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직장시절에 모셨던 분의 고희연이 있었다.
일찌감치 초대를 받았기에 참석을 했는데, 이 초대가 일상적인 공지에 따른 임의 참석이 아니라
한정된 인원에게 좌석번호까지 명기해서 보낸 선택받은(?) 자리였다.


이시용 사장님.

90년대 중반 이전 삼성생명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은 이 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니.. 삼성생명 뿐 아니라, 보험업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 공채 1기로 입사하셔서 대표이사까지 역임하시고,
삼성카드 대표이사 재임기간을 제외하고는, 태평양생명을 거쳐 SK생명에서 은퇴하실 때 까지
평생을 보험업계에 몸 담으셨던, 정말 대한민국 생명보험업계의 산증인이시다.

이 분의 캐릭터를 두 단어로 표현한다면, (외람된 표현이지만) [꼼꼼]과 [깐깐]이다.
굉장히라는 단어가 무색할만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밀하시고, 논리적이시고, 또 추진력이 대단하신데,
대부분의 꼼꼼한 분들이 그렇지만, 기억력 또한 얼마나 비상하신지 몇달 전 수치까지 그냥 놓치시는 법이 없어
결제를 받거나 보고를 드릴 때 마다  아랫사람들은 엄청난 사전 준비를 하는데, 결과는 늘 물먹은 소금이 되고만다.

내가 대리도 되기 전인 평사원시절에 이 분을 같은 부서의 상사로 처음 모시게 됐는데,
당시 이 분은 상무이사였으니, 내게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그 후, 대리를 거쳐 과장이 되서도 5년여 동안 직계상사로 이 분을 모시고 일을 배웠는데,
해마다 연말 임원인사에서 이 분이 어떤 부서를 맡느냐에 따라 부서간 희비가 엇갈릴 정도였으니
이 분에 대한 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 헤아릴만 하다.

오죽하면, 당시 사람들로 부터, 어떻게 그 양반 밑에 5년이나 버티고 있느냐며 맵집이 대단하다는 말까지 들었을까.
한번은 당시 보험감독원에 업무차 들어갔다가, 국장 한분이 위에 임원이 누구냐고 물어 '이시용 상무'라고 하니
" 이시용 상무 밑에 있으면 엄청 피곤하겠구만...  대신 일은 확실히 배우겠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나는 남들에게 이 분을 나의 사회 은사라고 표현한다.
모시고 있는 동안, 엄청나게 꾸지람도 많이 받았고, 당시에는 스스로 비참함도 많이 느꼈지만,
내가 직장에서 성장하며 행했던 모든 사고와 행동의 근간은 이 분에게서 배운 것이다.
어려운 상황을 맞을 때는 늘 ' 이시용 사장님이라면 어떻게 판단하셨을까...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 하곤 생각했다.


이 분과 얽힌 일화는 무척 많지만, 내가 이 분에게 정말 배우고 싶었던 것이 두가지 있었다.

이시용 사장님은 업무와 관련해서는 아랫사람을 시쳇말로 정말 반쯤 죽인다(?).
하지만, 당신이 데리고 있었던 부하에 대해 끝까지 챙기시는 속정이 깊은 분이다.
고의적인 잘못만 없으면, 실패한 사람에게 (주위에서 반대하더라도) 그 사람의 능력에 맞는 기회를 반드시 주신다.

그보다 내가 배우려했던 것은,
이 분은 일단 자신이 결제한 사안에 대해서는 끝까지 스스로 책임을 지신다.
밑에 사람의 실수로 일이 그릇됐을 경우에도, 내부적으로는 엄하게 지적을 하지만,
외부적으로는 결코 실수한 담당자를 거론하거나 책임을 지우는 법이 없다. 
실무자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과 달랐을 경우에도 일단 결제를 했으면 책임을 떠넘기는 경우가 없다.
모든 결과를 당신의 책임으로 돌린다.   

아래뿐만 아니라, 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본인의 생각이나 의사와 다르더라도, 회사 정책이 정해지면 마치 당신의 생각인 양 지시를 내린다.
밑에 사람들이 회사의 방침에 대해 불만이 있더라도, " 나는 반대했는데..." 등의 핑계가 없는 분이시다.

이 두가지는 내 사회생활의 모토가 되었는데, 다행인건 나도 어느 정도는 흉내를 냈었던거 같다.


이런 그 분의 성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땐 그토록 힘들어하고 불만(?)을 터트리면서도, 그 분을 따르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당시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사람들과, 이 사장님을 모시고 분기에 한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이시용 사장님은 고희연에 부부동반으로 100쌍만 초대를 하셨다.
친지들 뿐만 아니라, 당신의 학창시절 친구를 포함하여 사회에서 만나 연을 맺었던 모든 사람들 중에서
100명을 선정하느라 참 힘드셨을거 같다.

그날 한 테이블에 함께 했던 삼성생명출신 사람들에게 이런 우스개 소리를 했다.

"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저 분이 70평생을 사시며 만난 사람들 중에서, 나름대로 가장 정을 나눠준 사람들이네.  
  그리 생각하면 수많은 사람들 중 저 깐깐한 분이 선택한 100명안에 들었다는건 대단한 영광아닌가.
  게다가 어울릴만한 사람들끼리 자리 배치까지 직접 하시느라 얼마나 생각을 많이 하셨을까..."

" 친구분들이나 다른 분들은 모르겠고, 여기에 있는 삼성생명 출신들은, 현역시절 가장 오지게 깨지고도 살아남은
  맵집좋은 사람들이라고 봐야지...  결국 이 자리는 가장 많이 깬 사람들에 대한 위로연 자리라고 생각하면 되네.."

그 말에 모두들 맞다고 동의하며 유쾌히 웃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포탈사이트인 네이버의 창업자이고 현 NHN의 최대주주인 이해진 CSO를 장남으로 둔 덕(?)에,
그 연세 분들 답지않게 인터넷활동도 열심히 하시며 아직도 젊은 삶을 사시는 이시용 사장님. 

그리고,  내가 샤브미를 오픈한 이후, 친구들 보다도 더 많이 샤브미를 찾아주시는 분.
오히려 내가 먼저 연락을 못드림에도, 삼성생명 출신들을 규합하여 이런저런 모임을 샤브미에서 갖어주시며, 
내게 도움을 주시려는 그 분의 깊은 정을 느낄 때 마다 늘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다.


나의 롤모델이시자 멘토이신  이시용 사장님.
늘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활력이 넘치는 행복한 생활을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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