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프랑스를 벗어나 2001년 유럽배낭여행시 인상깊었던 독일 서남부 몇몇 곳에 대한 추억여행을 떠난다.

파리동역에서 독일 슈투트가르트로 출발시간은 10시 55분.
지하철 환승도 익숙치 않은데다 동역의 내부 구조도 몰라 발생 가능한 헤맴을 고려하여 서둘러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나섰다.
이름만으로는, 파리북역은 파리의 한참 북쪽에 있고, 파리동역은 동쪽에 위치했을 거 같은데, 실제 거리는 거의 붙어있다.
각 역의 운행노선을 보니 역의 이름은 지명을 딴 게 아니라 기능과 역할에 의한다.
즉, 파리의 북쪽으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역이 파리북역, 동쪽으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하는 역은 파리동역이다.
생각해보니 대단히 실용적인 발상이다.
뭐.. 지도상으로도 북역이 약간 북쪽에, 동역이 살짝 동쪽에 있기도 하다.


다행히 숙소인근 지하철역 Volontaires에서 메트로 Line 12를 이용하면 파리동역 지하로 연결되어 편했다.


여행을 하다보면 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한 에피소드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 파리동역이 이번 여행의 시작부터 에피소드를 안길 줄이야..



10시 5분쯤 도착하여 열차 출발시간 및 승강장 안내 모니터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10:55 슈투트가르트行 열차가 안 보인다.

'뭐냐...?'


여기서 1차 에피소드.

직원에게 물어보니, 이런 젠장... 운송노조 파업이라니...
프린팅한 온라인 티켓을 보여주며 "그럼 이 열차 이용이 불가능하냐?"고 물으니,
열차운행 시간표를 한참 뒤적이고는 "15:55분 뮌헨行 열차를 타고 슈투트가르트에서 내리면 된다"고.
"그럼 내 지정 좌석은?" 그건 모르겠단다.
빈 자리에 앉으면 된다는데, 파업으로 인해 운행편수가 줄었는데 빈 자리가 있으려나..

어찌됐든 갈 수는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만, 그때까지 어디서 뭘 한다지..
일단 다섯 시간동안 커다란 가방을 들고 다닐 순 없잖아..
때마침 출발을 궁금해하던 딸아이가 알려준 지하 1층의 코인라커를 찾았다.
이따금씩 발생하는 테러 때문인지 코인라커를 이용하는데도 가방 내용물 탐색을 한다.
X-ray 투시를 마친 가방을 들고 코인라커가 있는공간으로 진입하는데까진 좋았다.

여기서 2차 에피소드.


사용설명서대로 라커 문을 닫고 코인을 넣었음에도, 보관용 티켓은 출력이 안 되고 좀 있더니 라커 문이 다시 열린다.
코인만 꿀꺽. @ㅁ@~ '어라~ 이건 뭐지..'
8유로가 아까웠지만 내가 뭔가 작동을 잘못했나 싶어 다시 코인을 투입했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
남들은 다들 보관을 마치고 나가는데 혼자 바보가 된 느낌이다.

둘러봐도 직원도 없고.. 다시 나가 직원을 불러 내가 시도했던 라커로 데려와 상황설명을 하는데,
내 영어가 짧아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아예 영어를 못한다.
게다가 눈치마저 없어 모두가 인정하는 나의 글로벌 바디랭귀지마저 전혀 감을 못 잡으니..
저도 답답했는지 다른 직원에게 넘기는데, 얘도 영어 안 되는 건 매일반이지만 그나마 눈치는 있어
나의 몸짓을 이해하고는 수동으로 조치를 취해주는데.. 라커 문을 열어보니 동전이 꽉 막혀있다.

직원이 막혀있던 동전을 다 꺼내더니, 동전을 얼마나 넣었냐고 묻는다. (아니.. 영어가 아니었으니 그렇게 묻는 거 같았다.)
16유로라고 하니, 세상에나.. sixteen을 못 알아듣네..
궁여지책으로 손가락 열 개를 폈다가 다시 여섯 개를 펴며 "ten plus six. ten and six" 라고 거듭 반복하니,
자기도 민망한지 막혀있던 동전을 모두 내게 건네주고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얼마인가 세어보니, ㅋ~ 그 생쇼를 한 댓가로 3유로 벌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가방을 라커에 보관한 후, 첫날 저녁을 먹었던 한식당 [잔치]를 찾아가 점심을 먹고 시내 산책을 했다.


한식당 [잔치]와 파리동역 사이를 두어시간 걷고는, 라커가 또 무슨 조화를 부릴지 몰라 시간 여유를 두고 동역으로 돌아왔다.

역시나..


이어진 세번 째 에피소드.


티켓 삽입구(빨간 원)에 보관티켓을 삽입하면 내가 보관한 28 B 라커가 열려야 함에도 열리지가 않는다. (큰 M은 Medium Size라는 의미)

라커가 오밀조밀 붙어있어 내가 라커 위치를 헷갈렸나 싶어 근처 라커 세 개를 돌아가며 시도해봐도 마찬가지.


다시 나가 직원에게 얘기하니 보관할 때 동전을 모두 건네준 직원이 다시 나와 나를 보고는 씨익 웃는다.

마치 '또 너냐?'는 의미가 내포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수동으로 문을 열어준다.

"이 라커가 날 좋아하지 않는 거 같다"는 내 말에 아까보다는 조금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데,

파리동역 몇 번 더 이용하다가 이 여직원과 정드는 거 아닌가 몰라..


오전에 안내받은 15:55분 뮌헨행 열차를 타니 다행히 빈 자리가 많다.



이제 황당했던 걱정과 근심을 파리동역에 남기고, 열차의 스낵코너에서 여유를 만끽하며 슈투트가르트로 간다.



:


노르망디상륙작전 중 미군의 상륙지점인 Omaha Beach는 노르망디 전쟁기념관에서 10시 방향으로 50km 지점에 있다.
우리가 찾은 오마하 해변에는 짙은 안개와 함께 옅은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해변으로 나가니 안개로 인해 바다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상륙기념탑과 조형물 옆으로 상륙작전에 함께 한 연합군의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미군 상륙작전시의 상황 안내도.



해변을 뒤로 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시관과 추모공원이 있다.



[The Garden of the Missing]. 얘들은 명칭도 멋지게 붙인다.


맞은 편에 보이는 전시관으로 가보자.

곳엔 무엇이 있을까.



로비에 들어가니 Competence, Courage, Sacrifice라고 적힌 패널이 제일 먼저 보인다. 아마 미군의 모토인 듯하다.

그리고, 홀에 들어가면 먼저 보이는 게 함께 상륙작전에 참전한 연합국 국기.

함께 역사를 일군 동지애와 존중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전쟁 당시의 기록필름이 계속 상영되는 공간도 있다.




