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기/2018 프랑스 독일 벨기에 짬짬이'에 해당되는 글 77건

  1. 2018.08.09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하는 네비게이션
  2. 2018.08.08 미련이 남는 베기의 잔상
  3. 2018.08.07 17년 만에 다시 만난 Pilatus 정상
  4. 2018.08.06 필라투스(Pilatus)를 오르는 곤돌라 여행
  5. 2018.08.05 카펠교보다 기억에 남은 루체른 아줌마의 고마움
  6. 2018.08.04 리기산 산간마을
  7. 2018.08.03 비츠나우 등반열차로 오르는 리기산 정상
  8. 2018.08.02 은근히 빠져드는 베기의 종소리 2
  9. 2018.08.01 베기에서 만난 루체른 호수
  10. 2018.07.31 화장실 바우처가 주는 재미, 독일의 고속도로 휴게소
  11. 2018.07.30 아름답지만 어두운 사연의 노이슈반스타인 城
  12. 2018.07.29 배산임수의 전원마을 홉펜(Hopfen)
  13. 2018.07.27 뜻하지 않게 즐감한 홉펜의 결혼식
  14. 2018.07.27 비가 개인 로텐부르크
  15. 2018.07.25 크리스마스의 도시 로텐부르크
  16. 2018.07.23 몽환적인 로텐부르크 야경
  17. 2018.07.21 비로 인해 아쉬움이 컸던 로텐부르크 城內 2
  18. 2018.07.20 정성이 감동을 준 Hotel Goldenes Fass
  19. 2018.07.18 레드옥스로 이어진 17년 전 제펠하우스의 인연 2
  20. 2018.07.16 하이델베르크의 착한 삼시세끼
  21. 2018.07.15 Steady Hot Place 하우프트 거리(Hauptstrasse) 2
  22. 2018.07.13 [네카어 강]과 [카를 테오도르 다리]
  23. 2018.07.08 하이델베르크 성 안의 놀라운 두 가지
  24. 2018.07.08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배인 [하이텔베르크 성]
  25. 2018.07.06 인연을 생각케 해준 하이델베르크 한국관
  26. 2018.07.04 새가슴을 만난 오픈카
  27. 2018.07.03 독일 궁전 최고의 정원을 자랑하는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
  28. 2018.07.03 슈투트가르트의 유적
  29. 2018.07.01 슈투트가르트의 중심 [쾨니히 거리]
  30. 2018.06.30 깔끔하고 조용한 슈투트가르트의 밤


유럽에서의 두번 째 자동차 투어.
2년 전 처음 자동차 투어 때 보다는 확실히 낫다.
일단 마음이 편하다. 자동차의 여러 기능도 쉽게 익숙해진다.
옆 좌석의 아내역시 안정감이 느껴진단다.

2년 전 네비에 지원됐던 한국어 버전은 없지만, 자꾸 듣다보니 길 안내의 영어 표현도 익숙해지고 나름 재미가 있다.
하지만, 좌회전은 여전히 눈치를 살피게 되고, 우리와는 표시가 다른 중앙선과 자전거 전용도로, 버스 전용차선에는 신경이 쓰인다.

그런거야 집중을 하면 된다지만, 집중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낯선 지역 네비게이션 안내의 함정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실시간 교통안내 설정시 탐색 경로가 수시로 바뀐다.
좌회전 진로표시를 보고 좌회전하는 순간 네비 화면의 진로가 직진으로 바뀐다.
그리고, 경로 재탐색을 하기 전에 갈림길이 나오면 난 어디로 핸들을 꺾어야 하나..


그보다 당혹스러운 경우는, 긴 터널 통과 직후 갈림길이 나올 때.

긴 터널에 진입하면 위성통신 장애로 인해 GPS가 차량위치를 못 잡는데, 터널 통과 직후 갑자기 예상치 못한 갈림길이 이어질 경우
네비가 다시 현위치를 잡기 전이라 방향 안내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상당히 당황하게 된다.
특히, 고속도로에서 그런 상황을 맞을 경우, 달리는 속도로 인해 우물쭈물 고민할 틈도 없다.
한번 방향을 잘못 잡아 20km 넘게 뺑뺑이를 돌고나니 나름의 대처법이 생긴다.
터널 진입 직전에는 힐끗 네비 화면의 전체적인 진로를 미리 스캔하여 머리 속에 담아두게 된다.
터널 통과후 방향이 대충 우측인지, 직진인지..

가장 짜증나는 건 네비가 잡은 진로에 공사구간이 있는 경우다.
공사중이니 그 방향으로 갈 수 없어 지나쳐 가면 경로 재탐색으로 뉴턴을 시킨다. 그리곤 다시 그 방향으로.
유턴 안내를 무시하고 계속 직진하면 네비도 계속 전방 몇 백 미터에서 유턴하라고 고집한다.

이쯤되면 슬슬 짜증이 난다.
무시하고 계속 달리니 턱~하니 뜨는 메시지.
"Can not calculate" 헐~ 이 녀석도 한 성질하네.. 텃세?
이거.. 로직을 언 놈이 만들었길래 이 모양이야~

차를 세우고 구글지도를 탐색하여 대충 방향을 잡고 달리다 네비에 목적지 설정을 다시 하니 그때서야 진로를 잡아준다.
독일의 인공지능에게 한국의 인간지능이 많이 가르쳐주며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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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펠교를 다녀오던, 루체른에서 베기로 돌아오는 길에 네비가 호수를 끼고 도는 길이 아닌 고속도로로 안내해 실망이 컸다.

필라투스에 오르기 위해 다시 루체른을 찾으며 그 아쉬움이 떠올랐다.

'오늘도 루체른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 고속도로로 안내하겠지..'

생각이 이리 미치자 나도 네비의 고집을 꺾기 위한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


베기에서 루체른으로 들어가며 호수변 길로 접어들었다.

루체른은 길이 복잡해 호수도로 진입구를 찾기 어렵지만, 베기는 도로가 단순하여 호수도로 진입이 쉽다.

그리고, 루체른 시내에 근접한 호수도로 끝 부분에 다달았을 때 그 지점을 네비에 등록한 후, 돌아올 때 등록한 지점을 검색한다.

네비가 그곳까지 안내를 할테고, 그곳부터 베기까지 호수의 정취를 맛보며 여유롭게 드라이브.




이제 3박 4일의 짧은 스위스 여정을 마무리하고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

세 번째 스위스 방문이지만 이번 스위스의 느낌은 두 가지.


먼저 언급한 바와 같이 루체른 아줌마의 쉬 잊지 못할 친절과 배려가 그 하나.


두 번째는, 내가 의아해 했던 스위스의 환경이다.
앞서 카펠교 다리를 품고 있는 루체른 호수 수질에 대한 실망을 언급했지만, 내가 정말 실망했던 게 하나 있다.

난 스위스의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쏟아질 줄 알았다.
스위스는 세계 최고의 청정지역 중 하나라고 믿어 왔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밤 하늘을 둘러봐도 별이 별로다.

아내는 그런다.
"관광지라 지상의 불빛이 워낙 강하게 하늘을 비추니 별이 안 보일 수 있지."
듣고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과학적으로 일종의 간섭효과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스위스 밤하늘은 나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이틀 연이어 루체른을 오가며 지나던 길 중 눈에 띄는 곳이 있었다.
사실 낯선 지역을 운전하다보면 네비화면과 안내멘트에 집중하느라 주변이 안 보이는 경우가 다반사임에도 확 눈에 들어온 곳.
스위스를 떠나며 꼭 다시 보고싶어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향하는 길에 다시 들렀다.


다듬어지지 않아 산만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산만함에서 꾿꾿한 자연이 느껴진다.




호수와 함께 그리움으로 남을 베기의 잔상이다.



슈투트가르트로 가는 고속도로 휴게소 주차장.

한 남성이 함께 산책을 즐기던 커다란 개를 데리고 와 차의 해치백을 열고 개에게 뭐라 한마디 하니 개가 냉큼 차에 오른다.


그 모습을 보며 든 자괴감.

개도 독일어를 알아듣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나는 뭐냐...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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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만에 다시 찾은 필라투스 정상은 감회가 새롭다.
2001년 겨울 필라투스와 17년이 지난 2018년 봄 필라투스는 같은 듯 다르다.
눈 덮힌 모습은 변함이 없지만, 시야에 와닿는 눈의 높이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겨울엔 주변이 온통 내 눈높이로 하얗었는데, 지금은 눈이 아래로 보인다.


오른쪽 원형 건물은, 케이블카 정류장과 호텔과 레스토랑, 카페에 전망대까지 있는 말 그대로 종합 Complex.



원형건물 5시 방향 눈 덮힌 지붕의 작은 건물 앞에서 나는 나팔 소리.



17년 전에는 보지 못한 스위스 고유의 목관악기 알펜호른.

호흡을 밀어넣어 저 긴 관을 통해 소리를 내려면 폐활량이 엄청 좋아야 할 거 같은데, 연주하시는 노인분이 대단하시다.

겨울엔 긴 관이 얼어 연주를 못 할 거 같다.


저 분의 발 아래 층에서는 또 다른 흥겨움이 진행중이다.



경쾌한 요들리듬이 가미된 스위스 민속음악에 맞춘 폴카 퍼포먼스.



연주 기는 기타를 제외하고 모두 어코디언 비슷하면서도 형태가 조금씩 차이가 있어 보인다.


계절적 차이겠지만 알펜호른 연주와 폴카 퍼포먼스는 2001년 겨울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반면에 계절불문 17년 전과 변함없는 것도 있다.



세월이 멎은 듯 필라투스를 지키며 관광객을 맞는 까마귀들.

17년 전에도 궁금했지만, 도대체 저 까마귀들은 어디서 서식을 하며, 이 雪山에서 어떻게 연명을 해나가는지..

뭔가 생존방법이 있으니 17년 전의 까마귀들이 지금의 후손들을 키우지 않았겠는가.


뒤에 보이는 PILATUS=KULM은 호텔과 레스토랑이다. 그러니까, 이 산 꼭대기에 호텔이 두 개나 있다는 거.

지금이야 봄이니 크게 이상할 게 없지만, 저 건물 앞에서 겨울에 안락의자에 앉아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이 무척 이색적으로 보였었다.




호텔 뒤 정상 능선의 십자가도 17년을 버티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겨울임에도 호텔 주변은 바람도 없고 기온도 괜찮았는데, 이 십자가 위치에 오르자 살을 에는 듯한 엄청난 강풍과

뚝 떨어진 체감온도에 놀랐던, 2001년 겨울의 경이로웠던 체험이 생생하다.




원형 건물 전망대는 안에서 설경을 감상하기 편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보이는 밖의 雪景은 이렇다.


저 白雪을 디뎌보고픈 욕구를 느낀다.

실제 어디까지 빠질까...



한 가지 아쉬웠던 건,

17년 전에 한글도 있어 뿌듯했던 필라투스 안내 입간판이 보이지 않는다.

왜 치웠을까..



2001년 12월에 있었던 입간판.



너무 늦으면 내려가는 케이블카가 붐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적당한 시간에 내려가야 편하다.


내려오면서 든 생각.

이 높은 암산(岩山)에 이런 시설을 만든 인간의 능력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필라투스에서 내려와 주차료 정산을 하려는데..

어~? 리기산에 오를 때 비츠나우 주차장에서는 체크카드가 먹혔는데, 여기 주차요금 정산기에는 카드 삽입구가 없다.

only cash. 이걸 어쩌나...

곤돌라 티켓 판매소 직원에게 현금이 없어 주차료 정산을 못 하는데 어째야 하냐고 물으니, 카드를 달라며 자기가 주차료 정산을 해준다.

전날에 이어 루체른 아줌마들 덕을 톡톡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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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도시를 다니다 보면 시내 모습은 거의 대동소이하다.
한자표현 그대로, 특별한 명소 몇 군데(小異)를 제외한 나머지 모습은 비슷하다는(大同).
그런 이유로, 루체른 시내를 돌아보는 것보다 Pilatus를 택했다.

필라투스를 오르는 방법은 등산열차와 로프웨이가 있지만, 계절에 따라 운행일정이 다르다.
세계 최대 경사각인 등반각도 48도로 알프나흐슈타트에서 필라투스쿨름으로 가는 등산열차는
5월 ~11월에만 운행하기 때문에, 우린 루체른의 크린스(Kriens)에서 로프웨이를 이용하기로 했다.
크린스에서 4인용 곤돌라로 프래그뮌테그(Fräkmüntegg)까지 오른 후,
그곳에서 정상까지는 20~30인이 탑승 가능한 케이블카로 이동하는 방법.

곤돌라 탑승장인 Kriens PB로 가니 바로 옆에 Koreana라는 한식당이 있다.
필라투스에서 내려와 이용하면 되겠다싶어 안을 살피니 영업을 안 하는거 같은데,
이날만 쉬는건지, 아예 폐업을 한 건지 잘 모르겠다.

곤돌라는 로프웨이를 통해 계속 돌고 있으므로 티켓을 구하면 바로 탑승이 가능하다.
케이블카 환승까지 포함된 요금은 성인 72스위스프랑. 여기서는 호텔게스트카드 할인이 안 된다.
케이블카 환승시 티켓 제시를 해야 하니 티켓은 내려올 때까지 보관해야 한다.



곤돌라가 탑승장을 출발하여 고도를 높혀가자 서서히 루체른 시가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곤돌라나 케이블카의 구조에 궁금한 거 하나.

왜 케이블과 본체를 연결하는 것이 곡선일까?

직선으로 연결하면 재료비도 덜 들고 균형 잡기도 더 쉬울 거 같음에도, 굳이 곡선으로 한 데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가파른 경사면에서 뛰노는 저 양들의 우는 소리가 허공에 떠가는 곤돌라 안에서도 들린다.
대기가 맑은 건지, 이 동네 양들의 울림통이 큰 건지..



겨울에 쓰일 나무를 잘라 가지런히 쌓아놓은 산간의 민가 모습이 새삼 이채롭다.



보기에는 상당히 평화롭게 보이지만, 저런 곳에서 생활하려면 여간 바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저렇게 살고싶다 해서 누구든 아무나 할 수 있는 삶은 아니라 생각된다.

저 아름드리 나무는 어디서 어떻게 끌어왔는지..



산 중턱까지는 의외로 평원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




프래그뮌테그까지 오르는 곤돌라의 중간역 Krienseregg.

