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팬들에게 그렇게 말이 많았던 [추격자]를 나는 보지 못했다.
토막살인이 나온다는 그 영화를 언젠가 TV에서 토막토막 잠깐 보았을 뿐이다.
그렇기에 같은 감독이 똑같은 배우들과 만든 이 영화를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내가 스크린을 통해 본 25분간의 연변은 칙칙했다.
그 칙칙한 연변에서 어두운 삶을 사는 김구남(하정우)이 실은 살인청부업자인
개장수 면정학(김윤석)으로부터 살인 청부를 받고 황해를 건너면서,
김구남-김태원, 김태원-면정학, 면정학-김구남의 3각 대결이 호흡 가쁘게 이어진다. 


한국영화의 스크린을 장식한 남자배우들은 많다.
신성일, 남궁원, 이대엽 시절까지 돌아가지 않더라도,
장동건, 정우성, 배용준은 일단 얼굴로 먹고 들어가는 배우다.  
뭐.. 박중훈도 한 인물 하지만, 그는 안성기와 함께 개성파 배우로 분류하고 싶다.

연기자로서 생명력 긴 안성기와 박중훈의 뒤를 이을 요즘의 개성파 배우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김명민과 하정우, 그리고 차승원을 꼽는다.
각기 개성있는 세 배우의 공통적 키워드를 꼽으라면 cool함이겠지만,
비슷함 속에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코믹에도 영역을 갖고있는 차승원은 코믹을 떠나면 차가움이 있다.
개봉될 영화 [조선명탐정]에서 코믹을 선보일 김명민의 트레이드 마크는 냉정함이다.
세 사람 중 코믹보다는 차라리 순정에 가까울 하정우에겐 우울함이 있다.

하정우의 우울함을 잘 살려주는 [황해]의 영상 색감은 조선족 삶의 한 단면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김윤석.
[황해]에서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연기자는 하정우보다 김윤석이다.
[추격자]에서의 애매한 중호와는 물론, [타짜]의 아귀와도 비교가 안되는 카리스마를,
김윤석은 [황해]의 면정학을 통해 보여준다.


인과관계가 조금 애매한 [황해]는 영화가 끝나면서도 명쾌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런걸 따진다는건, 도끼와 칼을 맞으면서 혼자 수십명을 상대하는
부분도 이해될 수 없기에 무의미하다.

헐리우드식 첩보물의 긴박함에 도끼로 상징되는 중국식 폭력의 잔인함을 곁들인 영화 [황해].
정상적이라면 [황해]는 대한민국 영화 명예의 전당으로 인정받는 1000만 관중 돌파가 충분히
가능한 영화라고 생각되지만, 걸림돌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관람층의 제한성이 문제다.
청소년 관람불가의 핸디캡을 안고서도 1000만 관중을 돌파한다면, [황해]는 한국 영화의
신기원을 달성한 영화라고 인정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황해]의 시사회를 본 영화전문기자와 평론가들의 엔딩부분에 대한 다양한 평가에 대해,
나홍진 감독의 "엔딩에 대해 여러가지를 생각했지만, 결국 이것이 최선이었다."는 기사를 보며
어떤 엔딩일까 무척 궁금했다.

영화 [황해]에서의 황해는 요단강과 같은, 돌아올 수 없는 바다다.
시종일관 쫒고 쫒기는 폭력으로 얼룩진 영화의 엔딩에서 감독이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혼의 뿌리인 조선(한국)을 찾는 대다수 중국 조선족의 결말이 아니었을까.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정신적 고향이라 생각되는 한국을 찾은 그들이 맞닥트린 환경은
저임금과 학대, 그리고 결코 동화될 수 없는 이질감이다.
그런 환경 속에 서서히 무력해지고,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가기가 쉽지않은...

나홍진 감독이 전달하고픈 메시지를 담은 엔딩이 아니었나 혼자 생각해본다.


문득 궁금한건, 하정우는 조선족 억양을 누구에게 얼마나 어떻게 배웠을까..


참... 이 영화 입장하기 전 화장실은 다녀오는게 좋다.
보는 것 만으로도 섬뜩한 식칼과 도끼 등에 의한 잔인한 장면과 함께,
수십대의 자동차가 완파되는 카 체이싱 등 볼만한 액션으로 지루함을 느낄 겨를은 전혀 없지만, 
2시간 반은 생리적 욕구를 참기는 힘든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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