군인들에게 지급된 개인용품과 그에 대한 설명문.

담배와 성냥은 물론 안전면도기, 면도용 거품 등이 보이는데, 설명문을 보면 당시 프랑스 화폐도 지급한 듯.




하단 왼쪽은 함께 참전한 Niland 4형제.

둘은 전사하고 한 명은 실종후 구조됐다는데, 영화 [라이언 이병구하기]의 모티브가 된 형제라고 적혀 있다.



전시관에서 나오니 스피커를 통해 미국 국가가 흘러나온다.



들러보니 국기하기식이 진행되고 있다.




전시관 맞은 편에 있는 일종의 충혼탑이라고 할까..




미국은 해외에서 전사한 전사자 유해를 본국으로 송환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이곳에 안치한 게 의외다.

미국으로 송환히지 않고 이곳에 안치한 이유가, 세계 평화를 위한 미국의 헌신을 알리기 위함인지..

참전용사들을 추모하기 알맞은 날씨였다고 해야 할까..


전시관을 포함하여 이곳의 모든 관리는 미국이 한다고 한다.



:


세계 戰史에 남을 상륙작전이 몇 개 있다.
한국동란의 인천상륙작전도 그중 하나지만, 전쟁의 규모와 작전 스케일을 종합할 때 상륙작전의 으뜸은 노르망디상륙작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작전명 [넵튠](바다의 신)의 노르망디상륙작전은 총괄기획자인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을 비롯하여
미국의 아이젠하워, 브래들리, 팻튼, 독일의 롬멜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전략과 전투의 대가들이 주조연으로 총집결한,
투입 병력과 동원된 장비면에서 육해공이 총 망라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투다.
특정사항을 실행하는 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D-DAY]라는 용어도 상륙작전 개시일인 6월 6일의 암호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의 결말을 바꾼 세계사적 전사(戰史)의 현장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 노르망디 전쟁기념관을 찾았다.


어차피 전투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세기의 기록이 담겨있을 노르망디 전쟁기념관의 외모는 생각보다 담백하다.


그것도 1층은 기념품 코너, 2층은 식당. 이게 끝?


노르망디 기념관의 진면모는 모두 지하에 담겨 있었다.
지하 전시관의 입장료는 20유로. 결코 만만치 않은 입장료를 지불하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지하 전시공간은 생각했던 이상으로 엄청 넓었고, 그만큼 다양한 내용들이 촘촘히 전시되어 있다.
단지 노르망디상륙작전에 대한 내용뿐 아니라, 전화(戰禍)로 뒤덮힌 프랑스의 모습은 물론, 2차세계대전 당시의 국제정세까지 담고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했던 무기 및 장비, 군수물자는 기본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프랑스군뿐 아니라, 적국이었던 독일군의 복장과 장비도 함께 진열해 놓았다.

군인들에게 지급된 개인용품 중 어렸을 적 기억에 남아있는 스피어민트 껌이 당시 군인들에게 지급됐다는 게 신기하고, 코카콜라 병과 같은 형태의 음료수 병이 눈에 띈다.

당시에도 코카콜라가 있었나...




전쟁기념관에 음반까지 전시되어 있는 것도 흥미로운데, 게다가 악보까지...

당시 유행했던 노래인 듯한데, 음악이 있어 전쟁 중에도 심신을 추스리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 꿀 수 있었나 보다.

음악의 힘이 대단함을 느낀다.




전쟁의 잔재인 폭격당한 벽에는 독일에 의해 점령당했던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활동 모습이 담겨있다.




시간대별, 나라별, 해안별 상륙작전 기록사진.
몇 시에, 어느 나라 군대가, 어느 해변으로 상륙작전을 전개했는지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종전과 함께 자유를 얻은 당시 시민들의 기뻐하는 모습도..



기념관에는 단지 노르망디상륙작전에 관한 기록 뿐 아니라, 2차대전 당시 세계 전황에 대한 기록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의 또 다른 축이었던 일본에 대한 기록과 아시아의 전세(戰勢)도 있다.



그 중 눈길이 가는 부분.



영어로 된 지도에는 한반도가 CHOSEN으로 표기되어 있는 반면,


불어로 표기된 지도에는 한반도가 COREE로 되어 있다.

프랑스가 국제 정세에 더 빨랐다는 건가..




종전 후 땅 따먹기에 합의한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의 얄타회담 기록도 있고,




독일 패망후 사무실에서 자살한 히틀러의 사진도 있다.




많은 기록사진 중 한참을 머물게 한 사진.


이외 동영상과 사진 등 무수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지만, 다 올리지 못하는 게 아쉽다.



전쟁기념관 뒤에는 참전국을 기념하는 넓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 정원 한쪽 비탈에 있는 지하벙커 안내 표지.


독일군 노르망디 방어부대의 지휘부가 있던 지하 벙커인데,

어떻게 지하에 이런 시설을 만들었을까 감탄할 정도로 지하 벙커의 규모는 대단하다.



갱도처럼 길게 이어진 벙커에는 전기는 기본이고, 전쟁 수행에 필요했던 통신장비 및 무기는 물론, 책상과 침대 등 일상생활용 물품까지 모든 게 구비되어 있다.

자기 나라 독일도 아니고, 남의 나라에 땅굴을 파서 이런 완벽한 시설을 만들 정도면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을 점령하고 있었던건지..

그중 내 마음을 찡하게 만든 것.



책상에 올려져 있는 세 모녀의 사진이 담겨진 액자.


선과 악의 가치 판단에 앞서 군인으로서 명령에 의해 상대를 살상해야 하는 전쟁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역시 누군가의 가장으로 보고싶은 가족과 돌아가고픈 가정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전화까지 있는 책상이라면 아마도 고위 장교였을 듯한데, 저 액자의 주인은 어찌 됐을까. \

무사히 가족에게 돌아갔을까..


:


몽생미셸 서쪽 해안도시 [생말로]는 성(城)으로 형성된 아담하면서도 오밀조밀 예쁜 도시다.



해안 쪽에 높은 성벽으로 둘러쌓인 지역이 생말로의 중심인 듯한데, 이 성벽의 높이도 높이지만 둘레는 가늠이 안 된다.



성이 크다보니 성으로 들어가는 진입로도 많다.



성밖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성에 들어가는 여러 진입로를 지나 성벽을 끼고 돌아 중앙 정문을 찾았다.

아무래도 중앙이 손님 맞을 준비가 잘 돼있지 않겠나.


정문을 통과하여 인파가 가장 많은 골목으로 들어서니 좌우로 늘어선 패션점이 제법 분주하다.



이렇게 큰 건물이 자리잡고 있을 정도니 이 성의 전체 규모가 만만치 않다는 걸 가늠할 수 있다.



