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설치한 에어컨 계약을 할 때 설치비용에 대해 물으니 판매사원이 세부사항을 확실히 일러준다.

- 에어컨 가격에 설치비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설치비용은 세가지로 구분됩니다.
   실외기용 앵글을 새로 설치할 경우 앵글비용이 12만원이 드는데, 아파트 3층 이상일 경우에는 위험수당
   3만원이 추가되고요, 배관료는 5m 까지는 무료지만 초과시에는 길이에 따라 배관료가 추가됩니다.
> 그럼 우리는 5층이니까 앵글을 새로 한다면 15만원+알파 라는 얘기네...  오케이~~  알았어요..


에어컨을 설치하러 온 기사가 기존에 설치된 실외기 위치와 에어컨의 위치를 살펴보더니 먼저 이른다.
'안방으로 들어가는 벽걸이형 에어컨은 배관비가 별도로 들지않지만, 거실용은 배관이 길어 추가비용이 발생합니다.'

뭐.. 이미 들어서 예상하고 있던 터...

다음엔 실외기용 앵글을  살피더니 그냥 사용해도 되겠단다.
그냥 써도 된다니 12만원이 안들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좀 개운치가 못하다.

- 이게 설치한지 10년이 넘었는데, 괜찮겠습니까?  하중을 견디는 장력이라든가...
> 10년이 됐습니까??  (이리저리 다시 살피더니) 그럼 새로 달겠습니다. 앵글값은 12만원입니다.

바로 앵글을 바꾸자고 말을 바꾸니, 괜히 안해도 될 말을 해서 쓸데없이 12만원만 더 쓰는게 아닌가 하는 속좁음에
은근히 나도 말을 바꿔본다.

- 아니.. 뭐... 기사님이 보시기에 괜찮을거 같으면 그냥 쓰죠..  (은근히 신경써주는척...) 괜히 작업량만 많아지느니...
> 아닙니다...  그래도 안전한게 좋죠.  보니까 색도 많이 벗겨지고...

좀 아쉬운 생각도 들지만, 그래... 앞으로 또 10년이 갈텐데 안전이 우선이지.
만에 하나 불상사가 생겼을 때 책임소재도 확실한게 좋고.
그럼 정말 15만원이 기본이고, 추가배관료는 얼마나 될라나...


그런그렇고, 이 분들이 설치를 하러 집에 도착한게 11시반이 조금 넘었었다.
그러면서 두개를 달려면 4시간이 넘게 걸린다고.

12시반쯤 되자 집사람이 묻는다. ' 저 분들 점심은 어떻하나...??'

- 점심식사 하셔야요? 
> (우물쭈물..) 아.. 뭐... 일 끝나고 저희가 나가서 먹으면 됩니다...

- 점심도 안드셨을거 아녜요. 4시간이상 걸린다는데 그럼 너무 늦을텐데 힘드시잖아요. 뭐좀 시켜 드릴까요?
> (역시 멋적은 표정으로) 그럼 짜장면이나 시켜주시면 됩니다.

- 아니.. 그러지마시고, 부대찌게나 제육볶음 같은거 괜찮으세요??


그렇게해서 주문한 식사가 도착하니 두분이 묻는다.

- 저희만 먹는겁니까?
> 저희는 오시기 바로 전에 식사를 마쳤거든요.  그러니 저희 신경쓰지 마시고 드세요...

식후에 집사람이 후식으로 과일과 커피를 내놓고, 작업 중간에 음료수를 제공했는데,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작업이 종료된 다음의 상황 때문이다.


모든 직업이 종료되고 시운전까지 마친 후, 나에게 통보를 한다. '모두 마쳤습니다. 이제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이제 내가 비용정산을 할 차례.  '그럼 설치비가 모두 얼마가 되나요?'
앵글비용과 위험수당은 이미 정해진 것이니 추가되는 배관료만 더하면 되는데, 그게 얼마인지 묻는 것이다.

그런데... ... 돌아온 답변이 의외다.
'그냥 앵글값 12만원만 주십시요.  나머지는 저희가 그냥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더니, 나가면서 인사를 한다.

'대접 잘 받고 갑니다. 에어컨 잘 쓰십시요.'


예전에는 이사를 한다거나 이런 작업을 하면 보통 작업하는 사람들이 이미 정해진 비용 외에
자신들의 수고료를 별도로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경우 참으로 난감하다.
요즘이야 많이 사라졌지만, 가끔은 그런 일로 인상를 찌푸리고 기분 상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러는건 고사하고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비용까지 마다하다니...   흔치않은 경우다.

마지막에 남긴 말로 유추하건데, 아마 점심을 시켜주고 후식을 제공한 것이 고마웠던 모양이다.
손님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세태가 많이 변했다고들 하지만,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물질보다는 존재감에 가치를 두는 모양이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더니, 말 한마디로 천냥보다 더 갚진 오고가는 情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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