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갑작스레 집을 또 옮기게 되었다.

다시는 집을 소유하지 않으려 했는데, 치솟는 전세값과 함께 미분양 아파트의 괜찮은 할인분양 조건이 마음을 흔들어버렸다.

이사할 때마다 꼬맹이 건사하기도 힘들고, 이쪽 저쪽 주소 변경하는 것도 번거롭다는 건 우리의 번복을 합리화하기에 좋은 도구다.

 

새로 옮길 집을 둘러 본 아내가 주방 공간이 너무 좁아 손을 봐야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이제 한동안은 이사할 일도 없을 거 같고, 새로 들어가는 곳이 처음 입주하는 곳이다보니 차제에 내부를 조금 손보기로 한다.

인테리어가 직업이고 대학에 강의도 나가는, 연그린 후배이자 아내에게는 대학 같은 科 직계 선배인 김나미 대표에게 도움을 청했다.

 

집을 개조하면서 얻은 의미있는 소득이 하나 있다.

30년을 한 사람과 함께 한 세월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한 계기가 됐다는 거.

 

이번 개조의 전체적인 밑그림은 아내가 그리고, 아내가 생각하는 컨셉을 바탕으로 김나미 대표가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다.

작업 중 발생하는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의사결정은 자연스레 (확인을 안 하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성격상) 공사기간 내내 거의

현장에 붙어있던 내가 하게 됐는데, 내가 제안한 몇 몇 굵직한(?) 제안이 김나미 대표와 아내에게 [좋은 생각]으로 받아들여졌다.

 

대부분의 주부들이 그러하듯, 아내 역시 가구의 선택이나 배치시 색상과 디자인, 레이아웃에서 그녀 만의 기준이 있다.

아내의 인테리어 취향은 단순하면서 밝고 깔끔함이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화려함이나 화사함보다 담백함을, 채워있는 느낌보다 비어있는 느낌을 좋아한다.

김나미 대표가 클라이언트의 기본 성향을 알아보기 위한 절차로, 우리가 살던 집을 방문해 집 안을 둘러보고는

"꼭 필요한 것 외에 모든 것이 최소화되어 있다"며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는 개성이 강하다"고 표현했다.

 

내가 30년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고 표현한 건,

이번 인테리어를 하면서 내가 제시하고 결정한 사안에 대해 아내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제 나보다 낫네~ 어쩜 그렇게 내 생각을 잘 맞춰요?  이상범氏 많이 발전했다...*^^*"

 

아내의 취향을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 아내의 공감을 이끌어 내며 인정받았다는 것이,

30년을 함께 한 사람의 생각과 괴리되거나 겉돌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니 뿌둣함을 느낀다.

 

 

 

 내가 제안한 주방 벽의 사선(斜線) 처리가 이번 인테리어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

 보다 액티브한 느낌을 줄 거 같은 역사선에 대한 욕구가 더 강렬했으나,

 벽을 끼고 돌 때 이마를 부딪힐 것이 우려되어 아쉽지만 그냥 사선으로 처리.

 

 

 

 아내가 벽에 못 박는 것을 극도로 꺼려 식탁 벽과 거실 복도 벽을 픽쳐 레일(Picture Rail)로 처리하니 갤러리 분위기가 연출된다.

 스트링의 좌우 이동과 길이 조절이 가능해 어떤 형태의 액자로 바꾸더라도 위치를 다양하게 잡을 수 있다는 것도 이점.

 전체 길이가 3M에 가까운, 높이가 약간 낮은 듯한 식탁은 길이 2200mm의 긴 식탁과 735mm의 정방형 식탁으로 분리해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의외로 편안함이 느껴져 여기 자리잡으면 식사는 물론, 노트북이나 독서를 포함

 그림 그리기와 다림질까지 모든 작업이 가능한 다용도 작업대가 된다.   

 

 

 

 아파트 단지의 최대 취약점은 맞은 편 아파트로부터 사생활 보호가 불편하다는 것.

 밖을 보면서도 내 공간을 보호받기 위해 거실 창에 커튼을 대신하여 루버 셔터 장착.

 

 

'뻔한? fun한!! > 뻔한? fun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같은 장소 다른 느낌  (0) 2014.05.26
TV가 오랜만에 파트너를 만났다  (2) 2014.02.02
WHITE Merry Christmas !!  (0) 2012.12.25
카페랄로의 情  (0) 2012.12.05
엽기 핸드폰 고리  (0) 2010.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