성 안에도 자동차들이 많이 다니고 주차장도 제법 있는데, 이 차들은 성 안 거주자로 등록이 된 차량들인가?
안 그러면 관광객 등 일반차량으로 성내 통제가 안 될텐데..




중심가를 거쳐 바다와 접해있는 성벽길로 올랐다.

이 성벽길이 재밌는 게, 성 안팍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을 정도로 성 내부 구조물과 밀착되어 있다.


바깥 쪽으로는 해안에 정박되어 있는 어선들과 바다를 바라보고,

안쪽으로는 프랑스 특유의 고풍스런 건물들 사이 골목길을 내려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와 썰물 때 빠지면 직사각형 부분에 갇힌 바닷물이 안전한 수영장이 되도록 만들어진, 아이들을 배려한 반 자연 반 인공 수영장.

멀리 보이는 건 마치 몽생미셸 베이비 같다.




성벽 위 동상이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이 캐나다란다. 동상의 주인공은 캐나다를 최초 발견한 사람이라고.


신기한 건, 성벽 안팎에서 보면 엄청 높은 성벽인데, 정작 성벽 위는 그냥 넓은 지상이다.

원래 이곳 지형이 어떻게 된 건지, 호기심 많은 나로서는 이것 역시 매우 궁금.

성벽을 넓게 쌓고 사이를 매립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같고, 그렇다면 지대가 높은 지형의 해안 쪽을 깎은 후 축성을 한다?

그럼, 성벽 안 쪽의 낮은 도심은 어찌 이해해야 하나..


여행은 여행으로 즐겨야 되는데, 난 늘 쓸데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다니는 게 문제다.
하지만, 이런 호기심과 궁금증에 대해 (맞든 틀리든) 나름의 타당성있는 답을 유추하는 게 이미 나에겐 여행의 즐거움이 됐으니 어쩌겠나.




성 안에 있는 생말로 성당.



이 분은 누구신지...



다른 성당에선 보지 못했던 것이 있다.

헌금을 내고 양초에 불을 밝혀 기도하는 것은 여느 성당에서나 흔히 접하는 모습인데, 작은 정을 나무에 박으며 헌금을 내는 것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다.

이것은 무슨 의미인지..


생말로 도시가 성 안에만 형성된 건 아니다.



성 밖에도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다행히 성내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이제 저녁을 먹어야 한다. 니꼬가 맛집을 안내한다.



껑깔르(Cnacale)에 있는 이곳은 니꼬 아버지가 가끔 들르는 곳이라고.




그헝빌르 - 몽생미셀 - 생말로 - 껑깔르 - 그헝빌르로 이어진 참 바쁘게 움직였던 하루다.

우리를 위해 운전과 가이드를 완벽하게 해준 니꼬에게 감사~




:


많은 여행지 중 사진이나 영상으로 접했던 곳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는 "내가 정말 여기에 있다니.." 하는,
직접 발을 딛고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꿈을 꾸는 듯한 감동을 받은 곳은
Pulpit Rock(제단바위)이라 불리는 노르웨이의 [프레이케스톨렌]이 유일했다.
그로부터 2년만에 프랑스의 [몽생미셸]이 그런 가슴 벅찬 두번 째 감동을 내게 선사한다.

두 곳의 차이점은,
하나는 자연조형물, 하나는 인공조형물이라는 것.

공통점은,
일단 그곳이 지니고 있는 스케일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과, 일반적인 여행패턴으로는 방문조차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맘먹고 찾아야 한다는 건데, 마음먹는 거조차 쉽지 않은데다 마음을 먹더라도 한국에서 떠나는 방법이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네비에서 10km 남았다는 멘트를 듣고 조금 더 지나니 우측 멀리 사진으로만 보던 몽생미셸 수도원이 보인다.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몽생미셸은 지형학적으로는 커다란 암초다.
때문에 밀물이 들어오면 육지에서 분리된 섬처럼 보인다.
그런 이유로 몽생미셸 주차장은 몽생미셀에서 3.5km 정도 떨어져 있고,


이곳 주차장에서 몽생미셸까지는 무료운행하는 셔틀버스응 이용해야 한다.
주차장에서 셔틀버스 종점까지는 버스로 10분, 걸어서 40분 정도 거리이며, 중간에 숙박시설과 식당, 기념품점이 많다.


이런 소들의 조형물이 많은 걸로 보아 이곳이 소와 연관된 무언가가 있나보다.

셔틀버스는 몽생미셸 입구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곳까지만 운행되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셔틀버스의 종착지점에서부터 예술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버스 하차지점이 카메라로 몽생미셸의 전경을 담을 수 있는 포토 포인트다.
버스로 몽생미셸 입구까지 가더라도 사진에 전경을 담기 위해서는 어차피 다시 걸어나와야 한다는 얘기.

완벽한 이등변삼각형의 비율에 절로 탄성이 나온다. 마치 레고나 미니어쳐같다.


성 위의 성처럼 보이는 수도원은 몽생미셀의 가장 상층부에 위치한다.
수도원을 이렇게 요세화 할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저 앞의 문이 몽생미셀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



안으로 들어오면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외부인의 접근이나 침입을 철저히 통제했던 듯.


안으로 들어가면 수도원으로 이르는 곳까지 호텔 식당 기념품 가게가 좁다란 골목을 빼곡히 채운 채 관광객을 맞는다.

수도원 입장료는 10유로. 이건 아깝다는 생각말고 무조건 입장을 권한다.
그리고, 수도원에 대한 설명은 문장으로 도저히 표현이 안 된다. 하려면 끝도 없이 길어진다.
그러니 직접 봐야 한다.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끝이 없어 보인다.



넓은 공간을 지나 좁은 길 계단을 오르며 마주하는 고(古) 건축물의 자태는 세월을 압도한다.


몽생미셀은 200년에 걸쳐 건축이 이루어지다 보니, 로마네스크양식 고딕양식 등 시대의 변화에 따른 각종 건축양식이 혼재되었다고 하는데,
시대를 이어가며 긴 기간 수도원을 설계한 사람들은 천재거나 미치광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상상을 초월하는 설계자의 공간지각능력도 놀랍지만, 계속 바뀌었을 상상초월의 설계를 이해하고 시공한 현장 책임자의 능력에 더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만큼 외부는 물론 내부가 복잡하고 정교하다는 의미.

아울러, 이 격리된 지역에 이런 건축물을 짓기 위한 역사(役事)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건축에 동원된 사람들의 인건비는 어디서 나왔을까 하는 속물적인 궁금증도 생긴다.

이곳에서 70여장의 사진을 담았지만, 사진마다 설명이 필요하기에 단순하게 올린다.



거의 암벽과 같은 수도원 상층부에 이런 잔디정원을 조성했다는 게 놀랍다.



