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처럼 나비처럼
보고 듣고 느끼고/영화겉핥기 2009. 10. 7. 02:46 |우리나라 역사상 시대별 뛰어난 여걸 세명을 꼽으라는 주관식 문제를 내면 답이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상 시대별 뛰어난 여걸로, 삼국시대 신라의 선덕여왕, 고려의 천추태후,
그리고 조선의 명성황후를 꼽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까.
그런데, 세 여걸이 강대국과 맞서 자국의 위상을 굳건히 정립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은 같았으나,
명성황후는 선덕여왕과 천추태후와는 주변 환경과 처한 위치, 그리고 결말이 달랐다.
모두들 아는 바와 같이, 선덕여왕과 천추태후가 권력을 쥐고 꿈을 이루며 한 시대를 풍미한 반면,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애증의 갈등을 빚으며 꿈이 무산된 채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명성황후를 다룬 영화다.
명성황후를 다룬 작품은 넘친다.
소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연극, 뮤지컬, 그리고 영화까지, 인물을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쟝르가
그녀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그런 면에서는 선덕여왕이나 천추태후보다 행복한 여인이다.
그토록 많은 작품의 소재가 된 명성황후, 민비.
하지만, 이 영화에서의 명성황후는 종전의 작품과는 보여지는 면이 많이 다르다.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본 내 느낌을 함축하여 표현하자면 [어색함]과 [낯섬]이다.
나는 이 영화가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민비의 어투(화법)이 어색하게 느껴진건, 어쩌면 고정관념으로 길들여진 나의 고루한 편견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주인공인 수애(민비)와 조승우(무명)의 만남과 그 이후의 전개는 인과관계가 어색하다.
그리고, 대원군과의 관계설정도 관객의 역사지식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게 아닌가 싶다.
또한, 극중 보여지는 고종의 민비에 대한 애정과 인식도 혼란스럽다.
이 영화는 그간 명성황후를 다뤘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민비의 인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전반적으로 황후로서의 모습을 담긴 했지만, 근간은 여성 민자영의 삶이 주제인 영화다.
메인 포스터에도 나왔지만, 종전의 명성황후를 다룬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서양의 코르셋을 입는 모습, 그리고 호위무사와 하루밤을 지내며 등에 업히는 모습...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신선한 영화일 수도 있고, 말도 안되는 영화일 수도 있다.
좀 우스개 표현을 하자면, [민씨문중]에서 별 말이 없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며 실망한 부분.
C.G (컴퓨터그래픽)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그리고, 일對다수의 결투장면이 중국영화를 닮아가는 것도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일본 낭인무사의 칼을 맞은 민비가 남긴 대사는 이랬다.
"나는 조선의 국모 민자영이다."
여지껏 다른 작품에서는 "나는 조선의 국모다." 라고 표현됐었다.
그리고 목숨이 끊어지며 이어진 마지막 말은 "요한.. 요한..." 이었다.
생의 마지막에 자신을 호위하다 죽은 조승우의 천주교 세례명이다.
감독은 끝까지 이 영화가 [여인 민자영]의 삶을 다룬 작품임을 강조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여지껏 내가 보았던 사극의 궁중연회에 등장하는 악기는 여인들이 연주하는 가야금과 거문고,
덧붙이자면 해금이나 퉁소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남자들로만, 그리고 북으로만 구성된 악단(?)이 등장한다.
아~~ 정말 저럴 수도 있겠구나...
이 영화에서 내가 유일하게 느낀 신선함이었다.
사족.
조승우가 군에 입대하기 전 마지막 작품인데, 미안한 얘기지만 이미지가 많이 약하다.
목소리 톤도 그렇고, 표정 연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마라톤]과 [타짜]에서의 조승우는 달랐다.
[타짜]와 [불꽃처럼 나비처럼]의 조승우는 시대만 다를 뿐, 같았다.
내 눈에는 그랬다. 그래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