
그때의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 지금의 모습과 비교를 하니
놀라웁고, 흐뭇하고, 또 경이스럽기 까지 하다.

어렸을적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 이 아이가 커서 무엇이 될까... 

혹은,
- 이 아이가 어떻게 자랄까...

하는 궁굼증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졌을 것이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부모가 미처 예측치 못한 행동을 할 때의 궁금증은 더할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그랬건 것 처럼,
딸아이도 어렸을 때 부터 뭔가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그리고, 적고 하는걸 좋아했다. 

앨범 속에 있는 유치원 때의 동시(童詩) 하나. 

 

유치원생이 느끼는 외로움이 어떤 것이었을까...

[반달도 외로운데 그 속의 한마리 토끼 얼마나 외로우랴]
[홀로 남은 내 몸 또한 얼마나 외로우랴]

아이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외로움이 묻어 나온다. 
아마..  엄마가 직장생활을 한 탓에,  학교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없는 공백이 어린나이에 알게 모르게 컸던 것인 아닐까 싶다. 

딸아이는 지금도  작업을 위해 혼자 안성에 있다.

 
:

새해 첫날인 1월1일,
한해가 지나는 과정을 우리식구 말고도 지켜볼 사람들이 많건만, 
대부분 식구들이 새벽 5시쯤 잠이 들어 12시쯤 일어나 식사를 한 후,
식구들이 같이 연극을 보기위해 동숭동 대학로를 찾았다.

딸아이가 크리스마스 전에 미리 예매를 해놓은 [삼류배우]. 

2시간30분의 연극이 처음엔 부담스러웠다.
보통 대극장에서 하는 연극의 경우 막과 막 사이에 휴식시간을 주는데 비해,
소극장의 연극은 휴식시간 없이 끝까지 이어지고,
특히, 연극은 영화에 비해 특수효과와 같은, 임팩트를 주는 요소가 없어,
극의 내용이 개인의 취향과 맞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은 경우 자칫 지루해 질 수가 있다.

결정적으로, 객석이 잘 꾸며진 극장의 좌석처럼 편하지가 않아  조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참 재밌게 봤다.


연극의 내용은 이렇다.

30여년 동안 연극만 해온 영진.
그는 좀더 쉽고 돈벌이도 되는 영화나 방송으로의 외도는 눈도 돌리지 않고
오로지 연극을 평생의 천직으로 삼고 열정을 바치지만,
그가 속한 극단에서 그는 연기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3류배우다.

하지만, 그에게도 평생의 꿈이 있다.
모든 연극배우들이 그렇듯, 그도 언젠가 햄릿을 연기하게 될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
10여년 동안 햄릿의 모든 것을 일상생활처럼 머리 속에 담아 온 그에게 기회가 오는 듯 했다.
그의 성실함과 오랜 준비를 알고있는 연출과 선배연기자가 영진에게 햄릿을 맡기겠다고 통보를 했지만,
흥행을 중요시하는 극단대표는 영진의 친구로서 영화에 진출해 지명도가 높은 상일에게 배역을 준다.

일생의 기회를 얻었다고 가족과 함께 기쁨어린 기대에 젖어있던 영진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그런 영진에게 뜻하지않게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햄릿을 연기하던 상일이 드라마녹화를 빠질 수 없어 한회차 공연을 펑크내게 된 것이다.
대역이 급해진 극단에서는, 대사는 물론 이동선까지 이미 햄릿에 대한 모든 것이 몸에 배어있는
영진에게 햄릿의 역을 부탁하게 되고,
영진은 기쁜 마음으로 가족에게 자신이 연기하는 햄릿을 보러 올 것을 부탁한다.

막이 오르기 5분전.
들뜨고 긴장되는 마음을 억누르며 혼자 마지막 연기연습을 하는 그에게
삶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일이 벌어진다.
드라마녹화로 공연을 못한다던 상일이 방송국의 양해를 얻었다며 나타난 것이다.

햄릿의 의상을 벗어주며, 더 이상 빠질 수 없는 끝없는 허탈감으로
'나는 내 옷을 입어야지...' 라고 읊조리며 분장실을 나서는 영진.