2001년 겨울에 왔을 때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눈보라가 심해 곤돌라 아래 이런 곳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많은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


휴식도 취할 겸 이곳을 잠시 들러보고 싶다면, 오르는 길에 들르길 권한다.

오를 때는 빈 곤돌라가 많아 이곳에서 언제든 올라가는 곤돌라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나,

내려올 때는 정상에서 관광객이 몰려 내려오기 때문에 중간에 곤돌라 타기가 쉽지 않다.

특히, 커플 여행객의 경우 4인용 곤돌라에 둘만이 호젓하게 타는 낭만을 기대할텐데,

오를 때는 얼마든지 선택이 가능하지만, 내려오는 빈 곤돌라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마냥 기다리다 결국 합승을 해야 하는데, 늦은 시간에는 합승 자체도 힘들지 모른다.




진정한 등산 마니아.




곤돌라의 종착지인 프래그뮌테그에서 필라투스 정상을 오르는 케이블카를 배경으로 다들 인증샷을 담는다.

우리도 모처럼 동참.



여기서 저 끝에 보이는 필라투스 정상까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15분 주기로 운행하는 케이블카가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다.




위에서 보니 산악 도로망이 생각보다 잘 정비되어 있다.




필라투스 정상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내리기 직전 바라본 루체른 호수.


잠시 후 마주할 필라투스 정상의 모습은 17년 전과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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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산에서 내려와 숙소로 돌아오니 오후 5시.

해는 길고, 베기에서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루체른으로 향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카펠교는 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스시집 인근 도로변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긴 했는데, 요금 정산기가 참으로 묘하다.
영어는 없지만, 대충 1시간에 2프랑이고 평일은 최대 2시간까지만 주차 가능하다는 얘긴데,
신용카드 사용이 안 되고, 오로지 스위스프랑 코인만 사용 가능하다.


기계 표면과 액정화면의 숫자는 무얼 의미하는 걸까..


찬찬히 주차구역과 주차요금기를 둘러보니 감이 잡힌다.

숫자는 도로 바닥에 적힌 주차구역 번호.

자기가 주차한 구역의 숫자를 누른 후 필요한 시간만큼의 코인을 넣으면 되는데..

문제는, 내게 스위스프랑이 전혀 없다는 거.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며 서성이는데, 옆의 문이 열리며 중년여성이 나온다.

다짜고짜 "내가 스위스프랑이 없는데, 신용카드 사용이 안 되느냐?"고 물으니 기계를 들여다보고는 카드는 사용이 안 된단다.

그러더니 난감해 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자기 지갑을 꺼내 2프랑을 넣고 시간 확인을 하더니,

1시간은 짧겠다고 생각했는지 2프랑 코인을 하나 더 넣어준다. 두 시간 주차 가능.

얼결에 벌어진 일에 내가 연신 고마움을 표하자,

환한 미소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고 루체른에 온 걸 환영한다며 즐거운 시간 보내란다.


코인으로 하면 얼마 안 되는 금액같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5천원이 넘는 돈이다.

나라면 5천원을 넣어줄 수 있을까.. 지폐와 동전에 대한 느낌의 차이도 무시 못 할 거 같다.

어쨌든, 스위스프랑이 없다는 말이 결국 "한푼 줍쇼~"가 돼버린 셈인데,



아파트로 추정되는 현관문 옆에 부착된 이 입주자 중 계실, 미소가 기품있었던 루체른 아줌마.

"정말 고마웠어요~^^"


루체른의 호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스시집에 들어가 스시 외에 라멘은 없느냐 물었더니, 자기네는 오로지 스시 뿐이라며,

문 밖에 까지 나와 라멘 파는 일식집을 찾아가는 방향을 알려준다.

헐~ 루체른에 대한 호감 급상승~




저녁을 먹고 찾은 카펠교는 고색창연한 지붕과 함께 건재하다.

카펠교가 딛고 있는 루체른 호수 지류의 물도 맑았지만, 왠지 그 투명도가 예전만 같지 않은 느낌이라 아쉬웠다.

2001년에는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았던 기억이 있는데..

스위스 정부가 됐든, 루체른 자치정부가 됐든, 수질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해야 할 듯하다.



다리 천정에 있는 판넬화들은 관리를 하는지 색감이 퇴색되지 않고 여전하다.




중앙 다리 왼쪽의 베이지색 건물은 프란치스키너 성당.

다리 오른쪽 건물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2001년 배낭여행시 묵었던 유스호스텔이 있었던 거 같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면 퐁듀 레스토랑이 있었고.




예수의 성당.




카펠교 북단.

상층의 창문 처마 위에 세워진 깃봉 같은 장식이 재밌다.




카펠교 남북단 주변을 돌고 주차구역으로 돌아와 차를 빼려다 문득 궁금해졌다.

주차시간이 지나면 주차요금기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2시간이 지날 때까지 10분여를 기다리니,


내가 주차했던 11번에 검은 줄이 하나 생긴다.

그러니까, 12번은 주차가 정상적으로 진행중이고, 11번은 정산시간이 조금 지났고, 나머지는 정산시간이 많이 지났다는 표시.

그럼, 내가 떠난 후 11번은 어찌 변할까?

그걸 미처 확인 못했네...


베기로 돌아오는 길, 네비에 숙소를 마킹하고 안내경로를 따라가다보니 고속도로로 몰고 간다.

이런 젠장~ 빠른 길로 안내한다고 그런 거 같은데, 거리는 더 멀고,

무엇보다, 난 호수와 접한 도로를 따라 가며 루체른 호수의 정취를 맛보고 싶었다고~~~


아내가 그런다.

루체른 아줌마 아파트 현관 앞에 꽃이라도 놓고 올 걸 그랬다고.

나역시 고마움의 표시를 하고픈 마음은 컸는데, 그 꽃을 누가 갖고 갈 줄 알고...

고마운 배려..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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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 녹색의 나무들과 어우러진 건물들의 빛 바랜 색감들,

그리고 빨강과 노랑의 포인트가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적한 산간 역의 고즈넉함이 너무 예쁘고 맘에 들어서...




눈과 빛바랜 건물 색조의 조화가 운치있게 느껴져 오랜만에 흑백으로 몇 컷 담아봤는데 느낌이 괜찮다.


내친 김에 몇 컷 더.




같은 곳, 다른 느낌.



같은 피사체라도 흑백과 칼라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지만, 가로그립과 세로그립의 느낌 역시 다르다.

가로그립의 넓은 시각이 광활하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면,



세로그립은 깊이있는 느낌이 든다.

개인적으로 세로그립의 결과물을 좋아하면서도,

여행 포스트는 다양하고 동적인 모습을 넓게 담을 수 있는 가로그립 사진을 많이 올리게 되는데,

이것도 뷰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다.

PC 모니터 등 웹을 이용할 때는 가로그립 사진이 올리기도 편하고 시인성도 좋지만,

요즘 대세인 모바일로 볼 때는 오히려 세로그립 사진이 디테일이 산다. 


... 사진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문외한이 갑자기 무슨 행세를 하는가...

하던 리기산 이야기나 계속 하자. 


계속 걸으니 리기산 중턱에 자리잡은 산간마을이 보인다.



모두가 개인별장은 아닐테고, 내 능력부족과 무지의 소치겠지만, 늘 이런 외진 곳 거주자들의 생계수단이 궁금하다.


그런 나의 궁금증에 건네준 힌트.



내가 동생과 함께 만든 법인명이 BNB다. 동생과 내 이름의 끝자 영문 이니셜을 딴 것인데,

BNB가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Better & Best 라고 둘러치곤 한다. 꿈보다 해몽.

그런데, 스위스의 산간마을에서 뜬끔없이 BnB를 보니 엄청 반갑다.

저 BnB는 뭐냐..  가까이 가 들여다보니 Bed and Breakfast. 이런 곳에서의 숙박도 재밌을 거 같다.

홈페이지 주소도 있다. www.bnb.ch





누가 어떤 의미로 이런 곳에 마리아와 예수를 모셨는지...

세상엔 흥미로운 게 참 많다.




모바일 뷰를 위해 세로그립 하나 더.




이 산간마을에서 가장 모던한 느낌의 집.

주인의 성품과 취향이 그대로 드러난다.



Rigi Kulm에서 걸어내려와 중간지점 쯤 되는 Rigi Kaltbad First 역에서 아이를 동반한 한국 젊은 부부를 만났다.

국내 某 기업의 싱가폴 주재원으로 있는데, 3개월여 강도높은 근무에 2주간의 휴가가 주어져 유럽을 돌고 있단다.

3개월간의 근무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으나, 1년에 4~5일 휴가 쓰기도 눈치보였던 시절과 비교하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들에게도 큰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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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기(Rigi)산에 오르는 방법은 두 가지다.
비츠나우(Vitznau)에서 등반열차를 이용하거나, 베기에서 곤돌라로 올라가거나.

숙소가 베기인데 멀리 갈 이유가 없다.
숙소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의 곤돌라 리프트승강장에 도착하니, 곤돌라는 4월 20일부터 운행한단다. 이런...

그럼 5km 떨어진 비츠나우로 가야 하는데,
왕복 10km를 걷기에는 1월초에 골절을 당했던 아내의 발목상태가 아직은 맘에 걸려 버스를 이용해야 하나..
스위스는 화폐단위가 유로가 아닌 자국의 스위스프랑.
짧게 거쳐가는 코스라 신용카드를 사용하려고 환전을 하지 않았는데,
버스요금을 카드로 받진 않을테고, 그럼, ATM에서 얼마를 인출하나..

이리저리 머리 굴리는 중 아내의 일갈.
"여보~ 우리 차로 가면 되잖아~"
아~ 우리 지금 렌트카로 다니는거지...
렌트카를 숙소 바로 앞에 뻗쳐놓고 버스요금 인출 걱정을 하고 있으니..
대체 생각이 어디 꽂힌 거야..

리기산에 간다 하니 호텔 직원이 등반열차 할인이 된다며 호텔 게스트카드를 만들어 준다.
이리 고마울데가..



루체른 호수와 접헤 있는 이 곳은 비츠나우의 유람선 승선장이고,

리기산에 오르는 등반열차 출발지점은 이 비츠나우 승선장 맞은 편에 있다.


유람선에서 내려 바로 등반열차로 환승이 용이하다.



왼쪽 사무실에서 등반열차 티케팅을 하며 호텔에서 만들어준 게스트카드를 보여주니 실제 할인을 해준다.

할인율이 얼마인지 물어보진 않았지만, 할인을 받은 티켓요금이 57.60스위스프랑. 유로로는 52.35유로.

티켓을 받아보니 뒷면에 이런게 있다.


딱 3개국어 중에 당당히 낀 한글.

한국인들이 많이 온다는 건지, 어지간히 많이 먹는다는 건지..


리기산 등반열차는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올라갈 때 32분, 내려갈 때 40분이 걸린다.

오를 때는 그저 씩씩대며 오르면 되지만, 내려갈 때는 안전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서행하는 듯.



등반열차 왕복티켓으로 정상인 Rigi kulm까지의 중간 정류장 어디서든 타고 내릴 수 있어 중간중간 주변을 돌아보는 것도 가능하다.



등반열차의 좌석은 시트가 천으로 씌워진 의자와 나무의자가 있다.

대부분의 승객은 쿠션감이 있는 천의자를 선호하는데, 이 나무의자에 의외의 반전이 있다.

의자 밑에 온수관이 있는지 의자가 온돌처럼 따뜻하다.



등반열차 레일 가운데의, 일반 열차 레일에는 없는 독특한 레일.

경사가 심한만큼 열차의 미끄럼 방지를 위해 열차 바닥과 연결되는 일종의 체인 역할이 아닌지.




등반열차의 종착역이자 정상인 Rigi kulm.

기념품과 간단한 스낵을 판매하는 정상 카페에서 중국 관광객들은 컵라면을 가져와 뜨거운 물만 구매하여 끼니를 해결한다.



저 파란색 등반열차는 비츠나우 맞은 편인 골다우 방면으로 운행하는 열차인 듯.


리기산 정상은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바람도 없다.



깃발로 보아 의료시설을 갖춘 구호소 같기도 하고, 외부에 테이블이 많은 걸 보면 카페 기능도 있는 거 같고.

눈으로 벽을 쌓은 듯한 제설작업이 재밌는데, 적설량이 테이블 높이와 비슷하다.




생명이 존재하는 곳이면 어디든 구원의 메신저도 존재한다.



내려갈 때는 눈덮힌 리기산의 풍광을 즐기면서 중간 지점인 Rigi Kaltbad First까지 걷기로 했다.



걸어서 내려가는 길은 중간중간 반쯤 녹은 눈으로 미끄러운 곳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평탄하니 걸을만 하다.



그리고, 정작 정상에서 보지 못했던 운치있는 장면도 곳곳에 보이니, 여유롭게 걸어보는 것도 좋다.



 

곳곳의 장면은 이어서...  (To be continued..)



:


숙소 근처 마트를 찾았더니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문을 닫았다.

오후 6시면 영업 종료.


2년 전 노르웨이에선 6시 이후 알콜음료를 안 파는 게 신기하더니만, 여긴 아예 영업 끝.

그래도 될만큼 여기 소득수준이 높나?


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세 시간만 영업이다. 세 시간 영업도 우리로선 의아하지만,

서구에서는 일요일 오전에는 거의 성당이든 교회든 나가는 게 일상인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가 보다.

아닌가.. 이 마트 주인이 무신론자인가...?



유럽의 곳곳에는 성당과 교회가 많다.


그런만큼 가는 곳마다 종소리를 자주 듣게 되는데, 베기는 종이 울리는 패턴이 좀 색다르다.



어느 순간 종소리가 쉼없이 들리는 듯하더니, 얼마 안돼 또 들린다.

그리곤 또 얼마 뒤... 수시로 타종이 이어지는데, 듣다보니 이 종소리에 루틴이 있다.


매 정시에는 그 시각만큼의 종소리가 울린다. 1시면 한 번, 6시면 여섯 번.

그리고, 매 15분마다 또 종이 울리는데, 15분엔 한 번, 30분엔 두 번, 45분엔 세 번이다.


그럼, 1시 2시 3시 시각과 15분 30분 45분은 어떻게 구분할까..

이 사람들도 생각이란 게 있을텐데, 멍청하게 듣는 사람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그냥 마구 종을 쳐대겠나.

