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보고 듣고 느끼고/영화겉핥기 2009. 8. 5. 03:42 |영화 도입부에 깔리는 BGM의 분위기에서 단순 코믹영화가 아닌거 같다는 느낌이 드는
[국가대표]는 실화가 바탕인 영화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유치위원회가 정략적으로 급조한, 국내에 존재하지도 않던 스키점프팀에
7세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스키선수를 하다 생모를 찾기 위해 귀국한 차헌태(하정우)를 비롯해
각기 사연이 있는 4명이 합류한다.
국내에는 종목 자체가 없던 관계로 선수 등록만으로 선발전도 없이 곧바로 국가대표가 된 5인.
이들은 방코치(성동일)와 함께 무대뽀적 훈련에 돌입하여 우여곡절 끝에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하지만
결과는 본선참가 13개국 중 최하위.
해외입양자 모국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한 밥(한국명 차헌태 : 하정우)의 인터뷰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밥의 인터뷰 장면 중간중간 나머지 주인공들의 캐릭터를 소개하는데,
이러한 교차삽입방식은 초반부터 좀 산만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짧은 흐름으로 다섯명을 소개자면 달리 방법이 있을거 같지도 않다.
이 영화의 쟝르는 코믹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코믹영화치고는 중간중간 흘러나오는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너무 인색하다.
코믹영화라면 거의 쉴 새 없이 폭소가 튀어나와야 하는데,
등장인물들의 대사라든지 행동, 그리고 상황설정이 그리 코믹하지가 않다.
또한, 주인공들이 열악한 인프라 속에서 스키점프에 필요한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 설정한 훈련모습은
오래 전 인기를 끌었던 홍콩영화 [취권]에서 성룡이 무예를 익히는 상황과 그리 차이가 없어
그때 웃음을 빼앗겨버린 관객의 웃음을 되찾기가 쉽지 않다.
거의 100분 정도를 그저 그렇게, 혹은 조금은 지루하게 진행되던 [국가대표]는
마지막 30분에 관중의 감성에 승부를 건다.
아무도 관심도 없는 가운데 그들만의 의지로 올림픽 무대를 밟은 선수들.
그들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는 올림픽 무대.
그 무대에 선 선수들의 마음은 들뜨면서도 복잡하다.
그리고 TV 중계를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은 더 복잡하다.
어렸을 때 해외로 입양보낸 아들의 모습을 남의 집 가정부로 일하며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
골프채로 맞으면서도 끝까지 스키를 포기하지 않은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의 시선.
또 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략적으로 팀 창단을 종용했지만 일체의 지원과 관심도 없던 유치위원장의 시선 등등..
그들의 복잡한 시선과 선수들의 모습, 그리고 열띤 중계진의 모습이 어우러지면서
객석에선 조용히 눈물 훔치기가 진행된다.
아울러 경기장과 경기장면의 화면 합성은 정말 환상적이다.
너무 멋지게 편집을 하여 마치 실제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은 실감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다.
점프대 도약과 창공으로의 비상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고, 착지 후의 환호하는 모습은 마치 현장에 있는 느낌이었다.
위의 두가지 요소가 마지막 30분 관객이 이 영화에 푹 빠지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게된 직접적인 동기는 재원이 때문이다.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날 이 영화를 보고온 재원이의 영화평은 이랬다.
"마지막 부분에서 가슴이 먹먹해지는게, 울음 참느라고 혼났네.
근데, 끝나고 일어서는데, 곳곳에서 눈가 정리를 하더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도는걸 느끼며 옆에 집사람을 보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고 있다.
100분 동안 무덤덤하게, 좀 까탈스러운 사람에게는 다소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영화 [국가대표]는 마지막 30분에 가치가 있는 영화다.
자본주의적 사고로 표현하자면 마지막 30분에 본전 뽑는 영화가 [국가대표]다.
영화 전체가 재밌어야 본전 생각이 안나는 분들은 보시지 않는게 좋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이라도 필이 꽂히는 부분이 있으면 만족한다는 분들에게는 강추하고픈 영화다.
배우 하정우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보셔야할 영화다.
어려서 해외로 입양된 사람치고는 한국어 발음이 너무 좋다는 어색함은 있지만,
주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얼결에 튀어나오는 영어 묘사에는 입양아의 느낌이 살아있다.
아버지 김용건氏와 함께 같은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한 결과물인듯 싶다.
충무로 블루칩은 블루칩이 될만한 옵션이 있다는걸 느끼게 된다.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껴보고픈 사람들.
오랫동안 특별한 감정없이 살아왔던 분들.
그리고, 왜 사람들이 자기와 상관없는 일에서도 눈물을 보이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강추다.
단, 끝까지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는, 참을성이 없는 분들께는 비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