공연이 끝난 후 영진이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분장을 지우는 분장실로
아버지의 햄릿을 보기위해 꽃다발을 준비했던 가족들이 찾아온다.
모두가 복받치는 슬픔을 가슴으로 삼키는 가운데, 아들이 영진에게 울먹이며 묻는다.
'아빠는 언제 햄릿을 해요?'         

'보고 싶으냐?'

관객도, 배우도, 스탶도, 모두가 다 빠져나간 텅빈 무대.
그곳에서 한 배우가 무대인사를 한다.
'지금부터 단 세사람만의 관객을 위한 이영진의 모노드라마를 시작하겠습니다.
제목은 햄릿, 연출 이영진, 각색 이영진, 연기 이영진.
이 연극은 시간제한이 없습니다. 관객의 기립박수가 있을 때 까지 계속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연극을 시작하겠습니다. 재밌게 봐주십시오.'

차라리 절규에 가까운 무대인사를 마치고, 
잠시 호흡을 고르고 감정이입을 마친 이후 20여분 동안 한 배우의 일생의 혼이 실린 연기가 시작된다.   


반평생을 자신의 온 열정을 다 바쳤으면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비애.
인정받을 기회조차 제대로 얻지 못하는 진한 아쉬움.
가족에게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당당한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려 했던
단 한번의 기회를 상실하고 깊은 허탈감과 무력감에 빠져있다가,
아버지의 연기를 보고싶다는 아들을 위해
관중이 빠져나간 무대에서 단 세사람의 관객을 위해 10년 이상을 별러오던 배역을
혼신의 힘을 다하여 불꽃처럼 연기하는 마지막 20여분의 무대는
감동을 넘어 숭고하기만 했다.

거기에는,
한 배우의 열정과, 그토록 마음 속 깊히 갈망하던 한 배역에 대한 집념이 담겨 있었고,
가장으로서 가족에게 떳떳하고 싶었던 한 남자의 슬픈 회한의 혼이 서려 있었다.

주인공 영진이, 딸 진경에게 던진 한마디.

'한번의 역할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은 삼류가 아니야.  적당히 두번 세번 하는 것이 삼류인거야... ...'      

2006년 새해 첫날, 내 무딘 영혼을 날카롭게 찌른 금언(金言)이었다.






공연직전 자리를 잡은 아이들.

새해 첫날에 함께 좋은 공연을 보게되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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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이 12월 30일 금요일.
2005년도 이제 이틀 남았다.
금년엔 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이 토요일이라,  정말 한해가 깔끔하게 끝나는 기분이다.
사실은 각자의 일이 깔끔하게 끝나야 하는데...

오늘이 각 기업체에서는 종무식을 하는 날이지만, 
내 경우에는 아직 근무일이 하루가 남았다.

금년 한해 난 뭘했나... 하고, 나름대로 생각을 해본다.
내 개인의, 그리고 가족의 주요 뉴스라고 할까...


우선,  멋모르고 시작한 식당이 아무래도 2005년 나의 가장 큰 이슈다.

많은 어려움과 손실이 있었지만, 그래도 1년을 버텨온게 스스로는 꿈만 같다.
그래도 연말 마무리가 잘 되고 있는거 같아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게 된다.

또한 샤브미를 운영하면서, 전혀 생소했던 분야에도 조금씩 안목을 높일 수 있었고,
샤브미 식구들을 통해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도 내겐 좋은 경험이다.

물론 샤브미를 드나드는 사람들과 접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법을 익힌 것도 좋은 교훈이다.
알게모르게 이 근처 사람들과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고,
눈인사라도 나눌 수 있게된 것도 소득이겠지.


둘째, 집사람의 학교 이전.

집사람은 공립학교 교사인지라 5년마다 학교를 옮긴다.
금년 초에 강남의 역삼중학교에서 강북의 금호중학교로 전근을 갔는데,
처음엔 무척 고생을 하는거 같았다.
출퇴근시간도 그렇지만, 그보다 아이들의 환경수준이 워낙 차이가 나서
그것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것이 참 힘들었던거 같다.