몇 번 들어보니, 시각을 울릴 땐 톤과 멜로디가 다소 다른 종소리를 세 번 타종한 후, 시각을 알리는 종을 울린다.

군대용어로 구호를 전달할 때 예령후 본령을 전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15분이 "땡~"이라면, 1시는 '이 타종은 시(時)을 알리는 타종' 이라는 의미로 "딩~ 딩~ 딩~ 땡~~" 이런 식이다.

요거.. 듣다보면 은근 재밌고 중독성도 있어 다음 타종이 기다려지기까지 한다. 아울러 시간 개념이 생긴다.

'어.. 벌써 15분이 갔네..' '어~ 또 15분이 지났어?' 이런 식이다.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비츠나우 방면으로 호수를 끼고 걸었다.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가옥 형태, 언뜻 일본풍이 느껴진다.



어둠을 품는 루체른 호수의 모습이 무척 운치있다.




자꾸 기다려지는 베기의 종소리에 빠져드는 사이,

어둠도 루체른 호수에 빠져들었다.




:

Weggis(베기)에서 뜻밖의 횡재(?)를 하게 된다.

퓌센에서 베기로 이동중에 예비일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어디선가 하루를 묵어야 하는데,
Weggis까지 곧장 왔으니 이왕이면 예약한 숙소에서 하루 더 숙박을 하는 게 편하겠다 싶어 미리 예약한 호텔로 갔다.
마침 일요일이라 주말 이용객들이 빠져 객실은 충분히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이게 오산.

프론트에 가서 월요일부터 2박 예약을 했는데, 하루 먼저 도착했다"고 하니,
객실이 완전히 찼다며 옆 호텔을 이용하면 어떠냔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자기가 옆 호텔에 문의해봐도 되겠냐고 묻고는,
지배인이 직접 나를 데리고 옆 호텔로 가서 자기들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대충 "내일 우리 호텔 예약자가 하루 먼저 왔는데, 우린 방이 없으니 너네 빈 방 있느냐"는 내용 아니겠나.

옆 호텔 지배인이 비용은 어느 정도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그 호텔의 등급을 모르는 상태에서 잘못 말하면 실없는 놈이 될 거같아,
사전 예약 호텔 지배인에게 "너네 비용 수준"이라 말하니, 되레 내게 자기 호텔 얼마에 했느냐고 되묻는다.
하긴.. 인터넷 예매사이트의 금액을 일일히 알 수도 없겠지
어찌됐든, 예약금액을 전해들은 옆 호텔 지배인이 내게 "너 참 운이 좋다"며 마침 좋은 방이 있으니 주겠단다.
정말 고마운 양 쪽 지배인. 원래 예약했던 호텔의 지배인은 우리에게 키다리아저씨였다.

키다리아저씨의 배려 끝에 들어간 옆 호텔의 객실은 내 자유여행 경험상 최고 수준이었다.


루체른湖를 바라보는 전망도 좋지만,

객실과 로비, 레스토랑 및 조식 등의 설비와 직원들의 서빙 수준 등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진 호텔이다.



우리 방의 테라스만 해도 훌륭한데, 바로 아래 층의 저 넓은 테라스를 사용하는 객실의 가격은 얼마나 할라나..



모든 것이 마음에 드는 이 호텔 조식 품목 중 하나.

양봉한 꿀을 아예 통째로 내놓았다. 꿀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원단으로 세팅한 호텔은 처음이다.



서두에 횡재를 했다는 의미는, 다음 날 당초 예약된 호텔에 들어가서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황당하게도 객실의 욕실에 불이 안 들어온다.

프론트에 이야기하니 내일 아침에 수리가 가능하다고. 그럼 오늘 밤 샤워는 어쩌라고..

담당자가 자기도 오늘 처음 근무하는 날이라며 양해를 구하는데, 중간 과정을 이야기하려면 글이 길어지니 생략하고,

컴플레인을 제기해서 윗 등급으로 바꿔준 객실은 욕실 문짝이 틀어져 문이 안 닫힌다. 뭐 이런 X같은 경우가...


같은 가격에 하루는 왕의 침소에서, 이틀은 시종장의 침소에선 묵은 느낌이랄까.

호텔 예매 앱을 검색해보니 두 곳의 하루 숙박료가 원화로 얼추 1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러니, 얼떨결에 얻어 걸린 곳에서 횡재를 한 거 맞다.


사람이 간사한 게, 늘 상대적으로 나은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비용의 높은 가치를 고마워해야 함에도, 같은 비용의 낮은 가치에 불만을 갖게 된다.


우리 역시 처음엔 불만스럽게 생각하다, 한순간 아내가 한마디 한다.

"그래도 여기 직원의 친절함 덕분에 하루 호사를 누렸으니 우린 불만가지면 안 돼.."

그래.. 나란히 붙어있는 두 곳 모두에서 루체른湖 정취를 흠뻑 맛보았으면 그걸로 됐다.


아.. 도착하던 날 직접 옆 호텔까지 주선해준 친절만점의 키다리 지배인이 안 보여 물어보니 그만 두었단다. @ㅁ@~~

그러고보면 근무 마지막 날 우리에게 키다리아저씨가 되어준 거다.

그리고,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오늘이 첫 근무라던 여성이 그 후임이었던 것.



왼쪽이 사전 예약된 SEEHOF HOTEL, 오른쪽이 얼결에 걸려들어 호사(?)를 누린 BEAU RIVAGE.


두 호텔 모두 루체른 호수와 바로 접해 있어 호텔에서 바라보는 호수의 풍치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멀리 보이는 배는 루체른에서 비츠나우까지 왕복 운항하는 유람선.

2001년 유럽배낭여행시 유레일패스로 유람선 1등실 무료승선을 했는데, 지금도 그렇겠지.



그립다~~~



:


다음 목적지인 스위스 베기(Weggis)는 2001년 배낭여행시 루체른에서 호수유람선을 타고 지나다 본 작은 도시다.

지금도 블로그 헤드라인 사진으로 사용할 정도로 그때 멀리 보여진 모습이 너무 예뻐 꼭 한번은 묵고 싶었던 곳이었다.


퓌센에서 베기까지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장거리 이동구간. 네비를 찍으니 384km가 나온다.

당초 일정을 잡을 때 퓌센 출발일과 베기 예정 도착일 사이 하루는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다.
운전의 피로도가 혹시 어떨지 몰라 여차하면 중간 경유지점인 리히텐슈타인에서 1박할 생각도 했기 때문에
퓌센과 베기 사이에 예비일을 하루 넣었다.

그렇더라도, 정 피곤하면 모르겠지만, 일단 가는 데까지 가보자.
유럽의 작은 국가 중 하나인 리히텐슈타인도 궁금하긴 하지만, 물가도 비싸다고 하고 시내 모습이야 다 비슷할테니.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아 나가는 도중 이따금씩 눈에 띄는 안내표지판이 보인다.
어차피 독해가 안되는 것이라 처음엔 뭔지 의식하지 않았는데, 몇번 눈에 익으니 갑자기 찜찜한 느낌이 든다.

언뜻 보니 표지판을 채우고 있는 건 세 개.
RADAR란 단어와, 와이파이 표시를 뒤집어놓은 아이콘, 그리고 숫자 80. (120도 있었던가...)
직감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속도 단속카메라 예고 표시판이고, 숫자는 제한속도 같은데 제한속도의 의미를 모르겠다.

언젠가 세계 각 국의 고속도로 제한속도를 다룬 기사에서, 미국과 독일의 경우,
과속차량보다 일정기준 이하의 저속차량에게 벌금을 더 크게 부과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차량의 원활한 흐름을 저해하는 저속차량이 과속차량보다 오히려 사고유발률이 더 높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80이란 숫자는 과속제한인지, 저속제한인지..
속도를 더 내야하는 건지, 줄여야하는 건지 판단이 안 선다.
일단 다른 차들의 주행속도가 갑자기 떨어지는 거 같진 않은데, 의미를 모르니 굉장히 찜찜하다.
아.. 몰라~ 어떤 형태가 됐든 나중에 뭔가 날라오면 여행경비의 일부라고 생각하자는 게 평소 여행관이지만,
2년 전 북유럽여행 때 여행의 감흥이 끝나가는 석달 뒤 196달러 주차 범칙금이 날아오니 무척 속쓰리긴 했다.


연료 주입을 위해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유기.


2년 전 노르웨이에서 차량용 디젤과 경운기용 디젤을 구분 못해

경운기용 디젤을 주유하다 당혹스러웠던 트라우마(?)가 있어 주유기를 보는 순간 은근 예민해진다.



휘발유 차량이니 디젤은 아니고,

2년 전 디젤차량 렌트시에는 디젤 주유기가 둘이었는데, 이번엔 휘발유 주유기가 셋.


일단, 고급의 의미일 super plus는 제외하고, super E10은 뭐지?

E는 economy의 의미? 배열 순서로 봐선 E10이 단가가 제일 낮은 거 같긴 한데,

왜 싼 지를 모르니 결국 안전빵으로 super를 선택.


숙소에 들어와 인터넷 검색을 하니, super E10은 환경 재생을 위해 에탄올 10%가 함유된 휘발유란다.

Super보다 저렴한 듯해 다음 주유시 비교해보니 1리터당 대략 3센트 정도 싸다.

1유로 1300원으로 잡으면 얼추 40원.

주유소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장 저렴한 휘발유인 super E10 기준 1리터당 134센트 정도니 원화로는 1740원 정도.

한국의 유가가 비싸다고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독일은 더 비싸다.


주유기를 아무리 훑어봐도 지폐나 카드 투입구가 없다. 어쩌라는 거냐..

밑에 그림을 보니, 주유후 계산을 하는 거 같아 일단 넣고 바로 앞 편의점 계산대로 가니 6번 주유기 주유비가 이미 나와있다.

그냥 내빼면 어찌 되나..? 뭔가 방법이 있으니 이렇게 하겠지.


그리고 우리와 다른 또 하나.

우리나라 주유기는 주유할 금액이나 주유량을 먼저 설정하면 설정치만큼 주유후 자동으로 멈추는데,

여긴 설정하는 게 없다. 수동으로 중간에 멈춰야 한다.


그럼, 가득 채우려면 어찌 해야 하나..

그건 우리나라 주유기와 마찬가지로 가득 채워지면 알아서 멈춘다.



앞으로 갈 길이 한참 남았으니 화장실도 들려야겠지.



흠..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이용료가 70센트라.. 대략 900원 정도.

대한민국 고속도로 휴게소만한 데가 없구나..


참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그게 아니다.

우리나라 고속도로 통행료는 구간별 징수도 하고 너무 비싼데, 독일의 고속도로는 통행료가 없는 무료 아니던가..

비싼 통행료 내고 화장실 무료라고 고마워 할 게 아니라, 통행료 안 내고 화장실 유료가 훨씬 낫지.

유료인만큼 화장실 관리도 아주 잘 되어 있다. 뭐.. 화장실 관리야 한국도 최상급이지만.

또 하나 재밌는 거.

장실 이용료를 현금이나 카드로 결제하면 티켓이 나온다. 이것도 의아했다.

화장실 이용료를 냈으면 됐지 뭘 또 영수증까지 주나 싶었는데,



이게 휴게소 매장 50센트 할인 바우처다.

휴게소에서 무엇이든 구매하면 화장실 이용료는 20센트인 셈. 한 품목에 대해 두 장까지, 그러니까 1유로까지 할인이 된다.

그러니, 고속도로 휴게소 이용시는 반드시 화장실을 먼저 이용해야지, 먹을 거 먼저 다 먹고 화장실을 가면 할인 바우처 쓸 일이 없다.



우리는 바우처를 여기에 활용.

저 중에 두 세 개를 담으면 8~9유로. 화장실 바우처 두 장으로 1유로 할인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휴게소 밖 고객 쉼터.

Red와 Green의 배색이 멋지다.

거기에 White 상의까지. PERFECT~



주유도 했겠다, 점심까지 해결했으니 이제 베기까지 냅다 달리는 일만 남았다.

의외로 피로감이 느껴지지 않아 리히텐슈타인을 거침없이 통과하여 스위스까지 고고씽~


목적지를 50km 정도 남기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춰 만난 취리히 호수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강처럼 보이는 저게 호수라니..

하긴.. 스위스는 내륙국가니 바다로 연결되는 강이 있을 수 없다.

스위스에서 보이는 모든 물은 무조건 호수다.



우리가 찾아가는 베기(Weggis)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줄까.

기대감 가득 품고 오도 못하는 오픈카 카브리올레를 독촉한다.

"가자~ 베기로~~"



:


관광객들이 퓌센을 찾는 이유는 슈방가우에 있는 노이슈반스타인城 때문이다.

슈방가우에는 두 개의 城이 있다.
막시밀리안 2세가 지은 호엔슈방가우 城과 그의 아들 루트비히 2세가 지은 노이슈반스타인 城.
이 중, 관광객이 먼저 찾는 城은 빼어난 외관의 노이슈반스타인 城이다.
(근데, 보통 이름에 2세나 3세가 들어갈 경우 이름 자체는 아버지 이름과 동일한 거 아닌가..
막스밀리안 2세의 아들이 막스밀리안 3세가 아닌 루트비히 2세라면, 그럼 루트비히 1세는 누구?)

호엔슈방가우 城 아래 주차장의 주차비는 일률적으로 6유로. 나쁘지 않다.
주차장 입구에서 노이슈반스타인 城까지 마차를 이용할 수 있고,
쪽 城 내부를 관람하려면 주차장 구역 티켓 판매소에서 티켓을 구매해야 한다.

걷는 게 일상인 우리는 당연히 도보로 가고, 성 내부 관람은 패스.
아내는 궁전 내부 관람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중세 왕들이 권위에 대한 자존심 경쟁이라도 하듯 유럽 대부분의 궁전 내부는 너무나 호화찬란한데,
그 이면에 깔린 백성들의 고초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보기가 싫단다.

주차장에서 가깝기는 호엔슈방가우 城이 먼저지만,
관광객들이 밀려들기 전에 노이슈반스타인 城을 먼저 보고 내려오면서 호엔슈방가우 城을 보기로 한다.


노이슈반스타인 城은 워낙 지대가 높아 주차장에서도 보이고 올라가면서도 계속 형태를 볼 수 있다.



저 꼭대기에 城을 짓겠다고 생각한 루트비히 2세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하겠지만,

1868년부터 24년간 저 꼭대기를 오가며 공역에 차출됐을 백성들의 고초와 역경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마차를 타든, 걸어서 가든, 도로는 城의 오른쪽 측면으로 다다른다.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도보로는 느긋하게 걸어도 40분 정도 소요.

