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친구가 있음에...
나의 폴더/사람 사람들 2012. 3. 8. 23:50 |다방면에 정말 박학다식한 친구.
조선왕조 계보를 외우는 사람들을 가끔 보지만, 이 친구는 고려왕조 계보까지 줄줄 꿰고있을 정도다.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그런 폭넓은 식견으로 인해 이 친구와 둘이 만나면 여느 친구와는 다른 대화 패턴이 이어진다.
엊그제의 만남에서도 그랬다.
마침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각 정당의 공천내용이 일부 발표되던 날.
우리의 대화는 자연스레 공천자와 낙천자의 면면에 대한 평가로 시작됐다.
흥미로운건, 평소 둘의 정치이념적 스펙트럼에 차이가 있음에도 개개인의 평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된다는 점. 관점은 다르더라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는 둘의 합리적 성향 때문이랄까.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 우리의 표현 방법은 늘 이렇다.
상대와 의견이 다를 때 우리는 "그건 아니지." 라는 단정적 화법보다는, "글쎄.. 그건 아니지 않나?"
혹은, "그래? 그게 맞는거야?" 라고 생각을 되묻는 다소 연화된 방법으로 생각이 다름을 표하곤 한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그날 둘의 대화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보지 못한 기간 서로의
동정과 친구들의 근황으로 이어지더니, 최근 방영되는 [武臣]이라는 드라마 이야기가 나오면서
급기야 고려시대 왕의 칭호 문제까지 다다른다.
엊그제 만남에서의 하이라이트.
고깃집에서 가위좀 달라고 하여 가위를 들고오는 직원을 보며 친구가 낮은 목소리로 물어온다.
친구 : 저 친구가 가위만 놓고 갈까? 고기를 썰고 갈까?
나 : 가위만 놓고 간다.
친구 : 그럼, 난 썰고 간다.
물주를 정하기 위한 방법은 소소한 곳에서 재미로 존재한다.
이 친구와의 대화는 늘 편안하다.
늘 편안한 소재만 나누는 것도 아니고, 경우에 따라 서로의 답답한 마음이나 불편하고 딱딱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이 친구와 마주하면 그 순간은 마음이 편하다. 좋은 인상과 부드러운
목소리와 말투 탓도 있겠으나, 그보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 오랫동안 각별한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생각의 기본적인 코드가 유사하기 때문이겠지만,
이 친구와 내가 결정적으로 다른 게 두 가지 있다.
둘 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과 사귀는 걸 좋아하지만, 내가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 즐겨 어울리는
반면, 이 친구는 성향이 다소 다르더라도 폭넓게 끌어안고 함께 어울린다. 그런 이유로 나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인맥이 넓은데, 그 많은 사람들을 보살피기에도 능하다. 이 친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다.
그렇게 마음을 쓰는데 누가 싫어하겠는가. 때문에 이 친구의 말은 모두에게 침투력이 강하다.
또 하나는, 둘 다 평소 제삼자에 대해 직설적인 표현을 삼가는 편이지만, 꼭 필요한 경우, 직선으로 치고
들어가는 나에 비해, 이 친구는 상황에 따라 강온을 적절히 구사하며 상대의 감정을 조절할 줄 안다.
그런 서로의 특징을 알기에, 남들이 혹시 이해하기 힘든 서로의 행동을 우린 이해를 넘어 공감할 수 있다.
- 네가 만나는 많은 사람 중에 하나이고 그 중에 밋밋한 사람일 수 있지만,
일상사부터 우리 역사까지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네가 있어 행복하다.
-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가 있어 나는 더욱 행복하다.
엊그제 두 시간동안 소주 세 병을 비우고 헤어진 후 귀가 길에 나눈 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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