수도원 상층부 잔디정원에서 내다본 몽생미셀 외부.

밀물 때면 밝게 보이는 부분이 물에 잠겨 몽생미셀이 고립된 섬처럼 된다고.

멀리 가운데 버스가 보이는 지점이 셔틀버스 종점.




수도원 내부 미사를 올리는 곳.

많은 성당들의 내부 기둥이 무채색의 대리석인데 반해, 색이 들어간 돌 기둥과 의자에 등받이가 없는 게 이채롭다.



컬러풀한 모자이크 타일 바닥까지.



안그래도 이런 넓은 석조공간의 난방은 어찌 했을까 궁금하던 차에 만난 벽난로.

근데, 이런 구조로 난방의 효율은 물론, 타고 남은 재 등의 처리는 어찌했는지...


몽생미셀 입구에서 수도원까지 올라오며,

'도대체 이 높은 곳까지 식량을 비롯해 일상용품을 어찌 운반했을까'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옛 사람들은 나처럼 무지하지가 않았다.



그들은 수도원 안에 거중기를 설치하여 아래까지 운반된 물품을 수도원 위로 끌어올렸다.

일종의 화물전용 엘리배이터.




완전 모델 체질인 몽생미셸 시걸.

고개를 돌려가며 많은 사람들의 카메라에 일일히 눈을 맞춘다.



:


아침에 일어나니 어느 틈에 니꼬가 아침을 준비했다.



한국식으로 밥상을 차려 놓은 것이 아니라, 맛있는 빵과 잼을 사와 커피와 함께 프랑스식 식탁을 차렸다. 

아침 일찍 일어나 빵집을 찾아 다닌 것도 고맙고, 게다가 내 식성까지 고려하여 빵을 선택해준 마음이 더욱 고마웠다.


입맛에 맞는 맛있는 빵과 커피로 아침을 해결하고 그헝빌르 탐색에 나섰다.



건물과 도로 형태를 보더라도 작은 도시임이 느껴지는 그헝빌르(Granville)는 파리에서 9시 방향인 프랑스 서쪽 해안가에 있는 작은 도시다.



유럽을 다니면서 느끼는 건, 이들의 베란다에 대한 로망이 어떤 때는 안쓰럽기까지 하다는 거.

우리 생각엔 '저 작고 좁은 공간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싶은데도, 이들은 어떻게든 저런 공간을 갖고싶어 한다.


그러고보니, 카페도 그렇다. 우리는 실내의 구석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이들은 외부 테이블을 선호하는 걸 보면,

이들에겐 밖을 내다보려는 외부지향적 DNA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나비효과처럼 그런 DNA가 탐험으로 이어져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확대로 이어진 건지도 모르겠다.




그헝빌르의 한복판에 벼룩시장이 들어선 모양인데, 내가 주목하는 건 도로에 박힌 레일.

이 작은 도시에도 기차나 전차가 있었다는 건가..  그것도 오래 전에 운행하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크지 않은 다운타운을 거쳐 바닷가로 나가니 카지노가 있다. 이 작은 도시에 카지노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극장과 레스토랑도 있는 걸로 보아 여기가 이곳 사람들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공간인 듯싶은데,

저 카지노에서는 어떤 종류의 게임을 할 수 있고 베팅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바다를 끼고 있는 저 건물들의 용도는 뭘까...




유럽의 미스테리 중 하나.

큰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성당이나 교회의 규모가 여타 건물들을 압도한다는 거.

중세 유럽에서 종교가 갖는 위상과 비중의 상징이 아닐런지.  


도시를 이리저리 기웃거리면 구석구석에서 고도(古都)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출입구를 어떻게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궁금하고..




돌출되어 있는 것은 지하실로 들어가는 문인가?




그헝빌르 서쪽 끝 언덕 위에 있는, 구글지도에 [Eglise Notre Dame du Cap Lihou]로 표기되어 있는 성당.



성당의 내부는 내가 본 유럽의 성당 중 가장 아담하다.



그럼, 이건 뭔가..  성당 옆에 나란히 있으면서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걸로 보아 사제관?




예전에는 아마 이게 최고의 보안시스템이 아니었을까. 




:


Nico 부모와 점심을 함께 한 후, Nico가 우리와 주말을 보내기 위해 자기 볼 일을 보는 동안

아내와 mio는 센 강변을 산책하고, 난 낮에 마신 와인의 취기를 덜기 위해 잠시 수면모드로.


이렇게 각자 자기 시간을 보내고 교통체증을 피해 오후 8시 넘어 파리 서쪽의 바닷가 그헝빌르로 향한다.

하나 의외인 건, 파리가 서울보다 일몰시간이 늦다는 거. 이미 해가 북쪽으로 많이 올라왔다는 건가..



어쨌든, 9시쯤 보는 노을빛에 물든 하늘이 예쁘다.

연료를 채우기 위해 들른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기 옆에 차를 세운 니꼬가 신용카드 판독을 위한 사전 절차없이 주유노즐을 차의 연료주입구에 꽂는다.
결제를 어떻게 하느냐 물으니,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주유소에 따라 연료 주입후 정산소에서 비용을 지불한다고.
헐~~ 그냥 내빼면 잡는 시스템이 있나..? 있으니 이렇게 하겠지.

휴게소 내부는 깔끔하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실내가 한가한데, 식사를 할 수 있는 유형은 세 가지.



자리에서 주문하는 레스토랑 형태, 트레이에 취향대로 담아 정산하는 카페테리어 형태, 줄을 서서 주문하는 스낵바 형태가 있어 취향대로 선택하면 된다.




노트북를 사용하거나 스마트폰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전원코드가 구비된 간이 책상이 있는 게 마음에 든다. 




그외, 편의점도 있고, 본인이 커피를 뽑는 커피 자판기도 있는데 양 쪽의 형태가 다르다.



저 두 개가 뭐가 다르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은, 커피가 다르단다.
... 난 대체 이 질문을 왜 한거야..



파리의 공공화장실을 이용할 때마다 '노르웨이와 같이 장신 국가도 아닌데 소변기가 왜 이리 높을까..' 궁금했는데, 나름 해답을 찾았다.

해답을 찾았다기 보다 이용을 하다 문득 깨달음을 얻은 거다.
소변기가 높으면 발사각도 때문에 좀더 바짝 다가가게 되고, 결국 바닥에 흘리는 누수량이 적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밤 12시가 넘어 목적지에 다다랐다.
밤이 늦어 지금은 바다를 감상할 수가 없고, 아침이 기대된다.


:



에펠탑 야경을 보러 나갔다 건널목에서 우연히 눈에 띈 2층버스.