城 내부 관람객을 위한 입구는 사진 왼쪽 끝에 있다.


곳에서 내려다본 슈방가우.



지금도 마을은 저 멀리 있는데, 城을 착공한 1868년은 어땠겠는가.

저 거리만큼 백성과 동떨어진 군주 개인의 욕심이 보인다.



노이슈반스타인 城의 완공은 1892년.

그 당시 이렇게 깔끔하고 매끄러운 외관을 완성했다는 게 놀랍다.


가까이에서는 수려한 외관을 알 수 없는 노이슈반스타인城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城의 왼쪽 측면 맞은 편에 있는 마리엔 다리로 가야만 한다.



마리엔 다리는 노이슈반스타인 城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의 자리 확보를 위한 경쟁으로 늘 붐빈다.



많은 인파와의 자리싸움 끝에 마리엔 다리에서 담은 노이슈반스타인 城의 모습은 자리싸움의 보람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城의 이름이 왜 백조성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외관이 아름답지만, 실제 城에 얽힌 사연은 외관과는 달리 어둡다.


대인기피증이 있는 루트비히 2세는 은둔을 위해 사람들이 찾기 힘든 세 곳에 성을 만들었다고 한다.

퓌센의 노이슈반스타인 城 외에, 오버암무가우의 린더호프 城과 프린의 헤렌킴제 城. (여기도 언젠간 가볼 기회가 있을거란 희망을 갖자)


루트비히 2세의 대인기피증이 심해지면서 점점 기행을 일삼게 되고,

잇단 城 건축으로 지나치게 국고를 탕진하게 되자 바이에른 의회는 결국 그를 파면한다.

이로 인해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이 城의 완공을 보지 못한 채, 유배지 인근 호수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고 한다.



그런 어둡고 폐쇄적인 심리상태를 느껴보기 위해 색온도를 낮춰 한 컷 더.


위에 언급했 듯, 루트비히 2세가 이 城을 지으며 당시 많은 국고를 탕진하고 백성들의 삶도 피폐하게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100년 후 수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며 국부를 창출하고 있으니, 그는 사후 그의 죄값을 다 한 셈인가.


세계 곳곳의 수 많은 유적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당대 백성의 고통을 저버린 지도자의 폭정이 결국 후대의 백성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이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지..


또 하나 궁금한 건, 윗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城의 오른 쪽으로는 시야가 탁 트인 넓은 평원과 호수가 있고, 왼쪽은 산이 가까이 있어 답답할 듯한데, 정작 城의 왼쪽에 창이 많다.

건축 이론으로는 왼쪽이 남향이었기 때문이겠지만, 설계를 직접한 루트비히 2세의 폐쇄성이 영향을 미치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참..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城 전면부 돌출부의 모습은 이렇다.


城 내부 관람객들은 저 베란다까지 들어갈 수 있나 보다.




노이슈반스타인 城에서 바라 본 호엔슈방가우 城.

권력이 아무리 강하고, 권력자가 한껏 욕심을 부란다고 한들, 자연 속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한다.



이제 내려가면서 호엔슈방가우 城을 둘러보자.



호엔슈방가우 城은 노이슈반스타인 城과 비교하면 굉장히 소박해 보인다.



루트비히 2세는 그의 부친 막스밀리안 2세가 지은 이곳 호엔슈방가우 城에서 유년시절을 보내

이 지역에 대한 향수로 이 城 인근에 노이슈반스타인 城을 지었다고 한다.


호엔슈반가우 城의 모습들.



의미없는 건축물은 없으니, 이 작은 동상의 주인공은 뉘신지 궁금하고,

벽면은 단순한 색조임에도 문양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호엔슈방가우 城에서 바라본 노이슈반스타인 城.

루트비히 2세는 호엔슈방가우 城에서 망원경으로 노이슈반스타인 城의 건축 과정을 지켜봤다고 한다.



城을 둘러보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니, 노이슈반스타인 城으로 가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오늘 몇 번을 왕복했는지 모르지만, 두 발로 버티고 서서 조는 말의 모습이 너무 처연하고 애처롭다.

체구는 또 왜 이리 작아 보이는지..


쟤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난 앞으로 몇 번을 더 왕복해야 좀 편히 자려나..'


군주는 자기만의 안식을 위해 백성의 고혈을 뽑고,

먼 후대의 백성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다른 생명체에 고통을 준다.


:

결혼식 퍼레이드를 보고 숙소를 찾아 체크인을 한 후 동네 구경을 나섰다.
옛 우리말로 마실나간다고 하지.

Hopfensee.
난 홉펜지가 지역명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도를 살펴보니 끝에 see가 붙은 이름이 많다.
공통점은 모두가 호수라는 거.
아하~ lake가 여기서는 see구나..


그러니까, 이게 Hopfensee, 즉, 홉펜호수다.


그리고, 이 마을의 정확한 지명은 Hopfensee가 아닌 Hopfen.

퓌센에서 약 4~5km 거리의 홉펜은 이런 곳이다.



호수를 따라 군락이 형성되고, 그 주변을 4월 중순임에도 눈을 품고 있는 산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초록의 들판까지 갖춘 홉펜은 전형적인 전원마을이다.



이런 좋은 자연환경 때문인지 홉펜호수와 접해있는 홉펜지 캠핑장 안쪽에 캠핑카가 즐비하다.




홉펜지를 따라 늘어선 집들은 모두 호텔 아니면 레스토랑이다.

동네가 예쁘긴 하지만, 슈방가우에 있는 노이슈반스타인城과 10km 거리인 이 동네가 대단한 관광지 같진 않은데 호텔과 식당이 많은 게 신기할 정도.

식당을 찾는 이들이 죄다 관광객은 아닐테고, 그럼 이곳 사람들은 무엇으로 소득을 얻어 저기서 외식을 하는지.




주인님이 달콤한 시간을 보낼 때는 모르는 척 하는 게 매너.




호수에 낚싯대를 걸쳐놓은 저 태공들도 자세나 분위기로 보아 물고기가 아닌 다른 것을 낚고 있는 듯하다.



홉펜은 호수 외에 딱히 구경거리는 없다.

호수 크기가 꽤 큰데도 호수 주변에 보트 등 해상 레져스포츠 시설이 없다.

환경보호로 인해 법적으로 금지가 되어 있는지..


볼 게 없어 동네 골목과 호수 주변만 걷다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의 거처인 Hotel Landhaus. 호텔이라기보다 우리 개념으로는 펜션이 타당하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방과, 냉장고와 커피포트를 사용할 수 있는 공용주방이 따로 있다.

원할 경우 제공하는 조식비용은 8.5유로. 로텐부르크의 Goldenes Fass의 두 배 가까이 되지만, 퀄리티는 아쉽다.

하긴.. Goldenes Fass의 가성비는 유럽 어느 곳에서도 기대하기 힘들겠지만..


유럽의 작은 호텔은 두 개의 열쇠를 주는 경우가 많다.

처음엔 뭔가.. 했는데, 하나는 방, 또 하나는 현관용이다.

규모가 작아 야간 근무자가 없어 9시나 10시 이후에는출입문을 봉쇄하기 때문에 숙박객들이 직접 열고 다녀야 한다.


'이거 어지간하면 다 열리는 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객실의 잠금장치가 좀 엉성해보였는데,

웬걸.. 저 단순해보이는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거 참.. 독일은 독일인지..



파리에서는 물론 그간 방에서 뜨거운 물을 사용할 수 없어 꺼내보지도 못했던 햇반과 컵라면이 처음 빛을 본다.

고추장 외 반찬 하나 없어도 베란다에 앉아 맑은 공기와 함께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먹는 컵라면과 햇반은 여느 식당의 요리보다 부족함이 없다.



간단한 요기후, 이번엔 호수 반대의 능선을 향한 길을 따라 걸었다.



지붕 위로 돌출된 이 시각기둥의 정체는 뭔가.. 환기구?


능선에서 보이는 마을의 모습이 무척 평화롭다.



8시가 넘자 서서히 홉펜에 어둠이 내려 앉는다.




여유롭게 하루를 쉬고, 내일 아침에는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城을 볼 수 있는 슈방가우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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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텐부르크 위에 있는 작은 도시 밤베르크를 들르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을 기약하며 가슴에 묻고,
250km 남짓한 거리를 시속 190km까지 밟아가며 (새가슴이라 200km/h는 못 넘겼다) 논스톱으로 달려 도착한 퓌센.

아늑한 시골마을 홉펜으로 접어드는데 교회 건물 앞에서 갑자기 밴드 소리가 울리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결혼식 같은데..' 황급히 근처에 차를 세우고 달려갔다.
외국 여행길에 현지 풍습을 볼 수있다는 건 얼마나 행운인가.



달려가보니 결혼식은 이미 막 끝나고, 뒷 마무리와 함께 신혼부부 퍼레이드를 준비중이다.




우리 전통혼례에 닭이 등장하듯, 이곳의 결혼식에도 닭들이 준비되어 있다는 게 무척이나 흥미롭다.

매일 알을 낳는 닭을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여겨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건 고금동서를 떠나 모든 인류의 본능인가 보다.

우리는 깃털색이 고운 닭을 사용하는 반면, 우연인지는 몰라도 여기는 흰색 닭만 있다는 게 우리와의 차이.

흰색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뭘까.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깔맞춤?

아.. 그리 생각하니 우리 전통 신부 혼례복은 색동저고리. 그래서 컬러풀한 닭으로..

결국 드레스 코드.

이거 묘하게 매치가 되는데, 나의 갖다붙이는 엉뚱한 상상력은 내가 생각해도 때론 놀랍다~^^



궁금한 건 못 참아 찾아본 저 단어의 뜻은 [결혼식, 결혼].




신혼부부 퍼레이드용 마차도 대기중.

마차와 하객들의 복장이 아주 정겹게 조화를 이룬다.



이 분이 오늘의 신부이신 듯.

할머니의 전통 의복과 손에 들린 스마트폰의 대비도 재밌고.




"신부는 탔는데, 신랑은 어디 갔어~ 어여 타~~"




전통복장의 4인조 악단이 마차를 선도하며 동네 퍼레이드 출발~



신랑 신부에게 추억이 될 동영상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 분도 고생하신다.



신랑 신부 사이에 끼신 분~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결혼후 첫 출발인데.



풍치있는 자연 경관과 함께 따사로운 햇살로 축복받은 결혼식.

하객들이 퍼레이드에 동참하는 게 예의인지 행렬이 제법 길다.



마을 저 끝까지?

퍼레이드 코스가 어찌 되는지 모르지만, 콘트라베이스인지 첼로인지 연주자는 정말 너무 힘들겠다. ㅠ.ㅠ


재작년 독일 뤼벡에 들렀을 때 1년에 한번 한다는 마을축제 가장행렬을 봤는데, 이번에는 결혼식을 보고, 난 정말 lucky guy 맞다.

독일과 궁합이 잘 맞는 듯. 나 독일 체질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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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개인 다음 날 아침.
햇살을 받은 로텐부르크의 모습은 또 달랐다.


城 밖에서 본 동쪽 뢰더 문과 뢰더 탑.



城 안쪽에서 본 뢰더 탑.



특정구간은 성벽이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뢰더 문으로 들어가 성벽 왼쪽을 따라 걸으면 나타나는 옛 대장간.




성곽 위 통로를 걷다보면 성벽 구간구간에 보이는 표식.

윗 줄은 사람 이름인 듯하고, 아래 줄은 지명인 듯한데, 숫자는 뭘 의미하는지..

이 성곽의 축조나 보수에 일조한 사람에 대한 기념인 거 같은데, 내용을 모르겠다.




뢰더 문을 지나 마르크트 광장을 향해 걸으면 아기자기한 건물 사이로 마르쿠스 탑(Markusturm)이 보인다.


저 가운데 알록달록한 건 뭔가..



왼쪽 경고문을 보면..



실제 달걀이니 깨지 말라는데, 특별히 달걀로 이런 장식을 했다는 건 뭔가 이유와 의미가 있을텐데, 그게 뭔질 모르니..



가까이서 본 마르쿠스 탑.

시계탑 오른쪽 붉은 지붕 위 피뢰침같은 구조물에 새들이 둥지를 만들었다. Awesome~~



비가 그치고 햇살을 받은 마르크스 광장.

광장을 찾은 사람들의 모습도 훨씬 여유롭다.




슈미트 길에 차가 다니는 걸 처음 보는데, 빈티지 도시답게 자동차 역시 빈티지 급.




중심로가 짧은 로텐부르크에서는 성벽을 끼고 걸으며 이 도시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다.




성 서쪽의 부르크 문 밖으로 나가면 이런 고색창연한 세월의 흔적도 접할 수 있다.




빨래가 널려있는 거로 보아 개인 집인 거 같은데, 이 古城에 이리 큰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조상은 누구실까..



그 외 눈에만 담고 가기에는 너무 아쉬운 로텐부르크의 모습들.




시계바늘이 멈춘 듯한 로텐부르크 城內 구시가지는 매우 작은 도시임에도 독일여행에서는 뺄 수 없는 인기있는 관광지다.

우리는 이번 일정에 다소 여유가 있어 충분한 시간을 보냈지만,

이 구시가지는 규모가 너무 작아 맘 잡고 두세 시간만 걸으면 남에게 로텐부르크를 설명할 수 있고,

간단한 쇼핑과 식사 한끼를 곁들여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독일여행의 필수코스라고 찾아와 불과 반나절만에 떠난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여행이란 게 늘 일정이 빡빡하니 다행이라면 다행일 수도 있다.



날이 좋고 배가 부르니, 춥고 배고플 때는 안 보이던 게 보인다.



뢰더 문과 로텐부르크 기차역 중간쯤에 있는 공동묘지.

우리에겐 단어만으로도 으스스하지만, 서구의 공동묘지는 꽤 생활친화적이다.



묘지마다 개성이 돋보여 혐오시설의 느낌이 전혀 없다. 공동묘지가 아닌 말 그대로 공원묘지.

하나 눈길이 가는 가는 건,



오른쪽 묘는 왼쪽 묘의 1/3정도 면적이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공경하는 마음을 탓할 순 없으나, 죽어서까지 빈부 격차와 신분사회가 유지되는 듯해 씁쓸하다.
공동의 묘지만큼은 동일 면적을 규정으로 했으면 싶다.




