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성공요인은 일단 재밌어야 한다.  
재밌어야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고 소문이 난다.
유치한 영화도 재미가 있으면 일단 끝까지 지켜본다. 
아무리 감동적인 영화라도 재미가 없으면 보다가 눈이 감긴다.
영화를 평하는 기준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공통적인 평가는 재미로 할 수 밖에 없다.
 
[가문의 위기]는 일단 재밌다.
그런 의미에서 반은 성공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조폭영화 트렌드를 보면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화려한 액션 못지않게 대사를 중요시 한다는 것이다.
몇년 전부터 영화는 독특하거나 화려한 말의 유희로 관객을 잡고 있다.
요즘 히트작인 동막골에서는 순박한 강원도 사투리가 영화의 감칠 맛을 더했고,
황산벌에서는 사극영화 최초로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관객을 사로 잡았다.
조폭영화에서도 단순한 욕이 아닌, 코믹하고 걸쭉한 육자배기가 영화의 보는 재미에 듣는 재미를 가미시키고 있다.  

두번째는, 조폭영화의 구도 변화다.
종전의 주먹영화가 단순한 건달들의 대결구도를 그렸다면, 최근의 조폭영화에는 꼭 조폭과 상반되는
신성화된(?) 영역이나 그 구성원이 조폭집단과 대칭을 이룬다는 점이다.
[달마야 놀자]에서는 절의 스님들과 대칭을 이뤘고,  [두사부일체]에서는 학교가,
[목포는 항구다]에서는 경찰이,  그리고 [가문의 영광]에서는 사법연수원생을 대칭점의 맞은 편에 세웠다.

세번째 특징은, 그 대칭점의 존재에 영향을 받은 개과천선형 조폭을 통해 구제불능성 악질 조폭을 제압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구도다.

네번째는, 조폭을 많이 희화화(戱畵化) 한다는 점이다.
종전의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조폭의 세계에 단순무지한 충복을 등장시킴으로써,
조폭 내부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기본심성이 순박한 계층의 전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도는 실제 집단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다. 
사실 조폭집단이라고 그 안에 순수한 웃음이 전혀 없겠는가.

[가문의 위기]에서도 예외없이 위의 특징들이 다 살아있다.
영화 초입부에 등장하는 비뇨기과 여의사의 걸러지지 않은 직설적인 표현부터 시작해서
김수미와 탁재훈, 정준하의 대사는 이 영화 재미의 핵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번엔 순진한 조폭의 대칭점에 현직 여검사를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다,
결국 또다른 악질 조폭과 야합한 더 악질 검사를 한번에 제압하는 구도다.

이 영화에서 탁재훈과 정준하의 연기는 뛰어나다.  폭이  단순하고 오버하는 느낌을 주는 김원희를 능가한다.
그중에서도 (정준하야 원래 개그맨 출신이니 개그 자체를 연기로 볼 때) 탁재훈의 연기 입문은 성공이라고 본다.
물론 촬영과정에서야 무수한 NG가 있었을테고 고생을 많이 했겠지만,
완성물만을 놓고 볼 때 그의 표정연기와 대사처리는 대단했다.

그런 것을 보면 임창정을 대표로 하는 요즘의 일부 엔터테이너들은 정말 만능인거 같다.
일부에서는 전문성이 떨어져 전반적인 연기의 질 저하를 우려하기도 하지만, 재능있는 만능 연예인의 등장은
많을수록 오히려 기존의 각 부문에도 자극을 줄 수 있어 경쟁을 통한 발전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기획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캐스팅의 중립성과 공정성이 아닐런지...   

요즘 영화를 보면 깜짝 까메오의 등장이 많다.
[황산벌]에서 신현준과 김승우가 깜짝 출연으로 관객을 즐겁게 했고,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남극일기]의 두 주역인 송강호와 유지태가 깜짝 악역으로 나오더니,
이 영화에서는 정준호가 잠시 얼띤 모습을 보여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스쳐지나가는 역에 톱스타를 얼핏 보여주는 것은 팬서비스 차원에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꼽는 이 영화의 압권은 김수미 세아들의 목욕탕 씬.
삼형제가 반신욕을 하듯 나란히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이는 순간 관객은 모두 웃음으로 자지러졌다. 
보통 조폭들의 등에 있는 문신은 각자의 취향에 따라 1인1색으로 자리를 잡는데,
이 가문의 삼형제는 셋이 나란히 앉았을 때 호랑이 한마리가 완성된다.
맏이인 신현준의 등엔 호랑이 머리가, 둘째 탁재훈의 등엔 몸통이, 그리고 막내 임형준의 등엔
엉덩이와 꼬리 부분이 그려져 있다.
살아도 죽어도 삼형제가 같이 한다는 형제의 결연한 의지가 잘 드러난,  정말 감독의 기가막힌 재치다.


[가문의 위기]는 유치한 영화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걸 따지지 말자.   모든건 개인의 선호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각자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냥 영화일 뿐이다.

모든 예술에는 각자가 추구하는게 있다. 
내가 유치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 영화를 재밌게 본 모든 사람들이 다 유치한 것도 아니고,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두 수준이 낮은건 더더욱 아니다.

모든 것이 다 각자가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임을 존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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