1층엔 주방이 있고, 2층엔 승객들이 있는 이색적인 버스.
City Tour Bus가 아닌가 싶어 인터넷으로 버스 몸체의 [BUSTRONOME]을 검색해 보니,
시내관광을 하며 코스요리가 제공되는 Dining Tour Bus다.

site에 들어가 확인하니 Lunch와 Dinner가 있는데, 런치는 코스요리가 4단계, 디너는 6단계 코스요리가 제공된다.

요런 건 아무래도 야경이 운치를 더해줄 거 같아 스마트폰으로 7시 45분 Dinner Tour를 신청했다.
운행시간 조회 및 예약은 www.bustronome.com 에서 하면 된다.

출발장소인 개선문 로터리에서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에 들어서니


1층 주방에선 벌써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1층에서 직원에게 예약된 좌석을 확인후 2층으로 올라가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버스 2층의 천정에 브라인드가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 상태라면 투명유리로 인해 낮에는 햇빛으로 불편할 듯.

헤아려보니, 좌석은 2인용 7석, 4인용 4석, 6인용 1석으로 총 36석.
우리가 이용한 버스도 테이블이 얼추 찬 거 같은데, 1인당 100~130유로이니 한번 운행에 4000유로, 원화로 500만원 정도의 매출이면 괜찮은 매출아닌가..

이 버스의 테이블 세팅이 예술이다.


바닥의 검정색은 단순한 테이블 종이가 아니다. 자석 성분이 포함되어 포크와 나이프의 미끌어짐을 방지한다.
와인 잔 등 글래스도 플라스틱 틀의 홈에 끼워 흔들리거나 부딪히지 않도록 안전성을 강화했다. 하단의 돌판은 접시 기능을 한다.
가운데 플라스틱 틀에 세로로 세워져 있는 검은 것은 8개 국어가 내장된 오디오 가이드.

Tour Course와 Menu도 비치되어 있다.


Dinner와 Lunch의 투어 코스가 다르지만, 개선문에서 출발하여 센강을 따라 센강 남북의 주요 명소를 순환한다.


코스요리 차림표. 디너 요금은 130유로와 100유로 두 가지가 있는데,
제공되는 6단계 코스요리는 같고,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 각 한 잔씩 추가되는 차이가 30유로다.


가운데 화이트 와인과 에피타이저를 시작으로 요렇게 순서대로 제공되며 중간중간 수시로 빵을 제공하는데, 보기보다 배가 부르다.
출발 직전 식전주부터 시작하여 도착 전 커피까지 풀타임에 걸쳐 제공되니 저녁식사를 2시간 30분 정도 하는 셈.
식사보다 야경의 운치를 기대했는데, 식사 내용이 기대 이상으로 수준이 높다.


해가 지니 버스 천정 유리의 빛 반사로 인해 실내가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BUSTRONOME은 교통정체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3시간 정도 코스다.


교통상태가 너무 원활해도 문제가 되겠구나 했던 생각은 쓸데없는 기우. 에펠탑 앞에서 포토타임으로 시간을 조절한다.


평소 저녁 한끼에 13만~17만원이라 계산하면 부담스런 비용이지만,
여행시 한번쯤 누려보는 낭만을 위한 여행비용이라 생각하면 시도해볼만 하다.
파리여행을 다녀온 사람들 중 센강 유람선을 경험해 본 사람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버스 이야기는 나도 들어본 적이 없다.
앞으로 파리 여행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권하게 될 거 같다.

:


내용이 뭔지 모르더라도 [노틀담의 곱추]라는 표현만으로도 친숙함이 느껴지는 노틀담 대성당.



그 [노틀담의 곱추] 콰지모도가 종지기인 노틀담 대성당의 내부 관람은 무료다.



그래서인지 비를 맞으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우리도 빗속의 오랜 기다림 끝에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오래되고 유명한 성당들처럼 노틀담 대성당도 입구에서 제단까지가 길고, 천정도 높다.




길고 높게 이어지는 기둥들은 웅장한 위엄을 과시하고,



좌우로 둘러진 많은 보조 미니(?) 제단들도 각각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이건 뭔지..  노틀담 성당에 웬 한문..?  이 성당을 보수할 때 후원금을 많이 냈나..




사방의 벽에 높게 형성된 스테인드글라스는 내가 본 성당중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여겨질 정도로 정말 예쁘고 아름답고 화려하다.


그리고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건,


한국 관광객이 많이 오긴 하는 모양이다.



이것도 뭔가 스토리가 있을텐데...


여행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오래되거나 유명한 성당의 공통점이 있다.



성당의 기원이나 변천과정을 담은 모형이 있다는 거.



이제 노틀담의 곱추 종지기 콰지모도의 근무지인 종탑으로 가보자.

사실 노틀담 대성당을 찾는 이들은 성당 내부보다 종탑이 목적인 경우가 더 많다.
때문에 종탑 관람은 유료이며, 그것도 예약자 우선 입장인데,

노틀담 대성당 사이트에 들어가 관람 희망시간 예약을 하면 기다리지 않고 입장이 된다.
입장료 10유로는 실제 입장시 지불하면 되고, 예약시에는 입장료 결제를 하지 않으니 부담도 없다.
우리는 mio가 사전에 예약하여 편하게 입장했다. 우리딸이 이런 건 정말 잘 한다.

가이드북에 표기된 종탑까지 387개 계단의 기준이 뭔지 모르겠지만,

종탑이 성당 좌우에 하나씩 있어 성당 전면에서 바라볼 때 좌측 종탑을 오른 후 내려와 다시 우측 종탑으로 오르는 동선을 생각하면

종탑을 보고 내려오는 전체 계단이 1000개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나이 때문이라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관절이 아프다.


하지만, 그런 다소의 고통을 상쇄하고도 남을 장면이 있다.



좌우 종탑을 이동하면서 보게 되는 이 조각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더 행복했을텐데...

굉장히 재미난 스토리가 있을 거 같다.


종탑에 오르는 나선형 계단은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져 정점에서는 발 딛기가 불편할 정도인데,
이런 계단의 시멘트 양생을 어찌 했는지 설계와 시공술이 경이롭다.



그렇게 좁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 콰지모도의 종을 마주한 느낌이란...

좁은 공간에서 이 종을 카메라에 담으며 16mm 렌즈를 가지고 온 보람을 절감했다.


종탑에 오르면 파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센강 남쪽의 에펠탑도 보이고,



더 멀리 센강 북쪽 몽마르뜨 언덕의 사크레쾨르 대성당도 보인다.


종탑에 올라 바라보는 파리 전경도 좋지만, 종탑에서만 볼 수 있는 가장 반가운 건 따로 있다.



종지기 콰지모도의 유일한 친구인 괴물 가고일의 모습을 코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종탑은 올라가볼 가치가 있다.


아래는 노틀담 대성당의 옆 모습과 뒷 모습.



