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할 때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아들이 하나이던 직원이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
축하한다며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바둑만 수순이 중요한 줄 알았더니, 애 낳는 것도 순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단다.
쌍둥이를 먼저 낳았으면 둘째 볼 생각을 안 했을거란 얘기다.
그 대답에 한참을 웃었지만, 사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다.


세상에는 이렇게 순서가 뒤바뀜으로써 안 해도 될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나타나는 현상도 그 순서에 따라 의미가 있을 수도, 또는 없을 수도 있다.

지난 3월에 우리를 들뜨게 만들었던 WBC 야구만 해도 그랬다.
대회기간 중 대한민국은 일본에 지역예선과 조별예선에서 두번을 이긴 후, 준결승전에서 한번 졌다.
승패의 순서가 어떤 식으로 바뀌었더라도 우리는 결승에 올랐을 것이다.
예선에서 두번을 다 졌어도 4강까지 가는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에 2승1패로 우위에 있었지만 4강에 머물렀고,
일본은 우리에게 1승2패로 열세였음에도 우승을 했다.
이기고 지는 순서가 달랐기 때문이다.

똑같은 로또에 당첨이 되더라도 얼마만큼 모였을 때 되느냐에 따라 당첨금은 엄청 달라지며,
단체급식 때에는 줄을 어떻게 서느냐에 따라 배식을 더 많이 받을 수도, 혹은, 더 적게 받을 수도 있다.

야구에서 주자가 3루에 있다.
이 경우 똑같은 외야플라이라도 노아웃이나 원이웃에서 나오면 3루주자의 득점이 가능하다.
하지만, 투아웃 다음에 나오는 외야플라이는 팀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팀만이 아니라 개인에게도 그렇다.
투아웃 전에 플라이를 쳤을 때는 타점도 올릴 수 있고, 희생타로 인정되어 타율관리도 되지만,
투아웃 후의 플라이는 타율만 깎아 먹는다.

삼천만의 놀이문화라는 고스톱에서도 내는 순서에 따라 판쓸이를 해서 남의 소중한 피를 한장씩 얻어 올 수도 있는 반면,
거꾸로 뻑(소위.. 설사)를 하여 가슴을 치는 일도 생긴다.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는 둘 다 탄소로 이루어졌으나 원자배열이 다르다고 한다.  
원자배열의 순서와 조합에 따라 나타나 보이는 색이나 광채가 다르고,  그 가치는 정말 하늘과 땅 차이다.

골프를 칠 때도 우린 순서를 중히 여긴다.
일반적으로 롱홀에서의 클럽 선택은 아마튜어의 경우 대개 드라이버-우드-아이언-퍼터 의 순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티샷한 볼이 러프에 들어갔거나, 혹은 벙커에 들어갔을 경우에는 우드와 아이언의 순서가 바뀔 수가 있다.

이렇듯 순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순서를 바꾸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사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종찬氏나 이인재氏 같은 경우, 순서를 잘못 찾아 큰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사람들이 조금만 조급함을 억누르고 신중히 순서를 생각했더라면 인생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며 지금의 순서가 제대로 가는 것인지, 잘 생각해 보자.
그리고, 뭔가 삶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조급해 하지말고 순서를 살짝 바꿔 보자.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순리대로 살자.  순리(順理)라는 것은 알맞은 때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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