아이들 대상의 축구교실이 한창인데, 축구 강국답게 이 작은 도시에도 잔디구장 2면이 이어져 있고, 강습 열기도 뜨겁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니, 단순히 편을 나눠 경기를 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런닝을 시키고 기초훈련을 중시한다.

어릴 적부터 공을 차는 것보다 기본적인 것의 습성화를 우선시하는 걸 보며, 새삼 잘 하는 데는 잘 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퓌센으로 간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2km쯤 후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네비가 240km 직진이란다. 그 후 남은 거리가 9km.
와우~ 고속도로 갈아타지 않고 한 구간만으로 간다니 길 찾기 간단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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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로텐부르크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로텐부르크는 크리스마스]다.


2001년 12월 이 도시를 찾아 뢰더문을 지나 마르크트 광장에 들어섰을 때,

시청사 앞 계단의 아이들 합창단에 의해 울려퍼지던 청아한 크리스마스 캐롤과,

비좁은 슈미트 길 내리막 양쪽에 빼곡하게 크리스마스 트리로 반짝이던 작은 상점들은 그 자체로 동화마을이었다.

내 마음을 동심으로 돌려놓은 그때의 그 정겨운 모습들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남아있고,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17년이 지나 다시 찾은 4월의 로텐부르크는 아쉽게도 유럽 작은 옛 도시중 하나의 느낌이지만,
이곳이 크리스마스의 도시임을 입증시키는 곳이 있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크리스마스용품 판매점.


먼저, Christkindlmarkt.

네이버사전을 검색하니 christkind는 아기 예수이고, 여기에 [l]이 붙은 christkindl은 크리스마스 장식이라고 나온다.

결국, 크리스마스 장식품 상점이라는.


이 안에 들어서는 순간 절로 눈이 휘둥그레진다.

다른 설명 필요없고, 모든 종류의 크리스마스 장식품이 없는 게 없다.


요게 참 깜찍하게 예뻐 아이들 선물용으로 구입.



요것들은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용품이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리는 여러 소품도 많다.



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운 여기 제품을 일일히 다 사진에 담는 건 불가능하고, 상점내 전체적인 느낌만 몇 장 담았다.


이 상접의 바로 맞은 편에 또 하나의 크리스마스 용품점이 있다..



지붕에 선물을 잔뜩 얹은 자동차가 머물고 있는 이 상점.


앞집은 건물 입구에 대충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추정되는 단어라도 있지만,

이 집은 그런 유사 단어조차 없어 나같이 독일어를 모르는 사람은 뭐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다.
고교때 제2외국어로 배운 독일어 단어 기억으로 nacht는 [밤(night)]인데.. 사전으로 검색하니 weih는 [성스러운]이다.

그러니까, Weihnacht는 Holy Night이 되는데, 독일어 사전에는 성탄절이라 되어 있다.


건물 벽에 위에 소개한 상점과 같은 캐테 볼파르트(KATHE WOHLFAHRT)라는 문구가 있는데, 크리스마스 장식품 체인점 이름이라고.

왼쪽의 녹색 건물은 KATHE WOHLFAHRT 체인점에서 운영하는 크리스마스 장식품 및 크리스마스 자료가 전시된 크리스마스 박물관이다.

이 상점은, 같은 크리스마스 장식품점이면서도, 먼저 들른 앞 집과는 또 차원이 다르다.
비교하자면, 앞 집이 크리스마스 용품의 대량 판매 위주라면, 이 집은 용품을 이용한 꾸며진 모습을 더 보여주고,
크리스마스 장식 외에 크리스마스를 컨셉으로 한 다양한 상품들이 있다.


눈높이를 맞춰가며 아이의 호기심을 설명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정겹다.



여기까진 앞 집과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사진 촬영이 금지된 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정말 그림책 속 크리스마스 환상의 공간에 들어온 느낌이다.



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하나만 담았다.


로텐부르크 城內 main street이 좁고 짧아서인지, 여기 건물들은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겉에서 보기엔 입구도 작아 아주 작은 집 같은데, 들어가보면 생각 이상으로 안쪽이 엄청 넓다.

위 크리스마스 용품점 두 곳도 겉모습은 남대문의 용품점과 비슷해 보이지만, 속은 끝이 없다.


두 곳 모두 좋지만,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면 나중 집을 권한다.


성인인 나도 보이는 것마다 손에 넣고 싶고 마음이 들뜨는데, 순수한 감성의 아이들은 얼마나 그 여운이 오래 갈까.

언제일지 모르지만, 3세들이 생긴다면 한번 보여주고픈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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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내내 로텐부르크를 적시던 비가 밤 8시쯤 그쳤다.
내가 기억하는 이 도시가 이런 곳이 아니었는데,
봄비 때문인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 게 아쉬워 야경도 볼겸 운동삼아 다시 성내를 찾았다.


로텐부르크 城의 여러 문 중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동쪽의 뢰더 문.

뢰더 문 좌우의 잘 보존된 성벽에서 중세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온다.



오후 비가 올 때 이 성곽에 올라 성을 한 바퀴 돌 생각을 왜 못 했을까.



그랬더라면 비도 피하면서 성곽의 스카이 라인을 음미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의 관람이 됐을텐데..



성곽아래 성벽과 접해있는 집들의 건축형태가 특이하다.

일반적인 가옥에 비해 벽의 높이가 낮은 반면, 지붕의 경사각이 가파르고 높히 형성되어 있다.

혹시 겨울 적설량과 관계가 있는지.. 눈이 지붕에 쌓이지 않고 흘러내리게 하여 지붕의 하중을 줄이려는..

지붕을 덮고있는 소재도 특이하다.



이 집의 지붕 소재는 윗 사진의 집과 형태는 비슷하나 좀더 모던하면서 대량생산 제품의 느낌이..



사진 우측의 뾰족한 집은 대장간으로 사용됐던 건물이란다.


성곽에서 보이는 성내 스카이 라인을 살펴보자.


건물에서 새어나오는 은은한 불빛과 어우러진 스카이 라인이 제법 운치있다.


남쪽 입구쯤에서 성곽을 내려와 이제 낮은 곳에서의 야경을 즐겨본다.


빛은 모든 걸 성형시키는 능력이 있다.



10m 높이의 성 게오르그 분수를 문지기(?)로 두고 있는, 목조와 석조로 구성된 이 혼합건물의 이름이 재밌다.

지하에 정육점이 있었던 이 건물 내부의 큰 방에서 무도회가 종종 열렸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건물의 이름이 [고기와 춤의 집]. 독일어로는 Fleisch und Tanz haus.




마르크트 광장.



광장 왼쪽 건물이 시청사.



시에서 주최하는 행사시 연회장소로 사용됐던 의회연회장.

단순해 보이는 외관에 비해 상부의 시계탑은 뭔가 특이한 기능이 있어 보인다.


올 비는 다 온 듯하니 내일은 쾌청한 로텐부르크를 볼 수 있을라는 기대와 함께 숙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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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 외곽의 모습이 궁금해 호텔에서 가까운 성의 동쪽 입구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성곽 남쪽으로 돌았는데, 이게 악수가 되어 버렸다.

볼거리가 전혀 없어 비바람을 맞으며 추위에 떨다 남쪽 입구로 진입.


城의 남쪽 관문인 스피탈(Spital) 문.

비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고 한산하다.


스피탈 문을 지나 조금 가면 지베르스 탑(Siebersturm)이 엔틱한 분위기 물씬 풍기는 자태를 드러낸다.

(하긴.. 이 동네에 엔틱하고 빈티지 느낌 안 나는 게 뭐가 있을까 싶다만..)



지베르스 탑 밖에서도 이미 느껴지지만, 저 탑을 지나면 아기자기한 작은 집들이 그림같이 펼쳐지는 플뢴라인이다.

중세의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작은 광장인 플뢴라인은 로텐부르크를 찾는 관광객들의 인기있는 포토 포인트다.



시청사가 있는 마르크트 광장과 플뢴라인을 잇는 슈미트 길.

인지도 높은 레스토랑, 카페, 기념품점 등이 모두 밀집되어 있는 城內 최고 번화가다.

길 끝에 보이는 것이 지베르스 탑의 안쪽 모습이고 그 앞이 플뢴라인.



비에 젖은 슈미트 길은 내 기억 속에 남아있던 17년 전 동화 속 모습이 아니다.

믈론 크리스마스라는 시즌적 요인이 있었지만, 그때는 형형색색의 전구들과 황금색 간판들이 어우러져 정말 동화 속 마을이었는데,

그런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지 못해 너무 허전하다.



썰렁한 마르크트 광장을 보니 내 마음마저 휑하다.

노란색 시청사 앞 계단에서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캐롤을 부르고, 다른 한쪽에선 산타 모자를 쓴 밴드의 연주도 들리곤 했는데...



아.. 근데, 춥고 배고파~

몇 군데를 돌아보다 들어간 바우마이스터 하우스 (Baumeisterhaus)



이 식당을 선택한 건 오로지 입구 좌우에 있는 이것 때문.


대한민국을 인정해 주는 이곳의 인테리어가 특이하다.



이 식당 오너가 사냥광인가..

(여행후 우연히 다른 자료를 보다 알게 된 사실.

이 건물이 1596년에 지어졌으며, 벽의 인테리어 소품은 사냥 전리품 맞단다.

골라 잡아 들어온 식당이 꽤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



우리의 선택은 스테이크와 아스파라가스.

유럽여행중 계속 느끼게 되는 건, 어느 나라 어느 식당에서든 아스파라가스 메뉴가 없는 곳이 없다.

요리의 형태도 거의 유사하다. 그만큼 유럽인의 기호식품이라는 의미겠지.



여행기에 내 모습을 올리는 빈도가 극히 적지만,

운전으로 인해 유럽 식당에서 낮에 맥주를 곁들인 내 모습이 너무 희귀한지라..


배도 채우고, 추위에 떨던 몸도 녹였으니 슬슬 또 걸어보자.



시청사 뒤에 있는 성 야콥 교회.

내부에 볼거리가 많다는데, 우리는 건물 중앙을 뚫어 도로를 연결한 외부 모습에 감탄한 걸로 만족.




아무 생각없이 그냥 느낌으로 담고 싶은 모습.



시청사에 접한 길을 따라 마르크트 광장 서쪽으로 나가면 城 서쪽 관문인 부르크 문이 있다.


부르크 문 바깥 모습.



이곳에서 바라보는 城 밖의 모습도 아름답다.




단 둘이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투어중인 관광객.
둘이 여행을 다니며 가이드를 동행하는 경우는 좀 드문 거같고,
패키지 그룹 중 비가 와 다수가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와중에 보다 적극적인 멤버가 가이드를 설득해 따로 나온 건 아닌지.
재밌는 건, 저 세 사람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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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는 우리를 비로 배웅한다. 아침부터 비가 아주 제대로 온다.

파리에서 추적추적 오는 비는 거의 매일 봤지만, 이렇게 대차게 오는 비는 이번에 유럽에 들어온 이후 처음이다.
묵었던 Acor Hotel 옆 공영주차장의 2박 주차요금은 18유로. 주차요금은 예상보다 싸다.

네비게이션에 다음 목적지 로텐부르크 Hotel Goldenes Fass를 목적지로 입력하고 이동하는데,
우천으로 인해 위성과의 통신불량으로 인한 GPS의 오류인지, 차량 네비게이션 품질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네비는 가도가도 남은 거리가 줄어들 생각을 안하다가 어느 순간 확 줄어든다.

네비를 믿는다는 전제하에, 네비 화면 한 구석에 도로에 따른 제한속도가 뜨는데, 이게 안 뜨는 구간은 무제한이다.
무한질주의 아이콘 독일 고속도로 아우토반.. 정말 겁나게들 달린다.
같이 한번 달려보고 싶어도 지리를 몰라 수시로 네비를 들여다봐야 하니 신경이 쓰여 따라가길 포기할 수 밖에.



그렇게 두 시간 여를 달려 도착한 Hotel Goldenes Fass.


체크인 시간 1시간 전임에도 바로 방을 내준다.
오너이신 듯한 리셉션의 할머니가 나처럼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을 많이 봤는지
또박또박 찬찬히 설명을 해주는데 얼마나 이해가 잘 되던지...
시티맵을 찾으며 "Language is ..." 하길래 별 큰 기대없이 "Korean~" 이라고 하니, 한글 안내도가 있단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한 마디, "Rothenburg is international city."

2박3일을 보낸 Goldenes Fass는 우리같은 장기여행자들에겐 가성비는 물론, 종합적으로 최고의 숙소다.

일단, 방이 청결하고 넓은데다 소파까지 구비되어 있다.
주차장은 무료에 주차면적도 넓고 건물 후문과 접해 있어 짐의 이동과 적재가 편리하다. (아.. 물론 우천시에는 예외다)

게다가, 관광의 중심인 古城까지 도보로 불과 10분 정도로 가까워 운동삼아 걷기에 딱 좋은 거리다.

城內처럼 인근에 식당이나 카페는 없지만, 맞은 편에 24시간 편의점과 Subway가 있어 오히려 야간에도 불편함이 없다.


1층 리셉션 오른쪽의 독립된 공간은 필요한 음료를 셀프서비스로 즐길 수 있다.

온수가 필요한 경우 가져가면 된다.

쇼케이스의 맥주 등을 이용할 경우 옆에 비치된 bill지에 self-check하여 리셉션에 제출.

자신들을 찾아준 고객에 대한 신뢰라고 할까.


무엇보다, Hotel Goldenes Fass의 가장 큰 매력은 4.5유로의 조식.

금액을 다시 한번 확인할 정도로 너무나 저렴한 가격에 내용이 궁금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오너 할머니의 인상에서 크게 실망감을 줄 거같진 않았는데,


깔끔한 분위기의 식당 자리에 앉자 (커피머신을 이용한 셀프커피가 아닌) 커피포트를 직접 제공하는 서비스부터 정성스런 아침이 제공된다.

어떻게 이 가격에 이런 식사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다양한 빵과 치즈, 햄과 야채, 과일, 각종 음료수 등이 정갈하게 준비되어 있다.

삶은 달걀에 그린 그림에서 고객의 즐거운 아침을 바라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표정 고르는데 고민이 많았다는..^^)




결코 넓지 않은 로비 리셉션에서도 고객을 맞는 진심어린 정성이 담겨있다.