:


파리 날씨 참 G랄스럽다.
흐리다 잠깐 햇살이 돋는 듯하다 다시 찌뿌드해지고, 그러다 추적추적 두어 시간 비가 내리고는 다시 그친다.
파리에 온 후 패턴이 거의 똑같다.

이곳 사람들이 후드를 애용하는 이유를 알겠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후드에 의존한다.
비가 계속 줄기차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우산을 휴대하는 번거로움보다 잠시 맞고 버티는 게 편하다는 거다.

이런 날씨로 인해, 나의 선글라스는 가방 속에서 파리 구경도 못 하고 있고,
야심차게 준비한 카메라와 두 개의 렌즈도 밖에서는 거의 제 구실을 못 한다. (물론 나의 게으름 탓이기도 하지만..)
뒷전으로 밀릴 줄 알았던 스마트폰 카메라만 존재감을 과시한다.

파리 온후 3일만에 처음 식사를 위해 프랑스의 식당을 찾았다.


mio가 산책중에 찾아 가끔 들른다는 [JUDY].
분위기 산뜻하고 맛도 좋고, 직원도 상냥한데, 가격도 저렴해 아주 맘에 든다.


음식이 모두 정갈하고 담백한 게, 먹기에도 부담없고 편하다.


간만에 쾌청하던 날씨가 식사를 하고 나오니 또 비가 내린다.


이번에 꼭 한번 들러 여유롭게 걷고 싶었던 뤽상부르 공원은 비로 인해 한복판을 직선으로 지나며 좌우를 훑어보는 것으로 끝.
이 비가 오는 와중에도 유모차에 비닐을 씌우고 산책하는 엄마도 대단. 아마 날씨 좋아 나왔는데 비를 만난거겠지.
그러니, 여기선 항상 비에 대비해야 한다.


나무들을 어쩜 저리 각지게 다듬어놨는지, 조경에 대한 창의적 발상과 기술에 놀란다.



뤽상부르 공원을 가로질러 나와 만나는 도로의 좌측으로 올라가면 마치 서울 여의도와 같은 형태의 작은 섬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유명한 노틀담 대성당이 있는 곳이다.



노틀담 대성당에 다다르니 성당 내부 관람을 위해 많은 관람객들이 빗속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제 성당 내부는 물론, 저 위 종탑까지 올라 콰지모도의 숨결을 느껴보자.


:


기차역을 개조했다는 오르세미술관.


그래서인지 오르세미술관은 종심이 무척 길고,
주로 조각상이 전시된 중앙과 좌우 전시장에 단차가 있다.
또한 좌우 전시장이 이중구조로 되어있어 관람 동선 잡기가 매우 애매하여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놓치는 곳이 많다.



6층까지 있는 오르세미술관은 그림 조각뿐 아니라, 건물의 설계도와 의복 그리고 가구와 인테리어 제품까지 다양한 아이템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국립오페라극장 단면도까지 있는데, 그 정교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딸아이가 자신이 관람했던 좌석까지 찾아낼 정도다.




너무도 사실적이고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그림에 계속 빨려드는 느낌을 받는데,

초상화도 아니고, 이런 큰 화폭에 담긴 서사적 장면에 어쩜 이렇게 영화의 스틸컷과 같은 디테일한 묘사가 가능한지 탄복하게 된다.




학창시절 배운 밀레의 [만종]과 [이삭줍는 여인]을 여기서 만나니 신기하기도 하다.




흠.. 저 남자도 훗날 미투에 발목이 잡혔을지도...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는데, 6층 카페 외벽의 시계탑을 통해 멀리 몽마르뜨 언덕과 성당이 보인다.





뭘 저리들 열심히 하나 어깨 너머로 힐끗 들여다보니, 학생들이 제도기를 들고 열심히 내부 스케치를 하고 있다.
아마 학교에 제출할 과제들을 준비하는 듯.



전문적인 자세한 내용이야 온라인 상에 자료가 넘칠테고, 일반 관람객의 수준에서 본 느낌은 루브르박물관보다 친밀감이 간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개인적으로는 오르세미술관을 권하고 싶다.

지나치게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고 재밌게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천정이 높아 느껴지는 넓은 공간감 때문인지...




번외 시츄에이션 둘.

# 배낭이나 큰 백은 전시장 반입이 안 돼 cloak room에 맡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코트도 함께 보관시키는 이곳에 두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데, 나이가 많은 직원의 표정이 완전 앵글리 버드다.

반면, 젊은 친구는 표정 가득 생글생글한 웃음으로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건넨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지만 정겨운 느낌은 전해진다. 유쾌하게 일한다는 느낌이 든다.

배낭을 맡길 때 두 사람의 표정과 모습은, 세 시간여 관람후 배낭을 찾으러 갔을 때도 동일하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본인의 즐거움과 상대에게 주는 즐거움이 완전히 다르다.

저녁을 먹으며 이 얘기를 들은 Nico의 웃음띤 반응.
"젊은 직원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된 모양이네.^^"


# 전시장 입구에 각국 언어의 작품해설 번역기가 있다.
작품번호를 단말기에 입력하면 그 작품에 대한 설명을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겐 꽤나 유용한 도구이자 시스템인데, 이런 좋은 도구가 누군가에겐 엄청난 압박임을 보여준, 한국인 모녀의 장면 하나.

엄마는 화가 났고, 딸은 고개를 숙인 채 시무룩하다. 대화내용으로 유추한 상황은 이렇다.
엄마가 딸에게 작품해설 번역기를 임대해줬음에도, 그림에 관심이 없는 건지 일정에 지쳤는지 작품을 제대로 보지 않고 쉬려는 딸에게 급기야 엄마의 분노가 폭발했다.
"돈이 얼만데.. 그러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냐.." 등등.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밖으로 나와 그 모녀를 또 만났다.
엄마는 분이 안 풀린 표정으로 앞서가고, 작은 딸은 엄마 옆에서 눈치를 살피며 따라가고,

미술관 안에서 질책을 받은 큰 딸은 주눅든 표정으로 마치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우리의 말 말 말.
"여행이 즐거워야지 저게 무슨 여행이야.."
"쟤에게 남는 여행의 추억은 뭘까.."
"저 애는 앞으로 엄마와 여행을 하고 싶을까.."
"저래가지고 그림에 정이 가겠나.."


: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는 많다.

몽마르뜨 언덕을 비롯하여 개선문, 루브르 박물관, 콩코드 광장, 노틀담 대성당, 오르세 미술관 등..