그래도 방학하는 날, 아이들이 십시일반 어려운 용돈을 모아 건네준,
강남에서도 못 받아본 내의 선물을 받고는, 1년간 아이들에게 쏟은 마음이 전해진거 같아 기쁘다고
무척이나 흐뭇해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쁘다.


세째는, 딸아이의 성취.

금년에 대학에 진학하여 어려서부터의 희망대로 연극연출을 공부하게된 딸아이는
금년 한해를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방학도 없고, 잠도 없고, 가족도 없고, 그리고 개인시간마저 잃은 채, 오로지 일에만 몰두하더니
이제는 선배들이 서로 잡아끄는 스탭으로 인정받는거 같다.

1학기 때는 성적은 등한시한 채 일에만 끌려다니더니, 그래도 2학기 때는
학점관리까지 해가며 학창시절의 균형을 잡아가는거 같아 다행이다.


네째, 아들의 다양한 이색경험과 성장.

작년 년말 미국에서 돌연한 폭력사고에 휘말려 재판까지 받은 아들녀석.
그래도 혼자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4개월여에 걸친 재판까지 해가며
자기가 저지른 일을 스스로 마무리하고 들어온 아이가 한편으론 대견하다.
본인에게도 좋은 경험이 됐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군입대를 위해 귀국 후에도, 군말 안하고 샤브미에서 일을 하며 그만둔 직원의 공백을 훌륭하게 메꿔줬고,
자기가 희망하던 카츄사에 합격하여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있다.


다섯째, 임대업에 대한 공부.

금년 한해동안 가장 내 골치를 썩혔던 일은 빌딩의 임대였다.
부동산임대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전혀 없었던 나로서는 정말 힘들었던 과정이었다.

경제상황에 따른 환경변화와 시장논리를 모른 채 부동산 컨설팅회사의 원론적인 얘기만 믿고 따르다
숱한 시행착오를 범하다 보니 이제야 뭔가 깨달음(?)이 온다.
아마 처음부터 이런 흐름을 이해했다면 벌써 임대가 완료됐을텐대,  아쉬움이 많은만큼 많이 배운 기간이었다.


여섯째, 내가 운영하는 동호회의 최우수동호회 3연패.

사실 이것은 좀 쑥쓰러운 일이다.
내가 잘 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라기보다, 길 가다 주운 불로소득과 같은 느낌이 드니까...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특별한 노력없이도 3연패를 했다는 것으로써
우리에게 이만한 저력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 성과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여러가지 사정으로 동호회에 가장 부실했던 1년이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민망하고 회원들에게도 송구스러운 한해가 되고 있다.


일곱째, 블로그의 개설

샤브미에 붙어 있느라 골프에 시간을 할애하기가 어려워지면서,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궁여지책으로 손을 댄 것이 블로그였다.
그냥 하루하루를 맹숭맹숭하게 지내기도 그렇고, 뭔가 낙서라도 하고싶어 블로그를 개설하게 됐는데,
당초 의도했던 것 보다 많은 소득이 있었던거 같다.

하루하루의 일상과 스쳐가는 생각을 정돈할 수 있었던거 외에,
많은 사람들의 몰랐던 생각과 생활을 느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진에 대해서도 좀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뜻하지도 않게 샤브미의 인지도를 높이는데도 한 몫을 단단히 해주었다.


여덟째, 인간관계의 외연 확대.

살아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기존의 알던 사람과 더 친밀해진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금년에도 행복했던 한 해였던거 같다.

식당을 하면서 자주 들르는 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친분을 쌓게 되고,
블로그를 통해 미지의 사람들과도 서로 교감을 나누고,
또 순번제이긴 하나 고등학교 동기회의 작은 역할을 맡다보니
소원했던 친구들과의 잦은 연락을 통해 새로운 정을 쌓기도 하고,
동호회에서도 새로운 정을 많이 쌓은 한해였다.


한참을 적은거 같은데, 다시 읽어보니 별 것도 아니네...

그런거보면 한해가 별로 의미가 없었던거 같기도 하고,
그냥 좋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특별한 문제없이 무난한 1년이 됐던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시간이 참 정신없이 빨리 갔다.

내년에도 이렇게 지루하지 않은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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