리셉션 옆에는 간단한 기념품을 판매하는데, 판매가격에 또 한번 놀랐다.

로텐부르크의 명소 사진이 담긴 기념카드 가격이 城內 기념품점의 50% 정도다.

호텔에서 판매하는 물품가격이 일반점포에 비해 비싸면 비쌌지 결코 싸지 않은 게 일반적인데,

기념품점의 거의 절반 수준인 월등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작은 영리보다 고객에게 편안하고 좋은 기억을 남겨주는 것이,

첫 인상에서 내가 받았던 기품있는 오너 할머니의 기본 경영 마인드인가 보다.

이런 모든 것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마음으로 읽혀질 정도로,

노년의 주인 할머니를 비롯한 직원들의 친절하고 정중한 매너를 잊지 못한다.




호텔 뒷 모습.

전면부가 객실이고, 오른쪽이 주인의 공간인 듯.



왼쪽으로 주차장이 이어진다.


아.. 그러고보니 하이델베르크 Acor Hote에서도 낮에 할머니들이 리셉션 창구를 지키던데, 우리나라라면 호텔 창구에 노인을 앉히겠나.

경제력 만이 아니라 의식이 수반되야 선진국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비.
그렇다고 방에만 있을 순 없으니 슬슬 城內로 향하는데, 비에 바람까지 심해 춥다. 얇은 패딩 가져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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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전 하이델베르크의 추억 속 두 사람.

그 중 한 사람은 한국관의 사장님이고, 또 한 사람은 한국관 인근에 있는 맥주집 제펠하우스의 피아노 연주자다.

2001년 제펠하우스를 찾았을 때 피아노를 치던 연주자에게 혹시 하는 마음에 "[아리랑]을 아느냐"고 물었다.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는 익숙한 솜씨로 [아리랑]을 연주한 후 흐뭇한 미소와 함께 생각치도 않은 [아침이슬]을 악보도 없이 연주한다.
한국 유학생이 악보를 건네줬는데 멜로디가 좋아 외우게 됐다고.
그 연주는 내 생애 들어본 최고의 [아침이슬]로 가슴에 남아 있다.

그때의 감동이 아련해 하이델베르크 도착 첫 날, 한국관에서 식사를 마치고 제펠하우스를 찾았다.


17년 세월이 짧은 게 아니라서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추억 속 연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직원에게 "오래 전에 이곳에서 연주하던 사람을 아느냐?" 물으니,
찾는 사람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연주하던 사람이 가까운 옆집으로 갔단다.
가까운 옆집이라면.. 17년 전 같이 들렀던 RED OX가 떠오른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무대이기도 하고.
17년 전 그곳에서 연주하던 백발이 성성한 노인에게 [들장미]와 [로렐라이 언덕]을 신청했던 기억이 있다.

오래 전에 연주하던 사람 누굴 얘기한 건지, 또 언제 옆집으로 갔는지도 모른 채,
제펠하우스에서 맥주 한잔 후 다시 레드옥스를 찾으니 영업이 끝나 아쉬움에 발길을 돌렸는데, 그 레드옥스를 다음 날 다시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홀에 꽉 찬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나무 벽에 칼로 새긴 낙서는 17년 전 모습 그대로다. 빈티지의 전형.


벽을 향해 있는 연주자의 뒷모습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연주자를 살피니,



언뜻언뜻 고개를 돌리는 순간의 옆 모습과 그레이톤의 머리 색이 17년 전 연주자와 비슷하게 오버랩된다.


한 곡 연주가 끝날 무렵 다가가



2001년에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 사람을 아느냐?"고 물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사진을 보고는



바로 눈이 동그라지며 "It's me~".

그러면서 자기 옆은 누구냐고 되묻는다. "It's me~".
그리고 17년 전 그가 들려줬던 연주곡 이야기를 하니, 더욱 놀라운 표정을 짓고는 바로 아리랑을 연주한다.
내심 아침이슬을 더 듣고 싶었으나, 17년 전 아침이슬 연주가 가장 가슴에 남았다고 얘기했음에도 안 하는 걸보면 악보를 잊은 모양이다.

두 곡 연주를 더 하고 우리 자리로 와서는 자기를 어떻게 찾아왔느냐며 굉장히 반가운 표정으로, 찾아줘서 고맙단다.
그러면서, 17년 전보다 내 얼굴 살이 빠진 거 같다고..
이제 친구 다 됐네.^^


이렇게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이름도 모르는 정겨운 친구가 생겼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나를 보며 건넨 말.

"당신 정말 대단하다. 단순히 여행 자주 다닌다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닌데.."


2001년에 이어 17년의 시간이 지난 2018년에도 하이델베르크는 이렇게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기약할 수 없는 언젠가 하이델베르크를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난 또 한국관과 RED OX를 찾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지금의 자리에서 다들 건강하길 기원한다.


너무나 행복했던 하루, 마음 가득 햇살을 비춰준 하이델베르크.

세월의 흔적으로 세월의 공백을 지워준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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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Acor Hotel의 조식은 군더더기없이 깔끔하다.


우리의 식사방식으로는 다소 미진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유럽 스타일에 맞춰 빵 위주로 과하지 않고 소박하다.
여러 종류의 빵과 치즈, 과일과 시리얼, 커피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Tea에 쥬스까지.
오른쪽 위 귤 위에 있는 그린색 과일이 배인데, 맛이 아주 따봉이다.
처음엔 종류가 단순해보였지만, 이게 하나같이 맛있는 게 그냥 지나칠 게 없다. 결과는 결국 과식.
그리고, 이 모든 게 믿기지 않게 5유로.

아침을 배불리 먹고 호텔을 나서 바로 옆에 있는 성당을 들렀다.


한국에서는 연미사 외에는 성당을 가지 않는, 무늬만 신자인 사람이 희한하게도 외국만 나가면 보이는 성당은 꼭 들어가게 된다.

나의 외국여행은 (그분께는 외람된 표현이지만) 절반은 성당순례가 되고 있다.


성당에 들어가니 은은한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이어진다.



오르간 앞에 두 사람이 앉아 있는데, 사부님이 제자를 교습중이다.



방문객에 아랑곳없이 지도에 열중이신 사부님이 이따금씩 직접 시범을 보이는데,

음악에 문외한인 순수 일반인 귀에도 사부님의 연주가 보다 자연스럽게 귀에 와닿는다.

내공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스승과 제자의 인상적인 연주를 들으며 성당 내부를 들러본다.



소박한 내부지만, 제단 주변을 둘른 패들이 이채롭고, 작은 기도실이 정겹다.



골목을 누비다 들른 피자집은 피자를 중량으로 판매한다.

진열되어 있는 몇 종류의 피자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이거 200g, 요거 300g."

뭐.. 이런 식이다.



지구에는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런 콜라도 있네..



비스마르크 광장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하우프트 거리에 스시집이 있다.

저녁식사 시간이라 들어가 덴뿌라 라멘을 주문하니 이렇게 나온다.



튀김은 시키지 않았다고 하니, 덴뿌라 라멘을 주문하지 않았냐고 되묻는다.

덴뿌라 라멘이라 하여 라면 안에 튀김 몇 개 들어가는 걸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별도로 나올 줄이야. 더구나 볶음밥까지.

게다가 가격이 7.5유로다. 슈투트가르트 라멘과 어쩜 이리도 가격 차이가 나는지...

완전 계 탄 기분이다.


오전에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 연주로 즐거웠는데, 가성비 좋은 착한 가격의 삼시세끼까지 하루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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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된 도시는 세월이 흐르며 신도심과 구도심, 혹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구분된다.

과거를 보존하면서 현재의 성장을 충족시키며 미래를 대비하자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현대식 도시형태는 이제 세계 어디든 유사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의 동선은 당연히 구도심을 중심으로 짜인다.


하이델베르크도 마찬가지다.

기차역이 접해있는 비스마르크 광장의 동쪽이 하이델베르크의 구도심이며, 

하우프트 거리는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구도심의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구도심의 파이프 라인이다.


 


유명한 고전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에 나오는 맥주집인 [Red Ox]를 비롯해 하이델베르크의 낭만을 품고 있는

하우프트 거리는 당연히 하이델베르크의 최고 번화가다.    


하우프트 거리가 핫 플레이스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하이델베르크 구도심의 지리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유럽 구도시는 대개 광장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광장을 중심으로 방사형 혹은 십자형으로 도로가 발달된다. 

따라서 유동인구가 특정한 곳으로 밀집되지 않고 분산된다.


이에 반해, 하이델베르크 구도심은 지형적 특성을 인해 가로 폭이 긴 반면 세로 폭이 아주 짧다.

다른 도시의 광장에 비해 규모가 작은 마르크트 광장도 하우프트 거리의 중심부가 아닌 거의 동쪽 끝 부분에 위치한다. 

물론 하우프트 거리 양 옆으로 이면도로가 있지만, 말 그대로 이면도로이며 구도심은 실질적으로 거의 일자형이다. 

그만큼 유동인구 분산효과가 적다. 게다가 하우프트 거리 자체의 폭도 좁다보니 늘 붐빈다.

그러니 Steady Hot Place가 될 수 밖에 없다.




1441년에 건축된 성령교회는 원래 카톨릭 교회였으나 신교와 구교의 오랜 대립과정에서 변화를 거듭하다,

지금은 개신교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중세 유럽도시의 다른 광장에 비해 아담한 규모의 마르크트 광장.

2001년 겨울 이곳을 찾았을 때 이곳 로드샾에서 Hot Wine을 마신 기억이 난다.




하우프트 거리 동쪽 끝에서 하이델베르크 성으로 오르는 골목. 




성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난 한식당.




하이델베르크 4월의 밤공기는 아직 차다.

마르크트 광장 노천카페 테이블에는 보온담요가 제공된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식당 안의 축구중계를 들여다보는 FIFA 랭킹 1위국의 팬심.

이 사람은 불과 3개월 뒤 월드컵에서 자기 나라가 동북아의 작은 나라에게 세계축구사에 남을 패배를 당하며

예선 최하위로 탈락하는 굴욕을 당하리라 상상이나 했겠는가. 




카페 내부를 담으려 하자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는 멋진 커플.




단어만으로는 학생을 위한 술이라는 거 같은데,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학생을 위한 술이 10유로면 비싼 거 아닌지.




둔턱을 낮게 한 장애인 주차공간.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한국에서도 이런 형태의 계단을 봤던 거 겉은데, 독일에서 용도를 알게 되다니..   




순찰차도 역시 벤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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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를 가로지르는 [네카어 강]과 네카어 강의 남북을 이어주는 [카를 테오도르 다리]

하이텔베르크 성과 함께 하이델베르크 구도심의 상징이다. 



네카어 강 북단에서 바라본 카를 테오도르 다리. 


1788년 다리를 만든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는데,

역사에는 늘 직접 생고생한 사람들은 흔적도 없고 말로 지시만 한 사람의 아름만 남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기쓰고 권력을 갖고픈 모양인데, 어쨌든,

이 다리는 처음에 나무로 만들어졌으나 홍수로 유실된 후 지금의 돌다리로 다시 안들었다 한다.

다리 입구 왼쪽의 동상은 다리 건설을 지시한 선제후 카를 테오도르.



카를 테오도르 동상 맞은 편 다리 입구 오른쪽에는 아테나 여신상이 있다. 




네카어 강 북단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성은 지대도 낮고 무척 아담해 보인다.



저 배는 용도가 뭐길래 선체가 저리도 긴지...

그리고, 저 배의 끝부분에 올려진 자동차..



강 건너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이렇게 올려져 있는데 이걸 어떻게 실었을까..?




발가벗겨진 나무에 새로운 가지와 순이 돋기 시작한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이제 세계 어딜가나 볼 수 있는 사랑의 자물쇠.

네카어 강변에도, 카를 테오도르 다리 교각 모퉁이 작은 고리에도, 어디든 조금의 틈만 보이면 아둥바둥 매달려 있다.


모든 청춘이 다 이렇게 낭만적이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고뇌에 찬 청춘이 더 많다.




구시가지 성벽의 일부였던 카를 테오도르 다리 남단 입구의 브뤼케 문.

보수중인 듯한데, 공사 가림막에 외관을 그려넣은 건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 거 같다.

완공후의 모습도 알 수 있고, 마치 실제 문이 있는 것같은 운치도 있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에서 하이델베르크 성의 야경을 바라보면, 조명효과로 인해 성이 있는 곳이 마치 천상계(天上界)인 듯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곳 맞다.

카를 테오도르 다리 위에서 하이델베르크의 야경을 즐기는 젊음들.

인원이 많으니 맥주를 박스로 담아온 거까진 이해가 되는데, 늘 과한 게 문제다.

자기 행동으로 인해 주변이 불편해짐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든 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구도자는 무슨 생각을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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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성 안의 궁전으로 들어가 보자.


차량 하나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정도의 좁은 문이 궁전으로 통하는 문이며, 여기서 입장권 검사를 한다.

필요시 아치형 입구 내부 상단에 설치된 철제 장애물을 내려 출입을 통제할 수 있다.




하이델베르크城 건물의 외벽 대부분은 모조품으로 진품은 따로 보관되어 있단다.

모조품을 가지고 입장료를 받는다는 게 어찌보면 사기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모조품임을 공개하고 입장료를 받는 거니, 선택은 관람객의 몫이라면 딱히 할 말도 없다.
또 뭐가 모조품인지 비전문가로선 알지도 못한다.
그보다 정작 진품은 어디에 있는지, 따로 보관하는 이유는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성내 궁전 안내도.




입구 정면의, 안내도 213번의 프리드리히 궁.

건물 외벽의 인물 조각은 독일 황제의 선거권을 가졌던 역대 신성로마제국 선제후.




프리드리히 궁 앞에서 관광객을 맞는 하이델베르크 꼬맹이.

가까이 가면 녀석이 피할까봐 많은 관광객들이 조심스레 다가가는데,

정작 이 녀석은 꼼짝을 안하며 마치 '후딱후딱 다가오지 왜들 이리 소심해~'라는 듯 시크하게 여유를 보인다.

난, 잠시 '혹시 이녀석의 전생이 저 조각상 선제후가 아니었을까' 하는 공상소설을 써봤다.




프리드리히 궁 입구의 해시계.

해가 넘어가며 생기는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할텐데, 독해가 안 된다.

시각을 표시하는 로마숫자에 4와 5는 왜 없는 건지..