하지만, 그중에서도 파리 하면 떠오르는, 파리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은 역시 에펠탑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8시 반쯤 운동겸 에펠탑과 센강(세느강) 야경 구경에 나섰다.
딸 집에서 에펠탑까지는 거리로 약 2km, 센강까지는 2.5km.
걸어서 대략 30분, 왕복으로는 1시간 정도 거리니 저녁후 산책하기 딱 좋은 거리다.
이런 위치에 거주하는 것도 복이 아닐 수 없다. 
 

에펠탑의 뷰 포인트는 센강 북쪽의 Trocadero 공원이지만, 우리는 반대 편인 센강 남쪽의 Mars 광장에서 에펠탑으로 다가갔다.


 
예전에는 센강 북쪽에서 멀리 에펠탑을 바라보다 바로 앞 가까이서 보니 높이가 엄청나다. 끝을 바라보기가 목이 아플 정도.

오후에 비가 와 바닥이 질펀한데다 날이 꽤나 쌀쌀함에도 많은 사람들이 에펠탑의 야경을 즐기기 위해 나와 있다.

 

에펠탑 중앙으로 진입하는데, 공항 수준의 보안검색을 한다.



소지품은 물론 신체검사까지.
그러고보니 몽마르뜨 성당 입장시에도 소지품 검색을 하던데, 요즘 유럽에서 심심찮게 발생되는 테러를 생각하면 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에펠탑 정중앙에서 위를 바라본 모습.  철 구조물이 촘촘하다.




에펠탑 남쪽 마르스 광장에서 중앙을 관통하여 센강 야경을 감상하며 다리를 건너면 센강 북쪽 Trocadero 공원에서 에펠탑의 원경을 볼 수 있다.



에펠탑은 매 시간 정각부터 5분간 점등이 점멸되는 퍼포먼스가 이루어지는데, 이 모습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은 시간을 맞춘다.



스틸 컷으로는 실감이 안 나니 동영상으로...



우리는 운 좋게도 에펠탑 남쪽과 북쪽에서 모두 조명 점등을 봤다.

 
에펠탑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좌판을 열어 에펠탑 모형을 판매한다.

불이 들어오는 에펠탑 모형은 언뜻 봐도 조악한 수준인데, 저걸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니 안쓰럽기도 하다. 

마음이 짠한 건, 에펠탑 모형을 파는 사람들은 왜 모두 흑인인지..

또 한편에서는 우리가 등산객을 대상으로 산에서 막걸리 잔술을 팔 듯, 와인 종주국답게 길거리에서 잔으로 와인을 판매한다.




마르스 광장을 벗어나 도로를 빠져나오는 건물 사이로 보이는 에펠탑.

정방형 디자인임에도 틈새로 보이는 에펠탑은 또 새롭다. 




와인을 마시며 웃음을 날리는 2~3미터도 안 되는 곳에서 누군가는 냉기를 느끼며 노숙을 하고 있다.  



파리인들의 애정을 반영하듯 골목안 기념품 상점 쇼윈도우에 디스플레이된 제품들 대부분의 디자인도 에펠탑을 기본 모티브로 하고 있다.



커피캡슐 보관대, 가위, 젓가락, 치솔 등등..


: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 계단을 내려와 끌리쉬 가(街)를 걷다보면 우측에 물랑루즈를 만나게 된다.



내 어릴 적 기억에는 에펠탑과 개선문, 루부르박물관보다 캉캉춤과 물랑루즈가 파리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시절이 있었다. 

현존하는 업소의 상호를 그대로 영화제목으로 사용할만큼 파리 사교계의 중심인 것처럼 각인됐던 곳. 

현지인들에게 지금의 평판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겉모습만으로는 한때 국내에도 유행했던 카바레에 지나지 않는다.



풍차 모양의 외관이 다소 의아했는데, [물랑루즈]가 프랑스어로 [빨간풍차]라니 납득이 된다.

지금도 저녁 식사와 함께 하루 두 번의 쇼 공연이 진행된다고.


나는 물랑루즈의 내부보다 도로의 바둑판 격자무늬가 갖는 의미가 더 궁금..



이곳은 물랑루즈보다 좀더 고객 친화적(?)인 곳인가 보다. 

Table Dance 라는 게 고객 테이블 위에서도 춤을 춘다는 거 아닌가...


끌리쉬 街 좌우에는 성인용품 샵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이 샾들이 건재할 정도로 영업이 잘 되는지도 궁금하고, 어떤 물품들이 가장 인기있는지도 궁금하고,

또, 이 샾들이 있는 건물들 윗 층의 용도도 궁금하다.  사무실인지, 주택인지...


이 수많은 성인용품 가게 사이에 보인 뜬금없는 업소와 상호.

 


양쪽 도로변을 따라 즐비한 sex shop 틈새에 끼어있는 정겨운 간판.

허~ 이 와중에 김밥집이라니..
섹스 전후에는 역시 김밥이 보약?


:


2001년 이후 17년만의 세번 째 파리 방문 첫 목적지는 몽마르뜨 언덕.
특별한 이유는 없다.

숙소에서 지하철로 한 번에 이동 가능한데다, 가장 북쪽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게 동선 잡기가 편할 듯해서. 
 
파리 Metro Line12의 Abbesses역..
몽마르뜨 언덕과 사크레쾨르 대성당 인근에는 여러 지하철 노선과 역이 많은데,
어지간한 체력이 안 되는 사람, 특히, 다리 근력이 약한 사람은 지하철 환승을 해서라도 다른 노선의 다른 역을 이용하기를 권한다.
세계 여러나라의 지하철 역을 이용해봤지만, Abbesses역 같은 출구는 처음이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출구에 이르는 통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선형으로만 이루어진 것도 신기하지만, 계단이 150개는 족히 넘는 듯하다.
완전 산에 오르는 기분으로, 아이들과 함께 한 가족들이 중간중간 쉬는 모습들이 자주 보인다. 
 
무릎 관절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출구로 나오니 한 건물의 벽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진 찍기 바쁘다.
"사랑해~"라는 문구가 세계 각국의 언어로 적혀있다는, 일명 [사랑해벽].




손으로 벽에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문자가 적혀있는 타일을 벽에 붙인 듯하다. 
 
모두 몇 개 나라 언어가 적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한글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찾아봤더니, 맨 윗 줄에 있긴 있는데..
타일공이 작업하며 딴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디자이너의 집중력이 약했는지..


일부 글자가 뒤집혔다. 타일을 거꾸로 붙인 듯.



사크레쾨르 대성당에 이르는 몽마르뜨 언덕은 2단으로 되어 있다.



잔디를 끼고 양 옆 계단을 이용하여 전면에 보이는 벽까지 오르면



그곳부터는 중앙 계단으로 사크레쾨르 대성당에 다가갈 수 있는데,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버스커가 놓칠리 없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단순히 서성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대성당 입장을 위해 구비구비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다. 




사크레쾨르 대성당보다 더 몽마르뜨 언덕의 상징이 되어버린 화가들 역시 여전히 분주하다.

