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 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선배 한명과 후배 두명과 같이 라운딩을 나갔었다.
첫 홀에서 티샷을 하고 세컨샷을 하기 위해 페어웨이로 걸어나갔다.

후배 한명의 공이 페어웨이 중앙에 자리를 잡았고,
내 공은 그 공의 10시방향 앞에 있었다.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다들 아는 얘기지만,
골프장에서는 거리가 많이 남은 사람부터 다음 샷을 하는게 룰이며,
거리가 많이 남은 사람이 공을 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나가지 않고 뒤에서 기다리는게 에티켓이다.
또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행동수칙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골프장에서 그런 안전수칙이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별로 없다.
빡빡한 진행속도를 맞추기 위해 대부분의 경우, 뒷사람이 치기 전에 자기 공 근처에 가서 자신의 차례를 준비한다.

나 역시 후배보다 앞쪽에 떨어진 내 공의 위치를 확인하고,
클럽 중 다음 샷을 위해 5번 아이언을 뽑아들고 무심히 후배쪽을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공이 나를 향해 정면으로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그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이 그렇듯, 나 역시 고개를 숙이며 그 자리에서 엎드리는데,
뭔가가 내 오른쪽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그런데, 위치적으로 볼 때, 후배가 친 공이 절대 그 쪽으로 올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혹시 오른 쪽에 있었다면 쌩크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그린방향으로는 10시방향, 그리고 어드레스를 한 입장에서는 7시방향에 있었던 나를 일부러 맞추기도 힘든 위치였다.
당시 그 후배가 비기너였는데, 아마도 몸이 같이 돌면서 악성 훅이 나온게 아닌가 싶다.


Anyway...


 퍽~~~ 

눈에서 불이 번쩍...
관자놀이 부분이 순식간에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커다란 혹이 하나 붙은거 같다.
아프긴 어찌 그리 아픈지...

순간...  당사자인 후배는 사색이 되어 아무 말도 못하고, 남은 두사람이 내게 달려와 괜찮냐고 묻는다.
말로는 '됐어...' 했지만,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골이 지끈지끈 쑤시는데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그때부터 우리의 라운딩은 완전 벙어리 라운딩이 되고 만다.

나는 인상만 쓴 채 맞은 부위만 손으로 만지며 걷고, 다른 사람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걷기만 한다.
가해자인 후배야 물론 가시밭길을 걷는 입장이었을테고.

분위기가 살벌해짐을 느끼는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 분위기를 풀 사람도 나 밖에 없음을 안다.
그런데...  마음 속으로는 '이럼 안되는데... 내가 먼저 말을 꺼내고, 내가 분위기를 풀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듬에도,
관자놀이는 퉁퉁 부풀어오르고, 통증이 강해지면서 머리가 쑤시니, 마음과는 달리 도저히 말이 안 나온다.

그렇게 네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여섯 홀을 돌았다.
물론 캐디 역시 아무 말도 없다.   돌이켜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 퍼레이드다.
그러다 7번홀 쯤 가니, 붓기도 조금 가라앉는거 같고, 통증도 조금 가시는 듯 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슬쩍 한 마디 했다.

'아... 쬐끄만게 정말 드럽게 아프네...   이게 적군한테 맞았으면 된통 달라붙는건데, 아군한테 맞았으니 말도 못하고...' 

그러며 힘들게(?)  씨~익~~ 웃으니, 그제서야 일행들의 굳어진 표정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물론 당사자인 후배는 그래도 굳어있지만...


그 날 이후, 왠지, 괜히 눈이 침침해지는 것도 같고, 시력이 떨어진거 같기도 하고...
왜 있잖은가...   하찮은 사고라도 당하면, 그 뒤에 뭔지 평소같지 않은 찜찜한 기분이 남는거...


그럴 때 마다 하는 소리가 있다.

'정말 그때 적군한테 맞았으면 돈 좀 버는건데...  아군한테 맞아 말도 못 꺼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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