로마숫자로 표시된 세로줄은 時 표시일테고, 기호로 표시된 가로줄은 分 표시인가?

그림자의 방향과 길이에 따라 時와 分을 알 수 있게끔.


그렇다치고, 이제 프리드리히 궁 좌측 건물 지하의 와인 저장고 파스바우(Fassbau)로 들어가보자.

안내도 214 지점이 가리키는 지하로 들어가면 왼쪽에 음료수를 판매하는 카페가 있고,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세계에서 가장 큰 오크통이 있다.


저 시대의 한가닥 한다는 귀족들은 저마다 집에 와인 오크통을 보유했단다.

그리고, 그 오크통의 크기가 권력과 부의 바로메터였다니, 그렇다면, 모든 걸 가진 왕의 오크통은 어느 정도 크기일까..



아래 서있는 사람과 비교해봐도 크기와 규모가 압도적임이 느껴지는 이 오크통의 이름은 큰 술통이라는 의미의 그로세 파스.

높이 8m에 221,726L의 와인을 저장할 수 있는 이 오크통은, 당초 전쟁과 전염병에 대비한 물 저장용으로 1751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쨌든, 폼 잡고 허세를 부리려면 저걸 이용해 와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저 정도 규모를 채우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포도가 필요한 건지 가늠이 안 된다.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저 오크통을 채우기 위해 백성들에게 포도 수확량의 십일조를 받아 와인을 제조했지만 와인 맛은 별로였다고 한다.

당연하지.. 십일조로 강제 징수되는 포도를 누가 좋은 품질로 납부했겠는가. 온갖 하품의 포도가 뒤섞였으니 와인 품질은 애시당초 개나 줘야 할 수준이 뻔하다.


오크통과 저장고, 둘 중 어느 것의 규모를 먼저 생각하고 다른 하나를 그 규모에 맞췄을까..



오크통 위에서 나선형 계단을 두 바퀴 돌아 내려오면 오크통 앞에 있는 인형의 주인공은 난장이 페르케오(Perkeo).

술통을 지키는 게 그의 책무였음에도 오히려 매일 와인을 마시고 취하는 바람에 종을 흔들어 깨우느라 속을 썩였다고 한다.

그래도 그 시절에 줘터지고 쫒겨나지 않은 걸 보면, 혹시 낙하산?


상상을 초월하는 그로세 파스 외에 하이델베르크 城에서 내 눈길을 잡아끈 게 또 하나 있다.

안내도 211번의 오트하인리히 궁의 독일의약박물관.


오트하인리히 궁이 일반 건축물과 다른 외형상 특이점은 층이 올라갈수록 층고(層高)가 점점 낮게 설계됐다는 것.

그러고보니 위로 갈수록 기둥이 짧은 거 같다.

그럼으로써 건축물이 더 길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니, 그 옛날 건축가들의 감각이 정말 비상하다.

오디오 가이드에 의하면 기둥의 조각들은 모두 神이고 神들이 저곳에 있는 각각의 이유가 있지만 너무 복잡해 패스.


외관도 그렇지만, 저 안에 들어가 눈으로 확인한 의약박물관의 모습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마치 우리 한의원에서 볼 수 약재함 같은 서랍도 흥미롭지만,

약재를 재는 천칭부터 약재에서 결과물을 추출하는 압축기까지, 모든 계기(計器)가 놀랍도록 정교하다.

과학의 독일, 정밀함의 독일이 괜한 말이 아님을 입증한다.




오트하인리히 궁 왼쪽 구석에 있는 카페.

그 어떤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춘 카페보다 훨씬 진하게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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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에 왔으니 하이델베르크 城을 봐야 한다.
성까지 가는 별도의 교통수단은 없다. 구도심에서 도보로 올라가야 하는데 충분히 걸을만한 거리다.

하이델베르크 城이 특이한 건,
城의 외형이 폐허 상태로 방치되어 있어 내가 본 유럽의 城 중 외견상 가장 볼품없다는 것이다.


멀리서 봐도 뭔가 휑한 게 버려진 폐가처럼 느껴진다.

13~17세기에 걸쳐 건설되었으나, 종교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의 갈등으로 야기된 30년 전쟁과

그 이후 이어진 팔츠전쟁으로 城 외부의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훼손됐기 때문인데,

어찌보면 그런 꾸밈없는 모습이 더 당당하게 와닿는다.



대개 유적지는 복원작업을 하는 게 보통이지만, 하이델베르크 성은 보수없이 파괴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훼손 자체가 역사의 현장이고, 오히려 누군가에 의한 파괴의 증거를 그대로 존치함으로써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는 의미도 있는 듯하다.


城에 대한 유래 등 세부내용은 백과사전이나 하이델베르크 web site에 정확하고 자세히 있을테니,

여기선 관람에 대한 팁과 흥미로운 재밋거리 위주로 언급한다.


城을 구석구석 모두 돌아보려면 안내데스크에서 티켓을 구입해야 한다.

티켓이 없으면 城 내부 입장이 안 되고 주변 정원 산책에 만족해야 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7유로.

장기간 자유여행 등 빡빡한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면 오디오 가이드 이용을 권하고 싶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비용은 5유로로 제 값을 한다.

오디오 가이드 신청시 손 안에 들어가는 크기의 스피커 단말기와 성내(城內) 각 건물과 지형의 번호가 적힌 안내도를 준다.



지형의 번호를 누르면 스피커를 통해 그것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城 구성에 대한 내용을 알고 보는 것과 눈으로만 보는 건 천양지차.

일행이 많지 않으면 1개를 가지고 서로 돌려 들어도 되니 굳이 인원수대로 빌릴 필요는 없다.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려면 한국 신분증을 맡겨야 하며, 반납시 신분증과 맞교환한다.


성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오른쪽 정원부터 둘러보자.


유럽의 제법 이름있는 궁전의 공통점 중 하나는, 궁전 앞뒤 좌우로 정원이 엄청나다는 것.

정원의 규모가 그 시절 유럽 군주들의 자존감이었다면 이해는 된다.



위 약도 218번 포인트에서 본 정원의 모습으로, 궁전 어느 곳에서나 커튼을 제치면 그림같은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니 굳이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고, 그만큼 운동랑이 부족하니 나오는 건 똥배.

반면에, 그런 웅장한 스케일의 정원이 조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백성의 삶이 희생됐을까.

그래서 神은 백성의 고혈만큼 군주에겐 똥배를 내주는 모양이다.




비록 조각상이지만, 괴테를 여기서 만나다니..



괴테 조각상 우측에 있는 괴테의 벤치.

저 자리에 은행나무가 있던 1815년 괴테가 저 곳에서 유부녀 빌레머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정원에서 보는 하이델베르크 城과 구도심도 아름답다.



정원 220번 포인트에서 바라본 성의 모습.



202번 포인트에서 바라본 전경.




203번 포인트에서 본 전경.




갑옷을 입고 2층에서 뛰어내린 장군의 발자국이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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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무렵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하여 호텔 체크인 후 제일 먼저 찾은 한국관.

저녁시간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저녁이 목적이었다면 다른 곳도 있었다.

햇수로 17년 전,
2001년 12월 배낭여행시 찾았던 그곳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그때 늦도록 맥주를 마시던 나에게, 파독 간호사로 조국을 떠나 독일에 뿌리를 내리게 된 인생역정을 들려주시던 사장님은 어찌 되셨을까.
17년이 지나 큰 기대는 안 하지만, 혹시 아직도 계실런지..
또 그때 한국관에서 일하시던, 연변에서 오셨다던 아주머니는 어찌 되셨는지..


17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국관은 변함없이 그 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17년을 한곳에서 꿋꿋하게 자리잡고 있는 걸 보니 뜬금없이 이 건물 소유주가 궁금해진다.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선 한국관의 실내는 내 기억보다는 좀더 화려해진 느낌이다.



이곳의 저녁시간으로는 다소 이른 시각이어선지 아주머니 두 분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두 분을 조심스레 둘러보는데..

아~~ 한눈에 확인되는 분이 계시네...
사장님이 17년 전과 거의 변함없으신 모습으로 계시다.


내 블로그에 올렸던 17년 전 방문해 함께 찍었던 이 사진을 보여드리니 너무 놀라신다.

그 사진 속 나를 확인하시고는 되묻는 말씀.
"그럼 그때는 총각이었어요?"
"17년 전에는 결혼한 지 18년이 됐었지요~"
잊지 않고 찾아줘서 너무 고맙고 반갑다며 차도 내주시고 선물로 접시도 하나 주신다.
회포 풀 듯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당시 함께 일 하시던 연변 아주머니도 좋은 분을 만나 다른 곳에 살고 계시다고.


17년 세월이 무색하리만큼 거의 변함이 없으시다. (오히려 나만 주름이 많아진 듯.)

연변에서 오셨다던 분도 잘 살고 계시다니 너무 좋았다.

사람 인연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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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독일여행의 컨셉은 [AGAIN 2001]이다.

17년 전인 2001년 직장생활을 접고 떠났던 유럽배낭여행.

그때 들렀던 14개국 42개 도시 모든 곳이 지금도 기억에 새롭지만, 그 중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몇 군데를 코스로 잡았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자동차 렌트를 하여 하이델베르크 - 로텐부르크 - 퓌센 - 스위스 루체른을 거쳐 다시 슈투트가르트로 들어와

자동차를 반납하고 열차로 파리로 돌아간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 맞은 편에 위치한 렌트카 업체 Sixt에서 한국에서 예약한 차량을 인도받았다.

렌트카 서류에 서명할 때는 늘 찝찝하다. 한글로 된 계약서도 깨알같은 문구를 다 읽어보질 못하는데,

하물며 영어로 된 계약서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도 모른 채 동의한다는 게 사실 얼마나 찝찝한가.

그런 찝찝함을 조금이나마 더는 방법은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렌트카 업체를 선택하여 브랜드 가치를 믿는 수 밖에 없다.



이번 여행에서 렌트카에 대해 무척이나 아쉬웠던 것.

한국에서 렌트 신청시 차량모델은 BMW 530.
둘이 움직이는 거라 그리 큰 차는 필요없음에도, 오토기어와 GPS를 옵션에 넣다보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데다
생각보다 가격이 저렴하여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했는데, 정작 현지에서 우리에게 인도된 차량은 벤츠 C class 180.
계약서에 사정에 따라 동급 차량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했으니, 브랜드가 바뀔 순 있지만 그래도 배기량이나 스펙은 어느정도 비슷해야지.
하지만, 이의 제기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탑승공간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주차의 편의성이나 연비를 감안하더라도 굳이 큰 차가 필요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차를 인도할 때 KEY만 건네줄 뿐, 차에 탑재된 기능이나 계기 조작 등에 대한 어떠한 부연설명도 없다.
차종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변속기어나 주차 브레이크, 와이퍼 등 안전운행에 관한 사항도 본인이 알아서 깨우쳐야 한다.
그래도 함부르크보다는 난 게, 함부르크에서는 주차장소만 알려주고 알아서 차를 꺼내 가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영업점 앞까지 가져다 준다.

그렇게 차를 인도받아 급하게 운행에 필요한 기본적인 계기만 이것저것 확인 점검하고 하이델베르크로 향했다.

그리고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들른, 정식 휴게소가 아닌 우리 식으로는 졸음쉼터 화장실.


좌변기에 걸터앉는 덮개가 없다.

남자화장실이라면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이게 남녀공용이다.
여성의 경우 어쩌라는 건지.. 나올 수 있는 자세는 스쿼트 뿐인데..
플러싱을 손바닥 인지센서로 하는 것도 이채로운데,

또 하나,


하나의 설비로 물과 비누와 건조까지 다 해결하는 독일의 실용성이라니...



그보다, 화장실을 들렀다 나와 우리에게 타고 온 차를 보니 인도받았을 때는 인지하지 못 했던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어~ 지붕 소재가 다르네..


그랬다. 주어진 차량은 카브리올레. 자동차 마니아들에겐 로망이기도 한 오픈카다.
당초 예약한 BMW 530보다 사이즈는 작지만, 기억에 남을 로드투어가 되라고 나름 많이 배려해준 거다.
공기좋고 바람좋은 한적한 도로를 머리결을 날리며 오픈카로 질주하는, 영화나 CF에서나 가끔 보던, 그런 기분은 어떤 걸까.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뚜껑을 못 열어봤다.
렌트카 인도시 차량기능과 작동에 대해 구체적 설명을 해주지는 않지만, 각종 버튼을 보면 '이건가 보다'라는 감은 온다.

문제는, 어찌어찌하다 오픈은 됐는데, 이게 닫히지가 않으면 난감해진다는 것.
혹시라도 고장일 경우, 원래부터 고장인지, 운행중 고장인지 여부에 대한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것도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비라도 오면...'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안 하는 게 낫겠다 싶다.

원래 바람 날리는 것과 소음을 싫어해 평소에 창문도 안 열고 다니는데 오픈은 무슨.. 하며 신경을 끊었지만,
특히 스위스에서 질주하는 오픈카들을 보며 뜬금없이 홍길동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이나, 오픈카로 오픈을 못하는 나나..

이 이야기를 들은 아들이 그런다. "아빠 나이 드셨네..."
아내가 맞장구 친다. "맞아~ 아빠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이 끝까지 안 열기에 나도 놀랐다. 예전같았으면 무조건 열었을텐데.."

나이들면 새가슴이 된다는네,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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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투트가르트 주변엔 어떤 곳이 있을까.
지도를 검색하니 슈투트가르트 북쪽 16km 지점에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이 있고,
2시 방향 6km 떨어진 곳에는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이 있다.
가까운 곳은 나중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기로 하고,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을 먼저 돌아보자.
게다가 유럽은 궁전 아닌가.

슈투트가르트역에서 S5 라인을 타고 루드비히스부르크역에서 내려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으로 향하는 시내 성당 앞 넓은 광장에 마켓이 형성되어 있다.


마치 우리 시골의 5일장 같은 모습이다.



궁전 관람을 위해 궁전 정면에 길게 조성된 정원 입구에서 티켓을 구입했다.
정원만 관람하려면 9유로, 궁전 내부와 박물관까지 관람하는 통합티켓은 18유로.
우리는 통합티켓을 구매.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은 아래 평면도 검정색으로 표시된 궁전을 중심으로 앞뒤 그리고 오른쪽에 넓은 정원을 조성하고 있는데,
전체 정원의 넓이가 상상 이상이다.


평면도의 검은 색 하단의 궁전 전면 정원의 넓이만도 엄청나다.