지금 이 많은 화가들 중 내가 방문했던 2001년부터 여전히 이곳을 지키고 있는 화가는 몇이나 될까 생각하니,

17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게 된 내가 새삼 고맙다. 




몽마르뜨 광장 식당의 두 분 할머니.

저 연세에 언덕을 올라와 식사를 즐기실 수 있는 건강과 감성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17년만에 다시 만난 몽마르뜨 언덕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뒷 태는 여전히 웅장하다.




이제 이 길을 따라 물랭루주로 간다.


:


드골공항에서 숙소로 가기 전에 Nico가 파리 도시관광버스의 동선과 비슷하게 주요 명소 투어를 시켜준다.

어차피 차차 소개가 될테니 미리 사진을 올릴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특이한 게 하나 있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한 회전 교차로.  족히 6차선 이상은 되어보이는 이 넓은 교차로에 차선이 없다.

교차로 진입을 위해 끼어드는 차들과 교차로를 회전하여 바깥 도로로 빠져나가려는 차들이 사진에서와 같이 수직으로 뒤엉켜 범벅이 되는데,

용케들 빠져 나간다.  미국 유학기간을 포함하여 얼추 10년 가까이 핸들을 잡지 않았던 딸아이가 이런 곳에서 운전을 한다는 게 기이하게 여겨질 정도다.


딸아이 집 근처에 예약해둔 숙소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나섰다. 

앞으로의 식생활 적응을 위해 기내식도 프랑스식을 택했건만, 예상과 달리 파리에서의 첫 식사는 한식.

한식을 좋아하는 Nico가 우리에 대한 배려를 빌미(?)로 평소 즐겨찾는 한식당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하다.



한식당 [잔치]. 이 집이 현지인에게도 꽤나 인기있는 식당인 모양이다. 

7시부터 저녁영업이 시작임에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40분 전부터 줄을 서있다. 

창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손님들이 빤히 보이는 창문 안 자리에서 직원들은 영업시간인 7시까지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다.



사진이 음식의 본 모습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 아쉽지만, 이집 음식 정말 괜찮다.

여지껏 해외에서 먹어 본 한식 중 가장 우리 본연의 입맛을 가장 잘 살렸다고 할까.. 

그럼에도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건 의미하는 바가 크다.

외국의 많은 한식당이 현지화라는 명분으로 양념과 맛을 변화시켜 한식이 아닌 얼치기 맛을 내놓는 경우를 많이 접했는데,

우리 고유의 맛을 특성화시켜 정면승부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매운 맛의 강도 정도야 어느 정도 고려할 요소겠지만.


식사를 마치고 인근에 있는 한식 식자재 마트인 [K MART]에 들렀다.



입구 오른쪽 하단의 표지판에서 보는 것과 같이 한식 식자재 마트이지만 일식 식자재도 함께 판매한다.

한식 식자재 마트에서 일식 식자재를 판매하는 게 조금 거슬릴 수도 있지만,

일식 식자재 마트에서 한식 식자재를 판매하는 것보다는 훨씬 뿌듯하다면,

이 역시 지나친 국수주의라 할라나.. 


:


여행시 외국 항공사를 가끔 이용하지만, 처음 이용하는 AIR FRANCE는 몇 가지 특이점이 있다.


한국이 운항구간인 다른 나라 항공기의 경우,

좌석 또는 모니터에 간단한 한국어 매뉴얼 구비와 함께 한국인 승무원이 동승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둘 다 없다.

기내방송의 경우 한국어 공지를 하지만, "통역이 필요하신 분은 승무원을 통해 요청하라"는 안내만 있을 뿐

12시간 동안 기내 서비스를 하는 한국인 승무원은 보질 못했다.

정직원 채용이 아닌 파트타이머 활용 등 효율적 인력운용 방침의 일환인지..


영화 리스트를 보고 한국영화는 전혀 없는 줄 알았다.

한국을 오가는 항공기에 한국영화가 전혀 없다는 게 의아해 하나하나 자세히 검색해보니 없는 게 아니라 안 보인 거다.

제목이 [Battleship Island]인 영화를 [군함도]라고 바로 인지할 한국인 승객이 얼마나 될까?

제목 옆에 하다못해 (Kor) 혹은 (Gunhamdo) 정도만 붙여줬어도 조금은 검색에 도움이 될텐데,

다섯 편 정도의 한국영화가 모두 저런 식의 영어로 표현되어 있어 제목만으로는 식별이 안 된다.


반면에, 좋은 점은 (누군가에게는 안 좋은 점일 수도 있겠지만) 면세품 기내판매가 없다는 것.

국내 항공사와 같이 면세품 카트를 끌고 좁은 통로를 이동하며 쇼잉하듯 판매하지 않고,

면세품 리스트를 보고 직접 요청하는 승객에게만 판매한다.


또 하나, 이건 모든 국가의 입국절차가 바뀐 건지, 아님 프랑스의 경우에만 이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입국신고서 작성이 없다.

작년 오키나와 입국할 때만 해도 기내에서 미리 입국신고 양식을 배부하여 외국인의 경우 입국심사시

방문목적, 대략적인 체류기간, 숙박 예정지와 규정을 초과하는 휴대품목을 기록한 입국신고서를 제출했는데, 이런 절차가 없다.

그냥 여권만 제출하면 끝.

한술더떠 입국심사관이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립서비스까지.


이상하게도 비행기를 타면 잠을 못 자는 편이다.

빨리 잠들기 위해 와인에 맥주까지 다 마셔도 잠이 안 오니, 늘 도착해서 고생이다.


요 기내 와인 제법 괜찮았다.


:


인천공항 2터미널 지하1층에 위치한 캡슐호텔 [다락휴(休)].


캡슐호텔이라 해서 일본식 원통형이 아닌 미니 원룸.

싱글베드와 더블베드에 샤워부스가 있는 룸과 없는 룸이 있다.

화장실은 공용화장실 사용.

더블베드+샤워부스 12시간 이용료는 77,000원.


아침 9시 5분 항공편이라 집에서 나오기가 너무 바쁠 듯해 하루 전 저녁에 미리 와 널려있는 식당 중 마음에 드는 메뉴로 저녁을 해결하고,

드넓은 터미널 청사 구경도 할겸 지하1층부터 3층까지 걸어다니니 운동도 되고 좋다.

게다가, 밤이라 유동인구도 적어 조용하고 한적해 분위기 잡고 커피 한잔 하기도 딱이고.


아침에 엘리베이터로 1분만에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면 끝.

집에서 꼭두새벽부터 부산떨며 일어나 공항버스 시간 맞추느라 허둥대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한지..


 좀 좁은 듯하지만 하룻밤 아닌가..


 브랜드에 깜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