평면도의 번호가 우리가 돌아본 동선.


1


입구에서 바라본 정원과 궁전.
정원과 궁전, 수목원 등의 약도가 그려진 동판이 있다.


정원 중간에 있는 분수.



궁전 앞에 조성된 정원의 조경도 다채롭고 화려하다.



2


궁전 좌측에 조성된 작은 연못정원.

여기서 3번 구역을 거쳐 궁전으로 들어간다.


3


궁전 안쪽에는 휴게시설이 없어 식사나 음료는 여기서 해결해야 한다.

이제 궁전으로 들어가 보자.


건물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안내 데스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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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입구로 들어가면 광장 오른쪽에 있는, 궁전 일부를 활용한 박물관과 일부 전시관.

이 건물 뒤가 매표구와 우리가 지나온 정원이다.


궁전 일부를 활용한 박물관과 일부 전시관은 정원 관람티켓만으로도 자유롭게 관람이 허용되지만,

궁전내부 투어를 하려면 오른쪽 박물관 입구 안내데스크에서 18유로 통합티켓을 제시하여 궁전투어 티켓을 받은 후

지정된 시간에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관람이 허용된다.

궁전내부 투어는 영어와 일본어 가이드 중 선택할 수 있다.

영어와 일어 중 선택이라..
이거나 저거나 어차피 다 이해하기 힘든 건 매일반이겠지만, 동양인이 동양인 설명을 들으며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는 거 보다는

서양인 설명을 들으며 어리벙벙 대는 게 조금은 더 맘이 편할 거 같아 영어버전으로 선택.

정해진 시간에 모인 궁전투어 인원은 나까지 모두 네 명.
게다가 나를 제외한 세 명은 일행이다.
하.. 인원이 적으니 가이드는 나름 성실하게 한다고 눈 맞춰가며 설명을 하며 간혹 이해됐는지 질문도 할텐데,

다른 세 명은 일행이고.. '이거 곤혹스럽고 피곤한 투어가 되겠네..'

그런데, 영어가이드, 꽤 젊은 아가씨의 발음이 얼마나 또렷하고 명쾌한지 우려했던 거보다 이해가 잘 된다.

그렇다고 나만을 위해 말을 느리게 하는 것도 아님에도 듣기가 어렵지 않다.
저 처자에게 영어회화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궁전투어 1시간은 그렇게 생각보다 즐겁게 시간이 빨리 흘렀다.


궁전투어는 위 사진의 2층 연회장에서 시작되는데, 여기서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 정원의 신기한 특징을 보았다.
저 건물 중앙쯤의 궁전 2층 연회장 커튼을 여니 우리가 걸어왔던 앞 정원이 바로 눈앞에 앞마당처럼 펼쳐진다.
정원을 걸어 궁전에 도달할 때까지 경사를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앞 정원에서 궁전과 뒷 정원까지 전체적으로 경사를 이루며

건물의 앞과 뒤에 단차가 현성된 것.
마치 매직아이를 보는 듯하다. 사람의 창의력이란...


루드비히스부르크 궁전에서 재밌게 본 건 2층 바닥의 다양성.
바닥이 대리석이나 돌로 되어있는 여느 궁전들과 달리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발을 디딜 때마다 삐걱 소리가 나는 부분이 있다.

외부인의 접근을 감지하기 위한 것인지..
반면에 방과 방사이는 돌로 되어 있다.
시종의 방에 종을 설치하여 왕의 침실과 줄로 연결한 것도 재밌다. 요즘의 인터폰과 같은 기능.


이 건물 맞은 편은 이렇게 형성되어 있다.



궁전으로 둘러싸인 안쪽 광장이 축구장 정도 면적이라면, 전체 평면도에서 궁전을 감싸고 있는 정원의 총 규모가 짐작될런지..

전체 궁전 중 왼쪽 건물이 왕이 사용하던 궁전, 오른쪽 건물이 왕비가 사용하던 궁전이라는데, 하루종일 부부가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을 듯.


가이드에 의한 궁전투어는 왕이 사용하던 왼쪽 궁전까지만 진행된다.


궁전 내부와 박물관 관람시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으며, 배낭은 코인라커에 맡겨야 한다.

코인라커 이용은 무료이지만, 잠글 때 1유로 코인이 필요하다.

라커에 짐을 넣고 문을 닫은 후 동전을 투입하는데, 아무리 봐도 문 외부에 동전 투입구가 없다.

그리고 문을 닫아도 키가 뽑히질 않는다. 뭐가 문젤까 생각하며 라커 안팍을 살펴보니 라커 문 안쪽에 답이 있다.



동전투입 방법이 한국과 다르다.

우리는 라커 문을 닫은 후 문 밖에 부착된 삽입구에 동전을 넣는데, 얘네는 라커 문 안쪽에 동전 삽입구가 있어 먼저 코인을 넣고 문을 닫은 후 키를 뽑는다.

나중에 물건을 찾을 때 코인이 다시 나온다.


사진촬영이 금지된 박물관과 전시장에는 사진에 담고 싶은 게 정말 많다. 또 각 전시실마다 직원이 있지도 않다.

때문에, 맘 먹기에 따라서는 도촬도 가능하다.

하지만, 서로 믿는다는 묵계가 형성된 듯해 차마 그러질 못했는데, 사진이 없으니 아쉽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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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광장을 가로질러 나가면 오른쪽에 화원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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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뒤에는 넓은 면적의 수목원이 있는데, 다 돌아보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 눈으로만 봤다.



궁전을 벗어나 돌아오는 길.



우리가 올 때 열렸던 마켓이 철수한 넓은 광장에서 아이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방인에게 관심을 표하고 있다.




근데.. 올 때도 본 이건 대체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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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짬을 내어 슈투트가르트를 둘러보고 싶다면, 쾨니히 거리를 중심으로 좌우로 둘러보면 되고,

좌우를 둘러볼 시간도 없어 슈투트가르트만의 특징을 보고 가겠다면 쾨니히 거리 좌측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곳엔 이런 것들이 있다. 


슈투트가르트 사람들이 편하고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휴식처인, 신궁전의 앞마당 슐로스 광장.



저 건물 뒤가 쾨니히 거리다.



오른쪽에 보이는 둥근 지붕이 있는 곳이 지하철 입구.

그만큼 접근성이 좋기도 하지만, 쾨니히 거리 주변에서 식사를 하고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많은 거같다.

광장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지만, 공원의 개념에 더 가까운 듯.



슐로스 광장을 전면에 두고 있는, 뒤에 보이는 것이 신궁전이며, 앞에 있는 탑은 빌헬름 기념비,



1807년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신궁전은, 지금은 바덴뷔르템베르크 州 관공서와 주의회로 사용되고 있단다.


슐로스 광장을 지나면 쉴러 광장이 이어진다.



규모는 슐로스 광장에 비할 바 아니지만, 오히려 광장의 이미지에는 더 어울린다.

가운데 동상은 극작가 쉴러의 동상이라고 한다.  광장 이름까지 붙은 걸로 보아 저 분이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셨는지..


슐로스 광장이 신궁전과 연결되는 것과 같이, 쉴러 광장은 구궁전과 연결된다.

그러니까 쉴러 광장이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으로는 슐로스 광장보다 더 의미가 있다는 거.  



이 안이 구궁전이다.



신궁전을 짓기 전까지 뷔르템베르크 공국의 대공이 거처하던 곳으로, 지금은 왕가의 보물과 선사시대 유적들이 전시된 주립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여기서 우연히 운 좋게도 재밌는 장면을 봤다.

건물이 꺾어지는 지점 상단의 원형 타워의 시계가 매시 정각에 종이 울리는데,



시계 위의,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던 들소 두 마리가 종소리에 맞춰 소싸움 하듯 달려들어 박치기를 한다.

파손 방지를 위해 실제 접촉이 이루어지게 하진 않았겠지만, 저건 언제 적에 만들었을까..

저 건물을 지을 그 당시에 저런 기술력이 가능했을런지.. 



구궁전 외부에 박물관이라는 글자가 부착되어 있다.

 

구궁전 뒤로는 카를 광장이 이어진다.

카를 광장은 원래는 신궁전 건축시 신궁전과 연결된 정원으로 조성되었는데,

신궁전과 카를 광장 사이에 차도가 들어서면서 오히려 쉴러 광장과 함께 구궁전을 앞뒤로 에워싼 형태가 됐다. 



지금은 벼룩시장이 열리곤 하는 카를 광장의 중앙에 있는 기마상의 주인공은

프로이센의 왕으로 철혈재상으로 불리는 비스마르크와 함께 독일제국을 통일한 카이저 빌헬름 1세. 




쉴러 광장 옆의 규모가 크고 연륜이 느껴지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보니 다른 성당들과는 다소 이색적인 부분이 많다.



대개의 성당과 달리 제단 위 천정에 장식이 있고, 저 늘어진 것들은 음향 마이크? 



좌측 벽면의 무장한 병사들 조각도 성당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은 아니다. 

예전에 이 지역 교회가 정치권력의 지배를 받은 것인지.. 



스테인드글래스 역시 일반적인 성당의 화려해보이는 색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 성당의 역사는 이곳에 담겨있는 듯하다.

누워있는 상과 벽면의 조각들의 유래를 알면 위에 궁금하던 사항도 풀릴 거 같은데,

그러기엔 시간도 없지만 사실 내가 그 정도로 종교나 역사 마니아는 아니니 궁금증만 간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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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도시에는 저마다 그 도시를 대표하는 가장 핫(hot)한 도로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중앙역 맞은 편에서 시작되는 쾨니히 거리가 슈투트가르트의 그런 곳이다.

쾨니히 거리 좌우에는 패션 브랜드와 각종 식당은 물론, 영화관 서점 악기상 등 다양한 업소가 사람들을 맞는다.



보행자 전용도로인 쾨니히 거리 한복판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저 분..  정말 실력이 보통이 아니던데..

그냥 지나치기 아쉬울 정도의 너무나도 멋진 연주를 라이브로 들어 행복했다.



의외로 아침부터 사람들이 자주 찾는 두 곳.



시내 중심에 규모가 꽤 큰 꽃집이 있다는 것도, 그리고 아침부터 문을 연 것도 의외였지만, 이른 시간에 꽃집을 찾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도 의외였다.




또 하나 내게 흥미로웠던 곳.

독일어를 모르기 때문에 간판의 녹십자 마크만 보고 '혹시 약국인가' 하고 가보니 약국 맞다.

출근시간 약국이 이렇게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뭘까.

맥주의 나라이니 밤새 마신 맥주로 인한 숙취 해소용 약을 찾는 것인지..




복합상가의 식당가.

우리는 보통 FOOD COURT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데, 여기는 FOOD LOUNGE라 하나보다.

COURT보다 LOUNGE가 왠지 더 멋스러워 보이긴 하네.


간단하게 먹겠다고 시켰더니..



계산기 돌리면 먹을 게 없다.




이곳은 과일을 재료로 만든 쥬스나 샐러드 혹은 스낵을 판매하는 곳인가 본데,



과일 순도가 이것만 할까..

각자 코인을 넣어 작동시키는 이거야말로 100% 오렌지쥬스.




먹을 걸 찾아 카페 안까지 들어온 비둘기.

발밑까지 다가와 신발을 쪼아가며 당당하게 빵을 요구하는 담대한 애들이다.



슈투트가르트의 고전적 모습을 보려면 쾨니히 거리 동편, 그러니까 중앙역 맞은 편에서 들어가며 좌측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제 그곳으로 방향을 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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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송노조 파업으로 인해 파리에서 출발이 다섯 시간 늦어지는 바람에 슈투트가르트 도착 역시 그만큼 늦어 숙소 체크인이 급하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빠져 나와 길을 건너니 쾨니히 거리 초입에서 7인조 브라스 밴드가 요란한 연주를 하고 있다.

마치 노조 파업을 뚫고 국경을 건너온 우리를 환영하는 듯하다. 



슐로스 광장을 지나 쾨니히 거리를 관통하여 찾아간 숙소는 일단 방이 넓어 좋다.

파리의 숙소는 여행용 가방 두 개를 바닥에 펼칠 수 없을 정도로 좁았는데, 가방 두 개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다는 게 이처럼 즐거울 줄이야.

근데... 옷장 문이 잘 안 맞는 건 뭐냐..  오차없는 정확 정밀이 독일의 트레이드 마크 아닌가..


저녁도 먹어야 하고, 중심가 지리도 익힐 겸 거리로 나섰다.

슈투트가르트 다운타운의 가장 중심 번화가인 쾨니히의 밤거리는 적막하다.

쾨니히 거리 좌우에 있는 거리도 마찬가지다.



쇼핑타운과 럭셔리 매장이 주를 이루는 거리라서인지 어둠이 내린 후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다.



분위기 있어 보이는 BAR 만이 영업을 하고 있는데, 밖에 앉아 맥주든 커피든 한잔 하고 싶을 정도로 제법 낭만스러워 보인다.

놀라운 건, 마치 왁스를 입힌 것처럼 도로에 휴지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거.


이곳 사람들은 정말 밤엔 아무 것도 안 하나..??

사람 사는 곳인데 그럴리가..


쾨니히 거리 끝에서 마리엔 거리로 들어가니 여기 사람 사는 곳 맞다.



많은 사람들이 로드 카페에서 밤의 낭만을 즐기고 있다.

음주 인파가 있는 이곳 역시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너무 깨끗하다.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배가 고프다.  기름진 건 조금 거북할 거 같아 망설이고 있는데, 일식당이 보여 들어갔다.

 


라멘이 20유로면.. 25000원이 넘는다는..  ㅎㄷㄷ~~  가장 싼 야채라멘도 14유로다.



무료 화장실이 흔치 않은 유럽에서, 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스타벅스는 아주 반갑고도 고마운 존재다.

때문에 스타벅스가 보이면 그 위치를 잘 기억해 둬야 필요할 때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


 

스타벅스를 이용하는 젊은이들의 형태는 어디나 비슷한 듯.



맥주의 본 고장 독일에 왔으니 브로이하우스는 아니더라도 맥주 맛은 봐야 안되겠나 싶어 숙소로 돌아가며 맥주를 사려는데 파는 곳이 없다.

편의점까지 모두 문을 닫았다.  하는 수없이 조금 비싸지만 숙소에 있는 자판기에서 맥주를 구입.

내일부터는 해 떨어지기 전에 미리미리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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